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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골, 부디 건승하시라!!
"조약골, 부디 건승하시라!!" 내용보기
조약골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그에 대한 장벽이 사라졌다. 자신을 스스로 약골이라 명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아주 드물다. 세상과 사회와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거나 선전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강한 사람이 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강골이 되기를 원한다. 특히 부모와 주위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초등 학교 때 조금이라도 공부를 잘 할라치면 난리가
"조약골, 부디 건승하시라!!" 내용보기

조약골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그에 대한 장벽이 사라졌다. 자신을 스스로 약골이라 명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아주 드물다. 세상과 사회와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거나 선전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강한 사람이 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강골이 되기를 원한다. 특히 부모와 주위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초등 학교 때 조금이라도 공부를 잘 할라치면 난리가 난다. 영재교육을 시켜야 된다는 둥, 서울의 유명 대학교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둥. 약골이라 이름 붙이게 된 이유는 책에 자세하게 나온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도 단연 스스로 약골이라 인정한 이유가 마음에 든다. 그의 서류상 이름은 다른 것이겠지만 본명, 예명 따위의 구별은 그에게 무의미하다. 그는 자타공인 아나키스트니까.

 

아나키스트 조약골의 이름을 처음 들어 보았다. 얇은 책에서 무슨 대단한 내용일 담겼을까 싶었다. 무조건 두꺼운 책에 먼저 눈이 가는 저급한 독서 편향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나는 이런 좋은 책을 무작정 무관심하기만 할 것이다. 이 책은 도서출판 텍스트에서 나온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17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아나키스트 「운동권 셀레브리티」다.

고은 시인의 연작 시집 제목이기도 한 만인보 시리즈는 말 그대로 ‘만인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아나키스트 조약골 말고도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사람 구경은 재미있다. 사람의 삶에 대한 기록이라니. 이것도 충분히 재미있다.

 

 

“나는 아나키를 지향하면서 삶의 모든 측면에서 철저하게 ‘비국가화’를 실천하려 노력했다. 개인 삶에서 국가의 영역에 관련된 부분을 모두 잘라 내거나 떼어 내는 작업이었다.” (p.81)

 

조약골이 아나키를 지향하게 된 계기는 군대의 경험이다. 이후 그는 철저하게 아나키를 지향한다. 무정부주의 보다 ‘비국가화’에 가까운 아나키즘이다. 실제 우리 삶은 강력하게 국가에 예속되었음에도 느슨하게 인식되어 있어 외국에 나갈 때에나 ‘아~ 내 국가가 있었지’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프로야구 경기 시작 전 반드시 하는 국민의례는 형식적 행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가를 벗어날 수 없다. 매달 꼬박꼬박 내 통장에서 세금을 떼어 가고 조금이라도 연체되면 난리가 난다. 금융기관이나 행정기관에서 요구하는 서류들은 많기도 하다. 나는 주민이며, 동민이며, 구민이며, 시민이며, 도민이며, 국민이다. 나를 둘러싼 국가의 영역을 쉽게 떼어 낼 수 없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살 듯 나도 있는 듯 없는 듯 살면 그게 제일 편하다. 조약골처럼 “진짜 본명이세요?”라는 수백 번쯤 들었을 질문 따위 받지 않아도 된다.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조약골과 같은 아나키스트는 별종이다. “뭘 그렇게 대단하게 산다고 그래?”, “아나키스트라고 해서 물 안 쓰고 전기 안 쓸 수 있나? 휴대폰 안 쓸 수 있나? 국가를 부정할 수 없잖아!” 뭐, 다들 맞는 말이다. 그리고 다들 틀린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조약골이 현재 아나키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동력을 들어 보자.

 

 

“저는 재미있게 살고 있어요. ‘저 사람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면서 사는 사람 일거다’이런 오해도 하는 것 같아요. 박해를 받지만 그런 것을 어떤 믿음으로 승화시키면서 사는 종교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듯해요. 그런데 사실 저는 그런 것과 전혀 관련이 없어요. 재미있게 살려고 하니까, 계속 이렇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활동하는 게 분명히 고통스러운 부분들도 있지만, 저한테는 이런 게 큰 해방이거든요.” (p.226)

 

조약골은 도움이 필요하지만 국가 권력이라는 괴물과 대치한 곳에는 달려 들어갔다. 용산에도 평택에도 이주 노동자들 곁에도 조약골이 있었다. 몇 번 들락거리며 얼굴 비추는 것이 아니라 평택에서도 용산에서도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100일, 200일 처음에는 피아식별을 하던 주민들도 500일, 600일이 지나자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평택에서는 물도 없고 전기도 없이 경찰이 두른 철조망 안에 포위된 채 폐가에서 살았다. 또한 아나키로 살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이 행복의 기준 혹은 인생의 과제로 여기는 결혼과 아이양육 등을 어느 순간 포기했다. 곡을 만드는 가수지만 저작권 따위는 개나 줘버렸다. 모두가 공감하고 모두가 나누는 것에 희망을 걸었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아요? 재미있어요. 이런 게 해방이에요. 그라고 왜 힘들지 않을까. 아직 권위주의 잔재로 가득한 대한민국에서 아나키를 지향하며 산다는 것은 기꺼이 왕따가 되겠다는 의미다. 꼴통보수들에게도 꼴통진보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생을 결정한 것이다. 조약골 자신도 인정한다. 분명히 고통스럽다고.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해방이라고 한다. 해방.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를 벗어던졌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아니키로의 전화 과정도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그건 지금도 이뤄지고 있으며, 아마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p.73)

“아나키스트들이 보기에, 지금까지 한국 사회 운동은 분명히 엄숙하고 비장하며 지나치게 대의명분에 치중하고 있었다. 물론 지난 시기의 사회 운동엔 분노의 정서와 응축된 힘이 있었다.” (p.99)

