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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좌파가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우파다. 소득의 양극화나, 학벌이나 금권에 의한 새로운 신분사회의 등장이나, 승자독식과 같은 사회현상이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또한 한반도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비난보다는 관용이, 조건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안는 포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좌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기꺼이 좌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좌파가 된다면, 진짜 좌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나 역시 이런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는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아이들에게는 남을 밟고 일어서라고 경쟁세계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핑계아래, 나는 상위계층에 속하지 않는다는 자기위안을 무기로, 학교 다닐 때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지금은 태연하게 하고 있기도 하다. 달리 말해서 어정쩡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강남좌파라는 말이 유행인 것 같다. 처음 강남좌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왠지모를 이중적인 느낌, 아니 위선적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강남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 같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아니 상위계층의 사람들이었기에 분노하거나 비판해야 할 때, 오히려 침묵하거나 외면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비로소 비판하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활은 지극히도 우파적인 사람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행동이 아닌 입으로만 말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87년 민주화 이전에는 민주화라는 종교가 있어 사상과 생활의 분리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일반 사람들은 지도자나 정치인, 각 개인들의 재산이나 사상의 실천등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상과 생활이 분리된, 즉 사상좌파, 생활우파가 너무 많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사회는 대부분 총론진보, 각론보수의 형태를 띠고 있다. 사회는 진보적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보지만, 당장 내 문제에 닥쳐서는 내 이익을 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이것이 강남좌파의 일면이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일반국민의 경우엔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차피 그들은 강남이라는 의미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남좌파라는 현상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이 책의 저자인 강준만 교수라고 한다. 참여정부시절 보수언론이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려는 혐의로 ‘이념은 좌파적이나, 생활은 강남사람 같다’고 정의했던 이 단어를, 저자는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공론의 장으로 끌어 냈다. 그런 그가 이제는 강남좌파의 유형을 9가지로 분류하여 총체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그는 강남좌파의 유형을 강남의 성격, 주체의 위상, 좌파의 실천등 세가지 관점에서 각각 세가지 유형, 총 9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먼저 강남의 성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강남이 주는 의미 그대로 부자가 좌파성향을 갖는 가장 일반적인 경제적 강남좌파, 부자는 아니나 라이프스타일 등에서 강남성향을 드러내는 문화적 강남좌파, 그리고 경제적, 문화적 강남좌파도 아니면서도 최고의 학벌을 갖고서 그 학벌이 주는 학연, 인맥의 혜택으로 엘리트 위치를 누리는 연고적 강남좌파로 구분한다. 그런가 하면 주체의 위상이라는 관점에서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등과 같은 공적 강남좌파, 언론인, 대학교수등과 같은 중간적 강남좌파, 그리고 일반 시민의 사적 강남좌파로 나누고 있다. 마지막으로 좌파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는 자신의 이념과 삶의 실천을 일치시키는 이타적 강남좌파, 적당한 수준의 이기심을 드러내지만 좌파적 의식이나 행동으로부터 사적 이익을 취하지는 않는 합리적 강남좌파, 그리고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좌파적 성향을 나타내는 기회주의적 강남좌파로 구분한다. 저자는 이러한 여러 유형의 강남좌파들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것은 공적 강남좌파가 기회주의적 강남좌파 노릇을 하는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권력,금력까지 누리면서 도덕적 우월성까지 차지하겠다는 것이며, 하층계급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에 진정성이 결여된 진보 프로그램을 주창하게 된다. 또한 진보나 좌파사상을 더 많은 권력이나 금력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한국 정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좌-우의 싸움도 아니고, 진보-보수의 싸움도 아닌, 단지 출세한 사람과 출세하지 못한 사람의 싸움일 뿐이라고 한다. 