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우린 우연히 길지 않은 삶에서 얻은 개똥철학들을 논하게 되었다. 꺾어진 오십이라 고민이 많다는 시기, 그것을 차라리 번뇌라 칭하자면서 취기와 치기가 버무려진 술자리 끝에 우리는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세상에 진리는 있다고. 세상에 진리란 없다는 진리, 그 단 한가지 진리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길을 접어들면서 서로 잘 알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수많은 고민들이 있는 듯 했고, 그 고민들이 무엇을 위한 고민인지 알 수 없음에 행선지는 고사하고 출발마저 할 수 없는, 길고 긴 대합실 신세를 지고 있음에 그렇게 술자리는 암울했는지도 모른다. 하나 둘 자신들의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함께 있던 사람들의 빈자리가 하나 둘 늘어만 가고,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 걸어 가는 도중 곁눈질로 바라본 세상이란 것도 암담하기 짝이 없다. 이제 남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하고 평화롭게만 흘러가는데. 그러던 중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우연히 떠나게 된 여행, 우연히 들른 서점, 우연히 눈에 띈 공지영이라는 사람의 소설. 얼마 남지 않은 차 시간에 맞춰 망설임 없이, 솔직히 여행 도중 읽을 것이 필요했을 뿐이니까, 집어든 책. 그 속엔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도 한 두 컷 들어있는 듯 했다. 이야기의 대상은 우리가 아니고, 글이 묘사하는 목적 또한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공감이랄까. 머리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그 상황에 어울리는 그런 소설로 기억되고 있는 책이다. 물론, 해결책 같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고, 또 그럴 수도 없는 거지만, 글이라는 것이 꼭 그런 것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테다. 끝으로 책을 읽다가 너무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이 두 개가 있어 한번 적어보고자 한다; "가난하다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먹고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말하지 않는다면, 영화든 소설이든 철학이든 난 안 믿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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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 공지영의 소설을 읽은 건 우연에 불과했다. 그저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는 제목이 좋아서, 다시 한 번 읽고 싶었다고 해도 좋다. 한데,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보다 더 큰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책 읽기에도 타이밍이 있다고 해야 할까. 적절한 시기에 만난 책이라 그렇지도 모른다. 소설엔 유독 이별이 많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별은 슬픈 일이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영원한 이별은 더욱 그러하다. 상대방의 부재를 인식한 후에야 그 존재의 크기를 알게 되는 어리석음을 경험한다.
특히 좋아하는 단편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를 먼저 읽었다. 주인공 역시 사랑하는 남자와 이별을 했다. 이혼녀인 그녀에게 사랑은 현실이 아닌 이상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남자가 페루로 떠나자 그의 부재를 힘겨워한다. 디자이너로 일하던 회사에서 퇴직하며 돌아오는 길, 그의 환영과 마주한다. 닿을 수 없는 먼 곳 페루에 존재하는 그는 여전하게 그녀 곁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슬픈 거야. 그 부피만큼만의 슬픔을 쏟아내고 나서 비로소 이 세상을 다시 보는 거라구. 너만 슬픈 게 아니라…… 아무도 상대방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그것을 닦아내줄 수는 있어. 우리 생에서 필요한 것은 다만 그 눈물을 서로 닦아줄 사람일 뿐이니까.’ p.159
내 생에 나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누구이며, 나는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일까.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던 한 해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슬픈 거라지만, 모든 존재는 자신의 눈물을 닦아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의 거리』의 첫 문장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까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이 떠나지 않았던 단편 고독은 우울해 하는 친구에게 읽어주고 싶은 단편이다. 실은 내게도 그러하다. 평범한 일상에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잘 묘사한 소설이다.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까지 생각하는 동생, 불안한 시대 가장으로 힘들어하는 남편, 두 명의 아이들을 뒤로 하고 홀연히 떠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주인공. 잠들지 못하고 홀로 깨어 있는 시간, 우리는 누구나 『어두운 상점의 거리』의 첫 문장과 같으리라. 그러나 친구도 나도 주인공도 켤코 떠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소설 속 그녀처럼 고독과 슬픔을 감추고 평범한 일상의 이어갈 것이다.
