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미안은 청소년 시절부터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소개되어 익히 알고 있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난해하고 음울한 분위기로 매번 읽다가 다른 책으로 넘어가곤 하였다. <데미안>은 내게 숙제같은 책이었고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운이 좋게 완독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 읽은 <데미안>은 생각보다 술술 읽혔고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너무 어릴 때 읽으면서 포기했던 기억과 몇몇 사람들이 어둡고 별로라고 평했던 경험들이 내 안에 쌓여 부정적인 이미지를 쌓았던 것 같다. |
|
내가 사랑하는 작가 헤르만헤세의 작품인 데미안, 사실 나는 소설가 헤르만헤세보다는 화가 헤르만헤세를 좋아한다. 섬세하고 포근하며, 아늑한 색감, 자연스러운 구도, 빛으로 가득찬 그의 화폭은, 언제나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고도 포근하게 만들어준다.
1919년 데미안 발표당시 작가는 싱클레어. 일견으론, 자전적 소설을 가진 책으로 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필명을 썼다고도하고, 정확한건 헤르만헤세 본인만의 진실이겠지만, 독일의 체제에 반발하여 스위스로 망명한 헤르만헤세는, 데미안 발표이후 정신질환치료를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세계문학전집 1권에 해당하나 늘 호기롭게 열었던 덮었던 내책..ㅠㅠ 주인공 메일싱클레어는 목사이신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밑에서 조화로운 가정에서 자라난다. 이 책을 읽고 가장먼저 든 생각은, 선과 악은 언제나 내면에 존재하고 있고,
부럽다 싱클레어! 나도 데미안과 같은 친구를 가져보기를 소망한다. *본 책은 리뷰어스클럽 카페를 통해 다상(출판사)에서 책만 제공받아 제 생각을 가감없이 표현한 리뷰입니다. |
|
오래 전부터 읽어야 할 책으로 분류해놓고 이런저런 상황을 핑계로 묵혀두다 이제서야 읽은 책이다. 헤르만 헤세는 독일의 대표적 작가로 <데미안>과 <싯다르타>를 비롯한 많은 저작을 남겼다.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간한 작품이며 당시 유럽이 겪고 있던 사상적 혼란과 제1차 세계대전의 사회적 혼란기에 발표되었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10살 무렵 자신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선'과 '악'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온하고 온화한 가족 분위기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는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선과 악을 느낀다. 자신의 가족을 둘러싼 삶과 하인들이나 천민들의 삶이 풍기는 공기가 다름을 인지하고 성근 철학적 고민을 시작한다. 자신을 비롯한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던 라틴어 학교와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이 다니던 공립학교,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어울리다 무심코 던진 거짓말은 크로머라는 악의 지배자를 만들고 싱클레어는 크로머에게 끌려다니는 처지에 놓인다. 도둑질을 했다는 거짓말이 불러온 이후의 삶은 싱클레어를 절망에 빠뜨렸으며 크로머의 지배에 저항하지 못한 채 도덕적으로 옮지 않은 행동을 이어가게 된다. 거짓말로부터 시작된 부정행위가 쌓일수록 고민은 깊어지고 평화롭던 가족관계 조차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
크로머의 지배로부터 끌려다니며 늘어가는 부정한 행위에 대해 절망하던 시기, 같은 학교에 전학온 '데미안'을 만난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동급생들에 비해 나이가 몇 살 많아 였지만 나이보다도 그의 행동거지와 이미지에 매료된다. 우연히 어쩌면 데미안의 의지로, 싱클레어와 크로머의 관계를 눈치챈 데미안은 그만의 방법으로 싱클레어를 크로머로부터 구원해 준다. 종교 수업을 들으며 데미안과 가까워진 싱클레어, 데미안이 바라보는 종교나 세상은 싱클레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들에 대해 새로운 사고를 이끌어내고 싱클레어는 성장한다.
