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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전에, 한 문화권의 성숙 정도를 가늠하려면, 그 문화권에 소속된 이들이 해학과 위트를 어떻게 표현하고, 그 세련된 방식의 수준이 어디에 도달했는지를 봐야 한다고 리뷰에서 적은 적이 있다(여기 클릭). 오늘 여기에 나는, 한 문화권이 얼마나 넉넉한 범위의 상상과 가치, 미덕과 가능성, 선의와 아름다움을 포함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려면, 그 문화권이 빚어낼 수 있는 아동 문예가 도달한 지점을, 멀리 눈 들어 응시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호, 거창한걸?). 음식점에서건 놀이동산에서건, 아이들에게 공공장소에서의 버릇, 예절을 안 가르치고 맘대로 날뛰게 방치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아니라 그 부모의 상식, 인격에 대해 찌푸른 시선이 가는 건 당연하다. 이 영화는 그저 보기만 해도 아찔해지는, 버릇 없이 자란 일곱 명의 아이들이 벌인 난장판으로 시작한다. 말썽꾸러기 한 명을 지켜 보는 것도 머리가 어지러운데 일곱 명이라! 낮일은 안 하고 밤일에만 재미를 붙인 작자들이니 애들을 저 모양으로 키울 밖에! 이런 애들을 건사하려면 이 정도 연면적의 대저택이 아니고서는 숨도 못 쉬겠다 싶을만큼, 두 명의 하녀가 딸린 근사한 귀족의 거처 그 장관이 눈 앞에 턱 디밀어진다.
사는 사람은 그런데 귀티와는 거리가 먼, 한편으로 수심에 가득한 표정, 다른 한편으로 당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조바심이 그 거동에 배어나는 중년 남성이다. 아이들의 (친)아버지가 맞는 듯은 하다. 이런 호화 레지던스에 살며 아이를 일곱이나 두었다니, 무슨 아바스 왕조의 폭군마냥 처녀 한 명과의 인연에 아이 하나를 기념품으로 거두기라도 한, 무서운 버진 컬렉터는 아닐까 짐작했는데, 턱도 없다. 이 사람은, 얼마 전 아내(물론 단 한 명의 아내 뿐이었고)와 사별하고, 급한 대로 들여 놓은 보모들을, 그 아이들의 등쌀과 난장판에 족족 내쫓아야 했던, 생업으로는 무려 장의사 일에 종사하는, 무기력하고 사람만 좋은 브라운 씨다. 그 주변머리에 어찌 그런 근사한 보금자리를 장만했을까 궁금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먼 핏줄의 기이한 호의에 힘입은 것이었다. 아내와는 유난히 금슬이 좋았던 모양인지, 이미 저세상으로 떠나고 없는 그 배우자가 생전에 앉앗던 자리에 방석 하나를 세워 두고, 자기 전에 반드시 이를 상대로 넋두리를 하곤 한다. 한 달 안에 이 많은 아이들을 돌볼 새 배우자를 구하지 않으면 강력 대응하겠다는 노파의 엄포에, 이 사내는 처량한 표정으로 부재한 아내의 양해를 구한다. 어쩌면 그저 제 마음 편하자고 벌이는 방백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보는 이들은, 아 그래서 '1966년작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도레미파솔라시도 꼬마들과 음악 선생이 어찌어찌 잘 되어서 중늙은이와 엮이고 신분 상승 한단 소리네. 외모는 별로지만 대신 성격이 좋으니 나름 흐뭇한 드라마가 되겠는걸? 이 하녀가 그런데 무슨 수로 애들 버르장머리를 고칠까? 오로지 해답은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정도? 하품깨나 나오겠네..'같은 생각을 떠올리는 그 순간...
