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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책꽂이를 뒤적이다 발견한 '우리의 죄는 야옹'이라는 시집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물건 또는 마음)이 시인의 눈을 통과하여 나오는 목소리 또는 말이 시집으로 발화한다. 길상호 시인의 해독되지 않는 낯선 말들이 모여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가만히 조심스럽게 무엇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 나도 고개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해보지만,, 가만히 읊어봐도 소리내지 않고 눈으로 잡으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공기처럼 모양이 없다. 무엇이 나를 이 시에 붙들어 매는가?
-봄비에 젖은-
어여 받아먹어라 봄은 한 방울씩 눈물을 떠먹였지
뜨겁기까지 해서 동백꽃 입술은 쉽게 부르텄지
덥석 입에 물고 방울새도 삐 ! 르르르르르 목젖만 굴려댔지 틈새마다 얼음이 풀린 담장처럼 나는 기우뚱 너에게 기대고 싶어졌지
새로운 언어를 연습한다. 말이 되지 않는 고양이어를 듣고서도 눈치가 빠른 고양이들은 나를 정확하게 이해해준다. 얼토당토않은 말은 적당히 무시하면서 ···· 시가 되지 않는 문장들은 교감으로 당신에게 가닿길 바란다.
2016년 늦가을 길상호 그렇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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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이름이 지금 여기의 사람 같지 않다. 먼 곳에서 날아온 바람 같다.
우울은 전염성이 있다. 의외로 같은 것끼리의 접착이 쉽지 않다.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를 밀어내다가도 어느 순간 몸을 홱 뒤집어 하나가 될 때가 있다. 그렇게 유사한 속성은 못 이긴 듯 강렬하게 밀착되는 순간이 있다. 이 시집이 내게 그랬다. “서늘한 온도의 접착력에 놀라 뒷걸음을 쳤지만 입속의 혀까지 이미 얼어버린 뒤였다(겨울, 거울)” “심장을 헤집고 들어와 / 무표정한 나의 흙빛 얼굴에 / 빗살무늬를 그려대는 당신은 / 비의 손금을 갖고 있다(고인돌)”
학창시절에 나는 단순하고 근본이 착한 사람을 좋아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잘 웃었다. 얼굴에 나의 어둠을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지 않았지만 먹물 같은 우울을 가진 사람인지라 나와 다른 사람이 편했다. 나 한사람으로도 우울은 얼마든지 증식될 수 있으니 그것을 중화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야 나의 우울함이 옅어져 위험수위에 도달하지 않을 테니.
<우리의 죄는 야옹> 앞부분을 읽으며 내가 경계하는 병적인 우울이 내게 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행여 자기파괴와 소멸의 극단 지점에서 조아리는 유서(주문)이지 않을까 조심히 책장을 넘겼다. 계속 등장하는 손금에 시선이 머물렀고, 망가진 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더니 울컥 눈물이 솟았다. “얼음과 물 사이에 / 어제는 없던 울음이 생겨난다(얼음이라는 과목)”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것, 식어버린 것, 포개지다 만 것, 삐걱거리는 것, 거품처럼 꺼져버리는 것들이 가득하다. 잃음과 놓침, 지움과 버려짐, 금과 흉터... 가슴속 깊은 곳에 꼬깃꼬깃 접어둔 슬픔이 고개를 쳐들며 흐느꼈다. 자기도 모르고 있던 아픔이 통각을 일으킨다. “손톱 속에 당신을 묻고 / 나는 다시 나의 손금을 사네(손톱 속의 방)” 무심한 주인을 만나 차마 제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묵은 감정들이 밖으로 뭉쳐 나온다.
지인의 블로그 글을 무심히 읽다가 터져버린 울음 같은 것이 이 시집 곳곳에 내장되어있다. 그것은 너의 과민한 반응이며, 시인의 과잉 정서라며 거리두기를 해보지만 이내 실패한다. 그것은 언젠가 내가 느꼈던 혹은 앞으로 느낄 피해갈 수 없는 슬픔인 것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고 소설 전반을 지배하는 습습함에 그만 옅은 감기에 걸렸었는데, 주섬주섬 감기약을 챙겨 먹어야했던 그때처럼 감기기운이 나를 포위했다. 뿌리칠 수 없는 어떤 알아줌이나 알아버림 같은 게 있었다. “온기도 없는 달이 뜬 밤 / 수천 겹 물결을 열고 아픈 이름들이 기포처럼 떠오르기도 했지만 / 얼굴을 생각해내기도 전에 꺼져버렸다(잠잠)” 그런 것이다, 세월이란.
사십대가 되면 눈물이 메마를 줄 알았는데 웬걸 왈칵 쏟아진다. 멈춤을 지시하지만 눈물샘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얼어있다 터져 나오는 물줄기처럼 주체할 수 없다. 상대를 향한 공감이면 좋겠는데 혹시나 자기연민의 홍수가 아닐지 부끄럽다. 길상호의 시는 그런 면목 없는 나에게 눈물지을 그럴듯한 핑계를 대준다. 나의 청승과 주책맞음을 눈치껏 감싸준다. 혼자 울고 싶은 밤이나 발목이 시큰한 새벽에 펼치면 누구나의 삶이 그러하다며 “자 그럼 오늘도 우울한 시간되세요(고양이와 커피)”라고 “따뜻한 햇살 한 줌” 입속에 넣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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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발바닥은 땅을 딛고 다니는 밤하늘 별자리 같아서, 어느 날 고양이 들녘이 내 가슴에 꾹꾹이를 할 때 우주가 열렸다. 열린 우주에서는 어느 날 고양이 용이가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발가락 하나를 잘라냈을 때 별 하나가 떨어지는 사건도 있었다. 딸기와 포도로 나뉘는 고양이 발바닥의 세계는 우주가 열린 이후로 쭈욱 대전 중인데, 용이와 들녘이가 모두 딸기파인 것은 나와 아내에게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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