김나지움에 입학한 후 방황기를 거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대한 의문은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술과 의미없는 무리짓기에 휩쓸려 다니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만난 이름도 모르는 어떤 여인에 대한 사랑을 느끼자 방황을 끝내고 사랑에 집중한다. 그녀를 상상하며 한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완성하고 보니 그녀를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데미안을 닮은 듯, 아니면 자신을 닮은 듯한 야릇한 감상을 느낀다. 그림 속의 대상과 대화를 하거나 꿈에서 만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싱클레어는 차츰 무엇인가를 깨달아 간다. 피스토리우스, 그는 유명한 목사의 아들로 사제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깊은 사색을 통해 종교적 맹신의 불편한 단면과 이해불가함에 부딪혀 번뇌하고 결국 자신은 목사로서 누군가에게 신앙을 전파할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음을 깨닫고 음악가로 전향한다. 싱클레어에게 피스토리우스는 겉모습만 바뀐 데미안이었고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서 배운 내면을 보는 법과 삶을 바라보는 자세를 다시 배운다. 그런 차에 다시 데미안과 조우한다. 이러한 깨달음을 인지한 자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도 있고, 서로에게 이끌린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싱클레어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의 쪽지'는 카인의 표적과 함께 소설 <데미안>에 흐르는 주제란 생각이 든다. 싱클레어가 10살 소년에서 청소년으로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인으로의 정신적 성장은 하나의 세계를 뚫고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카인의 표적'을 지닌 자들을 만나 자신과 세상의 본질을 알아가는 과정이되기도 한다. 꿈속에서 보고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삼았던 성별도,나이도 불분명한 대상은 싱클레어가 만나본 적도 없는 데미안의 어머니 모습이었고 그것은 싱클레어도 '카인의 표적'을 지닌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그림에서 느껴졌던 대상들 데미안, 데미안의 어머니, 싱클레어 자신 등 모두가 카인의 표적으로 엮인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공유했으며 상대에게 전달하거나 전달받을 수 있는 지적 성숙을 이룬 자들이었다. 데미안이란 책에 대해 처음 들었던 건 고등학생 때였으니, 내가 이 책을 읽는데 20년이 넘게 걸렸지만 다른 분들은 좀 더 일찍 접했으면 좋겠다. 헤르만 헤세 자신의 자전적 요소를 가미한 이 소설에서 나는 지적 깨달음을 얻은 어떤 철학자가 제시한 교훈과 같은 가르침을 받았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도전했지만 완독하지 못했던 "데미안" 드디어 완독을 했다. 확실히 어릴때와 지금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게 다른 것 같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며 부유하게 자란 주인공은 어느날 크러머 라는 동급생과 어울리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 거짓말을 듣고 크로머는 과수원 주인이 도둑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었다고 얘기하면서 자신에게 그 현상금을 주지 않으면 경찰에 얘기하겠다고 협박한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자신의 삶이 두개의 세상으로 나누어져있다고 생각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밝은 세상과 어둠의 세상이 존재하며 자신은 밖에 나갔다가도 밝은 세상으로 도망쳐 올 수 있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크로머로 인해 밝은 세상보다는 어둠의 세상속에 갇혀 있는 다는 느낌을 받는다. 괴로운 나날이 계속된 어느날 데미안이라는 상급생이 전학을 오게 되고 합반을 한 계기로 데미안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통해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데미안을 통해 성숙해진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가급적 밝은 세상속에서 살고자 하지만 유혹과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밝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힘들 수도 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주변에 정신적 지주나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정신적 지주이자 친구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라도 비평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내 주변엔 데미안 같은 친구가 얼마나 있을까? |
|
고전이라 함은 누구나 읽어본것 같고 줄거리도 대충은 알고 막상 본인은 읽어보지 못한 낯선이야기책이 아니던가....
그래서 고전이란 이름의 무게를 건디고 읽는 다는 쉽지 않다 그러하기에 가볍거나 혹은 내 시간에 같이 견딜수 있는 동질성이 있는 책이면 좋은 동기를 가지고 읽을수 있는 고전을 데미안으로 선택하였다. 청소년 시기에 방황하고 고민도 많고 늘 불안한 시기에 데미안이란 책에서 주인공인 그가 격는 이야기는 동질설이 꽤 크다고 할수 있다
데미안은 저자가 헤르만 헤세로 다소 어려운 문장으로 해석을 많은 것을 내포한 작가이기도 한데다가 교수마다 다양한 접근적인 해석을 가진 소설이기에 부담은 크다.
