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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하우스] 삶의 조각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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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모든 물질들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가치에 대한 생각. 그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찾아왔는데 물질이 하나의 존재로 인식되어지면 모든 물질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나를 유물론자를 보면 안되고 그저 존재의 가치에 의의를 두면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찾아든다. <그레이트 하우스>의 작가 니콜 크라우스를 두고 신동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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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모든 물질들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가치에 대한 생각. 그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찾아왔는데 물질이 하나의 존재로 인식되어지면 모든 물질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나를 유물론자를 보면 안되고 그저 존재의 가치에 의의를 두면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찾아든다. <그레이트 하우스>의 작가 니콜 크라우스를 두고 신동이라 칭하는데 나는 사실 별 기대감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구성이나 구조가 매우 독특하다. 모든  것이 발전해 왔듯이 소설의 구성도 점점  복잡해지고 있고 대부분의 소설들이 어디선가 한번 본듯한 구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물음표였다. 기억의 조각들이 잘 맞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퍼즐을 짜맞추는 기분으로 추리소설도 아닌데 추리해야 했고 슬픈 장르의 소설이 아닌데 눈물이 나고 정치적인 소설이 아닌데  정치적인 소설이다. 무엇보다 유려한 심리묘사를 볼수 있는데 전혀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음에도 말하는 이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무게와 상실에 대한 상실감의 표현이 놀라웠다. 삶의 무게와 깊이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구성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고 1부가 다시 네명의 이야기로 나뉜다. 그리고 그 네명의 이야기가 1부에  이어 2부에서 결말을 맺는데 어찌보면 옴니버스 같고 어찌보면 서로 독립된 내용같은데 네명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들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는  바로 책상이다.책상안에 그들은 그들의 욕망을 , 그들의 사랑을, 그들의 상실을 기억해 놓았다. 그리고 그 책상이 기억하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다.

 

첫 시작은 판사 앞에서 한 여인이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데 나는 여인이 아주 큰 죄를 지어서 판사앞에 고백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인은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는 가운데 판사를 만날 때가 기억이 생생할 떄인 것이다. 그 고백은 젊은 시절 여인이 사랑한 칠레인인 남자가 남겨주고 간 책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상을 자신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여인이 책상을 빼앗기자 삶에 분열이 생기게 되기까지를 고백하는데  이어 그 여인의 남편이 아내에게 결핍된 영혼을 이해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두번째 이야기이다.

 

 아내와 함께 한 책상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물건이었다. 그렇게 단출하고 작은 방에서 그 책상만이 무슨 엽기적이고 위협적인 괴물처럼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었다. 라는 말을 보면 사랑하지만 결코 곁을 주지 않았던 아내의 영혼을 남편은 책상을 아내의 영혼을 앗아간 괴물로 보여진 듯 하다.

 

이어  여인이 자신의 삶을 고백했던 판사의 아버지의 고백이다. 어렸을 적부터 무언가 결핍된 채 세상을 살았던  아들을 바라보며  언제나 이방인으로만 대했던 아버지. 아들에 대한 사랑보다는 남들과는 많이 다른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오지 않는 아들을 보며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삶을 되돌아보게 된 아버지는 아들에게 처음으로  친절을 베푼다.아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했던 마음을 아내가 죽고 나서야 죽음에 대한 통찰을 하게 되고  아들의 삶을 이제는 자신이 관여해야 한다는 어떤 깨달음으로 아들에게 말할 땐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지막 집념같은 것이 느껴진다.

 

 " 넌 나의 사랑이자 후회였지 , 잠시도 네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는 걸 네가 알아 줬으면 한다. 네가 어디를 가든 상처들이 네 안에서 소리를 냈다. 오래된 상처들이 새로운 상처들과 뒤섞였고, 그 모든 상처에 내가 깊숙이 연관돼 있었지. 어디서든 내게 보이는 건 네 등뿐이더구나.  

  

이어 나치유대인 골동품상 와이즈씨의 이야기이다. 나치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유대인의 아들 와이즈씨는 아버지를 위해서 아버지의 서재를 복원시키기 위해 물건들을 찾아다닌다. 와이즈씨는 나치에 당한 기억때문인지 몰라도  지나치게  타인을 경계하고 아들과 딸들조차 엄격하게 키운다. 아버지덕분에 아들 요아브와 레아 또한 지나친 아버지의 간섭과 엄격함 속에서 타인과는 교류는 없는 결핍 속에서 자란다.

 

유대인들이 어디를 가든 자신의 몸에 지닌 채 잃어버린 땅을 떠올릴 수 있게 해 줄 과거의 증거로서 저자는 책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 책상을 통해 영혼의 교류를 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모두가 상실감에 허덕이고 삶에 돌이킬수 없는 후회에 괴로워하며 어린 시절 애정의 결핍으로 인해 피폐된 영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한 낱 사물에 불과한 책상이겠지만 어떤 누군가에게는 삶의 전부가 되는 책상이 되기도 하는 것에서 위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듯 했다 . 현실이 기억이 되고 기억이 더 현실이 되자 현실의 삶은 흐릿해져가는 세상을 사는 <그레이트 하우스>는 아픈 기억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책상 .. 지금도 어디선가 그 누군가의 상실된 기억을 기억하고 있겠지.....상실감과 결핍없이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현실을 망각하고 살 정도의 아픔이 작금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아픔인 것 같아 왠지 슬픈 소설이었고  독특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그레이트 하우스는 집의 이름이 아니라 나치 시절 예루살렘을 잃어버린 유대인들을 위해 세운 학파이름이다.)

 

* 오타 19p 13번째 줄 있든 없는 ☞ 있든 없든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1.07.30.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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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그레이크 하우스][모던클래식 050]
"디아스포라 [그레이크 하우스][모던클래식 050]" 내용보기
참으로 유니크한 스트럭처와 내러티브를 선사하는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작품의 필력만을 보면 여류작가(물론 여류 작가들을 싸잡아 폄해하거나 도외시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의 작품으로 믿어지지 않을 큼 시원, 시원스럽게(반면에 세세한 상태묘사나 심리묘사에선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느낄수도 있다)작품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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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유니크한 스트럭처와 내러티브를 선사하는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작품의 필력만을 보면 여류작가(물론 여류 작가들을 싸잡아 폄해하거나 도외시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의 작품으로 믿어지지 않을 큼 시원, 시원스럽게(반면에 세세한 상태묘사나 심리묘사에선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느낄수도 있다)작품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눈에 확들어오는 인물이 있다. 바로 타이포 그래픽 형식으로 신선한 반향을 선사했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저자인 조너선 샤프란 포어가 남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만큼이나 유니크한 작품 세계를 가진 작가라는 생각, 역시 부창부수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아니 다른 한편으론 남편인 조너선보다 형식적인 면에서 더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부부둘다 형식적인 쇼크를 바탕으로 작품 스트럭쳐를 재구성하였다는 공통점은 있으나 조너선의 작품은 세밀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면 오히려 니콜의 작품은 세밀화 보다는 뭔가 큰 풍경화를 보는듯한 뉘양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그레이트 하우스>는 십수개의 크고 작은 서랍이 내장되어 있는 마호가니풍의 책상을 두고 전혀 연결성 없는 것 같지만 미세한 아니 강렬한 연결고리를 가진 인물들의 비밀과 삶을 투영해놓고 있는 작품으로 얼핏 보기엔 서로 전혀 연관 없는 액자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작품을 읽어 갈수록 옴니버스식의 이야기처럼 각자의 이야기들의 큰틀의 내러티브속에서 그 역활을 다하고 있고 상호 끊을수 없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있는 다소 난해하다면 난해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게 이러한 형식의 작품들이 구조적인 측면에 시선이 집중되다 보니 내러티브의 완성도나 문학적인 면에서 다소 부족한 면들이 많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스트럭쳐와 더불어 질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작품으로 유니크한 스트럭쳐를 좋아하는 독자나 문학적인 면을 강조하는 독자 양측에게 환영받을 만한 작품으로 보여진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도 전혀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네가지 이야기는 가장 보편적인 책상과 나디아, 레아, 바스키라는 인물의 매게로 연결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전혀 시간과 공간의 이격감을 느끼게 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동일인물이 동일시간과 동일공간속에서 모노드라마를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오게 하고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다음 이야기로 접어들면 다시 앞의 이야기를 재생하지 않으면 왠지 이번 이야기를 읽어도 별 효과가 없을것 같다는 학습효과도 부여하고 있는 패러독스 같은 작품이다. (분명히 시간과 장소적 배경이 상이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뭔가 명확히 확정지을 수 없는 연결고리에 의해 동일 선상의 내러티브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부여하는 매력이 존재하고 있다) 그레이트 하우스라는 작품 제목 상징성이 강하게 각인된 상태에서 출발하여 상징성이 해체되어 진행되는 작품의 전개 자체가 바로 패러독스를 증폭시키는 구조적 역활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는 우리가 대저택을 방문해서 문을 열고 집안의 상이한 분위기의 여러 방들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다시 대문을 닫고 나왔을때 느끼게 되는 묘한 감정과도 같다고 해야 겠다. 분명 다른 분위기와 컨셉의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집안 구조였지만 왠지 모르게 그 저택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들어갈때 막연히 낯설은 두려움과 기대감들이 그리고 이방 저방을 둘러볼때 더욱 증폭되지만 막상 저택을 다 둘러보고 나왔을때 막연한 안도감을 바뀌듯이 말이다.      

