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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중 이 책 만큼 내 온 마음을 사로잡고 또 초반부에 더디가는 책장 때문에 힘들었던적도 없는 것 같다. 이처럼 방대한 인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이고 또 부커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작가의 일대기라고 해도 좋을 그런 작품이라 그랬나. 힘들게 읽은 만큼 리뷰 쓰기도 너무 힘든 작품이었다. 이렇게 막막하기도 처음이고. 영어권 대학생들에게는 필독서로 자리잡을 만큼 놀라운 소설이라고 해 읽게 된 작품으로 그의 생애와 지금의 인도를 있게한 인도의 역사를 알수 있었고, 모든 걸 쏟아넣은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인도가 독립하는 순간 태어난 1001명의 아이들 중 12시 정각에 태어나 신생 독립국 인도와 운명을 함께하게 된 살림 시나이의 서른 해를 그린 작품이다. 새로운 인도와 삶을 같이 하게된 원인인지 12시 정각에 태어난 이들은 각자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살림의 경우 다른 이의 마음을 들여다 볼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삶과 인도의 역사가 함께 어우러진 작품이다. 작품속에서 살림은 그의 자서전을 쓰는데 함께 살고 있는, 그를 좋아하는 파드마에게 자신의 생애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써진 글이다. 살림이 태어나게 된 기원을 가진 외할아버지 아담 아지즈가 구멍 뚤린 침대보로 조각조각 진찰을 하게 되며 외할머니인 나심을 만나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책을 읽어가며 살만 루슈디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두 달전에 태어난 그는 인도와 파키스탄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기도 해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의 생애도 마치 소설같은 삶을 살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988년에 출간한 『악마의 시』라는 작품이 이슬람교를 모독하고 선지자 무함마드를 비하했다는 이유로 전세계 무슬림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아 영국의 보호아래 긴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의 삶을 한 남자의 서른 해의 생애를 다루며 인도의 역사를 나타내는 터라 할말이 많다던 그의 말처럼 방대한 분량을 자랑했다. 더디가던 책장도 어느 순간부터는 탄력이 붙어 살림의 파란만장한 삶을 같이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을 읽으며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쟁을 알게 되었고 인도의 실상과 종교적 갈등과 함께 인도를 더 알게 되었다.
김연수 작가가 『한밤의 아이들』작품을 가르켜 최고의 소설이자 가장 뛰어난 소설이라고 말했다.그리고 다 읽고 나서 무슨 질문이든 하라고 했다. 내 지식이 부족한 탓에 좀 어렵게 읽혔던 책이라 최고의 작품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없어서 아쉽다. 하지만 놀라운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책읽는 독자들에게 30년 가까이 꾸준히 읽혀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핑계같지만, 많은 시간을 할애해 빠른 시간에 읽었다면 더욱 집중력 있게 보았을 책인데 평소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책읽기를 한터라 집중력이 분산되어 작가와 깊은 교감을 얻지 못했다는 걸 밝혀두고 싶다. 다시 한 번 더 읽는다면 작가와 깊은 교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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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옛말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을 알기도 전에 이야기를 좋아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 책에 대해 “아아, 제발 이 이야기가 끝없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는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를 읽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책의 저자 는 1988년 발표한 “악마의 시”에서 이슬람교와 무함마드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이란의 지도자 법령에 의해 처단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그의 목숨에는 지금 현재 33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 살만 루슈디는 25년째 영국과 미국에서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발표된 작품마다 좋은 평을 얻었다. 이 작품은 그의 두 번째 소설이면서 그의 대표작이다. 두 권으로 된 이 책의 두께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고 싶은 의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살림 시나이는 단 한 명의 청취자를 앞에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피클공장의 요리사에 불과하지만 그의 인생 자체가 인도의 역사와 쌍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존재는 사람들의 관심에 갇혀있었다.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날, 밤 열두시부터 한시 사이에 1,001명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살림은 열두시 정작에 태어난 단 두 명의 아기 중에 하나였다. 