정치가 출세, 입신양명, 욕구충족의 도구로 기능하는 사회에서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는 학력에서부터 생활수준에 이르기 까지 모두 강남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좌파는 모두 강남좌파일 수밖에 없으며, 우파는 그들 역시 말로는 늘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는 이타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좌파적 색채가 농후하다. 따라서 좌파는 부차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강남좌파 논쟁은 한국사회의 엘리트 논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국의 보수 엘리트와 진보 엘리트는 서로 다른 것 보다는 같거나 닮은 것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또한 엘리트 집단이 자기들의 이익을 다수의 이익인양 포장해온 것은 인류역사이래로 계속 되어온 전통이라고 한다. 서민의 삶을 돌보겠다고 외치는 엘리트 집단이 꼭 서민처럼 살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이들이 서민의 이름을 팔아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한다면 그것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한다. 따라서 기존 엘리트 지배체제를 당연시하면서 진보-보수의 이념 문제로 몰고 가기 보다는, 엘리트 대 비엘리트의 구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진보-보수의 이념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엘리트들의 승자독식을 그대로 허용한다면, 서민들은 항상 그들의 도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에는 강남좌파 논쟁의 배경과 논의 실체 외에도 정치인들에 대한 강준만 교수의 비평이 실려있다. 참여정부 시절, 배부른 진보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과, 2007년 대선에서 오마이뉴스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를 띄운 이유가 기존의 강남좌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세련된 강남좌파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뿌리깊은 정치혐오를 극복하기 위한 것 이었다고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2012년 대선에서 후보로 거론되는 여야 정치인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그들의 성향을 비평하고 있기도 하다. 먼저 2007년 대선에 이어 계속 이어지는 오마이뉴스의 新강남좌파 띄우기로 [진보집권 플랜]의 조국 교수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강남우파, 분당우파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손학규에게는, 진보적 노동운동가였다가 18년전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보수를 택한 과격은 한번으로 족하다고 이야기 한다. 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유시민과 문재인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나타나는 인물중심의 정치와 민주화 이전과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를 다루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침묵하는 박근혜의 인기비결은 부정적 의미의 강남좌파에 대한 반작용이며, 따뜻한 보수를 내세우는 오세훈은 한때 강남좌파를 기웃거리기는 했지만 누가 뭐래도 강남우파가 분명하다며, 그에게도 대권에 대한 꿈이 있기에 전투적인 프레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강남좌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나, 현실 정치인에 대한 저자의 비평은 일정부분 동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각자의 생각과는 다른 부분도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의 시점에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강남좌파에 대한 그의 분석은 흥미롭고, 한국 정치를 진보-보수의 이념이 아닌 엘리트주의의 충돌로 보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러한 논쟁이나 분석이, 전혀 강남스럽지 않은 일반대중의 진보적인 이념을 강남좌파라는, 또는 엘리트주의의 충돌이라는 용어에 매몰시키면서 이 땅의 모든 것을 보수, 우경화 시키는 것은 아닐지 조금은 우려되기도 한다. 나는 감히 좌파라고 주장은 하지 못하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는 것이 좌파의 생각이라면 기꺼이 좌파가 될 것이다. 이 땅에 사는 그러한 좌파들은 강남좌파가 아니라는데 안도감을 느낀다. 이 책을 읽고서 느낀 나만의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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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좌파란 용어가 퍽 와 닿진 않지만, 강준만이 제기한 엘리트주의에 대한 관심과 2012년 대선을 미리 볼 수 있다는 호기심에 이 책을 펼쳤다. 대학시절 운동권 분위기(NL, PD와 같은 진짜 분위기만)를 맛봤던 끝세대라 이념 논쟁에 대한 진부한 논의는 더 이상 귀 닫고 사는 요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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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에 따르면 ‘강남좌파’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6년 이해찬 총리 3.1절 골프파동 직후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에서라고 한다. 서민을 대표한다는 노무현 정권의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대놓고 골프 같은 귀족스포츠를 즐기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비꼬면서 만들어낸 용어이다.
