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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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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너무 많이 들어서 내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러셀도 내게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고나서 내가 러셀의 어떤 책을 읽은 적이 있는가하고 짚어봤더니 세상에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언뜻 [게으름의 찬양]을 읽은 것 같아서 책장을 뒤지고 내가 써놓은 리뷰를 찾아봤더니 내가 읽은 것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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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너무 많이 들어서 내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러셀도 내게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고나서 내가 러셀의 어떤 책을 읽은 적이 있는가하고 짚어봤더니 세상에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언뜻 [게으름의 찬양]을 읽은 것 같아서 책장을 뒤지고 내가 써놓은 리뷰를 찾아봤더니 내가 읽은 것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글을 읽은 느낌이 비슷해서 한동안 같은 사람이 쓴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쨋거나 그렇게 책을 읽고난 다음에도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서 나는 러셀의 어떤 책도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러셀의 책들 중에서도 읽어보고싶은 책이 많고 또 이 책에서 소개된 여러 역사책들도 읽어보고싶어졌으니 앞으로 한동안은 심심할 새가 없게 생겼다. 

 

이 책은 참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책의 본문은 거의 반절 정도다. 나머지 반은  옮긴이가 덧붙여놓은 주석이다. 책 매 페이지 하단에도 짧은 각주가 한두개씩 달려있다. 답답하게 모르는 채 읽는 것보다는 수백배는 좋지만 앞뒤로 넘기면서 읽다보면 정신이 없기는 하다.

 

이 책은 '어떻게 역사를 읽고 이해할 것인가'라는 원제처럼 역사를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제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책 전체에 대한 소제목이라고 할까, 서문이라고 할까 "쾌락으로서의 역사읽기"라고 되어있다. 이토록 유쾌한 생각이라니. 그래 내가 지금 이 나이에 학생 때도 공부 안하던 역사에 자꾸 관심이 생겨서 이 책 저 책을 뒤지고 있는지 잘 몰랐는데 러셀이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었다. 17쪽 첫 꼭지 마지막에 이렇게 써있다. '이 책에서   내가 추구하는 목표는 내가 역사 읽기로부터 이끌어낸 것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굳이 역사학자가 되려하지 않고서도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들려주는 데 있다." 그 다음 제목이 "즐기지 않는다면 효용도 없다." 이런 식으로 짧은 문장들로 되어있는 주제들이 들어있는데 상큼하고 한편 묵직했다. 주제들에 따라서 그야말로 흥미가 부쩍 생기는 것도 있었고 전혀 관심없는 것들도 있었지만 일단은 어떤 것들이 역사를 즐기는 것에 포함되는지까지를 파악했다고 할까. 여러번 뒤적거리며 읽고싶게 생겼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얼른 한 권 주문해야겠다.

 

 

YES마니아 : 로얄 k********i 2012.03.30. 신고 공감 5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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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시선으로 본 세계사
"철학자의 시선으로 본 세계사" 내용보기
독자는 이 책이 1943년에 작성된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 이 글을 쓸 당시 러셀은 아직 제2차 세계대전이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로 하여금 영국의 대표적 지성이 전쟁 당시에 무엇을 어떻게 느꼈고 전후 처리 문제에 대해 어떤 전망을 품고 있는 지를 헤아려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10쪽   간추린 예술과 기술의 역사는 그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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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이 책이 1943년에 작성된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 이 글을 쓸 당시 러셀은 아직 제2차 세계대전이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로 하여금 영국의 대표적 지성이 전쟁 당시에 무엇을 어떻게 느꼈고 전후 처리 문제에 대해 어떤 전망을 품고 있는 지를 헤아려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10쪽

 

간추린 예술과 기술의 역사는 그림과 설명을 곁들이면 유년기 아동에게도 매우 흥미롭게 전달될 수 있다. 주택, 교통수단, 선박, 농업 등의 발전은 그보다 세부적인 역사 공부를 시작하기 전이라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기술 발전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감각을 갖게 해준다. 또한 그것은 우리 시대와 매우 먼 고대의 일상생활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6, 7세 정도의 지적인 아동이라면 문명 초기에 큰 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아이들에게 친숙한 것만을 교육의 출발점으로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더 상상력이 풍부하다. 아이들은 사물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를 어른들과 매우 다른 방식으로 즐길 줄 안다. 역사의 다음 단계는 초기 단계에 비해 어린 아이들에게는 조금 어려워 보인다. 대개 10세가 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역사상 위대한 진보의 시기를 셋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시기는 농업이 시작되고, 왕권이 강화되고 국가가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왕과 신의 영광을 위해 거대한 건축물이 축조되고, 문자가 발명되었으며, 바빌로니아인이 수학의 기초를 발견했고, 평화와 전쟁의 수법이 야만 단계를 벗어났다. 두 번째 시기는 수천 년의 경직된 시기를 거친 다음 도래한 그리스의 위대한 시대로서, 호메로스 시대로부터 아르키메데스가 로마 병사의 손에 죽음을 당할 때까지이다. 그 후 쇠퇴와 암흑의 기나긴 시기를 거친 다음 세 번째 시기가 도래했다. 15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믿을 수 없으리만큼 빠른 진호가 이루어진 것이다. 기록된 역사 시대 전 기간을 통틀어 진보는 규칙이 아니라 오히려 예외였다. 그러나 일단 도래하자, 진보는 신속하고도 단호하게 진행되었다. 22-23

