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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 이름은 루시 바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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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을 읽고      "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이 이야기만큼은 그리고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작 소설-     전작인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올리브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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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기억 대한 이야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을 읽고 

 


 

"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이 이야기만큼은

그리고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작 소설-

 

 

전작인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올리브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작가는 이 책 『내 이름은 루시바턴』에서는 '루시 바턴'이라는 인물을 화자로 내세워서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이다."(p. 10) 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커서 소설가가 된 화자가 어둠으로 가득했지만, 때론 반짝거리는 순간도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지금 내 인생도 완전히 달라졌기에,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고.하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보도를 걷거나 바람에 휘는 나무 우듬지를 볼 때, 또는 이스트 강 위로 나지막이 걸린 11월의 하늘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이 갑자기 어둠에 대한 앎으로 가득차는 순간들이-예기치 않게- 찾아오기도 한다.

-p. 21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서 되돌아보면서 먼저 화자인 '나'는 꽤 오래 전인 1980년대 중반에 9주 동안 병원에 입원했던 그 때를 회상한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엄마가 찾아와 함께 닷새를 지내게 된다. 엄마와 보내는 5일간, 나는 여느 엄마와 딸처럼 엄마와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 이야기 좀 해줘요. 뭐든요. 캐시 나이슬리에 대해 말해줘요." 라고 화자인 나는 말하자 엄마는 그녀에게 마을 사람들의 일상과 소식을 전해준다. 그동안 연락을 끊고 살 만큼 모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이때만큼은 사이좋은 모녀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안녕 위즐."이라고 으로 부르자, 그녀에 대한 엄마의 애정으로 그녀의 외롭고 쓸쓸했던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

 

"엄마가 이곳에 와서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애칭으로 나를 부르자 내 몸이 따뜻해지면서 액체로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p. 13

 

 

하지만,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가족간의 따뜻한 정을 느끼며 자라지 못했다. 농기계 수리 일을 하는 아빠, 바느질을 하는 엄마, 종종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일 정도로 가난한 가정 형편, 충동적으로 행해지는 아동학대, 고립된 주거 환경 등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너무나 그녀를 힘들게 했고, 무엇 하나 그녀를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했다. 근처에는 이웃도 없고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었다. 신문이나 잡지, 책도 없었다. 그녀는 오빠와 언니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그녀는 엄마와의 추억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랫만에 만난 엄마는 자꾸만 다른 사람들 이야기만 할 뿐 정작, 자신의 딸의 안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는 묻지도 않는다.

 

"내가 원한 건 엄마가 내 삶에 물어봐주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바보같이-정말 바보짓이었다.-나는 불쑥, 내가 단편 두 편을 발표했어요" 하고 말해버렸다. 엄마는 마치 내가 발가락이 더 생겼다고 말한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흘깃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 것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그냥 작은 잡지에 실렸어요." 그래도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p. 68-69

 

 

그녀가 어렸을 때도 그녀의 엄마는 그녀에게 무관심했는데, 단편 소설 2편을 발표했고 잡지에 실렸다고 말하는데도 그녀의 엄마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렇게 딸에게 무관심하고 냉정하게 대하는 엄마가 있을 수 있을까. 냉랭한 모녀 관계를 보면서, 필시 무슨 사연이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 모녀는 서로에 대해 묻지도 않고 남의 이야기나 하면서 어색하고 불편한 만남을 계속하고 있을까? 그녀와 그녀의 엄마 사이에는 오해와 서운함이 존재한다. 

 

"지금 네 인생을 봐. 너는 묵묵히 네 길을 가서....원하는 걸 이뤘잖아."

