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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루이 델랑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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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루이 델랑드 안병호 지음/미다스북스   저자는 포항에서 태어나 자란 소설가이다. 서문에서 말하듯 자신이 살았던 곳이, 많은 추억이 서린 곳이 바로 루이 델랑드 신부님이 계셨던 역사적인 장소였다. 성모자애원 아이들, 송정원 해변에서 나무를 심던 수녀님들, 포항과 송도 해수욕장 부근, 포항종합제철 자리 등, 자신은 몰랐지만 루이델랑드 신부님은 그렇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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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루이 델랑드

안병호 지음/미다스북스


  저자는 포항에서 태어나 자란 소설가이다. 서문에서 말하듯 자신이 살았던 곳이, 많은 추억이 서린 곳이 바로 루이 델랑드 신부님이 계셨던 역사적인 장소였다. 성모자애원 아이들, 송정원 해변에서 나무를 심던 수녀님들, 포항과 송도 해수욕장 부근, 포항종합제철 자리 등, 자신은 몰랐지만 루이델랑드 신부님은 그렇게 저자와 관계를 맺고 계셨다. 그 분이 살았던 고장에서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부님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산, 용평, 포항, 신부님이 세우신 여러 고아원과 수녀원, 그 분의 삶의 발자취를 통해, 부족한 부분은 프랑스 학자의 논문을 참고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개인이든, 나라든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중국이란 넓은 대륙과 호전적인 섬나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수많은 외침으로 위험한 많은 고비를 겪어왔다. 그 중에서도 최악의 시기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기간이었다. 우리 역사의 암흑기였던 그 시절 자신이 태어난 부유하고, 평화로운 나라, 프랑스를 떠나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우리를 찾아온 푸른 눈의 청년이 있었다. 심장을 꿰뚫어보듯 선명한 눈, 반듯한 코, 굳게 다문 입술의 잘 생긴 이 청년이 바로 루이 델랑드다. 그는 젊음과 선교에 대한 열정, 순수한 사랑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억압에 맞서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의 편이 되어 평생을 선교와 봉사로 살았다. 그리고 이 땅에 묻혔다.  그 때보다 보다 풍요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기꺼이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 바로 그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는 이런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루이 델랑드 신부님 같은 마음을 품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또 다시 총알이 빗발치고, 어둡고, 병든 나라들로 기꺼이 가서 자신의 삶을 불태우고 있다.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보답하며 헌신하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f****l 2011.09.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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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루이 델랑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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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라는 말처럼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사랑스런 말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말이 흔하게 쓰이더라도 적합하게 어울리는 사람을 찾기도 꽤 힘든 세상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사람 루이 델랑드를 읽으면서 이 분에게 아름답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군아라고 생각했습니다. 본인도 천주교신자이다보니 우리나라에 천주학으로 들어와서 여러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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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라는 말처럼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사랑스런 말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말이 흔하게 쓰이더라도 적합하게 어울리는 사람을 찾기도 꽤 힘든 세상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사람 루이 델랑드를 읽으면서 이 분에게 아름답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군아라고 생각했습니다.

본인도 천주교신자이다보니 우리나라에 천주학으로 들어와서 여러 신앙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수많은 목숨이 하늘로 떠나갔으나 상처만을 남기지 않고 남은 사람들에게는 그 상처가 또 다른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 사랑은 여러가지형태로 사람들에게 전파가 되고 많은 이들의 가슴에 꽃을 피우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 사랑들을 일구어 낸 사람들 중에서 선교사로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신앙을 알려주는 신부님들의 삶은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것들 뿐입니다.

루이 델랑드신부님은 이번에 처음 알게된 신부님이였지만, 이처럼 우리가 모르는 분들이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그저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로 희생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바칩니다.

