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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에 취직한 후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대충 '전공이 특이한데, 어떻게 이 회사에 오시게 된거죠..?' 비슷한 질문들이다. 난 학부에서 천문학을 전공했다. 남들은 흔히 '별보는 학문'이라고만 생각, 그래서 '별볼일 있는 학문'이라는 싱거운 농담도 종종 던지지만, 난 학부생활 4년 중 실제로 거의 별을 본 일이 없다. 매일 영어로 쓰여진 두꺼운 원서와 영한사전, 그리고 연습장을 놓고 씨름했다. 미적분학(Calculus), 공업수학(A.E.M, Advanced Engineering Mathmatics), 고전역학(Classical Dynamics) 등 두통약이 필수일 정도로 머리아픈 과목들을 1,2학년 내내 배웠고, 이후 원서의 90%가 수식인 천체역학(Astrophysics)과, 과학보다는 오히려 철학처럼 느껴졌던 우주론(Cosmology), 양자론와 전자기학는 확실히 아무나 하는 학문이 아니라는걸 일깨워준 현대물리(Modern Physics) 등을 공부해야 했다. 그러니까 결국 내게 천문학 역시 '별볼일 없는' 학문이었던 셈.
그나마 다만 몇 번이라도 별을 볼 수 있었던 건 졸업을 앞둔 4학년 때쯤 관측천문학(또는 광학천문학, Optical Astronomy)이라는 과목을 전공선택으로 챙겨 들었기 때문이다. 이 과목마저 듣지 않았다면, 천문학을 전공하고도 별한 번 못 관측해본 적이 없는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이력의 보유자가 될 뻔했다. 사실 우리 학과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거나 희안한 사례도 아닌데. 관측천문학을 들었던 그 시점이 마침 슈메이커-레비(Shoemaker-Levy)라는 혜성 하나가 목성과 충돌을 하는 이벤트가 있었던 것은 내게 무척 행운이었다. 그 놀라운 장관을 아무나 볼 수 없는 큰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렸으니 말이다. 물론 기회 뿐이었다. 아쉽지만 충돌 이후 예상했던 폭발 모습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더랬다. 지금은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거나 희미해졌겠지만, 당시엔 남산 꼭대기에 UFO라도 나타나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에 맞추어 편대비행이라도 한 마냥, 세간의 대단한 이슈였다. 연일 일간지에서 특집으로 다루었을 정도였으니.
금융기관에 우연한 계기로 입사를 했지만, 난 한번도 나의 상관없는 전공이 업무를 하는데있어 심각한 장애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학부 때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떨어졌던 수리 이해력과 계산 능력, 컴퓨터의 제반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으로 과분한 칭찬을 받았던 적도 있었다. 사회생활 중도에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따로 공부하긴 했지만, 그건 순전히 나의 지적인 호기심의 발로였지, 결코 업무능력 제고 차원에서의 스펙(Spec) 만들기가 아니었다. 따라서 대학원에서도 금융경제가 아닌 공공경제를 전공했다. 도시경제학, 환경경제학과 공정거래이론을 다루는 산업조직론 등 공공경제 전공에서 다루는 학문들이 금융경제, 통화론, 국제금융 등 금융경제에서 다루는 학문들보다 훨씬 더 내겐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는 쉽게 어떤 전공을 선택하느냐가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게되는지의 대부분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나를 포함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일에 종사하고 있으며, 또 전공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별다른 차별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지도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를 포함한 전공무관자가 똑똑해서가 아니고, 실제 일을 하는데 배운 전공이 크게 쓸모없기 때문이다. 학부 때 배울 수 있는 학문의 깊이라는게 일천한 것도 한 이유지만, 그것보다는 학문이 실생활과 동떨어져 '공자 이마 때리는' 수준에서 머물며 현실세계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내외한 이유가 더 크다. 의학이나 한의학, 약학 등 일부 학문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학문이 대개 다 그렇다. 그런 관점에서 학부의 전공이란 건 일반적으로 지식이나 기술 보다는 사고체계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발휘하는 무엇은 아닐까.