 

   전반적으로 소설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남편인 조너선의 작품만큼이나 반향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 구조적인 독특함과 내면의 심리묘사나 문체의 선정등에서 신선함과 더불어 심도 깊은 철학적 요소들이 독자들을 자극하고 있고, 약간의 추리적인 부가서비스까지 적절하게 배합되어 읽는 즐거움까지 배가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통해서 아무리 눈씯고 찾아봐도 집에 대한 특별한 감흥이나 별다른 사건이 없는데 왜 작품제목을 그레이트 하우스라 명명했을까라고 의야해 하는 독자들(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모르겠지만)이 있을만 하다. 아마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가의 의도는 범유대인적인 관점에서 부다페스트로부터 뉴욕에 이르기까지 전이된 책상이 마치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유대인 자신들 자체를 형상화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유대인풀(pool)이라는 견지에서 십수개의 서랍이 각각의 유대인들 해당된다면 책상은 유대민족을 그리고 책상 소유권의 변경은 디아스포라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억측마저 들게 한다. 이는 작품전반에 들어나는 강한 유대  뉘양스적인 요소들로 인해 더욱 그런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한다.

작가는 한 시대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의무를 부여 받았고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니콜의 이번 작품은 이러한 의무에 충실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l******e 2011.07.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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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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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데 고생 좀 한 작품이었습니다.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으나 왜 그 내용을 읽고 있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는 류의 소설이었달까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적어도 제게는 명확히 와닿지가 않는 상황이었던지라, 둘이 읽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지루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침대에 누워서 읽었을 경우, 일어나보니 360도 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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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데 고생 좀 한 작품이었습니다.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으나 왜 그 내용을 읽고 있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는 류의 소설이었달까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적어도 제게는 명확히 와닿지가 않는 상황이었던지라, 둘이 읽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지루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침대에 누워서 읽었을 경우, 일어나보니 360도 회전을 약 두 번 가량 저도 모르게 시도했으며 읽기 시작한지 3년쯤 되지 않았나 싶어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30분이 지난 절망적인 상황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상대성 이론을 입증해 보이는 소설이었지요.

 

       <엄청나게 시끄러워 원 펀칭 쓰리 강냉이만큼이나 가까운>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를 아십니까? 뉴욕 바닥을 헤메고 다니는 3대 꼬마 오스카 중의 한 명이 등장하는 소설인데요, 이 작품의 작가 니콜 크라우스가 바로 그 분의 아내 되십니다. 그러니까 부부 소설가인 것이지요. 살짝 유대인을 닮은 것 같기도 한 이 분도 사진상으로는 조너선 씨 만큼이나 한 지성미를 뽐내십니다. 스탠포드 출신의 재원인 이 분은, 남편과 더불어 뉴욕 문단이 신동으로 불리신다네요. 하지만 뭐랄까, 너님이 아무리 신동이셔도 난 잘 모르겠어요.

 

       소설의 구성도 좀 복잡하여 간단히 설명하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귀찮다. 어쩐지 좀 좋을 것 같은 책상 하나를 매개로 두고 몇몇 사람들의 개인적인 사연을 들려주는 형태의 구성인데요, 딱히 서사랄 것도 없는 신변 잡기적인 기억의 재생이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사람을 완전 지치게 만들어서 그 각각의 기억들이 의미하는 삶의 회고 따윈 개나 주고 싶은 심정에 저는 봉착했더랬어요.

  

       문장이 좋았으나 대단히 좋은 것은 아니어서 이야기가 부족해도 문장만으로 승부를 낼 만한 수준은 아니었고, 아주 가끔 아름다운 표현이나 지성적인 문장도 등장했으나 전체적인 서사와는 그다지 연관이 없는, 지속성을 가진 문장들이 아니어서 지루했습니다. 그러니까 문단을 잘라 보면 쓸만한 내용이긴 했어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힘을 발휘하는 형태의 문장들은 아니었던 것이죠. 사고가 깊되 서사가 약한 소설가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흠이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뉴욕에서는 이런 그녀를 신동이라 그러니 제가 모르는 또 뭔가가 있나부죠. 하지만 그렇다해도 별로 알고 싶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 수 있겠네요. 좋고 재미있는 책이 아직도 연병장 3열 종대로 2바퀴 반을 더 돌아 기다리고 있으니 애써 니콜 키드만의 누드 화보집도 아닌 작품을 다시 볼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이 분의 작품은 <사랑이 역사>가 유명하다니 그거나 함 읽어보고 집어치우든지 말든지 해볼겁니다. 



b******k 2011.08.22.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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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하우스-니콜 크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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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읽었던 '사랑의 역사'가 좋아서, 다시 한 번 니콜 크라우스의 글을 찾아 읽었다.어지간한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모두 절판인데 G마켓에서 새 책을 팔고 있어 조금 놀라웠다. 먼저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 이야기를 해야겠다. 거기에는 그 미친(?)아내를 설명하기 위하여 아내의 독일식 책상 이야기를 하는데, 20년 전 정도에 읽으면서도 작품의 미친 아내보다는 그 독일식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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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읽었던 '사랑의 역사'가 좋아서, 다시 한 번 니콜 크라우스의 글을 찾아 읽었다.
어지간한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모두 절판인데 G마켓에서 새 책을 팔고 있어 조금 놀라웠다.

먼저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 이야기를 해야겠다.
거기에는 그 미친(?)아내를 설명하기 위하여 아내의 독일식 책상 이야기를 하는데,
20년 전 정도에 읽으면서도 작품의 미친 아내보다는 그 독일식 책상이 너무 갖고 싶었다.
심지어, 독일식 책상이 뭔지 나중에 따로 찾아볼 지경이였으니.