그래서 분량에 비해 많은 접근을 어찌 할까 했는데 데미안 소설을 핸드북크기정도로 쉽게 손에서 놀수 있는 크기로 편집이 되어있고
편역도 고전을 현대인이 읽기 쉽게 편역하는 모음으로 선택하여 우리말의 운율과 품격을 극대화 하려는 팀으로 구성된 곳에서 편역을 하다보니 읽는 접근성이 보다 가볍다고 할수 있다
헤르만헤세의 많은작품속에서 익숙한데다가 단연 돋보이는 데미안 첫문장에서부터 주인곳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고 내 나이 열살무렵무렵,라틴어 학교를 다닌 이야기부터 시작을 한다. 주인공은 누구인지도 알수 없이....
그 집안의 풍경을 상세히 밝은 세계에 속하는 내용으로 가득히 풀다가 서서히 본인의 입장에 가까운 접근적인 설명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라틴어 학교와 대조적인 이웃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을 하면서 이야기는 다르게 풀어간다. 나와 다른 세상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시점에서 처음으로 이름이 등장한다. 크로머...
이 아이의 등장으로 인해 주인공에게는 엄청난 이야기가 펼처지기 시작하고 기독교 신앙 속에서 보살핌으로 성장하는 밝은 세상이었다면 어둠의 세계로 이끈 크로머의 이야기로 그들의 의식과 불안한 삶과 아직 가치도 성립되어있는 아이도 아닌 아이에게 불안적인 생각을 혼돈으로 만든 그러한 속에서 등장하는 구원의 카인 카인은 기존의 규범과 안습을 벗어나는 해석부터 다양한 가치관을 성립하게 만드는 그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싱클레어의 성장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 아이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다른 성장도 맛보기도 한다. 그래서 그 당시의 불안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문학이라고 하여 고전이라고 칭하고 있는 듯 핟.
성장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정답도 없고 불안만 존재할뿐 아무것도 모르는 그 현실을 싱클레어 눈으로 문장으로 이야기가 풀어나가는 고전
|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드디어 만났다. 사실, [데미안], [싯타르타]를 구입한 지는 오래되었다. 책 추천에서 빠지지 않았던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이제서야 읽다니. 좀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소설로 느껴졌다. 목사인 아버지와 신앙심 깊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와 [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참 닮아있었다.
정신적인 한계 상황을 경험한 헤세가 의학심리학의 대가인 카를 구스타프 융의 제자인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 박사에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한 성장 소설 [데미안]을 집필했다고 한다. 소설에서 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아마 정신분석 치료 과정의 연장선이 아니었을까
총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1장 두 개의 세계 제 2장 카인 제 3장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도둑 제 4장 베아트리체 제 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제 6장 야곱의 싸움 제 7장 에바 부인 제 8장 종말의 시작
나는 1장을 읽어내려 가면서 화자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옛날 나의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두 개의 세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를 떠올랐다. 나도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다. 항상 바르고 도덕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컸지만, 우습게도 동네 언니들이 작은 슈퍼마켓에서 과자를 훔칠 때 망을 보았다. 잘못된 행실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왜 그런 나쁜 행동에 가담했는지. 밝고 반듯한 세계에 속한 부모님의 자식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나는 금지된 세계를 동경했는지도 모르겠다.
데미안과 만나게 된 2장. 성경에서 만났던, 카인과 에벨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미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존의 해석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니,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 밖에. 마치 내가 예전 [다빈치 코드]라는 책과 영화를 보았을 때의 충격이라고 할까?
용기와 개성을 표출시키는 인간은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 두려움을 모르는 종족이 돌아다닌다는 건 아무래도 불편한 일이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 종족에게 별명을 붙이고, 우화를 달아놓은 거야. 그 족속들에게 복수하려고 모두가 간신히 견디는 두려움을 별것 아닌 것처럼 만들려고 말이지. 이해되니? (P 49)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함께 하는 시간을 따라가면서, 마치 내 옆에 데미안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도 종교는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까 말이다. 데미안 덕분에 성서 이야기나 교리를 좀 더 자유롭고 개인적이며 유희적이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바라보며 해석하는 습관을 익혔다고 표현하는 싱클레어. 그러나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기존의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뒤흔들만한 이야기를 하는 데미안.