‘내일도 특별한 날은 아닐 것이다. 그 여자는 아마 자명종도 없이 일곱시쯤이면 잠이 깰 것이고 오늘 먹던 콩나물국을 데워 내일 아침을 준비할 것이다. 남편과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차례로 일어나 회사로 학교로 유치원으로 떠날 것이다.’ p. 101
<조용한 나날>도 <고독>과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과연 우리 생에 조용한 나날은 얼마나 될까. 미칠 듯 사랑했던 시절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듯, 흔들리는 삶을 겪고 난 뒤에 찾아오는 삶이 조용한 나날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했지만 결국 상처만 남게 된 젊은 날을 여유롭게 돌아볼 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되리라. 그건 서글픈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언제나 타오르는 감정만을 갖고 살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자연스레 깨닫는다. 언젠가는 이런 구절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만다. ‘더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p.187
70~80년대를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만이 공감할 수 있는 <광기의 역사>,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는 작가 공지영의 삶을 엿보는 듯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광기의 역사>는 국민학교라 불렸던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 ‘국민교육헌장’을 떠올렸다. 학교는 거대한 권력이었다. 영화감독인 남편을 따라 모스끄바에 도착한 주인공은 소설가로 그곳에서 친구들와 재회를 꿈꾼다. 허나, 현실은 모스끄바의 차가운 풍경과 같았다. 주인공이 느꼈을 허무함도 그랬다. 민주항쟁이나, 광주사태를 대학생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나는 앞선 세대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다만, 소설을 짐작할 뿐이다.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내고 노년의 부부가 떠나는 여행인 <길>은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묻는다. 명성이 자자한 촬영감독인 남편과 수학교사인 아내는 각자의 삶을 살아왔다. 부부라는 이름은 허울뿐이었다. 그러다 떠난 여행에서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앞으로 살아갈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지난 날을 돌아본다.
‘삶이라는 것도 언제나 타동사는 아닐 것이다. 가끔 이렇게 걸음을 멈추고 자동사로 흘러가게도 해주어야 하는 걸 게다. 어쩌면 사랑, 어쩌면 변혁도 그러하겠지. 거리를 두고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아야만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삶이든 사람이든 혹은 변혁이든 한번 시작되어진 것은 가끔 우리를 버려두고 제 길을 홀로 가고 싶어하기도 하니까.’ p.147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생각한다. 또 한 해를 살았다. 내가 감당할 만큼의 슬픔과 상처가 있었던 삶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내가 모르는 기쁨과 감사가 숨겨져 있었던 해 였는지 모른다. 보물찾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걸 찾아내는 일은 누구도 아닌 내 몫이다. |
| 누가 썼는지 표지를 들춰보지 않아도 읽어보면 알수 있습니다. 공지영의 소설이라는것을.. 첫번째 이야기 '광기의 역사'는 내 가슴에 작은 분노를 일으키게 했고 잘못가고 있는 현 교육의 몇가지 문제점을 잘 표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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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s.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나는 종종, 그녀 닮았다는 말을 듣곤 했었는데. 12월이었던가? 소개팅을 했는데, 그분이 다시 그런 말을 해서 생각났었다. 나는 아직 닮은 건가 싶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다가 그녀의 홈피까지 들어가게 됐더랬다. 그녀의 웃는 얼굴은 왜 그렇게 슬퍼 보이는지. 글은, 분위기는 또 왜 그렇게 우울한지. 그런 일이 있고난 후, 나는 가끔 그녀가 잘 지내나 싶어 홈피에 들르곤 했다.(내 앞가림도 잘 못하면서;) 그러던 얼마 전 굉장히 기쁜 일이 있었는데, 그녀의 홈피에서 내가 사랑하는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낙하하는 저녁. 응? 당신도 이 소설 좋아했어? 나도나도.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 거다. 