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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이 땅의 진보적인 대중들은 강남좌파가 아니다. 그냥 좌파일 뿐이다.
"이 땅의 진보적인 대중들은 강남좌파가 아니다. 그냥 좌파일 뿐이다." 내용보기
나는 좌파가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우파다. 소득의 양극화나, 학벌이나 금권에 의한 새로운 신분사회의 등장이나, 승자독식과 같은 사회현상이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또한 한반도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비난보다는 관용이, 조건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안는 포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땅의 진보적인 대중들은 강남좌파가 아니다. 그냥 좌파일 뿐이다." 내용보기

나는 좌파가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우파다. 소득의 양극화나, 학벌이나 금권에 의한 새로운 신분사회의 등장이나, 승자독식과 같은 사회현상이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또한 한반도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비난보다는 관용이, 조건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안는 포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좌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기꺼이 좌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좌파가 된다면, 진짜 좌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나 역시 이런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는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아이들에게는 남을 밟고 일어서라고 경쟁세계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핑계아래, 나는 상위계층에 속하지 않는다는 자기위안을 무기로, 학교 다닐 때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지금은 태연하게 하고 있기도 하다. 달리 말해서 어정쩡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강남좌파라는 말이 유행인 것 같다. 처음 강남좌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왠지모를 이중적인 느낌, 아니 위선적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강남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 같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아니 상위계층의 사람들이었기에 분노하거나 비판해야 할 때, 오히려 침묵하거나 외면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비로소 비판하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활은 지극히도 우파적인 사람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행동이 아닌 입으로만 말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87년 민주화 이전에는 민주화라는 종교가 있어 사상과 생활의 분리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일반 사람들은 지도자나 정치인, 각 개인들의 재산이나 사상의 실천등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상과 생활이 분리된, 즉 사상좌파, 생활우파가 너무 많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사회는 대부분 총론진보, 각론보수의 형태를 띠고 있다. 사회는 진보적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보지만, 당장 내 문제에 닥쳐서는 내 이익을 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이것이 강남좌파의 일면이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일반국민의 경우엔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차피 그들은 강남이라는 의미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남좌파라는 현상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이 책의 저자인 강준만 교수라고 한다. 참여정부시절 보수언론이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려는 혐의로 이념은 좌파적이나, 생활은 강남사람 같다고 정의했던 이 단어를, 저자는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공론의 장으로 끌어 냈다. 그런 그가 이제는 강남좌파의 유형을 9가지로 분류하여 총체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그는 강남좌파의 유형을 강남의 성격, 주체의 위상, 좌파의 실천등 세가지 관점에서 각각 세가지 유형, 9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먼저 강남의 성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강남이 주는 의미 그대로 부자가 좌파성향을 갖는 가장 일반적인 경제적 강남좌파, 부자는 아니나 라이프스타일 등에서 강남성향을 드러내는 문화적 강남좌파, 그리고 경제적, 문화적 강남좌파도 아니면서도 최고의 학벌을 갖고서 그 학벌이 주는 학연, 인맥의 혜택으로 엘리트 위치를 누리는 연고적 강남좌파로 구분한다. 그런가 하면 주체의 위상이라는 관점에서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등과 같은 공적 강남좌파, 언론인, 대학교수등과 같은 중간적 강남좌파, 그리고 일반 시민의 사적 강남좌파로 나누고 있다. 마지막으로 좌파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는 자신의 이념과 삶의 실천을 일치시키는 이타적 강남좌파, 적당한 수준의 이기심을 드러내지만 좌파적 의식이나 행동으로부터 사적 이익을 취하지는 않는 합리적 강남좌파, 그리고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좌파적 성향을 나타내는 기회주의적 강남좌파로 구분한다.

 

저자는 이러한 여러 유형의 강남좌파들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것은 공적 강남좌파가 기회주의적 강남좌파 노릇을 하는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권력,금력까지 누리면서 도덕적 우월성까지 차지하겠다는 것이며, 하층계급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에 진정성이 결여된 진보 프로그램을 주창하게 된다. 또한 진보나 좌파사상을 더 많은 권력이나 금력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한국 정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좌-우의 싸움도 아니고, 진보-보수의 싸움도 아닌, 단지 출세한 사람과 출세하지 못한 사람의 싸움일 뿐이라고 한다. 정치가 출세, 입신양명, 욕구충족의 도구로 기능하는 사회에서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는 학력에서부터 생활수준에 이르기 까지 모두 강남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좌파는 모두 강남좌파일 수밖에 없으며, 우파는 그들 역시 말로는 늘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는 이타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좌파적 색채가 농후하다. 따라서 좌파는 부차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강남좌파 논쟁은 한국사회의 엘리트 논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국의 보수 엘리트와 진보 엘리트는 서로 다른 것 보다는 같거나 닮은 것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또한 엘리트 집단이 자기들의 이익을 다수의 이익인양 포장해온 것은 인류역사이래로 계속 되어온 전통이라고 한다. 서민의 삶을 돌보겠다고 외치는 엘리트 집단이 꼭 서민처럼 살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이들이 서민의 이름을 팔아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한다면 그것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한다. 따라서 기존 엘리트 지배체제를 당연시하면서 진보-보수의 이념 문제로 몰고 가기 보다는, 엘리트 대 비엘리트의 구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진보-보수의 이념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엘리트들의 승자독식을 그대로 허용한다면, 서민들은 항상 그들의 도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에는 강남좌파 논쟁의 배경과 논의 실체 외에도 정치인들에 대한 강준만 교수의 비평이 실려있다. 참여정부 시절, 배부른 진보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과, 2007년 대선에서 오마이뉴스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를 띄운 이유가 기존의 강남좌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세련된 강남좌파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뿌리깊은 정치혐오를 극복하기 위한 것 이었다고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2012년 대선에서 후보로 거론되는 여야 정치인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그들의 성향을 비평하고 있기도 하다. 먼저 2007년 대선에 이어 계속 이어지는 오마이뉴스의 新강남좌파 띄우기로 [진보집권 플랜]의 조국 교수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강남우파, 분당우파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손학규에게는, 진보적 노동운동가였다가 18년전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보수를 택한 과격은 한번으로 족하다고 이야기 한다.

 

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유시민과 문재인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나타나는 인물중심의 정치와 민주화 이전과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를 다루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침묵하는 박근혜의 인기비결은 부정적 의미의 강남좌파에 대한 반작용이며, 따뜻한 보수를 내세우는 오세훈은 한때 강남좌파를 기웃거리기는 했지만 누가 뭐래도 강남우파가 분명하다며, 그에게도 대권에 대한 꿈이 있기에 전투적인 프레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강남좌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나, 현실 정치인에 대한 저자의 비평은 일정부분 동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각자의 생각과는 다른 부분도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의 시점에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강남좌파에 대한 그의 분석은 흥미롭고, 한국 정치를 진보-보수의 이념이 아닌 엘리트주의의 충돌로 보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러한 논쟁이나 분석이, 전혀 강남스럽지 않은 일반대중의 진보적인 이념을 강남좌파라는, 또는 엘리트주의의 충돌이라는 용어에 매몰시키면서 이 땅의 모든 것을 보수, 우경화 시키는 것은 아닐지 조금은 우려되기도 한다.

 

나는 감히 좌파라고 주장은 하지 못하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는 것이 좌파의 생각이라면 기꺼이 좌파가 될 것이다. 이 땅에 사는 그러한 좌파들은 강남좌파가 아니라는데 안도감을 느낀다. 이 책을 읽고서 느낀 나만의 생각이다.



k*****1 2011.08.02. 신고 공감 14 댓글 23
리뷰 총점 종이책
[강남좌파] 결국 학벌사회 해체가 길이다
"[강남좌파] 결국 학벌사회 해체가 길이다" 내용보기
강남좌파란 용어가 퍽 와 닿진 않지만, 강준만이 제기한 엘리트주의에 대한 관심과 2012년 대선을 미리 볼 수 있다는 호기심에 이 책을 펼쳤다. 대학시절 운동권 분위기(NL, PD와 같은 진짜 분위기만)를 맛봤던 끝세대라 이념 논쟁에 대한 진부한 논의는 더 이상 귀 닫고 사는 요즘이었다. 남자 셋만 모여도 정당을 만드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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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좌파란 용어가 퍽 와 닿진 않지만, 강준만이 제기한 엘리트주의에 대한 관심과 2012년 대선을 미리 볼 수 있다는 호기심에 이 책을 펼쳤다. 대학시절 운동권 분위기(NL, PD와 같은 진짜 분위기만)를 맛봤던 끝세대라 이념 논쟁에 대한 진부한 논의는 더 이상 귀 닫고 사는 요즘이었다.

남자 셋만 모여도 정당을 만드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1인으로서 최근(예전에도 그랬지만) 활발하게 논의되는 ‘진보’에 대한 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철저히 방관자적 입장에서.


작년과 올해 이러한 진보 및 정치공학적 환경을 논의하는 책들을 두서없이 읽었다. 조국, 오연호 님의 <진보집권플랜>까지 읽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럼에도 소위 온건 좌파적 지식인이라 불리는 강준만 교수의 책을 읽으며 두 가지 정도를 얻은 것 같다. 우선은 나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그에 따른 라이프스타일. 또 하나는 이 책에서 통렬하게 지적하듯, 인물 중심의 정당정치 속에서 바라보는 한 ‘인물’에 대한 나름의 재평가다.


역시 ‘인물과 사상사’가 있기에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는 무척이나 속도가 빠르다. 엄청난 다작이면서, 저작물에 적시된 논거와 이슈가 웬만한 월간지 못지 않다. 지난 6, 7월에 있었던 논쟁과 언론 보도가 2011년 7월 22일 1쇄를 찍은 책에 실린다는 건, 단행본 제작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믿기 어려운 속도다.

