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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치밀한 미학으로 무장한 강력한 목소리
"세상을 바꾸는 치밀한 미학으로 무장한 강력한 목소리" 내용보기
“우리는 시간으로 빚어졌다. 우리는 시간의 발이며 시간의 입이다. 시간의 발은 우리의 발로 걷는다.(...) 조만간 시간의 바람이 흔적들을 지울 것이다.” - 13쪽, 「시간이 말하다」에서 인간 시간의 흐름을 마치 지배권력의 절대 사회가 당연했다는 듯 써진 것들이 역사라고 뻔뻔함을 드러내는 세계에서 포착되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뭇 사람들의 지난 시간 속의 삶의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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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으로 빚어졌다. 우리는 시간의 발이며 시간의 입이다. 시간의 발은 우리의 발로 걷는다.

(...) 조만간 시간의 바람이 흔적들을 지울 것이다.” - 13쪽, 「시간이 말하다」에서


인간 시간의 흐름을 마치 지배권력의 절대 사회가 당연했다는 듯 써진 것들이 역사라고 뻔뻔함을 드러내는 세계에서 포착되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뭇 사람들의 지난 시간 속의 삶의 이야기들을 역사의 실재로 재배치하려는 시도는 부인되고 외면되기 일쑤다. 대개 이러한 소외된 이야기들은 인간의 그늘진 측면들로 지배질서와 불화와 충동의 실재를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비극적 역사를 서사시적으로 역술한 대작 『불의 기억』 3부작으로 시민대중을 위한 정치와 역사기술의 전범을 보여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독특한 역사서다.


이 책은 어떤 연대기적 기술 방식이나 인물, 사건을 중심으로 결말을 향한 연속성을 지닌 서술 방식과 같은 기성의 역사서술 양식을 파괴한다. 저자는 지배 권력에 의해 그저 침묵이 강요되거나 관심 밖의 이야기로 치부되었던 목소리를 잃었던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들, 이 사회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일상적이고 하찮은 것들을 통해 인간 사회의 병폐를 혹독하게 비판한다. 그것은 형형색색 333개의 이야기로 짠 한 폭의 우아한 천이되어 휘날린다. 모두가 보고 알아차리도록.


다섯 번째 이야기인 「발자국」은 이 책의 성격을 정의하는 의미심장함을 품고 있다. 직립보행을 시작한 한 쌍의 남녀가 아프리카 대초원을 걸어간다. 그 때 화산이 재를 뿜고 두 사람의 발자국을 보존했다. 손상되지 않고 남겨진 발자국은 이브와 아담이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이브가 걸음을 멈추고 혼자 몇 걸음 걸어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후 이브는 함께 걷던 길로 돌아왔다. 이 얘기는 오래된 인류의 흔적으로 의심의 본래적인 표지를 남겼음을 전달하려 한다. 이 의심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진실을 위해 결코 의심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큰 뇌조」이야기에 이르면 마녀와 부엉이가 사는 아스투리아스 너도밤나무 숲의 어둠 속에서 수컷 큰 뇌조와 암컷이 카니발의 흥겨운 춤판을 벌이고 있다.  “이 축제와 짝짓기 춤이 계속되는 동안 그들이 눈멀고 귀먹는다는 것을 아는” 사냥꾼들은 큰 뇌조를 쉽사리 잡아들인다.  스펙터클을 이용한 우민화(愚民化) 술책은 지배권력의 오랜 전술이고 지금 한국의 극우권력이 즐겨 사용하는 교활하고 천박하지만 꽤 실효성 있는 방법이다. 언제나 많은 대중들이 각성되지 않기 때문임을 너무도 잘 아는 까닭이다. 이처럼 갈레아노는 천천히 우화적 이야기 한 꼭지 한 꼭지를 진전시키며 목소리 없는 자들의 실재적 시간 여행을 가속화한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욕은 20세기 이래 단 한순간도 식은 적이 없다. 이야기 「보상」에서 과테말라의 한 소년은 너무도 궁핍해서 물건을 훔치고 본드를 흡입하며 헐리우드 스타를 꿈꾼다.  소년은 자신의 삶을 의탁할 수 없는 고국을 떠나 경찰의 삼엄한 눈을 피해 목숨을 건 국경을 넘어선다. 마침내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소년은 미(美) 해병대에 입대하고 이라크에서 전사한다. 2003년 어느 날 누이 엔그라시아는 제복차림의 남자들을 맞는다. 동생이 죽었음을, 전쟁에서 침략군의 첫 전사자가 되었음을. 미국은 소년을 시민으로 만들고 그의 관에 성조기를 두름으로써 군장(軍葬)의 예를 베푼다. 미국이 그에게 약속했던 보상으로서. 국민의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과테말라 정권과 탐욕스러운 미국의 책임인가?  누가 이 소년의 삶을 함부로 처리할 권한을 주었을까? 소년은 아군의 포격으로 사망했음이 밝혀졌다. 이는 실제 사건으로의 역사이다. 책은 이렇게 은폐된 실상을 고발하는 대변(代辯)의 목록이기도 하다.


