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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 신의 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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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타워'를 읽었다. 멋진 입담과 개성있는 인물들, 그 인물들이 던지는 유쾌한 대사.나는 보통 한국 소설을 한 권 잡으면 하룻밤에 몽땅 읽는다. 그래서 재미있는 소설을 볼 때는 조심스레 아껴서 조금씩 조금씩 읽는다. 마치 아기가 아이스크림을 먹듯이.'타워'가 그런 책이었다. 달콤하고 시원하며, 읽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그런 책.나는 아이스크림을 먹듯이 조심스레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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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타워'를 읽었다. 멋진 입담과 개성있는 인물들, 그 인물들이 던지는 유쾌한 대사.
나는 보통 한국 소설을 한 권 잡으면 하룻밤에 몽땅 읽는다. 그래서 재미있는 소설을 볼 때는 조심스레 아껴서 조금씩 조금씩 읽는다. 마치 아기가 아이스크림을 먹듯이.
'타워'가 그런 책이었다. 달콤하고 시원하며, 읽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그런 책.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듯이 조심스레 책을 읽어 나갔고 어느샌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됐을 때는 아쉬움에 책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기도 했다. 과자 부스러기가 조금 남지 않았나 하는 마음으로 봉지를 뒤적이는 것처럼.

'타워'를 읽고 배명훈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너무 큰 기대를 한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한다. '타워'에 반도 못 미치는 작품이다. 서사의 논리가 너무 빈약하다. 한 번씩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화 장면도 몇 번있다. 하고 싶은 설명을 몇 번에 걸쳐서 하는 부분도 읽기가 거북했다. 묘사도 배명훈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유치했다. 그리고 소설 곳곳에 배여 있는 3류 무협소설 같은 구조. 아껴서 읽을 필요가 없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너무 방대하고 깊은 소재를 다뤄 작가가 버겨워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쓸데 없는 가지를 자르고 곳곳에 나 있는 잡초를 뽑아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굳이 2권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 권으로 깔끔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게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배명훈은 역시 배명훈이라는 것이다. 메가톤 급의 상상력은 가히 한국 최고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배명훈씩의 유머는 빵!빵! 터지지는 않지만 일관성 없는 서사를 조금 진정시키는 역활을 한다. 조금은 유치하다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웅대한 스케일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의 궤도'라는 거창한 제목답게 신과 우주와 존재를 아우르는 작가의 철학이 돋보인다.

제 2의 '김언수'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인 거 같다. 방대한 스케일에 걸맞는 세련된 서사가 아쉽다.

j******3 2011.09.01.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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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궤도] 궤도 이탈의 증후, 아쉽다
"[신의 궤도] 궤도 이탈의 증후, 아쉽다" 내용보기
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렸다. <타워>, <안녕, 인공존재>에서 보여줬던배명훈의 압도적인 서사. 낯섦과 새로움이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소설 읽는 행위, 그 재미가 남달랐으므로. <신의 궤도> 속 빨간 비행기, 하얀 비행기를가슴에 품었다. 감히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우주적 존재들의 시원 찾기.결론부터 말하자면, 느슨하다.작가의 말에서 보듯, '자신에게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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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렸다. <타워>, <안녕, 인공존재>에서 보여줬던
배명훈의 압도적인 서사. 낯섦과 새로움이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소설 읽는 행위, 그 재미가 남달랐으므로. <신의 궤도> 속 빨간 비행기, 하얀 비행기를
가슴에 품었다. 감히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우주적 존재들의 시원 찾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느슨하다.

작가의 말에서 보듯, '자신에게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했다.
그렇다. '자신에게는'이다. 이 소설의 모티프가 된 우주 탐사선 실패 프로젝트들,
유목민 문화, 그리고 <타워>에서 미진했던 캐릭터에 힘을 실어주는 것.
이 모든 것의 총합이 <신의 궤도>인 셈인데, 뭔가 뭉쳐지지 않는 느낌이다.

은경과 나물 수사를 둘러싼 캐릭터와 공간들이 '카메오' 출현하듯 반짝하고 만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일까? 사건과 사건의 간극, 캐릭터가 형성되는 과정이
많은 부분 생략되거나, 비약된다. 외려 지금 분량의 절반 정도로 압축하여 써내려갔다면
어땠을까. 사족(작가 입장에서는 절대 아니겠지만)은 과감히 떨어내고
등장인물들의 가지치기가 일부 됐다면 훨씬 속도감 있는 서사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족한다.