책 좀 좋아하고, 글을 좋아하는 어지간한 사람들은 모두 훌륭한 책상을 갖고 있는데,
내게 책상이란..어렸을 때 누나가 초등학교 입학때 사용하던 책상을 누나와 함께 사용하여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썼고,
그후 형편이 조금 좋아졌을때 엄마가 집안 가구를 어마무지하게 비싼 이태리 가구로 하면서, 내 책상만 무슨 규수방인지 하는 브랜드의 핑크색(--;) 책상으로 바꿔주어 그걸로 고3을 보냈다. 이후론...사실 책상 쓸 일이 별로 없기도 하였지만...
그래서 나는 내 비밀 책상 서랍 같은 것도 없고...국어책에 나왔던 허접한 포마이커 책상도 없이...
어떤 때에는 밥상을 어떤 때에는 식탁을 책상삼아 살아왔었다.

뜬금 없는 책상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역사'가 '사랑의 역사'라는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한다면,
이 책은 '책상'이 그 가교의 역활을 한다. '사랑의 역사'보다는 오밀조밀한 면이나 개연성 부분에서 살짝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독서를 통해서 뭔가를 배우고, 교훈을 얻고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신에, 이런 독서를 통하여 접해보지 못한 감정을...경험을...바라보면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말 제 역활을 다 한다.
아마, 이런 맛에서 소설을 찾아 읽게 되겠지.

앞으로는 어떤 책상을 보든 이 책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앤틱하고 고급진 책상을 갖으려고 노력하게 될 것 같기도하고.

덧붙임.
이 책은 출장지에 도착하여, A에게 선물을 하고왔다.
출장전부터 읽은 책 좀 달라고 하여,(원래 책좋아하는 사람에게 책달라는... 이런 부탁하는거 아니쟎아?)
내가 정말 재미나게 읽었던 윤대녕을 포함하여 가져다 주었는데...이책도 주고왔다.
책은 그냥 물질이다. 읽은 내용은 내 마음속에 담겨져 있으니...책에 대한 소유는 앞으로도 경계하여 욕심내지 않고, 나누련다.
c******m 2017.10.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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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실리는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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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이름이 먼저 불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름이 수식어로 붙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대게 유명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일 때 그렇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 엄태웅은 ‘엄정화의 동생’,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누구누구와 어떤 관계’로 불렸다. <그레이트 하우스>를 펼쳐 첫 날개를 펴 본 순간 작가인 니콜 크라우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배우자라는 걸 확인 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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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이름이 먼저 불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름이 수식어로 붙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대게 유명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일 때 그렇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 엄태웅은 ‘엄정화의 동생’,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누구누구와 어떤 관계’로 불렸다. <그레이트 하우스>를 펼쳐 첫 날개를 펴 본 순간 작가인 니콜 크라우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배우자라는 걸 확인 하곤 그녀가 더욱 친숙해졌다. 니콜 크라우스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던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데다 좋아하기까지 하는 조너선의 아내라는 점이 즐겁게 책을 접하도록 도왔다.

 

책의 제목은 그레이트 ‘하우스’이지만 이 책의 주요 소재는 책상이다. 이를 중심으로 네 화자들의 이야기가 얽히고설켜 있는 어찌 보면 복잡한 소설이다. 기억의, 인물의 실타래를 잘 좇아야 책에 몰입하게 되는 구조인 셈이다. 네 인물은 각자의 상처 혹은 어두운 심연 등 각자의 마음을 책상을 통해 타인에게 전달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많든 적든, 네 화자는 책상에 각자의 사연과 추억과 상처를 싣는다. 이런 개인의 과거나 상처들은 한 사람이 담고 있는 영혼의 일부분이다. 영혼의 편린을 떼어 내어 책상에 전이시킨 것과 다름없다. 그럼으로써 누구는 치유가 될 수도, 또 다른 아픔과 공허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네 화자들은 큰 틀에서 보면 마음이 행복하거나 건강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상처를 전이시키기 쉬운 인물들이다.

 

사람이 한 평생 살면서 접하게 되는 사물의 수는 따질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누군가에겐 소중한 물건이 있고, 또 어떤 물건은 잃어버려도 모를 만큼 그 존재감이 희미한 경우도 있다. 한낱 사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사용자 손때가 묻으면 그 사람의 영혼이 실리게 된다. 생명을 불어 넣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 사물은 단순히 어떤 재료의 모음이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어른들이 함부로 버려진 물건이나 남의 물건을 쓰지 못하게 했을 게다. 이 소설에서 책상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건 첫 번째 화자인 나디아다. 그래서 그녀는 책상에 얽힌 추억과 시간이 많다. 다니엘 바스키와의 기억도 온전히 그 책상 안에 담아 있지만, 그가 떠난 후 그녀가 책상에서 보냈던 많은 시간들, 썼던 많은 글도 상당히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책상을 레아에게 보낼 때 자신의 일부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화자들이 그 책상과 둘러싼 사람들 주변에 서서 안타까움과 결핍이 뒤섞인 감정들을 발산할 때, 그것들은 공기를 부유하다 책상과 함께 다른 화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생명이 생긴 사물이 품는 신비다.

 

개인적으로 “~요. ~죠.”하는 종결어미가 글 전반에 나타나는 책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쓰인 부분에서는 흥미를 좀 잃기도 했지만 니콜 크라우스는 조금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구조 속에서도 그 끈을 엉키지 않게 잘 연결시키는 능력을 가진 작가인 탓에 끝까지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n*****2 2011.09.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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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하우스 서평] 위대한 집안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레이트 하우스 서평] 위대한 집안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내용보기
그레이트 하우스. 글자 그대로 큰 집, 위대한 집, 위대한 집안. 이 '집'이라는 단어가 전달하는 이미지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집은 건축물을, 또는 더 나아가 돌아갈 곳, 즉 고향을, 그리고 한 조상의 자손들이 이룬 집안, 씨족, 더 나아가 민족을 의미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이 '집'에 대한 여러 의미들이 겹쳐져서 나타난다.  유대인들의 위대한 위대한 집, 즉 헤롯에 의해 개축된
"[그레이트 하우스 서평] 위대한 집안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내용보기

그레이트 하우스. 글자 그대로 큰 집, 위대한 집, 위대한 집안. 이 '집'이라는 단어가 전달하는 이미지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집은 건축물을, 또는 더 나아가 돌아갈 곳, 즉 고향을, 그리고 한 조상의 자손들이 이룬 집안, 씨족, 더 나아가 민족을 의미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이 '집'에 대한 여러 의미들이 겹쳐져서 나타난다.  


유대인들의 위대한 위대한 집, 즉 헤롯에 의해 개축된 성전은 ACE 70년 경(ACE는 after common era의 줄임말. 요즘은 AD[anno domine] 보다 이 종교적 의미가 제거된 연법을 사용함)에 유대 지역의 반란에 대한 로마 제국의 진압으로 돌 위에 돌 하나가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그 이후로 로마 제국 전역으로, 다시 말해 지중해 연안의 전역으로 유대인들이 퍼져나가게 되었고, 우리는 이를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 


이후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은 끝없이 이어진다. 서양 중세가 끝나갈 무렵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인퀴지션(Inquisition)* 이라 불리는 유대인 핍박이 있었고, 영국에서는 전국적인 유대인 추방이, 그리고 동유럽에서는 포그롬(Pogrom)이라 알려진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그리고 홀로코스트(Holocaust)는 그 모든 유대인 학살의 정점에 있다. 바로 나치에 의해 제시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Die Endlosung)'으로서 말이다. 유럽의 '유대인 문제'는 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이라는 중핵을 둘러싸고 구성된다. 