개인적인 작장생활 이야기를 염치없이 좀 더 해보면, 나 자신이 다양한 이력(신탁업무/펀드매니저/리스크관리 등)을 거쳐 현재 기획업무와 계열사 경영관리 업무까지를 두루 경험할 수 있었던 이유도 나의 전공과도 전혀 무관하진 않은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를테면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일수록 창의성 역시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도 있듯, 나의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이력이 색다른 시각과 의견을 만들었고, 그것이 나름 인정을 받은 측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튈려고 노력했다기보다는 경험과 사고체계의 형편 상 튈 수 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 그러고보면 나의 이런 조금 다른 경로가 회사에 적어도 마이너스(-) 요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후 전에 없이 꽤 많은 이공계 출신을 금융기관이 너나없이 받아들였던 것도, 나와 비슷한 사례가 여러 곳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최근 우리 그룹의 경우도 펀드매니저의 상당 비중이 이공계 출신이다. 이런 현상을 이후 이야기할 '통섭(統攝,Consilience)'에 빗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지향은 비슷한 방향이 아닌가 싶다.
최근의 사회를 다양한 용어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정의 중 하나가 '과학기술사회' 또는 '정보사회'라는 정의다. 이렇게 정의된 사회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당연히 '사회'라는 단어 앞에 붙은 '과학기술'과 '정보'다. 최근 한국사회는 이공계 기피현상이 사회적인 문제가 될 만큼 심각하다. 앞에 이야기한 현대사회의 정의에 동의한다면, 이런 기피현상은 곧 경쟁력의 원천 자체를 기피한다는 의미이므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하면 연구소에서 평생 일반연구원으로 전전긍긍하다가 신 기술을 배워 온 신참들에게 치일 수 밖에 없으며, 결국 그런 의사결정을 책상머리에 앉아 남의 일이라고 편하고 가볍게 해대는 이들은 모두 문과 계열, 특히 경상(經商) 계열을 전공한 이들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면서, 어린나이부터 힘든 이공계의 길 보다는 법정(法政)이나 경상 계열로의 진로를 종용하는 부모들 밑에서 과학자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져버린 건 어찌보면 인과응보(因果應報)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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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진 자연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던진 화두 '통섭(統攝,Consilience)'의 의미는 특별하다. 과학의 대중화 작업은 과거에도 여러차례 시도가 있어왔으나, 이는 단지 과학적 지식이 짧은 대중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한다는 차원 수준이었다. 알기 쉽게 쓰여진 다양한 과학서적들이 나왔지만, 일부 청소년들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가볍게 읽히는 정도가 다였기에 소수의 아이들에게 '과학도의 꿈'을 새롭게 아로새긴 정도와 일부 젊은 층에 교양을 제고했다는 정식적인 자위(自慰)가 노릴 수 있는 기대효과의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대중의 과학화'라는 다소 역설적인 모토(Motto)하 제기된 '통섭'의 경우는 기존의 다양한 배타적 학문체계 간 교감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너지를 도출한다는 측면에서 훨씬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개념이다.
보통 정보기술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융합(融合,Convergence)'과 '통섭(統攝,Consilience)'은 약간 다른 개념이다. 융합이 두 가지 분야(또는 기술)가 합쳐져 하나의 새로운 분야가 된다는 의미, 즉 'A+B→C'의 화학(化學)적 개념이라면, 통섭은 두 분야의 교감을 통해 새로운 하나의 분야를 추가로 탄생시키는 'A+B→A,B,C'의 생물학(生物學)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융합이 주로 기술적인 측면에서 적용되는 용어라면 통섭은 좀더 폭넓은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 성과를 보일 수 있는 시도이다. 다윈의 진화론 등에 입각해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진화로 인한 보다 적응력높은 새로운 우량 종의 탄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융합은 결과적인 개념이지만, 통섭은 원인이나 과정에 대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 책 「과학자의 서재」 는 에코(Eco)과학자이자 통섭학자인 최재천 교수의 자서전 같은 책이다. 태어나서 자라온 환경과, 생물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된 계기,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되기까지의 다양한 경험을 연대기적으로 풀어낸 책이니까. 그는 그러면서 개인사 중간중간에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책들을 소개한다.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 그리고 그의 하버드시절 스승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 생물학> 등이 그것이다. 일반인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책들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약간의 수로를 기울일 용의만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대중서들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최재천 교수는 독서를 하는 올바른 방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건 바로 공부를 한다는 기분으로 조금은 만만하지 않은 책들을 읽어가라는 것. 늘 자기 수준과 입맛에 맞는 책만 읽으면 독서를 통해 큰 성취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그냥 시간을 보내고 기분을 즐기기위해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닌 이상엔, 그래서 독서를 통해 그것 이상의 무엇이 남기를 기대한다면, 특정 관심분야에 다소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해수준이 낮아 큰 소득이 없을 지 몰라도 자꾸 비슷한 책들을 반복해서 읽어가다보면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이 어느새 관심과 함께 자기 안에 자리잡게 되니까. 최 교수는 이를 '계획 독서'라 불렀다.