'배명훈'이란 특출난 작가를 띄우기 위한 문학동네의 마케팅 또한 과하지 않았나 싶다. 
박완서, 신경숙, 윤대녕이란 당대 최고 소설가들의 헌사들이 공허한 울림이 되지 않으려면,
작품으로 그것을 말해야 한다. '베스트셀러는 만들어진다'는 속설을 배명훈 작가가
깨뜨렸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첫 장편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이 젊은 작가에게 눈길을 거둘 수 없는 이유는 존재의 근원적 탐구와
그것을 향해 힘있는 서사로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기 때문이다. 단편에서 보여줬던
압도적인 힘을, 긴 서사의 호흡에 잘 벼린다면 분명, '우주 최고의 소설'이란
타이틀(?)에 값하는 작품이 나오리라 싶다. 

특히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축 비행기'는 꽤나 인상적이다.
모든 물성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그의 따뜻한 상상력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 <타워>를 재독한 이후에 <신의 궤도>로 다시 진입할까 한다.

어쩌면, 그를 제대로 이해 못한 나의 독서력 부족일 수도 있으니.



t******2 2011.09.05.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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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광년 떨어진 세계에 냄새와 질감을 입히다니.
"수십 광년 떨어진 세계에 냄새와 질감을 입히다니." 내용보기
배명훈은 세계에 대해 쓰는 작가다. 그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너무나 정교하다.맞물리지 않는 곳 하나 없이 정교해서, 우리는 종종 그가 세계를 썼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고 그의 책에 몰입하게 된다. 머리를 담그는 순간 아주 이질적이면서 또 바로 여기인 세계... 나니예가 그랬다. 수십 광년 떨어진, 가상의 그 공간은 너무나 비비드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은경이가 성전에 들어섰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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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은 세계에 대해 쓰는 작가다.

그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너무나 정교하다.

맞물리지 않는 곳 하나 없이 정교해서, 우리는 종종 그가 세계를 썼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고

그의 책에 몰입하게 된다. 머리를 담그는 순간 아주 이질적이면서 또 바로 여기인 세계...

나니예가 그랬다.

수십 광년 떨어진, 가상의 그 공간은 너무나 비비드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은경이가 성전에 들어섰을 때,

내 코 끝에선 먼지 냄새가 났다.

나물이가 그려놓은 논문에서 날리는 가루들이 느껴졌다.

가축 비행기는 또 어떤가. 가축 비행기들이 나니예의 적도를 지날 때,

금속 날개의 온기를 알 것만 같았다.

어쩐지 광택제 냄새가 날 것만도 같았다. 그들은 비행기들을 사랑하니까, 발라줬겠지.

뜨거워진 왁스 냄새, 풀 냄새.

우주왕복선의 진동도, 진동이 가시고 난 다음의 순간도.....
 
세계가 아주 정교해지면 감각으로 다가온다.


더 늦게 출발한, 그러나 더 발달한 문명이 우주선을 앞지를 때,

그 우주선이 느낄 아연함을 배명훈은 안다.

배명훈을 읽으면서 아찔함을 느끼지 않기는 쉽지 않겠다.

c******u 2011.09.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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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그 자체에 대한 거대한 담론 - 신의 궤도 -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거대한 담론 - 신의 궤도 -" 내용보기
※ 엄청 길고 두서도 없고, 제가 써놓고도 뭔말인지 모르겠으니... 그냥 제 팬픽이나 보고 가셔요. ㅎㅎㅎ  http://cafe.naver.com/mhdn/29826           SF란 무엇일까??Science- Fiction. 우리는 이런 단어로 부르지만, 그 아래 카테고리에 Space Opera 라는 항목이 추가되면서 SF 는 Science- Fantasy라 불러도 무방하게 되었다. 실제로 최근의 흐름은 SF와 Fantasy를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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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 길고 두서도 없고, 제가 써놓고도 뭔말인지 모르겠으니...

그냥 제 팬픽이나 보고 가셔요. ㅎㅎㅎ

 http://cafe.naver.com/mhdn/29826

 

 

 

 

 

