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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떠오른다. 조용헌의 이 책은 유홍준의 책에 빗대어 표현한다면 '인물유산답사기'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고, 우리 주변에는 어딜 가나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많은 법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 시대를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과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방외지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도 한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인생의 기본적 질문들에 대해서도 우리들과 다른 답을 제시하며 독특한 일을 하고 있는 인생고수들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족보학 연구자, 묵방산 산지기, 오디오 마에스트로, 전업문필가, 미국의 태권도 대부 등 다양하다. 저자는 이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삶의 지향점을 들어보고 그들의 삶과 철학을 전해준다. 자기분야에서 30~40년 동안 내공을 쌓은 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라 자세히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 분위기는 쉽게 느낌이 온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 중에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있어서 그 분위기가 쉽게 다가온다. 저자는 한 우물을 파고 살아가는 재야 고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천문, 지리, 인사 등에 관련된 강호동양학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순한 기인의 스토리를 넘어 우리의 정신문화와 고유 문화 콘텐츠의 발굴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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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고수기행 조용헌 미래프린팅/2009.4.20. sanbaram
우리 사회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수많은 고수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런데 각종 고수 중에 좀 더 독자성이 강한 고수들을 찾아 그들의 삶과 인생관 등을 찾아내 <조용헌의 고수기행>이라는 책을 내었다. 저자는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민속학을 전공하여 불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따. 재야 고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천문, 지리, 인사에 관한 강호동양학의 3대 과목을 한국 고유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 <조용헌의 사찰기행>, <5백년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방외지사> 등이 있다.
<조용헌의 고수기행>에서는 고수란, 자기분야에 열심히 몰두하되 스스로 즐거움과 의미를 찾고, 나아가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저자는 정의 한다. 강호학의 삼대 과목은 사주, 풍수, 한의학이다. 사주는 천시를 포착하는 학문이고, 풍수는 지리를 탐색하는 학문이며, 한의학은 인사를 다루는 학문이다. 이 중에 한의학의 고수로 꼽은 이가 서울공대 출신의 한의학 전문가 이의원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분야의 고수 열 명을 소개한다. 족보학 연구가 서수용, 묵방산 산지기 이우원, 컴퓨터와 사주의 크로스오버 김상숙, 전엽 문필가 이덕일, 자연을 퍼주는 독지가 변동해, 뼈대 있는 신선 정재승, 오디어 마에스트로 일명스님, 미국의 태권도 대부 이준구, 비전 전문 명상가 한바다. 등이 그들이다.
족보학 연구가 서수용 “조선 후기 세도는 경상도 사람이 누린 것이 아니고 서울의 장동에 살던 장동 김씨 집안이 누렸다는 것, 많은 호남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도 이 대목을 착각하기 때문에 경상도 사람이 다 해 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 돌이켜보면 근대 이전의 조선 후기는 경상도가 탄압을 받았던 셈이고 경상도 사람이 지역적 차별을 받고 소외를 당했던 역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p.21)” 안동 일대에서 손꼽는 명문이 퇴계 선생의 진성 이씨, 서애 유성룡의 풍산 유씨, 학봉 김성일의 의성 김씨 집안이다. 의성김씨 학봉파 후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선 숙종조 이후 이 집안에서 가장 높게 올라간 벼슬이 참의라고 한다. 참의라고 하면 지금의 차관보에 해당한다. 판서가 장관이고, 참판이 차관이라면, 참의는 그 아래의 차관보에 해당한다. 이처럼 조선후기 정치사는 지역 차별의 정치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차별 기간이 대략 200년 이었다. 요즈음 호남 차별이 35년 이었다면, 조선 후기 영남 차별은 200년이었다는 것이다.