 

조약골은 자신의 아나키적 지향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숙제임을 분명히 한다. 이런 삶의 자세는 쉽게 가지기 힘든 것이다. 깊은 성찰과 내면의 의미화가 선행되어야 할 수 있는 생각이다. 더군다나 조약골은 생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늘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받는 물리적·정신적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단단한 내면화가 필요하다. 한국의 사회 운동, 특히 진보진영의 운동은 비장했다. 지금도 운동권의 민중가요를 들으면 너무 촌스럽다. 촌스러워도 너무 촌스럽다. 70,80년대 부르던 노래와 멜로디 그대로라면 너무 구리다. 그리고 폐쇄적이고 권위적이었다. 서울대 나온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어이없는 경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진보 진영 내에서도 위계와 서열이 분명히 존재한 것이다. 조약골의 지적대로 그들이 폭압적인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대항한 충절은 인정하지만 바뀐 시대에도 여전히 수십 년 전의 패러다임만 주장한다면 진보는 더 이상 설 곳이 없을 것은 뻔하다.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를 거치며 원내에까지 진출한 진보 정당이 지금은 완전히 공중 분해된 사례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들은 사회가 변하고 정치가 변하는 것에 골몰했을 뿐 자신들이 변해야 한다는 당위는 인정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책에서는 진보 진영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저런 걸 무슨 운동이라고!! 쟤 어느 대학 나왔어?”

 

 

“잡민이라고 하면, 피억압자들이 멋대로 모여들고 흩어지고 다시 순식간에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느껴져서 좋았다.” (p.126)

 

조약골은 애써 설명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도 참 마음에 든다. 비장하게 자신이 모든 진보의 가치를 대변하는 양 절절하게 가래 끓는 소리를 하는 이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는 자신을 잡민이라 지칭한다. 국민도, 시민도, 주민도 아닌 잡민. 이름을 약골로 지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잡민들이 서로 모이는 것을 추구한다. 그것에 가치를 둔다.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상생의 가치다. ‘나는 약골입니다. 나는 잡민입니다.’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다. 많은 사회서적을 읽었지만 잡민이라는 개념은 처음이다. 새롭고 신선하다. 대규모 군중집회에서도 그 촌스러운 깃발 좀 치우고 특유의 악센트로 진행하는 사회자의 멘트도 좀 없애고 재미가 있어서, 호기심이 생겨서, 즐기기 위해서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무대에 올라와 자신을 피력하고 외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선도하리라. 우매한 민주이여 나를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이제는 촌스럽다. 진짜 구리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논란에 대한 집회가 뜸해진 것도 주최를 하고 있는 시국회의의 촌스러움과 권위의식 때문임을 감안하면 조약골의 잡민 개념은 반갑다. 서로 부담을 떠안기지 않고 서로 어울리는 것이다. 모이고 싶으면 모였다가 흩어지고 싶으면 흩어지는 것. 영웅의 선도가 아니라 모두가 같이 어깨동무 할 수 있는 것. 이것은 단지 아나키스트의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외국의 아나키스트가 보면 조약골을 유연한 아나키스트로 분류될 것이다. 왜냐면 그는 국가의 영향에 서 최대한 벗어나려 하면서도 국가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일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마다 모두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힘을 모으지만, 생각도 다르고 방식도 다른데, 이것을 그냥 모조리 섞어 놓을 수도 없어. 짬뽕도 좋지만,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어울려야 해.” (p.192)

 

억지로 섞는 것에도 반대한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인데 어떻게 기계적으로 섞을 수 있나. 기존 진보 진영은 그랬었던 것 같다. 대의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그 촌스러움. 그 촌스러움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런데 아직도 왜 자신들의 입지가 이렇게 좁아졌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전혀 모른다. 그저 무지몽매한 대중이 자신들의 큰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제는 기존의 촌스러운 방식들로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없다. 차라리 조약골의 제안처럼 너도 나도 잡민이 되어 때에 따라 상황에 맞춰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시대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다.

 

 

“일본에는 가난뱅이들, 잡민들, 노숙인들, 최하층 룸펜들, 무일푼 하류인생들이 나름대로 사회 운동을 해 나가는 흐름이 존재했다. 한국에는 그런 흐름이 별로 없다. 아마추어들이나 루저들, 잉여들, 프리터(freeter)들은 한국에서 진보 운동에서조차 설 자리가 없다.” (p.131)

 

계속해서 말하지만 한국의 진보 운동은 너무 멋을 생각한다. 멋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이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학부 시절부터 어떻게 운동을 해왔고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해왔으면 국가권력에 압제를 받아 왔는지, 어떤 대학에서 어떤 라인을 타고 운동을 해왔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전향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 가 보다. 그들에게는 애초에 아마추어, 루저들, 잉여들, 프리터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단순히 보수우익 정치진영에 대해서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에 대해서도 가감 없는 비판을 가해야 한다.

 

 

“삶은 계속되고 우리들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Life goes on, we are everywhere)” (p.80)

 

조약골과 같은 아나키스트들이 많아질 수 있을까? 한국의 정치·사회·문화적 토양에서 그 어떤 이념 지향보다 자유롭고 가치중립적인 아나키즘이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힘든 일이라 본다. 구별 짓는 것을 좋아하고 편을 가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은 아나키즘이 뿌리 내리고 번식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조약골과 같은 이들이 더욱 알려지고 그의 삶의 방향과 형태가 소개되어야 한다. 아나키, 아나키스트란 단어 자체가 생소하고 낯선 한국에서 조약골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나는 곧바로 그를 응원하는 사람이 되었다.

조약골, 부디 건승하시라!!

 

 

 



l****h 2013.12.09. 신고 공감 5 댓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