이 책을 읽으며 한 동안 읽어오지 않았던, 과학서적에 대한 관심이 마음 안에서 쑥쑥 자라났다. 어린 시절 '과학자의 꿈'을 키워주었던 학원사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Cosmos)>나 리차드 리키의 <오리진(Origin)>, 데이비드 아텐보로 경의 <생명의 신비(Life on Earth)> 등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 묘한 기분도 들었다. 전공을 접고 다른 바닥에서 인생을 시작한 것에 큰 후회는 없지만, 어린 시절의 꿈이 만들어낸 미련까지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최 교수님이 추천하신 책들을 읽으며 '계획 독서'의 포만감을 누리면서, 그 미련을 달래볼 수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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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아이들은 참고서와 문제지를 들추며 열심히 공부하며 지내고 있다. 금세 잊어먹는다며 시험지를 빨리 내주라고 아우성치는 아이들 모습에 웃음이 저절로 퍼진다. 시험 대비용으로 암기한 것을 토해내고 마는 얕은 지식을 쌓을 새도 없이 시험을 치름과 동시에 사라져버리고 마는 학습 방식에 쓴웃음이 나온다. 어떤 원리를 생각하여 문제를 풀기보다는 단편적인 지식을 머릿속에 넣었다가 그 문제를 알아맞히면 만족한다는 표정에서 아이들의 생각은 무디어지고 그나마 지니고 있던 사고력까지 새어 나가는 듯해 염려스럽다. 말랑말랑한 가슴으로 세상을 보고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며 지낼 때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알기에 점점 메말라가는 아이들의 가슴에 기름칠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는 곤충학회 조지 에드먼즈 교수의 추천서에는 가식적인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훌륭한 스승을 만난 덕분에 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회고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쉽사리 걸을 수 없는 탐구의 길을 치열하게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생태학 석사 학위를 받기 전 하루도 쉬지 않고 새들을 끓이고 기생충을 잡아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연구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신나게 행하는 데서 가능했다. 하고 싶은 학문을 실컷 하면서, 그것을 통해 깨달은 대로 살아가고 그 삶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선생님은 행복한 학자의 모습으로 떠오른다. 논문을 내기 전 동료에게 수차례 고쳐 달라고 부탁하여 정확성과 경제성을 갖추고 품격 있는 글을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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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포털 사이트의 '지식인의 서재'가 한동안 많은 관심을 끌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의 대부분은 책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그들을 있게 한 단 한권의 책, 혹은 책들을 통해 우리는 간접적인 독서 체험을 한다. 최재천 님의 <과학자의 서재>는 눈높이를 낮춘 '지식인 자서전'이랄까? 누구나 알기 쉽게 인간 최재천을, 학자 최재천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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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지식인의 서재>란 책에서 최재천 교수을 처음 만나고 나서 <과학자의 서재>란 비슷한 제목의 책을 접하면서 통섭의 교수 최재천에게 감동을 주었던 책이야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에게 서재란 단순히 읽어온 책들을 보관해 주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재천의 서재란 '한 사람의 정신과 영혼이 깃들어 자라온 성장의 집'이었다. 덕분에 나도 최재천을 통한 간접독서가 아니라 인간 최재천, 학자 최재천이 살아온 꿈과 지식의 탐험을 함께 하는 그런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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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본 이 <과학자의 서재>제목에 대한 느낌은 언뜻 보기에, (아주 창피할만큼 단순하게도) '과학분야에 국한된 책 소개가 주된 주제가 아닐까' 하는 편견아닌 편견. 책을 읽기 시작하다 보니, 그것도 참 쓸데업는 기후에 불과했던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단 서재라는 책의 제목에서 조금 떨어져 보자. 실제로, '책을 추천하는 책'은 참 많기도 할 것이다. 내가 알고있거나, 혹은 갖고 있는 책만해도 벌써 몇권은 되니, 내가 모르는 세상에 그 많은 책들 중 '책을 소개하는 책'들이 오죽하겠는가. 물론 이 책의 말미엔 저자인 최재천이 소개하는 몇권의 책이 언급되기도 하고, 이런저런 책들도 직,간접적으로 언급되긴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어불성설인듯 싶다. 이 책은, 책을, 그리고 자연을 사랑했던 한 소년이 특별한 과학자로 성장해가는 성장담이다.
