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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배우 한예슬씨가 촬영장을 무단 이탈한 사건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제작진은 '시청자와의 약속'을 어겼다며 광분했고 그걸 본 나는 시큰둥했다. '나는 그 사람들과 약속한 적이 없다.' 방송사와도 약속을 한 적이 없다. 자기네들 마음 대로 편성을 하고 사정이 생기면 결방도 하고 인기 많으면 연장하고 인기 없으면 조기종영도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해놓고 나와 약속을 했단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약속을 한적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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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사이에 또 한 무더기의 책들이 집에 배달되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한번, 또 어떤 날은 하루에 3번까지 연달아 배달되는 택배상자들을 보며 우리 엄마는 이렇게 중얼거리셨다. “쯧쯧, 추석 명절이 코앞인데 선물상자는 없고 어째 너한테는 맨 책만 오냐?”라고. 그러나 나는 그런 엄마의 말씀쯤은 한 귀로 휘릭~ 흘려 버린지 이미 오래고 도착 한 책을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다. 서평도서며 지인들의 선물, 구매한 책으로 인해 근래 7개월간은 책을 들여놓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훨씬 추월하였고 이미 내 방구석 곳곳에는 수많은 책들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며 가지런히 놓여있건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책들을 뒤로 한 채 또 다른 신간을 장바구니에 넣고 있는 나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 나 스스로도 내가 책을 순순한 마음으로 즐기는가? 아니면 책이라는 ‘대상’에 집착하는 것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몇 만원 짜리 화장품은 몇 번이고 고민을 하다가 사면서 책 5권만 사도 5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걸 아무렇지 않아하고 있으니 이런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게코스키가 꽤 오랜 시간 엄청난 책들을 사 모았다가 이혼과 동시에 아내의 소유권 주장으로 자신의 분신과 같은 책들과 이별하게 되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가 이내 책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유를 깨닫게 되었단다. 이 부분에서 나는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었는데 이사를 갈 때마다 나는 우울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책을 정리해야만 했었다. 그때마다 몇 박스를 처분하고는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책들이 눈 앞에서 사라진 순간 한 편으로는 어떤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시원함을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자의 솔직담백한 고백 때문에 나는 곧 이 책에 몰입되어 책을 읽어나갔는데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과 책을 엮어가는 스토리텔링에도 굉장한 능력이 있어 보였다. 뭔가 있어 보이는 문학적 용어들을 엮어 전문적인 책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읽는데 부담스럽지 않았고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라는 동안의 개인적인 기억의 재구성 속에서 그가 언급하는 책들이 등장하는 순간은 마치 기다리던 애인이 짠~하고 나타나는 것 같은 기대감마저 갖게 할 정도 였으니 말이다. 그는 지금의 자신이 형성될 수 있었던 인상적이고도 중요한 책들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묘한 경험을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 기억들이 때로는 엉뚱하고 또 때로는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기도 하여 오히려 이런 점들이 그의 이야기가 인간적이고도 사실적이라는 매력이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우리는 아마 단 한 권의 책이 우리의 순간 순간에 얼마나 중요하고 멋진 선택과 결정에 기여하는지 직접적으로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날 문득 읽었던 시의 한 문장에서 혹은 어떤 여행 에세이의 풍경 사진 속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또 한 줄의 문구에 공감하면서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기도 한다. 그렇게 책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크고 작은 영향력을 일정 부분 행사하며 나라는 존재를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새삼 생각해본다. 지금도 책상 한 켠에서 수북히 쌓인 책들은 나의 손길을 기다리건만 책상 벽에 붙어있는 나의 위시리스트에는 점점 많은 책의 이름과 저자들이 추가되고 있으니 책은 그렇게 내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가 아닌가 싶다. 언젠가는 이 책의 저자처럼 내 인생을 재구성할 몇 권의 책들을 글로 풀어쓰고 싶다는 뜬금없는 꿈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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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을 고를때는 우선 제목을 보고 그다음에는 그 책을 쓴 작가를 보게 된다. 제목에서 책벌레의 우상이라고 해서 자신이 읽은 책이야기를 하겠구나 싶었고 좋은 책을 소개해줄 것 같았다. 또, 그의 소개가 참 마음에 들었다.