각설하고, 이 책은 기존 ‘인물 비평과 한국 사회 전반의 비평의 연장선상에서 현재 논의되는 강남 좌파의 실체를 추적하고, 그것이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를 헤아리는 저작물이다. 머리말에서부터 ‘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다’라고 선언하면서, 강남 좌파의 정의, 실체, 역사 등을 차례대로 추적해간다. 이후 문국현, 조국, 박근혜,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오세훈에 이르는 인물론을 논의하고, 강남 좌파의 다른 이름은 학벌 좌파라는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우선 강준만 교수의 논의는 얼마 전 읽은 조우석 님의 <나는 보수다>와는 사뭇 다른 듯 비슷한 논조로 정리된다. 단순 비교는 힘들겠지만, 그 논의의 깊이에선 차이가 많지만 둘 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문제가 있고, 그것을 미약하게나마 해결할 수 있는 논의의 장’으로서 책을 낸 것이다.

물론 조우석 님은 ‘진보 진영’이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하며, 5가지(리버럴 강박증, 역사 허무주의, 반기업 정서, 과도한 이념분쟁, 근본주의 DNA) 이유를 제기한다. 반면 강준만 교수의 경우, 조국 교수를 필두로 대두된 ‘강남 좌파’를 시대의 변화에 따른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하고, 그 관점에서 인물들(2012년 대선 후보)을 조망한다.


특히 조국 교수가 강남 좌파의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데, 조국 교수가 남긴 명언이 작금의 정당정치 환경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

민주당이 호남에 갇히고, 국민참여당이 친노에 갇히고, 민주노동당이 NL에 갇히고, 진보신당이 PD에 갇히면 희망이 없다. 진보, 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정치적 결벽증’ 또는 ‘정치적 자폐증’을 떨쳐버리고, 정말 집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길 권유한다. –P171’


이제 진보(좌파)가 밥 먹여주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념 프레임을 뛰어넘어 ‘생활 좌파’ 전략을 취해야 정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 P172~173


7명의 인물들을 이야기하며, 조국 교수와 박근혜 전 대표의 외모 자본 이야기는 한낱 가십거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물론 노회찬 전 의원을 ‘이미지’로 무너뜨린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지만). 하지만 논의의 핵심은 ‘자기 성찰’을 하라는 것이다. 홍세화, 노회찬, 박노자, 우석훈, 유시민 등 진보진영뿐만 아니라 보수진영에서도 ‘자기 성찰’이란 프레임을 상대에게 들이대면서 자신들은 철저히 함구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치에 굶주려 있었지만, 지금은 냉소와 저주의 다른 이름이 정치가 되었다. 진보진영에서는 대선과 총선 즈음 양떼를 몰 듯 투표를 종용한다. 나 또한 투표는 빠지지 않고 참여하지만, 강준만 교수가 지적하듯 철저히 ‘반감’과 ‘반작용’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물론 노회찬이란 ‘한 사람’을 추종하지만, 정당과 이념에 상관없이 그 당시 이슈에 따라 ‘분노’로써 심판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얘기다. 학연, 지연은 물론이고 진보신당이나 한나라당도 가리지 않는다. 철저히 기분과 시류에 따른 결정이다. 참여 안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인물이나 정당이 아닌 ‘정책’을 본다는 것에 나름 의미를 담는다.


이념 논쟁은 진부하다 못해 신물이 난다. 다만 조국 교수가 말했듯, 이 정도 먹고 살 만큼 됐으니 무조건적인 저항이나 대립이 아닌 진보 진영이 ‘밥 먹여 주는 것’에 충실한 답해야 한다. 조우석 님의 5가지 진단을 모두 부정하진 않지만, 우리가 분노하고, 투표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철저히 개인들의 ‘욕망’이다. 정당한 욕망이 정치인, 고위공직자, 대기업, 언론 등의 부정부패에 의해 제한되고, 억압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진보신당’이 집권하리라 믿지 않는다. 아무리 노회찬이 스타 정치가로서 인기에 영합한다 하더라도 ‘왕’의 탄생은 너무나 복잡다단한 환경과 힘이 있어야 가능한 법. 이념에 경도된 좌파, 진보가 아닌 생활 속의 진보로써 조금씩 이 사회를 바꿔나가는 것에 대해 평가하고 싶고, 그를 믿고 싶다.


이 책의 결론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다. 예전 강준만 교수의 <입시전쟁 잔혹사>에서 상세히 논의되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은 대학 입시 전쟁이다. 정치인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기득권층은 SKY를 날아다닌다. 노회찬 전 대표도 고려대 출신이다. 진보와 보수의 편가르기가 무의미하단 얘기. 학력, 학벌주의가 좌우를 초월하고 그걸 능히 능가하는 초강력 이데올로기임에 틀림 없다.

SKY가 아닌 다극 체제로 변화시키자는 것. 그는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상향 경쟁화, 평생 경쟁화를 시도하자고 주장한다. 더 이상 정치 엘리트들의 밥그릇 싸움을 넘어, 벽 대신 다리를 세우자고 말한다. 여전히 나의 정치적 입장은 중립적이다. 한 때 스스로 진보 혹은 좌익이라 생각했으나, 먹고 살기 바쁜 작금의 상황에서 소모적인 이념 대립보다는 ‘공정’이 살아있는, 그래서 적어도 기득권의 부정부패에 의해 국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한다. 여전히 요원해 보이긴 하지만… 더더욱 2012년 대선 정국을 눈앞에 두고서 말이다.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강준만 교수의 '강남좌파'는 이념 대립의 허실을 여과없이 보여주며, 2012년 대선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적지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것도 온건한 목소리로.


<대한민국 정치, 사회상을 반영한 진보 진영(한 권은 보수?)의 책들을 읽고 리뷰로 정리했다. 강준만 교수의 논의와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은 바로 '자기 성찰'이다. 승자독식에 대한 준엄한 경고다.>

강준만 <입시전쟁 잔혹사>
출산율 저하의 명백한 이유를 아는가?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879793


홍세화 <생각의 좌표>
긴장의 항체를 기르기 위한 자기 성찰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2131815


우석훈 <디버블링>
2012보다 더 참혹한 이야기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3771854


박노자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박노자가 제안하는 진짜 왼쪽을 향한 발걸음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2237


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 진보의 탄생을 아로새기다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2201015


조우석 <나는 보수다>
‘나는 나팔수다’가 낫지 않을까?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4903764

 



t******2 2011.08.11. 신고 공감 5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강남좌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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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에 따르면 ‘강남좌파’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6년 이해찬 총리 3.1절 골프파동 직후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에서라고 한다. 서민을 대표한다는 노무현 정권의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대놓고 골프 같은 귀족스포츠를 즐기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비꼬면서 만들어낸 용어이다. 강준만은 노 정권이 자기편 인사를 대거 기용한 것을 두고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승자 독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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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에 따르면 강남좌파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6년 이해찬 총리 3.1절 골프파동 직후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에서라고 한다. 서민을 대표한다는 노무현 정권의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대놓고 골프 같은 귀족스포츠를 즐기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비꼬면서 만들어낸 용어이다.

강준만은 노 정권이 자기편 인사를 대거 기용한 것을 두고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승자 독식주의라고 지적했는데, 개혁을 바랐으나 인재는 부족했던 노 정권으로서는 열린우리당으로 모여든 소위 ‘70%의 기회주의자들까지도 아우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견고한 보수 정치판을 개혁하는 데 수반되는 기회비용이 아니었을까? 문재인의 운명서평에서도 말했지만 노무현은 한국정치에서 참 특이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정치 지형을 개혁하고픈 열망이 컸으나 현실적인 힘은 부족했고 시간도 턱 없이 모자랐다. 때문에 승자 독식주의의 오명을 얻으면서까지 판도를 바꾸려고 무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건 실패가 예정된 싸움이었다. 노무현 자신이 그런 속성을 지녔건, 그의 최측근 세력이 그런 속성을 지녔건, 그가 세를 불리기 위해 감싸안은 주변인사들이 그런 속성을 지녔건 간에 노무현 정권은 강남좌파적이었고, 그로 인해 서민들의 지지를 잃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04 6,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었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계획을 철회함으로써 노 정권의 강남좌파적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서민들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실시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서 노무현 정권의 공직자들의 재산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비판은 더욱 고조되었다. 5년간 주변세력을 공고히 할 것인가, 대중의 지지를 공고히 할 것인가? 노무현은 전자에 더 집중했고 이는 후자의 실패로 연결되었다. 결국 그것은 정권의 몰락을 의미했다.

다른 한편으로 노정권의 인사가 영남 민주화 세력의 한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측면도 있다는 주장을 강준만은 지지한다.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이 대권을 두고 다툰 이후 민주화세력=호남세력이 되어 버렸고, 영남 지역의 민주화세력은 (마치 예수처럼?) 고향에서마저 환영받지 못했다. 1990년 김영삼마저 3당합당으로 반민주화 대열로 돌아섬으로써 영남 민주화세력의 한은 증폭되었다. 노정권 내 소수파는 이런 한을 푸는 데 지나치게 집중했다는 것이다. 노무현이 집권 후반기에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한 것도 이러한 한의 연장선 상에서, 즉 영남 민주화세력이 입지를 공고히 하려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주었건만 그 이후 총선, 재선에서 계속 한나라당만 뽑아주는 지역민들을 보며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노무현에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야 어찌 되었건, 보수언론이 처음에 비꼬는 말투로 노정권을 강남좌파라고 지칭한 이후 이 용어는 다소 의미가 넓어지고 긍정적인 뉘앙스마저 더해졌다. 서울대 조국 교수가 강남좌파로 불리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을 때는 이미 강남좌파에 대한 부정적 의미는 많이 탈색된 뒤였다. 강남좌파 현상은 한국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강준만은 마지막 챕터에서 한국의 학벌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강남좌파 현상을 엘리트주의와 연결시켜서 바라본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심지어 민노당마저) 정치권 지도부는 일류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학력사회인 한국에서 고학벌은 강남적 삶을 보장한다. 고학벌 강남 보수주의 정치인들에게 고학벌 강남 진보주의자들을 강남좌파로 비하하기란 무척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강남좌파란 결국 엘리트들끼리 밥그릇 싸움 하면서 나온 시기 섞인 표현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강남좌파라는 용어나 강남좌파 현상를 통해서 주목해야 할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가 고학벌 엘리트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지들끼리 다 해먹으면 별문제가 없을 텐데 노무현 정권 때부터 주머니에 넣은 송곳처럼 삐져나오는 세력들 때문에 보수 엘리트는 심기가 불편했을 법도 하다. 그렇다면 강남좌파 현상은 한국사회 정치엘리트 내에 나타난 조그만 일렁임인가? 그저 그뿐인가? 강준만의 시각은 여기에서 멈춘다.

