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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모시는사람들) 성경의 외경중의 하나인 도마복음서를 이토록 정밀하게 재해석한 책을 읽게 되어 호기심과 기대감이 교차하였다. 정경인 성경에 비해 너무나도 혁명적이고 새로운 해석이 많아서 쉽게 읽을 수 없어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글 사이에 멈추어 서서 곱씹아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 많았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이 교조적이거나 도그마적이 아니라 처음부터 생명이었다는 사실이 이 책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요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들은 생명을 뒷전으로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진리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도마복음에서 대한 오해와 현학적인 잘못된 해석에 대해 명료한 일침을 놓으면서 저자 자신이 그동안 깨달은 바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도마복음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바로 잡아 이 책이 신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무엇보다 도올 김용옥 교수의 해박한 지식으로 풀어내고 번역한 도마 복음서에 대한 그의 공적은 분명히 인정하지만 도마복음서의 본질과 의미를 그의 철학적, 학구적 사고의 틀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부분을 비평한 여러 대목들은 독자들에게 바른 판단력을 일깨워 주어 도마복음서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도올의 고질병적인 현학적 태도는 예수님의 복음 사상의 본질을 엉뚱하게도 노자와 공자와 부처의 사상과 뒤섞어 놓아, 본말을 전도해 버린 부분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일침을 가하고 있어 도마복음서를 해석한 학자들의 견해들을 통전적으로 비교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서 해설서 역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두루뭉술한 글이 되어 버려 중화요리 중에 짬짜면의 성질로 추락시킨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분이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라 예수님의 어록 하나 하나가 분명한 중심점이 있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고 비평하고 있다. 도마를 통하여 거듭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는 하늘 아버지의 생명으로부터 진정한 평화와 안식을 얻고 진리를 발견하여 삶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 삶을 올곧게 살아 가는 길에 안내서로서 저자는 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은 무한의식과 합일한 채 유한 세계를 살아가는 축복받은 존재들이다. 그런 축복 받은 고귀한 생명의 선물을 발견하고 그 선물을 생명원리에 맞도록 살아내는 것이 그분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닐까? 나 예수의 참 진리는 장차 교회 밖에서 발견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혹시 예수님이 오늘의 한국 기독교회의 운명을 예견하고 깨우치는 도마를 통한 예언이 아닌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소름끼치도록 정확한 예언!! 무지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그 말씀을 무시하고 무지속에서 신앙을 유지하고 무지속에서 대물림하여 급기야 함께 생명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떠나 있는 현실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절규로 들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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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관심있게 본 것은 단순히 에세이식의 기독교 서적도 아닌, 신학자가 아닌 저자가 복음서를 해설했다는 점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일단 신학자들의 구구절절한 주석을 갖다 대며 설명하는 일반 연구서같지 않아서 읽는 것이 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 너무 저자의 논리와 생각이 막힘없이, 거칠것 없이 펼쳐짐에 글 속에서 저자의 당당함이 왠지 아주 조금 당황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교회를 오래 다닌 기독교인인 내가 읽기에 이 책의 예수 어록의 설명은 그간 배우고 깨닫던 바와 일치하는 면이 많아서인지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정통파라 자처하는 어떠한 교단에서는 매우 납득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말하는 생명사상이 온전히 믿음의 눈으로 볼수 있을지는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신학적 지식이나 더구나 다양한 학식의 저자와 같은
도마복음--- 이것에 대한 질문과 의문, 해석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고 그에 대한 다양한 소리가 많이 있다. 아마도 다빈치코드 영화가 흥행한 후에 세상에, 아니 우리나라에 대중적으로 알려졌을 것 같다. 그래서 도마복음서에 더 관심을 갖고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개적으로 이 책을 소개할 때 도올 김용옥 선생을 정면 비판한 것은 알고 있지만 첫장부터 매우 노골적? 아니 전투적으로 싸움을 걸듯 그의 해설을 반박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데 있어 방해되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그의 해설이 타당치 않다고, 재해석의 필요로 이 책을 지필했을지 모르겠으나 이 책을 읽는 제3자의 독자 입장에서는 그 관계에 흥미를 갖고 있는 소수의 사람만 즐겁게 읽을 수 있단 말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저자는 말한다. 누구나 예수를 안다지만 아무도 진짜 예수를 모른다고. 그러나 인간 예수로 바라보는 저자 역시 진짜 예수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믿음이란 지식으로 100%로 파헤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을 세상의 학문과 동서양의 사상으로 온전히 풀어서 이것이 진실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독교 교단에 따라 복음의 가르침이 어느정도 다름(그것을 이단이나 배척의 대상이 아닌 진보나 보수로 보는 시각에서)을 인정한다면 이 책은 교양도서 쯤으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이 또한 그들 중 한 사람이 연구한 책으로 종교코너가 아닌 내게는 대주운화 코너의 문화소개로 더 와닿는다. 