책의 서사는 살림이 태어나기 32년 전, 살림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외할아버지는 독일에서 의학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풋내기 의사였는데 그곳 지주의 딸, 나심을 치료해주다가 결혼까지 이어진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맺어준 것은 구멍 뚫린 침대보였다. 당시 인도 사회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대면하는 것을 꺼리는 관습 때문에 비록 의사라 할지라도 양갓집 규수를 함부로 볼 수 없었다. 3년 동안 나심의 환부 여기저기를 침대보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던 아지즈는 나심의 전체적인 모습을 다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침대보 저편에 있는 나심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구멍으로 다른 세계와 소통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책을 다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지름 18cm의 구멍에서 사랑을 발견한 의사 아지즈처럼 이 책 속에는 구멍을 통해 사랑과 소통을 발견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일직선상에 놓이기도 한다. 그 선에 놓인 사람들은 의사 아지즈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딸인 아미나 시나이와 그 아들인 살림 시나이, 그리고 살림의 청취자인 파드마다. 살림은 혁명가를 사랑했던 메리에 의해 태어나자마자 운명을 바꿔치기 당했다. 가난한 광대 집 아기와 부잣집 아흐메드의 아기가 뒤바뀐 것이다. 그리고 아기를 바꿔치기한 메리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고, 자청해서 아흐메드의 집에 들어와 살림의 보모가 되었다. 살림은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자신에게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텔레파시로 다른 사람들의 내면을 읽는 능력이 있음을 감지한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던 살림은 점차 자신과 함께 한 밤에 태어났던 아이들을 자신의 머릿속으로 불러들였다. 그 아이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한밤에 태어난 아이들 모두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알아낸다. 그 능력은 태어난 시간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변신, 비행, 예언, 마법과 같은 특출한 능력에서부터 한 시에 가까운 아이들은 그저 광대에 지나지 않을 수준의 특별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열두시 정각에 태어난 두 사람- 자신과 운명이 뒤바뀐 시바와 자신-이 가장 커다란 능력을 가졌다는 것도 깨닫는다. 시바는 전쟁에 재능을 가졌다. 살림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이라고 말하는데 맨 처음 아기를 뒤바꿔놓은 메리와 자신의 첫사랑을 거부했던 에비 번스, 그리고 자밀라 싱어와 파르바티, 미망인 그리고 현재 청취자 역할을 하고 있는 파드마를 꼽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읽은 1권에서는 아직 절반의 여자들 밖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열 살이 된 살림이 학교에서 손가락이 잘리는 소동이 벌어지면서 수혈을 하기 위해 혈액형을 맞춰보다 자신과 부모의 혈액형이 맞지 않아서 경악하는 장면을 끝으로 1권을 덮었다. 기나긴 1권의 내용에서는 인도 분리 독립의 역사가 개인의 역사와 쌍둥이처럼 얽혀 진행되고 있는데, 인도인이라면 너무나 익숙할만한 내용이겠지만, 인도를 잘 모르는-나 같은- 독자들이라면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책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마지막 장에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 <롤리의 소년 시절>의 그림과 인도의 지도가 나와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독자를 위한 세심하면서도 재치가 넘치는 번역과 친절한 각주가 너무나 고마웠다. 얼른 2권으로 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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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추천. 카버가 그랬고,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그랬고, 살만 루슈디가 그랬다. 부커상 3관왕이란 그닥 땡기지 않는 수상 경력 보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을 장식한 작품이란 것보다, 내겐 김연수의 극찬이 훨씬 임팩트 있게 다가왔다. 허나 이 소설을 읽으려면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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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좋은 책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사연이 보태지면 세상이 부여한 객관적 가치에 개인의 가치까지 더해져, 그때는 단순히 좋은 책이 아니라 소중한 보물이 된다. 문동카페에서 '릴레이책선물'의 일환으로 상큼걸님이 보내주셨고, 먼저 이 책을 읽고 적극 추천했던 무오님은 루슈디의 또다른 작품 <광대 샬리마르>를 보내주셨으니 어찌 소중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소중한 기억에 방점을 찍은 사건(!)은, 책을 읽다가 몇몇 이해되지 않은 부분을 과계자에게 물었을 때 이 책의 책임편집자 '김경은 님'이 보내준 정성 가득한 답변이었다. 