당연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소설 역시 이 홀로코스트 세대의 유산/상속의 문제, 혹은 의무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잠시 간략히나마 소설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워낙에 소설 자체가 네 가지의 매우 상관성이 낮은 이야기들로 진행되다 보니 줄거리라고 말하는 것도 좀 어색하기는 하다. 하지만 분명 기괴하게 크고, 매우 여러 개의 서랍을 가진 '책상'이라는 물건을 두고 연관되어 있다. (어쨌든 나는 이 소설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이 소설의 구성적 순서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조지 와이즈로부터 시작된다. 와이즈 집안의 '유산'인 책상. 그는 '상속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과거 유대 역사 학자였던 아버지의 유물들을 모으고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있기 전에 살았던 부다페스트, 그 곳에 위치한 어린 시절의 집에 있던 가구들 하나하나를 모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그의 사업은 나중에는 오래된 가구들이나 수공품들을 거래하는 직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는 매우 집요하고 철저한 사람이었고, 그런 이유로 업계에서 큰 손이 된다. 그의 염원은 부다페스트의 집에 있던 모든 것을 되찾아, 예루살렘의 하오렌 가에 위치한 그의 집안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 그러나 그에게도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있다. 아버지가 쓰시던 책상이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열쇠를 물려 받았던 여러 개의 서랍이 딸려있는 큰 책상. 와이즈의 정보망에 걸려든 책상은 로테 버그라는 런던에 사는 유대인 작가의 소유로 있다가, 다니엘 바스키라는 인물을 거쳐, 뉴욕에 사는 나디아라는 소설가의 소유로 있다. 

  

문제는 이 책상이 그 오랜 세월 동안 다른 두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많은 기억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수영 구멍'에서 남편의 독백적 내러티브를 거쳐 그려지고 있는 로테 버그에게 이 책상은 비밀스러운 것이다.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던 바스키가 그녀에게 이 책상을 달라고 했을 때, 그렇게 오랫동안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던 이 책상을 그녀는 선뜻 내준다. 그녀의 남편에게 이것은 너무나도 큰 수수께끼다. 애초에 그에게 있어 부인의 삶 자체가 수수께끼다. 이후에 알게 되지만, 결혼했을 때 이미 그녀는 포기해 버린 자식이 있었다. 누구의 자식인가. 그리고 어떤 아이일까. 혹시 그 소중한 '유산'을 물려줄 정도의 사람이라면, 바스키라는 그 청년? 하지만 그가 버그가 죽은 이후로 알게 된 것은 이미 그녀가 낳아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켰던 아이는 이미 젊었을 때 죽었다고 한다. 그럼 도데체 어떻게 그녀는 어떻게 그 책상을 얻었을까. 그녀의 남자는 누구였나. 버젠(버그의 남편)은 결국 그 모든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얻기를 포기하고, 수수께끼로, 답이 없는/열려진, 비어있는 '구멍'으로 남긴다.** 

 

책상은 바스키를 거쳐 뉴욕에 사는 소설가 나디아의 손에 들어간다. 그녀는 이 책상에서 25년간 작업했다. 남의 삶을 도둑질 하는 듯한 자책감과 소설을 쓰면서 드는 권태, 이혼 모든 상념들이 이 '블루 프린트'의 이미지로서의 책상 속에 녹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바스키의 딸임을 자처하는 레아 와이즈라는 젊은 아가씨가 나타난다. 그녀에게 선뜻 책상을 넘기는 나디아. 그러나 나디아의 삶은 그 책상 없이는 너무나 불안하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하오렌 가로 책상을 찾아가기로 한다. 그러나 찾아간 주소의 집주인은 그 책상을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갑작스런 삶의 변화 속에서 그녀는 교통사고를 범하고 만다. 


그녀의 차에 치여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버린 사람은 전직 판사, 도브다.*** 그는 영국에서 잘나가던 판사였지만 일을 그만 두고 고국인 이스라엘로 돌아와 글을 쓰고 있다. 그의 아버지의 독백.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과도한 보호를 받고 자랐고, 형과는 달리 고집이 셌던 인물인 도브에 대한 기억들. 그는 전기 줄로 괴롭힘을 당하는 상어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그가 바로 그 상어와 같이(호흡 보조 장치와 심전도 기구들을 두르고) 의식을 잃은 채 침상에 누워있다.   


그리고 조지 와이즈의 아이들, 아브너와 레아. 레아 와이즈는 당연히 조지 와이즈의 아이다. 레아는 아버지의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의 '상속의 의무'를 완수하게 하기 위해, 나디아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덕에 두 사람의 삶이 완전히 망가진다. 어쨌든 와이즈가 자신의 '상속의 의무'를 실행하는 동안 아이들은 마치 유령이 나올 법한 환경 속에 버려진다. 과거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이미 지나간 것에 집착하는 사람의 아이들. 그들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결여된 아이들(Children manque)'일 것이다.(이 '결여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에 다루게 될 것이다.)


잠시 - 아니 좀 길게 - 줄거리에 대해 살펴 보았으니 이제 해야 할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자. 이 소설 속에서 상속이 의무와 같은 것이었듯이, 내게 있어 이 소설이 지닌 이념적 요소들을 논하고 비평하는 것이 의무와 같은 것이다. 


1. 시간의 문제


이 소설의 시간은 어딘가 어그러져 있는 듯 하다. 물론 그럴 수 밖에 없다. 인물들, 또는 주위 인물들의 기억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의 매우 연결고리가 약한 모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시간은 도저히 정방향으로 흐르는 어떤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어그러진 시간, '탈구된(disjointed)' 시간에는 어떤 다른 의미도 담겨 있다. 어떤 정의롭지 못한, 불의한 일이 벌어질 때 우리는 시간이 탈구되어 있음을 말한다. 마치 햄릿과 같이 말이다. 어딘가 바르지 못한 시간, 옳지 못한 시간 속에서, 삶 역시 어그러져 간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을 이루고 있는 전체적인 플롯은 조지 와이즈에게 있어, 그리고 더 나아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들에게 있어 탈구된 시간을 바로잡는 것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조지 와이즈가 추구하는 '정확한' 과거로의 회귀가, 기억의 회복이, 보상적 정의가 탈구된 시간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혹은, 다시 말해, 정의로울 수 있을까?)   


2. '역사'로서의 책상, '그레이트 하우스' 학파


시간의 문제에 관해 생각해 보기 위해 '책상'이라는 기표로, '역사'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와이즈의 아버지가 쓰던 책상은, 와이즈가 되찾은 '바로 그' 책상은 그의 아버지가 유대 역사를 연구하던 학자였다는 의미에서 '역사'와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랍비 요카난 벤 자카이의 이야기와 느부갓네살의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유대왕 시드기야와 그의 권속들을 모두 붙잡아 바벨론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열왕기 25장)가 언급된다. 


역사적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바벨론의 예루살렘 점령 이후 솔로몬의 성전은 파괴된다. 그러나 그 이후 페르시아의 바벨론 정복 이후, 페르시아 왕 키루스(우리말 성서에서는 '고레스'로 표기)는 유대인들이 유대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그들은 페르시아의 허가를 얻어, 성전을 재건한다. 이후 성전은 앞에서 언급된 그대로, 헤롯에 의해 한 차례 중건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ACE 70년 경의 유대 반란(소설에서 언급된 바 코크바를 수장으로 한) 때 로마 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여기저기로 퍼져나가게 된다. 이 때 랍비 요카난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 성 밖으로 몰래 빠져나가 로마군 지휘관에게 학교를 만들어 유대인들의 율법을 보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이 청원이 받아들여져 그와 그의 제자들은 야브네라는 지역에 학교를 세웠고, 이 학파의 이름이 바로 '그레이트 하우스'인 것이다. 그들은 잃어버린 '성전(그레이트 하우스)'을 문자로 다시 세운 것이다. 


와이즈의 기억에 대한 회복, 상속의 의무는 바로 이런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사라져버린 과거에 대한 회복으로서 그는 아버지의 책상을 어떤 수를 써서라도 찾기 원한다. 그러나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을 다시 (정확하게 동일하게) 돌려받을 때 과연 그가 그렇게도 원하는 '그레이트 하우스'의 회복은 이루어지는 것인가? 과연 그가 원하는 '그레이트 하우스'는 완전한 하나로, 다시 말해 온전한 것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것인가?


