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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법정 39. 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한국사법정 39. 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내용보기
교과연계공부 도움되는 한국사법정 39권을 읽어봤어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는데요.         책과 드라마에서 악역이었던 정순 왕후. 진실을 밝힘으로써 명예를 밝히고자 했거든요. 정조의 실체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이렇게 소장을 올리게 됩니다.         이해하기 쉬운 그림과 설명이 있으니 집중할 수 밖에요. 법정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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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연계공부 도움되는 한국사법정 39권을 읽어봤어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는데요.

 

 

 


 

책과 드라마에서 악역이었던 정순 왕후.

진실을 밝힘으로써 명예를 밝히고자 했거든요.

정조의 실체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이렇게 소장을 올리게 됩니다.

 

 

 


 

이해하기 쉬운 그림과 설명이 있으니 집중할 수 밖에요.

법정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통해 역-사의 흐름과 관련 지식을 알 수 있답니다.

그리고 몰랐던 용어도 설명을 통해 알아볼 수 있었죠.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위대한 국왕으로 불렸던 정조의 이야기.

많은 어려움을 뚫고 왕이 되었고 그 후 당파를 없애고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어요.

하지만...

정조의 할머니인 정순 왕후가 패륜아, 독재자라고 하면서 소송을 제기했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법정에서의 공방을 알아보는 구성이라 재미있게 읽어볼만한 책이랍니다.

초등역사전집추천 할만한 내용이 담겨 있으니 꾸준히 읽어보면 역사지식 팍팍 쌓일 거 같아요.

 

 

 

도서를 제공받아 아이와 활용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o********y 2022.03.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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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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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5학년 딸아이를 둔 엄마예요 한창 한국사를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라 궁금한것도 많고 질문도 많을때이지요 이번엔 조선시대의 왕에 대해 궁금하다며 이것저것 꼬치 꼬치 캐 물어보기 시작하더라구요 저도.. 한계가 있는지라..ㅎㅎ 딸아이와 함께 읽기전에 먼저 읽고 공부를 해야 한답니다. 저도 줄줄이 외울것만 투성인 역사 책 보다는 이렇게 재미있게 드라마 보듯이.. 소설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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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5학년 딸아이를 둔 엄마예요

한창 한국사를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라 궁금한것도 많고 질문도 많을때이지요

이번엔 조선시대의 왕에 대해 궁금하다며 이것저것 꼬치 꼬치 캐 물어보기 시작하더라구요

저도.. 한계가 있는지라..ㅎㅎ

딸아이와 함께 읽기전에 먼저 읽고 공부를 해야 한답니다.

저도 줄줄이 외울것만 투성인 역사 책 보다는 이렇게 재미있게 드라마 보듯이.. 소설읽듯이.. 술술 읽혀나가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이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

이번에 읽은 책은  

우리 딸아이가 조선시대의 왕중에 가장 좋아하는 세종대와과 정조대왕 이 두분의 왕!

그중 정조대왕에 대해 속속들이 들여다 볼수 있는

"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랍니다.

젊은 할머나 정순왕후와 정조대왕의 대립된 상황을 보면서 그 시대를 함께 느껴볼수 있는 책이었어요

이책은 달달 외워가면서 읽지 않아도 이상하게 쏙쏙 머리에 들어와서 

이책을 읽고 난뒤 영화 역린을 보았는데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봐서 그런지 영화도 너무 재미있었고

또 가족과 함께 수원화성을 다녀왔었는데 책도 읽고 영화도 본 뒤에 다녀온 수원화성은 정말 정조대왕이 화성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너무 실감난 체험학습이 되었답니다.

정말 의 힘을 확실하게 느끼고 온 체험학습 이었어요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께도 꼭 추천합니다.

책을 꼭 읽으시고 영화를 보시고 수원화성에 한번 다녀오시길.. ^^

 

이렇게 너무 재미있게 읽은 이 책에서는 조선의 성조이신 정조대왕님께서 백성을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신 많은 업적들에 대해 알수 있답니다.