강준만은 신문방송학 전공자답게 글은 잘 쓴다. 말도 그럴듯하고 글 속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반영한다. 그러나 글의 화려함에 비해 깊이는 떨어지는 것 같다. 뭔가 그럴 듯한 주장을 하기는 하지만 확실한 논거는 없다. 최근에 벌어진 사건들에 대한 사설들을 조목조목 비판하지만 거시적, 역사적 안목에서 종합적인 분석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게 신문방송학이라는 학문적 특성인지 한계인지는 모르겠다. 이 책은 마치 긴 신문사설 같다. 신문사설은 짧은 지면에 할말을 다 담아야 하기 때문에 주장과 논거가 매우 압축적이다. 사설에서는 특히 깊이 있는 논거를 제시할 공간이 부족하다. 이 책은 지면을 400쪽 넘게 늘렸음에도 여전히 사설 같다.

그렇지만 이 책은 게으른 독자들에게 고마운 책이다. 강준만은 최근에 실렸던 여러 신문의 사설들을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인용하고 쭉 연결해 놓았다. 책 참 쉽게 만들었다는 느낌도 든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이 책만 읽으면 그 많은 사설들을 다 섭렵한 셈이 된다. 물론 강준만의 시각에서.  주제와 관련된 사설들을 찾아서 붙여놓고 중간중간 해설을 달아 준 정성도 물론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 책의 많은 챕터들은 강남좌파 논쟁과는 직접적 상관이 없다. 몇 챕터를 제외하면 강준만이 계속 해오던 인물비평, 시사평론과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 오히려 강남좌파라는 이 책의 제목보다는 부제인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가 제목으로 적합하다.

글은 술술 잘 썼는데 어법에 안 맞는 표현이 자꾸 거슬렸다.

  • 를 잘못 띄어쓴 경우가 있었다. 저자나 편집부에서 착각한 걸로 보인다. 이런 초보적인 실수는 안 했으면 좋겠다.
  • 사람과 직함을 붙여서 언급할 때 대개 직함+이름으로 쓰다가 가끔씩 이름+직함으로 쓰기도 했다. 일관성이 없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저자는 직함+이름은 상대를 낮춰부르는 것이고 이름+직함은 높여부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참고로 아무개 교수, 아무개 국회의원, 아무개 아나운서라는 식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자기를 소개할 땐 직함을 이름 앞에 붙여야 한다).

강준만이 사실 확인에 그친 강남좌파현상을 좀더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안목에서 분석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강남좌파’ (혹은 다른 무엇으로 부르건)는 하나의 필연적인 시대현상인 듯하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민주화의 세례를 받은 세대들(80년대에 30대였건 그즈음에 태어났건 간에)이 보수로 점철된 기존의 정치판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기성정치세대와 스스로를 차별화하면서 사회적 현상으로 부각된 것이 아닐까? 한국의 정치는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를 거치면서 보수주의적 구세대와 민주화 이후를 대변하는 신세대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여전히 구세대의 수중에 있었고 영남당과 호남당의 대립구도 속에 세대간 차이는 다소 희석되어 왔다. 어쨌건 기존 정치판도를 수용해야 정치판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므로. 그러다가 결국은 구세대와 다른 신세대의 가치가 점차 수면 위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구세대는 그것을 좌파라고 (잘못) 부르고, 심지어 강남좌파라는 악의 섞인 비아냥까지 한다. 구세대가 구축한 물질을 누리고 살면서 구세대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우습다는 것이다.

강준만은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라고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한다. 모든 정치인이 강남적 삶을 사는 것이야 당연하고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겉으로는 서민을 위하는 정책에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이다. 내가 위에서 지칭한 신세대를 위해서는 강남좌파 말고 다른 용어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말하려는 건 한국 근대사가 짜놓은 정치틀, 가치관, 의제, 정당체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사람들이다. 그 중 엘리트에 돈도 많고 기존의 정치판에 이미 포섭된 사람은 이 책에서 보는 전형적인 강남좌파의 범주에 들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치적 허무주의자나 반정치주의자 등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강남좌파라는 용어가 보수세력에서 먼저 나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보수세력이 그들이 강남좌파라고 부른 어떤 세력의 존재로부터 위협을 느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떤 세력이란 전통적인 보수주의 제도권 정치의 아성에 끼어든 이질적인 존재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한국정치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남좌파 현상은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견고한 한국정치의 틀에서 움트는 세대변화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강남좌파라는 비아냥은 사회에 비해 그 변화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리라. 새로운 가치관과 정치의식을 가진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 영향을 받은 자들이 (혹은 그 세대들 자신이) 정치권에서 구세대와 다른 가치를 표방하고 나서는 것은 일단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문제는 그들의 표방가치를 현실적 힘으로 강제할 추진력이다. 기존 정치판도가 혁명적으로 변할 수 없는 한, 그 힘은 진짜 좌파세력이나 민중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다.



c*****g 2012.01.01.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강추!! [서평] '강남 좌파' 논쟁의 본질은 승자독식과 엘리트주의 [ 강남 좌파 ]
"강추!! [서평] '강남 좌파' 논쟁의 본질은 승자독식과 엘리트주의 [ 강남 좌파 ]" 내용보기
[서평] 강준만 저 <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를 읽고 / 2011. 07., 432쪽, 인물과사상사 '이념은 좌파적이나, 생활은 강남 사람 같다'는 모순적인 뜻을 지닌 '강남 좌파'. 이 표현은 2006년 3월 동아일보 칼럼에서 처음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강남 좌파'에 대한 시선은 사회갈등 완충과 상류층의 위선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강남 좌파'의 실체가 있을까? '강
"강추!! [서평] '강남 좌파' 논쟁의 본질은 승자독식과 엘리트주의 [ 강남 좌파 ]" 내용보기
[서평] 강준만 저 <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를 읽고 / 2011. 07., 432쪽, 인물과사상사

'이념은 좌파적이나, 생활은 강남 사람 같다'는 모순적인 뜻을 지닌 '강남 좌파'. 이 표현은 2006년 3월 동아일보 칼럼에서 처음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강남 좌파'에 대한 시선은 사회갈등 완충과 상류층의 위선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강남 좌파'의 실체가 있을까? '강남 좌파'는 그저 정치 경쟁을 위한 맥거핀(트릭, 꼼수)에 불과한 것인가?
강준만 교수의 이 책을 읽고나면 정답을 알 수 있다. 굳이 정답이 아니라 하더라도 각자가 자신의 정답을 찾거나 저자의 주장을 토대로 자신만의 정답 노트를 마련할 수 있다. '강남 좌파' 논쟁의 배경과 내막, 그리고 한국정치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강 교수는 '강남 좌파' 현상의 실체와 논란을 새롭게 진단한다. '강남 좌파'라는 용어는 참여정부 집권 후 보수진영이 운동권 출신 486세대 진보인사들을 꼬집어 쓰던 용어다. 정치적 이념적으로는 좌파지만 행동은 '강남 주민스럽다'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당시 분명 보수진영이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려는 혐의가 읽히지만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아무튼 처음 강남 좌파 논쟁이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강남 좌파론'은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03년 이후 '강남 좌파' 현상의 논쟁과 과정을 분석하면서 주요 정치인들에 대해 비평한다. 2007년 오마이뉴스의 문국현이라는 강남 좌파 띄우기, 2010년 조국-오연호의 <진보 집권 플랜>을 통한 2차 강남 좌파 띄우기, 강남 좌파 현상에 대한 반동의 관점에서 박근혜 인기의 비결, 분당 우파에 대한 반동으로서 분당 보궐선거와 손학규의 재기라는 관점으로 자신의 주장을 끌어간다. 이어서 노무현 정신에서 일탈한 국민참여당의 유시민과 성찰 없는 반이명박 전선으로 끌려나온 '분노하는' 문재인, 강남 우파 오세훈의 강남 좌파적 언어에 대해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은 입시전쟁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강남 좌파' 논쟁을 둘러싼 정치 엘리트들의 밥그릇 싸움과 정치권의 진영논리 및 증오 마케팅을 비판하고 진정한 소통과 화합을 주문한다.