누가 보면 궁색한 과거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책 과 사람을 동일시 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것은 군대 훈련소 때다. 생소한 모든 것, 내일, 혹은 잠시 후도 알 수 없는 순간순간, 그동안 해왔던 많은 것들, 정확히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통제되고 금지되고, 남은 것은, 하기 싫거나, 할줄 모르는 것들만을 남겨두었던 그때다. 아마 훈련소 입소식이 아니었을까. '이들과 함께 과연, 더 큰 소리를 낼 수는 있는걸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계속해서 예행연습을 하면서 소위 말하는 '군기'가 바짝 들어갔던 그때는, 실제 입소식 때 주먹을 쥔 손에 너무 힘이들어가서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헌데, 그것을 기억나게 하는 것은 그때 훈련소대 대대장이 해줬던 짧은 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충 기억하기론 '다들 책을 읽을 텐데, 한 사람이 살아가는 역사는 한권의 책과 같다는 것, 즉 여러분 주변에 있는 전우들 이나 조교들 혹은 간부들 모두가 하나의 책과 같으니 많은 것들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배우라' 는 말이었던 듯 싶다. 많은 시간이 지난 이야기라 내가 어떤 말을 빼고, 어떤 말을 더했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 그나마 좋은 축에 속하는 기억으로 간직하니, 미화했을 확률은 많겠다) 그때의 훈련소가 얼마나 부조리 했든, 군생활이 어땠든 간에 상관없이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쨌든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니깐.
자, 우리가 들고있는, 종이로 되있는 종이책, 혹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태블릿PC 나 스마트폰 등으로 보는 E-BOOK 이 갖고 있는 책의 개념을 잠시만 내려놓자.
한권의 책으로 분한 그의 삶을 따라가보자!
마치 가까운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듯, 따뜻하고 부드럽고, 솔직한 그의 입담은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사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기도 하거니와, 딱딱하지 않게 설명해주는 옛날이야기와 같은 그의 이야기는,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게 한다. 또한, 성인 독자뿐만 아니라 청소년 독자또한 고려한 듯한 (보통의 소설보다) 좀 더 넉넉한 줄간격은 편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기본적으로 독서는 내가 즐겁기 때문에 하지만, 때로는 곤욕이 될 때도 있는 반면에, 한 과학자의 삶을 '들어보는' 이 책은 마음 편하기만 하다. 그가 고향인 강릉에서 느꼈던 어릴적의 '편안함' 과 '그리움'만은 못할지라도 말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중학교부터 시험을 봐서 들어가던 시절, 대다수가 이제 동등하게 대졸이고, 그래서 자격증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지금 세대와는 다르게, 공부를 잘하고, 일류대를 나오는 것이 곧 최고의 성공이라고 일컬어졌던 그 시대에 육군 간부의 아들로 태어난 저자는, 그때의 어머니의 교육열과 (시대가 변해도 교육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 듯 하니 가타부타 긴말 할 필요는 없겠다.) 아버지의 발령으로 인한 이유로 서울로 전학오게 된다. 중학교부터 시험 성적으로 결정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대학입시와 이어져 있기에, 저자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과외도 잠깐 받아가며 공부를 하게 된다. 공부는 썩 잘하는 편이었지만, 본디 자연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서, 초,중,고등학생 동안그는 방학때마다 강릉에 내려가 자연을 벗삼아 놀았고, 서울에 있을 때도 남산에 올라가서 친구와 함께 시를 쓰며 놀기도 했단다.