그리고는 그녀와 좀 더 공유하고 싶어서, 그녀가 읽었던 책 중에서 마음에 든 책 하나를 사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이 책. 사실, 공지영을 더 읽을 계획은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읽은,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참 재미없었던 것도 한몫.(이건 사실 츠지히토나리 때문일 수도 있는데. 냉정과 열정사이도 그렇고, 편지도 그렇고, 사랑 후에 오는 것들도 그렇고 어찌 츠지히토나리는 읽는 족족 재미가 없는지. 그러기도 참 힘들 텐데.) 내 삶도 허덕이는데 또, 그녀살림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니 배가 아픈 거 한몫. 암튼 내가 갖고 있는 공지영 중에는 이게 제일 나은 것 같다. 전에는, 공지영은 왜 책 내자마자 항상 불티나게 팔리는 거지?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공지영의 장점은 그거 같다.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법한 감정들과 너무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대중적인 시각으로 이끌어간다는 것. 내 할 이야기를 대신해주니까 후련한 느낌.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느낌. 그래서 공감하는 독자가 많은 걸까? 나름 추측해본다. 예를 들자면 이런 글귀들. 언젠가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간에게 늙음이 맨 마지막에 온다는 것은 얼마나 저주인가, 그 저자는 말했다. 신은 실수를 했다. 기어 다니는 벌레였다가 스스로 자기를 가두어두는 번데기였다가 드디어 천상으로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인간의 절정도 생의 맨 마지막에 와야 한다고. 인간은 푸르른 청춘을 너무 일찍 겪어버린다고. -72,3페이지 여기서 말하는 책제목이 뭘까? 나는 불과 얼마 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아니, 삶은 기억 때문이 아니라 올지 오지 않을지 모르는 미래 때문에 힘겨웠다. -74페이지 오, 끄덕끄덕. 결국 안 되니까 나는 그걸 꿈꾸었던 모양이야 ……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았기 때문에 꿈은 더 절실했던 거야. 막상 그렇게도 살 수 있게 되니까 난 겁이 난 거야…… -82페이지 그 여자는 이제 안다. 오늘의 날씨와 바람의 강도 그리고 통장에 남은 잔고가 같은 음악을 얼마나 다르게 들리게 하는가를. -96페이지. 그리고. 모든 존재는 저마다 슬픈 거야. 그 부피만큼의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 비로소 이 세상을 다시 보는 거라구. 너만 슬픈 게 아니라…… 아무도 상대방의 눈에게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그것을 닦아내줄 수는 있어. 우리 생에서 필요한 것은 다만 그 눈물을 서로 닦아줄 사람일 뿐이니까. 네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해. -159페이지 이런 따뜻한 사람. 이유는 오직 하나, 사랑하고 있으니까 상처 입히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므로, 무엇이 그에게 가장 상처 입힐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순간에 언제나 더 사랑한 사람이 더 많이 드러낸 사람이 더 상처 입는다. -187페이지 얼마 전 왜 더 사랑한 사람이 더 상처 입을까요? 라는 질문에 나는 얼마나 허접한 대답을 내놨던가. 이 글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공지영도, S도, 나도, 눈물흘리지 않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아니, 존재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건가. 그렇다면 기쁨의 눈물만 많이 흘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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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나왔던...
사랑후에 오는 것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정말 공지영의 글이였는지 의아했었다.
나는 공지영의 초기작부터, 이 작품집까지 참 좋아했던것 같다.
특히 이 소설집은 군 전역 바로 전에 읽었던 작품이라서 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겠지만..시간의 흐름 기법인가 하는 것이 적용 되었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라는 단편이 너무 인상적이여서 그렇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 책은 몇년은 고사하고 한 주만 지나도 그 스토리가 잘 기억이 나지않곤 한다. 하지만, 스토리 대신..여운으로 남는다.
아마 이부분은 모든 독서를 좋아하시는 분은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여운이 남았던 공지영의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소설집이였다. 사랑후에 오는 것들은 비록 최악이였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어의 없음에 경악했지만...