묵방산 산지기 이우원 “불교에서는 서방에 아미타불이 계신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신 절에서는 그 건물의 방향이 서쪽을 향하고 있다. 석양은 평화와 안식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양의 온전한 모습을 바라보기는 어렵다. 한낮의 태양은 눈이 부셔서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저녁노을은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태양은 서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지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p.57)” 이것이 자비다. 아미타불은 이 자비이고, 태양이 아닐까. 물론 나의 개인적인 해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해남 달마산의 미황사 대웅전 뒤의 축대에서 바라보면, 섬들 사이로 아름다운 노을이 넘어간다. 변산 월명암 뒤로 올라가면 바위 절벽에 낙조대가 있고, 이 낙조대의 석양도 일품이다.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석양도 유명하다고 한다. 묵방산 산지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산천의 정기를 받으며 수련에 매진하기 위하여 이 시대 마지막 산지기가 되갈 자청하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와 대중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전문문필가 이덕일 “내가 보기에 실증주의 사관에 기반한 식민주의 사관이 지닌 문제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공간이 축소되는 문제이고, 둘째는 시간이 축소되는 문제이다. 식민주의 사관으로 가다 보면 우리 역사의 공간과 시간이 축소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돌파하고 싶다. 실증주의 사관은 결국 축소지향의 사관에 가 닿고 만다. 나는 여기에 도전하고 싶고, 이 도전이 곧 나의 사관이기도 하다.(p.107)” 시간의 축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단군조선도 실증주의를 빙자한 식민사관의 관점에서 보면 인정될 수 없다. 단군조선을 부정하면 고조선은 사라지고 만다. 고조선에는 세 부분이 있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그것이다. 이 가눙데 현재 위만조선만 우리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위만조선만 인정하게 되면 중국이 내세우는 동북공정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동북공정이 무엇인가. 바로 만주지역은 물론 북한까지 중국역사로 포함시켜 북한 정권이 붕괴되면 어용정권을 세워 북한을 접수하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는 전략적인 사관이다. 즉 위만조선의 도읍지가 평양에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우리의 역사를 한반도 안에 가둬놓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의 중심 무대는 만주였지 한반도가 아니었다. 기존의 실증주의 사관에 의하면 한국 역사의 무대는 한반도였지 만주가 아니었다. p.108
“인조반정이 잘못된 쿠데타였다는 것이다. 일어나서는 안 될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에서 노론으로 이어지는 집권세력은 결국 나라를 망쳐 먹었다. 문제는 노론 명문가에서 독립운동가가 나온 적이 없다는 점이다. 남인과 소론이 독립운동을 했지, 노론은 없다.(p.109)” 갑신정변의 김옥균 등은 노론이기는 하지만, 노론좌파에 해당하는 세력이었다. 주류인 노론 우파가 아니었다. 그나마 개혁적이었던 노론 좌파마저 갑신정변에 실패하고 거세되자, 그 후 노론은 현실타협 쪽으로 나아간다. 아니 오히려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섰다. 인조반정의 주도세력인 서인과 그 후신들인 노론은 일제의 친일파와 연결된다. 이때의 친일파는 1910년 10월 총독부에서 수여한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들이다. 이른바 ‘공후백자남’이 그들이다. 왕족들과 이완용을 비롯한 일흔 여섯 명이 작위를 받았는데, 90퍼센트가 노론이다. 우리가 친일파라고 할 때 그 핵심 범위는 이들 작위를 받은 일흔여섯 명이다. 이들이 정말 문제라고 이덕일은 말한다.
한민족이 중심이 되는 몽골리안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비전 전문 명상가 한바다 “물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나와 물소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다. 마음의 움직임이 멎으면서 내면세계가 열린다. 이것을 본래 마음을 회복한다고 표현한다. 내단학에서 말하는 수승화강도 이러한 상태를 가리킨다. 계곡에서 철철철 흐르는 물소리를 계속해서 듣다보면 번뇌가 씻긴다. 번뇌가 씻기면 마침내 우리의 깊은 마음이 드러난다.(p.267)” 물소리를 듣는 것은 마음의 때를 벗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목욕이 중요한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지금처럼 매일 목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목욕이 갖는 의미는 매우 깊었다. 목욕은 성스러운 행사에 가까웠다. 마음의 때를 벗기고 거듭 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진정힌 의미이기도 하다. 정신적인 목욕이 곧 물소리를 듣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이 외에도 컴퓨터에 사주의 모든 것을 547번의 업그레이드로 데이터를 완성해 가는 김상숙, 편백나무 흙집을 지어 지인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하여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독지가 변동해, 가다보면 알게 되고, 하다보면 깨닫게 된다는 신념을 갖고 한국의 신선사상의 맥을 이어오는 정재승, 잡음을 걷어내고 참 소리를 길어 올리려는 일념으로 평생을 바쳐온 오디오 마에스트로 일명스님, 음과 양의 조화에서 만병의 이치를 깨닫고 현세에 그 깨달음을 전하고 아픈 이를 치유해주는 서울공대출신의 한의학 전문가 이의원, ‘진(眞), 미(美), 애(愛)의 태권도 정신으로로 아메리칸 드림을 격파하고 민간 외교관 역할을 40여년 해온 미국의 태권도 대부 이준구. 