우리나라의 어려운 환경에 신앙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의 사람을 위해서 애쓰고 감싸던 그 마음들에 의해서 꼭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작게나마 사랑이라는 것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h*********6 2011.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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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루이 델랑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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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는 수난을 당했다. 수많은 신도들의 죽음과 순교는 한국천주교의 초기 역사이다. 한국사회에 들어왔던 천주교의 박해로 인해 많은 순교자를 낳게 되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지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그곳에 루이 델랑드가 도착하게 되었다. 수많은 박해 끝에 피폐해진 민심과 천주교를 위해 루이 델랑드는 한국 교회 요청과 순교자들의 나라 한국의 모습을 보고 파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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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는 수난을 당했다. 수많은 신도들의 죽음과 순교는 한국천주교의 초기 역사이다. 한국사회에 들어왔던 천주교의 박해로 인해 많은 순교자를 낳게 되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지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그곳에 루이 델랑드가 도착하게 되었다. 수많은 박해 끝에 피폐해진 민심과 천주교를 위해 루이 델랑드는 한국 교회 요청과 순교자들의 나라 한국의 모습을 보고 파송되었다. 그는 1923년 4월 20일에 프랑스 마르세유 항에서 출발하여 중국, 일본을 거쳐 1923년 6월 5일 새벽 6시 15분에 부산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미지의 땅, 한국 땅에 내리자 땅에 엎드려 기도하고, 땅에 입을 맞추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땅을 밟을 때 땅에 엎드려 키스를 하는 것이 루이 델랑드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함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가 보았던 미지의 땅은 인상적이며 강인함을 갖게 되었다. 식민지이지만 그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새로운 것이었다. 곳곳은 식민의 현장인 일본군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렇지만 이동하면서 바라본 풍경은 평온함이며 넓은 들녘에서는 밭을 가꾸는 농부들의 모습이었다. 분명 식민지이었지만 한국은 달랐던 것이다.

 

그는 조선인 신학생에 관한 것을 가장 먼저 관심을 가졌다. 신학생을 양성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임에도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당시 조선은 식민지었다. 식민지하에 있는 식학교가 유지된다는 것이 어려웠다. 이러한 환경이었기에 선교사들이 신학생 양성이 미온적인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루이 델랑드 신부는 일본의 눈치속에서 조선의 교구활동과 선교활동을 주도할 수 있는 신학생 양성에 더욱 과감성을 가지고 시행해 갔다. 신학생들은 장차 조선인을 개화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중요한 인재들이라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이 델랑드는 인재를 양성함에 최선을 다했다. 조선을 구하고 민중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들을 양성함에 중대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즉 어둠의 땅에 한 줄기의 빛을 비추었다. 이책에서 루이 델랑드의 사역에 대해서 우리는 여러가지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독자인 저는 이 책에 가장 중요한 루이 델랑드의 사역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의 외형적인 사역으로는 신학교 사역이지만 내면적인 사역은 식민지에 있는 조선인의 발굴과 식민지 후에 활동할 조선인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임에 틀림 없음을 이 책에서 우리는 보게 되었다.

 

그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신뢰와 감동이었다. 그의 사역에는 일본의 감시의 눈이 항상 있었다. 일본의 감시속에서 때로는 주교의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이는 일본의 감시가 강화되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감시는 철저히 이루어졌다. 조직적으로 전개하면서 다양한 성당의 모든 기능도 마비 시켜갔다.

 

루이 델랑드는 조선인을 끌어 안았다. 조선인의 고통을 그의 고통으로 여겼다. 아픔을 함께 했다. 그에게 주어진 사역의 과정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의 가는 곳은 한줄기의 빛이었다. 이책은 개화시키에 많은 박해를 받았던 천주교가 오늘의 천주교로 발돋음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 땀이었다고 본다.

 

그는 포항의 작은 무덤에 잠들어 있다. 한반도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에 우리는 가슴에 따뜻함을 보게 된다. 그의 마음은 오늘의 많은 인재를 한국에 뿌리 내리게 했다. 식민지의 감시속에서도 자기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며 섬겼던 루이 델랑드의 아름다운 사역의 길을 이 책에서 우리는 만나게 된다.

p***1 2011.09.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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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루이 델랑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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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자 할 때 누굴 제일 먼저 찾을까요? 대부분이 신앙을 찾을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애절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제 맘 속에 늘 그분이 계시고 그분이 지켜주시리라 믿고 있을 뿐입니다. 어느 날은 제가 많이 아프고 힘들때였습니다. 그때 그분이 저에게 찾아오시더군요. 그러면서 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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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자 할 때 누굴 제일 먼저 찾을까요? 대부분이 신앙을 찾을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애절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제 맘 속에 늘 그분이 계시고 그분이 지켜주시리라 믿고 있을 뿐입니다.

어느 날은 제가 많이 아프고 힘들때였습니다. 그때 그분이 저에게 찾아오시더군요. 그러면서 인자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걱정하지 말라고요. 잘 해결될 것이라고요. 그래서 저는 맘을 놓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분 말씀대로 이루어지더군요.

그래서 다시한번 감사드리고 또 감사를 드렸습니다. 비록 냉담자이지만 그래도 그분의 자식이라고 그 자식이 힘들때 찾아주시니...