한때 공지영의 포스를 공감했던 그 느낌만으로... 남들이 상업적이네 어쩌네 비판을 해도..그녀의 작품을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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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80년대 운동권을 386세대라 부르며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세대였으며 우리나라 민주화의 주역이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구분은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21세기로 접어든 지금에도 분명 운동이라는 것은 존재하고 그 어느 때보다 각 분야에서 다양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땅의 모순을 한탄하며 민중과 끝까지 함께 하겠노라고 동지의 손을 굳게 잡고 그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투사들이 분명 존재한다. 흔히들 그런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 라며...
나는 386과 같은 구분이 오히려 운동의 단절을 가져오고 90년대 이후의 시대를 소비주의 개인주의로 치부해버리면서 운동은 끝났다라는 식의 평가를 가져오게 만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분명 지금 그리고 여기 이땅에는 분명 여러가지 모순이 존재하고 탄압받고 억압받는 민중이 있다. 사람의 머리통이 날라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미군의 사격장 매향리가 있고, 6.25때 미군의 양민학살만행 때문에 55년이라는 세월을 눈물로 보낸 노근리 주민들이 있다.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 민중들은 신음하고 있으며 거기에 반대하는 민중들을 향해 여전히 폭압으로 대응하는 국민의 정부가 아닌 정부가 있다. 과연 운동은 끝났는가?
물론 은희경이라는 작가 역시 지금의 시대를 그런 386의 잣대를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희경의 소설을 추천하는 이유는 내면으로의 침전 그리고 개인으로서 누구나 한번 쯤 가지게 되는 고민을 차근차근 소리없이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그러한 고민들... 운동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의해 개인이 소외되고 지치고 힘들어 도망가 버리고 싶을 때, 혹은 운동의 현장에서 이제 한발짝 비켜나 세상을 관망하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고민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완성되어져야 할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이지요. 혁명이 그렇고 삶이 그렇듯이. 하지만 우리는 끝을 보고 싶어했어요.......그 중간이 존재하고 그 과정도 존재하며 사실은 삶이란 게 바로 그런 과정들일 뿐인데 말이지요." 지금 지치고 힘들어도 우리는 이러한 말에서 희망을 얻는다. 결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고... 그리고 은희경은 지친 사람들에게 "어쩌면 사랑, 어쩌면 변혁도 그러하겠지. 거리를 두고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아야만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라며 조급하게 굴지 말 것을 당부한다. 처음에 운동을 할 때에는 오직 투쟁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조금씩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러한 운동 속에서 지친 사람들 혹은 놓친 사람들 그러한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또한 중요하며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그냥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것이 보인다. 사회적 진실과 정의가 중요한 만큼 사람들의 순수한 감정과 삶의 단편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렇게 조급해 한다면 또 다시 지쳐버릴텐데... 느긋하게 자기 자신을 추스리면서 옆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 길이 우회로인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어차피 사람 살아가는 것이 운동인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운동인가. 바로 사람을 위한 그들의 삶을 위한 운동인 것을... 그들과 함께 즐기면서 가는 것이 결국 운동의 지향점이 아니겠는가. 그래 아직도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은희경의 삶에 대한 고민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계속되어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앞으로도 계속 던져주었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모든 존재는 저마다 슬픈거야. 그 부피만큼의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 비로소 이 세상을 다시 보느 거라구. 너만 슬픈 게 아니라... 아무도 상대방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그것을 닦아줄 수는 있어. 우리 생에서 필요한 것은 다만 그 눈물을 서로 닦아줄 사람일 뿐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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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이름부터 뭔가 있을것 같은 제목. 퇴직과 함께 찾아온 자유. 아둥바둥 살아온 삶. 자신이 메말라 있음을 아는 아이있는 이혼녀가 주인공이다. 어머니와 자식의 실질적인 가장인 여인이 퇴직당하고 막막함이 밀려온다. 서른 세살의 나이. 십년이라는 세월을 의상 디자인에 매달려 오다 무텨진 감각으로 퇴출당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회상. 그리고 현재에 대한 내용. 심리묘사위주의 내용이다.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점점 몽환적 분위기가 강하게 나타나고 점점 어려워진다.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를 비롯해 그녀의 주옥같은 단편들을, 여러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 아니라, 이 한권으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작가 공지영. 80년대를 꿰뚫는 그의 글은 이제 점점 역사를 멀리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당시의 어려운 대학생활을 그렸던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정점으로 그는 주변인들에게로 오고 있는 듯하다. 운동권의 귀퉁이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했던 그에게 이제는 여류작가적 감성을 잘 살릴 수 있는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녀의 글은 패배적이라고까지 할수는 없지만, 미완의 느낌을 갖게끔 한다. 단편에서 볼 수 있는 작품성을 느끼고자 한다면 이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서로를 눈꼽낀 눈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볼 무렵...> - 중년여인의 사실적인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구절 <지구상의 어디엘 간다해도 이제 내 삶은 '노 서비스 에어리어'였다> -- 실직으로 찾아온 자기 존재의 가벼움을 나타내는 구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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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는 1994년부터 1999년에 발표한 7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다. 단연 배경도 90년대다.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는 그런 시대적 배경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 아닌가 싶다. 격동의 80년대를 보낸 이가 살아내야 하는 90년대. 과거의 친구들을 만날 계획을 하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그 시절 사상의 상징이었던 모스끄바에서는 충격적이고 허탈한 일만 경험한다.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말이 통하는 서울로 어서 돌아가고 싶다.