하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그가 그렇게 강릉에 내려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공부하는 동안의 남는 시간에 읽었던 책들이다. 물론 무슨 책을 읽었느냐는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얼마나 책을 사랑했었는지는 중요한 사실 같다. 온갖 다양한 것들이 담겨있는 '백과사전'에 엄청난 흥미를 느끼고 접했던 그의 책과의 인연은 '동화전집'으로 이어진다. 그것들이 그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더 풍부하게 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않게 짐작이 가능하다. 나아가, 자연과 한데 어울리길 좋아했던 그는, 그런 감수성 때문인지, 중학교 때 충동적으로 친구따라 참가한 백일장에서 시(詩)를 통해 장원을 하게 되면서 시인을 꿈꾸게 되기도 하고, 고등학교때는 미술선생님에게 스카웃되서 미술반에 들기도 한다. 그리고 '노오벨상수상전집' 을 통해, 어렴풋하게 과학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이야기가 길게 풀어져 버렸다. 어쨌든 중요한 요는, 소싯적부터 '자연을 벗삼아' 놀며 시 와,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좋아하며, 그러니깐, 기성세대가 본다면 소위 그냥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던 그가 처음부터 과학자의 꿈을 꾸게 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위에 설명한, 그가 기술한 삶의 반정도 되는 대학입시 무렵까지 그는 시, 소설, 미술, 등 꽤 다른 분야에서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의 모습과 언뜻 닮기도 하면서도, 또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그의 방황은 계속된다. 전공분야는 있었지만, 거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뿐더러, 그 계열에서 그가 자신의 진로를 명확히 결정하고 그 길로 나아가는 데에, 여전히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의 길을 인도해준 것은 '한권의 책' 이었다. 그것은 바로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이고, 그 일화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은 내게 생물학이 그저 흰 가운을 입고 세포나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인간 본성을 파헤치고 철학을 논할 수 있는 학문이란 걸 알려줬다. 그 책은 내게 생물학에 몸바쳐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155p
내가 그의 삶의 태도 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나는 무엇을 할 사람'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태도다. 그것이 어떤 확고한 삶에 대한 의지와 자세로 이어지고, 나아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멋진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삶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제약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어쩌면 자신이 꿈꾸던 것이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시인이 될 사람' 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지금 과학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때의 감수성, 언젠가의 철학적 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차가운 증명과 무한실험'에 그치는 과학자가 아닌, 감성 풍부하고 철학적이고, 마음 따뜻한 과학자가 된 것이다.
그가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많은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했고, 그런 순간순간들은 책이 길을 가르쳐준, 혹은 책을 통해서 바뀌게된 태도가 많이 눈에 띤다. 하지만 내게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어떤 구불구불하고 불확실한 길을 걸으면서 방황하고 또 방황하며, 머뭇거리다가도 달리고 마는,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는 과정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런 길 위에 서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렇게 자신만의 삶을 찾은 저자의 모습이 무척이나 멋졌다. '최재천 이라는 책'을 읽어보니, 정말로 과학과 사회, 인간에 대한 종합적인 통찰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의 다른 저서도 얼른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만약, 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그것이 '실패'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쩌면 거기서, 우리가 꿈꿔오던 꿈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거기에는 어떤 '각성'이 필요하고, 또한 그 각성이 그저 자신에 대한 '위로'로 여겨지면 안될 것이다. 길을 찾는데 책이 전부는 아니지만, 또 책이 아닌것도 아니다. 어떤 한권의 책을 '잘' 만나는 것은 가장 저렴한 대가를 통해 삶을 바꾸는 일이 아니겠는가!?