등이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고수들이다. 누구 하나 자기 길을 평생 걷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 30-40년을 매진해야 자세가 잡힌다는 말이 실감 난다. 우리나라에 고수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궁금한 사람들이 읽는다면 여러 가지로 얻는 바가 많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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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점성학에서 한의학의 이치를 발견하다 나는 그 강의 속에서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이 공기의 신, 불의 신, 흙의 신, 물의 싣들로 나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를 소개하는 슬라이드를 통하여 불을 하늘에서 훔쳐다가 땅에 전해주었다는 프로메테우스의 사나운 모습이 마치 성난 소양인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했다. 포도주와 향연의 신 디오니소스가 질탕하게 먹고 마시고 남근을 드러낸 채 늘어지게 잠자는 모습에서 순간 식색을 즐기는 태음인의 모습을 연상했다. 물 위로 솟아오르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수줍은 듯한 아름다운 자태는 용모 단정한 소음인을 떠올리게 됐다. 점성학에서는 하늘의 12좌의 별자리를 각각 공기 기운, 불 기운, 흙기운, 물 기운에 따라 세 자리씩 나누는데, 별자리도 크게 사대 가운데 따라 나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강의를 맡은 한 점성학자가 ‘사대 기운에 따른 별자리의 성질과 그 기운과 교감이 되어 태어난 사람들이 어떤 기질을 가지며,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라는 점성학적 기질론과 인식론을 설명했다. 그것은 내가 한ㄴ국에서 본 홍순용 선생이나 노정우 선생의 사상인 설명과 아주 비슷했으며,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체계적이고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점성학에서 보는 정신병리학적 측면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점성학이 심오한 우주관과 인간관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의사 노릇은 고사하고 자신이 누구이며 무슨 생각을 왜 하는지도 모르는 채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매달려 깜빡깜빡하다가 한세상 관광여행이 끝나버린다는 것이었다.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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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학을 통해 영호남 지역감정의 뿌리를 캐다 조선 후기 세도는 경상도 사람이 누린 것이 아니고 서울의 장동에 살던 장동 김씨 집안이 누렸다는 것, 많은 호남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도 이 대목을 착각하기 때문에 경상도 사람이 다 해 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 돌이켜보면 근대 이전의 조선 후기는 경상도가 탄압을 받았던 셈이고 경상도 사람이 지역적 차별을 받고 소외를 당했던 역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21 안동 일대에서 손꼽는 명문이 퇴계 선생의 진성 이씨, 서애 유성룡의 풍산 유씨, 학봉 김성일의 의성 김씨 집안이다. 의성김씨 학봉파 후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선 숙종조 이후 이 집안에서 가장 높게 올라간 벼슬이 참의라고 한다. 참의라고 하면 지금의 차관보에 해당한다. 판서가 장관이고, 참판이 차관이라면, 참의는 그 아래의 차관보에 해당한다. p.22 조선후기 정치사는 지역 차별의 정치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차별 기간이 대략 200년 이었다. 요즈음 호남 차별이 35년 이었다면, 조선 후기 영남 차별은 200년이었다. p.22 안동김씨와 영남 유림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장김’쪽에서 서원을 세우지 못했다. 서수용 선생이 이야기한 것처럼 노론 정권과 남인의 영남(안동) 유림의 대결이 심했던 것 같다. 안동의 유림들이 정권에 대항해 거세게 저항했다.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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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고수기행 조용헌 미래프린팅/2009.4.20.
우리 사회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수많은 고수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런데 각종 고수 중에 좀 더 독자성이 강한 고수들을 찾아 그들의 삶과 인생관 등을 찾아내 <조용헌의 고수기행>이라는 책을 내었다. 저자는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민속학을 전공하여 불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따. 재야 고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천문, 지리, 인사에 관한 강호동양학의 3대 과목을 한국 고유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 <조용헌의 사찰기행>, <5백년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방외지사> 등이 있다.
