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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2세는 정통성을 갖춘 왕이었지만 폭군이었기에 폐위당 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그런 리처드 2세에 관한 사극을 쓰면서 그가 사극에서 다룬 어떤 왕들보다 리처드 2세를 시적이고 연극적인 왕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역사적 평가와는 별개로 극작가로서 셰익스피어가 다른 영국의 왕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떤 매력과 친근감을 리처드2세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일 수 있다. 정통성을 갖춘 리처드 2세가 폐위됨으로써 장미전쟁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튜더왕조가 탄생했던 만큼, 리처드 2세의 폐위와 관련해서는 왕권신수설을 비롯해서, 캔토로비츠의 “왕의 두 신체론 등, 다양한 정치적 이론과 주제들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극작가인 셰익스피어에게 리처드의 2세의 폐위는 또한 매우 극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사건으로 느껴진 듯, 셰익스피어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리처드 2세의 인간적 면모를 상상으로 복원하고 있다. 그 결과 후대의 많은 문인들이 리처드 2세의 시적 언어에 매료되기도 하고, 특히 그의 성격의 독창성에 주목하기도 하였다. 현대의 비평가들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블룸을 들 수 있는데, 그에 의하면,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리차드의 성격은 이후에 "오델로"의 이아고와 "리어왕'의 에드먼드로 발전하는 바, 이런 유형의 성격들은 인간적, 도덕적 위엄과 별개인 미학적 위엄들을 갖추고 있으며, 자신의 삶에 관한 예술가들이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그렇게 리처드 2세의 성격을 창조한 것은 물론 그에 대한 깊이 있는 인간적 이해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셰익스피어의 다른 어떤 사극보다도 왕의 정체성에 관해 왕은 왕이되 또한 인간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