하지만 정조대왕의 젊은 할머니 정순왕후의 입장에서 보면 정조는 탕평책이나 규장각 육성등을 자신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여 왕권을 강화한것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겠죠?

이러한 대립적인 시선에서 정조대왕과 정순왕후가 한판 법정공방을 벌이는 모습을 이책에서 볼수 있답니다.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가 외 수원화성으로 옮겨졌는지 또 정조가 조선의 발전과 백성을 위해 만든 많은 훌륭한 업적들과 왜 수원화성을 만들었는지 그 수원화성을 만들기 위해 힘쓴 일등공신들과 과학적으로도 아주 훌륭한 첨단기계들까지 사진과 함께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고 있답니다.

딸아이가 정조대왕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다시한번 느꼈다고 하면서 시간이 날때마다 읽고 또 읽고 한 이책..

역사가 지루하다 느끼시는 학생이라도 이 책 만큼은 꼭 읽어야 할 정말 꼭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d********n 2014.07.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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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에 대한 또 다른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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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 한국사법정 / 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 자음과모음   (중1 연우의 글)   조선 시대 대표적인 성군으로는 세종과 성종, 숙종(사람의 견해에 따라 다름), 정조가 있다. 이렇게 조선의 성군으로 뽑히는 정조 뒤에는 항상 그를 괴롭히는 인물로 그려진 정순 왕후가 있다. 한국사법정의 이번 재판은 정순 왕후가 ‘자신이 무시당했다’라면서 정조를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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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 한국사법정 / 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 자음과모음

 

(1 연우의 글)

 

조선 시대 대표적인 성군으로는 세종과 성종, 숙종(사람의 견해에 따라 다름), 정조가 있다. 이렇게 조선의 성군으로 뽑히는 정조 뒤에는 항상 그를 괴롭히는 인물로 그려진 정순 왕후가 있다. 한국사법정의 이번 재판은 정순 왕후가 자신이 무시당했다라면서 정조를 고소하면서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조를 왕위에 오른 후 왕권 강화를 위해 많은 일을 한 왕이라고 말한다. 그 예로 드는 대표적인 것이 수원 화성이다. 그 외에도 규장각, 장용영 등 그가 이룩한 것은 많다. 하지만, 정순 왕후는 그것들이 다 정조가 자신의 왕권을 확립하고, 독재 정치를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그 예로 그가 세운 집단의 사람들에게만 특권을 주었다는 것,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 화성으로 가서 실세를 잡으려고 했다는 것 등을 들었다.

 

이와는 반대로, 정조는 자신이 개혁 정치를 하기 위한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규장각을 세운 것은 정신이 깨어 있는 인재들을 만들기 위한 것이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 화성으로 가려고 한 행위는 영조의 유언을 지키면서 사도 세자를 왕으로 추존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재판관은 어느 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단지 둘이서 같이 여행을 떠나라는 판결을 내린다. 정순 왕후와 정조는 여행하면서 서로가 역사 속에서 힘들었던, 불행한 인물이란 것을 알게 된다. 재판관은 이렇게 훈훈한(?) 판결을 내려주지만, 실제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판결을 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 재판은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번 재판의 승자는 정순 왕후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세계적 흐름은 왕권 강화가 아니라 민주화였다. 정조는 자신 스스로 규장각도 세우고, 장용영도 만드는 등 열심히 노력을 했지만, 이는 결국 왕 위주로의 정치를 낳을 뿐이다. 당시의 왕족들, 하다못해 1명이라도 더 모여서 정치를 했어야 했다. 그들끼리 서로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더 옳은 정책을 찾아냈어야 했다.