원문을 대조해가면서 궁금증을 풀어주는 세심함에 적잖히 감동했다. 오탈자 신고를 해도 아무 액션이 없는 출판사가 허다한데, 아니 거의 없는 데 이런 고객서비스(?)는 감동 그 자체였다. <한밤의 아이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책이지만 이런 개인적 사연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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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모두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고 생각한다. 당연히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고, 나 스스로가 나를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란 존재는 어떻게 되겠는가, 만은… 여기 이 사람처럼 세상을 자기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자신이 세상을 지배(!?) -혹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하고 있었다는 믿음을 가진 한 사람.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그의 말이 그리 틀린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사람이기에 그런 생각이 든 것일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이제 제대로 그를 만날 수 있으니까…
옛날 옛날에… 까지는 아니고,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독립하는 순간 태어난 아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12시 정각에서 1시 사이에 태어난, 그리고 그들만의 각기 다른 특징-마법이라고 해야 할까?!-을 가지고 태어난 1001명의 아이들이 있다. 또다시 그중에서도 12시 정각에 태어난 아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살림 시나이’이다. 『한밤의 아이들』은 주인공인 살림 시나이가 자전적인 글을 쓰는 형식으로, 자신의 지난날들을 글로 옮긴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 독자들은 책 속의 살림 시나이와, 다시 그의 글을 통해서 그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함께하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삶의 단계별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각각의 장에 담아낸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견하게 되고, 그 능력과 자신의 존재 사이에서 고뇌하는 아이의 모습이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으로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언어를 가지고 논다’는 루슈디의 능력을 -번역을 통해서 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느낄 수 있고, 다양한 인도 신화를 통해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과 상황들을 그려내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다. 그 속에서 인도라는 나라와 그들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로써의 살림 시나이는 자라나고자라나고…
전체적인 이야기의 줄기는 이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기 전 그 시작에 대한 역사가 장황하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260페이지에 달하는 제1부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 볼 한밤의 아이들이 태어나기 직전까지의 이야기가 1권의 절반의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뭐, 좀 황당하다 싶을 정도의 분량이기는 한데, 그런 생각도 잠시다. 이 수다스런 ‘살만 루슈디’와 함께하다보면 지루하다느니 전혀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느니, 따위의 생각은 할 시간조차 없으니 말이다. 물론 살만 루슈디의 문체에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 처음부터 술술 읽히지는 않았으니… 하지만 조금의 적응만 하고 난다면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문체를 통해서, 그만이 나타내는 표현 방식과 그만의 스타일에 점점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보면, 이 책은 영화로 만들어도 정말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한밤의 아이들』 역시도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여기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전체적인 이야기나 다양한 캐릭터, 그리고 순간순간 맞이하는 상황들에 어떤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책 속에서 살만 루슈디는 영화적 기법을 활용한 묘사를 여기저기 담아둔다. 특히나 1권의 마지막에서는 대놓고 ‘(페이드아웃.)’이라고까지 나타내고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아니라, 이 이야기는 살만 루슈디의 글로 만나야지만 이 소설의 특성들을 보다 확실하게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다가 -문득이지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을 무려 세 번이나 수상해 세계문학사에 남을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다는 이 작가, ‘살만 루슈디’… 역시 그 명성에 걸맞은 모습으로 약간의 아쉬움은 커녕, 이런 생각까지 하게 해주는구나, 싶다.