-p. 80

 

엄마의 대사로 보아, 화자인 나는 가난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여 자수성가한 것처럼 보인다. 단편 소설을 쓰고 그 작품이 잡지에 실렸다는 화자의 말을 통해 그녀는 성공한 소설가이다. 이렇게 그녀는 인생역전, 성공 드라마를 썼지만, 그녀의 오빠와 언니를 비롯한 그녀의 가족은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모든 것을 다 이루며 잘 산다고 생각하며 서운하게 생각하지만, 그녀는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밤마다 악몽을 꾸며 괴로워한다. 그녀의 말을 통해 그녀가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보게 된다. 그렇게 그 끔찍한 기억은 절대 잊을 수도 없고, 어른이 다 되어서 그녀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하지만, 그렇게 그녀가 힘들어했지만, 그녀의 엄마는 그 때의 일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힘들어했던 그녀를 제대로 안아주지도 아픔을 달래주지도 않았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오, 이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한번은 그 안에 저하고 아주아주 긴 갈색 뱀하고 같이 있었는데 그것도 기억 안 나요? 나는 묻고 싶었지만 그 단어를 도저리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지금도 차마 말할 수 없기에 내가 긴 갈색의 그것과 함께 트럭 속에 갇힌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말할 수 없다-게다가 그건 정말로 잽싸게 움직였다. 정말로 잽싸게.

-p. 82

 

 

소설가로서 그녀의 삶은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성공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그녀는 가족들의 냉대와 관계 단절, 남편의 바쁜 업무 등으로 인해 한없이 외롭고 힘들어했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끔찍했던 성폭행 때문에 그녀는 살기 위해, 부서지지 않기 위해 가족들의 곁을 떠나야 했고, 가족들과 관계를 끊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 관계의 부재는 그녀의 결혼생활을 포함한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엄마와의 관계 회복을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가 죽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며 엄마와 화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엄마와 화해하지 못한 채 엄마를 보내야했다. 그녀의 엄마도, 그녀의 아빠도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채, 그들을 묻어야만 했다. 

 

작가라는 꿈을 향해, 그녀는 눈먼 박쥐처럼 앞만 보고 나아갔고 마침내, 그녀의 꿈은 이루어져 소설가가 되었다. 그녀의 엄마의 말대로 어쩌면 그녀는 이루고 싶은 것을 다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 모든 좌절과 고통 속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어둠 속에서 밝게 비치는 한 줄기 빛을 따라 나아갔고 마침내 그녀는 빛을 찾았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그녀의 성장 스토리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꿈을 가지고 어둠뿐인 세상 속에서도 그녀는 반짝이는 순간을 만났던 것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품 마지막까지 '나'의 시선과 목소리로 '나의 이야기'를 하던 화자가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며 이야기는 끝난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루시 바턴'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과거 속 어둠과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이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몰라의 이야기이자 내 대학 룸메이트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프리티 나이슬리 걸즈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엄마. 엄마!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이 이야기만큼은. 그리고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p.216

 

이 책  『내 이름은 루시바턴』에서 작가는 다양한 주변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회상을 통해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비록 삶은 희로애락 등의 여러가지 기억들로 짜여져 있지만, 여전히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라고 말하며 인생은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우리들에게 말해준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s*******4 2024.01.05.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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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바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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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바턴은 전적으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자전적 소설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과거를 회상하는 소설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무엇보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다 라는 제사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하지만 자전적 요소에 구조적인 비틀림을 더해 입체감을 살리기도 했다. 루시는 작가이면서도 동시에 독자가 되고 게다가 작품 속 타자가 된다. 올리브 키터리지에 매료된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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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바턴은 전적으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자전적 소설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과거를 회상하는 소설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무엇보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다 라는 제사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전적 요소에 구조적인 비틀림을 더해 입체감을 살리기도 했다. 루시는 작가이면서도 동시에 독자가 되고 게다가 작품 속 타자가 된다. 

올리브 키터리지에 매료된 독자라면 내 이름은 루시바턴도 읽고 있으리라. 물론 추천할 만한 소설이다.

YES마니아 : 로얄 g********2 2017.11.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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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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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작품 올리브 키터리지버지스 형제에이미와 이저벨# 읽고 나서. 맹장수술과 회복으로 9주간 병원에 입원하게 된 루시 바턴이 과거 기억의 파편들을 토대로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가족에 대한 기억과 그녀가 작가로 성장하게끔 도움을 준 작가의 기억들, 대부분이 가족에 대한 기억이라 사람에게 가족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도 한다. 독일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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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작품

올리브 키터리지

버지스 형제

에이미와 이저벨


# 읽고 나서.

맹장수술과 회복으로 9주간 병원에 입원하게 된 루시 바턴이 과거 기억의 파편들을 토대로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가족에 대한 기억과 그녀가 작가로 성장하게끔 도움을 준 작가의 기억들, 대부분이 가족에 대한 기억이라 사람에게 가족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도 한다. 