그러나 저자의 박식함과 그것을 펼치는 필력은 책을 읽는 내내 종이로 만들어도 아깝지 않은 책이란....재미있게 읽혔다. 또한 잘 만들어진 내용을 떠나 책 본모양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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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이렇게 말햇다 박세당 지음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아니다. 작가도 초중고까지는 다니고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예수와의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작가소개에 힘을 얻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꼭 예수쟁이 들만 읽는 책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비하하는 발언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일단 안정장치로 뒷장에 "이 책을 읽지 않으셔도 좋스니다" 문구에 손을 언고서야 일기 시작하는건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도마복음 해설이란것은 뭘까라는 의문부터 시작된다. 내입장에서는 성경에서만 쓰는 독특한 언어 세계가 너무 버거웠다. 신성, 성령, 임재, 순리, 구약, 구원, 사탄, 회개등등 도마복음이란것은 예수의 어록덩어리를 말한다고 했다. 그 시대상황으로는 파격적이고 내용이 난해한 내용이 많다고 나온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나라는 장소가 아니라 깨달음이다. 3장 너희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하지마라 6장 현명한 자들은 이뜻을 알아차릴것이다 8장 이 세개의 장이 나에게 가장 와 닿았다. 구구절절히 설명하자만 끝이 없다. 읽어보라 너무 어렵지않다. 저자가 처음 도마복음을 읽었을 때 읽는 순간 이해가 척척척 됐다고 했다. 난 100% 이해했다고 할수는 없다 하지만 읽어서 이해되는 것만 이해해도 성공했다고 볼수 있을 정도 있다. 하나 하나 깨달음이니 말이다.
내가 교회에 안가는 핑계를 대자면 어려서 교회를 갔다 온후 아빠에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고 그러자 아빠는 나에게 나가라고 했다. 너의 아버지 찾아서 가라고 말이다. 아주 극단적으로 표현을 하신거지만 그 기억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인 난 내가 가진 못하지만 아이게게는 가라고 한다. 경험해봐서 자기가 직접 선택하라고 말이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성령, 나라 그리고 생명과 같은 말이다. 즉 생명사상을 뜻하는 것이라고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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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박세당 지음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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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어보았으나 실제로 끝까지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靈知주의의 숨겨진 복음서라는 것만을 어렴풋이 알 뿐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더욱 이책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과연 듣던 대로 그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철학서적에 흔하게 나오는 내용이긴 하나 권위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종교의 수장인 예수님의 입에서 이미 2천년전에 저런 얘기가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하느님 나라가 바로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것과, 누구든지 예수님의 깨달음을 얻으면 하느님나라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진일보한 종교와 신앙적 방향을 제시해주는 느낌이다.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는 기독교 교리에 있어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새술은 새부대에!라는 말로 유대교와의 단절을 선언했으며, 여호와와도 선을 긋고 있다는 사실. 예수님이 말하는 하느님은 생명의 근원이자 뿌리인 하나의 빛으로 그 개념이 모호한 면이 없지 않아있지만, 애초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느님은 종합적, 포괄적인인 개념이다. 다소 아쉬운 점은 저자도 처음부터 밝혔듯이 도올 선생의 해설이 맘에 안들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것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도올 선생의 비판이 많다는 것이 읽는 내내 불편하여 나중에는 도올 선생의 대목에서는 건너뛰게 되었다. 비판보다는 무관심이 더욱 가혹한 비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마복음을 읽고서 좀 더 깊이 있는 종교적 맘 자세를 갖게 되길 기대한다. 무조건적인 믿음이 천당을 보장한다는 원초적인 수준이 아닌, 내 스스로 현세에서 천당의 실현을 꿈꾸는 좀 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신앙심을 갖게 되길 나와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에게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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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갖는 본질적인 의미가 있듯, 이 책도 본질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스스로 이야기 했듯이, 청소년기에는 교회를 다녔지만 그 이후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예수와의 정신적 유대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인생 경험 끝에 생명의 본질을 체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민족의 천부경, 예수의 도마복은, 불교의 금강경 반야심경, 그리고 노장의 도덕경과 유교의 중용과 대학이 모두 하나의 궁극적인 진리인 생명사상을 설명한 경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들 종교의 경전 속에 숨어있는 생명의 비밀을 해당 종교에 온전히 되돌려줌으로써 현 사회의 모순의 해결과 도덕성의 회복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음을 깨달은 저자가 첫번째 실천으로 한 일이 바로 이 책을 저술한 것이다. 