강준만은 노 정권이 자기편 인사를 대거 기용한 것을 두고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승자 독식주의’라고 지적했는데, 개혁을 바랐으나 인재는 부족했던 노 정권으로서는 열린우리당으로 모여든 소위 ‘70%의 기회주의자들’까지도 아우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견고한 보수 정치판을 개혁하는 데 수반되는 기회비용이 아니었을까? 문재인의 <운명> 서평에서도 말했지만 노무현은 한국정치에서 참 특이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정치 지형을 개혁하고픈 열망이 컸으나 현실적인 힘은 부족했고 시간도 턱 없이 모자랐다. 때문에 승자 독식주의의 오명을 얻으면서까지 판도를 바꾸려고 무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건 실패가 예정된 싸움이었다. 노무현 자신이 그런 속성을 지녔건, 그의 최측근 세력이 그런 속성을 지녔건, 그가 세를 불리기 위해 감싸안은 주변인사들이 그런 속성을 지녔건 간에 노무현 정권은 강남좌파적이었고, 그로 인해 서민들의 지지를 잃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었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계획을 철회함으로써 노 정권의 강남좌파적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서민들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실시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서 노무현 정권의 공직자들의 재산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비판은 더욱 고조되었다. 5년간 주변세력을 공고히 할 것인가, 대중의 지지를 공고히 할 것인가? 노무현은 전자에 더 집중했고 이는 후자의 실패로 연결되었다. 결국 그것은 정권의 몰락을 의미했다. 다른 한편으로 노정권의 인사가 ‘영남 민주화 세력의 한’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측면도 있다는 주장을 강준만은 지지한다.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이 대권을 두고 다툰 이후 민주화세력=호남세력이 되어 버렸고, 영남 지역의 민주화세력은 (마치 예수처럼?) 고향에서마저 환영받지 못했다. 1990년 김영삼마저 3당합당으로 반민주화 대열로 돌아섬으로써 영남 민주화세력의 한은 증폭되었다. 노정권 내 소수파는 이런 한을 푸는 데 지나치게 집중했다는 것이다. 노무현이 집권 후반기에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한 것도 이러한 한의 연장선 상에서, 즉 영남 민주화세력이 입지를 공고히 하려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주었건만 그 이후 총선, 재선에서 계속 한나라당만 뽑아주는 지역민들을 보며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노무현에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야 어찌 되었건, 보수언론이 처음에 비꼬는 말투로 노정권을 ‘강남좌파’라고 지칭한 이후 이 용어는 다소 의미가 넓어지고 긍정적인 뉘앙스마저 더해졌다. 서울대 조국 교수가 강남좌파로 불리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을 때는 이미 강남좌파에 대한 부정적 의미는 많이 탈색된 뒤였다. 강남좌파 현상은 한국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강준만은 마지막 챕터에서 한국의 학벌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강남좌파 현상을 엘리트주의와 연결시켜서 바라본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심지어 민노당마저) 정치권 지도부는 일류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학력사회인 한국에서 고학벌은 강남적 삶을 보장한다. 고학벌 강남 보수주의 정치인들에게 고학벌 강남 진보주의자들을 ‘강남좌파’로 비하하기란 무척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강남좌파란 결국 엘리트들끼리 밥그릇 싸움 하면서 나온 시기 섞인 표현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강남좌파라는 용어나 강남좌파 현상를 통해서 주목해야 할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가 고학벌 엘리트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지들끼리 다 해먹으면 별문제가 없을 텐데 노무현 정권 때부터 주머니에 넣은 송곳처럼 삐져나오는 세력들 때문에 보수 엘리트는 심기가 불편했을 법도 하다. 그렇다면 강남좌파 현상은 한국사회 정치엘리트 내에 나타난 조그만 일렁임인가? 그저 그뿐인가? 강준만의 시각은 여기에서 멈춘다. 강준만은 신문방송학 전공자답게 글은 잘 쓴다. 말도 그럴듯하고 글 속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반영한다. 그러나 글의 화려함에 비해 깊이는 떨어지는 것 같다. 뭔가 그럴 듯한 주장을 하기는 하지만 확실한 논거는 없다. 최근에 벌어진 사건들에 대한 사설들을 조목조목 비판하지만 거시적, 역사적 안목에서 종합적인 분석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게 신문방송학이라는 학문적 특성인지 한계인지는 모르겠다. 이 책은 마치 긴 신문사설 같다. 신문사설은 짧은 지면에 할말을 다 담아야 하기 때문에 주장과 논거가 매우 압축적이다. 사설에서는 특히 깊이 있는 논거를 제시할 공간이 부족하다. 이 책은 지면을 400쪽 넘게 늘렸음에도 여전히 사설 같다. 그렇지만 이 책은 게으른 독자들에게 고마운 책이다. 강준만은 최근에 실렸던 여러 신문의 사설들을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인용하고 쭉 연결해 놓았다. 책 참 쉽게 만들었다는 느낌도 든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이 책만 읽으면 그 많은 사설들을 다 섭렵한 셈이 된다. 물론 강준만의 시각에서. 주제와 관련된 사설들을 찾아서 붙여놓고 중간중간 해설을 달아 준 정성도 물론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 책의 많은 챕터들은 강남좌파 논쟁과는 직접적 상관이 없다. 몇 챕터를 제외하면 강준만이 계속 해오던 인물비평, 시사평론과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 오히려 ‘강남좌파’라는 이 책의 제목보다는 부제인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가 제목으로 적합하다. 글은 술술 잘 썼는데 어법에 안 맞는 표현이 자꾸 거슬렸다. 