<조용헌의 고수기행>에서는 고수란, 자기분야에 열심히 몰두하되 스스로 즐거움과 의미를 찾고, 나아가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저자는 정의 한다. 강호학의 삼대 과목은 사주, 풍수, 한의학이다. 사주는 천시를 포착하는 학문이고, 풍수는 지리를 탐색하는 학문이며, 한의학은 인사를 다루는 학문이다. 이 중에 한의학의 고수로 꼽은 이가 서울공대 출신의 한의학 전문가 이의원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분야의 고수 열 명을 소개한다. 족보학 연구가 서수용, 묵방산 산지기 이우원, 컴퓨터와 사주의 크로스오버 김상숙, 전엽 문필가 이덕일, 자연을 퍼주는 독지가 변동해, 뼈대 있는 신선 정재승, 오디어 마에스트로 일명스님, 미국의 태권도 대부 이준구, 비전 전문 명상가 한바다. 등이 그들이다.
족보학 연구가 서수용 “조선 후기 세도는 경상도 사람이 누린 것이 아니고 서울의 장동에 살던 장동 김씨 집안이 누렸다는 것, 많은 호남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도 이 대목을 착각하기 때문에 경상도 사람이 다 해 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 돌이켜보면 근대 이전의 조선 후기는 경상도가 탄압을 받았던 셈이고 경상도 사람이 지역적 차별을 받고 소외를 당했던 역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p.21)” 안동 일대에서 손꼽는 명문이 퇴계 선생의 진성 이씨, 서애 유성룡의 풍산 유씨, 학봉 김성일의 의성 김씨 집안이다. 의성김씨 학봉파 후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선 숙종조 이후 이 집안에서 가장 높게 올라간 벼슬이 참의라고 한다. 참의라고 하면 지금의 차관보에 해당한다. 판서가 장관이고, 참판이 차관이라면, 참의는 그 아래의 차관보에 해당한다. 이처럼 조선후기 정치사는 지역 차별의 정치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차별 기간이 대략 200년 이었다. 요즈음 호남 차별이 35년 이었다면, 조선 후기 영남 차별은 200년이었다는 것이다.
묵방산 산지기 이우원 “불교에서는 서방에 아미타불이 계신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신 절에서는 그 건물의 방향이 서쪽을 향하고 있다. 석양은 평화와 안식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양의 온전한 모습을 바라보기는 어렵다. 한낮의 태양은 눈이 부셔서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저녁노을은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태양은 서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지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p.57)” 이것이 자비다. 아미타불은 이 자비이고, 태양이 아닐까. 물론 나의 개인적인 해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해남 달마산의 미황사 대웅전 뒤의 축대에서 바라보면, 섬들 사이로 아름다운 노을이 넘어간다. 변산 월명암 뒤로 올라가면 바위 절벽에 낙조대가 있고, 이 낙조대의 석양도 일품이다.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석양도 유명하다고 한다. 묵방산 산지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산천의 정기를 받으며 수련에 매진하기 위하여 이 시대 마지막 산지기가 되갈 자청하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와 대중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전문문필가 이덕일 “내가 보기에 실증주의 사관에 기반한 식민주의 사관이 지닌 문제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공간이 축소되는 문제이고, 둘째는 시간이 축소되는 문제이다. 식민주의 사관으로 가다 보면 우리 역사의 공간과 시간이 축소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돌파하고 싶다. 실증주의 사관은 결국 축소지향의 사관에 가 닿고 만다. 나는 여기에 도전하고 싶고, 이 도전이 곧 나의 사관이기도 하다.(p.107)” 시간의 축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단군조선도 실증주의를 빙자한 식민사관의 관점에서 보면 인정될 수 없다. 단군조선을 부정하면 고조선은 사라지고 만다. 고조선에는 세 부분이 있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그것이다. 이 가눙데 현재 위만조선만 우리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위만조선만 인정하게 되면 중국이 내세우는 동북공정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동북공정이 무엇인가. 바로 만주지역은 물론 북한까지 중국역사로 포함시켜 북한 정권이 붕괴되면 어용정권을 세워 북한을 접수하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는 전략적인 사관이다. 즉 위만조선의 도읍지가 평양에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우리의 역사를 한반도 안에 가둬놓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의 중심 무대는 만주였지 한반도가 아니었다. 기존의 실증주의 사관에 의하면 한국 역사의 무대는 한반도였지 만주가 아니었다. p.108
“인조반정이 잘못된 쿠데타였다는 것이다. 일어나서는 안 될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에서 노론으로 이어지는 집권세력은 결국 나라를 망쳐 먹었다. 문제는 노론 명문가에서 독립운동가가 나온 적이 없다는 점이다. 남인과 소론이 독립운동을 했지, 노론은 없다.(p.109)” 갑신정변의 김옥균 등은 노론이기는 하지만, 노론좌파에 해당하는 세력이었다. 주류인 노론 우파가 아니었다. 그나마 개혁적이었던 노론 좌파마저 갑신정변에 실패하고 거세되자, 그 후 노론은 현실타협 쪽으로 나아간다. 아니 오히려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섰다. 인조반정의 주도세력인 서인과 그 후신들인 노론은 일제의 친일파와 연결된다. 이때의 친일파는 1910년 10월 총독부에서 수여한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들이다. 이른바 ‘공후백자남’이 그들이다. 왕족들과 이완용을 비롯한 일흔 여섯 명이 작위를 받았는데, 90퍼센트가 노론이다. 우리가 친일파라고 할 때 그 핵심 범위는 이들 작위를 받은 일흔여섯 명이다. 이들이 정말 문제라고 이덕일은 말한다.