「물」이야기는 이어지는 「물의 주인들」이야기와 쌍을 이루며 민영화된 기간산업의 악질적 폐해와 문화적 후진성을 고발하는데,  수구 우익집단은 권력을 차지하기만하면 국민의 필수적 삶의 근간이 되는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열을 올린다. 자신들의 주머니를 가장 효과적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태초에는 개미허리가 가늘지 않았다고 한다. 개미는 몸통이 둥글고 온통 물로 가득 차 있었는데, 하느님이 세상에 물을 적시는 것을 깜빡해서 개미에게 도움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자 화가 난 하느님은 손가락으로 개미의 배를 쥐어짰다.  이리하여 7대양과 강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20세기 말 볼리비아에 물 전쟁이 일어났다.  수도사업이 민영화되어 미국 기업 벡텔이 물 공급을 거머쥐자 수도요금을 세 배 인상했다. 공동체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볼리비아 우파정권은 민중에게 발포했다.  사망자와 수감자가 속출하고 폭동은 2개월간 계속되었다. 마지막 공세에서 민중은 민영화되었던 물의 권리를 되찾았다. 코차밤바와 라파스의 민영화로 인한 시민폭동은 한국 사회에 뉴스로 전해지지 않는다.  기득권집단인 언론권력은 이 민영화로 배를 불릴 수 있기 때문에 보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이것은 뉴스로 선택되지 않는다. 때문에 시민은 진실의 역사로부터 차단된다. 이것이 역사다.


이야기 「친척들」은 아메리카를 구원한 것으로 묘사되는(물론 서구 제국주의 관점이다) 어떤 사건(1492년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의 오백주년 기념으로 행해진 1992년 멕시코 남동부를 방문한 가톨릭 사제와 원주민의 대화다.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하라고 한다. 원주민들은 말한다. “옥수수를 내버려둬 옥수수 밭이 슬퍼한다고.”, 그리고 “불이 잘 타지 않는다고 불을 때려 함부로 다뤘음을.”, “ 정글 칼을 휘두르며 오솔길을 더럽혔음을”, “나무 한 그루를 쓰러뜨리곤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음을” 고해한다. 사제는 모세의 목록에 나오지 않는 이런 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맨다. 1520년 사제 라스카사스는 서구의 신대륙 발견을 구원이라 말하지 않았다. ‘끔찍한 착취와 살인의 역사로 규정’했다. 그것은 불과 50년 만에 2,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서인도제도의 인디언을 멸종시킨 인류 최대의 참담한 인종학살이라 정의했다. 역사의 진실을 호도하는 이 기이한 500주년 행사의 후안무치가 인간의 진면목이라면 글쎄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더 약술하며 책의 감상을 맺어야겠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인 수레와 기계를 움직이는 바퀴를 누가 발명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경제를 작동시키는 바퀴를 발명한 사람의 이름은 알려져 있다고 한다. 기원전 115년에 태어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라는 것이다. 바로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삼두정치를 이끈 그 크라수스 맞다. 그는 시장의 활력은 재화 및 용역의 수요와 공급의 밀고 당기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순환법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로마에 최초로 회사를 창설했다.  인류 최초의 사설 소방회사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는 불을 지르고 화재를 진압하는 대가로 수입을 올렸다.  사업은 대대적 성공을 거두었다.  지배권력의 역사는 이를 「선구자」라 부른다.