SF란 무엇일까??
Science- Fiction. 우리는 이런 단어로 부르지만, 그 아래 카테고리에 Space Opera 라는 항목이 추가되면서 SF 는 Science- Fantasy라 불러도 무방하게 되었다. 실제로 최근의 흐름은 SF와 Fantasy를 큰 범주 안에서 함께 묶는 경우가 많고 어슐러 K 르귄이나 로저 젤라즈니 같은 2세대 SF작가들은 실제로 SF 소설과 Fantasy 소설을 모두 써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스티븐 킹이나 리처드 매드슨과 같은 소위 '장르소설 전문' 스토리 텔러들도 SF경향을 가진 Fantasy 혹은 Fantasy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SF를 쓰곤 했다. 완벽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의 특성상 SF는 Fantasy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일례로 장르 문학쪽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휴고상' 은 SF와 Fantasy를 크게 나누지 않고 후보군을 선정하곤 한다.  그렇다고 애써 그 둘을 분류하려는 이들을 반대하거나 타박할 생각은 없다. 장르는 단순히 구분, 분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경향 자체가 현실과 상상을 자유로이 오가고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어내며 장르의 파괴를 넘어선 장르간의 융합이라는 색채가 뚜렷하기 때문에, 애초에 장르문학과 순문학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아져 버렸다. 이런 와중에 틀을 만들고 규칙을 만들어서 SF와 Fantasy를 끼워 맞추는 식의 구분이나 분류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눈 먼 자들의 도시] 같은 작품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모든 사람이 순식간에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다는 설정은 모든 사람이 순식간에 갑자기 좀비가 된다는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 와 어떤 틀과 기준으로, 어떤 방식으로 구분해 낼 것인가? 모든 사람이 장님이 되는 바이러스와 모든 사람이 좀비가 되는 바이러스? 눈이 머는 것과 좀비가 되는것? 그 두 현상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눈 먼 자들의 도시] 는 극한의 상황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인간 사회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 중심이고, [나는 전설이다] 또한 극한의 상황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인간사회의 본질을 찾아내려 하는 것이다. 눈이 머는것과 좀비가 되는 것은 작가가 자신이 진짜 하고픈 이야기를 하기 위한 무대와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정작 스토리 텔러들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이야기' 를 할 뿐이다. 독자들은 그것을 즐기면 될 뿐. 한국 작가들의 SF는 어쩌고, Fantasy는 어쩌고, 블라블라 떠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작가가 자신의 과학적 상상력을 얼마나 조화롭고 설득력있게 이야기속에 녹여내는지, 그리고 그 속에 진짜 작가가 하고픈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 - 물론, 이야기가 아닌 곁가지, 작가가 어떤 발상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지를 찾아내고 발견하는 과정 또한 상당히 재미있는 것임을 인정한다. 댄 시먼스의 [히페리온]에서는 광대한 우주를 여행하기 위한 일종의 텔레포트 포털 같은 것이 존재한다. 거대한 저택에 문들이 있는데, 그 문들은 모두 각각 다른 은하계, 다른 행성의 별장과 연결되어 있다. 문제는 이 텔레포트 포털의 문을 유지하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는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작가는 자신의 무한한 상상력을 구체화 시키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져 있는 사회를 상상해낸다.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인간을 설득력있게 그려낸다. 물론 [히페리온] 의 이야기 속에서 이 문이 뭔가 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아니, 포털을 통해 은하계를 넘나든다는 설정도 큰 역할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작가의 구체적인 상상의 세계를 찾아내고, 작가가 설정해 놓은 나름의 원리를 깨닫고, 그런 것들을 이용하는 사회와 그 안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엄청난 즐거움이다.

 

 과연 이 작가는 왜 이런 세상속에서 이야기를 해야 했을까? 현실을 놔두고, 현실이 투영된 가상세계를 그려야 했을까? 과거, 혹은 미래. 과학이 엄청나게 진보하거나, 혹은 알 수 없는 사건으로 문명이 엄청나게 퇴보하거나. 필립 k 딕은 왜 핵전쟁으로 멸망하여 방사능에 오염된 지구를 그려야 했을까? 어슐러 르 귄은 왜 황량한 행성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동체를 그려야 했을까? 왜 꼭 우주일까? 왜 꼭 미래일까? 왜 복제인간? 왜 안드로이드? 왜 꼭 외계인이어야 했을까?

 진짜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영화 [인셉션] 에서는 꿈 속 세계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타인의 꿈 속 세계에 들어가보면, 꿈을 꾸는 사람의 무의식이 구현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무의식은 통제할 수 없다. 수많은 인종, 다양한 연령대, 남녀구분 없이 수많은 '사람' 들이 등장한다. 인셉션이 그려낸 누군가의 꿈 속 세계는 한 명의 작가가 그려내는 소설과 닮아있다. 작가의 내면 속에서 재구성된 수많은 사람들. 작가의 의식, 혹은 무의식이 투영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얽히고 설켜 거대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런 그들이 왜 현실이 아닌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낯선 세상에 던져져야 했을까?

 작가는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했을까?