릭 게코스키 Rick Gekoski, 세계 최고의 북맨bookman. 말 그대로 문인이자 학자 겸 서적상, 독서인이다. “내가 읽은 책이 나를 만든다”는 명제를 이 재기 넘치는 독서회고록은 유감없이 입증한다 ‘독서회고록bibliomemoir'이란 용어도 거의 게코스키가 만든 말이자 장르인데, 읽기와 삶/ 삶과 읽기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형식이 없다. 게코스키는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7년까지 위릭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이후 희귀본 도서와 원고를 사고파는 서적상으로 전업, 이 분야에서도 성공하고 출판과 방송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은책으로는 <돌킨의 가운Tolkien's Gown>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로 변역 소개), <스테잉 업Staying Up> 등이 있다.
‘읽기’는 내게 언제나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먹는 것과 숨쉬는 것을 멈출 수 없듯이 읽기를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한 그처럼 나도 출퇴근시 지하철속에서 책을 읽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시야속 사람들과 좁은 공간에 갇힌 듯한 답답함이 짓누를 때, 그 탈출구로 통하는 책, 책을 읽으므로써 그 분주함과 따분함을 벗어나 숲으로 파리로 떠나다보면 전철을 내릴때까지 나는 파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기분이 된다. 정말 책으로의 여행은 삶에 있어서 상상력을 자극하고 머릿속에 휴식을 내어준다.
한편, 이삿집에서 가장 힘든 고객은 '책이 많은집'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사갈 때 짐이 많이 되는 것은 책이다. 게다가 좀벌레가 생기기도 하고 눅눅한 종이로 변질되어 보관하기가 힘든, 마치 키우기 까다로운 난(蘭)같다. 가끔씩 빈틈없이 채워져 더이상 너의 뇌에 들어갈 수 없다는 듯이 채워진 책장과 바닥에 있는 책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읽고 싶은 책은 끊임없이 늘고 있는데 예전처럼 책장의 책을 모두 읽지 못한다. 왜냐하면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 책을 일주일에 1권정도밖에 소화내지 못하고 있다. 예약판매와 신간소식에 무감각해져야 한다고 내안에서 소리치지만 아무리 책을 들고 있는 팔이 아파도 책탐이 줄어들지를 않는다.
그리고 작가들이 추천한 책이나 책속에서 많이 거론되는 책은 나온지 오래되어서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아닌 이상은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다. 좋은 책은 꼭 잘 팔리고 알려지는 것이 꼭 명예라고 볼 순 없지만 어떤 책이 나오던지 스테디셀러가 되지 못하면 온라인서점에서 품절되고 절판되어서 결국엔 오프라인서점에서도 찾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구매가 어렵고 점차 도서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런데 그 진정한 가치도 모르는 책들이 숨죽이면서 도서관 한구석에 처박혀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 시대를 넘어서 빛을 발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쉬운 책들은 세월이 갈 수록 더해가는 것 같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꺼리김없는 솔직함에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책이 번역될 수 있었다니 하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마약을 복용한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그의 독서일기가 무얼 말하는지 모르겠고, 자신의 일생이야기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속으로 입으로 읽듯이 읽어댔다. 하지만 책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아내와의 이혼에 따른 서재의 부재에따른 상실감과 딸의 크리스마스선물인 <마틸다>를 본인이 몰래 화장실에서 읽었다는 대목에서는 나는 웃기보다는 그가 정말 책만보는 바보, 간서치(看書癡)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책이 좋아서 결국, 부교수자리를 조기은퇴를 하고 더 책에 몰입할 수 있는 서적상이 되기로 한다. 이런 결정은 경제적으로 수입측면에서 봤을때는 그에게 손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일정하게 들어오는 수입을 포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의 잠재력과 사업상의 수완이 더 기대가 된다면 미래적측면으로 봤을때 그는 일찍이 프리랜서의 준비를 다져왔기때문에 후에는 수입이 역전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라는 대목에서 통쾌했다. 