3. '결여된 아이들', 지그문트 바우만, <홀로코스트와 모더니티> 신판 서문, "기억의 의무 - 그러나 무엇을?"에서...


이러한 논점과 관련하여 이야기 할 것은 와이즈 집안의 아이들이다. 어쩌면 직접적인 연관은 없을지라도, '아이들의 거짓말'이 책상과 연관되었던 나디아, 그리고 그녀의 망가진 삶으로 인해 '희생된' 도브라는 인물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바로 이 와이즈 집안의 유령과 같은 아이들이 'Children manque' 혹은 '결여된 아이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닐까. 이 말은 홀로코스트 이후 세대를 뜻하는 말이다. 바우만은 <홀로코스트와 모더니티>라는 책의 신판 서문에서 이 '결여된 아이들'이라는 문구를 사용한다. 바우만에 따를 때, 오늘날 그들도 희생자를 자처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은 무엇에 희생되었단 말인가? 바우만이 <홀로코스트와 모더니티> 신판 서문에서 던지고 있는 질문은 바로 이런 것이다. 


물론 그는 먼저 나치들의 '최종 해결책'에 대해, 그리고 수동적으로 이 최종 해결책에 동참했던 독일인들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그들의 태도는 '악의 진부함(또는 평범성)'이라는 말 그 자체로 설명이 될 수 있을 법한 수동적인 태도로 몇몇 미치광이들이 벌인 잔치에 동참한다. 자신들이 알던 '개별적인' 선한 유대인들에 대한 기억은 쓰레기와 같이 버리고, 당시 사회(의 광기)가 내세우던 불량한 유대인이라는 재현을 아무런 거부 없이 받아들인 그들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비판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의 비판적 시각은 이 '결여된 아이들', 즉 홀로코스트 세대 이후의 유대인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유대 국가에 사는 사람들로 옮겨간다. 


여기에서 바로 이 현대 유대 국가를 사는 유대인들의 '기억의 정치'가 지니는 문제가 드러난다. 그들의 자기 동일성, 또는 정체성은 바로 이 지나가버린 (그러나 동시에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홀로코스트라는 외상적(traumatic) 기억에 의해 지배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들 이전의 세대를 - 희생자로 만들었던 자들의, 나치와 그들에게 수동적으로 동조한 자들의 장소에 자신들을 치환시킨다. 희생자들(또는 희생자로 스스로를 재현하는 자들)이 팔레스타인 인들이라는 희생자를 만드는 자들이 되어 있는 것이다. 


4. 유산/상속의 의무로서의 책상, 그러나 거치는 사람마다 의미가 달라지는, 비이었는 기표


와이즈가 '상속의 의무'를 실행하기 위해 되찾고자 하는 아버지의 책상, 그것은 그 오랜 세월 동안 그 책상을 거쳐간 사람들에게 다른 의미로 남아 있다. 로테 버그에게 있어, 그 의미는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그렇기에 그녀의 남편에게 그 책상의 의미는 아내와 동일하게 수수께끼, 알 수 없는 것으로 남아있다. 나디아에게 있어 그 책상은 오래 전의 친구 바스키에 대한 기억과 그 만큼이나 오래된 그녀의 작업을 구상하게 했던 '블루 프린트(blue print)'의 의미로 남게 된다.

와이즈에게 있어 아버지의 유산, 유대인의 역사, 자신의 상속의 의무를 완수하게 해 줄 궁극적인 대상인 이 책상은 결코 동일한 것, 온전한 하나가 아니다. 그 책상은 분명히 장소를 달리하고, 상황을 달리 할 때 마다 다른 의미와 연관되는 것, 즉 비어있는 기표일 뿐이다. 이 텅빈 기표로서의 책상을 단순한 어떤 상속물, 또는 물건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유대인'이라는 이름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자.  


5. '유대인'이라는 이름 


이 글을 쓰기 전에 찾아 보았던 서평들 중 하나는 이 책이 디아스포라에 관한 질문으로 추동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서평이 제시하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예루살렘이 없는 유대 민족은 어떤 것인가? 나라가 없이 어떻게 유대인이 있을 수 있는가? 신이 있는 곳을 모른다면 어떻게 희생제물을 바칠 수 있을 것인가? 어찌 보자면 이 질문들은 타당하다. 민족이란 그들이 사는 장소, 즉 생활영역을 가진 자들이다. 예루살렘과 연관되지 않은 유대인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그들의 유일신을 모시지 않는 유대인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은 '유대인'이라는 기표가 지닌 어떤 것을 일정 이상 놓치고 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정체성은 바로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고, 땅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일반적으로 그들이 섞여 살았던 지역인 유럽에서, 터키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그 지방의 지역민들과 그들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집이 없다는 것(unheimlichkeit)*****이었다는 말이다.  


그들을 다른 민족과 구분하게 되는 기원적 서사에서, 그들 민족과 종교의 조상인(그리고 동일하게 다른 중동 지역민들과 다른 두 유일신 종교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신으로부터 자신의 아버지의 집과 고향을 뒤로 하고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들의 '약속의 땅'에서도, 그들은 장막을 치고 사는 유목민으로서의 생활을 지속한다. 그리고 또한 그들의 기원적 서사에서 나오는 이집트로부터의 탈출은 어떤가. 히브리 민족은 당시 가장 발달한 문명의 풍요로움을 뒤로하고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을 향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장장 40년을 떠돈다. 과연 그들이 농경민으로서, 정주민으로서 살았던 세월이 얼마나 될까. 그들을 특징짓는 율법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들의 율법이 그들 주위에 살던 민족과 스스로를 완전히 구분하기 위한 전적으로 새로운 계약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 이름이 가지는 정체성 없는,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난 정체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지배적 지위를 점유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오히려 그들의 이전 세대를 희생자들로 만들었던 나치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이 가장 적게 살고 있는 국가'라는 이 모순적인 말은 의미를 가진다. 


과연 <그레이트 하우스>를, 이 위대한 집안을, 위대한 민족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기묘하게 시선을 사로잡는(oddly compelling)' 소설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묘한 방식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개종과 숨어있는 유대인들의 색출 및 탄압을 전제한 이단 심문/판


**'수영 구멍'이라는 제목, 특히 이 '구멍'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것이 나디아의 독백의 장이 '전원 기립'인 이유이며, 도브는 유일하게 책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관계가 있다면 간접적인 것일 뿐이다.


