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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우'란 멋진 작곡가를 어떻게 알게 되었더라! 생각을 더듬어 보지만 또렷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초등학교 교사가 쓴 책을 읽고 알게 되었을 것이다. 노래 만드는 사람 백창우는 이원수 선생님의 시에다 곡을 붙여 많은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들 시로도 많이 만들었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한 '마주 이야기'의 내용으로 만들기도 했고 초등학생 아이들이 자신들의 말로 쓴 시로도 만들었다. 물론 그가 창작한 노래들도 많다. 그가 만든 노래는 다른 동요들과 완전히 다르다. 내용도, 곡도 일반 동요들과는 상당한 차별성이 있는데 일반 가요보다도 내 마음을 많이 적셨다. 그래서 한 동안은 집에서고 자동차 안에서고 그가 만든 노래를 들으며 흠뻑 빠져 있었다.
원래 좋은 것이 있으면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나도 초등학생 아이를 둔 근처에 사는 지인과 아이들 담임선생님께도 백창우 노래를 선물했다. 그랬더니 지인의 아이들 역시나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학교에 갔다오면 꼭 듣는다 했다. 그 지인 역시 다른 사람에게도 선물을 했다고 들은 것 같다. 더욱 기쁜 것은, 큰 아이 담임선생님은 그 노래를 점심 시간에 틀어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운동회날 학교에 갔는데, 아이들이 운동장 한가운데로 행진하며 들어설 때 그 노래가 들리는 것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 보다 더한 것은, 작은 딸아이와 함께 마트에 가면서 그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딸이 "엄마, 저도 결혼해서 딸 낳으면 엄마처럼 이런 노래 들려 줄 거예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백창우는 "이원수 시를 읽으면 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이원수 시를 읽으면 내 마음이 착해집니다. 이원수 시를 읽으면 저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집니다." 라고 말한다. 한 십 년 남짓 이원수 선생님의 시에 곡을 붙이다 보니 한 130곡쯤이 모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삶이 가장 힘들던 때, 몇 달 동안 이원수 선생님의 시를 붙들고 살았다. 하루 내내 시와 뒹글면서 하루 내내 세상에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깜깜 어둠속에서도 언제나 그 어둠 한켠에 희먕의 별 하나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착해지고 저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이 책 <다 다른 노래, 다 다른 아이들>에서 그가 언급한 사람들은 내가 거의 다 아는 사람들이고 내가 추구하고, 실천했던 것들이어서 내용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평생을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과 살아있는 글쓰기'로 일관 하셨던 이오덕 선생님은 내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작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선생님이 살아 생전 그를 주축으로 만들어졌던 글쓰기 연구회에서 발간한 회보도 구독 했다. 그리고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과 함께 한 마암분교 아이들의 시, 강아지똥의 권정생 작가, 탄광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썼던 임길택 교사, '감자꽃'이란 동시집을 내니 권태응 선생, 좋은 어린이책을 만들어내는 보리 출판사, 내가 좋아하는 윤동주, 안도현 시인등 백창우는 노래를 만들어 낼 때 이들의 시를 많이 이용했다.
백창우가 만든 노래는 노랫말도 곡도 다 좋다. 과천에서 그와 함께 하는 '굴렁쇠 아이들'이 노래를 하는 무대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예쁜 노래를 전혀 꾸밈없이 부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굴렁쇠 아이들 속에 끼어서 함께 노래하면 얼마나 행복할까하고 부러워했다. 좋은 노래를 부르며 자라는 아이는 심성도 고와 주위 사람들을 잘 배려하고, 공감능력도 뛰어나며 주체성이 뚜렷한 아이로 자랄 것이 틀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 한 방송의 스페셜 프로그램에서 '백창우의 노래밥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를 해서 그것을 녹화한 뒤 글쓰기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이 쓰는 시를 보면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학교에서 받은 교육으로 정형화된 틀을 갖게 되었고, 살아있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공부 할 때는 한국 글쓰기 연구회에서 발간한 아이들의 시나 김용택 선생님의 제자들이 쓴 시들을 꼭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시를 쓰고 백창우가 만든 '내 똥꼬'란 노래는 내가 수업시간에 자주 들려주고 함께 부르기도 한 노래였다. 시라는 것이 꼭 아름다운 것만을 쓰는 것이 아니고 삶속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쓰는 것이 '살아있는 시'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데 아주 좋은 시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쑥쓰러워하다가 금세 따라 부르며 재미있어 한다.

아이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아이들 마음 안에는 늘 시와 노래가 출렁이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요즈음에는 우리 아이들이 부를만한 참다운 노래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는 아름다운 마음을 꽃피울 작은 씨앗이고, 아름다운 마음은 아름다운 세상을 꽃피울 고운 씨앗이지요.(43쪽)
아이들이 아이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 지가 정말 오래되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인 우리들조차도 알아듣기 어렵고 국적불명 같은 언어로 불러대는 가요들을 흉내내고, 어른들은 재미있다고 박수를 쳐댄다. 그러하니 아이들은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그저 어른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고작이다. 본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점점 동요를 멀리하는 까닭은 왜일까?