오늘날 「롤 모델」이라 부르는 것은 또 어떨까? 학용품 도난과 사고에 대비해 동급생들에게 보험에 들게 하고,  합리적 이율로 급우들에게 돈을 빌려준 열 살 소년을 모범적 기업가요 천재 소년이라 부른다.  정말 개 웃기는 수작들이지 않은가?  스페인 인터넷 포털 서비스 최대 업체인 스타미디어 창설자의 이야기다. 언론이 이 자의 성공담을 집중 조명하며 그의 모범을 쫓을 것을 말하는 세상에 우리들이 살고 있다. 말을 독점한 자들의 이 경박함과 치졸함이 역사에 짙은 어둠을 드리운다.


여기 이 책의 영혼이라 할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 세계를 직조해낸 이 책, 진실의 역사를 갈음하기로 한다. 생명의 나무는 거꾸로 자란다고 한다. 몸통과 가지는 아래쪽을 향하고 뿌리는 위쪽으로 자란다. 우듬지는 땅으로 가라앉고 뿌리들은 하늘을 바라본다. 나무는 열매가 아니라 기원을 제공한다고. 가장 내밀한 것을 땅 속에 감추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며 그것들을 악천후에 드러냄으로써 맨살의 뿌리가 세상 풍파에 맞서기를. 그것이 바로 삶이라 생명의 나무가 말한다고. 드러나지 않은 작은 목소리들을 무기화(武器化) 함으로써 갈레아노는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목소리로 변환하고자 한다.


저자가 몸소 겪었거나 들었으며, 오랜 발품으로 수집한 이야기들이다.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이들 이야기를 엮어 인간을, 인간의 역사를 새롭게 정의한다. 재미와 날카로운 통찰이 버무려진,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치밀한 미학이 엿보이는 전통적 범주를 파괴한 새로운 역사서이자 정치서이며 문학서라 해도 될 것 같다. 작은 이야기들로 세상의 진실을 엿보게 하는 맛깔스러운 시간의 목소리들이다.

리뷰 총점 종이책
시간의 관점에서 본 다양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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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말하다, 시간의 유희, 시간 너머의 시간, 시간의 함정, 시간의 페이지, 시간의 지도, 시간의 교직(交織), 시간의 무게, 시간의 흐름, 시간 등 우루과이의 저널리스트겸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시간의 목소리’에는 유난히(?) 시간에 대한 글이 많다. 예수와 성모, 부활절 등 종교(카톨릭)에 대한 글도 많고 치료, 의식(儀式), 음악, 예술, 영혼 등 관념적인 이야기들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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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말하다, 시간의 유희, 시간 너머의 시간, 시간의 함정, 시간의 페이지, 시간의 지도, 시간의 교직(交織), 시간의 무게, 시간의 흐름, 시간 등 우루과이의 저널리스트겸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시간의 목소리’에는 유난히(?) 시간에 대한 글이 많다. 예수와 성모, 부활절 등 종교(카톨릭)에 대한 글도 많고 치료, 의식(儀式), 음악, 예술, 영혼 등 관념적인 이야기들은 물론 일상적인 이야기들까지 ‘시간의 목소리’는 다채로운 잔치상을 연상하게 한다.  

사실 이름만으로는 남미의 작가들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 구분하기가 어렵다. 내가 읽은 남미 작가들의 작품은 보르헤스(아르헨티나)의 ‘픽션들’, 알베르토 망구엘(아르헨티나)의 ‘모든 사람은 거짓말 쟁이’, 마르께스(콜롬비아)의 ‘백년 동안의 고독’ 정도이다.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칠레),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 등의 이름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워낙 ‘백년 동안의 고독’에 커다란 영향을 받아서인지 남미, 하면 마술적 리얼리즘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시간의 목소리’는 소설이나 시가 아닌 산문이다. 산문은 시나 소설과 달리 나름대로 남미 국가들의 고유한 특성은 물론 공통의 역사를 말해주는 훌륭한 장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미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일까? 수탈받은 역사, 군사독재 경험, 식민지배를 당한 경험, 정열, 로만 카톨릭, 마야, 아즈텍, 잉카 등의 문명이 아닐지?  

