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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겁이 참 많다. 어둠도 무섭고, 물도 무섭고, 차도 무섭고, 높은 곳도 무섭다. 좁은 공간도 무섭고, 심지어 요즈음은 사람도 무섭다. 점점 겁이 많아지는 건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님 세상이 무섭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된 나이 때문일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상이 무서워지기에 뭔가를 시작하는 것도, 확장하는 것도 쉽지 않음을. 나보다도 내 주변을 생각하게 되는 소심한 내가 되어 가고 있음을. 20대엔 그게 무엇이든 이길 수 있고,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자연 재해 앞에도, 다양한 기회와 절망 그리고 슬픔과 기쁨들. 어느 것 하나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때론 내려놓고 기다려야 할 때가 더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나는 죽을 만큼 절망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는 것. 하지만 언젠가는 꼭 있을 것이다. 내 부모님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실 수 없을 테니까. 또한 죽음엔 순서가 없다고 말하니까.
동일본 대지진 후 4년이 지난 후쿠시마. 이곳은 출입 금지 지역의 바다다. 달밤. 어둠을 틈타 금기의 바다에 작은 보트가 떠오르고 그곳에 한 다이버가 잠수한다. 바다 속에는 쓰레기로 변했지만 한때는 누군가의 생활이었던 물건들이 가라 앉아 있다. 다이버는 유족의 비밀스러운 의뢰를 받아 그들의 소중한 사람과 관계가 있던 물건을 건져 올린다. 다이버 세나 슈사쿠는 4년 전 그날. 허리를 다쳐 집에 있다 살아남았다. 부모님과 형은 자신을 대신해 배를 타러 갔다 쓰나미에 휩쓸려 죽었다. 아내와 두 아이는 무사했지만 슈사쿠는 그날 일을 자책한다. 원래 어부였던 슈사쿠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 친구가 운영하는 다이빙 스쿨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자신은 왜 살아남았고 가족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이런 슈사쿠에게 그날 아내와 딸을 잃은 공무원 다마이 준이치는 의뢰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물건은 인양하지 말 것.’, ‘다이버인 슈사쿠와 의뢰자 그룹 대표 다마이외에는 개인적 접촉을 금할 것.’ 이런 조건으로 슈사쿠는 유족의 물건을 인양하고 바다 속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고 유족들은 그걸 본다.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인정해야 하는 유족들. 결코 살아 돌아오지 못한 다는 걸 알면서도 희망의 끊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내 소중한 가족들의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도 그걸 보면 또 눈물이 흐르는데....
그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그리고 왜 그들이 죽고 내가 살아남았을까? 그런 삶과 죽음은 누가 선택했을까? 이런 의문이 슈사쿠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런 슈사쿠에게 한 여자가 나타나 바다에 휩쓸린 남편의 소중한 물건인 반지를 찾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그녀는 왜 그 물건을 찾지 말아 달라고 하는지... 예전엔 몰랐지만 요즈음은 한치 앞도 모를 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전에 다른 책을 통해서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아프다가 죽는 게 나을까 아님 작별인사 없이 갑작스럽게 죽는 게 나을까 하는.. 슈사쿠에게 나타난 여자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작별인사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 반지를 찾게 되면 남편의 죽음을 인정해야 하는 거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을 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시작했는데 쓰나미가 덮쳐 내 사랑하는 가족을 쓸어가 버렸다. 평화로웠던 일상은 한 순간 깨져버렸고, 모든 생각은 그 시간에 정지 된 채 왜 그랬을까를 곱씹는다. 누군가는 왜 내가 아니었을까를 고민하고 아파하지만, 누군가는 그게 내가 아니어서 내 아이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를 말한다. 삶과 죽음은 늘 그런 양면의 감정이 있다. 누군가는 그로 인해 슬퍼하지만 누군가는 그로 인해 감사하니까.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하지만 난.. 물속에서는 죽고 싶지 않다. 물이 무서운 사람이고 두려운 사람이니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 앞에 화가 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삶이란 무엇이기에 내 마음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놨다 하는지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웃을 수 있었다면 그 자체로 행복 아닐까? 내가 숨 쉬고 내가 바라본 오늘 하루의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싶다.