우리는 스스로가 무엇이 허용된 것이며, 무엇이 금지된 것인지 알야야 하는 거야. 자기에게 금지 된 것 말이야.....(중략) 너무 안일하게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걸 귀찬아하는 사람은 기존의 금지된 것에 그대로 순응해버리지. 그게 편하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기 안에서 스스로 계율을 느껴. 이런 사람에게는 명망 있는 사람들이 매일 행하는 일이 금지되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엄금된 일이 스스로에게는 용납되기도 해. 누구든 자기 스스로 책임질 필요가 있는 거야. (P 98)
낯선 곳에서 홀로 된 싱클레어의 방황.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주인공 앞에 기적처럼 나타난 운명의 소녀.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홀로 붙이며, 다시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그. 베아트리체의 초상화를 그려나가는 싱클레어. 그런데 그 초상화 속에서 데미안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참, 유명한 구절을 드디어 만났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만 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자신이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서 새롭게 다시 일어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연히 만나게 된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와 싱클레어.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의 성장을 돕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싱클레어가 '아브락사스'에 대한 의문점을 갖고 있었을 때, 운명적으로 만난 두 사람. 신비주의자, 혹은 구루라고 피스토리우스를 칭할 수 있을까
인식의 첫 불꽃이 발화됨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되는 거야. 설마 자네는 저 거리를 돌아다니는 두 발 달린 족속들을, 직립 보행을 하고 아이를 임신해 아홉 달을 품고 있다는 오직 그 이유만으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가 아직도 물고기나 양, 지렁이나 거머리일 수도 있다는 걸 자네는 알거야. (P 160)
인식의 불꽃이 발화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참,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은 머나먼 여정이다. 기나긴 외로운 여행길. 피스토리우스가 싱클레어에게 한 말은 우리들에게 하는 말이다. 싱클레어가 성장하는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내가 진정한 나를 발견해 내 안에서 성장해 나가고 있음을 아는 것, 나 자신의 꿈과 생각, 예감을 신뢰하고 내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힘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아가는 것이 좋았다. (P 183)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진정한 소명은 오직 하나,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이다.(P 192)
우리가 의무요, 운명이라고 느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일뿐이었다. 그것은 우리들 각자가 와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 내면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소질에 완전히 몰입해 자연적 의지에 따라 살며,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올 미래의 일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운명이자 의무라고 느꼈다. (P 219)
데미안와 그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과의 만남을 갖게된 싱클레어. 에바 부인을 이성적으로 느끼는 그의 모습은 좀 낯설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계속 만나고 싶었던 여성의 모습이었기에 혼란스러웠을 그가 이해되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동경하기도, 때로는 부정하기도 하다. 데미안은 그의 친구이기도 하고, 인도자이기도 하다. 싱클레어가 자신의 길을 찾는 길을 보여주는 성장 소설로 보아야 할까 혹은 싱클레어가 데미안이 되는 과정이라고 해야할까 인식의 첫 불꽃이 발화된 사람.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 변화하는 존재이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은 죽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고전에서 삶의 지혜를 만날 수 있길 희망하며, [데미안] 일독을 권한다. |
|
데미안
차분히 읽기에 좋은 계절에 만난 데미안. 쉼표를 찍어가면서 읽은 책이다. 주인공이 사고하는 사유와 경험들을 함께 떠올려보면서 함께 발걸음을 맞추어갈 수 있었던 시간들은 꽤 깊은 사유의 시간으로 인도해주었던 책이다. 초반부를 지나 중반부를 지나면서 점점 세상을 펼쳐볼 수 있게 한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참과 거짓을 고르듯이 경계선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뒤집어보게 하였고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일이 얼마나 큰 저항을 느끼게 하는지도 글 속의 문장을 통해서 또 한번 공감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