 

 [신의 궤도] 는 그런 수많은 질문들을 떠올리며 읽으면 훨씬 즐겁게 읽어낼 수 있다.

이 작품은 고전적으로 활용되오던 수많은 클리셰들의 집합인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시도이다. 셰익스피어때부터 되풀이 되어 온 출생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 왕좌를 노리는 치열한 암투, 그리고 신에 대한 갈망과 현실에서의 탈출은 물론, 조선시대 김만중의 '구운몽' 과 워쇼스키의 영화 '매트릭스' 까지 망라한다. 물론 '라 파이예트' 와 '스타워즈' 를 능가하는 화려한 공중전과, 제 2차 세계대전을 연상케하는 전쟁과정 또한 매우 디테일하고 심도깊다. 책의 반 정도는 공중전을 그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수많은 전투기들의 기동이 솔직히 머릿속에 그렇게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워낙 많은 수의 전투기들과 편대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마치 저자의 단편인 [변신합체 리바이어던] 이 떠오른다. (여담이지만 확실히 배명훈 작가는 '어마어마한 숫자' 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

 

 저자인 배명훈 작가도 '자신이 재미있을 만한 모든 소재를 넣었다' 고 했는데, 과언이 아니다. 그래, 현존하는 좋은 플롯들의 총 합인 동시에 완벽한 해체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대단히 통속적이면서도 황당할 정도로 신선하고, 엄청나게 쉽게 읽히면서도 상당히 어려운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작품의 프롤로그라고 할만한 첫 챕터부터 통속적이고 신선하다.

인공위성 사업을 하는 거대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주의 서자인 김은경. 적자인 경라에게 살해위협을 당하게 된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선택지는 비행. 바로 하늘이었다. 비행기 조종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은경. 하지만, 경라의 음모로 그녀는 동면되어버리고, 이야기는 순식간에 십오만년 뒤로 점프한다.

 동면된 은경이 십오만년뒤에 눈을 뜨면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휴양행성 '나니예' 에서 일어난 몇 달 간의 일. 그것은 거대한 전쟁이었다. 수천대의 전투기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행성의 운명을 바꿔놓은 거대한 두 세력의 충돌.

 그리고 그 안에서 전쟁의 키가 된 두 명의 주인공. 김은경과 나물수사.

결국 이 이야기는 신을 좇는 이야기인 동시에, 인물들이 치열한 전쟁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와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 여기서부터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작가가 '나니예' 라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여주인공 은경을 무려 15만년의 시간을 점프시키고, 수많은 SF적 상상력을 쏟아부은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전쟁' 이 필요했던 것이다. 행성 전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쟁. 이 거대한 전쟁속에서 타의에 의해 윤회를 거듭하는 '은경' 과 신의 목소리를 듣는 운명을 타고난 '나물' 수사. 이 두 인물들의 관계는 참으로 안타깝고 눈물겹다. 

 

 일단 나는 작품을 읽으면서 제목에 등장하는 '신' 에 주안점을 두고 읽었다.

(이 작품을 다른 관점, 은경과 나물수사를 둘러싼 관리사무소와 천문교측의 '전쟁' 에 주안점을 둔다면 완전히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인물들간의 관계에만 집중해서 읽어도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야말로 엄청나게 풍부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신' 을 중심으로. 즉 '신앙'을 중심으로 읽어보면 은경은 마치 크리스트교의 예수와 닮아있다. 창조주의 아들 예수처럼 나니예의 창조주의 딸인 은경은 부활을 반복하고, 세상을 구원한다는 뚜렷한 삶의 지향점을 가지고 존재한다.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에 등장하는 '네오' 와 닮은 것은 그렇기에 필연이다. 'ONE' 이라는 단어의 재조합인 NEO 또한 예수를 모티프로 태어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물수사가 믿고 있는 '신' 이 사실은 '신' 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은경도 나물수사도 각자의 눈은 또렷하게 '신' 을 향해있다. 아니, 그들의 영혼이 온전히 '신' 이라는 어떤 존재를 향해있다. 은경은 하늘에서 공전하는 천체를 '태초의 무기' 라고 인식하고 있는 행성관리사무소의 대표인 셈이고, 나물수사는 하늘을 공전하며 인간들을 보살피는 조물주라고 인식하고 있는 천문교의 대표인 셈이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의 현실속, 무신론자와 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유태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을 믿는 모든 기독교인의 투영이다. 신을 과학적 소산이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체계와 질서를 파악하고 따르는 편과 신이 인격적 존재로서 정신적, 물질적 교감을 추구하는 편인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천문교 안에서도 신에 대한 접근법이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나니예에서는 실제로 신의 존재가 눈으로 확인되던 시절의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실제 현실에서의 신학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을 과학적, 학문적으로 해석하고 구약에 나오던 신의 존재를 증명해 내고자 하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고, 신학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고 있다.  