저자인 최재천이 풀어놓는 아주 솔직한 삶의 애환과 방황을 통해서, 삶에 대해 조금은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꿈을 찾으며 방황하던 그의 나날, 그리고 선택의 연속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인생을 바꾼 요소요소에 있는 몇권의 책들, 그리고 그가 추천해준 몇권의 책들을 꼭 한번 읽어봐야 겠다. (신문에서 서평을 쓰기도 했던 그의 경력대로, 소개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 또한 아주 재미나다) 읽다보면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책들이 있겠지. 어쩌면, 한권의 책들에서 느꼈던 작은 울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과 더불어 책과 같은 사람, 어느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치열하게 읽고, 치열하게 방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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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는 운명같은 책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는 여러 가지겠지만 특정 주제를 택해 그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것은 자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아닌가 한다. 보통의 경우 지난 시간을 주요한 사건이 일어난 순차적으로 살펴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교훈을 얻는 것이 일반적인 예를 것이다. 하지만, 특정한 키워드로 삶을 돌아본다면 그 한정된 키워드가 있기에 더 세밀한 성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걸어온 한 분야에서 우뚝 선 업적을 이룩한 사람이 지난 행적을 더듬으면서 자신이 오늘의 자리에 있게 된 주요한 요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한다면 구체적인 삶이 보여 지기에 상당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 대상이 자라나는 청소년일 경우는 자신이 처한 환경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학자의 서재’는 훌륭한 안내서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학자이며 오랫동안 학생들과 함께한 이화여자대학교 최재천 교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현대사회의 키워드 중 하나인 ‘통섭’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통해 이미 접한 사람이기에 흥미로운 점이 많다. 또한 국내에서보다는 외국에서 더 많이 알려진 학자가 아닌가 싶어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이 그가 바라는 이 사회의 희망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하는 바람이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남들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최재천 교수 역시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사람이다. 여기서 기대감이란 학자로써 남다른 성과를 보이며 성공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일반적인 남과 다름이 아니다. 보통의 기대감은 타고난 천재성에 노력을 더한 모습이겠지만 그는 달랐다. 자연과 더불어 놀기 좋아했고 공부 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좋아했으며 문학에 흥미를 가지고 시인이 되고자 했으며 조각가로써의 꿈도 가졌다. 또한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위해 오랫동안 깊은 방황도 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천재들과는 다른 행보다. 하지만 그렇게 보내는 시간동안 책과 함께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으며 최재천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준 것 역시 책이었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보면 늦은 공부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가고 싶은 학과에 낙방하고 2차 지망으로 동물학과에 입학하면서 전공보다는 다른 부분에 관심을 가졌다. 삶과 학문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느끼며 고민하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며 방황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집안의 장남에게 거는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자책으로 아버지와의 사이도 불편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무엇인가가 분명 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방황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방황하는 시간동안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이기에 그 방황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비행기로 오기도 하지만 때론 모든 경유지를 거쳐서 오는 버스도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그에게 행운은 바로 책이었으며 스승이었다. ‘자기답게 사는 길’에 뜻을 정하고 난 후 불철주야 매진한 결과 원하던 스승과 함께 학문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관심사는 전공에 머물지 않는다. 어린 시절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자연이 주는 혜택을 톡톡히 받았고 삶의 가치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 고민했으며 그것과 전공학문의 결합을 시도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통섭’이라는 이 시대의 화두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그가 원하는 학문의 길이라는 점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진로로 고민하는 청소년이나 ‘자기답게 사는 길’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재천이 걸어온 발자취는 롤모델로 작용할 것이다. 그를 통해 현대 사회가 바라는 인간형의 한 전형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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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는 곧 한사람의 정신과 영혼이 깃들어 자라온 성장의 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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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는 세계적 권위를 지닌 자연과학자 최재천 교수의 에세이집 같은 느낌의 무겁지 않은 책이네요.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개미와 말한다><황소 개구리와 우리말>의 작가로 더 유명하기도 하구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뛰어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어린 아이가... 공부보다는 문예반과 미술반 활동으로... 한때는 시인으로... 한때는 화가로...꿈을 가지고 있던 그는 대학입시에 두번이나 떨어지고.. 2차로 지망해던 서울대학교 동물학과에 들어 가게 되었는데... 생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열정을 갖고 ... 곤충학과에서 석사학위...생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게 되었다가 한국행을 하는 이 분의 일대기... 한때는 방황과 좌절도 있고....꿈도 있고...열정도 있는 그의 삶을 보면서... 자라나는 청소년기 아이들이 이 책을 보게 된다면... 좀 더 풍성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행복한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최재천 교수의 성장기는...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거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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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어릴 적 뒷산을 뛰어다녔던 시절로 가버렸다. 뒷동산이 놀이터였고, 앞에 있는 도랑이 멋진 물고기의 놀이터인줄 알았던. 우리 동네만이 존재하고, 다른 세상은 모르던 그 시절로 나는 돌아가 버렸다.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한 그 추억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