 

정체된 시기는 개인들이 무력감을 느꼈던 시기를 말한다. 진보의 시기는 인간이 위대한 성취가 가능하다고 느끼고 자기들의 몫을 가지려 했던 시기를 말한다. 24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세계와 산업혁명 이전 세계의 차이는 소수의 개인이 이룩한 발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일 어떤 불운으로 말미암아 비범한 능력을 지닌 수천 명의 개인이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면, 오늘날의 생산 기술은 18세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인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역사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이 점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희망과 기대가 없다면 어떤 중요한 일도 성취할 수 없다. 25

 

역사가 수행할 수 있는 두 가지 다른 기능이 남아 있다. 하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겸손한 일반화를 통해 역사 과학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인물 연구를 통해 드라마나 서사시의 장점진실이라는 장점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두 타입의 역사가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양극으로 갈라진다. 전자는 인간을 객관적으로, 마치 천문학자가 천체를 대하듯 바라본다. 후자는 상상력에 호소하며, 마치 숙련된 기수에게 말에 관한 지식을 전수하듯이 인간에 관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1

 

나는 역사 읽기에서 얻어지는 최고의 쾌락은 우리가 특정 시대를 좀 더 잘 알고 난 후에야 얻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때에 이르러서야 조각그림 맞추기 퍼즐에서 새로운 사실들 하나하나가 제자리를 찾기 때문이다. 38

 

어느 시대의 역사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을 습득한 뒤에는, 곧장 그 시대에 쓰인 서신과 회고록을 읽는 것이 즐겁고 유익하다. 45

 

대부분의 사람들은 잔 다르크가 헨리 5세의 잉글랜드에 패배한 프랑스를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한때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내 프랑스 성공의 참다운 원인은 포병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잉글랜드는 궁수에 의존했고 궁수는 프랑스 기사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궁수는 대포 앞에서 무력했다. 잔 다르크 이후 60여년 동안 서유럽 전역에서 국왕들은 새로운 전투 방식 덕분에 수백 년 동안 무질서하기 그지없었던 사나운 귀족들을 압도할 수 있게 되었다. 화약 덕분에 서유럽에는 전제 정부와 시민 질서가 나란히 도입되었다. 그렇다면 20세기의 발명품인 항공기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세상에 들여오게 될까? 아니면 둘 중 하나만 들여오게 될까? 만일 하나라면 그 중 어떤 것을? 47

 

프랑스 혁명은 새로운 종류의 전쟁을 도입했다. 전 국민이 무언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고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전쟁 말이다. 과거의 전쟁은 왕들과 소수의 귀족들에게 국한된 일이었다. 군대는 용병으로 이루어졌고, 인구의 대다수는 무심한 방관자였다. 나폴레옹의 전제로 프랑스의 기존 우방들이 적으로 돌아선 뒤, 독일은 1813년의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유사한 국민 전쟁을 치렀고, 이번에는 좀 더 지속적인 성과를 거뒀다.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국 정부는 전쟁을 국민적 차원으로 확대시킬 필요성을 점점 더 절감하게 되었고, 국민교육이라고 하는 잠재적 무기를 그 목적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정부 형태로서의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을 전쟁에 참여토록 만드는 장점이 있었다. 47-49

 

경제사는 기존의 역사에 비해 비범한 개인이 아닌 보통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51

 

레닌 말년의 신경제 정책은 농민에 대한 양보였지만, 스탈린은 무자비한 방법으로 마침내 도시 세력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와 같은 충돌들은 역사적 조망 속에서 살펴야 전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58쪽

 

토니의 <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은 대단히 가치있고 흥미로운 책으로, 어떤 의미에서 마르크스 교조와 상반되는 이론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토니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추적하는 데 관심을 가졌는데, 여기서 프로테스탄티즘은 원인이고 자본주의는 결과이며, 둘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는 개인주의다. 즉 신학적 자유방임주의를 경제적 자유방임주의의 원천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에게 시작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관계가 토니가 말한 그대로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59쪽