이분이 등장하신다(위 캡처는 등장 씬은 아니고 그보다 좀 지난 장면. 방문은 한밤중에 이뤄져 더 무섭다) 엠마 톰슨은 해리 포터 연작이라든가, '맨 인 블랙 3'에서 에이전트 O 역, 그리고 '러브 액츄얼리'에서의 인상적인 연기로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사람이다. 사실 그는 한국인들이 막연히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는 현격히 차이 나는, 현지에서의 대배우 위상을 꿰어 차고 있는 엄청난 거물이다. 요즘 나는 사전 정보 전혀 없이 마구잡이로 꺼내 든 디스크로 영화를 즐기는 재미에 들렸는데, 이 씬에서 갑자기 엠마 톰슨이, 그것도 저런 모습으로 등장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한 터라, 잠시 플레이어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배우의 위대한 면은, 정확하고 경제적인 연기를 시도하면서도, 어느 각도에서건 어느 동작에서건 위엄과 권위를 잃지 않는 무시무시한 내공의 발산이, 그 퍼포먼스를 보는 누구 입장에서건 확인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저 장면에서 충격을 받았으면 받았지, 절대, 웃음이 나오진 않았다(진짜 웃음이 나오는 씬은 이후 따로 여러 번 있다. 아주 소박하고, 어린이스러운 감성으로 웃겨 주는데, 나는 아마 그 장면들을 보고 웃음이 안 나오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거의 확신한다). 아니 이러고 나오시다뇨. 뭔 이유와 곡절, 작정하신 바가 단단히 있나 보죠. 과연 단단히 뭐가 있긴 있었다. 그건 직접 보면서 확인들 하시고... 영화는 중반에 이르기까지 이 엠마 톰슨이 분한 내니 맥피(내니는 보모라는 뜻이다)의 카리스마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시원시원 풀어 주며 전개된다. 내니 맥피가 골칫거리 아이들의 나쁜 버릇을 하나하나 교정하며, 자신의 얼굴에 생긴 추한 요소들까지 덩덜아 제거되는 장면은, 차라리 관객들의 최초 부담, 걱정, 나아가 관객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고유의 상처까지 어루만져주는 과정에 가깝다. 거기까지만으로도 좋았으나, 이 탄탄하고 속 깊은 아동물은 또 하나의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화는 대단히 영리하게 짜인 구성을 자랑한다.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천성적으로 말썽꾼인 그들의 심성과 충동, 욕구 때문에라도 이 7인의 어린 폭도들에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의 시선이라면, 낯선 친척이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찾아 오고 새 식구를 맞이하는 일만큼 공포가 없으니, 영화는 철저히 그런 시시한(?) 사건으로 서스펜스를 띄우고, 안정적인(아이들 보는 영화니까) 기승전을 쌓아올리다, 지극히 도덕적이고 건강한 방식으로 이 모두를 마무리한다. 구시대 '소공자'처럼 꼬마(들)의 억지스러운 사회화를 유도, 예찬하지도 않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씬은, 예의 범절 가식 허례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며, 신나는 난장판으로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꼬마들이 착한 에반젤린에 말로 행동으로 안긴 상처는, 결말에 가서 하나도 사항 누락 없이 개별 손해 배상이 올바르고 자발적이며 안온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극은 어른이 봐도, 가택 명도(明渡), 배우자와의 사별, 재혼, 신분간의 갈등 등 그 나름대로 절실한 현실적 문제와 갈등 요소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신의 문제에 주목하고, 어른들은 그 이면에 깔린 어른들의 골칫거리에 집중할 수 있다. 한 영화가 두 개의 층으로 진행되면서도, 자연스럽게 모두의 공감을 유도한다. 아이들은 언뜻언뜻 보이는 성인판 스토리를 훔쳐 보며 '잘은 몰라도 어른들은 어른들만의 문제가 있나 보다'하는 생각을 갖게 되며,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그래, 내가 채 잊었던 진실이 있었네'라며 (저)아이(들)의 입장에 잠시마나 서 보게 된다. 이 치밀하고 유쾌하며 도덕적인 일류 드라마는, 바로 엠마 톰슨 자신이 직접 집필한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브리튼의 여류 지성(知性)인가. 실리아 임리가 분한 퀴클리 부인은, 소위 결혼 사기꾼이라 불리는 질 나쁜 유형이다. 저택은 그럴싸하나 아이들 때문에 힘들겠다 싶어 '작전'을 포기했다가, 돈 많은 '레이디'가 배경에 있다는 소릴 듣자마자 반색하며 달려 오고, 결혼식 당일 성난 얼굴로 돌진해 온 아델레이드 부인을 보자 여왕 폐하라도 알현하는 양 요란법석을 떨며 주위를 아연하게 한다.