먼저 '강남 좌파' 논쟁에서 흔히 놓치거나 순진하게 혼동하는 생각이 있다. 첫째, 이 논쟁에서 '강남'의 의미는 강남 지역에 거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강남스럽다'라는 비유나 상징이다. 어디에 살건 소득수준과 생활방식에 따라 강남 좌파일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나 의견은 진보적인데 소득수준, 특히 생활방식이 '강남'스러운 것을 '위선'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치인이나 유명인과 일반인까지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둘째, '좌파'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다. '좌파'를 학문적, 이념적으로 세분하여 규정짓거나 구분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언론이나 유권자들이 통상 말할 때 사용하는 '한국 정치의 이념 지형도'일 뿐이다. 실제 많은 여론조사의 경우 조사 항목에 '당신은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는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이에 대해 발끈하는 '진짜 좌파'나 '순수 진보'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좌파'든, '진보'든 어느 누가 그런 단어를 처음부터 '소유'하거나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유감일 뿐이다. 저자 말대로 "생각하기에 따라서 좌파라는 단어의 일상적 생활화가 오히려 그런 낙인찍기를 무력화하는 방법"일 수 있다. 조국 교수는 "우리 사회가 좋아지려면 강남 좌파가 많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저자는 '강남 좌파'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고 전 세계적인 동시대적 현상으로서 모든 정치인이 '강남 좌파'일 수밖에 없는 논리와 근거를 제시한다. 그의 논리는 "좌우를 막론하고 리더쉽을 행사하는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학력, 학벌에서부터 생활수준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하므로,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좌파는 강남 좌파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우파라도 유권자의 대다수인 서민을 상대로 포퓰리즘 자세를 취하는 '정치의 문법'을 사용하는 바, 우파 정치인에게도 강남 좌파 요소가 농후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한국의) 정치인은 강남 좌파'라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인들의 경력과 직업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전현직 국회의원과 청와대 및 정부 고위 관료 등을 조사한 통계들을 보면 정치인이나 관료 이전의 직업의 거의 대부분이 변호사나 언론인, 교수, 기업인, 공무원 출신이고 학력 및 학벌 역시 SKY 출신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동자, 농민, 중소 상공인, 직장 여성, 주부, 중하위 공무원 등은 몇 명에 불과하고, 저학력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강남 좌파'에 대한 강 교수의 분석에서 인상 깊은 점 몇 가지가 있다. '강남 좌파'가 왜 노무현 정권에서부터 부각되어 몇 년 전부터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가와 '강남 좌파' 논쟁의 이면에 숨어 있는 엘리트주의. 그리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살 이후 나타난 대규모 추모 물결을 '우리 안의 노무현의 총궐기'로 분석한 것과 박근혜의 인기 비결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공통적인 강남 좌파 현상에 대한 반감과 반동으로 파악하는 과점이다. 보통 사람들이 '강남 좌파' 논쟁에서 놓치는 부분이다.
그는 '강남 좌파' 논쟁이 노무현 정권 때부터 부각된 이유를 '민주화'라고 이야기한다. 김대중 정권을 거치면서 형식적인 민주화가 완료되었고, 연이은 민주정권의 집권으로 절박한 이슈가 사라지면서 정치 엘리트에 대한 시각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촌놈'과 '상고 출신 변호사', 그리고 '돼지 저금통'으로로 당선되었던 노무현 정권은 '골프 치는 노무현'과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으로 이미지가 구겨지기 시작했다. '강남 좌파' 비난의 직접적인 계기는 이해찬의 골프 파동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남상국 사장 자살 사건, 노건평씨의 세종증권 인수 알선수재 구속,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거부,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결과,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의 치부, 낙하산 인사, 청맥회 논란, 삼성과의 밀월 등 구조적인 문제는 정권 내내 이어졌다.
 
'맺는 말'에서 저자는 강남 좌파 논쟁의 성격을 '밥그릇 싸움'으로 비판한다. "강남 좌파로 불리게끔 만든 좌파 담론 또는 제스처가 정치 엘리트들의 '밥그릇 싸움'을 무슨 심각한 이념 투쟁인 양 포장하는 효과를 내고 있지 않느냐. ... 정치가 출세, 입신양명, 인정 욕구 충족의 도구로 기능하는 사회에서 엘리트는 모두 '강남파'일 수 밖에 없다. 강남 좌파에서 '좌파'는 부차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이 아닏. 제한된 정치적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승자 독식 상황에서 이념과 노선은 국리민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경쟁 세력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한 정략적 도구의 성격이 강해진다."
그리고 한국 정치 문제의 핵심은 '이념의 틀'이라기보다는 진영 논리와 증오 마케팅, 그리고 '인물 중심주의'임을 지적한다. "'이념의 틀'은 인물 중심주의에 따라붙는 부수적인 것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강남 좌파와 막걸리 우파들이 더 많이 늘어나게 하는 것이 나리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를 규합하고 상대편을 대하는지 집단적으로 성찰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강 교수의 결론은 못내 아쉽다. 그는 소통과 화합을 위해서 승자 독식이 가능한 구조를 바꾸어 '정치 과잉'을 줄이는 것과 인물 중심의 참여에서 목적 중심으로 참여로 바꾸자는 것, 그리고 권력 중심적인 '인정 투쟁' 문화, 입신양명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더욱이 아쉬운 점은 그가 '강남 좌파' 논쟁의 핵심을 '엘리트주의'로 분석하면서 '강남 좌파'로 지칭되는 개인이나 세력에 대한 비판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평소 지론대로 학력, 학벌주의에 대한 대안은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정치가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조적, 제도적인 방향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의 대표 이지문씨의 서평이 공감이 된다. 이지문씨는 강준만 교수의 분석이나 비판에 일면 공감하면서도 한국정치의 엘리트주의를 유도하는 선거제도, 즉 '강남 좌파'만이 가능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추첨제 민주주의' 등 '평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http://blog.daum.net/allgreenkorea/17135163)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강남 좌파’인가, 이들이 좌파인지, 그렇지 않은지와 같은 지엽적 논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특히 하위계층들을 포괄할 수 있는 진정한 대표 체계를 우리 정치 현실에서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보다 건설적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과거 독재권력 하에서 배제된 속칭 ‘민주화 세력’이 ‘강남 좌파’로 탈바꿈하여 기존 보수 엘리트들과 경쟁하는 장에 우리 국민이 단지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가 제시한 것처럼 독재 하에서 억압받고 배제된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하위주체들이 제도정치의 장에 진입함으로써 정치의 성격과 경계 자체가 변화하고 민주주의가 갖는 내용과 경계가 변화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 현실이 갈수록 ‘강남 좌파’만이 좌파를 대표하는 괴리가 심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보다 진지한 대안에 대한 탐색이 요청되어야 한다. 그 대안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정치인이 강남 좌파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선거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거 자체가 ‘강남 좌파’로 상징되는 상위계층에 절대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출마하여 대표가 될 수 있는 이들은 선거에서 절대 유리한 재정적 여유를 바탕으로 지역 조직 활동에 열심이거나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유명 인사이거나, 또는 정당 관료나 활동가가 아니면 정당 보스와의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을 때 가능할 뿐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선거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시민들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천을 받아 출마하여 공식 선거운동기간 동안 지출하는 금액보다는 최근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돈’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정치 신인일수록 현역의원에게 맞서 사조직 가동비가 엄청나게 들어가며, 이름 알리기 차원에서 여론조사 명목으로도 막대한 돈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당내 경선 여론조사와 경선대회 개최 등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참여하는 예비후보자들이 일정금액을 기탁금 형식으로 정당에 납입해야 하기 때문에 본 선거 이전에 돈이 없는 ‘좌파’들은, 아니 ‘우파’ 역시 마찬가지로 출마를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대표는 일반 시민들과 다른 재력 있거나 전국적 인지도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는 보다 높은 사회계층의 구성원으로 국한되고 있다. 이러한 선거 현실에서는 결국 좌파 중에서도 ‘강남 좌파’ 위주로 대표가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강남 좌파’에 대한 논쟁이 보다 생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강남 좌파 위주로 정치적 대표자로 충원되는 선거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 민주화에 대한 보다 진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법 민주화 차원에서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시행하고 기소배심을 논의하는 정치권이라면 정치 민주화 차원에서도 일반 국민들이,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실제 정치의 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실질적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 추첨을 통한 시민의회 창출이나 양원제 도입시 한 원을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충원하는 것과 같은 보다 ‘평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한 논의가 요청된다."

[ 2013년 1월 25일 ]
c****n 2013.01.2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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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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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의 종식을 일궈낸 486세대들이 현 한국사회의 정점을 달리고 있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베이비붐 세대이기도 한 486세대들이 정치민주화를 이루고 경제민주화까지 이루어야 할 상황에 있는 요즘 현재와 미래의 한국정치를 무엇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를 이 도서는 '강남 좌파'의 형성과 함께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핵심 인물들의 정치색,공약,비젼 등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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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부독재의 종식을 일궈낸 486세대들이 현 한국사회의 정점을 달리고 있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베이비붐 세대이기도 한 486세대들이 정치민주화를 이루고 경제민주화까지 이루어야 할 상황에 있는 요즘 현재와 미래의 한국정치를 무엇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를 이 도서는 '강남 좌파'의 형성과 함께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핵심 인물들의 정치색,공약,비젼 등을 살펴보면서 좋든 싫든 한국인으로서 참정권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읽고 생각하고 미래 한국정치의 모습을 예측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강남 좌파'라고 하면 두뇌는 좌파적인 진보 색깔을 띠고 몸은 서울 부유층이 많이 살고 있다는 강남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가는 형태라고 한다.강남 좌파라는 말이 암시하듯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이념과 욕망을 때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주견없는 현대 한국 중산층을 대변하는 느낌도 강하게 작용한다.흔히 진보라고 하면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이 아닌 소외된 계층 및 경제적,정치적으로 아웃사이더에 속하는 부류가 아닐까 하는데 실제로는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돈과 소유를 중시하는 물질적 욕망이 더욱 앞서 있다고 판단된다.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정치가 어느 정도 민주화 되고 발언권과 참정권이 강화된 상황에선 어떻게 하면 줄을 잘 서서 감투 하나 얻고 부를 일궈 자신과 가족의 풍요로움을 구가할 수 있는지에 더 큰 지향점을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소외된 계층,노동자,비정규직을 위하는 척하는 껍데기만 진보좌파라고 하는 속물근성의 정치인들의 말은 이젠 씨도 먹히지 않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현재 여당 안에서도 강남 좌파가 있고 야당에도 강남 좌파가 있다.이들이 말하는 강남 좌파는 4년제 정규대학을 나오고 알아주는 기업체,사(士)자가 들어가는 직업 및 안정된 경제수입을 누리면서도 정작 비정규직,소외된 계층의 설움을 진정으로 알고 다가가는 정치인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아스럽기만 하다.예를 들어 자산이 50억대가 넘는 정치인이 자신은 '강남 좌파'라고 자칭하면서 자식의 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휘어질 정도라고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 될인가?물론 강남 우파도 있겠지만 이는 여기에선 논외로 하는 것이 좋겠다.

 강남 좌파는 총론은 진보이고 각론은 보수라고 보여진다.독재정치 종식과 민주화 투쟁을 위해 나라의 역사와 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투사적 이미지는 아닐지라도 지금의 '강남 좌파'는 화이트 칼러 이미지의 색깔에다 노동자,비정규직,자영업자,독거노인 등 사회의 비주류계층과는 친근감이 전혀 없는 말만 진보이고 속은 욕망과 탐욕이 가득찬 정치꾼들로밖에 인식이 안된다.2012년 대선을 겨냥하여 백가쟁명식의 정치인들이 자신만의 이미지,정견,비전을 쏟아 부으며 국민들에게 표심을 향해 수면하에서 꿈틀거리고 일부는 대권주자인양 정치 행보가 분주하게 보이는 자도 있다.