 

혼자 중심이 되어 나라를 이끄는 정치는 단점이 많다. 왕이 능력이 없다면 나라가 휘청거리게 된다. 이는 조선의 성군으로 불리는 정조도 마찬가지이다. 정조가 자연스럽게 왕에서 관료 중심으로 정치의 중심을 옮겨가게 했으면 조선의 미래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나라는 점점 어려워졌다. 늘 혼자보다는 같이 하는 정치가 났다는 결론을 얻게 하는 책이었다.

 

h******2 2014.05.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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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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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하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정조, 정약용, 혜경궁 홍씨, 사도세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 훌륭한 국왕중에 한 사람이였던 정조. 정조는 왜 화성을 쌓았을까요? 위대한 군왕으로 평가 되어왔던 정조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어떤 사람이였는지 참 궁금합니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합니다. 오래전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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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하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정조, 정약용, 혜경궁 홍씨, 사도세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 훌륭한 국왕중에 한 사람이였던 정조.

정조는 왜 화성을 쌓았을까요? 위대한 군왕으로 평가 되어왔던 정조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어떤 사람이였는지 참 궁금합니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합니다.

오래전에 수원 화성을 다녀왔는데, 다시 가보고 싶어지네요.

 

 

어린 나이에 왕비로 들어가서 정조가 조선의 22대 국왕이 될때까지 보호해 주었다고

주장하는 정순왕후가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현 시대의 방송 내용에 대해서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조가 이중인격자라고 하는데, 사실일까요?

정순 왕후가 권력을 탐하기 위해서 사도 세자를 죽이는데 앞장섰고, 정조의 개혁 정치를

방해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조의 실제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역사가들도, 실학자들도 정조를 위대한 국왕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정순 왕후의 주장에

따르면 국왕 임명 교지도 내려주고, 국왕에 오른 정조는 정순 왕후의 친정 오라버니를

귀향 보냈고, 또 죽게 만들기도 하였다고 하면서 정조는 사기꾼에 패륜아 라고 합니다.

15세의 나이로 67세의 영조와 결혼한 정순 왕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수원 화성은 백성을 위해서 화성을 쌓았고,

화성 축성시 엄청난 국가 재정이 낭비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증인으로 화성을 설계한

정약용이 등장해서 거중기와 녹로와 같은 과학 기계를 만들어서 쉽고 편하게 돌을

나르고 일한 만큼 철저하게 임금을 지불해서 백성들이 모두 기뻐했다고 합니다.

총 공사비 87만 냥은 정조가 왕실에서 검소하게 사시면서 모은 돈과 쓸데없는 군대를

통합하여 모은 돈이라고 합니다.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하고, 그 대가를 받았으니

백성을 위해 만든 성이 맞는것일것 같기도 합니다.

 

 

판결문이 나오고 정조와 정순 왕후가 함께 생활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k*****7 2012.1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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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9]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9]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내용보기
다른 인물들과 달리 정조라는 이름보다는이산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다. 아이는 책보다는 드라마를 통해 정조를 알게 되었다. 어리기도 했지만 책을 통해 정확한 내용을 알기전 허구가 들어가 있는 드라마를 보다 보니 정순왕후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시대적인 상황이나 사건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니 정조라는 인물을 괴롭혔던(?)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나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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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물들과 달리 정조라는 이름보다는이산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다. 아이는 책보다는 드라마를 통해 정조를 알게 되었다. 어리기도 했지만 책을 통해 정확한 내용을 알기전 허구가 들어가 있는 드라마를 보다 보니 정순왕후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시대적인 상황이나 사건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니 정조라는 인물을 괴롭혔던(?)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조선 21대 국왕인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손자인 조선의 22대 국왕인 정조에게 소송을 제기한 것을 이해할수가 없다고 한다. 나쁜 사람은 정순왕후인데 왜 착한 정조에게 소송을 하느냐는 것이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조선 시대 왕 중 세종대왕 다음으로 존경을 하는 인물은 정조일 것이다. 그런 인물이 할머니에게 소송을 당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흑백논리로 받아들이고 있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도 드라마를 통해 보았기에 단지 좋은사람, 나쁜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책을 보며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할머니에게 소송을 당했지만 정조가 남긴 업적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마음의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세상을 호령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아버지의 헛된 죽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국왕이 되자마자 '수은묘'의 이름을 '영우원'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사도세자의 명예를 회복한 것이다. 하지만, 풍수적으로 좋은자리가 아니였기에 즉위 13년에는 천하명당으로 옮기고 현명하신 분을 융성스럽게 받든다는 뜻으로 '현륭원'이라고 한 것이다.