「광기의 역사」는 나, 김윤희의 학창시절을 그리고 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나의 꿈이 사라지고 다시는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어른으로 자란 나의 성장 이야기다. 촌지를 건네는 엄마와 차별하는 선생이 있던 그 시절 부조리한 교육현장. 아무렇게나 폭력을 휘두르는 선생, 믿었던 친구의 거짓말 등 암담하고 거칠었던 학교 이야기. 반 아이들 모두가 거짓의 공모자가 되어 한 아이를 진짜 바보로 만들던 장면이 강하게 남았다. 이런 분개는 「진지한 남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타인에 의해서, 그들이 공모하는 말과 엉터리 단정이 한 인간을 어디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물론 진지하기만 하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는 식의 주인공에게도 화가 났다. 주인공을 죽음에 가까운 지경까지 끌어내리고 마는 지독한 작자들 때문에 자주 잊곤 했지만 분명히. 문체가 재미있었던 소설이다. 부러 했던 말을 반복하며 길게 늘어뜨리는 게 작가만의 어떤 운율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트 있었다.
「고독」엔 혼자 있는 밤이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맨발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여자가 있다. 그 압도적인 감정에 살아있음을 느끼는 여자가. 여자의 삶은 너무도 단조롭다. 그래서 생겨난 고독인가 싶었다. 들여다볼수록 단조롭지 않은 일상의 사건들이 단조로운 척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여자의 욕망이, 내밀한 곳에서 꿈틀대는 욕망이 보인다. 그럼에도 결국은 언제나와 같이 남편을 기다리며 잠이 드는 여자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만큼 되는 내일을 위해서 아프지 않도록 약을 챙겨 먹고 잠이 드는 그 여자를 거대하게 자라난 고독이 단숨에 덮치는 걸 본다. 쓸쓸한 마음으로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를 이어 보자.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의 나는 해고당했다. 이혼녀에 아이가 있고 친정엄마를 모셔야 하는 나는 막막할 따름이다. 나는 소속감을 잃은 채 결코 내 생애의 계획에 끼워주지 않았던 그를 생각한다. 꼭꼭 걸어 잠갔던 마음의 문. 그런 나의 마음 속 서랍이 열렸을 때, 갇혀 있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을 때 책을 읽는 내 입에선 탄성이 터졌다. 「고독」에 삼켜진 여자를 보는 것보다 더 강한 전율이었다. 그리움이 강하게 억눌렸던 만큼 엉망으로 폭발한다.「조용한 나날」은 매우 건조한 소설이었다. 더없이 금실 좋은 부부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전혀 따뜻하지 않게 다가와서 놀랐다. 그만큼 사랑에 대해서 차가운 여자였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사랑하겠다는 여자의 옛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누구보다도 헌신적이고 수줍었던 그 여자의 지난 이야기가.