 박근혜,손학규,조국,문재인,유시민,오세훈 등의 인물들이 각개전투식 대선 대열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서고 있지만 진정으로 소외된 계층(절대 다수)을 위하고 복지정책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국제간 균형과 조화를 통한 국익의 신장에 절대적으로 공헌할 책임감과 정의,공약을 제대로 지킬 인물이라면 비록 한 표지만 보태고 싶다.지금은 강남좌파가 문제가 아니고 힘있는 자와 없는 자의 이분법적인 불평등 요인이 한국 사회의 절대절명의 과제라고 생각한다.당리당략의 이념 투쟁과 밥그릇 싸움은 그만 하고 '너와 나'가 함께 잘 살 수있도록 벽(wall)을 제거하고 다리(bridge)를 만들어 소통과 화합의 장으로 가주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다.또한 선거때만 되면 불거지는 색깔 논쟁과 지역색깔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인물 및 소중한 유권자의 표가 사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1세기는 신자본주의의 가속화로 인해 갖은 사람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없는 사람은 한없이 나락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위에 열거한 인물 중에서 국정의 수장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약속한 공약(公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줄 아는 충실한 정치인으로 남기를 기대하고 폭넓은 식견과 안목으로 경제적,사회 구조적으로 난국에 처해 있는 한국을 살리고 사회구성원들간 반목과 질시가 없는 상생의 시대를 이끌어줄 인물이 차기 정권을 잡았으면 좋겠다.사족으로 선거땐 국민에게 다가서고 굽신거리며 표를 얻으려는 굽힘의 자세가 정권을 잡은 뒤에도 끝까지 국민에게 허리를 굽힐 줄 알고 귀를 열어놓고 경청하는 겸허한 분이 탄생되기를 바래본다.






j******6 2011.08.2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치에서 아무런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지만 소통을 열망하는 이들을 위한 책
"정치에서 아무런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지만 소통을 열망하는 이들을 위한 책" 내용보기
강남 좌파가 뜨겁다. 보수와 비슷한 생활을 하면서 의식은 진보적인 사람들..이들이 좌파의 이름으로 좌파적인 주장을 펼친다.좌파 혹은 진보를 자청하는 이들은 나름대로의 도덕적 우월감이 있다.반면 보수나 우파는 생활은 상대적으로 나을지언정 일반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기는 어렵다.여기서 위선이 발생한다.생활은 보수처럼 하면서 좌파적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사회적 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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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가 뜨겁다. 보수와 비슷한 생활을 하면서 의식은 진보적인 사람들..
이들이 좌파의 이름으로 좌파적인 주장을 펼친다.
좌파 혹은 진보를 자청하는 이들은 나름대로의 도덕적 우월감이 있다.
반면 보수나 우파는 생활은 상대적으로 나을지언정 일반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기는 어렵다.
여기서 위선이 발생한다.
생활은 보수처럼 하면서 좌파적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
사회적 부와 지위는 누리면서 도덕적 우월감까지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잘못은 아니다.
때론 고맙기도 하다.
.
.
.
.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은 단순한 강남 좌파에 대한 해설서가 아니라 부제에서 드러나듯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민주화가 진행되던 순간에도 강남 좌파는 존재했다. 다만 민주화라는 절대적 화두에 눌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민주화가 끝나고 나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강남 좌파'라는 모호한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이들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때론 진보라는 이름으로 서민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정권을 잡고 정책을 펼쳐나갔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 서민을 위한다는 이름을 내걸고 선거판에 나왔다.
여기서 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라는 말이 의미있게 들린다.
좌든 우든 표를 얻기 위해서 양 극단은 모호한 중간 지점까지 수렴하기 마련이다.
양당제 구도 하에서 특히 그러하다.
보수 정당의 친 서민 정책 구호는 말할 것도 없고
제도권 야권 세력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서민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자식은 명문대에 보내길 원한다.
서민을 위해 부동산 불패신화를 꺾겠다면서 자신은 부동산 투기로 부를 축적한다.
어제 오늘의 일인가?
보수든 진보든 모든 정치인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지껏 '그들'이 누구인지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때론 정치인들이 무차별로 뿌려대는 '이미지'에 눌려,
때론 '인물'중심의 포퓰리즘적 화려한 수사에 현혹되어
항상 선거철이 오면 국민들은 지난 대선에서의 실수는 '깨끗히' 잊고 똑같은 실수를 또 반복한다.
과연 다가오는 대선에선 달라질까?

결국은 경제 문제인 것 같다.
중소 기업 사장에서 재래 시장의 노점상까지 다들 내 사업이 잘되길 바라고
내가 돈 많이 벌어 강남 명품족 못지 않게 살고 싶어한다.
그런데 소위 제도권에서 진보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경제 정책까지 진보적이지 않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교육정책은 다른가? 가장 서민적이라는 참여정부에서조차 '대학 산업론'을 펼쳤다.
그렇게 양산된 '대학 기업'들이 어떤 폐해를 불러오는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최근 반값 등록금 투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는 오세훈, 박근혜, 손학규, 문재인, 문국현, 유시민, 노무현, 조국 등.. 잠재적 대선 후보에
대한 실명 비판까지 더해져 읽는 맛이 쏠쏠하다.
어렵고 복잡한 정치 문제를
'강남 좌파'라는 단일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재미있게 엮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민주화니, 좌파니 우파니 두루뭉술하고 추상적인 정치 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의 영향력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강남 좌파적 행보를 놓치지 않고 있어
인물을 올바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을 읽고, 진보는 위기가 아니라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각자의 영역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수많은
'중간적'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다.
책에서 지적했듯이 그들은 다수임에도 어느 한쪽으로 편향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장사가 안되는 부류다.
그래서 정치인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이슈가 되기도 어렵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어렵다.
이들을 본격적으로 소통의 장으로 이끌어 내고,
단순히 정치를 장사꾼의 논리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생산적인 논의가 활발히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 책이 바로 그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u 2011.07.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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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강남 좌파" 내용보기
강남 좌파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준만   이 단어가 뜨기가 무섭게 책이 나왔다. <강남좌파> 책 제목은 매우 시의적절한 듯 싶다. 2006년, 강남좌파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낸 강준만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본격적 분석을 시도한다. 강준만 교수의 여느 책들과 비슷하게 수많은 책, 기사, 인터뷰, 등을 인용하며 ‘강남좌파’ 단어를 정의하고 현상을 설명한다. 강준만 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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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준만

 

이 단어가 뜨기가 무섭게 책이 나왔다. <강남좌파책 제목은 매우 시의적절한 듯 싶다. 2006, 강남좌파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낸 강준만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본격적 분석을 시도한다. 강준만 교수의 여느 책들과 비슷하게 수많은 책, 기사, 인터뷰, 등을 인용하며 강남좌파단어를 정의하고 현상을 설명한다. 강준만 교수는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다라는 명제로 시작한다. 한국의 정치인은 대부분 고학력자이기에 교육적.문화적 자본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정치인이기에 중산층.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민주화 이후에 나타난 한국 정치 발전사와 지형도에 대한 분석이라고 볼 수 있다. 부제가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이 책의 처음은 강남좌파란 단어에 대한 역사적, 시대적, 이론적 논의를 펼치고, 노무현. 오마이뉴스. 문국현. 조국. 박근혜.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오세훈. 에 대한 인물을 파헤치고, 마지막으로 강남좌파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국의 입시전쟁에 대해 다룬다.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정확한 지적에 놀란다. 그러나 너무 많은 문제점에 질리기도 한다.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한국사회다. 도대체 문제의 끝은 어디인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나. 저자도 진단에 대한 속시원한 처방을 내리진 못했다. 처방이란 것 자체가 불가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랴. 세월이 약인 것을…” “새벽이 오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오래 걸리더라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보자. …” 탄식이 섞인 저자의 구절에 답답한 마음을 의지해본다.


저자는 이 책의 이유를 소통이라고 했다. 강준만 교수가 풀이하고 해석하는 내용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한국정치에 소통의 저변이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에 나도 한표를 보탠다.


사견 하나, 한국 정치에서 인물중심주의가 문제라고 강준만 교수는 이 책에서 연거푸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치인들의 인물비평을 집중적으로 해오신 분이 강교수님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 책에서도 한국정치인 개개인을 다루고 계신 거 아닌가? 달걀이 먼저 닭이 먼저, 이런 문제인 건가? … 그런 생각이 들었다.

 

d*****3 2011.07.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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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저널, 훌륭한 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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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지적 대단하고 섬세하기까지하다.나돠 장준하선생부터 노무현,김대중자서전까지 나름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이 글을 읽으니내가 읽고느낀건 참 작구나 생각한다.- 문명의 충동,칼레파타칼라,웅진지식하우스의 빅맨-추천도서특별히 지적할게 없다.나름 결론을 내리자면 계층이동사다리를 많이 확대하자가 요지아닐까 하지만 남이 내 자리를 차지하면내가 누리는 혜택은 더 적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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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지적 대단하고 섬세하기까지하다.


나돠 장준하선생부터 노무현,김대중자서전까지 나름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이 글을 읽으니


내가 읽고느낀건 참 작구나 생각한다.- 문명의 충동,칼레파타칼라,웅진지식하우스의 빅맨-추천도서


특별히 지적할게 없다.


나름 결론을 내리자면 계층이동사다리를 많이 확대하자가 요지아닐까 하지만 남이 내 자리를 차지하면


내가 누리는 혜택은 더 적어지니까 사다리 확대를 얼만큼하냐가 문제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정치는 앞만보는것 같다 예로 양녕대군숭례문현판이 있다 나름 3가지로 요약해본다.



1, 나눔



옛말에 이르길 부자3대 거지3대 없다고

우리는 지금 당연히 쌀밥을 먹고 초콜릿을 먹고 금가루술이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른채 백성이란 말은 


사극에서나 나오는 우리조상이 쓰던 말이고 영감님, 아가씨, 여사 같은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듣는다.