아델레이드 부인은 과공의 허례와 과장된 flattering을 몹시도 선호하는 속물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듯 잠시 얼이 빠진 모양. 아델레이드 노부인 역으로 나온 앤젤라 랜스베리(사진 아래)에 대해선 두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이 앤젤라 랜스베리가 코믹한 역(엉터리 자칭 작가)으로 출연한 1976년작 '나일 강의 죽음'에서. 아주 잠시 하녀로 단역 기용되었던 여자가 바로, 저 퀴클리 부인 역의 실리아 임리(사진 위)라는 사실. 이 씬에서 퀴클리 부인의 대사에는 대단히 재미있는 실수가 나온다. 영어문화권에서 상위 신분자를 호칭하는 언어적 격식(이를 영어로 '스타일'이라고 부른다)에는 '유어 아너, 유어 엑셀런시, 유어 마제스티(황제의 경우), 유어 로열 하이니스' 같은 게 있는 줄은 우리가 다 안다. '레이디'는 우리가 착각하는 대로 젊은 처녀라는 뜻만 있는 게 아니고, 신분이 높거나 영지를 소유한 여성을 부르는 특별한 존칭이기도 하다. 이걸 착각해서, 사기꾼 퀴를리는 저 아델레이드 노부인에게 '유어 레이디니스'라 부르는데(사실 그것때문에 당황해서 표정이 저리 변한 것임ㅋ), '레이디니스'는 그런 스타일 프레이즈의 일부로 쓰이는 일은 없고(그 전에, 이미 문법적으로 말이 안됨), 오히려 여성의 국부, 성기를 가리키는 속어적 표현이다(....). 퀴글리 부인이야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ladyship이라고 할 의도였겠지만 말이다.
'필요 이상으로 끼어들면 안 된다.' 이 본분을 망각하지 않는 내니 맥피지만, 기계가 아닌 이상 최소한의 융통성은 있어야 한다. 이런 데에 행차할 때도 마부 두 명이 모는 마차를 타시는 아델레이드 부인. 참고로, 저런 네 필의 말이 끄는 탈것을 두고 '포-인-핸드'라고 부른다.
아기의 표정 연기가 너무 좋아서 CG가 아닐까 했다. 결혼식이 거행되고 무를 수 없는 혼인이 성립되려는 그 순간, 맏이 싸이먼은 내니 맥피에게 무슨 방법이 없겠냐는 듯 애처로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내니 맥피도 어쩔 수 없는 재량의 한계가 있고, 그녀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지시받은 대로 따를 줄도 아는' 버릇을 들이는 게 마지막 미션이다. '지시받은 대로 따른다(do as being told)'라... 영어에서는 behave oneself라는 숙어가 있는데, '바르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서로 뜻이 통한다. 영국식 발음과 미국식 발음의 차이는 여럿이 있지만, 미국식에서 [에이]로 소리나는 부분을 영국식으로는 [아이]로 조음하는 것도 그 하나의 특징이다. behave는 [비헤이브]로 읽는 게 미국식이지만, 영국식이라면 [비하이브]로 읽을 것이다. 비하이브! '벌집'을 가리키는 beehive와 그러고 보니 발음이 같아졌다. 들은 대로 따라하라고? 이제 아이들은, 입으로 벌 소리를 내며, 있지도 않은 벌을 피한다며 느닷 결혼식 분위기를 난장판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결혼식이고 뭐고 이제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속 검은 결혼 사기꾼은 화를 내며 퇴장하고, 있을 수 없는 봉변을 겪은 아델레이드 노부인은 퇴거 명령을 내리기 일보 직전이다. 하지만 싸이먼은 여기서 다시 이의를 제기한다. 오늘까지 어느 신부와건 결혼만 하면 괜찮은 것 아닌가요?
- 대체 저분은 누구실까? - 동화책 속에 나오는 공주님일 꺼야. 찌질해 보이는 브라운 씨의 훌륭한 영혼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모두가 벙쪄 있을 때 그는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얘들아, 에반젤린은 언제나 저런 모습이었단다, 너희들이 몰랐을 뿐.'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찡한 감동적 대사였다.
자기가 부리던 부엌데기가 이런 귀부인이 되어 돌아왔으니... 참고로, 이 장면 나오기 훨씬 전, 아이들이 제 시각에 기상하기 싫다며 홍역이다 뭐다 해서 꾀병을 부리자, 내니 맥피는 마법을 통해 아이들을 진찌 환자로 만들어 버린다. 주방으로 내려 온 뒤 내니 맥피는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며 음식물 찌꺼기로 군대 배급창에서나 나올 법한 조악한 수프를 만들라고 저 요리사에게 지시하는데, 이때 왕년 군부대에 근무하던 시절이 떠오른 요리사는 거수 경례까지 내니 맥피에게 붙여 가며 신나게 옛 레시피를 실전에 옮긴다.
미션은 모두 완수하고, 덤으로 인간들의 참된 행복마저 찾아 준 후, 내니 맥피는 본모습으로 돌아왔으며, 요리사가 입버릇처럼 되뇌던 '8월에 눈이 왔으면 올까 그런 일은 없다!'는 이제 현실이 되어 이 모든 기적의 대미를 장식한다.
영화가 훈훈하고 아름답다 보니 CG돼지까지도 참 귀여워 보임.
스탭롤 나오기 직전, 주연 크레딧의 배경으로 흐르는 애니매이션 씬도 이처럼 일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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