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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역사는 무엇일까? “역사는 개인의 삶보다 거대한 규모로 진행되므로 상처를 꿰매고 난장판을 정리하는 데에도 휠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역사에서 간디여사의 정치, 방글라데시의 독립, 파키스탄의 상황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에게는 결코 해피앤딩이 없는 것 일까? 아니면 희망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만족하는지. 그 뒤는 숙제처럼 남겨 두는 것인지. 외삼촌과 여배우 외숙모 그리고 할머니(원장수녀님)의 사건들은 세상 어디에서는 있는 어머니와 아내의 다툼, 가족의 일들은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서 묻으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다. 환상의 신전에서 그는 오히려 현실을 추구하는 대제사장이 되었다. 당신은 내 인생을 사막으로 만들어 버렸어. ‘메리의 고백’으로 나는 가족이면서도 가족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사건이 흘러버린 것이었다. 한밤의 아이들 협회는 마치 총리의 예언을 실현하기라도 하듯이 실제로 우리나라의 거울이 되어갔다. 파괴되고, 사라지고, 변해버렸다. 내가 벌일 일들은 나의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사바르마티 사건 속에서 ‘라마야나’의 숭고한 정서와 봄베이 영화식 저급한 통속주의 모두 담겼다.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구루로 변신한 코흘리개 친구, 쿠스로 쿠스로 반드(키루스 대왕)로 인도의 정신적 산업의 단면도 보여준다. 외삼촌의 자살은 예술의 붕괴, 나만의 예술을 고집하는 것은 어디던 위험한 일이다. 자신을 갉아먹는 좀벌레를 처치하지 못한 외삼촌은 희생양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하느님을 믿지도 못하고 안 믿지도 못하게 되었다.” 우리 국민은 연관성에 환장한 사람들이다. 인도중국전쟁, 이 전쟁에서 인도의 자존심을 왕창 구겨버린 중국, 인도는 이제서야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거대하지만, 허약하고 기틀이 부실한 대국, 이에 대해 많은 자성의 소리도 들려왔지만, 쉽게 개선될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공격했을까? 누가 방어했을까? 그들의 적은 파키스탄 만이 아니었다. 파키스탄, 우리 가족은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로 굳게 결심하지만, 희망의 땅에서의 삶도 쉽지는 않았다. “동료학생들은 더욱더 엄격하고 더욱더 이슬람적인 사회를 요구하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규율의 완화가 아니라 강화를 요구하다니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셈이었다. 우리 가족. ” 그 속에서 빛난 동생의 재능, 국민가수가 된 동생, 숨길수록 더 인기를 얻어버렸다. 이와 더불어 생긴 아버지의 의욕, 아미나표 수건 하지만, 그 운명은 몰락의 추에 더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우리 집안 역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일까! 이 사이에 싹튼 살림의 누이 사랑, 우리는 남이나 다름없어,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근친상간이 아니야 라고 애써 변명을 해보지만, 변명을 말 그대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탐욕이다. 만족을 모르는 나는 창녀 타이비비를 통한 배움을 얻는다. 할머니와 이모의 고민과 아름다움의 주유소, 할머니는 유리 고해실에 앉아서 세상의 온갖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방글라데시 속의 붓다. 폭탄이 휩쓸어 버린 우리 집안의 비극, 폭탄은 우리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을 싹 쓸어 데리고 가버렸다. 더불어 기억상실증으로 나는 새로운 인간 개가 되어버렸다. 과거의 살림은 지금의 붓다로 변신했다. 사건들 속에서 헤어나갈 방법은 역시 과거에 답이 있었다. 어렸을 때 뱀독으로 생명을 구한 나는 다시, 뱀독의 충격 덕분에 과거를 되찾고 다시 온전해졌다.나는 누구-무엇인가? 나는 나보다 앞서 일어났던 모든 일, 내가 겪고 보고 실천한 모든 일, 그리고 내가 당한 모든 일의 총합이다. 간디와 어둠의 시대. 시대는 변하고 있다. 상업주의와 공산주의, 흑색경제와 백색경제 ‘아이고 아이고 다들 외국에 나가더니 불운을 불러들였어’ 그리고 마녀 파르바티와의 사랑, 하지만, 나는 이룰 수 없었다. 나의 라이벌 시바와 핵실험, 핵은 파괴만이 남는 것이지만, 인생을 재창조하는 데는 전쟁만한 것이 없다. 누구에게나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는 법이다. 이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 해주는 말 “인디아는 곳 인디라, 인디라는 곧 인디아.” 그녀 자신이었다. 그러기에 그녀 마음대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시대였다. 하지만, 인간의 유한함을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아이와 비상사태, 시바와 파르바티 아이, 나의 아들이 되고 이 아이는 새로운 인도를 상징한다. 사랑도 아니었지만, 나의 운명처럼 이 아이의 운명은 어떤 우여곡절을 겪을까. 하지만, 그가 있어 새로운 희망과 인도가 탄생하리라 믿는다. 공산주의자 마법사들이 어떻게 사회주의자들의 총을 감당할 수 있으랴? 과부합숙소 마하라자의 왕궁 비상사태 속의 구금, 나의 자백으로 많은 한밤의 아이들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비상사태의 선포와 함께 이루어진 변화, 열차가 정시에 운행되고, 부정축재를 한 자들이 겁에 질려 세금을 납부하고, 날씨마저 순종해 풍작을 거두게 된다. 모든 것이 두려워 하고 있다. 더 이상 인도는 인도가 아니었다. 독재자의 까닭 없는 두려움이 오히려 두려워할만한 이유를 만들었구나. 희망절제술, 사라진 생식능력, 하단-힘빼기-작업 인간의 생식능력 마저 통제하는 시대 어둠의 시대가 도래했다. 기억의 날조.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한다는 말은 봄베이영화에서나 가능하다. 나의 사랑은 그 존재자체도 의심을 받는다. 아무것도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의 도시 봄베이 이 도시는 변해버렸다. 