****자카이의 아들 요카난[우리말 성서식으로는 요한]의 의미. 랍비는 율법 선생을 의미


*****원래는 이 말로부터 uncanny(섬뜩한)이라는 번역어가 나온다. 하지만 Heim이라는 단어가 집, 고향, 돌아갈 곳을 의미하기에 '집 없는'을 뜻하기도 한다. 



j******n 2011.07.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레이트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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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입장이 되어 본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간주하고 한번 생각을 해보자.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한 사람만 주인공인 책은 지루해지기 쉽상이니까. 게다가 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저글링 하듯 변주해 가는게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등장인물들이 많을 시 어떻게 엮어가야 좋을지 감을 못잡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들만의 개성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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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입장이 되어 본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간주하고 한번 생각을 해보자.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한 사람만 주인공인 책은 지루해지기 쉽상이니까. 게다가 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저글링 하듯 변주해 가는게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등장인물들이 많을 시 어떻게 엮어가야 좋을지 감을 못잡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들만의 개성와 인생관으로 들려 주는데 자신이 있다. 그렇게 자신있는 분야가 있으면, 나머지만 잘 고안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연령대도, 성별도, 국적도, 직업이나 경험도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한 자리에 모아놓는가 하는 것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보이는 사람들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들 사이에 어떤 피할길 없는 연결점이 있어서 그들의 인생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작가는 독자들에게 설득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게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 방식일테니까. 이런 문제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의 작가가 다소 실패한듯 보였기 때문이다. 육중한 책상 하나로 인해 40여년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이 연결되고 있다는 그녀의 설명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어색했다는건 좀 겸손한 표현이고, 지나치게 작위적이라서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는게 정직한 표현일 것이다. 책상 하나로 등장인물들이 엮인 다는 설정 자체가 어설펐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이야기를 상상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지 싶다. 작가로써는 굉장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것이 곧바로 이렇게 작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용은 이렇다. 중년의 고독한 작가로 고집스럽게 창작에만 몰두하면서 살고 있던 나디아는 자신의 창작의 원천이었던 책상을 가져 가겠다는 전화에 당황한다. 그 책상은 27년전 칠레로 돌아간 젊은 시인 다니엘에게 받은 것으로 그는 나중에 돌려 받겠노라고 말을 했지만 칠레로 돌아간 뒤 얼마지나지 않아 군부에 의해 사망했었다. 선물로 받은게 아니라 빌린 것이니 언젠가는 돌려 줘야 될거라 라고 생각은 했으나 실제로 책상으로 돌려 받겠다고 다니엘의 딸이 찾아오자 그녀는 기분이 다운된다. 책상을 돌려 보낸뒤 창작의 에너지를 잃어버린 그녀는 홀린 듯이 책상이 돌아간 나라인 이스라엘로 찾아간다. 어떤 일들이 거기서 기다릴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한편,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서 살아나온 유대 여자와 결혼한 영국인은 아내가 죽은 뒤 그녀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한다. 아내의 비밀을 알게 난 다음 그는 비로서 아내가 젊은 사내에게 책상을 준 과거를 반추해낸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듯 초연한 자세로 일관했던 아내는 책상 하나만큼은 애지중지 소중하게 여겼었다. 그런 책상을 모르는 사내에게 덜컥 주었던 그 사건은 남편으로써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과거로 되돌아가 그때를 회상하던 남편은 어쩌면 그 일이 아내의 아들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한편 유대인 골동품상인 와이즈는 아내가 죽은 뒤 아들과 딸을 정성스레 키운다. 역사 학자인 아버지의 서재를 복원하기 위해 그는 딸 레아를 시켜 책상을 찾아오게 하는데, 과연 그 책상은 원주인을 찾아 돌아오게 될 것인가? 

책상 하나에 목숨 건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였다. 냉소적인 뉘앙스를 눈치채셨는가? 그렇다, 문제는 이거다. 왜 다른 것도 아니고, 그저 책상 하나에 다양한 사람들이 목숨을 거는가 이 말이다. 뉴욕에 사는 작가건, 영국에 사는 작가건, 유대인 골동품상이건 ,칠레의 젊은 시인이건 간에 이 책상만 보면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 연인을 대하는 듯 하는데, 그건 좀 오바지 싶었다. 공감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살다보면 이것저것 정이 붙는 것이 많다지만서도, 도무지 이 많은 사람들이 그래, 책상 하나에 목을 맨다고? 믿겨지지 않는다는 것이지. 한 사람만 그렇다고 하면 또 이해가 가지만서도, 책상을 소유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설명하는건 아무리 좋게 봐줘도 작위적이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피치못하게 설정한 티가 폴폴 난다는 뜻이다. 그렇다보니 몰두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니 안 그렇겠는가? 그럼에도 작가의 필력만큼은 다시 한번 확인한 책이 아닐까 한다. 상상력이나 사람들의 사연을 이끌어 내는데는 막힘이 없는 작가이지 싶다. 40대 이하의 최고의 작가라는 말을 듣는다는데, 틀린말은 아니지 싶고, 이 책은 다소 실패한 티가 난다고 해도 앞으로 이 작가가 어떤 책을 써낼지 기대가 되게 하는 필력이었다. 이 정도의 상상력이라면 언젠가, 꽃이 활짝 피어서 아름답게 피어 나듯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겠지 싶다. 그게 언제가 되었든지 간에 기다려볼 생각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인 것 같으니까 말이다.

a*******0 2012.03.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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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의 조각들을 일일이 이어붙이는 힘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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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의 조각들을 일일이 이어 붙이는 힘은 무엇일까요,   이야기를 해 주세요.   물건들은, 사람이랑 달라서 이유 없이 사라지지 않아, 라고 말하는 골동품상이 나오는 소설을 읽었어요. 그 소설에는 사라지지 않는 책상이 하나 등장해요. 한 개의 책상.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의 책상이죠. 그것은 처음에는 다니엘 바스키의 책상이었다가, 그의 다른 가구들과 함께 나디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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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기억의 조각들을 일일이 이어 붙이는 힘은 무엇일까요,

  이야기를 해 주세요.

  물건들은, 사람이랑 달라서 이유 없이 사라지지 않아, 라고 말하는 골동품상이 나오는 소설을 읽었어요. 그 소설에는 사라지지 않는 책상이 하나 등장해요. 한 개의 책상.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의 책상이죠. 그것은 처음에는 다니엘 바스키의 책상이었다가, 그의 다른 가구들과 함께 나디아의 책상이었다가, 알고 보니 영국에 있는 부부의 집에 작가인 아내가 처녀적일 때부터 써오던 책상이었고, 원래는 나치에게 압수당하기 전 유대인 골동품상 아버지의 서재에 있었던 책상이었네요. 이야기를 해 주라는 간호사의 충고에 나디아가 혼수상태의 판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맨 처음 등장하고, 뉴욕의 컨테이너 창고에서 와이즈씨가 한 시간만 앉아볼 수 있게 해주면 1000달러를 주겠다고 했던 그 책상이죠. 

  결국 책상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잠가 놓은 서랍과 텅 빈 서랍들. 의자도 그대로죠. 그렇다면 결국 이유 없이 사라지는 것은 역시 사람인 걸까요.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신기루처럼 흩어져버렸는데 그 이유조차도 알 수 없는 건, 우리가 역시나 너무 사람이기 때문인 걸까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관계의 구멍이 모든 비명을 삼켜버릴 때도 그 모든 이유란 게,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라면, 차라리 이유가 없는 게 당연한 걸까요.  

  오랫동안 홀로 앉아있고 싶을 때가 있어요. 나와 책상. 단 둘 뿐이라고 믿고 싶을 순간이. 하지만 그 순간에도 결국 그 책상에 앉았던 모두는 혼자가 아니었네요. 다니엘 바스키의 시가 서랍 속에서 나디아와 함께 앉아있었던 것처럼, 그 <시>는 반드시 희망만은 아니었죠. 그 책상에 앉아 쓴 그녀의 소설이 무용가의 아파트에 있는 아주 오래된 그림을 떼어버린 것처럼. 요아브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아버지의 골동품 가구들로 가득 찬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침실에는 어떤 가구도 들여놓지 않았다고 해도, 요아브 역시 평생 그 책상 앞에 숨죽이며 앉아있다는 것도 알아요. 아버지의 명령으로 책상을 찾으러온 레아도 있죠, 그 때도 레아는 아버지가 사 준 호화로운 옷은 입지 않았어요. 판사님의 아버지는 어떤가요. 아버지의 책상, 그 무게가 세월만큼이나 무거운가요. 책상의 어떤 서랍은 너무 굳게 잠겨 있어 아무리 애를 써도 열리지 않죠. 레아가 응접실에 매달아버린 다시는 치지 않을 피아노처럼 비명을 머금은 위태로운 모습들의 서랍도 있어요. 아내가 자신의 아들을 평범한 가구 광고라도 내는 것처럼 신문에 낸 광고를 통해 낯선 사람에게 줘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남편은 자신의 마음 한 곳이 완전히 꺼내져버린 서랍처럼 텅텅 열려버렸다는 걸 느끼죠. 