한민족이 중심이 되는 몽골리안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비전 전문 명상가 한바다 “물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나와 물소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다. 마음의 움직임이 멎으면서 내면세계가 열린다. 이것을 본래 마음을 회복한다고 표현한다. 내단학에서 말하는 수승화강도 이러한 상태를 가리킨다. 계곡에서 철철철 흐르는 물소리를 계속해서 듣다보면 번뇌가 씻긴다. 번뇌가 씻기면 마침내 우리의 깊은 마음이 드러난다.(p.267)” 물소리를 듣는 것은 마음의 때를 벗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목욕이 중요한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지금처럼 매일 목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목욕이 갖는 의미는 매우 깊었다. 목욕은 성스러운 행사에 가까웠다. 마음의 때를 벗기고 거듭 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진정힌 의미이기도 하다. 정신적인 목욕이 곧 물소리를 듣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이 외에도 컴퓨터에 사주의 모든 것을 547번의 업그레이드로 데이터를 완성해 가는 김상숙, 편백나무 흙집을 지어 지인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하여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독지가 변동해, 가다보면 알게 되고, 하다보면 깨닫게 된다는 신념을 갖고 한국의 신선사상의 맥을 이어오는 정재승, 잡음을 걷어내고 참 소리를 길어 올리려는 일념으로 평생을 바쳐온 오디오 마에스트로 일명스님, 음과 양의 조화에서 만병의 이치를 깨닫고 현세에 그 깨달음을 전하고 아픈 이를 치유해주는 서울공대출신의 한의학 전문가 이의원, ‘진(眞), 미(美), 애(愛)의 태권도 정신으로로 아메리칸 드림을 격파하고 민간 외교관 역할을 40여년 해온 미국의 태권도 대부 이준구. 등이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고수들이다. 누구 하나 자기 길을 평생 걷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 30-40년을 매진해야 자세가 잡힌다는 말이 실감 난다. 우리나라에 고수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궁금한 사람들이 읽는다면 여러 가지로 얻는 바가 많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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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학을 통해 영호남 지역감정의 뿌리를 캐다 조선 후기 세도는 경상도 사람이 누린 것이 아니고 서울의 장동에 살던 장동 김씨 집안이 누렸다는 것, 많은 호남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도 이 대목을 착각하기 때문에 경상도 사람이 다 해 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 돌이켜보면 근대 이전의 조선 후기는 경상도가 탄압을 받았던 셈이고 경상도 사람이 지역적 차별을 받고 소외를 당했던 역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21 안동 일대에서 손꼽는 명문이 퇴계 선생의 진성 이씨, 서애 유성룡의 풍산 유씨, 학봉 김성일의 의성 김씨 집안이다. 의성김씨 학봉파 후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선 숙종조 이후 이 집안에서 가장 높게 올라간 벼슬이 참의라고 한다. 참의라고 하면 지금의 차관보에 해당한다. 판서가 장관이고, 참판이 차관이라면, 참의는 그 아래의 차관보에 해당한다. p.22 조선후기 정치사는 지역 차별의 정치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차별 기간이 대략 200년 이었다. 요즈음 호남 차별이 35년 이었다면, 조선 후기 영남 차별은 200년이었다. p.22 안동김씨와 영남 유림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장김’쪽에서 서원을 세우지 못했다. 서수용 선생이 이야기한 것처럼 노론 정권과 남인의 영남(안동) 유림의 대결이 심했던 것 같다. 안동의 유림들이 정권에 대항해 거세게 저항했다.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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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신사의 중심을 잡아온 선교의 맥 유교와 불교는 중국을 통해서 받아들였지만, 선도만큼은 중국에 빚진 것이 없다. 오히려 조선이 원조라고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신선도는 동이족이 처음 시작했다고 여긴다. 단군을 비조로 모신다. 이런 면에서 선도는 매우 자주적이다. 또한 북창은 한국의 ‘문헌설화’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인설화>를 보면, 북창의 등장 빈도가 가장 높다. 