‘시간의 목소리’에 수록된 수많은 이야기들(옮긴이에 의하면 333개라고 한다.)을 일관하는 하나의 큰 흐름은 무엇일까? 그것은 불의에 대한 분노, 정의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우리는 시간으로 빚어졌다. 우리는 시간의 발이며 시간의 입이다.”라는 글로 시작되는 ‘시간의 목소리‘는 작가가 직접 체험했거나 들은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찰나와 같은 영원을 이야기한 시간의 유희, 초록빛, 노란빛, 붉은빛, 검은빛 달에 대한 이야기인 달, El condor pasa를 떠올리게 하는 콘도르, ‘페다고지’의 저자 파울로 프레이리를 떠올리게 하는 말, 보르헤스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홍수, 마리포사라 불리는 기억하는 꽃을 다룬 기억하는 꽃, 인공 숲을 패스트 푸드에 빗대 패스트 우드라 부른 침묵의 숲, 조국 우루과이의 월드컵 우승을 이야기한 푸닥거리, 우주배경복사를 이야기한 최초의 음악, 제레미 벤담의 원형감옥을 이야기한 규율 등에 이르기까지 무게 있는 이야기들이 내 눈에 띄었다.  

이 밖에 아시모프, 마라도나, 사라마구, 후앙 미로, 마이클 잭슨, 장 칼뱅 등 유명인들에서 예수, 성모 마리아까지.. 각양각색의 이야기, 등장인물, 사건들이 우리를 광활한 이야기들의 세계로 이끌었다. 나는 ‘시간의 목소리’를 읽으며 간절한 기원이 담긴 신비하고 종교적인 Hosiana Mantra라는 곡을 떠올렸다. Hosiana Mantra는 Popol Vuh(이 이름은 남미 Quiche族의 경전에서 따온 이름이다.)라는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의 노래이다. 불의에 대한 분노, 정의에 대한 믿음은 간절함을 띠었기에 그런 노래를 연상한 것이다.  

‘시간의 목소리' 읽기는 세상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 독서였다. 작가는 “불필요한 언어의 옷을 벗겨 내”느라 힘들었겠지만 읽는 이는 간결한 표현으로 인해 집중하기가 편했다. 산문의 힘을 다시 한번 깨달은 독서였음을 말하고 싶다. 감사드린다.

http://anuloma01.egloos.com/10788762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document/45397982
http://www.texter.co.kr/04_review/review2_board_view.php?no=11150&book_no=8590&id=texter

이달의 사락 m******1 2011.10.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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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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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으로 빚어졌다   작은 아이 수술부위의 회복과정을 확인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 안과는 유난히 대기시간이 길다. 미리 몇 가지 검사를 거친 후 마냥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 대기실의 그 많은 의자엔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고 앉아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어떤 중년남자는 아예 코까지 골며 잠에 빠져들기까지 했다. 나는 오늘 읽기 시작한 <시간의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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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으로 빚어졌다

 

작은 아이 수술부위의 회복과정을 확인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 안과는 유난히 대기시간이 길다. 미리 몇 가지 검사를 거친 후 마냥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 대기실의 그 많은 의자엔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고 앉아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어떤 중년남자는 아예 코까지 골며 잠에 빠져들기까지 했다. 나는 오늘 읽기 시작한 <시간의 목소리>를 꺼내 읽으며, 가끔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휴대폰을 살피기도 했다. 그러다가 저 혼자 아랑곳없이 돌아가고 있는 텔레비전이 눈에 띄었는데 내일 새벽 3시에 브라질과의 축구 4강전이 펼쳐진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독서프로젝트 때문에 올림픽에도 꿈쩍 안 하고 있었다지만 이것만은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예전이라면 올림픽 경기든 축구 경기든 늦은 밤에 하면 밤을 꼴딱 새워서라도 봐야만 직성이 풀렸던 나이다. 만약 <시간의 목소리>인 저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라면 한국 축구의 이 역사적 사실을 그냥 흘러버리지 않고 분명 어딘가에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시간의 목소리>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시간으로 빚어졌다.

우리는 시간의 발이며 시간의 입이다.

시간의 발은 우리의 발로 걷는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조만간 시간의 바람이 흔적들을 지울 것이다.

무의 도정인가, 무명인의 발자취인가? 시간의 목소리가 여행을 이야기한다.

 

난 이제까지 우리 인간의 정의를 이렇게 멋지게 표현한 문장을 보지 못했다. 우리에겐 지금까지 이어 온 인류 조상들의 모든 유전인자를 담고 있다는 말은 알고 있으나 이 문장처럼 빛이 팍, 하고 일듯 흥분을 주지는 못했다. 나는 살짝 '시간' 대신 다른 것으로 바꿔 보고 싶었다. 그래서 메모노트를 가져와 위의 문장들을 먼저 베껴 쓰고 '시간' 의 자리에 '욕망'이란 낱말을 써 보았다.

 

우리는 욕망으로 빚어졌다.