 

 

교과서 안 역사 vs 교과서 밖 역사

하나의 사건이나 역사적 사실을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어떤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교과서 밖 역사를 통해서는 좀더 깊이 있는 역사를 알아 갈 수 있다.

 

 

아이들은 책을 보며 역사를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점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흑백논리로 인물이나 사건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이해하고 편협적인 사고가 아니라 넓은 눈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을까?

n******e 2012.07.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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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39. 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내용보기
[왜 사도 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었을까]에 이어 읽은 책, 역사공화국의 대표변호사임을 자인하는 김딴지 변호사, 이번에는 정순왕후의 변호를 맡아 정도의 변호를 맡은 이대로 변호사와 다시 한번 격돌하게 되었다. 이젠 피고와 원고가 누구냐보다 두 사람의 변호가 더 재미있는 이유는 그동안 책을 통해 친숙해진 탓이겠지. 수원화성은 얼마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는 기쁨을 맞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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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도 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었을까]에 이어 읽은 책, 역사공화국의 대표변호사임을 자인하는 김딴지 변호사, 이번에는 정순왕후의 변호를 맡아 정도의 변호를 맡은 이대로 변호사와 다시 한번 격돌하게 되었다. 이젠 피고와 원고가 누구냐보다 두 사람의 변호가 더 재미있는 이유는 그동안 책을 통해 친숙해진 탓이겠지. 수원화성은 얼마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는 기쁨을 맞기도 했다. 그 수원화성을 축성한 정조가 계조모인 정순왕후에 의해 법정에 서게 되었다. 혹시 피고와 원고가 바뀐것은 아닐까?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이유로 들어 정순왕후를 고소한다면 인정이 되지만 왜 정순왕후가 손자인 정조를 법정에 세우려는 생각을 하게 되엇을까?



너희들은 혹시 수원 화성에 가본적이 있니? 나는 안양에 살때 아빠와 함께 수원화성에 자주 놀러갔었어. 수원화성은 언제보나 훌륭해 보여. 수원화성은 정조임금께서 만들셨는데, 무슨 이유로 할머니인 정순왕후께 소송을 당했을까? 그 이유는 정조임금께서 자신을 정성것 도와준 정순왕후를 노론세력을 조종한다고 생각하며 무시한 것 등이 대표적인 이유다. 이럴때 예전에 봤던 드라마 [이산]이 생각나네. 드라마를 통해 봤던 정순왕후는 노론세력을 위해 사도세자의 죽음을 뒤에서 모략했고, 사도세자 사후 세손도 몰아내려고 갖은 음모를 꾸민 대표주자였지. 참! 영조 임금과 계비 정순왕후의 나이차가 얼마나 나는지 혹시 알고있니? 영조의 나이 66살때 계비 정순왕후와 혼인했고, 영조가 83세의 나이로 승하하셨을때 정순왕후의 나이는 32살에 불과했지. 지금은 그 나이에 결혼을 않한 사람도 많은데 과부가 되버린 거지. 왜 정순왕후가 그토록 권력을 탐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야.