 

 '신앙' 이란 존재의의이다.

지금 우리 세상에는 인격을 가지고 있는 유일신이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그 신을 믿는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그 신을 믿는 이유는 아주아주 간단하다.

 그는 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왜 태어났지? 나는 누구지? 나는 왜 존재하지?" 라는 인류 태고의 질문에 가장 또렷한 답이다.

 "내가 만들었으니까. 나를 위해 존재하는거지." 라는 답이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결국 인간의 존재의의에는 '신' 이 필연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문명이 시작된 이래 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인간에게 '생각' 이 있는 한, 모든 행동과 동기, 근원적 갈증의 가장 쉽고 모범적인 답안인 '신' 을 포기할 수 없을터다.

 

 타인에게 '네가 믿는 신은 신아니 아니야.' 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은 물론 존재의의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때문에, 신앙인들은 자신의 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때로는 자신의 신이 존재한다는 증명을 하려 하고, 다른 신을 믿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무신론자와 유신론자 사이의 갈등이 존재한다. 타종교와의 갈등도 비롯한다. 내가 정답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만이 정답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둘일 수는 없다. 반드시 세상에 나를 있게한 나의 신. 그 존재 단 하나여야 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정답. 그것이 바로 '신'이다. 그런 절대적인 존재이기에, 사람들은 섣불리 자신의 신의 존재증명을 꺼리게 된다. 만약 그 증명에서 실패한다면 스스로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김어준 식으로 말하면 그레이트 빅 엿을 스스로 쳐먹는 꼴이 되기에, 현실 종교에서 과학적,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신비' 로 넘겨버린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천문교는 두 종파로 나뉘어 있다.

태초에 나니예의 창조설화에 등장하는 사도들의 신 관찰기록에 의존해 신이 나니예를 공전하는 궤도를 계산하는 이론신학회와 그 공식을 대입해 천체 망원경으로 신을 눈으로 확인코저 하는 관측신학회가 그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공식들을 대입해 보고 관측해봐도 신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게 되자 이론 신학회는 관념론을 대두시킨다. 신은 눈에 보이는 물체가 아닌 관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천문교내에서도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관측신학회는 유물론적 신앙관을 유지하고자 하고, 이론 신학회는 관념론적 신앙관을 강력하게 밀어붙인다. 그런 와중에 신의 존재를 귀울림으로 파악할 수 있는 예언자들. 그 중 마지막 예언자인 나물수사는 이론신학회에 있어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우주 왕복선을 이용해 신에게 날아가려는 김은경의 존재 역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이 작품 속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신앙관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요소가 등장한다.

바로 인류의 '항성화' 이다. 인류는 십오만년이라는 엄청난 시간동안 육체를 버리고 별이 된다! 그것도 태양과 같은 항성으로 말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태양 그 자체가 하나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자, 과연 항성에게는 종교가 있을까? 항성의 존재의의는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자신의 주위를 공전하는 천체들? 아니, 그 천체들의 입장에선 항성이 신일 것이다. 신에게도 신이 있을까? 신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일전에 배명훈 작가는 [안녕, 인공존재] 라는 작품을 통해서 존재 자체에 대한 고찰과 '존재 폭발' 이라는 신선한 개념을 선보인 바 있다. 많은 작가들은 자신의 단편들 속에서 장편의 모티프를 얻어내는데, [신의 궤도] 의 모티프는 단연 [안녕, 인공존재] 일 것이다. 무의미하게 우주를 도는 천체. 하지만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를 되뇌이는 천체.

 존재란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에서 시작된 배명훈 작가의 존재에 대한 거대담론은 [신의 궤도] 를 통해 조금은 발전한 듯 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존재' 하고 있다. 심지어 프로그램과 메뉴얼들도 '존재' 한다. 그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서 생각하지 않는 개체는 비행기들 뿐이다. 하지만, 최후의 존재폭발로 인해 비행기들 또한 '존재' 하게 되었을 듯 하다.