  우리는 무언가를 분명히 공유하고 있어요. 설명하기 힘들면 그건 그냥 단 한 개의 커다란 책상이라고 말해도 좋아요. 크고 작은 몇 개의 서랍과, 서랍 안에 들어있는 서류와, 의자, 혹은 그 앞에 앉아있는 우리의 자세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삶에 압도된 우리가 이유 없이 사라져 버렸을 때도 남아있는 것. 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만든 것. 우리만이 앉아 사용하고, 건네고, 바라보고, 추적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이 이유 없이 타인보다 더 멀어졌을 때, 우리는 그 책상을 떠올릴 수 있어요. 가끔은 책상을 찾으러 돌아다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냥 몇 년이고 주먹을 쥐고 그 책상과 비슷해 보이는 모든 것을 두드리거나 박살내는 것 밖에 없을 정도로 분노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겠죠.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반드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아요. 다만, 이야기를 해줄 수는 있겠죠. 엄청난 세월에 걸쳐진 이야기 속의 분노와 좌절, 몰이해와 무시, 단절과 부재가 쌓아올린 그레이트 하우스 안에 있는 단 한 개의 책상이 결국에는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모든 조각들이 모여 단 한 개의 책상이 되는 것처럼. 누군가는 아직도 그 책상에 앉아 깊은 피로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처럼. 

  모든 것을 단단히 제 안으로, 안으로만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던 아내가 기억을 잃어가는 병에 걸렸을 때, 그 고통스러운 조각들이 바깥으로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하죠. 그 조각을 집어 들다 많은 곳을 베인 남편은 자신의 남은 생애 역시 그런 날카로운 파편으로 변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여전히 아내를 사랑해요. 아버지 때문에 삶의 여러 가지 면에서 불구로 성장한 두 남매는 어떤가요. 그들의 조각들 역시 서로를 자꾸만 찌르고 있어도, 아마 그 모든 파편들을 고통을 무릅쓰고 한 곳으로 모아 맞춰본다면 같은 모양을 그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을 평생 사랑한 아버지와, 사랑받는 것과 이해받는 것이 때로는 별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결국 모든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판사의 조각들은요. 조각난 자신을 감추기 위해 길고 긴 소설을 쓰는 소설가는 결국 그 이야기들로 무엇을 붙이고 싶었던 걸까요. 

  눈을 감고 상상해요. 전혀 다른 조각들을요. 시간과 공간뿐만 아니라 모든 물리적인 정황이 이건 정말 달라, 비슷하지 않아, 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조각들. 퍼즐처럼 맞출 수도 없는, 정말이지 그냥 파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조각들을요. 그 조각들을 모두 가져다가 지은 집을 상상해요. 그 집의 표면과 바닥엔 너무 많은 금이 가 있어서 맨발로 집안을 걷다가는 발바닥에 온통 상처가 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게 이 집이 ‘그레이트’한 진짜 이유는 아닐 거예요. 뒤틀려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열어요. 이곳은 서재인걸까요. 서재 안에 있는 단 한 개의 책상. 열아홉 개의 서랍이 달린 그 책상이요, 갑자기 가슴이 떨릴 만큼 따뜻한 기운이 온 몸으로 밀려들어요. 세상엔 이유 없이 사라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어루만져요. 우리 각자는, 그저 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사는 거라면, 그 기억의 조각을 일일이 이어 붙이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요. 모두 같은 단 한 개의 책상을 기억하는 힘은, 
 
  샤샤와 샤이를 위해.
  다시 맨 처음으로 책장을 넘겨 이름들을 보아요. 그 힘은 과연 무엇일까요. 다시 한 번 그 집이 이유 없이 사라져 버렸을 때, 흩어지려는 모든 조각들을 붙잡고 있었던 마지막 인력에 대해서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주 오래, 단 하나의 책상에 앉아 생각하고 싶어지네요.

p***i 2011.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니콜 크라우스, 김현우 엮음-그레이트 하우스
"니콜 크라우스, 김현우 엮음-그레이트 하우스" 내용보기
고통을 느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어떤 사람의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가슴이 착잡해졌다. <그레이트 하우스>를 읽으면서 나는 그런 류의 기억을 떠올렸다. 책 속엔 4명의 화자가 나온다. 그들 각자에게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의 중심이든 어딘가에 '책상'이 있다. 이 책상은 유령처럼 이들 사이를 떠도며 그들의 기억을 보여준다. 이 책상은 각자에게 아주 소중한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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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느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어떤 사람의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가슴이 착잡해졌다. <그레이트 하우스>를 읽으면서 나는 그런 류의 기억을 떠올렸다. 책 속엔 4명의 화자가 나온다. 그들 각자에게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의 중심이든 어딘가에 '책상'이 있다. 이 책상은 유령처럼 이들 사이를 떠도며 그들의 기억을 보여준다. 이 책상은 각자에게 아주 소중한 물건이기도 했고, 어쩌면 아픔이나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전해지고 전해받는 그 책상을 보면서 내 마음을 착잡하게 했던 그 사람과의 수많은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 속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물건들을 떠올렸다.

 

 완성되는 건 그 집에 대한 기억일 뿐이겠찌만, 너무 완벽한 그 기억은, 본질적으로는, 원래의 집 자체가 되겠죠.(385P)

 

 하나의 물건일 뿐이지만 그 물건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결국 기억들이다. 이 기억들은 기억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집을 만들 수 있다. 첫 '전원 기립'에서 나온 나디아가 사랑을 하는 방식, 그리고 타인과 소통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그녀는 책상에 앉아 많은 글을 썼으며, 읽고, 생각했다. 그녀가 사는 삶의 방식은 책상의 형태로 닮아 있었다. 타인을 거부하고 자신의 안에 숨어들어가는, 마치 잠겨진 오른쪽 서랍처럼 말이다. 두 번째 화자는 잘못된 선택들로 소원해진 아들과 화해하길 원하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마음 속으론 화해하길 원하지만, 그를 어찌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또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의 과거 속에 남겨진 책상을 싫어하는 한 남자가 화자로 등장했다. 그리곤, 네번째는 엄격하게 키워져 자신을 표현할 방법을 잃은 채 자라난 한 남매를 바라보는 여자친구가 나왔다. 

 

 어쨌거나, 이건 소통과 기억의 문제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기억하는 방식이 옳은 것인지 되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기억 밖에 없지만, 결국 그 기억이 내 안에선 본질적으로 내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사람 자체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방식이 어떠하든간에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서 그 모든 일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것들은, 여전히 기억으로서만 존재하며 그것은 이 책 속 넘겨받고 전해지는 책상과 비슷하다. 소중한, 처절한, 고통.

 

 작가가 보여주는 이 이야기들은 처절할 정도로 우리 삶과 닮아서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리고 각자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 같은데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이야기 구성도 무엇보다 좋았다. 우리 삶은 어쩌면 이런 흐름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모른다. 각자의 기억이 어쩌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완벽한 하나의 형태가 되어서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상력도 상상력이지만 무엇보다도 글 군데군데 화자의 고백들이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고, 좋았다. 그리고 이 작품이 하는 말들. 기억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그 말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기억이란 어차피 허상이다. 그건 존재하지도 않고, 어디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멋대로 각색되고 미화된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나를, 내 삶을 설명해준다니 놀라운 일이다. 