그게 사실이라도 정조의 위대한 업적들이 도망갈수는 없다. 왠지 정조 임금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수있어 새로운 점을 발견한 듯 했다. 너희들은 정조 임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또 아주 가끔은 왕중에 이름이 두개인 왕들이 있는데 정조도 바로 그런 경우야. 원래 이름은 이산인데 아들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죽어나가자 아들을 많이 낳고 싶어 이름을 이성으로 고쳐 이름이 두개가 되었다는거야. 그래도 왠일인지 이성보다는 이산이라는 이름이  더 좋은 것 같아. 왕의 이름은 외자가 많은데 그 이유가 왕의 이름에 쓰이는 한자는 백성들이 쓸수없어 이름을 외자로 짓는다는 거야. 그럼 먼저 쓴 이름은 어떻게 하냐고? 원손이 태어낳을때 쓰여진 이름을 쓰고있다면 그 사람은 이름을 고쳐야만 하지. 그럴경우에는 개명이 가능했고 나라에서도 허락해줬겠지.



정조가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한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가 되는 규장각, 그런데 규장각이 자신의 친위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정조는 정말 자신만의 친위세력을 만들기 위해 규장각을 만들었을까? 그간 내가 다른 책들을 통해 알고있었던 점은 그것 이유가 다르다고 봐. 정조 임금은 서자라는 이유로 훌륭한 인재들을 그대로 사장시켜야 하는 현실이 안타가웠고 그들을 제대로 쓰기위해 만든것이 규장각이야. 북학파로 일컬어지는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유수원 등이 있으며 그중 서자로서 규장각에 특채된 인물로는 이덕무·박제가·유득공·서리수가 있다. 책만 읽는 바로라는 뜻의 간서치 이덕무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해. 명절을 몇일 앞둔 오늘 장보는 날인데 밖에는 비가오네. 비는 반가운 손님이기는 하지만 명절에는 좀 참았다가 다음에 왔으면 좋겠어. 산에 성묘가야 하는데 비가 오면 불편하잖아.

[판결문]
정조가 규장각을 만들고 장용영을 만든 것에 대하여 반대 의견을 이야기한 원고의 의견도 인정 될 것이 있지만 이 두기관이 조선의 개혁을 위해 만든 것이 인정된다. 신도시 화성 건설이 신하들을 억누르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우너고의 생각도 일리가 있지만 화성 건설이 조선을 개혁하기 위한 정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판결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피고 정조의 여러 업적에 대해서는 사실로 인정하되 정순왕훼 대한 불효도 있음을 인정한다. 또 정순왕후와 정조가 서로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s*******1 2011.09.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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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9 - 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9 - 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내용보기
몇 주전에 '홍경래 vs 김조순'에 관한 자음과 모음 책을 읽었는데, 뒤이어 읽은 책이 '정순왕후 vs 정조'에 관한 이야기다.  정조를 읽고 홍경래를 읽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겠지만, 의미없이 읽어버린 탓에 역사의 주인공들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이젠 한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자음과 모음의 책을 읽어봐야 겠다.  한국사 법정 시리즈의 순번을 보니 1번이 <왜 위만왕은 고조선을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9 - 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내용보기

 몇 주전에 '홍경래 vs 김조순'에 관한 자음과 모음 책을 읽었는데, 뒤이어 읽은 책이 '정순왕후 vs 정조'에 관한 이야기다.  정조를 읽고 홍경래를 읽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겠지만, 의미없이 읽어버린 탓에 역사의 주인공들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이젠 한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자음과 모음의 책을 읽어봐야 겠다.  한국사 법정 시리즈의 순번을 보니 1번이 <왜 위만왕은 고조선을 계승했다고 할까?>이다.  우리 역사의 처음이라는 고조선부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렇게 고조선을 시작으로 삼국을 지나 14권부터 20권까지는 고려시대를 이야기하고 있고, 21권부터 조선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재미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다음번에 읽을 때는 21권인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부분부터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하나의 틀을 잡기위해서 말이다.