 

 존재의 의의. 삶의 의미. 운명과 목표. 그것이 신이어도 좋고, 신이 아니어도 좋다. 나물수사는 신이라고 불렀던 그것. 은경은 신이 아니라고 불렀던 그것. 은경과 나물수사는 서로 다른 시각으로 '신' 이라는 그 천체를 바라보지만, 그들 사이에 갈등은 없다. 둘 모두에게 그것은 삶의 목표이자, 자신의 존재의의였으며, 끊임없이 추구하는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은경은 하늘에 떠있는 인공천체를 신이라고 숭배하는 나물수사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나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나물수사는 그런 신비로운 증명이 있음에도, 자신이 숭배하는 신을 신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은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둘 다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 신을 품에 안은 순간.

 은경은 신을 숭배하며 살았던 나물수사의 삶의 궤적을 이해하고, 나물수사 또한 궤도 비행사로 살아온 은경의 삶의 궤적을 이해한다.

신의 궤적은 은경과 나물수사가 걸어온 삶의 궤적이었던 것이다.

 

 

 글이 참 두서없이 길기만 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수만가지 상념들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이게 대체 무엇일까. 이건 또 뭔가. 이게 무슨소리야. 그런 느낌이다, 솔직히. 이 비슷한 감정은 스타니스와프 렘의 [사이버리아드] 와 [솔라리스] 를 읽었을때와 비슷하다. 우주적으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어처구니 없는 경지. 이것은 뭐랄까. 생각을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심심할때 꺼내보는것과 비슷하달까?

 

엄청 통속적이고, 그만큼 낭만적이기도 한, 게다가 관념적이고, 공상과학적이면서 재기발랄하고, 뭔가 틀을 깨는 이야기속에 들어있는 [존재] 에 대한 우주적인 고찰. 치열한 전쟁 속에서 그것들을 찾아나가는 은경과 나물의 행보가 애틋하기만 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생생했고, 이해되었으며, 사랑스러웠다. 특히, 수십년을 관통해서 지난, 나물과 엮여가는 은경의 윤회의 이야기에는 가슴이 짠했다. 정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어서, 2권이라는 분량이 짧게 느껴졌고, 너무 금방 끝나버렸다는게 아쉬웠다. 은경과 나물의 이야기가 더 많이 보고싶었다. 나니예에서의 생활들이 더 보고싶었다.

 조지 R.R 마틴 옹의 '얼음과 불의 노래' 처럼 엄청나게 하드하게 그려주었어도 좋았을 듯 싶다.

뭐 물론, 우리나라의 장르문학 시장에선 그랬다간 출판사도 망하게 하고, 작가 본인도 굶어죽기에 딱 좋겠지만 말이다. ^^

 

저자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는 또 얼마나 우주적인 이야기를,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깃속에 담아 줄까??

f******g 2011.09.1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흥미있는 주제, 까다로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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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궤도>는 공상과학(SF) 소설이다. 15만년이 지난 미래의 이야기인데, 제목처럼 신(神)도 일정한 궤도로 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젊은 여자가 이런저런 이유로 냉동인간이 되고, 다시 깨어낸 곳은 지구가 아닌 다른 별. 그곳은 지구보다 깨끗한 공기가 있는 행성이다. 이 주인공은 그 행성에서 비행기 조종사가 된다. 또 신의 궤도를 계산하는 남자를 만난다. 그 행성을 지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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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궤도>는 공상과학(SF) 소설이다. 15만년이 지난 미래의 이야기인데, 제목처럼 신(神)도 일정한 궤도로 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젊은 여자가 이런저런 이유로 냉동인간이 되고, 다시 깨어낸 곳은 지구가 아닌 다른 별. 그곳은 지구보다 깨끗한 공기가 있는 행성이다. 이 주인공은 그 행성에서 비행기 조종사가 된다. 또 신의 궤도를 계산하는 남자를 만난다. 그 행성을 지배하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파가 전쟁을 치르는 내용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은 한국형 SF라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다. 등장인물과 사물 용어가 외국어가 아닌 한국말이어서 유쾌했다. 또 프로펠라 비행기가 머나먼 미래에 등장하는 점도 이색적이다. 과학이 팽배할 것 같은 미래에 굳이 신을 찾으려고 한다는 설정도 입맛을 돋우는 소재이다. 책은 1권과 2권, 두 권인데, 서로 붙여야 한 개의 그림(빨간 비행기)이 나오도록 한 마케팅 수법도 눈길을 끌었다.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이 책도 읽기에 약간 불편했다. 스타트랙이나 스타워즈 같은 정통적인 SF에 길든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내용은 머릿속에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저자가 상상하는 내용이 독자의 머리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책은 상상하면서 읽는 것인데, 저자가 이 부분을 너무 독자에게 의존하는 것 같다. 