앞으로 생명의 의식으로 본 천부경과 중용/대학, 노자 도덕경 등을 차례로 해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내용자체가 전체적으로 1945년 12월경에 발결된 도마복음에 대한 강해이다보니 특별하게 내용에 대한 리뷰,저자의 견해에 대해 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느낀 점 몇가지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저자 스스로가 비난하고 있는 도올 선생의 도마복음 강해에 대해서..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부터 출발하여 내용 전체를 아우르며 줄기차게 도올의 책을 비판하고 있다. 물론 서두에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도올 선생과의 인연을 이야기 하고, 말미에 도올 선생에 대한 존경을 남겨두고, 중간에 만남을 도모했었다는 사항을 이야기하며 객관적인 듯한 뉘양스를 풍기지만 전체적으로 저자가 문제삼고 있는 부분들이 다소 비약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도올의 견해에 비난하는 태도가 실은 저자 스스로의 인지도적인 측면에서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모습으로 보여져서 아쉽다. 그냥 주장해도 될 부분을 구지 도올의 책을 비난한 이후 주장하는 듯한 전개가 도리어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주장을 약화시키는 느낌이 있었다.
2. 책의 저술의도에 대해서... 누구나 예수를 안다지만 아무도 진짜 예수를 모른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책 제목과 책을 소개하는 슬로건이다. 책의 선전표지에서도 내면의 신성한 성령에 대해 이야기 하며,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저자는 스스로가 읽고, 해석한 부분을 '정해'라하여 요약하였다. 중간부분은 그 정해를 돕기위한 내용들인 듯 싶다. 아쉬운 것은 다소 주관적인 지혜/깨달음을 가지고 '정해'라는 방점을 찍은 것은 아닌지 아쉽다. 기존의 해석들은 틀렸다. 내 해석이 맞다. 이것이 바로 정확한 해석이다.. 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가슴에 와닿지않아 아쉽다.
물론 전체적으로 저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해당종교(기독교)에 돌려주기 위해 선한 의도로 쓴 것이라고...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들이 이를 선물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다분히 주관적인 해석을 그들이 '정해'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참고하게 될지, 아니면 거부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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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이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왜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이 책을 쓰고 내가 그 책을 읽고 있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책이 너무 시끄럽다. 도올 김용옥을 욕하는 소리가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해설 없는 선언이나 감탄 아니면 엉뚱한 경험담들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자는 내가 무지 몽매한 골수 기독교인이라서 도마복음의 파격적인 내용을 수용하지 못하고 자기의 참다운 해설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단지 요란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도마복음에 별 대단한 내용이 없어서 놀랐고 그 도마복음을 두고 하는 해설이라는 것이 너무 유치해서 화가 좀 났을 뿐이다. 저자는 예수를 “자신의 내면에서 신성을 발견”한 사람, “전체 생명과 합일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 사람이며 “여호와와 무관할 뿐 아니라 그보다 비할 수 없이 높은 존재”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예수를 대단히 높이 평가하는 것 같으나 한 마디로 말하면 크게 깨달은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 하더라도 깨달음만으로 신과 같은 존재 또는 신이 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예수가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깨달음을 통해 위대한 스승이 된 인물 정도라면 예수의 가르침이 아무리 혁명적인 것이었다고 해도 2천년이나 지난 지금 그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며 그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가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도마복음이라는 것을 두고 서로 자기 해설이 참되다고 논쟁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예수는 중풍병자에게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특별한 분으로 여기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분이었다면 그가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의 말씀일 때 그 말씀을 연구하고 해설할 필요가 있지, 단지 그가 자기 나름대로 깨달은 바를 말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가 정확히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 내가 알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도마복음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류의 말밖에 없는 책이다. 4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사람들이 듣고 놀랐던 것처럼 당시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같지 않고 권위가 있는 새로운 말씀이었지만 도마복음의 내용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영지주의자들이 예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자기 생각을 풀어놓은 것에 불과해 보인다. 그 정도의 책이라면 다른 성경에서 말을 좀 따오고 뜻이 있는 듯 없는 듯한 말을 덧붙여서 나라도 만들 수 있겠다. “갈매기의 꿈” 같이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상 아무 뜻도 없는 책들을 후세에 도올이나 박세당 같은 사람들이 도덕경이나 논어를 끌어다가 해설한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