우리는 욕망의 발이며 욕망의 입이다.

욕망의 발은 우리의 발로 걷는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조만간 욕망의 바람이 흔적들을 지울 것이다.

무의 도정인가, 무명인의 발자취인가? 욕망의 목소리가 여행을 이야기한다.

 

그럴 듯 하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욕망한다. 밥을 욕망하고, 시간을 욕망하고, 사랑을 욕망하고, 배움을 욕망하고, 여행을 욕망하고, 편안함을 욕망하고, 성공을 욕망하고, 물질을 욕망하는가 하면 비움을 욕망하고, 내려놓음을 욕망하고, 무욕을 욕망한다. 그것이 채움이든 비움이든 욕망으로 태어나고 욕망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 우리네 본성이다.

 

나는 다시 책읽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이 책은 대부분, 한 페이지에 짧게 혹은 길게 한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몇 편의 글을 읽으면서 내 마음 속에서 자꾸 "So what?".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역자의 말을 찾아 읽었다. "작가는 우주의 내역사와 일상의 삶에 존재하는 위대함에 주목한다. 그는 아름다움은 바로 현대사회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일상적이고 하찮은 것들에 있으며, <시간의 목소리>에서 그것을 되찾고 싶었다고 말한다." "짧은 이야기의 간결한 언어는 '작은 것의 위대함과 거대한 것의 하찮음'을 표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그런 역설적이게도 이런 간결함 뒤에는 매우 치밀한 미학적 태도와, 전통적인 장르의 틀을 깨뜨리려는 파괴적 욕망이 숨어있다."라고 씌어 있었다. 아니 이건 본문보다 역자의 말이 더 거창한 것이 아닌가하며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가 혹시 번역이 훌륭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성급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시작한 것이니 더 읽어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현대사회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일상적이고 하찮은 것들'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그의 말은 바로 앞에서 리뷰한 '끌리는 것 말고 반대의 것을 보아라'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 말이 아니던가.

 

그렇게 한참을 읽다보니 서서히 저자에게 적응이 되는 듯 하였다. 이야기가 전지구적이기는 하나 저자의 고국인 우루과이나 망명국인 아르헨티나 또는 남미의 이야기들이 적지 않아 문화적인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이외수의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와도 같은 형태의 책이다, 이런 책들은 마지막에 피식 웃음이 나오거나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하는 지혜의 문장들이 나와 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교훈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그저 평범하게 시작하여 싱겁게 끝나버렸다. 그래서 '그래서 어쨌다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저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세계적인 진보 논객이며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답게 일상에서부터 정치, 경제, 예술, 문학, 건물, 전쟁, 환경, 평화, 역사, 신화를 비롯해 작가, 저널리스트, 건축가, 조각가, 화가, 스포츠 선수 등 지구촌의 온갖 방면의 일들을 망라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순서에 어떤 체계나 논리를 갖추지 않아 상하좌우로 널뛰듯이 이야기가 퍼져 있어서 그렇지 그가 추구하는 글의 방향은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비리에 대한 비판의식이 돋보였다. 각각의 다른 천이 모여서 아름다운 한 장으로 탄생되는 조각보같은 이야기라고 하면 맞을까? 

 

책을 다 읽고 다시 앞으로 가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인가? 마치 다른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이야기가 차곡차곡 내 안으로 들어왔고 한 문장 한 문장이 의미심장하였다. 내가 미처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한 권을 다 읽고 난 뒤 그 사이에 내 지적수준이 향상이라도 된 것일까? 여하튼 나는 나중에 이 책을 꼼꼼히 다시 읽어야 할 책으로 분류해 놓았다.

 