흰쌀밥은 원래 귀족의 전유물이었고 초콜릿도 18세기까지 사랑의 묘약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유럽귀족들


의 전유물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부자가 되길 꿈꾸고 귀족이 되길 원한다. 백성도 풀이하면 백가지성이란


 뜻으로 귀족의 상징물이다 서민여성의 호칭은 소사, 사대부여인의 호칭은 씨, 영부인의 호칭은 


여사이다.


백화점에서 일할때 직원들 감독하는 담당직원이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부를때 무슨무슨 여사님이란 


호칭을 잊지 않고 쓰는걸 들은 기억이 난다. 아가씨나 영감님도 같은 맥락이겠지


금가루술도 강남부자들이 먹으니 그래 나도 한 번 하며 호기심에 먹은 적이 있다.

우리는 왜 위만 바라보며살까



귀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특권의식이다.

TV에서 우리들의 의식을 조장하는 부분은 제하고라도 부자들 중에 특권의식이 있는 사람이 많겠지만

안그런 사람도 예상외로 많다. 유치원 운전기사를 하면서 여러형태의 사람들을 접한다 모두 고만고만한 


골목길 사람들이다.

물론 개중에 외제차를 몰며 풍족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지하 셋방에서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사는 사람


도 있지만 중요한건 내가 그집을 워낙에 많이 다니고 귀동냥하는게 많아 대충만봐도 그 집이 어느 정도 


사는지는 어림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학부모는 진심으로 대하는 반면 어느 부모는 특별히 


내세울것도 없는 평범한 가정인데도 유치원운전기사가 별 것 있겠어라며 의도적으로 내리까


는 사람들을 종종본다. 돈은 없지만 이들 역시 특권의식이 있는 귀족이다.

자신들이 가진게 얼마나 많길래

아무것도 주지못할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받지 못할만큼 부자도 없다.



우리 아이들은 감기에 자주걸린다. 아버지가 워낙에 저질체력이라 항시 미안한 마음뿐이다.

언제 서로 잘아는 사람과 차를 탔는데 우리집 사정을 훤히 알기에 자기 아이는 창문 열어놓고자고 몸은 


튼튼하고하면서 도착할 때까지 마냥 건강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걸 들었다..


내가 알기론 그 집 아이도 다른 부분에 있어선 우리 아이보다 떨어지는면이 여럿인데 그 부모에겐 건강하나만 보였나보다 당장 눈앞


에 건강만 보이면 건강만이 다인것으로 생각하듯 내면의힘, 지혜, 경험등 다양한 재산이 있음에도 


돈만을 가진 것이 전부로 보는 풍조가 이런쪽에서 와전된걸까


하루일을 막 끝낸 막노동꾼이 지저분한 옷을 입고 불만가득한 얼굴로 아이스캔디를 배어물며 걷는 


모습을 본다. 누가 그런 사람을 간절히 부러워할  수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봐도 괜찮을 대목이다.


친구들 모임에서 내가  이런말을 한 적이 있다.우리국민중 5%만이 양반 후손이고 나머진 다 상놈 


후손이었다고 학교교육의 문제는 인성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났기에 선생의 권위가 추락하고 온갖사회


문제가 생기는거다.


돈이 전부가 아니고 가난한 사람도 돌볼줄 아는 교육을 시키는게 우선이라고 힘주어말하자.

누군가 이런 말을 조그많게한다 프로레타리아 이야기를 하는것 같다고

어쩌다 우리의 자화상이 이렇게 되었을까 프로레타리아 맞는 말이다 내 주장의 결말과 프로레타리아


사상의 결말은 비슷한 점도 있으니까


난 프로레타리아 사상을 접한적도 없고 관심 가진 적도 없으며 관심 가지고 싶지도 않다.

어느나라나 농민이 있고 귀족이 있고 산도 있고 강도 있다 이름은 같지만 그 형태와 특성은 모두 제각각


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 문화가 존재하지만 같은 생명체의 문화라도 지역에 따라 똑같진 않다 100리만가도 


풍속이 바뀐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우리에겐 홍익인간, 경천애인등 일제시대 선각자들의 행적에서도 엿볼 수 있던 고유의 사상들이 어느


 순간 모두 사장되고 어디에선가


이식되어온 프로레타리아 사상이  그 자리를 메꿨을까 사상의 현주소가 이럴진대 다른 고유문화는 


오죽이 설 자리가 없어졌을까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풀기 위해 북한주민들의 이야기 하나만 곁들이려한다.

우리는 통일을 원하고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외치지만 내가 만난 신세대나 아들을 군대에 보낸 


아주머니에게서든 가끔 듣는 말이 절대 통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내가 가진 것은 절대 나누어줄 


수 없다고 얼마나 잘살길래 만일 우리의 국민소득이 20배로 오르


고 전라도와 제주도로 국토가 좁아졌다면 우린 행복할까.

누군가 그랬다 소득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행복해지지만 8만달러를 넘어서면 아무 느낌이 없어진다고

내가 예전에 살던 곳은 20평대 아파트단지와 4차선도로를 건너 30평대 아파트단지가 있고 그 중심에


 내가 일하는 상가가 있었다.


30평대 20평대 아파트가 얼마나 차이가 나길래 30평대 아파트주민들은 20평대 아파트주민들보고 저기 


쥐가 나온다 했을까 자신이 가진게 얼마나된다고 또 절대통일이 되어선 안된다는 사람들은 30평대


 아파트주민들에게 그런 안좋은 소리를 듣는 20평대 사람들이다.


내 부를 조금이라도 나누어주는 일은 절대없다며

우리가 북한에 원하는건 무언가 그들의 진정한 권익과 행복인가 아니면 그들이 인디언처럼 가지고 있는 


국토와 자원 노동력 그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얻는 역사적 정통성인가 지금 내가 보기엔 전자가 아닌 후자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탈북자나 통일 후 북한을 끌어안을 과제은 나눔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못구한다고 하는데 지금 국민의 반이 굶주린 상태로 내몰렸다.

아파트를 1000채이상 가지고 있으면 기분이 어떨까 100채가 있다면 또 부동산 갑부 100위안에 든다면...

한국에서 아파트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자기명의로 이미 1000채를 넘게 가진 사람이고 자기명의로 


100채를 가진 사람은 100위안에 도 못든다 몇채 가지건 상관없다 이들이 한사람당 한채씩만이라도


 통일후 절망하는 북한주민들이나 탈북자들을 위해 희사한다면 어떤 성취감이 그들을 찾아갈까 그걸


 바보 같은 짓이라고 욕하는분이 계시다면 한번 상상해보라 내가 가지고 있는 1000채나 100채가 50


년후 100년후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고 유지되고 있을까

한국부자의 가장 큰 비율이 하는 가장 큰 고민은 1000채 100채가 아니라 내가 이룩한 부를 내 자손이 


유지할 수 있을까다 내가 보기엔 학교의 인성교육이 절대적이다. 자신의 앞에 떡이 있을때 옆에서 그


 떡에 손을 대려는 손들을 물리치고 자신이 그 떡을 차지하는 방법


만을 가르치는 현행교육시스템이 아닌 그 떡을 차지하려는 싸움을 한 발짝 물러서서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게 나는 최선이라고 확신한다. 그럼 자신을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안목도 저절로


 길러질테니 그렇게 선순환교육이 정착된다면 땅에 떨어진 선생님의 권위도 차차 회복될 것이고 


부모세대가 이룩한 부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를수 있지 않을까




나는 민주화세대임에도 군사독재와 싸운적이 없이 방구석에 틀어박혀 벽만쳐다본 시간여행순례자다.

그런 시간을 가진 나인지라 민주화를 위해 싸운 운동권친구를 갖지를 못한채 주변에 있는 좌파 친구 


5명만 어중간히 알뿐이다. 


고교친구둘 대학친구2 군대동기 하나 모두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고 시국이 어떻다 역사가 어떻다 


이야기를 잘한다. 하지만 내 눈에 말과 행동이 같은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좌파를 욕한다해서 결코 내가 우파란 이야기는 아니다. 남을 욕하려면 자신은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하는데 자신도 똑같이 행동하면서 남을 욕하는 사람이 더 나쁘다는 얘기다.


신선함과 청렴성이 좌파의 무기인데 비리를 저지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비리를 안저질렀다는


 보수신문들의 혹평에 그들 스스로 힘을 실어주고있다. 강남좌파로 다시 속물로 다시 그들이 손가락질


하는 특권의식층으로 복귀하는건 아닌지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고려무신정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시절 경대승 같은 인물들도 있었지만 90%이상은 어떻게하면 재물을 더 축적해 자자손손 잘먹고 


잘살까로 고민하며 서로 싸웠다.


지금21C  현시점에서 그들의 직계후손중 그들이 축적한 재산의10원어치만이라도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얼마전 구청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나오는 길에 현관문에 붙은 사람을 찾는다는 전단지를 한 장 보았다.


 집나간 치매 노인을 찾는다는 광고지다 대충보니 30-40명 정도의 얼굴이 들어있고 60대초반부터


 80대까지의 노인들이었다.  만일 30년전 이들이 멀쩡했을때 이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와 


그들의 얼굴이 담긴 전단지를 보았다면 그들의 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 내가 사는 동네는 오래된 동네다  정겨운 골목길도 많고 철물점, 방앗간등 다양한 점포와 재래시장


까지 신구가 잘 조화된 풍요로운 곳이지만 그만큼 공간을 구하기가 어려워 어린이 놀이터는 전무한


 상태이다. 학교운동장도 좋지만 어느 정도 놀이터란 명분이 될 만한 곳이 있어야되는데 그런 곳이


 아파트 놀이터뿐이다.


우리애들도 옆동네 아파트놀이터 가자고 자주 떼를써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같이 놀아주러 다니는데 


어느날 저층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로이로제 상태처럼 흥분하셔서 자전거 타는 아이들중 다른 곳에서 


온 아이에게 니네동네가서 놀라고 심하게 면박을 주어 쫓아보내고 조금 성가셔 보이는 아이들 혼내시다 


고층 사는 젊은 아주머니와 싸우는 광경도 봤다. 허구헌날 창 밖에서 아이들이 뛰노니 짜증도


나겠고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내가 그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조금은


 이기적으로 생각해본다.