독일과의 전쟁에서 잘못 사람을 쏘고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빠. 가난과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결혼생활로 다른 집안의 불행을 자꾸만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랑이 고파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엄마. 성 정체성의 혼란이 있는 오빠와, 별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은 언니. 가난 속에서 친구들로부터 냄새난다는 놀림을 당하며, 집보단 학교가 편했던 루시 바턴은 학업을 통해 가정으로부터 '탈출'하고, 아버지의 트라우마를 악화시키는 '독일인'과 결혼하면서 가정과 더욱더 멀어진다. 아이를 낳고 행복하지만 어릴 때 기억이 계속 상처로 남아있는 그녀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방문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마음을 확인한다. 무엇보다 그 이후 작가와의 만남, 그리고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며 자신의 상처를 좀 더 밖으로 드러내고, 동시에 치유해나간다. 


마지막 문장이 너무 좋았다.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올리브 키터리지> 를 읽고 너무 좋아서 작가의 다른 책을 시도한 거였는데, 그와 비슷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던 점은 좋았지만, 올리브 때와 같은 그 쫀쫀함(?) 이 없어서(설정이라고 해도..) 이 책이 더 최근작이라는 게 좀 믿기지 않았다. 하나 더 읽어 볼 예정. 


*밑줄

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그 여자는 늘 내 처지가 자기 처지보다 한참 못하다는 사실을 좋아한 것 같다는 거야.


고등학생이 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따뜻한 학교에서 숙제를 했고, 숙제를 마치면 책을 읽었다. 그 책들 덕에 몇 가지 얻은 것이 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책이 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이거라고.

하지만 결국 내가 원한 건 다른 것이었다. 내가 원한 건 엄마가 내 삶에 대해 물어봐 주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일찌감치 이 사실을 깨달았다. 고통을 두 배로 겪는 건 시간 낭비라는 것. 내가 이야기를 꺼낸 건 오로지, 마음은 원해도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나도 엄마를 닮아서, 우리가 무엇을 읽는지로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것은 읽으려고도 하지 않은 반면, 나는 단지 그 잡지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통해 여러 번 구원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범퍼스티커처럼 진부해진다. 나는 그 사실이 슬프다. 아름답고 진실한 표현도 너무 자주 쓰면 범퍼스티커처럼 피상적으로 들린다는 사실이. 


앞에서도 한 말이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집단보다 스스로를 더 우월하게 느끼기 위해 어떤 방법을 찾아내는지가 내게는 흥미롭다. 그런 일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일어난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건, 나는 그것이, 내리누를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이런 필요성이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저속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픽션 작가로서 작가님의 일은 무엇인가요?" 그러자 그녀는 픽션 작가로 자신의 일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는 것,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누군가가 그 자신은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망신거리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실수를 덮어주는 것.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 생각에, 많은 순간에 그런 사람이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버튼, 당신은 그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뿐이야, 안 그래?" 하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그가 그 말을 한 건, 내가 사랑받을 수 있음을, 사랑받을 만한 사람임을 나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의사의 말로는 대체로 사람들이 닮아 보이고 싶지 않은 대상은 어머니 - 혹은 아버지 - 라고, 종종 둘 다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어머니라고 했다. 


노란 택시가 보였고,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 나는 뉴욕을 사랑해, 여긴 내 집이야. 하지만 나는 다른 도시들에도 가야 했는데, 그때는 거의 항상 겁을 먹었다. 호텔방은 외로운 장소다. 오, 제길, 거긴 외로운 장소다. 


