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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으로 진단받은 뒤에 투병과정을 다양한 시각에서 적은 프랑스 철학자 뤼방 오지앙 박사가 <나의 길고 아픈 밤>에서 인용한 <나 아닌 다른 삶>을 읽었습니다. 프랑스 작가 임마뉘엘 카레르가 직접 직접 목격한 두 사람의 쥘리에트의 죽음을 두고 주변인물들의 반응을 적은 기록문학입니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2004년 12월 26일 작가가 스리랑카를 여행하면서 만난 델핀-제롬 부부의 4살짜리 딸 쥘리에트의 죽음을 다루었습니다. 여자아이는 그날 그곳을 덮친 전대미문의 지진해일에 휩쓸려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주검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쥘리에트의 죽음을 두고 부모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이 보여준 모습을 적었는데, 이분들의 심정을 물어서 기록했다기보다는 지켜보면서 느낀 바를 적었다고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쥘리에트의 죽음은 또 다른 방식의 기록문학입니다. 스리랑카의 여행이 계기가 되어 삶을 함께 하게 된 엘렌의 여동생이 두 사람이 파리로 돌아온 뒤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았습니다. 어렸을 때 악성 림프종을 앓고서 다리를 절단한 엘렌은 유방암이 생겨 폐로 전이되면서 죽음을 맞은 것입니다. 작가가 쥘리에트의 죽음을 기록하게 된 것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소도시 비엔 소법원에 근무하던 쥘리에트의 영적 동지 에티엔의 간곡한 부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쥘리에트를, 나는 예전엔 몰랐고, 그 슬픔은 내 슬픔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전혀 이 얘기를 글로 쓸 입장이 아니에요.”라고 조심스럽게 거절의 의사를 밝힌 작가에게 에티엔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글을 쓸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나도, 어떤 측면에서는 당신과 같은 입장이에요. 그녀의 병이지 내 병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녀의 앞에, 그녀의 옆에 있었지, 그녀의 자리에 있지는 않았으니까요.(331쪽)”라면서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어린 쥘리에트은 순식간에 닥친 지진해일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기 때문에 죽은 이의 이야기를 담아낼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 여성 쥘리에트판사의 경우는 암으로 진단된 뒤에 죽음을 맞기까지 어느 정도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죽음을 맞는 쥘리에트의 생각, 그리고 남편을 비롯하여 동료인 에티엔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어떻 모습을 보였는지 면담을 통하여 들은 이야기들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때 암환자를 치료하시던 종양내과 교수님은 심뇌혈관 질환이 생기거나 사고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기보다는 차라리 암으로 죽는 편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죽음을 맞아야 하는 이유도, 언제쯤 죽을 것이라고 예상도 할 수 있고, 그래서 죽기 전에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사실은 쥘리에트 뿐 아니라 에티엔 역시 젊은 시절 암으로 다리를 잘라내야 했던 바가 있어서 암과의 투병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쥘리에트와 에티엔의 두 사례가 된 셈입니다. 다만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은 쥘리에트를 중심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금년 초에 전립선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고 지금은 추적관찰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암에 대하여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쥘리에트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평범하고 소박했던 자신의 삶은 성공한 삶이었다고 얘기했다고 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과연 나의 삶은 어땠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당장 답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만 앞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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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리에트, 피어나지 못한 어린 새싹의 죽음. (필리프는) “행복한 가장이었다. 