다양한 인도의 모습, 그 속에서 삶을 고뇌하는 아이의 모습, 그를 통해서 다시 바라보는 인도라는 나라. 어느 순간 시작된 살림 시나이의 불가사의한 능력을 통해서 마법을 경험하는 멋진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을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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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날 한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소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이야기가 폭발하고 있다. 전지전능하다고 해야 할까. 시공을 초월하면서, 그러나 역사를 관통하는, 화자의 입담에 힘입어 소설은 환상과 민담, 전설과 역사를 관통하면서 그만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세웠다. 이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살만 루슈디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새로운 영역으로 뛰어든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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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저절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짧은 글 하나를 완성시키는 일도 생각처럼 쉽진 않은데 소설로 상을 받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그런데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부커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단 하나의 작품이 있다.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이 바로 그것이다. 루슈디는 유년 시절의 추억과 인도의 독립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 혼합하여 이 책을 만들었다. “나는 봄베이 시에서 태어났는데……. 옛날옛날 한 옛날이었다.”로 시작되는 살림 시나이의 기록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마치 천일야화를 들려주는 셰에라자드처럼 그는 밤마다 자신의 인생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나간다. 살림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바로 그 순간, 그러니까 1947년 8월 15일 밤 12시 정각에 태어난 특별한 존재였다. 신생 독립국 최초의 한 시간 동안 천 명하고도 한 명의 아기가 탄생했다. 그들이 곧 이 소설의 중심인물이자 책 제목이기도 한 ‘한밤의 아이들’이다. 그중에서도 밤 12시 정각에 세상으로 굴러 나온 살림의 운명은 조국의 운명과 그 궤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그의 자서전은 한 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인도라는 나라의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일종의 역사서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인도 사람들은 이 작품을 역사책에 가까울 만큼 사실적이라고 생각한다니......) 사실 나는 살만 루슈디의 소설을 이번에 처음 접했고 <한밤의 아이들>을 100% 완독(깊이 생각하며 읽기)하지는 못한 상태에서 리뷰를 쓰고 있다. 소설가 김연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든 모르든 상관없으니 그저 완독해보라는 추천평을 썼지만 막상 첫 페이지를 펼쳐 보면 ‘이게 완독(오로지 읽기)이 가능하단 말인가.’하는 의문점이 들 것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장문의 작가 서문은 이만만치 않은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현실에서 일어났던 뜨거운 감자들을 소설 속에 집어넣는 일(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1975년 국가 비상사태 선포 등)은 루슈디의 말처럼 일종의 불확실한 모험이었다. 실제로 책에 실린 내용을 문제 삼아 인도의 전 총리 인디라 간디는 그와 출판사를 고소했었다고 한다. 평소에도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대한 발언을 꺼리지 않는다는 루슈디의 면모는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투영되게 된다. 출간 30년 만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밤의 아이들>에는 이 같은 작가의 성향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한밤의 아이들>이 사실적인 작품이라고 해서 딱딱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좀 오산이다. 진지함 속에 섞어있는 익살과 위트 있는 대사가 감초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살펴보면 이렇다. “네, 네, 아주 특이한 물건이죠. 이 콧속에 왕조의 씨앗이 깃들었다는 말을 듣는데......” (1권, p. 65) "파드마, 힌두교도는 이 세상이 일종의 꿈이라고 믿지 않나? 