강준만이 사실 확인에 그친 ‘강남좌파’ 현상을 좀더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안목에서 분석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강남좌파’ (혹은 다른 무엇으로 부르건)는 하나의 필연적인 시대현상인 듯하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민주화의 세례를 받은 세대들(80년대에 30대였건 그즈음에 태어났건 간에)이 보수로 점철된 기존의 정치판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기성정치세대와 스스로를 차별화하면서 사회적 현상으로 부각된 것이 아닐까? 한국의 정치는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를 거치면서 보수주의적 구세대와 민주화 이후를 대변하는 신세대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여전히 구세대의 수중에 있었고 영남당과 호남당의 대립구도 속에 세대간 차이는 다소 희석되어 왔다. 어쨌건 기존 정치판도를 수용해야 정치판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므로. 그러다가 결국은 구세대와 다른 신세대의 가치가 점차 수면 위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구세대는 그것을 좌파라고 (잘못) 부르고, 심지어 강남좌파라는 악의 섞인 비아냥까지 한다. 구세대가 구축한 물질을 누리고 살면서 구세대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우습다는 것이다. 강준만은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라고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한다. 모든 정치인이 강남적 삶을 사는 것이야 당연하고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겉으로는 서민을 위하는 정책에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이다. 내가 위에서 지칭한 신세대를 위해서는 강남좌파 말고 다른 용어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말하려는 건 한국 근대사가 짜놓은 정치틀, 가치관, 의제, 정당체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다. 그 중 엘리트에 돈도 많고 기존의 정치판에 이미 포섭된 사람은 이 책에서 보는 전형적인 강남좌파의 범주에 들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치적 허무주의자나 반정치주의자 등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강남좌파’라는 용어가 보수세력에서 먼저 나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보수세력이 그들이 ‘강남좌파’라고 부른 어떤 세력의 존재로부터 위협을 느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세력’이란 전통적인 보수주의 제도권 정치의 아성에 끼어든 이질적인 존재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한국정치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남좌파 현상은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견고한 한국정치의 틀에서 움트는 세대변화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강남좌파’라는 비아냥은 사회에 비해 그 변화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리라. 새로운 가치관과 정치의식을 가진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 영향을 받은 자들이 (혹은 그 세대들 자신이) 정치권에서 구세대와 다른 가치를 표방하고 나서는 것은 일단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문제는 그들의 표방가치를 현실적 힘으로 강제할 추진력이다. 기존 정치판도가 혁명적으로 변할 수 없는 한, 그 힘은 진짜 좌파세력이나 민중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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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강준만 저 <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를 읽고 / 2011. 07., 432쪽, 인물과사상사
'이념은 좌파적이나, 생활은 강남 사람 같다'는 모순적인 뜻을 지닌 '강남 좌파'. 이 표현은 2006년 3월 동아일보 칼럼에서 처음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강남 좌파'에 대한 시선은 사회갈등 완충과 상류층의 위선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강남 좌파'의 실체가 있을까? '강남 좌파'는 그저 정치 경쟁을 위한 맥거핀(트릭, 꼼수)에 불과한 것인가?
강준만 교수의 이 책을 읽고나면 정답을 알 수 있다. 굳이 정답이 아니라 하더라도 각자가 자신의 정답을 찾거나 저자의 주장을 토대로 자신만의 정답 노트를 마련할 수 있다. '강남 좌파' 논쟁의 배경과 내막, 그리고 한국정치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강 교수는 '강남 좌파' 현상의 실체와 논란을 새롭게 진단한다. '강남 좌파'라는 용어는 참여정부 집권 후 보수진영이 운동권 출신 486세대 진보인사들을 꼬집어 쓰던 용어다. 정치적 이념적으로는 좌파지만 행동은 '강남 주민스럽다'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당시 분명 보수진영이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려는 혐의가 읽히지만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아무튼 처음 강남 좌파 논쟁이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강남 좌파론'은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03년 이후 '강남 좌파' 현상의 논쟁과 과정을 분석하면서 주요 정치인들에 대해 비평한다. 2007년 오마이뉴스의 문국현이라는 강남 좌파 띄우기, 2010년 조국-오연호의 <진보 집권 플랜>을 통한 2차 강남 좌파 띄우기, 강남 좌파 현상에 대한 반동의 관점에서 박근혜 인기의 비결, 분당 우파에 대한 반동으로서 분당 보궐선거와 손학규의 재기라는 관점으로 자신의 주장을 끌어간다. 이어서 노무현 정신에서 일탈한 국민참여당의 유시민과 성찰 없는 반이명박 전선으로 끌려나온 '분노하는' 문재인, 강남 우파 오세훈의 강남 좌파적 언어에 대해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은 입시전쟁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강남 좌파' 논쟁을 둘러싼 정치 엘리트들의 밥그릇 싸움과 정치권의 진영논리 및 증오 마케팅을 비판하고 진정한 소통과 화합을 주문한다.