손발이 맞는 아내, 그의 반쪽 같은 친구 제롬을 남편감으로 골라 최고의 효도를 한, 나무랄 데라곤 없는 딸, 그리고 어린 시절의 제 엄마 모습을 쏙 빼 닮은 손녀까지. 정말 완벽한 인생이었다.1)” 운명의 신(神)의 장난일까? 필리프의 네 살배기 손녀 쥘리에트와 그녀의 친구 오산디가 깔깔거리며 뛰어 놀던 해변은 예고도 없이 덮친 집채만한 파도로 인해 쑥대밭이 되었다. 필리프도 미처 의식할 겨를 없이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다. 어느 순간 파도가 잠잠해지자 간신히 가슴 높이까지 차 있는 물을 헤치고 시장을 향한 딸 내외를 찾아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바다와 도로 사이에 있는 언덕을 따라 걸으면서 보니 도로는 정상이었다. 그런데 언덕을 내려와 평지에 발을 딛는 순간, 기막힌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쪽은 멀쩡했다. 나무며 꽃들, 야트막한 담장들, 작은 노점들,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쪽은 모두 무너져, 용암이 흘러내린 듯한 거무죽죽한 진흙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다. 2)” 일상과 非일상이 공존하는 그곳을 지나 “진흙을 뒤집어쓴 채 피를 흘리며 공포로 휘둥그래진 눈3)”을 한 그가 시계탑 밑에 있는 딸 내외를 발견한 것은 의외로 쉬었다. 이제 행복한 시간이 끝났음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 잔인한 시간이 시작된 것이었다. 필리프 가족이 겪어야 했던 쥘리에트의 죽음과 그에 따른 슬픔은 타인의 삶이지만 어쩌면 나의 삶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스리랑카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에바 랑카 호델이 마음이 들지 않아 해변의 작은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옮기자고 자주 얘기했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가 예정대로 스쿠버 다이빙 클럽 사람들과 함께 바다로 나갔더라면…… 또 쥘리에트, 어느 젊은 아내의 죽음. 어린 쥘리에트의 죽음을 뒤로 하고 파리로 돌아온 우리 부부는 처제인 쥘리에트의 암이 재발하였다는 불길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16살에 걸렸던 림프계 종양인 호지킨병으로부터 완치되었던, 아니 완치되었다고 믿었던 처제가 이번에는 유방암에 걸린 것이었다. 그것도 폐에 전이된 상태로. 또 하나의 죽음을 앞두고, 서둘러 처제가 살고 있는, 시골도 도시 근교도 아닌 어정쩡한 장소인 ‘로지에’로 향했다. 그곳에서 처음 본 처제 쥘리에트는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하고 야윈 모습의 젊은 여성4)”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쇠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암이 재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담담히 삶을 정리하고는 죽음과 대면할 준비를 했다. 먼저 같은 마을에 사는 절친인 필리프에게 남겨질 세 아이를 위해 자신의 사진을 최대한 많이 찍어 줄 것과 장례 미사를, 그리고 그의 아내이자 발음교정사인 안세실에게 살짝 혀짤배기 소리를 하는 클라라의 발음교정을 각각 요청했다. 역시 같은 마을에 사는 절친이자 중학교 교사인 크리스틴은 아이들의 진학지도를, 그녀의 남편이자 기업 인사과에 근무하는 로랑은 그녀의 사망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각종 사회 복지 수당 수령 등을 각각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5) 그리고 그녀의 남편 파트리스에게도 혼자 살아갈 준비를 시켰다. 그녀의 남편 “파트리스는 변변한 직업도 없는 데다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용달 트럭 기사로 일하고 파리 시내의 한 문화 센터에서 만화 강좌를 맡아 가르치면서 겨우 먹고 살 만큼 버는 것에 만족6)”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남겨진 자의 의무 그리고 행복 소설에서의 1인칭 화자(話者)이자 실제로 이 비극적인 사건들의 목격자인 작가는 비록 어린 쥘리에트의 할아버지인 필리프(p. 73)와 “권력을 지향한다기 보다는 권력에 대한 지향이 있는 사람7)”을 자처한 젊은 쥘리에트의 동료 판사인 에티엔(pp. 330~331)의 강요 아닌 강요를 받아 “내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썼다. 