 

 

 역사공화국에는 유명한 변호사가 한둘이 아니다.  '나정치 vs 백성민', '제왕도 vs 왕패도', '김딴지 vs 이대로' 처럼 쟁쟁한 인물들이 원고와 피고를 대변하면서 역사를 이야기 한다.  이번엔 딴지걸기의 지존인 김딴지 변호사가 정순왕후를 대변하고, 이대로 변호사가 정조를 대변한다.  그나저나 조선 현황을 뽑으면 세종과 정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데, 어떤걸로 정조에게 딴지를 걸었는지 궁금하다.  원고 정순왕후가 대리인 김딴지 변호사를 통해 피고 정조대왕에게 보낸 소장의 내용은 이러하다.  당파를 없애겠다고 만든 탕평책은 자신의 당파를 만들고 신하를 통제하려는 것이었고, 학문 육성의 목적인 규장각은 정치적 도구였으며, 주앙오군영이 있음에도 자신만을 위한 장용영을 만든 정조는 효자라 하면서 할머니인 정순왕후를 핍박한 위정자이고 조선의 정치를 망하게 만든 국왕이라는 것이다.  

 

 정조에 관한 이야기는 워낙에 사도세자라는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로 부터 시작해서 이야기 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에 드라마로 소설로 알고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을 했다. 곁가지로 들어가면 세도정치의 시작인 홍국영까지 얼마나 방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는지 모른다.  어쨌든, 흔히 알고 있는 현왕, 정조에게 정순왕후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  열다섯에 예순다섯의 영조에게 시집을 온 정순왕후는 자신보다 열살이나 많은 세자를 얻었고, 세손이었던 이산은 열살도 차이가 나지 않은 아이였다.  정순왕후의 생각에는 '죄인지자 불위군왕(罪人之子 不爲君王)'이었던 어린 세손을 왕으로 만들었으니 거의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정조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죽음부터 정순왕후가 개입하지 않은 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존현각에서 죽을뻔했을때, 대비전 상궁들이 움직였음에도 정순왕후는 모른다 했다.  자신의 주변의 인물들이 하나둘씩 독살이 되어가는데도 정순왕후는 아니라 했다.  오죽했으면 '이산'이라는 이름 외에 자손을 더 낳기 위해 '이성'이라고 사용을 했을까?  할머니인 정순왕후는 자신만 못살게 군것이 아니었다.  정조가 죽은후 정조의 어머니의 혜경궁 홍씨를 며느리인 효의왕후 아래로 두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절을 하게 만든 가혹한 사람이었다.  효자였던 정조에겐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의 일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아 사도 세장의 무덤은 '원'이 아닌 '묘'로 칭해서 '수은묘'라고 이름이 붙었다.  정조가 국왕이 된 후에야 '영우원'이라 이름 붙여졌고, 수원도호부 화산 일대로 옮긴후에 '현릉원'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사도세자의 복권은 고종때에나 이루어졌으니, 그 긴기간 정조의 한이 얼마나 컸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까지 맣은 사람들은 정조의 정치에 대하여 위민정치 혹은 조선의 발전을 위한 개혁 정치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순왕후는 독재정치라고 한다.  어떻게 이런 극단적인 평가를 하는 것을까?  정조가 편애했던 사람들을 규장각에 두면서 친위세력을 만들었다고 주장을 한다.  조선 22대 국왕, 정조는 등극한지 27개월인 1778년 6월에 개혁 정책을 발표한다.  첫 번째, 백성들을 부유하게, 두 번째는 인재 양성, 세 번째는 국방 정책을 세롭게, 네 번째는 국가 재정을 튼튼하게 였다.  그리고 인재양성을 위한 기간이 규장각이었다.  서얼에 대한 차별이 심한 조선에서 인재라면 서자들도 상관없다는 정조대왕의 생각은 조선의 학문발전과 인재양성을 위한 일이었다.