브라흐마 신의 꿈에서 우주가 창조되었고 그 신은 지금도 꿈을 꾸는 중이라고, 우리는 그 꿈의 거미줄, 즉 마야의 이면을 어렴풋이 들여다볼 뿐이라고 말이야. “ (p. 446~447) 살림 시나이의 인생 재구성 프로젝트를 보면서 우리는 사람의 삶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고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조산사 메리 페레이라의 범죄 덕분에 선택받은 아이가 된 시나이, 그 대목은 소위 아침연속극의 한 장면과 유사해 보인다. 드라마나 소설은 허구적으로 꾸며낸 이야기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실과 환상 사이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그 두 가지를 적절히 조합하여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루슈디의 솜씨는 정말 놀랍다. 이 한 편의 서사의 결말은 1장 ‘구멍 뚫린 침대보’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다. 너무 혹사당해 부서져가는 주인공의 몸뚱이. 목숨을 건질 가망은 전혀 없고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서두른다. 허망한 죽음을 두려워하며.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의 운명은 파란만장한 인도의 역사(1915~1978)와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문학적 모험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무수히 많은 소설들과는 확연히 다른 <한밤의 아이들>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역사에 손목이 묶여버린 ‘한밤의 아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을 떠올렸다. 이 두 작품은 작가들의 개인사가 바탕에 깔려 있다. (물론 이들의 소설에 분명 차이점은 있지만 선뜻 표현하기 힘든 시대의 단면을 그린다는 점도 비슷하다. 살만 루슈디와 헤르타 뮐러가 자신들의 성향 때문에 고통을 당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올해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된다고 한다. 인도의 문제적 여성감독이라는 디파 메타가 메가폰을 잡고 루슈디가 각색을 맡았다는데……. 그 영화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소설을 한번 읽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이 이야기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에 비견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1,2권 합쳐 약 1000페이지를 정독(뜻을 새기며 자세히 읽기)해보기 바란다. 고전은 그렇게 읽을 때 비로소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살만 루슈디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한 권의 책은 세계에 대한 하나의 버전이다. 그 버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시하든지 답례로 자신만의 버전을 제공하라.” 당신에게 <한밤의 아이들>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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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文學)은 언어를 예술적 표현의 제재로 삼아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여, 인간과 사회를 진실 되게 묘사하는 예술이다. 문학이 순수하게 표면적인 세계의 질서를 재현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저 깊은 심연에 숨겨져 있는 보다 윤리적이고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라고 할 때, 살만 루슈디의 소설은 이러한 내면의 울림을 함의하고 있다. 그 이미지는 제국주의이후 대영제국의 식민지 국가들의 해방된 진공의 공간들, 번화가 뒤쪽의 낡고 후미진 골목들, 화려한 거실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어두침침한 밀실들과 지하실, 낡고 쓰러져 가고 있어 위험하게 보이는 농가, 더럽고 불결하고 비루한 빈민가들 같은 주변부의 어둡고 깊숙한 공간들로서 형상화된다. 이 공간들은 20세기적으로 디자인된 도시의 이면에 은폐되어 있는 삶의 서사적 밀도를 드러내는 유물론적인 지표들이다. 실재적 인도역사가 인물, 사건 중심부의 공간들과 삶에 주목하여 이 시대의 증후를 드러낸다면, 메타 역사로서의 가상인물들은 주변부의 미묘한 틈새들을 황홀한 환상적 감각으로 건드리면서 삶속의 잠재된 깊이를 문학적으로 구현한다. 뭄메이는 누구에게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환상의 장소이며 욕망을 실현 시킬 수 있는 후기 자본주의 소비의 도시이다.“인디아의 으뜸, 인도의 관문이여, 서쪽을 바라보는 동방의 별이여”(203쪽)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구성원들은 계층, 연령, 젠더, 지역, 환경, 언어, 종교 등에 영향을 받으며 각자 그들의 인생에서의 영화(榮華)의 주인공이며 소비의 주체라는 비균질적인 정체성을 보장받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도시의 공간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위계와 모순을 은폐한다. 