 

그런데 그런 분이 우리나라가 가장 힘들고 아플때 하늘에서 내려오셨더라고요. 그분이 루이 델랑드 신부님(한국이름 남대영)입니다.

그분은 프랑스 사람입니다. 절실한 가톨릭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나셨고, 늘 마음속으로 신부가 되리라 생각하셨던 분이십니다.

신부님은 선교사로서 저의 나라 대한민국에 파견되셨습니다. 그때의 우리나라는 일제의 지배하에 있을 때 였습니다.

누구도 자신이 한국인이라 말하기 두려운 그때 델랑드 신부님은 당당히 그들앞에 나타나셔서 국민의 자긍심을 일깨워 주시고, 늘 배고품에 시달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시듯 한국이라는 나라에 애정을 그리고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신앙인으로서의 길과 개인적인 희생 둘 사이에서 고민이라는 것을 하게 될텐데 델랑드 신부님은 그런 고민은 사치에 불과하다 생각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닥친 현실에 순응하고 극복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어내려갈수록 제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요. 우리나라의 절망적인 현실에 한 번, 그런 우리나라를 위해 한 목숨 바치신 델랑드

신부님 때문에 한 번, 그리고 그런 신앙을 나에게도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에 한 번....

사람들은 힘들때만 하늘에 계신분을 찾습니다. 저 또한 그렇지요.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배풀고 그 사랑이 자꾸 불어나 또 다른 사랑을 낳을 수 있게 되는 것도 신앙이고 하늘에 계신분이 하고자 하시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누구의 신앙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고 있는 신앙으로 다른이들에게 사랑을 배풀고 모두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라

생각됩니다. 서로 싸우지 말고 각자의 신앙으로 진정한 삶을 살아가길 고대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조차 우리나라를 위해 행복한 희생을 한 것에

감사하고 그러지 못한 우리들은 반성을 해야겠습니다.

 

 

 
s******y 2011.09.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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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인물 서평 [루이 델랑드], 안병호, 마디스북스, 2011
"카톨릭 인물 서평 [루이 델랑드], 안병호, 마디스북스, 2011" 내용보기
카톨릭 인물 서평 [루이 델랑드], 안병호, 마디스북스, 2011 · [울지마 톤즈]라는 한 편의 영화 때문에, 고(故) 이태석 신부님을 알게 되었다. 나는 종교가 없다. 아이러니하게 신실한 개신교 집사님의 권유로 가톨릭 신부님을 알게 된 것이다. 종교를 떠나 이태석 신부님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울었고, 나도 울었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많은 의인(義人)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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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인물 서평 [루이 델랑드], 안병호, 마디스북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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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라는 한 편의 영화 때문에, 고(故) 이태석 신부님을 알게 되었다. 나는 종교가 없다. 아이러니하게 신실한 개신교 집사님의 권유로 가톨릭 신부님을 알게 된 것이다. 종교를 떠나 이태석 신부님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울었고, 나도 울었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많은 의인(義人)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 사회가 존속하는 것이다. 단지 우리만 모를 뿐.

또 하나 생각한 것은, 우리 부모도 톤즈의 아이들처럼 살았고, 이태석 신부님 같은 많은 의인이 우리 부모를 지켜 주었기에 지금 내가 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은 우리 부모와 같이 사는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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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은 것은, 개인적으로는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그곳 사람들이 사는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집, 식수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어 있었다. 지금 그들의 삶과 우리 부모의 어린 시절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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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 루이 델랑드 신부님을 보면서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책 속의 옛 사진 한 장 한 장을 보면 우리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고, 이태석 신부님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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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가 되면 무의미한 생활, 고독,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것과의 조우, 무명인의 삶, 위로와 지식의 결핍, 부모·친구와의 이별과 애정의 결핍, 하느님을 모르는 다른 수준의 이방인에게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일 등을 예상할 수 있다. 이에 적응해야 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명확히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나의 내면에 숨어 있는 원의, 즉 내 자리는 선교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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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델랑드가 선교사로 파견되기 전에 쓴 글이다. 선교사의 사명과 함께 인간적인 고뇌가 가득하다. 그가 도착하기 전, 조선에서는 24명의 선교사가 순교했고, 일본어를 쓰는지 조선말이 있는지 모른 채 배를 탔다고 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처음 뽑은 4명의 신학생 중 세 명이 훗날 주교가 되었고, 보육원부터 한센병 환자까지 그는 온 힘을 다해서 이웃을 보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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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쁘게 한 것은, 훈장이 한 선교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결코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서도, 프랑스의 직접적인 이익을 위해서도 일하지 않았다. 프랑스어 교수도 아니고 영웅적인 일도 하지 않았으며 선교사 일 외에 특별한 일을 한 것은 하나도 없다.