백창우가 말하는 몇 가지 이유이다. '첫째,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는 음악 시간에나 부르지 학교 밖에서는 거의 부르지 않은 것이 우리 아이들 실정이다. 창작동요가 재미없다면 그것은 거기에 아이들 삶이나 모습, 말과 몸짓이 생생하게 담겨 있지 않아서 일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틀에 박힌 노랫말이나 가락이 너무 틀에 박혀서 뚜렷한 이야기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으니 감동도 재미도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학원이다, 텔레비전이다, 컴퓨터 게임이다 해서 노래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동무들과 어울려 놀아야 이런 저런 것도 해 보고 이런저런 노래도 불러볼텐데 그러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 '어떤 노래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넷째, 노래 말고도 재미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다시 동요를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른들이 망가뜨려 놓은 것이니 어른들이 다시 고쳐 놓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학교와 대중매체가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면 한 어른이. 한 교사가, 한 엄마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노래를 만드는 사람은 스스로를 가둔 담장을 허물고 아이들 세상으로 걸어 나와야 할 것이고, 동요 음반을 만드는 사람은 아이들 음반이라고 아무렇게나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교사는 교사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이들이 좋은 동요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참다운 동요'를 찾아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동요를 부르지 않는 아이들은 불행합니다.
동요를 부르지 않는 아이들이 사는 세상의 어른들은 불행합니다.(179쪽)
백일장 대회를 반대하고 아이들 글에 등수를 매겨 상을 주는 것에 반대하는 내 생각처럼 백창우는 창작동요제를 반대하고 아이들 노래에 점수를 매기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 또한 내가 아이들 글쓰기에 대해 바라보는 눈과 아주 똑같다. 백창우가 창작동요제에 출품된 곡들 가운데 200곡을 살펴보았는데 10년 전이나 20년 전하고 바뀐 것이 없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노랫말을 쓴 사람들이나 작곡을 한 사람들 모두가 마치 한 교실에서 한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은 것처럼 노래가 서로 어슷비슷하다고 한다. 한 두어 사람이 다 썼다고 해도 될 것처럼 말이다.
"창작이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행위이고 새로운 것을 꿈꾸는 일이 아닌까요?"라고 말하는 그는 방송국에서 부탁해 온 동요 심사 자리는 다 마다하고 나가지 않는다. 참으로 심지 굳은 그이다. 그는 교훈이 담긴 노래들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교과서에 실린 노래나 창작동요제 노래나 거의가 '지혜와 덕성' '여명' '동바의 나라' '새로은 새 심지' '내일의 새 세기'처럼 아이들 입말에서는 쓰지 않는 말들이 잔뜩 들어있다니 어느 아이가 신이나서 그런 노래를 부르겠는가.
그와 함께 하는 굴렁쇠아이들은 다른 노래 모임하고 여러가지가 다르다. 어린이 합창단의 소리내기(발성)를 따르지 않고 그냥 말하듯이 노래했고 옷차림이나 동작 따위를 꾸미는 일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노래 잘하는 아이를 가려 뽑거나 엄마들의 치맛자락에 휘둘리는 일도 없었다. 방송국 사람들한테 잘 봐 달라고 차 한잔 사는 일도 없었다. 방송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별다른 노래 모임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옳다고 여겼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이이들 노래는 아이들 노래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보에 드레스에 화장까지 하고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나는 질색했다. 꼭두각시 인형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과 노래 한 곡을 오래오래 되풀이 연습하는 일도 하지 않았고 노래를 못한다고 혼내지도 않았다.(13쪽)
백창우는 진솔하고 그가 만든 노래는 참 자연스럽다. 그는 노래 한 곡을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 비를 주제로 한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 효과음을 넣기 위해 음향기기를 들고 비가 오는 날 숲으로 가서 고생하며 녹음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굴렁쇠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가슴에 저절로 와 닿나보다. 전혀 꾸미거나 만들려고 하지 않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가 노래를 돋보이게 한다. 모두가 똑같은 길을 가는데 혼자서 반대방향으로 뚜벅이처럼 걸어가는 백창우 작곡가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사라져 간 아이들에게 노래를 되찾아 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삶을 노래한 살아있는 시를 쓰게 하고 거기에 곡을 붙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놀 시간을 많이 만들어주어야 한다. 좋은 노랫말을 가진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왕따의 문제가 생길리가 없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노래가 많이 울려퍼져야 한다.
오늘은 한 동안 듣지 못했던 '굴렁쇠 아이들'의 노래를 들어보아야겠다. 마음이 순하고 착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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