「길」에서는 노부부가 함께 여행을 떠난다. 결혼 생활 30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고 아내는 이혼을 얘기했다. 졸지에 이혼여행을 떠나게 된 두 사람. 화자인 남편은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몰랐던 아내를 발견하게 된다. 조금 빤하기도 했지만 죽은 아들을 향한 남편의 진심을 이제라도 알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절벽을 타는 남편은 무모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그냥 그렇게 싱겁게 끝났을 것 같다.
그간 읽었던 공지영의 작품이 2000년대 후반 작품이어서 그런지 이번 소설집은 다른 소설가의 글을 읽는 양 낯설었다. 이런 비유는 좀 웃기지만 진화하기 전의 공지영의 글을 읽은 기분이다. 작가의 새로운 문장을 만난 건 기쁨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이 더 재미있었다.
-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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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공지영 작가의 팬 이면서도 정작 작가의 최신작 위주의 책들만 보아왔다. 지금이야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들 하지만, 예전의 꽁지작가는 지금처럼 인정 받지 못했던 터라 그런 선입견이 팬인 나조차도 그녀의 초기 작품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앞서 읽은 상처 입은 영혼에서 조금은 실망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는 작품은 1999년에 초판이 나왔다. 이혼이 많았던(?) 그녀가 몇 번째 이혼을 한 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혼 후 혹은 생각중임을 소설책 이었지만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 중 한 사람은 영화감독이 아니었나 싶었다. 사실인지는 확인해 보아야 알 수 있지만 그만큼 그녀는 소설 이라기 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듯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공지영 작가의 팬이라면 그녀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기를 추천한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감수성을 이 책에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힘들었을 그녀가 소설을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으며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이 책은 단편들로 엮어져 있다) 에서 얘기하듯 글을 쓰면서 오히려 더 외로워 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는 마지막에 해설이 있는데 보통의 해설들이 단점도 부각하지만 장점을 더 앞세워 얘기하는 것과는 달리 조금은 너무한가 싶을 정도로 책에 대한 비판들이 있었다. 이건 내가 팬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어찌 되었든 작가의 후기에서 신랄한 비판을 해준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전한다는 글로 보아 처음 책이 나왔던 당시에도 좋은 얘기보단 나쁜 얘기를 더 많이 들은 것은 아니었을까 싶어 괜시리 화가 나기도 했다. 총 7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간순차적인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주인공들의 등장으로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 같기도 했으며 내가 나이 들어 겪을 수 있는 이야기 일 것 같기도 했으며, 지금 내 이야기 같기도 한 소설 들이었다. 무엇보다 공지영 작가의 팬이라면 읽어보길 강권한다. 책속의 문장들 혁명이 그렇고 삶이 그렇듯이. 하지만 우리는 끝을 보고 싶어했어요.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같은 거라고. 그 중간이 존재하고 그 과정도 존재하며 사실은 삶이란 게 바로 그런 과정들일 뿐인데 말이지요. 삶조차 완성될 수는 없는 건데요. .........맥없이 항복하기 위해서 그렇게 소설을 쓴 건 아니야. . 맥없이 항복해 들어가려고 쓴 게 아니라 외로워서 쓴 거야. . 그래, 외로워서 썼어. 다들 어디 있니? 우리 그땐 이렇게 힘찼잖아, 우린 그때 실망하지만도 슬퍼하지만도 않았잖아, 그런데 다들 어디 있니, 그런 말이 하고 싶어서 쓴 거라구. 그런데 쓰고 나서 난 더 외로워졌어. 사실은 내가 외로워서 그런 소설을 쓴 건데, 쓰고 나니까 정말 외로워진 것 같애. 가만, 내가 하는 소리가 지금 말이 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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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것 고등학교 때였다.단지 문학수업의 숙제를 하기 위했던 책, 그 후 6년이 지나도 생각나는 책이다. 그때는 어려서, 지금도 어리지만.. 이렇게 우울하고 상실된 삶이 과연 있기나 할까? 생각을 했다. 사회에 발을 내딛을 시기인 지금 자꾸이 책이 생각난다. 세상은 명랑만화처럼 즐겁지 않다. 잔인하다 말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가는건 아마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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