- 1969.8.3 떼레즈-마리 수녀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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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이국땅에서 살아온 그에게 프랑스 정부는 레지옹 도뇌르 프랑스 최고 훈장을 수여했다. 우리 정부는 이태석 신부님이 선종하신 후에 여론에 떠밀리듯이 훈장을 수여했다는 점이 다르다. 그분들에게 훈장이 뭐 중요하겠는가? 하지만 프랑스와 우리나라가 너무 비교된다. 이 책에는 다른 신부님의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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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도마(안중근 의사)가 나라에 역적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를 찾았을 것이다. 하물며 그의 행위는 그의 나라와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가. 이런 일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면, 그때에도 징계처분을 내렸을 것인가. 나는 안도마의 영세 신부이기 때문에 그에게 종부성사를 줄 의무가 있다.

- 안중근 의사에게 중부성사를 해준 웰헬름 신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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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헬름 홍석구 신부는 황해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안중근 의사가 중국의 여순감옥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종부성사를 해주었다. 물론 로마 교황청에서는 징계처분을 철회했지만, 일본의 압력으로 결국 프랑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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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특정 종교의 이야기라고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선교사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의 역사이다. 물론 국내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가 빈국(貧國)을 도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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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시작부분에 저자의 사견이 루이 델랑스 신부가 생각한 것처럼 묘사된 부분과 저자의 가족사를 적어 놓은 것이 없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끝..2011.09.02



s****r 2011.09.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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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델랑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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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델랑드』를 읽고 절대적인 사명감을 지니고서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희생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봉사, 배려를 함으로써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을 그 사람을 성인, 또는 위대한 인물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역사에 있어서는 이런 훌륭한 인물들 즉, 성인(聖人)이라 불리 우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경우라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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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델랑드』를 읽고

절대적인 사명감을 지니고서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희생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봉사, 배려를 함으로써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을 그 사람을 성인, 또는 위대한 인물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역사에 있어서는 이런 훌륭한 인물들 즉, 성인(聖人)이라 불리 우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경우라도 부칠 수 없는 칭호이다. 인도에서 활동한 테레사 수녀님, 우리나라의 김수환 추기경 들이 근래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서도 찾아보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으로 만나는 ‘루이 델랑드 신부(한국 이름 남대영)’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다. 신부는 프랑스 출신의 선교사로서 여건이 아주 험악한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하였던 선교 역할을 헌신적으로 해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억압에서 고통을 당하며 지내던 애환의 시기에 이 땅에 와서 우리 겨레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음 전파에 온갖 희생을 무릎쓰면서 헌신적으로 임하였다. 특히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불쌍한 이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서 더 없는 많은 봉사를 쏟았던 것이다. 약 49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많았던 고아와 병든 자들과 배고픈 자들에게 사랑을 베푼 그는 한국인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한 아버지이자 스승이자 친구였기 때문이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 많은 불리한 여건인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와 신뢰의 마음을 지니고 일생을 주님께로 향하여 행하였다는 점이다. 어떤 반대나 역경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계획이 크게 나타실 것으로 기대하는 굳은 믿음의 신앙을 간직하면서 열심히 활동한 모습이 정말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생존해 계시다면 직접 찾아가서 말씀과 함께 모습을 보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한다. 바로 이런 신부님의 모습에서 우리들은 기적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정말 기적은 우연하게, 아니면 손쉽게 일어나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강력한 믿음 하에 뚜렷한 목표 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온갖 거기에 맞게끔 활동해야만 그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부님의 기적 같은 업적들은 바로 하느님의 참사랑을 펼친 푸른 눈인 외국인이었지만 영원한 한국인으로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이왕 하는 일이라면 긍정적인 마음과 부정적인 마음의 두 가지로 분류해볼 수가 있다. 그래서 내 자신 교사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항상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로 큰 꿈을 향하여 강력하게 도전하여 그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하는데 열심히 후원을 하고 있다. 꼭 소중한 꿈들을 이루어 내 다시 상면하자고 말이다.