먼저 '강남 좌파' 논쟁에서 흔히 놓치거나 순진하게 혼동하는 생각이 있다. 첫째, 이 논쟁에서 '강남'의 의미는 강남 지역에 거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강남스럽다'라는 비유나 상징이다. 어디에 살건 소득수준과 생활방식에 따라 강남 좌파일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나 의견은 진보적인데 소득수준, 특히 생활방식이 '강남'스러운 것을 '위선'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치인이나 유명인과 일반인까지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둘째, '좌파'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다. '좌파'를 학문적, 이념적으로 세분하여 규정짓거나 구분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언론이나 유권자들이 통상 말할 때 사용하는 '한국 정치의 이념 지형도'일 뿐이다. 실제 많은 여론조사의 경우 조사 항목에 '당신은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는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이에 대해 발끈하는 '진짜 좌파'나 '순수 진보'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좌파'든, '진보'든 어느 누가 그런 단어를 처음부터 '소유'하거나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유감일 뿐이다. 저자 말대로 "생각하기에 따라서 좌파라는 단어의 일상적 생활화가 오히려 그런 낙인찍기를 무력화하는 방법"일 수 있다. 조국 교수는 "우리 사회가 좋아지려면 강남 좌파가 많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저자는 '강남 좌파'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고 전 세계적인 동시대적 현상으로서 모든 정치인이 '강남 좌파'일 수밖에 없는 논리와 근거를 제시한다. 그의 논리는 "좌우를 막론하고 리더쉽을 행사하는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학력, 학벌에서부터 생활수준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하므로,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좌파는 강남 좌파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우파라도 유권자의 대다수인 서민을 상대로 포퓰리즘 자세를 취하는 '정치의 문법'을 사용하는 바, 우파 정치인에게도 강남 좌파 요소가 농후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한국의) 정치인은 강남 좌파'라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인들의 경력과 직업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전현직 국회의원과 청와대 및 정부 고위 관료 등을 조사한 통계들을 보면 정치인이나 관료 이전의 직업의 거의 대부분이 변호사나 언론인, 교수, 기업인, 공무원 출신이고 학력 및 학벌 역시 SKY 출신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동자, 농민, 중소 상공인, 직장 여성, 주부, 중하위 공무원 등은 몇 명에 불과하고, 저학력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강남 좌파'에 대한 강 교수의 분석에서 인상 깊은 점 몇 가지가 있다. '강남 좌파'가 왜 노무현 정권에서부터 부각되어 몇 년 전부터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가와 '강남 좌파' 논쟁의 이면에 숨어 있는 엘리트주의. 그리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살 이후 나타난 대규모 추모 물결을 '우리 안의 노무현의 총궐기'로 분석한 것과 박근혜의 인기 비결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공통적인 강남 좌파 현상에 대한 반감과 반동으로 파악하는 과점이다. 보통 사람들이 '강남 좌파' 논쟁에서 놓치는 부분이다.
그는 '강남 좌파' 논쟁이 노무현 정권 때부터 부각된 이유를 '민주화'라고 이야기한다. 김대중 정권을 거치면서 형식적인 민주화가 완료되었고, 연이은 민주정권의 집권으로 절박한 이슈가 사라지면서 정치 엘리트에 대한 시각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촌놈'과 '상고 출신 변호사', 그리고 '돼지 저금통'으로로 당선되었던 노무현 정권은 '골프 치는 노무현'과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으로 이미지가 구겨지기 시작했다. '강남 좌파' 비난의 직접적인 계기는 이해찬의 골프 파동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남상국 사장 자살 사건, 노건평씨의 세종증권 인수 알선수재 구속,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거부,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결과,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의 치부, 낙하산 인사, 청맥회 논란, 삼성과의 밀월 등 구조적인 문제는 정권 내내 이어졌다.
'맺는 말'에서 저자는 강남 좌파 논쟁의 성격을 '밥그릇 싸움'으로 비판한다. "강남 좌파로 불리게끔 만든 좌파 담론 또는 제스처가 정치 엘리트들의 '밥그릇 싸움'을 무슨 심각한 이념 투쟁인 양 포장하는 효과를 내고 있지 않느냐. ... 정치가 출세, 입신양명, 인정 욕구 충족의 도구로 기능하는 사회에서 엘리트는 모두 '강남파'일 수 밖에 없다. 강남 좌파에서 '좌파'는 부차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이 아닏. 제한된 정치적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승자 독식 상황에서 이념과 노선은 국리민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경쟁 세력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한 정략적 도구의 성격이 강해진다."