내 생각은 내 것이 되었다. 혹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되었다. 나는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움직였다.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f********r 2019.05.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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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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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메일 광고와 겹친 온라인의 소개글에 이끌려 구매한 책. 어떤 작가인지도 궁금한 차에 시리즈의 시작이기에 이 책을 선택했다. 여성 작가, 가족과의 관계, 잔잔히 이어지는 드라마, 사람들의 이야기. 한 두 마디로 정리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매력있는 소설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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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메일 광고와 겹친 온라인의 소개글에 이끌려 구매한 책. 어떤 작가인지도 궁금한 차에 시리즈의 시작이기에 이 책을 선택했다. 여성 작가, 가족과의 관계, 잔잔히 이어지는 드라마, 사람들의 이야기. 한 두 마디로 정리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매력있는 소설이 더 낫지 않을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n******8 2026.07.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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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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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장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루시 바턴을 찾아온 루시의 어머니와의 5일간의 이야기입니다.읽고나서 더 마음에 남는 이야기였어요.가족이란 꼭 따뜻한 존재만이 아니고그렇다고 완전히 끊어낼 수도 없는 존재죠루시의 어린 시절이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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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장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루시 바턴을 찾아온 루시의 어머니와의 5일간의 이야기입니다.
읽고나서 더 마음에 남는 이야기였어요.
가족이란 꼭 따뜻한 존재만이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끊어낼 수도 없는 존재죠
루시의 어린 시절이 안타까웠습니다.
d******1 2026.03.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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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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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때 엄마와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 하는것에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로부터 시작 하는것, 루시에 삶에서 많은 것을 감추려 하지만 그안에서 의미를 찾아 많은 것을 이해할수 있게 된다.과장하지 않고, 과거의 기억을 정리하며 가족의 의미와 더불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졌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볼수 있게한다마지막에 아버지가 루시에게 “루시,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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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때 엄마와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 하는것에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로부터 시작 하는것, 루시에 삶에서 많은 것을 감추려 하지만 그안에서 의미를 찾아 많은 것을 이해할수 있게 된다.과장하지 않고, 과거의 기억을 정리하며 가족의 의미와 더불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졌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볼수 있게한다마지막에 아버지가 루시에게 “루시, 너는 늘 착한아이였어. 늘 참으로 착했지.“ 그 말에 읽는 내가 다 치유되는 느낌이였다. 별로 건강하지 않는 그런 가족 이였지만 서로 끈질기게 엮어 있는 그게 가족이다 라는것…
YES마니아 : 플래티넘 l*******e 2024.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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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을 찾아가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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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ㅤ연휴의 마지막 날, 담담한 고백 같은 이 책 덕분에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다. 재미있다고 추천할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불우했던 유년기를 이겨내고 작가가 된 루시 바턴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는'(114쪽) 소설임은 확실하다. 내일 피곤하겠다.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공포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듯 자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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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연휴의 마지막 날, 담담한 고백 같은 이 책 덕분에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다. 재미있다고 추천할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불우했던 유년기를 이겨내고 작가가 된 루시 바턴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는'(114쪽) 소설임은 확실하다. 내일 피곤하겠다.

(······)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공포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보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_22쪽

인생은 흘러가지. 흐르지 않을 때까지. _98쪽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임을. _138쪽

m*****2 2020.04.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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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한 세상에 맞서는 연민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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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적한 회색빛 겨울을 닮은 책을 만났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이번이 세 번째다. 대체적으로 길고 두툼했었는데 이번 소설은 다르다. 읽었는데 읽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헐겁다. 소설가와의 대담 동영상을 봤는데 플롯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작가를 사로잡은 인물이 알아서 자기 갈 길을 찾아간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어깨의 힘을 빼고 흐릿하게 써내려가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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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한적한 회색빛 겨울을 닮은 책을 만났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이번이 세 번째다. 대체적으로 길고 두툼했었는데 이번 소설은 다르다. 읽었는데 읽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헐겁다. 소설가와의 대담 동영상을 봤는데 플롯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작가를 사로잡은 인물이 알아서 자기 갈 길을 찾아간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어깨의 힘을 빼고 흐릿하게 써내려가는 이야기가 이상하게 그럴수록 투명하고 진실하게 들렸다. 내 느낌과 달리 작가는 쓰고 다시 쓰며 이야기를 수정한다고 했다. 두 번 살 수 없는 삶과는 달리 소설은 다른 이야기들을 얼마든지 들려줄 수 있다. 이것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싶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한해를 마무리하고 신년 계획을 세우는 탓인지 어중간한 시간대에 끼어 몽롱한 지금의 내 상태와 잘 맞았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다 둘러대는 이야기이고 진짜 좋음은 따로 있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해도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정작 잘 꺼내지 못한다. 일상에서 말로 생각과 감정을 다 털어내는 사람은 별도의 비밀스런 글쓰기 작업이 아마 불필요할 것이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드러난 이야기마저 하얀 눈이 두껍게 덮고 있다. 그런 손길이 어쩐 일인지 전혀 작위적이지 않다. 가볍다 못해 휘날리는 깃털 같은 문장이 마음을 지긋이 내리눌렀다.