직장생활은 자신에게 적성이 맞지 않는 한 따분하고 지루하고 고루하고 미칠듯한 짜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미는 더더욱 찾을 수 없으니 오랫도록 이 일을 해야 한다면 그에게는 발전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런 일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다수의 대중적 측면에서 그를 위로하지만 오히려 그는 그들을 위로한다. 그들이 더 용기있는 자들이라고 말하면서. 저자의 선택에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로 학자금대출등 나의 가계를 생각하면 저자와 같은 선택은 꿈꾸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고용이 안정되지 못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대에서 직장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직장밖의 삶을 준비하지 않는 한 길어진 수명에서 퇴직후 지속적인 수입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나도 저자와 같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이를 불문하고 도전하라고 소리치고 싶다. 나또한 책을 좋아하는 직장인으로서 나만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 시작한 블로그처럼 무엇인가 자신의 진정한 재미를 찾아서 조그만한 시작이라고 시작하라고 모든 직장인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책은 처음에 '뭐 이런 책이 다있어!!!' 하면서도 읽게 되는 매력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책벌레들은 읽고 싶어질 정도로 너무나 솔직하고 통쾌하고 비판적이면서도 공감가는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하는 그런 책이라 몇년 후에 그가 추천한 책을 모조리 읽고 나서 다시한번 더 읽고 싶은 책이었다.
< 공감가는 글귀 >
그래도 ‘읽기’는 중요하다. ‘읽기’는 내게 언제나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먹는 것과 숨쉬는 것을 멈출 수 없듯이 읽기를 그만둘 수 없다. 버스를 타거나 화장실에 있을 때, 혹은 치과에서 순서를 기다릴 때처럼 아주 짧은 시간 혼자 있게 될 때 뭔가 읽을 것이 없으면 마음이 정말 편치 않다. 지갑을 꺼내 신용카드라도 읽는다. (그중에는 숫자7이 다섯 개나 되는 카드도 있다!) 나는 뭔가 읽지 않으면 불안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야말로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인 셈이다. p22
나는 내 내면에서 차츰차츰 드러나는 기묘한 감정이 안도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똥 덩어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이 짐인 것만은 분명했다. 사방에 선반이 달려 있고 책에 둘러싸여 있거나 책으로 경계가 나뉜 공간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유롭게 느껴졌다. 엄청난 양의 책은 공기 자체를 빨아들이는 것 같다. 책은 뭔가 호전적으면서 집요하게 요구하는 면이 있다. “나를 바!나를 읽어! 나를 기억해! 나를 참조해 !나를 인용해! 내 먼지를 떨어! 내 배치 좀 바꿔!” 아마도 그래서 도서관에서 일을 할 때면 늘 가슴이 조이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대학 친구들은 옥스퍼드 보들리 도서관의 듀크 험프리 독서실, 예일의 베이네크 도서관, 텍사스 대학의 랜섬센터, 대영도서관의 저 유서 깊은 독서실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긴다. 나 역시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탈출을 꿈꾸었다. 읽지 않은 책, 모르는 책이 너무 많았으며, 책을 쓰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라는 느낌이 너무도 날카롭게 다가왔다. 대영도서관에 있는 수백만 권의 책 무더기를 볼 때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인간이 추구한 지식의 범위와 그 결의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어리석음과 허영심 때문이다. 그 자신이 도서관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그 독특한 열정을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자신의 시대를 경이로 채운 수많은 작가들, 동시대인 훌륭하다고 칭송받은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오늘날 더 이상 보이지 않거나 발길이 뜸한 도서관의 한구석에 처박혀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기만당한 희망과 불확실한 명예를 보여 줄 뿐이다. p 20~21