겨울엔 조용할테고 밤에도 조용할 것이고 비나눈이오는날들도, 찜통인날도 찾아보면 오히려 떠들지 


않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 할머니의 화는 내가 보기엔 아이들이 떠드는 시간대만을 집중적으로 


생각하며 떠드는 통에 쉴시간이 전혀없다는데서 오는 강박관념의 문제로 들렸고 아파트입구에 저층노인


 몇 분이 협의하여 '외부인 출입금지'란 푯말을 써붙였을때 나는 재벌개혁을 떠올렸다.


한국재벌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했고 헤비타트등 사회적공헌도 하지만 승자독식을 철저히 즐기며 


나누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고 해 욕을 먹으며 재벌개혁이란 말이 나오게 만든다.


  내가 가진게 조금이라도 있고 그것을 나누어 줄 때 사람사는 맛이나는게 아닐까


다른 주민들에 비해 놀이터 하나를 더 가졌다고 텃새를 부리는 일부 사람들과 재벌이 무어가 다른가 


남들은 아파트 1000채, 100채를 가지고 부동산시장을 교란시키지만 나는 내가 벌어 2채 3채밖에 없다


 외치는 사람들 저들도 처음엔 두채 세채부터 시작했고 우리아버지도 누나도 그런 시간여행을 하고있을


때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누굴 탓하겠는가


 우리집앞에 주차공간이 하나 있다치자 거기는 우리차가 주차할 공간이다.


밤에는 내 차를 대지만 낮에는 텅 빈 공터가 되는 주차금지시킬 무슨 물건을 하루종일 갖다놓는다. 


빌라도 아파트도 비슷하겠지.

내가 볼 일을 보러 다른 동네에가 주차를 하려해도 집집마다 빈공간은 많은데 주차금지란 물건이 많고 


어디는 경비아저씨가 지키니 집을 떠난 내 차를 주차시키는데 상당한 애로를 겪는것은 당연하다.


남의 동네에서 본 주차금지란 물건, 남이 갖다놓은 것일까 내가 갖다놓은것일까 깊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가진게 초콜릿 하나 밖에 없더라도 우리 나누며 살자.




2,관용




소제목: 지도자는 재주보다 덕이 있어야 한다.


장묘문화 윗분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지 ..


묘지는 미세먼지를 막아줄 숲이 있던 곳이고 후손들의 터전인 집,공장,논밭을 위한 땅이다.


민중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노회찬의원도 소도에 묻혀버린 브라만계급이 되셨다.


안타깝다.


풍수에 전순이란 말이 있다.


혈앞에 내민 자리를 말하는데 산으로부터 내려온 지기가 혈을 이루고도 남아서 만들어진 자리이다.


원래 '전'이란 글자는 양탄자를 뜻한다.


한국의 국운은 백악(북악)산을 뒤로한 청와대와 경복궁이 혈자리이고 그 앞 광화문광장이 전순이라


할 수 있다.


묘를 지을때도 전순의 크기 유무를 보는데 보통 알맞은 터가 좋고 무악대사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도 전순을 보았을 것이다.


복수를 위해 수원에 있는 '화령전','운현각' 현판을 박정희대통령 친필현판 대자뷔일까 복수를 위해


광화문현판을 떼버렸다. 이런 발자취도 다 역사인데..


박정희대통령의 광화문 현판글씨는 광화문일대의 기운을 장악하는 글씨다.


왜 우린 관용을 실천하는 지도자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


김대중대통령이 그립다.


이순신장군동상을 세운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본의 침략야욕을 누르는것 풍살과 도로살을 제압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횡단보도는 자동차의 통행속도를 줄여주기 때문에 도로살의 강도를 상당히 약화시키는 의미가 있다.


,풍살은 음기가 가득 실린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세종로의 일부를 공원화하기 위한 논의과정에서 충무공동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풍수적 이유로 무산되었다.


김대중대통령은 독재권력과 몸싸움,말싸움은 말할 것도 없고 목숨싸움까지 했지만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미셨다.


왜 이런건 본받으려하지 않을까.


진정한 복수는 내가 그 일을 당했을때 그것을 되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났던 원인을


분석하여 그 상황을 해결함으로써 그 문제를 푸는 것이 진정한 복수이다.


보수가 그렇지 못하고 군부독재권력이 그렇지 못했다면 진보는 달라야하는데 왜 모두 판에 박은듯


똑같은 것일까.


학생들은 지도자의 이런 모습을 보고 무얼 배울 수 있을까 또 수백년후 학생들은 싹 지워져 버린


이 시대의 흔적을 어디서 보며 배울 수 있을까 예로 숭례문 세로현판을 보자.


광화문현판도 독재자의 글씨가 아니라 이 시대의 역사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게 무얼까 창의력?


한국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 가장 큰 요인중 하나는 우수한 인력을 쉽게 뽑을


수 있는 한국사회구조에 있다.


OECD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 OECD에서3년마다 한번씩 실시하는 학업성휘도 평가.


최근에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한국이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1등~7위까지 전부 동아시아 국가다.


그렇다면 한국의 창의력 지수는 얼마나될까?


한국은 2015년에 총139개국중 31위를 기록했다.


최상위 성적은 모두 유럽국가라는 것이다.


글로벌 창의력지수는 기술력,인재,관용성등 3가지 부분을 종합평가한 것이다.


한국은 1번은3위 2번은 50위 마지막의 제일 중요한 관용성은 70위를 기록했다.


관용성 지수도 두 가지로 평가된다.


1.인종,민족적소수자에 대한 포용력.


2. 성적소수자에 대한 포용력


1번은58위 그리고 번은82위를 기록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중용이란 어느 양극단의 중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겁과 만용의


중간을 중용이라했다.


즉,중용이라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비겁한 행동도 용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정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선입견과 편견을 배제하고 눈앞에서 벌어진 구체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제기할 수 있는


모든 대안을 모두 끄집어내어,거기서 가장 올바른 대안을 잡아내는 것이 바로 진짜 중용이다.


결국 새로운 상황에 얼마나 많은 대안을 꺼낼 수 있는가가 창의력의 핵심이다.


100C물이 든 양동이에 수돗물 한방울 넣는다고 양동이속 상태는 바뀔까 인간이 측정할 수 있는


과학구조로는 잴 수 없지만 분명히 바뀌었다. 이런 물방울이 되어보자.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은 꼭 있게 마련이다.


못된 시어머니밑에 있던 며느리가 못된 시어머니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시어머니들이 아무리 좋은 고참들이 있다해도 후임이 그 권력자리에 않은후


그 특권을 휘두르며 못된 짓하는 졸부는 어느시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게 되어있다.


그런 졸부가 있더라도 그런 양동이가 있더라도 우리 모두 한 방울의 물이되자.


모든 직업에는 권리와 의무가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달콤한 권리만을 누리기를 바란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권리만을 주장하는 사람을 우리는 졸부라고 부른다.


권리와 의무를 같이 짊어질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의리 있는 사람이라 부른다.


권리보다는 의무를 더 많이 이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위인이라 부른다.


 

3, 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생글생글 잘 웃던 미즈노교수가 방송에 잘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모여서 토론하던 곳에서 미즈노교수는 "저희 일본에서는 자식이 사업자금이 부족해 시골

 

부모님에게 가서 가만히 있으면 말을 안해도 부모님이 알아서 주십니다. 또 연인들끼리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도 다

 

 압니다."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말에 주변사람들은 "에! 그게 뭐야 말을 해야지" 하며 어이없어 했다.

 

이야기가 좀 다를진 몰라도 야만이란말은 18세기 프랑스에서 만든 말로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명보다 우수함을


말하기위해 만든 말이다.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려는 극단적인 예가 '야만'이라는 단어다.

 

12세기 한국과 일본에는 모두 무신정권이 같은 시기에 등장한다.

 

청기백기게임의 원형도 알고보면 운동회때의 청백전이 아니라

 

백강전투후 400년동안 일본에 존재했던 시대가 헤이안시대고 그 이후가 700년간의 무신시대다.

 

수도를 두 번씩이나 옮긴 간무천황이 794년에 헤이안쿄(현재 천왕이 사는 도시 교토)를 도읍으로 정착시킨후 1185년에 이르러서야

 

미나모토가문이 다카모리왕의 손자 다이라씨와 전장에서 맞붙었을때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한쪽은 등에

 

 홍기를 꼽고 한쪽은 등에 백기를 꽂은데서 청백전이 유래한다.

 

이로인해 다이라씨가 궤멸하고 군사,경찰,행정권이 미야모토가문의 수장 요리토모에게 넘어간다.

 

이때 시작된 또 하나의 풍습이 있는데 무신정권의 호화로운 요리인 가이셰키요리와 승려들의 공양음식인

 

 쇼진요리가 합해져서 현재의 일식요리의 원형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이 1868년 메이지천황의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700년 동안 무신들이 전국에서 난립해 싸우는

 

전국시대가 계속된다.

 

우리나라에 군청단위가 있다면 일본에서는 현단위의 땅에 지배자인 영주가 있어 그곳의 무사집단과 농민집단이 영주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경쟁하는 시대를 그들은 700년이나 지속시킨다.

 

만일 거기속한 사람이 자신의 불만이나 억압에 대한 표출을 하게되면 그곳 집단에 해를 끼쳐 단결에

 

 해가된다하여 자신의 욕구불만을 자신의 내부로 내면화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려 지금도 일본에선

 

 제일 심한 욕이 우리가 잘아는 '빠가야로'라는 바보란 말이 제일 심한욕이라 알고있다.

 

어느 기자가 그런다 한국과 일본의 고소고발 사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이건

 

 단순비교가 아니라 원인을 역사적 유래를 놓고 비교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마다의 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건 무리가 따를 때도 있다.

 

그럼 한국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바보'는 욕도 아니다 그냥 애칭 정도일까

 

조선은 500년동안 양반중심의 중앙집권제가 뿌리를 내린다.