부모가 겪은 자식의 죽음, 그리고 아이들과 남편이 겪는 젊은 엄마이자 아내의 죽음에 대해. 삶은 나를 연이어 일어난 이 두 불행의 목격자로 삼았고, 내게 그것을 알릴 책임을 지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8)” 어쩌면 어린 쥘리에트를 앗아간 해일이 밀어닥치기 전날 헤어지기로 했던 우리 부부가 그 해일을 계기로 불꽃같았던 첫 만남에서 희망했던 것들을 이루고 있기에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남겨진 자가 타인의 실제 삶을 담담하게 정리, 재구성한 수기(手記)와 같은 이 글에서 나는 내 삶을 바라보며 “만약 몇 달 전에, 내가 암에 걸려서 조만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그래서 쥘리에트와 똑 같은 질문을, 내 삶은 성공한 삶이었나,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면, 어땠을까? 아니야, 내 삶은 성공한 삶은 아니었어, 라고 말했을 거야. 내가 죽는다는 말을 해일을 경험하기 이전에 들었다면, 난 그렇게 대답했을 거야. 그런데, 해일을 경험하고 나서 나는 당신을 선택했어. 우린 서로를 선택했어, 이제 달라졌어. 당신이 있어, 내 곁에. 만약 내가 내일 죽더라도, 나도 쥘리에트처럼 내 삶이 성공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9)”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불행을 뛰어넘어 행복을 영위할 수 있는 틀이 되는 것이 아닐까? ---------------------------------
1) 엠마뉘엘 카레르(Emmanuel Carrère), <나 아닌 다른 삶>,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11), p. 39 2) 엠마뉘엘 카레르, 앞의 책, p. 12 3) 엠마뉘엘 카레르, 앞의 책, p. 19 4) 엠마뉘엘 카레르, 앞의 책, p. 82 5) 엠마뉘엘 카레르, 앞의 책, pp. 321~322 6) 엠마뉘엘 카레르, 앞의 책, p. 235 7) 엠마뉘엘 카레르, 앞의 책, p. 139 8) 엠마뉘엘 카레르, 앞의 책, p. 367 9) 엠마뉘엘 카레르, 앞의 책, pp. 106~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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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6구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라고 파리 정치 대학을 나온 작가 이력에서도 전해지듯이 카레르의 소설들에서 나는 자의식 강한 엘리트 성향을 자주 느낀다. 그의 여러 작품을 읽다 보니 현실과 픽션이 맞물린 분석적인 그의 작품 특징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을 보고 있으면 신변잡기적인 온갖 고민, 글이 써지지 않아 애를 먹는 모습을 자주 보는데 그것들이 소설과 어울려 펼쳐지는 게 흥미롭다. 그래서 현재 소설에 이전 소설들과 등장인물들이 출현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다. 이 소설만 해도 카레르와 엘렌이 결혼 파경 직전인 상태에서 가족 휴가로 간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들은 스리랑카에서 지진 해일 참사를 목도하고 서로 헤어지지 않기로 결심한다. 피해자 중 4살짜리 딸 쥘리에트를 잃은 델핀-제롬 부부의 일을 곁에서 도왔던 그들은 귀국한 뒤 엘렌의 여동생 쥘리에트의 시한부 소식을 듣게 된다. 잘 알지 못했던 두 명의 쥘리에트와 그들의 죽음을 연결해 다듬은 카레르의 이 소설은 그의 여느 소설보다 훨씬 타인에게 깊이 다가가 있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모습이라 감동적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자발적으로 하루에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썼다. 부모가 겪는 자식의 죽음, 그리고 아이들과 남편이 겪는 젊은 엄마이자 아내의 죽음에 대해. 삶은 나를 연이어 일어난 이 두 불행의 목격자로 삼았고, 내게 그것을 알릴 책임을 지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삶은 나에게 그것들을 면하게 해주었다. 앞으로도 그래 달라고 나는 기도한다. 행복은 과거형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행복했구나, 하고 깨닫는다고. 내게는 적용할 수 없는 얘기다. 나는 오랫동안 불행했고, 불행을 생생히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이 나는 좋다.”