b*****m 2011.10.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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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의 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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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의 궤도는 작품의 제목과 내용 모두 참신함·상상력·아이디어·빼어난 장치로 무장한 보기 드문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몇년전 읽었던 세인트 이상의 즐거움을 느꼈다. 책을 선택함에 있어서 작가는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그러나 배명훈이라는 소설가를 모르더라도 책의 제목은 절로 손이 가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타이틀이다. 사실 작품을 보면 배명훈이라는 소설가를 까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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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의 궤도는 작품의 제목과 내용 모두 참신함·상상력·아이디어·빼어난 장치로 무장한 보기 드문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몇년전 읽었던 세인트 이상의 즐거움을 느꼈다.
책을 선택함에 있어서 작가는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그러나 배명훈이라는 소설가를 모르더라도 책의 제목은 절로 손이 가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타이틀이다.
사실 작품을 보면 배명훈이라는 소설가를 까맣게 잊게 만든다. 더이상 작가는 중요하지 않고 소설에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큰 이유는 일반인의 상상력을 두단계 이상 뛰어넘는 책의 스케일이다.
인류의 한 부자는 새로운 지구를 창조한다. 청력 기형만 들을 수 있는 파장이 있다. 또 15만년 이상 지속되는 여인의 분노.
비행기 유목·새 유목·자아를 가진 비행기

소설적인 장치도 뛰어나다.
죽고 또 죽고 또 죽는 끝없는 인생을 가진 여인과 특별한 여인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남자들.
그 추억이 결국 그들을 살리고 나니예를 살린다는 종결
그리고 우주왕복선 콜롬비아 까지...

 

신의 궤도의 줄거리는 여자 한명과 그 여자를 추억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은경은 뛰어난 아름다움과 매력이 있는 거친 반항아다.
그리고 그는 계속 죽는다.
그러나 은경 주변의 남자들은 그녀의 죽음을 대부분 알지 못한다. 꾸준히 새로이 등장하는 은경이 자신과의 추억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은경은 늙지도 과거를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신의 궤도를 찾아 떠나는 우주비행사와 예언자

 

신의 궤도는 별을 100개 1000개 주어도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나이를 먹을 수록 닫혀지는 그리고 굳어지는 상상력과 공상의 나래를 다시 펴게 만든 작품이다.



c***s 2013.12.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주류 문단을 향하여 날아오른 과학 소설의 삼엽기는 신의 궤도에 이를 수 있을까... 신의 궤도
"주류 문단을 향하여 날아오른 과학 소설의 삼엽기는 신의 궤도에 이를 수 있을까... 신의 궤도" 내용보기
김애란, 박민규 등과 더불어 요즘 가장 핫한 작가라고 할 수 있는 배명훈의 신작 장편 소설이다. 작년에 나온 소설집에 실린 <크레인 크레인>(이 단편에서 등장한 김은경과 이번 장편 소설 속의 주인공 김은경은 닮아 있다)에 등장하였던 기계화된 신, <안녕, 인공존재!>에 등장하였던 우주로 날아간 존재,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에 등장하였던 엄청난 규모의 합체로봇 등이 더욱
"주류 문단을 향하여 날아오른 과학 소설의 삼엽기는 신의 궤도에 이를 수 있을까... 신의 궤도" 내용보기

  김애란, 박민규 등과 더불어 요즘 가장 핫한 작가라고 할 수 있는 배명훈의 신작 장편 소설이다. 작년에 나온 소설집에 실린 <크레인 크레인>(이 단편에서 등장한 김은경과 이번 장편 소설 속의 주인공 김은경은 닮아 있다)에 등장하였던 기계화된 신, <안녕, 인공존재!>에 등장하였던 우주로 날아간 존재,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에 등장하였던 엄청난 규모의 합체로봇 등이 더욱 거대화된 세계관 (이라기 보다는 우주관이라고 해야 할려나) 으로 창조된 것이 이번 장편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나니예는 휴양행성이었다. 지구에서의 숨막히는 삶을 마무리하고 남은 생을 낭만적이고 여유롭게 보내기를 꿈꾸는 이십만 명의 부자들이 공동출자한 인공낙원 개발계획의 최종 결과물이었다...”


  소설은 나니예 행성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벌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742개의 항성의 생명 반응’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우주 초유의 사고에 대한 조사보고서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나니예 행성에서의 사고는 지금으로부터 153200년전, 그러니까 지구 기준으로 서기 20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그 기원에 이르게 될 수 있으며, 바로 그 기원에 김은경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버티고 있다.