내가 조기 은퇴를 발표하자 인정 많은 한 대학 동료가 내 방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문을 닫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정말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네. 지금 자네가 하려는 일말일세." 나는 그가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알았다. 내게는 어린아이들이 둘이나 딸려 있고, 시간제 서적상으로 버는 돈은 연간5천파운드를 약간 넘어서, 대충 말해서 내 부교수 월급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종신재직권이 보장하는 안정성도 포기하는 것이었다. 이곳을 떠난다는 것은 분명 모험이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적어도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따분해지고 나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없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된 환경에서 벗어나게 될 터였다. “영문학과에서 앞으로 30년을 보낼 생각을 하면 이곳에 남아 있는 자네야말로 용감한 거라네.” 나는 그렇게 대꾸해 주었다. - p297~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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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텍스트 중독, 한마디로 게코스키같은 사람을 정의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읽기에 중독된 사람은 때때로 읽기의 지겨움을 토로할 때도 있으나, 게코스키처럼 책에 대한 혐오와 해방을 꿈꾸는 시절을 겪기도 하겠으나, 살아있는 동안 결코 읽는다는 행위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으리라고 장담아닌 장담을 해 본다. 그리하여 게코스키는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빛이 사라지고 밤이 드리워질 때까지, 더는 책을 읽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책을 읽게 되리라.' 한때, 인터넷 서점에서 사용한 내 필명이 바로 그것이었다. '텍스트중독'.
2 게코스키는 책을 시작하며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책 수집가는 아니지만 탐욕스럽게 책을 구해 들였다.' 이는 바로 나의 고백과도 같다. 나는 책 수집가는 아니지만 탐욕스럽게 책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는다. 그것이 집착임을 분명 알지만, 결코 놓고 싶지않은, 거기에 약간의 자만심까지 보태어진, 탐욕임에도 그것조차 부끄럽게 여기지않는 원초적인 책 욕심을 갖은 나이기에 <게코스키의 독서편력> 또한 탐욕스럽게 집어들었다. 옮긴이는 후기에, 책을 다룬 책은 TV프로그램이 나오는 안내서나 열차 시간표 같은 기분이 들어 망설이게 된다라고 썼지만, 나는 바로 그점 때문에 이런 종류의 책을 고르곤 한다. 수집광에게는 안내서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러나 분명하게 밝히고 싶은 것은, 나의 책 욕심은 결코 읽은 척하기 위한 허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서재를 메우고 있는 책들은 언제나 늘 읽고 있는 책의 목록이며, 언제고 읽고 싶어질 때 읽기 위한 준비이며, 언젠가는 읽게 될 책의 모음임을.
<게코스키의 독서편력>은 한편 한편 묶인 독서일기는 아니며, 서평은 더더욱 아니다. 게코스키라는 한 개인의 60년 인생을 관통한 책들 이야기라고 할까. 예를 들면 게코스키는 아버지로 부터 듣는 닥터수스로 유아기를 보낸다. 닥터수스는 어느날 훌쩍,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엘리엇으로, 예이츠로, 데리다로, 그리고 다시 로알드 달의 <마틸다>로, <섬머힐>로, 프로이트로, <양들의 침묵>으로 이어지며 게코스키 인생의 순간순간을 장식한다. 게코스키에게 책을 빼놓은 인생은 설명될 수 없을 정도로 책은 게코스키의 인생 전반을 장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코스키가 읽지 않은 책, 모르는 책은 수만, 수 억 권이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거꾸로, 셀 수 없이 많은 책들 중 게코스키에게 선택된 책, 게코스키가 읽은 책들은 고스란히 게코스키라는 인물이 되었다. 한 사람은 그가 읽은 것들로 이루어진다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게코스키는 자신의 딸 애나를 통해 독서가 유익하다라고 여겨졌던 시절을 과거형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나, 내 생각에 독서는 지금도 여전히 유익하다. 책에서 만나는 강렬한 인물과, 감정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지만(애나가 범죄소설에 심취해 범죄 심리학자가 되고자 한 것처럼) 그것은 책이 주는 위험성이라기 보다는 유익성이라고 흔히 알려진 대로 나는 믿고 있다. 책의 기능은 분명 내가 되보지 못한 인물, 해보지 못한 행위의 대리적 표현일 수 있으니까. 무엇을 읽던, 읽고 있다는 것은 한 인간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읽고있는 주체가 여러가지로 미성숙한 아동이라면 읽고있는 대상에 대한 감독까지는 아닐지라도 약간의 관심쯤은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살짝 발을 빼본다.