“상조 회사나 은행 대출 광고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곳의 삶이었다. 비과세 자유 적금 금리, B 지역 학교들의 방학 날짜가 관심사인 삶, 오샹 마트가 소비 생활의 중심인 삶, 운동복을 평상복 삼아 입는 삶, 모든 면에서 그저 중간인 삶, 개성이라고는 없는, 아니, 삶을 멋스럽고 개성 있게 만들려는 의식조차 없는 삶이었다. 나는 이런 삶을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원하지 않는 삶이었다. 그러나 그날, 아이들과,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아이들을 찍는 부모들을 보면서, 로지에의 삶이 단순히 안전함에 대한 바람과 군중 심리 때문에 선택한 삶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선택한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이라고 해도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 언니인 엘렌도 동생 쥘리에트를 잘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말했다, 늘 쥘리에트한테 핸드백을 하나 사줘야지, 아주 예쁜 걸로, 하고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가게에 들어가면, 아니지, 목발 때문에 걔는 핸드백을 못 들지, 하고 생각을 바꿨어. 걔가 메고 다니던 흉한 것들 말고 내가 아주 예쁜 숄더백을 하나 사줄 수도 있었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어. 그런데 그런 흉한 걸 들고 다니는 꼴은 보기 싫어하면서도 정작 예쁜 걸 별로 사주지는 못했어. 정말 끔찍하지, 내가 걔한테 마지막으로 한 선물이 가발이었다니. 그리고 있지, 우리가 어렸을 때, 나는 걔가 형제 중에 제일 어리고 제일 예뻐서 질투도 했었어.”
카레르의 취재로 자세히 드러난 쥘리에트와 에티엔의 관계는 특이했다. 두 사람 다 일찍 큰 병을 앓았던 경험과 그로 인해 목발을 쓰는 동병상련 때문인지 쥘리에트와 에티엔은 동료 이상의 감정을 교류하는 관계였다. 각자 애정을 나누는 가정을 가지고 있지만 두 사람은 가족과도 나눌 수 없는 자신의 가장 내밀한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관계다. 우정보다 더 깊은 이런 관계를 뭐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한 사람이 먼저 죽어서 다시는 이런 관계를 꿈꾸기 어려울 거라는 걸 알면.
“본인만의 문제라면 그나마 조금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절대 그런 생각을 털어놓지 않는다는 게 에티엔의 철칙이었다(그는 이 부분에서 쥘리에트도 생각이 똑같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다른 사람은, 자신 외에 제일 중요한 사람, 즉 그에게는 나탈리, 그녀에게는 파트리스를 의미했다. 원칙적으로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사이였지만, 이런 생각들만은 그들에게 숨겨야 했다. 그들에게 아픔을, 슬픔과 무력감, 죄책감이 뒤섞인 아픔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전달되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조심하지 않도록, 상대 앞에서 지나치게 감정을 억제하지 않도록 또 조심해야 했다. 가끔 나탈리 앞에서 감정이 폭발할 때가 있어요, 하고 에티엔이 말했다. 진저리가 난다고, 플라스틱 다리를 한쪽에 달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너무 부당하다고, 엉엉 울고 싶다고, 그럴 땐 툭 털어 버리고는 엉엉 울죠. 3~4년에 한 번꼴로, 압박감이 한계에 도달하면 그렇게 터져요. 그러고 나면 당분간은 괜찮아요. 당신은 어때요, 이런 얘기를 파트리스한테 가끔 해요?
가끔.
그럴 때는 울어요?
운 적도 있어요.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들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수치심이나 자제심이 낄 자리가 없었다. 눈물을 쏟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상대방이 죄책감을 느낄까 봐 고민하지 않고 〈힘들어〉, 〈이건 부당해〉, 〈진저리가 나〉 하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 상대가 가감 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리라는 확신, 다른 감정을 투영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에티엔의 표현이다), 속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건 엄청난 기쁨이고 엄청난 안도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런 해방감은 이번으로 끝임을, 반복되면 자기만족에 그치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는 스스로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거나 예감하고 있었다.”