계급사회의 차별성, 종교적 갈등의 위험성이 주는 위태로움은 한 가정의 삶을 평화롭게 보여주는 트릭을 사용함으로써 은밀하게 감춰지기도 하는 알리바이를 보여주고 있다. 낭만과 자유와 열정의 강렬한 빛을 비추던 한가정은 가족의 생계권과 소유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의 선순환을 끊임없이 실행하는데 이 과정 중에서 고단하고 황량하고 삭막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살만 루슈디의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고향집을 떠나서 도시에서 자립적으로 생활을 일구어 나가는 ‘노동하는 존재들’이며 내면의 가장 비밀스러운 노스탤지어를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순수기억(Le souvenir pur)’이다. 노동은 인간이 스스로의 생존과 자립을 위하여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실천하는 행위로서 건강한 정신의 발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의하면 인간이 신의 명령을 거역하여 선악과를 먹은 원죄에 대해 선고된 숙명적인 형벌이기도 하다.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고대 세계에서는 노동은 곧 노예가 하는 일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열등하고 모욕적인 일로 간주되었다. 경제학사에서는 데이비드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이 등장하고 서구 산업사회에서 노동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던 근대 이전까지 노동은 진지한 담론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살만 루슈디는 이러한 노동에 문학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서 인간사와 노동의 긴밀할 연관을 환기시킨다. 후기 자본주의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메커니즘 하에서는 마르크스의 시대와 달리 착취의 주체도, 부조리의 실체도 모호해졌기 때문에 개인들은 왜 한없이 노동해도 삶은 제자리걸음인지 알지 못한 채 현재의 시간의 벌판을 휘적휘적 걸어갈 뿐이다. 그러나 살만 루슈디는 무기력하고 남루해 보이는 이러한 주변부의 삶에 ‘상상’적 이미지라는 개념을 대입한다. 그러한 삶의 일상은 언제나 생성이고 운동이며 리듬이다. 그리고 생의 처연함을 초극하는 그 자기긍정의 삶은 곰팡이 피는 눅눅한 그 도시의 심연에서 더욱 풍요로운 부피와 질감을 지닌 채 청아한 감각의 선율로 울려 퍼진다. 살만 루슈디에서 묘사되는 탈식민지이후의 몸베이는 욕망의 도시이다. “그대가 원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네. 마음만 먹는다면 뭐든지 할 수 있네.”(375쪽) 자본주의적 욕망이란 물질적 재화에 대한 필요와 소비욕구의 총체이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 하의 국가주도적인 산업사회가 남성 중심적 속성을 지녔다면, 오늘날의 민주주의 하의 소비사회는 보다 소프트하고 감성적이고 여성적인 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본질적으로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변화에 있다기보다 ‘정치적 지배’에서 ‘자본의 지배’로의 전환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자본의 지배는 달콤함을 선사함으로써 과거의 정치적 지배보다 한층 더 정교해진 억압을 은폐한다. 자본의 감미는 이성의 비판적 기능을 와해시키고 정신을 말랑말랑하게 녹여서 감성과 욕망의 아니키즘을 고무한다. 오늘날 감성적 욕망의 도시는 이러한 자본 지배의 효과이다. 그러한 자본주의 매카니즘이 생산한 이 시대의 소인적 취향들과 즉물적 욕망을 풍자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부장제사 해체되는 현상은 과거의 남성중심적인 권위주의 체재가 이처럼 소인주의를 촉진하는 포스트모던한 자본권력으로 전환되는 것과 동시에 발생한다. 더욱이 50년대 인도와 파키스탄 전쟁의 여파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실패가 겹쳐 기업의 도산과 대량의 실업사태가 양성되면서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감 있는 가부장이라는 아버지들의 전통적인 정체성은 급속히 붕괴되기 시작했고, 그 텅 빈 진공의 공간에 여성들이 급속도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살만 루슈디의 특유의 실추된 부권으로서의 아버지의 이미지는 작가의 개성적 창조물이면서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분리될 수 없다. 동시에 세계는 매우 흔들리고 있었다. 인도와 중국이 국경전쟁을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분리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살만 루슈디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여러모로 ‘좀 난감한 사람’이다. 그들은 때론 비장하고 결단력 있는 부성의 이미지를 연출하려고 애쓰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우스꽝스럽다. 