그리고 한국 정치 문제의 핵심은 '이념의 틀'이라기보다는 진영 논리와 증오 마케팅, 그리고 '인물 중심주의'임을 지적한다. "'이념의 틀'은 인물 중심주의에 따라붙는 부수적인 것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강남 좌파와 막걸리 우파들이 더 많이 늘어나게 하는 것이 나리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를 규합하고 상대편을 대하는지 집단적으로 성찰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강 교수의 결론은 못내 아쉽다. 그는 소통과 화합을 위해서 승자 독식이 가능한 구조를 바꾸어 '정치 과잉'을 줄이는 것과 인물 중심의 참여에서 목적 중심으로 참여로 바꾸자는 것, 그리고 권력 중심적인 '인정 투쟁' 문화, 입신양명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더욱이 아쉬운 점은 그가 '강남 좌파' 논쟁의 핵심을 '엘리트주의'로 분석하면서 '강남 좌파'로 지칭되는 개인이나 세력에 대한 비판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평소 지론대로 학력, 학벌주의에 대한 대안은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정치가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조적, 제도적인 방향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의 대표 이지문씨의 서평이 공감이 된다. 이지문씨는 강준만 교수의 분석이나 비판에 일면 공감하면서도 한국정치의 엘리트주의를 유도하는 선거제도, 즉 '강남 좌파'만이 가능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추첨제 민주주의' 등 '평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http://blog.daum.net/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강남 좌파’인가, 이들이 좌파인지, 그렇지 않은지와 같은 지엽적 논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특히 하위계층들을 포괄할 수 있는 진정한 대표 체계를 우리 정치 현실에서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보다 건설적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과거 독재권력 하에서 배제된 속칭 ‘민주화 세력’이 ‘강남 좌파’로 탈바꿈하여 기존 보수 엘리트들과 경쟁하는 장에 우리 국민이 단지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가 제시한 것처럼 독재 하에서 억압받고 배제된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하위주체들이 제도정치의 장에 진입함으로써 정치의 성격과 경계 자체가 변화하고 민주주의가 갖는 내용과 경계가 변화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 현실이 갈수록 ‘강남 좌파’만이 좌파를 대표하는 괴리가 심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보다 진지한 대안에 대한 탐색이 요청되어야 한다. 그 대안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정치인이 강남 좌파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선거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거 자체가 ‘강남 좌파’로 상징되는 상위계층에 절대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출마하여 대표가 될 수 있는 이들은 선거에서 절대 유리한 재정적 여유를 바탕으로 지역 조직 활동에 열심이거나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유명 인사이거나, 또는 정당 관료나 활동가가 아니면 정당 보스와의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을 때 가능할 뿐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선거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시민들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천을 받아 출마하여 공식 선거운동기간 동안 지출하는 금액보다는 최근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돈’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정치 신인일수록 현역의원에게 맞서 사조직 가동비가 엄청나게 들어가며, 이름 알리기 차원에서 여론조사 명목으로도 막대한 돈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당내 경선 여론조사와 경선대회 개최 등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참여하는 예비후보자들이 일정금액을 기탁금 형식으로 정당에 납입해야 하기 때문에 본 선거 이전에 돈이 없는 ‘좌파’들은, 아니 ‘우파’ 역시 마찬가지로 출마를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대표는 일반 시민들과 다른 재력 있거나 전국적 인지도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는 보다 높은 사회계층의 구성원으로 국한되고 있다. 이러한 선거 현실에서는 결국 좌파 중에서도 ‘강남 좌파’ 위주로 대표가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강남 좌파’에 대한 논쟁이 보다 생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강남 좌파 위주로 정치적 대표자로 충원되는 선거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 민주화에 대한 보다 진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법 민주화 차원에서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시행하고 기소배심을 논의하는 정치권이라면 정치 민주화 차원에서도 일반 국민들이,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실제 정치의 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실질적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 추첨을 통한 시민의회 창출이나 양원제 도입시 한 원을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충원하는 것과 같은 보다 ‘평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한 논의가 요청된다."
[ 2013년 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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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가 뜨겁다. 보수와 비슷한 생활을 하면서 의식은 진보적인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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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준만 이 단어가 뜨기가 무섭게 책이 나왔다. <강남좌파> 책 제목은 매우 시의적절한 듯 싶다. 2006년, 강남좌파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낸 강준만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본격적 분석을 시도한다. 강준만 교수의 여느 책들과 비슷하게 수많은 책, 기사, 인터뷰, 등을 인용하며 ‘강남좌파’ 단어를 정의하고 현상을 설명한다. 강준만 교수는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다’라는 명제로 시작한다. 한국의 정치인은 대부분 고학력자이기에 교육적.문화적 자본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정치인이기에 중산층.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민주화 이후에 나타난 한국 정치 발전사와 지형도에 대한 분석이라고 볼 수 있다. 부제가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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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지적 대단하고 섬세하기까지하다. 나돠 장준하선생부터 노무현,김대중자서전까지 나름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이 글을 읽으니 내가 읽고느낀건 참 작구나 생각한다.- 문명의 충동,칼레파타칼라,웅진지식하우스의 빅맨-추천도서 특별히 지적할게 없다. 나름 결론을 내리자면 계층이동사다리를 많이 확대하자가 요지아닐까 하지만 남이 내 자리를 차지하면 내가 누리는 혜택은 더 적어지니까 사다리 확대를 얼만큼하냐가 문제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정치는 앞만보는것 같다 예로 양녕대군숭례문현판이 있다 나름 3가지로 요약해본다. 1, 나눔 옛말에 이르길 부자3대 거지3대 없다고 사극에서나 나오는 우리조상이 쓰던 말이고 영감님, 아가씨, 여사 같은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듣는다.