카레르와 엘렌은 쥘리에트 부부를 통해서도 자신들을 돌아본다. 발이 불편한 쥘리에트를 번쩍 안아드는 걸 좋아했던 파트리스처럼 자신들도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는 간단하고 적확한 표현이 있길 바랐다. 지금은 없지만 앞으로 그런 표현이 생길 거라 기대하면서.
우리는 자기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긴 의미의 일이든 사랑이든 가끔 잃는다. “살아온 얘기를, 더군다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내력을 통해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있게 됐는지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경우도” 가끔 있다. 우리 안의 고통과 절망에 대해서도.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좀 더 알게 되기도 한다. 작가는 “우리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에티엔이라면 본분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은, 신경 쇠약의 완치와 동의어이다”라고 했다.
“피에르 카제나브는 암 환자 치료의 목적이 바로 이 해묵은 고통을 발견하고 인식하는 데 있다고, 최소한 그 고통만은 완전히 치유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물론 환자가 죽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환자들의 병은 고쳐 놓고 정작 죽음은 막지 못한다고 의사들을 비웃었던 몰리에르와, 온전히 살아 있는 상태로 죽음을 맞는 은총을 허락해 달라고 신에게 빌었던 영국의 위대한 정신분석가 위니콧 사이에서, 피에르 카제나브는 명백히 위니콧의 편에 서 있다. 카제나브에게 환자란 자신의 병을 우연한 참변이 아니라 자신만의 사적인 진실로, 자기 역사의 어두운 결과물로, 자신이 겪은 불행과 삶에 대한 당혹감의 마지막 표현으로 인식하는 사람이다. 이런 환자(본인도 이런 환자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피에르 카제나브는 말한다)는, 유아기의 나르시시즘 형성 과정에서 틈이 발생한 사람이다. 인성의 원초적 핵에 깊은 균열이 생긴 사람인 것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수시로 허공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지지대에, 그것도 아주 튼튼한 지지대에 의지하고, 단단한 땅에 발을 붙이고서 확신에 찬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첫 번째 범주의 사람들은 평생 현기증, 불안,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에 시달린다. 이런 유아기적 병은 성인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슬그머니 진행되다가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울증의 형태로 나타나고, 결국에는 암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암이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고, 낯설지 않다. 암이 바로 자기 자신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일평생 두려워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이런 비극을 경험하고도, 당연히, 잊고 살았던 사람들은 불치병을 통고받는 순간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현재의 비극이 과거의 비극까지 되살려 결국 원인을 알 수 없는 극단적인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 나타나는 공황 상태를 피에르 카제나브는 한 번 존재해 보지도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사형 선고를 받은, 자아 깊숙한 곳에 있는 은밀한 존재의, 절망에 찬 소스라침이라고 분석했다. 존재한다는 느낌을 항상 갖고 살던 이들에게도 죽음의 통고는 슬프고, 잔인하고, 부당하다. 하지만 이들은 죽음을 섭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내면 깊숙이, 늘 실제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느낌으로 살아온 이들은 어떨까? 카제나브는 이들에게 병을, 임박한 죽음까지도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그는 아리송하면서도 가슴 미어지는 셀린의 글을 인용한다. <우리가 인생을 통해 찾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른다. 이것뿐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는 한량없는 슬픔.>”
쥘리에트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면서 병은 외부침입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은유적으로 회피할 것도 아니며 이성과 감성을 총동원해 자신을 찾는 또 하나의 과정임을. 우리는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지만 타인을 통해 이런 과정을 스스로도 깨닫고 독자에게도 잘 전달한 카레르에게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내가 죽음을 향해가는 쥘리에트이자 그걸 바라보는 에티엔과 그 모든 걸 재구성하는 카레르인 듯했던 동시 경험을 오래 기억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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