살만 루슈디의 인물들은 가족에게 상처를 입힌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유년시절 함께 했던 아버지와의 추억과 자신의 존재의 근원이라는 운명적인 연대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 자신의 그 비참한 근원을 견딜 수 없기에 ‘천일야화’같은 가상의 이야기를 상상해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형이상학적으로 위안하는 것이다. 살만 루슈디의 인물들은 결국 무책임한 아버지에게도 고유한 삶과 누구도 알 수 없는 내재성의 영토가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 살만 루슈디가 그리고 있는 아버지의 초상은 더 이상 권위주의적 가부장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유한하고 나약한 남자이며, 세상의 풍파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작은 풀잎 같은 불안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이 무능한 아버지는 종종 특유의 유머 감각과 낙천성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가부장제는 해학적이고 서정적인 방식으로 해체된다. 이와는 반대로 가부장제 해체와 동시에 실질적인 가장이 되는 ‘강인한 어머니’와 ‘독립된 강한 자식들’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가부장이 행사하는 규율적 강제와는 달리 모성의 강인함은 근원적으로 생리학적인 지배에서 비롯된다. 신체기관들을 성장시키는 ‘어미’의 원초적 본성과 연관된다. 살만 루슈디의 소설은 메타-역사에 등장하는 유령들의 연대기이며 더불어 인물들이 기상천외하게 벌이는 희극풍자의 유희극이다. 문학은 윤리-미학-정치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있다. 윤리적으로는 불온하나 미학적으로 충분하며 정치적으로 도발적인 이 소설을 잊기 위해서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게 더 손쉬운 일 일지도 모르겠다. By 2012. 1.31. 0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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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하다. 2권의 책장을 덮고나서 생각난 말이다. 분량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거대하다. 그리고 아쉬웠다. 막상 재미를 붙이고나니 끝이 나버렸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읽기가 힘들었다. 부커상 3관왕의 타이틀에 큰 기대를 했었나.. 술술 읽히지 않고 너무 더디게 읽혀서 버거웠다. 역사, 세계사에 문외한인 나에게 책 속에서 마구 튀어나오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역사는 자꾸 나의 흐름을 끊어놓았다. 이 역사적 사실들을 모르면 책의 재미가 반감될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들게 시작한 책이 며칠 뒤에는 너무 아깝고 소중해서 한 챕터씩 아껴가며 읽게 되었다. 빨리 읽는 것은 포기하고 역사적 사실들 일일이 다 찾아가며, 정말 하나도 버릴것이 없는 소중한 문장들을 하나하나 다시 곱씹어보며.. (개인적으로 번역이 굉장히 훌륭한 것 같다.)
인도가 독립하는 순간에 태어난 1001명의 아이들. 각자 특별한 능력을 가진, 역사와 함께 태어나 역사와 함께 끝나버릴 아이들 중 살림 시나이의 30년간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살림 시나이와 그의 가족들, 친구들이 겪는 일상들은 우스꽝스럽기도, 슬프기도, 사랑스럽기도 하다. 이들의 삶이 인도의 역사를 투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한 사람의 세계를 삼키는 일이다.' 살림 시나이를 이해하게 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이라는 세계도 삼키게 되었다.
너무나도 읽고 싶어 집었다가 조급한 마음때문에 제대로 느끼지 못해 아쉬운 책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훌륭한 이 책을 한번의 만남으로 끝내고 싶진 않다. 조만간 시간의 여유가 있을때 다시 한 번 한밤의 아이들을 천천히 음미할 생각이다. 그 때는 또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오길 바라며.. 루슈디를 이해하고, 살림 시나이를 이해하고 한밤의 아이들을 삼키고 인도도 삼켜버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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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내나이 스물하고 하나였던 시절에 아무런 준비없이 산에 오르게 된 일이 있었다. 전날 친구들과 마신 숙취의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 미리 선약이 되어 있던 모임에 부랴부랴 하늘거리는 원피스에 샌들을 신고 합류를 하게 되었다. 무더운 팔월의 어느날 그날 모임의 행선지는 바로 북한산이었다. 만약에 그날의 목적지가 북한산 정상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그날 모임에 아마도 불참했을것이다. 날은 뜨겁고 발은 아프고 속은 쓰리고 어느것 하나 편하지않던 그날의 기억은 그러나 긴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리운 추억속의 한자락으로 기억되고 있다.