의 전유물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부자가 되길 꿈꾸고 귀족이 되길 원한다. 백성도 풀이하면 백가지성이란 뜻으로 귀족의 상징물이다 서민여성의 호칭은 소사, 사대부여인의 호칭은 씨, 영부인의 호칭은 여사이다.
호칭을 잊지 않고 쓰는걸 들은 기억이 난다. 아가씨나 영감님도 같은 맥락이겠지
골목길 사람들이다. 도 있지만 중요한건 내가 그집을 워낙에 많이 다니고 귀동냥하는게 많아 대충만봐도 그 집이 어느 정도 사는지는 어림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학부모는 진심으로 대하는 반면 어느 부모는 특별히 내세울것도 없는 평범한 가정인데도 유치원운전기사가 별 것 있겠어라며 의도적으로 내리까 는 사람들을 종종본다. 돈은 없지만 이들 역시 특권의식이 있는 귀족이다. 튼튼하고하면서 도착할 때까지 마냥 건강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걸 들었다..
에 건강만 보이면 건강만이 다인것으로 생각하듯 내면의힘, 지혜, 경험등 다양한 재산이 있음에도 돈만을 가진 것이 전부로 보는 풍조가 이런쪽에서 와전된걸까
모습을 본다. 누가 그런 사람을 간절히 부러워할 수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봐도 괜찮을 대목이다.
후손이었다고 학교교육의 문제는 인성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났기에 선생의 권위가 추락하고 온갖사회 문제가 생기는거다.
사상의 결말은 비슷한 점도 있으니까
이다. 풍속이 바뀐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순간 모두 사장되고 어디에선가 이식되어온 프로레타리아 사상이 그 자리를 메꿨을까 사상의 현주소가 이럴진대 다른 고유문화는 오죽이 설 자리가 없어졌을까 아주머니에게서든 가끔 듣는 말이 절대 통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내가 가진 것은 절대 나누어줄 수 없다고 얼마나 잘살길래 만일 우리의 국민소득이 20배로 오르 고 전라도와 제주도로 국토가 좁아졌다면 우린 행복할까. 내가 일하는 상가가 있었다.
쥐가 나온다 했을까 자신이 가진게 얼마나된다고 또 절대통일이 되어선 안된다는 사람들은 30평대 아파트주민들에게 그런 안좋은 소리를 듣는 20평대 사람들이다. 내 부를 조금이라도 나누어주는 일은 절대없다며 국토와 자원 노동력 그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얻는 역사적 정통성인가 지금 내가 보기엔 전자가 아닌 후자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100채를 가진 사람은 100위안에 도 못든다 몇채 가지건 상관없다 이들이 한사람당 한채씩만이라도 통일후 절망하는 북한주민들이나 탈북자들을 위해 희사한다면 어떤 성취감이 그들을 찾아갈까 그걸 바보 같은 짓이라고 욕하는분이 계시다면 한번 상상해보라 내가 가지고 있는 1000채나 100채가 50 년후 100년후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고 유지되고 있을까 유지할 수 있을까다 내가 보기엔 학교의 인성교육이 절대적이다. 자신의 앞에 떡이 있을때 옆에서 그 떡에 손을 대려는 손들을 물리치고 자신이 그 떡을 차지하는 방법 만을 가르치는 현행교육시스템이 아닌 그 떡을 차지하려는 싸움을 한 발짝 물러서서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게 나는 최선이라고 확신한다. 그럼 자신을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안목도 저절로 길러질테니 그렇게 선순환교육이 정착된다면 땅에 떨어진 선생님의 권위도 차차 회복될 것이고 부모세대가 이룩한 부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를수 있지 않을까
5명만 어중간히 알뿐이다. 고교친구둘 대학친구2 군대동기 하나 모두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고 시국이 어떻다 역사가 어떻다 이야기를 잘한다. 하지만 내 눈에 말과 행동이 같은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말아야하는데 자신도 똑같이 행동하면서 남을 욕하는 사람이 더 나쁘다는 얘기다.