  인공위성 재벌이었던 아버지의 숨겨진 딸이라는 출생 내력을 가진 김은경은 엄마의 죽음 이후 러시아에서 비행 수업을 받던 중, 기술발전에 반대하는 세력의 편에 서 있는 사랑하는 사람 바클라바를 구출하려다가 결국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고, 이러한 딸을 도와주려는 아버지에 의해 동면된다. 그리고 김은경의 의붓언니인 김경라는 이런 김은경에 대한 저주를 끝까지 풀지 않는다.


  “... 우리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데, 지구에서 출발한 애들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우리를 따라잡아... 이대로 몇만 년이 지난다고 생각해봐. 결국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우주선이 우리보다 먼저 나니예에 도착하게 돼. 그때는 우리도 구식 우주선이 된다고...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가고 있어.”


  그렇게 동면된 김은경을 비롯한 이십만 명의 지구인을 태운 우주선 바이카스 타뮤론은 2130년 드디어 지구를 출발했지만 그들은 결국 사소한 오차로 인하여 제대로 나니예 행성에 도착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 사이 발전한 다른 우주선에게 추월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 나니예에는 정부 역할을 하는 행성 관리소를 비롯하여 신을 둘러싼 해석으로 대립하는 이론신학회와 관측신학회라는 두 종교 집단이 존재하게 된다.


  “... 그해 겨울 신께서 직접 찬란한 빛을 발하며 세상을 서른네 바퀴 회전하시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셨는데, 그때 하난산 성지를 비롯한 전 세계 여섯 군데의 성지에서 스물한 명의 사도가 신의 궤적을 관찰하고 그 내용을 후대에 전했다. 그것을 추려내고 정리한 것이 바로 지금의 여섯 복음서였다.”


  그리고 드디어 나니예에서는 김은경의 동면 해제와 함께 최초로 그들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든 신의 궤도, 그 신의 궤도에 진입하여 신과 맞닥뜨리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신의 궤도를 찾을 수 있는 예언자인 나물 신부,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김은경 (<레지던트 이블>의 엘리스를 닮아 있다), 관리사무소장인 황문찬, 그리고 이론신학회의 문원식 주교와 관측신화의 최신학 주교를 비롯한 나니예 행성의 인물들이, 신의 산물이기도 한 비행기를 타고 (혹은 끌고) 다니며 벌이는 전투가 스펙타클하게 벌어진다.


  “... 나니예에서는 더 뛰어난 기술이 반드시 더 바람직한 기술은 아니었다. 진보는 절대선이 아니었다. 느릿느릿, 때로는 기술 수준을 뒤로 돌리는 경우가 생긴다 해도 그게 반드시 퇴보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 자체가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자그마치 십오만 년 뒤라는 시대 배경, 항성을 만들거나 리부팅할 수도 있게 된다는 상상력, 십오만 년을 날아가는 그리고 그 사이 발전하는 기술에 의해 따라 잡히는 우주선 안에서의 전멸이라는 설정 등을 보자면 이 작가의 세계관이 얼마만큼이나 확장 가능한 것인지를 가늠하기 힘들 지경이다. 비주류라고 여겨지던 과학소설을 주류 문단 내부로 끌어들이는 탁월함을 갖추고 있는 작가이니 가능한 상상력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작가의 이러한 상상력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은 언제나 그 상상력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도한 인공위성의 출현과 그러한 인공위성을 이용한 재벌의 등장이나 그러한 재벌에 반대하는 테러리스트들이라는 지구 위에서의 설정이 그렇고, 남반구와 북반구로 나뉘어 대립하는 나니예 행성의 종교(혹은 정치)경제사회 상황 또한 우리들 사회의 각종 아이러니를 은유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아직 비주류인 장르 문학과 우리 사회의 주류 문학이 어떻게 접점을 만들고 또한 서로에게 파고 들 것인지를, 이 작가를 통해 지켜 볼 수 있어서 좋다.

 


  ps1. 소설을 읽다보면 이현세의 <아마겟돈>, 미야자키 하야호의 <라퓨타>나 <나우시카>가 떠오른다.

 

  ps2. 책의 맨 뒷장에 지구와 나니예 행성의 연표가 실려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이런 연표라면 책의 앞장에 배치를 했어야지, 라고 불평을 해본다. 더불어 나니예 행성의 지도 같은 것도 함께 만들어줬어야 옳다. 그런 면에서는 조금 불친절해 보인다. 누군가 이 소설을 꼼꼼하게 읽는다면,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니예 행성의 지도를 작성해 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작가는 그 지도 작성을 독자의 몫으로 남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1.12.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