게코스키는 첫번째 아내와 이혼했다. 이혼은 사회적인 현상으로는 아무일쯤 아닌 것으로 치부될 수 있으나, 한 개인의 역사에서는 분명 큰 사건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에서 게코스키에게 이혼이 큰 사건이 된 것은 아니다. 게코스키에게 아내 바버라와의 이혼은 곧 물질적인 현상으로서의 책들과의 이혼이 되었다. 게코스키는 아내와의 이혼을 통해 책들에 대한 집착,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책은 집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것이라는 것. 이 책을 덮고 난 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여전히 책은 무게가 있고, 부피가 있고, 냄새가 있는 물질로서 존재한다. 나에게 물질적인 중량을 덮을만큼의 내면장식이 부족한 것일 것이다. 다만 요즘 책을 읽는 방식은 바꾸었다. 책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던 습관을 노트정리로 바꾼 것인데 내가 읽고 난 후, 기증이 되었던 증여가 되었던 어쨌든 다음 사람을 위한 배려라는 생각에서다. 책은 읽은 사람을 통해 재현되며, 한 사람은 읽은 것들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신앙과도 같은 믿음이다. 오늘의 나는 지금껏 내가 읽어 온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게코스키가 그렇듯이.
부러운 것은 게코스키에게는 책을 읽어주던 아버지가 계셨다는 것. 내게도 무척 자상한 아빠가 계셨지만, 다만 그분이 나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기억은 남아있지않다. 기억이란 것이 몹시 조잡한 재구성의 산물일 뿐이라면, 이제라도 조작하고 싶다. 어쨌든, 아버지로 부터 시작된 게코스키의 독서 경험은 자신의 손자를 통해 재현될 것이다.
더이상 책을 읽을 수 없는 날이 내게 온다면 그때는 듣고 싶다. 어린날 나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던 부모님의 기억은 없지만 더이상 글을 읽을 수 없는 그런날이 온다면, 그게 내 아들이 되었든 혹은 e-book이 되었든 나는 책을 듣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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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누구도 나에게서 그 책들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그것들은 나의 내면에 들어 있고, 바로 현재의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영문학 교수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희귀본 서적상으로 활동하고 있는 릭 게코스키의 독서회고록입니다. 그가 왜 책을 읽는지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내 책이 나를 형성한 과정이다. 내 마호가니 책장을 채운 책들을 상기하고 다시 읽고 다시 만나면서 끊임없이 현재의 나 자신을 채워 나가는 것, 그렇게 생각의 맥락을 짚는 일은 재미있다. 책이 있는 서재로 들어가 내면의 독서등을 켜고 반추하는 것, 그 얼마 안되는 책을 보면서 그것들이 장식하고 있는 것이 방이 아니라 나의 자아임을 점점 또렷하게 인식하는 것 말이다. (p.23)” 라는 고백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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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게코스키. 많은 사람들이 그를 현존하는 서평가 또는 독서가 중의 최고로 꼽는다. 서평까지는 아니지만 독후감 정도는 꾸준히 쓰고 있는 블로거이자, 하루에 책을 한 장도 읽지 않고 잠드는 날이 드문 책벌레로서 그를 모른다는 게 어찌나 부끄럽던지. 서둘러 그의 책을 구입해 읽어보았다. 역시나, 책 날개에 적힌 그의 프로필 첫 문장부터 위엄이 넘쳤다. '세계 최고의 북맨(bookman). 말 그대로 문인이자 학자 겸 서적상, 독서인이다.' 책 또한 일반적인 서평집 형식이 아니라 마치 저자 자신의 자서전 같아 색달랐다. 이 같은 '독서회고록' 형식의 서평집도 게코스키가 거의 처음 시도한 장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이제껏 서평집을 여러권 읽어보았지만 비슷한 글은 보았어도 책 전체가 이런 것은 처음이었다. 괜히 최고의 서평가로 손꼽히는 게 아닌가 보다. 게코스키의 삶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미국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가정과 학교 양쪽에서 양질의 독서 교육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게 된 그는 겉보기엔 전도유망한 영문학 교수이자 학자이자 작가로서 창창한 삶을 사는 듯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아내와의 결혼 생활은 암초에 부딪치기 일쑤였고, 영문학 교수라는 직업에도 만족하지 못했으며, 영국에 사는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로도 갈등했다. 그 때마다 그를 유일하게 붙잡아주고 위로해주었던 것이 책이었다. 