 

만일 고대 그리스인의 지성이 최고의 수준에 계속 머물렀다면 산업혁명은 고대에 발생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노예 노동력이 저렴했기에 노동력 절감 장치 발명에 대한 동기부여가 사라졌다고 하는 마르크스의 대답이 습관처럼 제시된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 관점을 지지하지 않는다. 근대적 생산 방식은 면화 산업에서 시작되었는데, 이 근대적 방식은 자유 노동력을 고용한 방적 및 직조 부분에서뿐만 아니라, 노예 노동력을 이용한 면화 수집 과정에서도 시작되었다. 더욱이 어떤 노예 노동력도 19세기 초 랭커셔 공장주들이 고용한 비참한 어린이 노동자들보다 더 저렴하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그들은 고작해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는 정도의 대우를 받으면서 죽을 때까지 하루 14-16시간을 일해야 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예의 죽음은 노예 소유주에게 경제적 손실이었지만, 임금 노동자의 죽음은 고용주에게 손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61쪽

 

서로마 제국 멸망 당시 교회에는 유다, 그리스, 로마에서 비롯된 세 가지 요소가 혼재되어 있었다. 교회는 유대인으로부터 거룩한 책과 신성한 역사, 메시아 신앙, 맹렬한 도덕성, 하나의 신앙 이외의 모든 종교에 대한 불관용 등을 이어받았다. 특히 그리스도교 교리, 요한, 바울, 그리고 교부들에게서 나타난 그리스적 요소는, 그리스 철학-유대인의 정신과 전혀 이질적이었다-을 채용한 정교한 신학에 의해 점차 발전되었다. <요한복음>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과는 달리 그리스도교적 그리스 철학의 초기 단계를 보여준다. 교부들, 특히 오리게네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 철학을 그리스도교 사상의 필수 요소로 삼았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한 핵심적 그리스도교 교리의 상당 부분을 플라톤에게서 창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73쪽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자마자 주교들은 행정 및 사법 기능을 맡았다. 황제들이 주관한 공의회는 처음에는 교리 문제만을 제한적으로 다루었지만 궁극적으로 중앙집권화의 단초를 제공했다. 73쪽

 

아퀴나스는 그의 시대에는 대단한 혁신가였다. 아랍의 영향을 받은 그는 플라톤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선호했고, 이 때문에 파리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죄를 당했다. 그러나 아퀴나스와 아리스토텔레스(그 또한 정죄 받았다)에 대한 동시대인의 이런 거부 반응은 오늘날에는 까맣게 잊혔고, 현대 가톨릭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마치 교부 중 한 사람인 것처럼 간주하고 있다. 74-75쪽

 

[박상익]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14세기 초 유럽 수도사들이 아랍어 문서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도원 사서들에게 아랍어 해독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됐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아랍어를 중세 유럽의 공용어인 라틴어로 번역했다는 것은 서유럽인인 이슬람으로부터 뭔가 배웠음을 뜻한다. “대체 서유럽이 아랍으로부터 뭘 배운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근대 이후 서양 문명이 이슬람을 압도했던 까닭에 우리 뇌리에는 “이슬람 문명은 서양 문명보다 뒤떨어진 문명”이라는 부정적 고정 관념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유럽이 이슬람보다 우월하다는 시각은 최근 수백년에 한해서만 맞는 말이다. 서기 7세기 이후 500년 동안 이슬람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 철학을 소화해냄으로써 서유럽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문명을 건설했다. 이슬람은 단순히 그리스 학문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독창적으로 끌어올렸고, 야만 상태의 서유럽은 12세기 이후 이슬람 학자들이 소화한 그리스 학문을 받아들임으로써 문명을 도약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유럽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그리스어→라틴어로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어→아랍어→라틴어로 중역된 텍스트를 통해 처음 그리스 사상을 접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기독교에 융합시킨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역사가들이 12세기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서유럽의 번영은 이슬람의 학문적 성취가 없었다면 이룩될 수 없었다. 158-159쪽

 

교회대분열이 마침내 무마되던 즈음에 르네상스가 시작되었고, 교황들은 교회의 이익을 망각한 채 이탈리아의 권력 정치 무대에서 교황의 세속 지배권 확대를 위해 싸움을 벌였다. 자유분방하고 세속적이며 방탕한 교황들은 사치와 허영을 위해 가톨릭 세계 전역의 신심 깊은 이들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그것은 북유럽인의 경건한 신앙에 충격을 가했고 마침내 종교개혁을 촉발시켰다. 76쪽