 

 정조의 친위 군영이었던 장용영을 논외로 하고 정조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일것이다.  임진왜란 시기에 만들어졌던 중앙오군영은 인사권과 군포등으로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것을 수정 한것이 장용영이다.  반대파쪽에서 본다면 철저하게 정조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군대를 만든것이라고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기위해서 왕의 친위대가 있는것은 당연한것이 아닌가?  이를 위해 '무사 백동수'로 유명한 '백동수'가 나섰다. 장용영으로 나라 경제가 좋아지고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것이다.  군대를 위한 세금이었던 면포, 즉 군포납부를 양반들까지 납부하는 균역법으로 만들고, 장용영의 비용을 마련해줄 토지, 즉, 둔전을 만들어서 토지가 없는 백성들에게 농사를 하게 했으니, 이런 군대가 세상 어디에 있었을까?   물론, 정조의 죽음과 함께 장용영은 없어졌고, 그 재산은 정순왕후 측근의 손으로 들어갔다.

 

 

 이 책으로 가장 중점으로 삼고있는 내용은 '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이다.  엄청난 국가 재정을 낭비하면서 화성을 쌓고,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화성에서 하고 상왕이 되어 화성으로 내려가려고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 원고측의 주장이었다. 정말 국고를 탕진하면서 화성을 쌓았을까?  화성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18세기에 만들어진 군사 건축물의 모범이고 너무도 아름다운 성이라는 이유때문이었지만, 외양만 아름다운것이 아니라, 화성을 지을 당시의 백성을 생각하는 국왕의 마음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문화유산으로 등재될수 있었다고 한다.  거중기와 녹로로 힘을줄이고, 일한만큼 철저하게 임금을 지불했다. 당시 총 공사비 87만 냥의 반은 재료비이고 반은 인건비였는데, 이 돈은 왕실에서 검소하게 모은돈과 군대를 통합하여 모은 돈으로 만든 것이었다.   두번째, 화성에서의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은 나이가 같은 사도세자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사후에 인물일망정 정조에게는 아버지였으니까 말이다.  어머니와 함꼐 회갑연을 열어드리고 싶은것이 자식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상왕제도. 태종을 보면 상왕은 '군사권, 인사권, 사법권'을 가지고 있는 막강한 자리였다.  국왕이 있음에도 상왕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는 것은 양경체제를 노리고 있던 정조의 불순한 의도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기도 한다.  그럴즈음에 체제공이 이야기 한다.  선대왕인 영조가 정조 임금이 국왕으로 있는 동안 사도 세자를 국왕으로 추존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을 말이다.  국왕으로 있는 동안 아비를 추존하지 못하는 아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왕실의 관습상 세자가 15세가 되어야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으니, 순조가 15세가 되었을 때, 상왕이 되면 새로운 국왕이 할아버지인 사도 세자를 국왕으로 추존해도 영조의 유언은 어기는 것이 아니고, 정조는 효를 다할 수 있기에 상왕이 된 것이란다.

 

 역사공화국 시리즈중에서 이런 경우는 드문데, 판사는 어떠한 판결도 내리지 않았다.  가족간의 문제라서 그랬을까?  누가 옳고 그르다를 오래시간이 지나 3자의 눈으로만 바라보고 이야기하기는 힘이든다.  백성만을 위한 위민정치를 하기위해 노력했던 정조였지만, 인간이었기에 실수도 있었을 것이고, 열다섯에 국모가 되어 모든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정순왕후 역시 그럴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2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조선의 현왕으로 두말하지 않고 정조의 이름을 거론한다.  역사시간마다 균역법과 규장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독살을 했을지도 모르는 정순왕후를 이야기 한다.  정조보다 오래살았기에 정순왕후를 승자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음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정조를 승자라 할수 있을까?  편한 말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하지만, 역사는 선일뿐이다.  하나 하나의 점이 모여 선을 이루는 그 선의 한줄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선위를 지금 우리가 걷고 있다.    

 



d****2 2012.05.24.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