책이 있는 한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그가 세계 최고의 서평가, 독서가가 된 건 어쩌면 삶이 그만큼 지옥같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연애가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인간관계로 고생할 때일수록 더더욱 책을 찾게 되는 사람인지라 그의 모습을 보니 공감이 가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사람보다 책과 보낸 시간이 더 많다는 건, 그만큼 사람보다 책이 더 편하고 재미있었다는 반증일테니. 그런 그가 결국 책으로 구원받은 것은 나에게도 희망적이다. 마침내 그는 미래가 보장된 교수직을 버리고 서적상으로 변신해 얼치기 학자가 아닌 전문 독서가로서의 경력을 이어갔고, 아내와는 결국 이혼을 했지만 두 자녀와의 관계는 꾸준히 유지했으며, 새로운 사랑도 만났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해피엔딩이냐고? 모든 것이 해피엔딩일 수는 없고 나 역시 그걸 꼭 바라지도 않지만, 결국 그가 행복과 성공을 모두 거머쥐게 된 것이 단순히 책 한 권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억지 결말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에게 책은 단순히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처 내지는 최음제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학교이자 명약이었던 것이 아닐까. 책으로 삶이 바뀌는 기적을 믿는 사람으로서 릭 게코스키가 체험한 기적 역시 믿어보련다. 밑줄 그은 문장들 교육의 첫 단계는 문학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한 작가를 뜨겁게 찬미하는 일이다. 지적 사춘기를 회고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자신에게 문학의 향유 능력을 밝혀 준 어떤 작가와의 우연하고도 예기치 못한 만남이 있었음을 고백할 것이다. - T.S.엘리엇 (p.83)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나눈다고 해도 과연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는 걸까? 아마 소설을 읽을 때를 제외하면 그럴 것이다. 허구에 그토록 탐닉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의 내면세계를 파아하고 그것과 관계할 수 있는, 따라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하게 신뢰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한 삶의 형식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사이의 관계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내 아내보다도 레오폴드 블룸(조이스의 <율리시스> 주인공-옮긴이)을 더 잘 아는데, 그것은 비록 제한적인 것이긴 해도 만족스럽다. 그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고, 책 속에는 그가 품은 동기와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것은 만족스럽기는 해도 충분치는 않다. 물론 그것이 사람들이 문학보다 삶을 선호하는 이유다. 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는 것보다 덜 자극적이고 덜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pp.174-5) <스테잉 업>의 최종 원고를 읽으면서 나는 그것이 내 평생 가장 중요한 독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편안하고 유머가 넘치는 지혜로 가득 찬 그 원고는, 그동안 내가 한 번도 작가였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결국 나의 이상적인 독자는 나였던 셈이다. (p.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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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 번째는 책 제목이 《책벌레들의 우상 게코스키의 독서 편력》인데 내가 책벌레까지는 아니라도 책에 대해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게코스키를 우상화시키지는 않더라도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책날개에 있는 게코스키의 이력을 읽고 나서도 내가 영문학에 대해 충분한 식견이 부족하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두 번째는 이 책의 번역자인 한기찬이었는데 다행히 한기찬의 책은 읽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열등감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기찬이 옮긴 책이 100여 권이라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보통 한 권의 책을 번역하면 2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한다. 이건 아주 대략적인 평균치이기 때문에 책마다 수익의 정도는 완전히 다르긴 하다. 