 

서민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천대를 뒤에서 욕으로 푸는걸로 해소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욕으로 푸는 문화를 발달시키게 되었고

 

일본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내면화하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다 사대부의 발원지를 보자.

 

진,송시대이후 사대부라는 명칭이 직업은 비록 달랐지만 농,공,상과 같이 섞여 살았다가 후대에와서

 

 사대부는 곧 문벌이 높은 집안을 가리키게 되었고 그들이 사는 곳은 농,공,상과 완전히 구별되도록

 

서로 섞여 거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압구정도 중국 송나라의 정승 '한충헌'이 황제를 새로 세운 공을 이룬뒤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은후

 

 벼슬을 버리고 갈매기와 함께 논다는 겸손의 뜻이 원형이다.

 

그 압구정이 조선으로 넘어와 '계유정난'을 기획한 한명회가 갈매기압으로 부르던 정자를

 

지은후 그곳의 뜻이 서민들에 의해 누를압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발원지를 알면 재미나는 것들이 많다.

 

한강의 발원지도 오대산 '우통수'와 태백 황지의 창죽동의 검룡소를 발원지로 보기도한다.

 

여기는 귀한 곳이기에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럼 지금 한국은 발원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문화유산은 또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안압지,불국사,석굴암,첨성대,무령왕릉,고인돌,장군총등 거의 다인 문화유산은 모두 귀족이나

 

 왕족들을 위한 유산이다.

 

그럼 우린 이런 문화유산을 정말 잘 지키고 있을까

 

우리는 약간이라도 불편하거나 보기 싫으면 싹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종로의 피맛골,중앙청,명성황후생가 담장의 일부,북촌을 밀어버리고 빌라단지를 만들자는 사람들,


창덕궁의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시원스럽게 밀어버린 사람들,천재시인 백석과 길상사 자야여사가


사랑을 나누던 집,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조선시대 세운 단성사가 헐릴때 우리 영화인들은 돈세는 일만했다.


돈에 미친한국영화인들,올림픽 메인스타디움과 국회의사당을 지은 건축가 김수근씨의 집도 싹 밀어버리거나 밀려고했다.

 

이제껏 나온 문화유산중 95%인 서민들의 유일한 유산 한국에 욕이 왜 많은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가 바로 종로의 '피맛골'이다.


종로통 대로변 정승판서행차의'말을 피하다'에서 유래된 피맛골은 종로통의 뒷골목이다.


지금 당장은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를 수 있기 때문에 문화유산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은 한국이 지닌 약점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세월이 지나면 무엇이든 잊혀지는 법이지만 역사의 현장은 고이 보존되고 간직되어 다시 후손들에게


전해져야하는 법이다.

 

우리는 지금 전통과 낙후를 구분못하는 혼돈에 빠져 있지않은지...

 

가난의 잔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구시대적 발상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하고 있는 것일까

 

1392년 조선은 개국했고 그 시절 숭례문을 만들게된다.

 

숭례문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있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우를 범하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69세 노인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고 그 노인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으며 감옥으로 향했다.

 

종로의 피맛골은 1392년 조선의 개국시절 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기게된다.

 

피맛골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 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존재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자랑하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있는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으로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국민들은 무관심하거나

 

부순사람을 지지한다.

 

옛날 것을 없애는 것은 한국의 약점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몇몇 정치인의 생각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를 통째로 바꾸려는 발상 이제는 좀 바꿀떄

 

도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는 모짜르트생가 베토벤 생가에서 외국정상들과 칵테일 파티를 한다는데

 

왜 우리는 이런 야만의 시대에 살아야하는가

 

 

 

참고도서 몇권만 추려서 권한다

 

서울, 북촌에서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일생에 한 번은 독일을 만나라


세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내사랑 백석


맨큐의 경제학 페이지230 (역사적건물의 외부효과)


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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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19.06.2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강남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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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권 안팎에서는 ‘강남좌파’라는 신조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생소한 단어가 주는 느낌은 뭔가 어색하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강남’과 약자와 사회개혁의 상징인 ‘좌파’라는 개념을 결합해 놓았으니 생뚱맞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강남좌파라는 말은 지난 2005년 일부 보수진영에서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운동권 출신의 386 인사들을 비꼬아 일컫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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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권 안팎에서는 ‘강남좌파’라는 신조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생소한 단어가 주는 느낌은 뭔가 어색하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강남’과 약자와 사회개혁의 상징인 ‘좌파’라는 개념을 결합해 놓았으니 생뚱맞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강남좌파라는 말은 지난 2005년 일부 보수진영에서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운동권 출신의 386 인사들을 비꼬아 일컫던 말이었다. ‘개혁의 대상인 기득권 세력이 웬 좌파운동이냐’는 비아냥을 담고 있다. ‘강남좌파’란 전문직 등에 종사하는 의사, 변호사, 교수, 공사 고위직 샐러리맨 등 고소득, 고학력 계층으로 진보적 이념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서 ‘강남’이란 생활공간으로서의 의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들 계층이 경제적 여유를 갖고 있다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상징적 조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강준만 교수는 노무현 정권 시절 강남 좌파 현상을 최초로 제기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강남 좌파의 현상의 실체와 논란을 새롭게 진단한다. 저자는 ‘강남 좌파’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고 전 세계적인 동시대적 현상으로서 모든 정치인이 ‘강남 좌파’일 수밖에 없는 근거를 제시한다. 저자는 ‘이념은 좌파적이나 생활은 강남 사람 같다’는 일반적인 정의를 뛰어 넘어 강남 좌파의 유형을 총 9가지로 분류해 총체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그 기준은 ‘강남’의 성격, 주체의 위상, ‘좌파’의 실천이라는 3가지 관점에서 각각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이 중 ‘공적 강남 좌파’(지도자, 정치인, 고위 공직자)가 ‘기회주의적 강남 좌파’로 변질되는 것이 ‘강남 좌파’에 대한 비판론의 핵심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강남좌파는 우리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 긍정론과 부정론을 함께 제시한다. 긍정론은 첫째, 상류층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게 하류 계급에 큰 힘이 된다는 점이다. 둘째, 갈등의 양극화를 막는데 도움이 된다. 셋째, 상류층에 속하면서도 하층 계급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맙다.


부정론은 첫째, 권력ㆍ금력까지 누리면서 양심과 정의의 수호자로 평가 받는 이른바 ‘상징자본’까지 갖겠다는 건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둘째, 진보를 더 많은 권력ㆍ금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셋째, ‘강남좌파’의 진보 프로그램은 말로만 강경한 속성이 있어 실천보다는 당위의 역설로 그칠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해낼 수 있는 실천마저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강남좌파는 왜 좌파운동을 펴고 있을까? 외견상 아무 부족한 것이 없을 것 같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상류층 인사들이 왜 자신들을 키워온 토양을 갈아 엎자는 일에 나섰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고소영 수석, 강부자 내각’이라 불릴만큼 끼리끼리 해먹는 보수의 전횡에 실망하고 촛불집회로 민중의 힘과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보수의 전횡과 이기주의에 반발한 중도성향의 부유층이 서서히 좌파성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지앵’이나 ‘뉴요커’처럼 진보 성향의, 보보스적인 부유층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좌파가 부자가 된 경우’가 아니라 ‘전통적인 부자가 좌파가 된 경우’가 늘면서 생긴 현상이다. 보수 기득권층의 전횡과 이기주의에 반발한 중도 성향 부유층이 서서히 좌파 성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강남좌파란 한마디로 엉망진창인 보수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다.



k*****6 2011.08.1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선거의 해를 앞둔 유권자의 필독서 - 강남좌파
"선거의 해를 앞둔 유권자의 필독서 - 강남좌파" 내용보기
솔직히 저자 강준만이 누군지 난 잘 모른다. 신문에서 정치면은 내가 아예 처다보지도 않는 그런 분야라서, 난 그저 오피니언과 사설을 제외하면 정치관련 이슈나 정치인 인터뷰는 읽지 않았다. 그래도 사설을 읽으면 요즘 정치가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수 있으니까 별로 사는데 불편하지도 않았고, 사실 정치인들에 신물이나서 누가 정치인이 되건 똑같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그렇게 살아
"선거의 해를 앞둔 유권자의 필독서 - 강남좌파" 내용보기

솔직히 저자 강준만이 누군지 난 잘 모른다. 신문에서 정치면은 내가 아예 처다보지도 않는 그런 분야라서, 난 그저 오피니언과 사설을 제외하면 정치관련 이슈나 정치인 인터뷰는 읽지 않았다. 그래도 사설을 읽으면 요즘 정치가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수 있으니까 별로 사는데 불편하지도 않았고, 사실 정치인들에 신물이나서 누가 정치인이 되건 똑같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가 우연이 읽게된 강남좌파...책 제목이 주는 흡인력도 좋지만, 저자의 문장도 대단한 몰입도를 준다.

 

사실 이 책이 우리시대 정치인들 대부분이 강남 좌파라는 논리로 글을 써나가고 있지만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것은, 내년 대선에서 거론되는 인물들이 지나온 행적과 언행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비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조국 교수가 개그맨이랑 헷갈려던 수준이기에 더욱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에 등장하는 정치인을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런데 그 비판의 관점이 나의 생각과 맞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내 견해란 것이 다분히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이라면, 저자의 비판은 좀 더 구체적고고 논리적이라 내 생각을 다듬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내년 대선에 거론되는 인물들을 총망라하고 있는 만큼 유권자라면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것 같은 내용으로 가득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앙하고 따르는 분들이 본다면 책을 집어던지거나 불태워 버릴지도 모르지만 저자의 논평에서 자유로울 정치인이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참고 읽어나간다면 정치에 대한 새로운 안목  그것도 아니면 신문을 읽는 재미라도 더 해 줄수 있을 것 같다.

거기다가 술안주삼아 정치인을 씹어댈 때 인용하면 좋을 만한 내용도 많으니 좀 잘난척도 할 수 있을 듯

 

추신 이 책을 읽고나서의 부작용 : 아침마다 신문의 정치면을 보고 있다

 

www.weceo.org

s******y 2011.08.1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