 

 

 

 -좋았던 부분들-

 

 

 가끔 기자들이 제게 왜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느냐고 물어볼 때가 있었어요. 저는 제가 쓴 시들이 좋지 않았다고, 아주 끔찍한 것들도 있었다고 대답하거나, 시란 완벽함에 대한 가능성을 담고 있어야 하는데, 그 가능성이 결국 저를 입 다물게 했다고 했죠. 그것도 아니면, 제가 쓰고 싶은 시 작품에 갇혀 버렸다고, 사람들이 우주에 갇히거나 인간의 유한성 안에 갇힌 기분이 들 때처럼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고도 대답했어요. 하지만 제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게 된 진짜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었네요. 비슷하지도 않았죠. 진짜 대답은, 왜 제가 시 쓰기를 그만두었는지 설명하려면 시를 다시 쓸 수 밖에 없다는 거예요. (27P)

 

 문학의 힘이란, 저는 늘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걸 만들어 내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 있다고요. (32P)

 

 저는 제 글의 소재가 된 사물들 뒤로 숨었던 거라고, 그것들을 이용해 평생 동안 다른 사람에게 저의 은밀한 결점이나 결핍을 숨겨 왔고, 글을 씀으로써, 심지어 저 자신에게도 숨겨 온 거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결핍은 더 커졌고,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지경까지 와 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작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어요. 어떤 결핍이냐고요? 글쎄요, 영혼의 결핍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네요. 힘과 활력의 결핍, 연민의 결핍요, 그리고 그런 결핍에서 이어진, 효과의 결핍. 글을 쓰는 한 그런 환영들이 떠나지 않았어요. 직접 결과를 목격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겠죠. 저는 기자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곤 했어요. 책이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질문의 진짜 뜻은, 정말로 당신이 쓰는 무언가가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겠죠.)저는 반격의 여지가 없는 질문을 기자에게 되던졌죠. 무슨 일이 생겨서 지금까지 자기가 읽은 모든 문학 작품이 머릿속에서 지워진다면, 머리와 영혼에서 지워진다면 어떤 사람이 될 지 한 번 생각해보라구요. (55P)

 

 더 이상 당신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 옛날엔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안 돼, 아주 오랫동안 그랬어. 게다가 당신은 아예 나에게 다가오려고도 하지 않잖아. 다른 누구랑 있을 때보다 당신이랑 있을 때가 더 외로워, 그냥 혼자 거리를 걸을 때보다 더 외롭다고. 그게 어떤 기분인지 짐작이나 돼? (59P)

 

 어디 있냐? 평생동안 내가 네게 물어 온 질문이구나. (272P)

 

 사랑의 행위는 언제나 고백이다, 라고 카뮈는 썼다. 조용히 문을 닫는 것도 고백이었다. 한밤중에 터뜨리는 울음과 계단에서 넘어지는 것, 거실에서의 기침도 마찬가지였다. 평생동안 나는 아내의 껍질 안으로, 그녀의 상실 속으로 들어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아마도 어쩌면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 나는 실패를 원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야 계속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 상상의 실패가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이었다. (375P)

 

 완성되는 건 그 집에 대한 기억일 뿐이겠찌만, 너무 완벽한 그 기억은, 본질적으로는, 원래의 집 자체가 되겠죠.

 -중략-

 우리 각자는, 그저 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사는 거야. 영원한 후회와 한때 존재했음을 알고 있는 어떤 곳에 대한 갈망에 빠진 채, 그곳의 열쇠 구멍에 대한 기억, 바닥의 타일과, 열린 문 아래 닳아버린 문지방에 대한 기억을 지키기 위해. (385P)

d*********3 2011.08.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레이트 하우스, 그렇게 모든 삶이 담겼다.
"그레이트 하우스, 그렇게 모든 삶이 담겼다." 내용보기
다음 세상에서는, 기억에 대한 기억 속에 우리 모두 함께 지낼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준비된 세상은 아니야, 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는, 그저 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사는 거야. 영원한 후회와 한때 존재했음을 알고 있는 어떤 곳에 대한 갈망에 빠진 채, 그곳의 열쇠 구멍에 대한 기억, 바닥의 타일과, 열린 문 아래 닳아버린 문지방에 대한
"그레이트 하우스, 그렇게 모든 삶이 담겼다." 내용보기





 다음 세상에서는, 기억에 대한 기억 속에 우리 모두 함께 지낼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준비된 세상은 아니야, 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는, 그저 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사는 거야. 영원한 후회와 한때 존재했음을 알고 있는 어떤 곳에 대한 갈망에 빠진 채, 그곳의 열쇠 구멍에 대한 기억, 바닥의 타일과, 열린 문 아래 닳아버린 문지방에 대한 기억을 지키기 위해. p.385 여기 하나의 책상이 있다. 모든 기억의 잔상이 담긴 책상이 있다. 책상은 정말 커다래서 방 하나를 가득 차지하는데, 그 책상엔 무려 열아홉 개의 크고 작은 서랍이 달려 있다. 책상은 전해지고 물려지며 물려받는다. 칠레 출신의 젊은 시인 다니엘 바스키에게서 뉴욕의 작가 나디아로,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와이즈씨의 아버지에게서 결국에는 그의 손녀 레아에게로. 책상은 수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치고, 그 육중한 무게감은 각각의 인생에 진한 상흔을 남긴다. 슬프고 기쁘고 아름답고 역겨운 인생이라는 상처를.

 니콜 크라우스의 그레이트 하우스는 이처럼 하나의 책상을 매개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을 그려낸다. 그려낸다 라기보단 더욱 세세하고 정교하게, 그 질곡을 찰나의 단어로 담아내기에 이른다. 모든 등장인물은 다양한 이유로 책상과 인연을 맺고 있다. 자신의 과거를 잠가 버리고 죽은 아내의 모든 과거가 담긴 책상, 어떤 것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유용하다고 가르쳤던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 이십오 년 또한 앉아서 글을 썼던 삶의 버팀목. 하나의 책상엔 놀라우리만큼 세밀한 인간의 삶이 담겨 있다. 작가는 책상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희로애락, 그 단편적인 감정을 너머에 있는 모든 삶의 미묘함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이 작가, 천재다.

 그레이트 하우스는 긴 호흡의 글이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동안 단 한 번의 큰따옴표도 없는 글은 어지간한 집중 없이는 읽히지 않는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처음 맞닥트렸을 때의 느낌이다. 견고한 책상은 열아홉 개 서랍 가득 삶의 단상들을 담고 있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광기, 가식과 위선 그리고 사랑과 증오. 니콜 크라우스는 그 모든 단상을 머릿속에 떠오른 그대로 글로 녹여낸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며, 바라보고 듣고 말하는 듯한 느낌. 내가 작중인물 하나하나가 되어 그들의 인생을 살고, 사랑을 하고 증오를 하며, 절망하고 그 가운데 희망을 좇는 느낌. 현대적인 문체의 글은 숨 가쁜 사유를 언어로 재창조해낸다. 

 기실 나는 그녀의 책을 끝마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그녀의 책을 느긋한 호흡으로 감상하는 사이에 열일곱 권의 다른 책이 책장에 꽂혔다. 그레이트 하우스는 분명 어렵게 다가온다. 두 페이지를 넘는 문단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작가의 상념이란 게 구체화해서 상상하지 않으면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레이트 하우스는 작품 자체로서 너무나 매력적인 글이다. 하나의 책상으로 인간의 삶을 이처럼 놀랍게 그려낼 수 있을까. 나는 책을 읽으며 너무도 커다란 삶의 궤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의 생생한 적막 속에, 책이 오직 나만을 위해 세상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옥상에 올라갈 수 없을 때는 부모님의 침대 밑으로 숨었죠, 거긴 볼 건 없었지만 똑같은 흥분을,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무언가에 다가간 것만 같은 특권을 느낄 수 있었어요. 모든 인간 존재가 조심스럽게 쉬고 있는 감정의 흐름 같은 것, 거의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아름다움, 저의 삶도 아니고 다른 누군가의 삶도 아닌 그 자체의, 새로 태어나고 또 죽어 가는 개개의 삶에는 관심도 없는 그 아름다움에 다가간 것 같은 기분을 p.276 말이다.



m******u 2011.09.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