오랫만에 만난 덴도 아라타의 소설.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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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에서 사건 사고로 사람이 죽고 자연재해로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큰일이 일어난 다음 날은 전날과는 아주 다른 하늘이다. 그런 하늘을 보면 마치 너와 난 아무 상관없어 하는 것 같다. 네가 슬퍼한들 난 내 일을 한다고 자연은 말한다. 사람은 그런 세상을 자연을 원망해도 마음은 괜찮지 않다. 그 다음에 사람은 어떻게 할까. 자신을 탓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죽고 자신은 살았다는 죄책감. 그런 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나을까. 그 아픔 죄책감은 평생 갈 것 같다. 괴로운 일을 겪고도 사람은 살아가기는 한다. 산 사람은 자기 마음과 달리 몸이 살려고 하지 않을까. 가까운 사람이 죽어서 아무리 슬퍼도 사람은 목이 마르고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 무엇인가를 보고 재미있어서 웃기도 하고 철이 바뀌면 저도 모르게 희망을 가질 거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걸 힘들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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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당시 부모와 형을 잃은 세나 슈사쿠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금지된 다이빙을 합니다. 그는 보름달이 뜬 밤,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에 출입이 금지된 바다에 몰래 들어가 대지진 당시 휩쓸려간 소소한 유품들을 건져 올립니다.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고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비밀스런 부탁을 받은 슈사쿠는 어두운 밤바다로 들어갈 때마다 복잡한 심경에 휩싸이곤 합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그에게 있어 다이빙은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또는 슬픔을 씻어내는 슈사쿠만의 엄중한 의식인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남편의 유품을 찾지 말아달라’는 여인이 나타납니다. 슈사쿠는 그녀로 인해 욕망, 갈등, 회한 등 크나큰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 ● ●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벌써 6년 반이 넘게 지났습니다. 그동안 몇몇 일본 소설 속에 그날의 참사의 여파가 조심스럽고 짤막하게 등장하곤 했지만, ‘문나이트 다이버’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긴 하지만, 2011년 3월 11일의 비극, 그리고 그날 이후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성격은 달라도,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 독자 입장에서 이 작품을 읽는 일은 여러 가지로 힘들기도 하고, 과도하게 감정이 이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참사의 흔적들로 가득한 밤의 바다 속을 유영하는 슈사쿠의 모습은 목숨을 걸고 진도 앞바다를 드나들었던 잠수사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문나이트 다이버’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죄책감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슈사쿠는 허리 통증 때문에 대지진 당일 바닷가에 나가지 않아 살아남았지만, 하필 그때 고향에 내려왔던 형이 그를 대신해 쓰나미에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부모와 형의 사체를 직접 확인한 이후 슈사쿠의 삶은 온통 회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삶 자체가 망가지진 않았지만, 더는 웃을 수 없는, 웃어선 안 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슈사쿠의 아내는 그가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신 따위는 없다는 슈사쿠에게 그녀는 신이 있기에 당신이 살아있는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슈사쿠는 다이빙이 거듭될수록 점점 더 삶과 욕망에 집착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아내의 항변에 담긴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때론 이해되기도, 때론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슈사쿠에게 유품 회수를 의뢰한 유족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왜 자신이 아니라 가족과 지인들이 죽었는지, 이렇게 살아남은 것 자체가 죄는 아닌지 적잖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혼란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슈사쿠에게 남편의 유품을 찾지 말아달라는 이상한 부탁을 한 여인은 남편의 친구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은 일 때문에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한편으론,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미련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제대로 정의내리지 못합니다. 이렇듯 덴도 아라타는 살아남은 여러 인물들을 통해 추억, 미련, 이별, 정리, 새 출발 등 삶과 죽음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와 감정들을 담담하게 묘사합니다. 그들 하나하나의 죄책감과 슬픔을 깊고 묵직하게 짚어가면서도 덴도 아라타는 그 감정들의 원천은 죽은 자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 때문이라고, 그러니 힘들어도 조금씩 지금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슈사쿠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태양이 하늘 높이 떠있을 때 잠수하고 싶습니다. 전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이라면 제대로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아마 사람이 웃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 사랑했을 것이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잠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단 하나, 영원히 자신의 추억이 되는 것을 가져오고 싶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은 작가라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은 소재지만, 동시에, 누구도 쉽게 쓸 수 없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다룬 이야기를 다른 작가가 아닌 덴도 아라타의 문장으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불과 두세 작품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내면 깊은 곳을 진정성 있게 그려내는 글 솜씨에 충분히 반했던 바 있고, ‘문나이트 다이버’는 그런 그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매력적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