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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식 ‘여로(旅路)’
기차 여행를 하면서 겪는 애피소드이다. 기차 타면 옆좌석에 누가 앉을까가 관심사고, 시원한 맥주가 그립고, 차창 너머 풍경도 그러하다. 이런 광경을 떠올리며 출장을 떠나는 샐러리맨의 이야기로 다들 공감하거나 겪은 바가 대동소이할 거다. 특히 내가 아는 누구는 아주 각별할 거다. 말로만 듣던 기차에서의 만남이 현실로 이어졌기에...
주인공인 김기도는 31살로 결혼한 지 4년이 된 어느날 부산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출장전날 기분이 마치 중학교때 소풍가기 전날처럼 즐겁다. 모처럼만의 기차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의 찌든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을 만끽하며 기차내에서의 즐거운 일들을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들떠있는 것이다. 회사에서 일찍 퇴근하면서 차표도 구했고(번호가 묘하게도 4호의 44번이다...불길한 예감보다는 좋았던 기억이 있기에 오히려 안심한다), 시간도 남아 영화관도 찾았다. 마침 무더운 탓에 맥주 생각이 나서 비어홀에 들렀다.
맥주를 마시면서 아가씨와 노닥거리던 끝에 여행이야기가 나왔고, 같이 여행을 가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다음날 서울역에 나왔지만 김기도는 안절부절 못한다. 이유는 생각지도 않은 집사람의 배웅 때문이다. 궂이 혼자 가겠다고 우겼지만 부득불 배웅을 해야만 하겠다는 아내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심 어제밤에 지껄였던 맥주집 아가씨와의 약속이 석연찮다. 이때 나타난다면 가정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혼자 자책하며 안절부절 못한다. 그나마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아가씨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내심 십년감수를 했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든 기차는 출발하고, 이젠 옆 좌석에 이쁜 아가씨라도 동석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 역시 어긋나, 옆좌석은 시골 노인이, 앞좌석은 50대 장사꾼 둘이 앉았다. 두 번째 기대가 무너졌다. 두 사람은 소주잣을 기우리며, 오징어를 뜯고 있었다. 그리고 김기도에게도 권하는 것이다. 덕분에 원치않던 소주까지 얻어먹게 되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기대했던 시원한 맥주가 아닌 싫어하는 소주에 꼬리꼬리한 오징어 안주까지...역겨움이 절로 났다. 그래도 거절하지 못하고 얻어먹은 탓에 어쩔 수 없이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느끼며, 도시락을 4개를 사야만 했다.
점심을 먹은 사람들은 어느새 낮잠을 자고 있었고, 어느 틈에 맥주 생각이 난 기도는 식당차로 발길을 돌렸다. 식당칸은 온통 만원이었다. 그러던 중 테이블 한 쪽이 비어 그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에는 젊은 유부녀와 애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멀찍이는 중령 셋이 자리잡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연히 애기를 두고 술값내기가 벌어졌다. 애기의 성별을 알아맞히는 게임이다. 여름이라 애기는 기저귀를 차고 내의만 입은 상태라 언뜻 봐서는 여자앤 지 남자앤 지 구분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한 중령이 내게 물어왔다. 애가 성별이 머냐고...아마도 날 젊은 부부로 착각한 듯 싶다. 젊은 새댁은 미소만 띄고 아무말이 없었다. 난 버젓이 있기도 머해 나름대로 추측을 하고 어느 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었다. 게임은 끝나고 그들의 잡담은 계속되었다.
이쪽 테이블에 대한 관심이 뜸한 차에 조용히 젊은 애기엄마에게 양해를 구했다. 젊은 부부로 오인하게끔 연기한 것에 대해...그러나 오히려 젊은 새댁은 이렇게 말했다. “천만에요. 재미있어요” 실은 자기는 아직 미혼이자 학생이고, 애기는 언니애(=조카)이고, 또한 아이 성별은 남자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옆 중령 테이블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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