보수신문들의 혹평에 그들 스스로 힘을 실어주고있다. 강남좌파로 다시 속물로 다시 그들이 손가락질 하는 특권의식층으로 복귀하는건 아닌지
잘살까로 고민하며 서로 싸웠다. 지금21C 현시점에서 그들의 직계후손중 그들이 축적한 재산의10원어치만이라도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집나간 치매 노인을 찾는다는 광고지다 대충보니 30-40명 정도의 얼굴이 들어있고 60대초반부터 80대까지의 노인들이었다. 만일 30년전 이들이 멀쩡했을때 이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와 그들의 얼굴이 담긴 전단지를 보았다면 그들의 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까지 신구가 잘 조화된 풍요로운 곳이지만 그만큼 공간을 구하기가 어려워 어린이 놀이터는 전무한 상태이다. 학교운동장도 좋지만 어느 정도 놀이터란 명분이 될 만한 곳이 있어야되는데 그런 곳이 아파트 놀이터뿐이다.
어느날 저층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로이로제 상태처럼 흥분하셔서 자전거 타는 아이들중 다른 곳에서 온 아이에게 니네동네가서 놀라고 심하게 면박을 주어 쫓아보내고 조금 성가셔 보이는 아이들 혼내시다 고층 사는 젊은 아주머니와 싸우는 광경도 봤다. 허구헌날 창 밖에서 아이들이 뛰노니 짜증도 나겠고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내가 그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조금은 이기적으로 생각해본다. 않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 할머니의 화는 내가 보기엔 아이들이 떠드는 시간대만을 집중적으로 생각하며 떠드는 통에 쉴시간이 전혀없다는데서 오는 강박관념의 문제로 들렸고 아파트입구에 저층노인 몇 분이 협의하여 '외부인 출입금지'란 푯말을 써붙였을때 나는 재벌개혁을 떠올렸다.
나누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고 해 욕을 먹으며 재벌개혁이란 말이 나오게 만든다. 내가 가진게 조금이라도 있고 그것을 나누어 줄 때 사람사는 맛이나는게 아닐까 다른 주민들에 비해 놀이터 하나를 더 가졌다고 텃새를 부리는 일부 사람들과 재벌이 무어가 다른가 남들은 아파트 1000채, 100채를 가지고 부동산시장을 교란시키지만 나는 내가 벌어 2채 3채밖에 없다 외치는 사람들 저들도 처음엔 두채 세채부터 시작했고 우리아버지도 누나도 그런 시간여행을 하고있을 때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누굴 탓하겠는가 우리집앞에 주차공간이 하나 있다치자 거기는 우리차가 주차할 공간이다.
빌라도 아파트도 비슷하겠지. 어디는 경비아저씨가 지키니 집을 떠난 내 차를 주차시키는데 상당한 애로를 겪는것은 당연하다.
가진게 초콜릿 하나 밖에 없더라도 우리 나누며 살자. 2,관용
3, 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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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권 안팎에서는 ‘강남좌파’라는 신조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생소한 단어가 주는 느낌은 뭔가 어색하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강남’과 약자와 사회개혁의 상징인 ‘좌파’라는 개념을 결합해 놓았으니 생뚱맞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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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자 강준만이 누군지 난 잘 모른다. 신문에서 정치면은 내가 아예 처다보지도 않는 그런 분야라서, 난 그저 오피니언과 사설을 제외하면 정치관련 이슈나 정치인 인터뷰는 읽지 않았다. 그래도 사설을 읽으면 요즘 정치가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수 있으니까 별로 사는데 불편하지도 않았고, 사실 정치인들에 신물이나서 누가 정치인이 되건 똑같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가 우연이 읽게된 강남좌파...책 제목이 주는 흡인력도 좋지만, 저자의 문장도 대단한 몰입도를 준다.
사실 이 책이 우리시대 정치인들 대부분이 강남 좌파라는 논리로 글을 써나가고 있지만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것은, 내년 대선에서 거론되는 인물들이 지나온 행적과 언행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비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조국 교수가 개그맨이랑 헷갈려던 수준이기에 더욱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에 등장하는 정치인을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런데 그 비판의 관점이 나의 생각과 맞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내 견해란 것이 다분히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이라면, 저자의 비판은 좀 더 구체적고고 논리적이라 내 생각을 다듬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내년 대선에 거론되는 인물들을 총망라하고 있는 만큼 유권자라면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것 같은 내용으로 가득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앙하고 따르는 분들이 본다면 책을 집어던지거나 불태워 버릴지도 모르지만 저자의 논평에서 자유로울 정치인이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참고 읽어나간다면 정치에 대한 새로운 안목 그것도 아니면 신문을 읽는 재미라도 더 해 줄수 있을 것 같다. 거기다가 술안주삼아 정치인을 씹어댈 때 인용하면 좋을 만한 내용도 많으니 좀 잘난척도 할 수 있을 듯
추신 이 책을 읽고나서의 부작용 : 아침마다 신문의 정치면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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