 

맨 처음 종교개혁은 알프스 이북 대부분의 국가들을 휩쓸었다. 그러나 가톨릭은 로욜라, 카를 5세, 푸거가에 의해 구원받았다. … 푸거가는 합스부르크 왕가에 빌려준 돈 때문에 파산했다. 하지만 그 무렵 가톨릭 교회는 구원을 받았다. 77쪽

 

국가는 당신을 교육할 때 유익한 지식을 공급하는 공적 목적과 정치인을 위해 기꺼이 세금을 납부토록 만드는 사적 목적을 갖는다. 당신이 구독하는 신문은 공적으로는 뉴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사적으로는 사주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뉴스를 제공하려 한다. 당신이 지지하는 정당은 국가 이익에 기여한다는 공적 강령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나이가 어리거나 순진하지 않다면,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그 강력을 특정 집단을 위한 공적 자금의 확보를 위해 활용하리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교회로 말할 것 같으면-그러나 쉬! 이쯤에서 선을 그어야 한다. 나는 확신한다.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양떼의 영원한 복리 이외의 것을 단 한 순간이라도 고려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이다. 81-82쪽

 

이상주의를 목표로 내건 어떤 조직도, 사회가 그 지도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폭정으로 타락하고 말 것이다.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발견된 유일한 수단이지만, 그것이 경제적 영역-민주주의는 아직 이 영역에서 배제되고 있다-으로 확장되지 않는다면 완전히 효과적 수단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모든 주제에 대한 핵심 자료들은 역사 연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85-86쪽

 

로마제국은 페르시아보다 규모가 훨씬 컸지만 한층 뛰어난 도로망으로 통합을 실현시켰다. 분명 항공기는 거대 국가 수립에 있어서 로마의 도로망을 뛰어넘는 높은 수준의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므로 항공기가 새로운 정치 형태의 창출을 용이하게 만들 것이며, 공군력을 독점할 수만 있다면 안정적인 세계국가의 등장이 가능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 86쪽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은 다음과 같았다. 완고한 전통 체제 안에서 한 부족 또는 한 민족이 응축된 에너지를 서서히 쌓아 올려 마침내 속박을 깨트린다. 낡은 관습은 처음에는 의사 표현의 영역에서, 그 다음에는 행동의 영역에서 무너진다. 가장 위대한 창조적 시대는 의사 표현은 자유롭되 아직 행동은 어느 정도 인습적인 그런 시기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회의주의가 도덕적 금기를 무너뜨리고, 사회는 회복 불가능의 무정부 상태로 전락하며, 자유는 폭정으로 이어지고, 차차 새로운 경직된 전통이 수립된다. 87쪽

 

수많은 국가들이 변화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변화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멸망했다. 어떤 국가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예외적인 개인을 관용하지 않는 한 오래도록 번영할 수 없다.

예술, 문학, 과학에서 위대한 이을 성취한 사람들이 젊은 시절 괴짜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청년들의 괴팍함이 용인되지 않는다면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위대한 업적이 나오기 힘들다. 그러나 모두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도 막상 교육 현장에서 그것을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이 사회와의 관련성 속에서 살아야 하며 사회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이 똑같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외적인 기여는 예외적인 성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90-91쪽

 

천문학이 정신의 공간적 영역을 확장시켜준다면, 역사학은 정신의 시간적 영역을 확대해 준다. 91쪽

 

역사의 전망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사건과 어떤 행동이 영속적 가치를 갖는지를 좀 더 명료하게 볼 수 있도록 한다. 갈릴레이의 동시대인들 대부분은 그의 학문적 발견보다 30년 전쟁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30년 전쟁은 하찮은 사건이었을 뿐이고, 갈릴레이의 발견은 새로운 한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글래드스턴이 다윈을 방문하고 간 뒤 다윈은 이렇게 기록했다. “그토록 위대한 인물의 방문을 받다니 얼마나 영예로운 일인가” 우리는 다윈의 겸손함에 호감을 갖지만, 다윈의 생각에 역사적 조망이 결여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수많은 사건들-예를 들면 정단 간의 권력다툼-은 일시적으로 그것들이 갖는 진정한 중요성에 걸맞지 않게 엄청난 흥분과 동요를 자아낸다. 반면, 가장 위대한 사건들은 높은 산의 정상과도 같이 저 멀리에서 삼라만상을 압도하고 있으면서도 가까이에서 펼쳐진 풍경에 의해 가려진다. 역사는 건전하고 침착한 판단력을 갖는 데 도움을 주어, 동시대의 사건들을 역사적 배경 속에서 바라보는 습관과, 그것들이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상상하는 습관을 얻게 해준다. 92-93쪽