m***3 2011.08.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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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름다운 사람 루이델랑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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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델랑드’란 선교사를 이 서적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소감은 감동 그 자체였다. 천주교는 국내에 복음을 전파하면서 100년간 박해를 받으며 수많은 순교자의 피를 통해 종교의 자유를 얻었다. 루이 델랑드가 도착하기 전까지 프랑스 선교사 24명이 순교한 상황에서 고국인 프랑스를 등지고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선교사로 이 땅을 밟아 47년간 선교와 봉사에 일생을 바친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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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델랑드’란 선교사를 이 서적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소감은 감동 그 자체였다. 천주교는 국내에 복음을 전파하면서 100년간 박해를 받으며 수많은 순교자의 피를 통해 종교의 자유를 얻었다. 루이 델랑드가 도착하기 전까지 프랑스 선교사 24명이 순교한 상황에서 고국인 프랑스를 등지고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선교사로 이 땅을 밟아 47년간 선교와 봉사에 일생을 바친 진정한 위인의 일대기를 그린 감동의 서적이었다.

 

‘루이델랑드’는 신학대에서 수학하던 중 1차 대전에 징집되어 4년 6개월 만에 다시 신학대로 복학하여 7년간 수학을 한다. 신학대 졸업 후 사회적 지위와 존경을 받는 교구 사제나 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선교사의 길을 택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한 1923년 조선의 선교사로 부임한다. 마땅히 누려야할 자유가 없는 조선에서 그의 소명의식은 더 강력한 빛을 발휘하였다. 군대 복무시 위생병이었던 경함을 배경으로 무료진료를 행하였으며, 복음의 전파를 위해 사제와 수녀를 배출하기 위한 교육에 남다른 노력을 보였다. 부족한 재원 마련을 위해 고국인 프랑스의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병으로 인한 휴가를 조선의 실정을 알리고 지원을 받는데 총력을 기울여 주교의 질책까지 감수해야만 했다.

 

이육사를 비롯한 모든 사람을 돕다 일본 경찰에 투옥도 되었으며, 공동체의 배신으로 공산당을 도왔다는 신고로 인해 가슴 아픈 시절도 있었다. ‘루이델랑드’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상처받은 사람들(나병환자, 전쟁고아, 홍등가 여인 등)을 위해 베타니아 마을에 봉사하고, 800명의 공동체 생활을 위한 포항의 송정원을 건립하여 소외된 사람을 먼저 돌보는 원칙을 지킨다. 1972년 사제가 된지 50년 되던 해 축하행사에서 신학교에 보낸 4명의 학생 중 세 명이 주교가 되어 큰 절을 올리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던 루이델랑드 신부님은 그해 11월 세상을 떠난다.

 

작년 아프리카 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다 세상을 떠난 이 태석 신부님의 다큐멘터리<울지 마 톤즈>의 감동을 다시 느끼게 하는 서적이었다. 평생을 바쳐 봉사만을 하는 위인들의 봉사와 희생은 많은 감동과 더불어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어려운 시절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우리보다 못한 어려운 국가나 소외된 사람들에 베풀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서적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이 서적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혜안을 주며,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서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종교는 질서와 섬세함을 기본으로 전례와 교육을 통해 문화의 도구가 된다.’ p 140

 

나는 미래를 보며 오늘 또 계획을 세웁니다. 그 계획은 구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늘 해왔던 것처럼 섭리의 징조에 대답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p166

 