그만큼 북창은 한국 사람의 심성 바닥에 이인으로 깊게 각인되어 있다. p.161 도교의 정기신 체계가 의서인 <동의보감>에 포함된 이유는, 선도의 집안 출신으로 의술에 조예가 깊었던 고옥 정작의 영향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정작이 평소에 흠모했던 믄형님 북창 정렴으로부터 전수받은 내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작은 수암 박지화와 친했고, 역시 방외지사였던 남사고와도 자주 어울렸다. 정작이 남사고와 함께 자신의 고향집이 있는 경기도 양주의 사정동에 간 시가 현재 남아 있다. 한다리 건너면 북창, 고옥, 수암, 미수, 남사고, 허균잉 거의 동시대에 연결된다. 이렇게 높고 보면 <동의보감>에는 조선 선도파의 내공과 함께 낭가 집안인 온양 정씨 집안의 가학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셈이다. p.166 봉우선생은 열일곱 살 때 상신리에 들어왔다. 백제때부터 절이 있었는데 계속 불이 나서 오래 유지되지를 못했다. 일설에는 단군을 비롯하여 토속신앙이 강한 터라고 알려져 있다. 수구가 막혀 있어서 일체의 외부 소음이 들리지 않아서 좋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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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대출신의 한의학 전문가 이의원
강호학의 삼대 과목은 사주, 풍수, 한의학이다. 사주는 천시를 포착하는 학문이고, 풍수는 지리를 탐색하는 학문이며, 한의학은 인사를 다루는 학문이다. p.208 눈이 작다. 눈이 작으면 북방계로 분류되는데, 북방계는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추억이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게 마련이다. 유목민의 유전자를 받은 사람들은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힘이 있다. 바깥으로 뛰쳐나가야 강호의 학문을 섭렵할 수 있다는 게 그동안의 나의 경험이다. p.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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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 10년은 파야 어설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세상 살면서 편하게만 살고 가면 뒤에 남는 작품이 없다. 고생하고 살아야 뭘 남기고 가는 경우를 번번이 발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이 전남 강진이라는 촌구석에서 18년 동안 고생하고 있었을 때, 당시 조정에서 호의호식하던 고관대작들은 모두 역사에서 잊혀졌다. 거명되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지만 강진과 흑산도에서 고생하던 다산 형제는 역사에 남았다. 이게 역사의 진리다. p.113 1차 원자료에 해당하는 자료 가운데 재미있는 게 <추안급국안(椎案及鞠案)>이다. 조선시대 의금부에서 반체제 사건을 수사, 취조한 기록이다. 선조때부터 조선 말까지 거의 300년 동안 작성한 수사 기록이다. 서른 권 분량으로 영인이 되어 있는데, 아직 번역되어 있지 않다. 내용은 순한문으로 중간중간에 이두가 섞여 있어서 따로 이두 공부를 해야 정확한 해독이 가능하다. 그런데 반체제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내용은 아주 흥미롭다. p.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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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사니 산지기요, 산이 먹여살려주니 산지기다 불교에서는 서방에 아미타불이 계신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신 절에서는 그 건물의 방향이 서쪽을 향하고 있다. 석양은 평화와 안식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양의 온전한 모습을 바라보기는 어렵다. 한낮의 태양은 눈이 부셔서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저녁노을은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태양은 서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지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자비다. 아미타불은 이 자비이고, 태양이 아닐까. 물론 나의 개인적인 해석이다. p.57 해남 달마산의 미황사 대웅전 뒤의 축대에서 바라보면, 섬들 사이로 아름다운 노을이 넘어간다. 변산 월명암 뒤로 올라가면 바위 절벽에 낙조대가 있고, 이 낙조대의 석양도 일품이다.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석양도 유명하다. p.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