t****b 2013.02.1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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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빛내는 위대한 개인들을 위해 / [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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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역시나 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가는 작가들이 있다. 움베르트 에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밀란 쿤데라 등, 이런 사람들의 책들은 그냥 검증 없이 '무조건' 사도 무방할 정도로 대단한 작가들이다.버트런드 러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게으름에 관한 찬양>으로부터 시작해서 물론 내가 그간 읽어본 러셀의 저작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저마다 의미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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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역시나 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가는 작가들이 있다. 움베르트 에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밀란 쿤데라 등, 이런 사람들의 책들은 그냥 검증 없이 '무조건' 사도 무방할 정도로 대단한 작가들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게으름에 관한 찬양>으로부터 시작해서 물론 내가 그간 읽어본 러셀의 저작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저마다 의미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이번 책도 러셀의 책이라고 하니 믿고 산 책이었다. <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
정말 아무 검증 없이 산 책이었다. 더군다나 번역을 한 사람도 <번역은 반역인가>를 쓴 박상익이어서 더욱 믿음이 갔다. <번역은 반역인가>에서 박상익 교수가 보여준 그 번역에 대한 진정성은 진짜 학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러셀->을 샀는데.. 분량이 생각보다 너무 적었다. 러셀이 쓴 부분은 93쪽까지밖에 안 되고, <깊이 읽기>라고 해서 주석을 책 전체의 절반 가까이 붙여 놓았다. 주석이 미주 형식으로 뒤에 쭉 포진돼 있어서 책을 읽다가 계속 뒤를 들추어보아야 해서 꽤나 불편했다. 각각의 주석마다 소제목을 붙여 놓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상식 차원에서 뒷부분을 따로 읽어볼 수 있을 듯싶다.

러셀의 장점은 그럼에도 역시나 빛났다. 번뜩이는 발상과 명쾌한 설명 등은 정말 매력적이다. 특히 역사철학에 대한 비판을 가할 때가 좋았다.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이 얼마나 부박한 논증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가볍게 비판하고, 역사는 결코 그리 단순하게 법칙화, 공식화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해준다.

예전에 러셀의 저작들을 읽을 때는 러셀의 의견에 거의 완전히 동의하곤 했는데, 이제는 러셀의 생각에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다. 물론 러셀의 시선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게 많고,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역사철학에 대한 헤겔과 마르크스의 생각이 물론 그리 과학적인 건 아니지만, 그런 논증의 과정이 아예 의미가 없는 건 아닐 테다. 단순화해서 역사의 발전 단계를 그려보다 보면, 그 나름대로의 효용이 있다. 일반화함으로써 버리게 되는 개인들의 사소한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시대의 전형성 등은 손 쉽게 파악해 볼 수가 있다. 그 점에서 역사철학은 제 나름대로 존중 받을 까닭이 있는 것이다.

러셀의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는 별개의 잡문들을 엮어놓은 글로써, 그리 체계적인 구성이 아니다. 그래서 러셀의 생각을 깊숙이 들여다보기에도 부적합하다. 하지만 러셀이 말한 것들 중 이 책에서 핵심적이었던 건, 역사에서 개인의 중요성이었고, 또 재미였다. 우리가 문학이나 영화를 보며 즐거워하는 이유는 그만큼 '사람'이 재미 있고, 또 알고 싶은 존재여서가 아닐까? 역사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관점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면 재미도 얻을 수 있고, 역사의 참 면모를 더 끌어안을 수 있으리라는 러셀의 생각을 듣고 어느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서평을 쓰고 나니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까 내 독서가 부족했던 것 같아 부끄럽다. 여러분도 러셀의 역사관에 흠뻑 빠져보시길. 히힛.




YES마니아 : 로얄 i******y 2011.09.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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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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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을 보라, 그의 손을 통하여 그가 얼마나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이번엔 역사다. 세상을 보는 그의 도특한 관점들이 이전의 그의 저서들을 보여 주었다면 이번의 그의 역사를 보는 특별한 시선을 보게 될 수 있다. 기대감만큼 많은 것을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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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을 보라, 그의 손을 통하여 그가 얼마나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이번엔 역사다. 세상을 보는 그의 도특한 관점들이 이전의 그의 저서들을 보여 주었다면 이번의 그의 역사를 보는 특별한 시선을 보게 될 수 있다. 기대감만큼 많은 것을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YES마니아 : 골드 c***b 2015.10.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