눈물이 흐르면 흐르게 놓아두어라.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한 육체가 죽었을 때 살아 있는 육체의 ‘외침’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눈물과 고뇌가 감정적으로 마음 한구석에 고립되어 있다면, 그것은 동물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p 258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t****1 2011.09.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루이 델랑드
"루이 델랑드" 내용보기
아주 오래전, 내가 어릴적에 나는 종교와 무관하게 생활하는 아이였다. 일명 뺑뺑이라고 하는 중학교 추첨으로 인해 우리반의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겨우 세명만 뽑힌 낯선 중학교는 천주교 재단의 사립학교였고, 그저 학교가 어느곳에 위치했는지만 궁금했던 나와는 달리 같은 학교에 가게 된 친구 한명은 이름도 천주교 세례명이었을만큼 집안 분위기 자체가 종교적인 분위기였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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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내가 어릴적에 나는 종교와 무관하게 생활하는 아이였다. 일명 뺑뺑이라고 하는 중학교 추첨으로 인해 우리반의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겨우 세명만 뽑힌 낯선 중학교는 천주교 재단의 사립학교였고, 그저 학교가 어느곳에 위치했는지만 궁금했던 나와는 달리 같은 학교에 가게 된 친구 한명은 이름도 천주교 세례명이었을만큼 집안 분위기 자체가 종교적인 분위기였을텐데 오히려 종교재단의 학교에 가게 되었다는 것을 저주처럼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학교에 입학하고 담임선생님을 발표하는데 또 우연찮게 나는 수녀님이 담임을 맡게 된 반으로 배정이 되었고 수녀님의 성격에 따라 공부에서부터 환경미화에 이르기까지 1학년 전체 학급중에서 항상 1등을 유지하는 그런 분위기에서 학교를 다닌 기억이 있다. 나는 수녀님의 반듯하고 깔끔하고 정확한 느낌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훗날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를 만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을 때 많은 친구들이 나와는 달리 까다롭고 무서운 수녀님으로만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뭐 어쨌든 담임수녀님하고는 상관없이 나는 3학년이 되면서 천주교에 관심이 있는 친구와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같이 세례를 받았다.
그때 처음으로 갔던 성당의 신부님이 외국인 신부님이셨다. 물론 지금도 외국의 선교수도회 신부님들이 계시고 이제는 외국선교회 신부님들과 농담도 할 수 있지만 당시 어린 내게 외국인 신부님은 외계인과 동급인 느낌이었다. 내게 있어 선교수도회 신부님의 기억은 커다란 덩치와 얼굴 정도뿐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성당을 다녔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커다란 두 팔로 아이들을 매달고 그네놀이를 하게 해 주었다거나 성당 마당에 이쁜 꽃정원을 가꿔 항상 웃는 얼굴로 자기들을 맞이해주던 그 인자한 신부님의 얼굴이 떠오른다며 그리워하는 표정을 보게 된다.

한국전쟁 직후, 머나먼 유럽에서 선교를 위해 미지의 땅에 들어오신 신부님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이곳에 들어와 성당을 짓고, 건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 모금활동을 하고 그 모아온 돈을 모두 투자해 성당도 짓고 신자들의 경제활동에 도움을 주고 이 고향땅의 경제적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것들이 아니라 그분들이 전하고자 했던 하느님의 사랑과 자유, 정의, 진리, 평화에 대한 선언과 모범이 더 마음에 남는 것은 가난하고 무지몽매한 이들을 이끌어주겠다는 우월의식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 안에 함께 하면서 실천하며 삶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증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남대현, 루이 델랑드 신부님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은 것은 그분과 같은 선교수도회 신부님들의 선교활동의 결과를 내가 보고 있기때문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 루이 델랑드 신부님과 같은 신부님들의 추억을 갖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루이 델랑드 신부님은 진정으로 조선의 자주와 독립을 원하셨던 분이 아닌가. 천주교 신자로서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이야기는 그분의 성소와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따르고자 하는 삶의 모습에 더 많은 감동을 받고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을 위하여 희생과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에 나의 성품은 너무 못됐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다잡아본다.

"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서 나 자신을 버려야만 한다. 또한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나는 애덕을 길러야 한다. 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넘쳐야 한다." 서품준비 피정 (1921.06.26-29)





r***2 2011.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루이 델랑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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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는, 시쳇말로 종교를 글로 배웠다는 점이다. 학문으로 받아들인 천주교는 종교적인 억압을 많이 받았고,  그러기에 한반도 내에서 자생한 천주교의 시작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이 책의 주인공인 루이 델랑드는 그런 억압과 핍박의 역사가 지난 뒤인 일제강점기에 조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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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는, 시쳇말로 종교를 글로 배웠다는 점이다.


학문으로 받아들인 천주교는 종교적인 억압을 많이 받았고, 


그러기에 한반도 내에서 자생한 천주교의 시작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이 책의 주인공인 루이 델랑드는 그런 억압과 핍박의 역사가 지난 뒤인 일제강점기에 조선으로 왔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그 낯선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직접 지켜보며


조선과 그 속에 있는 민중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이방인이다.


진정한 종교의 참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우리들의 이웃들을 보살폈던 사람.


종교적인 신념이 있었기에 그런 힘든 일들이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범인들에게는 그런 종교적인 믿음이 강요될 필요도 없었을 것이지만


종교인으로서의 역할과 자세를 충분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루이 델랑드는 진정한 한국인이 되어간 것인지도 모른다.


이름만 한국인이 아닌,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한국인.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그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 종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런 종교도 보편적인 가치가 있듯이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정당 만든다고 설쳐대고 나라의 수도를 봉헌하니 어쩌니 짖어대는 것들이 읽어야 할 책인지도 모르겠다.

a**********6 2011.09.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