젊은 세계주의자들이 이 도시를 차지해버렸다. 나에게는 피클이, 나의 남은 마지막 유일한 어머니이다. 나의 기나긴 자서전, 형태와 형식을 즉 의미를 담아내는 일이다. 역사피클은 진실의 참 맛을, 역사는 역사 그 자체여야 한다. 인도에서 보낸 유년기와 파키스탄에서 보낸 사춘기, 그리고 다시 인도로. 사건들은 쉼 없이 일어나고, 펼쳐진다. 마치 연결된 그림들이 천천히 풀려나듯이 인도의 다양한 부분과 면을 보여주는 그의 글속에서, 인도를 발견하게 된다. 또 개인의 생(어쩌면 비극)을 통한 조각으로 인도와 주변 나라의 현대의 역사의 타래를 풀어나간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인도의 역사와 대면하게 된다. 판타지 위에 현실은 춤을 춘다. 현실과 환상을 잘 혼합하여 새로운 글을 만들었다. * 이 책은 읽기가 쉽다. 그리고 재미있을 수도 있다. 거기에다 인도와 그 주변의 역사를 알면, 더 깊은 것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진정한 역사책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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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마지막 부분에 겨우 10살이었던 살림은 그 후 세 번씩이나 집을 떠나게 된다. 첫 번째는 아흐메드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두 번째는 어머니가 아이들만 데리고 파키스탄으로 건너가면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동생인 놋쇠잔나비의 뜻으로 집과 멀어진다. 살림은 점차 자신이 있음으로 해서 세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과대망상에 빠진다. 그래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자신과 연관이 있다고 확신한다. 1편에서 만나지 못한 살림의 여자들은 이름을 바꿨을 뿐, 1편에 이미 등장했던 인물들이었다. 살림에게 영향을 미친 여자들은 모두 두 개의 이름을 가지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살림 역시 그의 아내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 2권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쟁과 동˚서파키스탄의 내전 등,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살림의 가족들이 모두 사망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살림과 누이동생 정도지만 살림 역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살림을 키운 양부모들이 끝까지 자신들의 친아들인 시바를 찾으려하지 않았던 점이다. 살림도 이 사실을 두고 의아해하는데 자신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기를 좋아했던 살림은 결국 그 이유를 키운 정을 인정한 양부모의 사랑으로 해석한다. 살림이 태어나기 전의 32년과 살림이 살아온 31년을 합한 63년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 이 책의 내용은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로 분리된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전쟁을 겪으면서 눈앞에 펼쳐진 잔혹한 학살 장면에 “보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을 다 믿으면 안 된다.”라고 애써 외치던 역사 속의 사람들. 작가는 아담 시나이라는 피클공장부장을 통해 세계와 역사는 영원히 원형이라는 것, 뱀이 있으면 사다리가 있고 사다리가 있으면 뱀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사다리는 올라갈 때도 유용하지만 내려올 때도 유용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1권을 읽을 때보다 2권을 읽을 때 이 책이 세 번의 부커상을 받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의 현란하기까지 한 글의 숲에는 수많은 의미가 층층이 겹으로 쌓여있었고, 그 숲에 들어간 독자들은 자신의 환경에 따라 그 숲을 조각조각 나누어 경험 할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살만 루슈디라는 작가는 문장의 틀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문장들은 그가 부리는 대로 나누어지고 모이면서 작가가 원하는 대로 짝을 지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다. 약간 지루하던 1권을 끝까지 읽었던 인내심에 대한 보상을 2권을 통해 충분히 받은 기분이다. 다소 황당했던 내용들도 2권에 맞물려 다 그럴 만한 사연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비록 한 밤의 아이들은 정치 권력자에 의해 강제로 거세당했지만 그 일이 있기 전에 한 밤의 아이들이 낳을 자식들이 이미 세상에 넘칠 만큼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에서 한 밤의 아이들은 개인의 역사를 넘어 인도와 세계의 역사이며 앞으로 살게 될 미래라는 생각을 했다. 살림 역시 자신이 낳지 않았지만 자신의 자식인 아담 시나이를 기르고 있다. 해서 세상은 이원적이면서 원형적이라는 것. 그래서 이 책은 시간을 뛰어넘어 언제까지나 현재로 해석할 수 있겠다. “아아, 제발 이 이야기가 끝없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라고 말한 김연수 작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독자가 가진 배경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내용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이런 소설이 나는 좋다. 한 번에 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볼 때마다 새로운 모습이 더해지는 것.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글의 숲에서 허우적거렸지만 다시 또 읽는다면 아마도 그 빽빽한 숲이 길을 열어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읽고 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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