끝나지않는 이야기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신비로움이 가득하다는 문구에 끌려 이책을 집어든 심경이 딱 그날 내가 올라가야 할 산이 끝이 보이지않는 북한산이라는것을 알았을때의 심경과 같았다.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것처럼 나는 책속에서 길을 잃었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나를 가둔 페이지는 나를 내보내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를 읽는다. 작가의 서문을 읽는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구멍 뚫린 침대보'를 알아보기로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7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책장을 덮은채로 다른 책들을 뒤적이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한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는 어린 시절에 어린 아이의 눈에 알맞게 각색된 어린이판 아라비안나이트였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었었다. 몇번이나 같은 자리를 헤매던 끝에서야 간신히 그 길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오래전 그날 당장은 고통으로 다가왔지만 나중에는 추억으로 간직되었던 그날의 산행처럼 지금 당장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은 참 힘겨웠지만 책장을 덮은 다음에는 나 스스로에게 마치 장한 일을 해냈다는듯이 어깨를 두드려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세계문학사에 남을 유일무이한 사건 부커상을 세번이나 수상했다는 페이지의 선전문구는 다르게 보면 재미와는 담을 쌓은 작품이라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평론가들이 별을 여럿주는 영화보다는 네티즌들이 별을 여럿주는 영화에 관객들이 더 많이 몰려드는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할수 있는데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영화일수록 보통의 관객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예술성을 강조하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1947년 8월15일 최초의 한시간동안 갓 태어난 인도의 영토안에 천 명하고도 한명의 아이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중의 한명이 바로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12시 정각에 태어난 살림 시나이다. "그 아들은 절대로 조국보다 나이를 더 먹지 못할 터- 더 늙지도 않고 더 젊지도 않으리라"는 예언과 "신문이 그를 칭송하고 두 어미가 그를 키우리라"는 예언을 함께 들으며 태어난 살림 시나이, 태어나면서 이미 운명이 바뀐 살림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만 내안의 생각이 너무 많아도 복잡하고 머릿속이 뒤엉킬때가 있는데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먹고 그 사람의 생각마저 알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살아야 하는 살림.
살림이 연인 파드마에게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아담 아지즈와 나심의 만남부터 이야기를 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파마드의 말을 빌면 그런 속도로 이야기를 진행시켜가면 살림이 태어나기도 전에 살림이 죽을것 같은 속도라고 할 정도로 이야기는 더디게 진행이 된다. 아주 오래전 아담과 나심이 구멍 뚫린 침대보를 사이에 두고 진찰을 두고 받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둘의 결혼이후 그들의 자녀이야기 그리고 살림의 어머니인 뭄티즈와 아흐메드 시나이의 결혼까지는 아주 수많은 시간들이 존재한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상인지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것 같아서 읽는내내 안개가 자욱한 길을 헤매고 다니는 기분과 함께 앞으로 빨리 나아가고 싶은 기분을 불러 일으키는 글이었다.
이제 겨우 한번을 그것도 간신히 한달여를 끌어안고 버티다가 읽어냈다. 아직 살림의 이야기는 시작되지않았는데 다음권을 다 읽을때까지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감히 생각해보지않으려고 한다. 인도의 역사와 한밤의 아이들 그리고 살림 시나이가 만들어가는 독특하고 신비한 세계로의 여행은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걸릴것 같다. 충분히 매혹적이지만 쉽게 다가가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