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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르,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그녀
"페드르,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그녀" 내용보기
이 작품은 라신이 에우리피데스로부터 주제를 빌려 집필한 희곡이다. 고대 비극에서 페드르는 이포리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데 이는 페드르의 덕성을 해치게 되므로, 이 역할은 에논느라는 시녀가 대신하게 된다. 이포리트 또한 고대 비극에서 젊은 현인으로 묘사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의 죽음이 분노를 일으키게 하므로, 라신은 그에게 아리시를 사랑하게 되는 약점을 부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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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라신이 에우리피데스로부터 주제를 빌려 집필한 희곡이다. 고대 비극에서 페드르는 이포리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데 이는 페드르의 덕성을 해치게 되므로, 이 역할은 에논느라는 시녀가 대신하게 된다. 이포리트 또한 고대 비극에서 젊은 현인으로 묘사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의 죽음이 분노를 일으키게 하므로, 라신은 그에게 아리시를 사랑하게 되는 약점을 부여한다. 이렇듯 주제 자체를 라신이 창작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주제 속에서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도입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것이 라신의 독창성이자, 작품을 보다 극적이고 아이러니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주요 인물인 테제의 왕과 페드르, 이포리트와 아리시 공주는 모두 저마다의 비극을 지니게 된다. 이 네 명의 비극은 서로 얽혀있으며 오묘하게 맞물려 진행된다는 점에서,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본다. 나 역시도 페드르라는 인물에게 집중하게 된 편인데, 이포리트를 사랑하면서도 지독한 죄의식에 시달리고, 그로인해 테제 왕에게 이포리트의 누명을 벗겨주려 하지만, 이포리트가 아리시 공주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질투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공감할 수 있었다. 완전히 죄를 범한 여자라고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죄가 없는 여자라고 볼 수도 없는 묘한 아이러니를 잘 그려낸 것 같다.

  희곡이므로 등장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를 낭독해 보았는데, 시적인 표현들과 세련된 완곡어법들이 많아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고전주의 작품이지만 현대에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멋진 표현들이 많다는 것 또한 페드르가 오랜 시간 살아남게 해 준다. 희곡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는데, 페드르를 읽고 보니 희곡 자체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많이 생겼다. 대사만으로 모든 상황에 대한 설명, 등장인물들의 정서와 감정을 이렇게 풍부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니!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시간과 장소가 제한적인 만큼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대사에 의존하게 되는 희곡의 매력에 대해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영화화된 작품에서는 페드르와 이포리트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으로 연출되었다.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데 있어서, 이 둘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은 관객들에게 보다 낭만적인 정서를 이끌어내기 위함이겠지만 이러한 연출은 라신 비극의 극적인 면, 비극성을 저해하는 연출이었다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이포리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기 때문에 테제 왕이 후회를 하며 그의 비극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페드르 또한 이포리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으로 인해 질투의 감정이 생기고, 그가 죽고 난 뒤에는 더욱 극심한 죄의식에 시달려 독약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비극의 효과 측면에서는 이포리트가 페드르를 사랑하지 않고 아리시를 사랑했다는 것이 훨씬 좋은 장치인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아리시의 비극 또한 추가되어, 전체적으로 비극성의 농도가 더욱 짙어지게 된다.

 

j******8 2011.09.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