그렇다면 한기찬이라는 번역가는 번역으로만 2억 원 정도를 벌었다는 소리인데 책 한 권을 번역하는 작업은 빨라야 1개월 정도인데 한기찬이란 번역가는 거의 10년을 쉬지 않고 번역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따금씩 번역하는 사람들의 처우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때가 있는데 만약 번역가들이 한기찬 정도로 부지런하다면 번역가들의 생계 문제는 수면 아래로 사라질 것이다. 사실 옥스퍼드 출신에다가 워릭 대학의 영문학 교수를 모른다고 해서 크게 위축될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이름값에 눌려 훌륭한 글솜씨를 무시할 때가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작가에 대해 모르면 모를수록 제대로 된 텍스트 읽기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게코스키라는 영문학자가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시기에 했던 독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교적 전형적인 미국 출신이었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진보적인 학교들에 다녔다.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로부터 방치된 어린 게코스키를 비교적 훌륭하게 키웠다. 게코스키의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즐기느라 어린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참아줄 만한 인내력이 없었다. 단지 게코스키의 아버지가 필요한 인내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어린 시절이 딱히 불행했다고 할 수 없었다. 그 또한 남자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남자아이들이 읽어댈 만한 책들을 읽으면서 당시 영국아이들이 느꼈을 수많은 감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았다. 《해리 포터》시리즈나 《반지의 제왕》같은 책들이 영국에서 나온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피터 팬》에서부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책들이 영국 아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긴 했지만 미국 아이들에게 단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게코스키도 그런 평범한 아이들과 함께 지냈고 그의 사춘기는 수많은 인체의 신비를 탐험하는 성애소설들로 도배되었다. 이런 위대한 독서가들, 특히 남자들이 성적인 문제에 천착하는 것은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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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릭 게코스키’는 세계최고의 북맨이라고 한다. 문인, 학자, 서적상, 독서인이라는 여러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책 표지에 ‘책벌레들의 우상’이라고 적혀 있는 걸로 보아서 책에 연관해 꽤나 유명한 인물인 듯한데, 난 ≪게코스키의 독서편력≫(릭 게코스키 저 / 뮤진트리출판사)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는 인물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벌레들의 독서편력이 궁금할 것이다. 그들이 읽은 책들에 대한 경험에서 공감과 즐거움과 배움을 얻기 때문이다. 나 또한 릭 게코스키의 책이야기에 귀 기우리게 된다. 다양한 책에 대한 정보와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대가 큰 탓이었을까? 아님 제목에 너무 혹한 것이었을까?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상상했었다. 저자의 삶을 통해서 책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그 책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고 그 책의 좋은 점들을 어필할 것이라고. 물론 그런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책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춰서 서술 한 책 일거라고 기대하고 상상했고, 저자는 자신의 삶을 전반적으로 풀어놓으면서 책을 소개하는 자전적 에세이로 책을 소개하고 있었다. 나의 생각과 조금 다른 형식의 책이라 조금 아쉬웠지만, 책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좋아하는 저자가 인생과 함께 책과 곁들여서 풀어 놓은 가족, 사랑 이야기는 나를 공감하게 했다. 또한, 나를 되돌아보며 생각하게 만들어준 책이기도 했다. 저자가 들려주는 책들을 한권씩 읽어보면서 좀 더 많이 공감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나도 저자처럼 책에 강한 집착과 욕심을 가지고 있다. 어떤 책을 봐도 그 속이 궁금해서 펼쳐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매일같이 책을 읽는다. 바빠도, 아파도 한 줄의 글자라도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내가 나는 좋다. 