소리공부를 같이 하는 회원 중에 나이도 가장 어리고 얼굴도 아주 예쁘고 몸매도 아가씨처럼 날씬한 동생이 있다. 그런데 갑상선질환이 있어서 쉬이 피곤해한다. 워낙 성격 자체가 예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형이라 더 그런 것 같았다. 그 날도 컨디션이 안 좋아 강습시간에 빠졌는데 스승님과 통화를 하면서 했다는 농담이 "선생님, 혹시 제가 죽거들랑 춘향가 CD랑 함께 묻어주세요."라고 했단다. 그 소리를 들은 우리들은 박장대소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신문 찬양>이라는 글인데 신문을 좋아하는 것이 지나쳐 신문광인 남자가 있었다 그는 코끼리를 타며 신문을 읽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다. 그의 부인은 그것을 이루도록 도왔다. 둘은 알뜰하게 돈을 모아 정말로 인도로 여행을 가서 아침 식사는 못했지만 봄베이에서 한 신문을 겨우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딸 역시 신문광이었다. 신문이 없으면 하루 중 첫 커피는 향기도, 맛도, 의미도 없었다. 신문이 없으면 곧바로 손발이 떨리고 메스껍고 말을 더듬는 등의 초기 금단증세가 나타났다. 그녀는 자기가 죽으면 무덤에 꽃을 가져오지 말라고 부탁한다. 대신 "신문을 가져다줘요."란다. '나는 죽으면 무엇과 함께 묻어달라고 할까? 그도 아니면 무엇을 가져와 달랄까?'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초토화시킨 핵폭발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를 통해 읽은 바 있고, 그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해 분노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폭탄을 투하한 것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이미 승리한 전쟁이었다) 그 다음 적인 소련을 겁주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다. 냉전시대였을 당시 두 강국이 힘겨루기 쇼(?)로 그들의 국력을 적지않게 소모도 했지만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해 그 죄없는 많은 아녀자들을 희생시키다니 기가 막힌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들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치가 떨린다.

 

평소의 습관대로 지구의 대통령은 추론했다.

그의 추론은 이랬다.

산불을 근절하려면 숲의 나무을 베어 버려야 한다.

두통을 치료하려면 환자의 목을 쳐야 한다.

이라크인들을 해방시키려면 박살이 날 때까지 그들에게 폭격을 퍼부어야 한다.

그래서 아프가티스탄 뒤에 이라크 차례였다.

다시 한 번 이라크다.

'석유'라는 단어는 언급되지 않았다.(무한 전쟁/ 341쪽)

 

망할,

평소 이러한 욕을 하지도 않고, 욕이라는 자체를 입에 담지도 못하는 내가 이런 곳에 욕을 쓰다니!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한 번쯤 해도 용서되겠지? 아니 꼭 해야 될 것 같다. 분노해야 할 곳에선 마땅히 분노를 해야지 그렇지 못 하다면 진정한 사람이 아니잖는가. 이 시간만큼은 나를 그냥 내버려 두자. 예전 전쟁 당시의 분노까지 되살아나 함께 치밀어 오른다.

 

이쯤에서 흥분을 잠시 가라앉혀야겠다.

 

매일같이 밤 여덟 시 정각에 와서 드라이한 백포도주 두잔을 시키는 남자가 있다. 그는 한 번에 두 잔을 시켜서는 혼자서 한 모금씩 번갈아 마신다. 말없이, 아주 천천히 두 잔을 비우고 값을 치르고 자리를 뜬다. 그 남자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그에게 절친한 죽마고우가 우루과이에서 캐나다로 떠났다. 그 친구가 떠난 뒤 그 둘은 매일 밤 몬테비데오 시각으로 여덟시 정각에 만난 함께 술을 마시는 거다. 그는 그 바에서, 떠난 친구는 그 곳의 한 바에서. 매일 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 날 남자는 평소처럼 여덟 시 정각에 들어왔지만 포도주를 한 잔만 시켰다. 그러고는 말없이, 천천히, 그 고독한 술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웠다. 평소보다 좀 더 말이 없었고 좀 더 천천히 마셨다. 우리가 그에게 해 줄 말은 딱 한가지다. "애도를 표합니다." 그대는 이런 친구 가졌는가? 몸은 떨어져 있어도 한 곳에 있는 것처럼 같은 영혼을 가진 친구. 

 

가슴이 촉촉히 젖어드는 이야기다.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다. 이처럼 세상엔 사연을 가진 이야기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이제 마무리다. 감상에서 벗어나 수그러든 줄 알았던 젊은 날의 비판의식이 고개를 서서히 들려는 참이다. 그래서 마지막 마무리는 이런 글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오락 산업은 고독의 시장을 먹고 산다.

위로 산업은 고뇌의 시장을 먹고 산다.

보안 산업은 두려움의 시장을 먹고 산다.

사기 산업은 어리석음의 시장을 먹고 산다.

이 산업들은 성공 여부를 어떻게 측정할까? 주식시장에서다.

무기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무기 산업의 주가는 모든 전쟁에서 최고의 뉴스거리다.

            (339쪽 /뉴스)

YES마니아 : 플래티넘 i****l 2012.08.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