저려함 돈으로 책만큼 나를 발전시키고 행복하게 만들고 무섭게 집중하게 만드는 존재를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내 인생과 함께 펼쳐 보일 수 있는 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번쯤은 하얀 종이 위에 내 인생과 책이라는 제목으로 하나씩 나열해 보고 싶다. 긴 작업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의외로 매우 간단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내 삶을 살아오면서 책이라는 매체를 빼고 말할 수 없으니까 나름대로 매우 의미가 있고 뜻 깊은 시간이 될 것 같아 매우 기대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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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작가이자, 학자이자, 희귀본 서적상이자, 장서가이자, 독서광이다. 이쪽 분야에서는 나름 알려진 사람인 것 같다. 책의 내용을 보면 아, 보통 책 읽은 사람이 아니구나 싶은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책을 빼면 저자의 인생을 얘기하기가 힘들어질 정도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징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 책은 에세이 형식으로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되짚어 가며, 각 삶의 단계에서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도서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일종의 인생 회고록이면서 동시에 책 회고록이기도 하다. 인생 회고록이야 모르겠지만, 책 회고록을 낼 정도면 그 독서의 양이 보통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간단히 책에 실린 책이나 언급된 책만 헤아려 보아도 꽤 된다. 그 장르도 다양하다. 익히 알려진 고전은 물론 동화책이나 탐정소설, 의학서, 인문서들까지 다양한 책들이 등장한다. 그 책들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책 자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거침없이 이야기 한다. 조금은 개구쟁이 같은 느낌으로, 수다쟁이 아저씨가 옆에서 <내가 읽은 책은 말이지..> 하면서 얘기해주는 듯하다. 그 이야기에는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 노년기까지의 삶이 전부 들어 있다. 자신의 독서경험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금의 저자가 있기까지의 과정이 그 독서경험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살아온 행적을 이렇게 책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니 참 멋있어 보였다. 나도 열심히 책을 읽고는 있지만, 언젠가 내 인생을 책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뭐, 오늘 읽은거 내일 까먹는 나로서는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삶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는 영국 옥스퍼드에서 영문학 박사를 받고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가 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남들은 되고 싶어 안달인 그 자리를 과감히 버린다. 그리고는 희귀본을 취급하는 전문 서적상이 된다. 속물적인 잣대로는 뭐하는 짓인가 싶은 일을 저자는 실행에 옮겼고, 서적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저자의 삶이 책과 어우려져 재미나게 읽힌다. 저자가 풀어 놓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참 맛깔나게 읽힌다. 희로애락이 들어있는 이야기에 저자의 위트가 더해져 지루할 틈 없이 읽게 된다. 그 안에 담긴 저자 나름의 인생에 대한 성찰을 보는 것은 덤이다. 시간나는대로 저자가 언급한 책들을 내 취향에 맞게 편집해서 나만의 목록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책을 읽고 좀 더 꼼꼼히 그 느낌과 생각을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거기에 그때의 내 모습도 덧붙여 보고 싶다. 그래서 노년의 어느 날, 그 정리한 것들을 보며 내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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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내가 읽은 책들이 나를 형성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을 알게 되었으며, 나 자신을 통해 그 책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내게서 그것을 앗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p.3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