 

  이십년 전 영미소설을 전공하며 영어로 소설 쓰는 작가를 꿈꿨었다. 그래야 끝까지, 깊게 내려앉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덜컥 소설가라는 꿈을 품었던 것이다. 영미소설을 알아갈수록 얕은 지식과 개성 없음에 주눅이 들면서 쓰는 자가 아닌 읽는 자로 남기로 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문체는 가능성 제로로 덮어두었던 마음을 흔들었다. 이렇게 단순하고 쉬운 표현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니. 현란한 치장 없이 말끔한 민낯으로 진실에 가닿는 잔잔한 물결침이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끌어당겼다. 어쩌면 말하는 방식보다 말하고자하는 내용이 더 중요하고(셰익스피어의 코딜리아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가장 기본적인 충실함이 때로는 묵직한 깊이를 더하는 법이라고 일러주는 듯했다.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는 말이 가슴에 쾅쾅 박혔다. 이어 소설을 읽을 땐 완전히 마음을 열라고 주문한다. 왠지 소설의 구절이 작품 속 모든 인물을 사랑한다는 작가의 말과 포개졌다. 스쳐가는 인물조차 이 이야기 속의 언급(인상)일 뿐 다른 품성이 존재할 여지를 열어둔다. 섬세하게 모두를 감싸 안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은 감상 주제를 저한테 잘해주세요”(Be nice to me)로 잡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의 따스한 말과 제스처에 기대어 살아간다. 예전에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속 블랑시가 그 비슷한 말을 했을 때 정신분열을 앓는 사람의 자기항변으로 넘겼었다. 어느 순간 얼굴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환한 조명등을 슬며시 피하는 변화가 내게도 생겼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행동 하나에 마음이 구겨졌다 펴지기를 수시로 반복하고 자주 몸에 한기가 들면서 그녀가 완전히 먼 존재 같지 않다

 

  루시라는 인물의 기억을 다루면서 냉혹한 성장환경과 제약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반면 그녀에게 비교적 따뜻한 온기로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회고가 주를 이룬다. 그녀는 끔찍하게 가난한 출신을 추운 집으로 둘러말한다. 춥고 혼자인 집이 싫어 학교에 남는 시간이 늘고 자연스레 책과 가깝게 지내며 집으로부터 자연스런 분리(이른 독립)가 가능했던 것이다.

 

  한창 아이를 기르던 바쁜 와중에 찾아온 병상의 기억이 회상의 중심 이미지다. 병원에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남편을 대신해 병상을 지키는 어머니와의 대화가 소설을 이끄는 지속적인 원동력이 된다. 침대 발치에 잠들지 못한 채 앉아 있는 어머니와 창밖의 뉴욕 풍경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과거라 더 모호할 수밖에 없고 앞뒤 맥락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설명 불가한 공백이 많지만 갑작스런 입원 앞에 결혼의 행방과 실체가 암시되고 그녀에게 중요한 글쓰기의 의미가 형체를 드러낸다.

 

  신기한 것이 소설 속 주인공은 그 어떤 사실도 명료하게 밝히지 않는다. 전남편을 만나기 전 예술가의 흔적도, 한참 후에 이루어지는 이혼도, 작가로서의 등단도 어느 것 하나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불성실하거나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삶이 그러하듯, 마지막 순간에 드문드문 출현하는 기억처럼 산발적으로 플래시백될 뿐이다. 그저 그녀가 남겨놓은 지문 자국을 토대로 아마도 그랬겠지라고 짐작해볼 따름이다.

 

 그녀는 타인이지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담당의사를 기점으로 특별하지만 그렇다고 꼭 따스하지만은 않은 관계들을 들춘다. 그런데 이 행위에 원망이나 불꽃 튀는 미움 따위는 없다. 심지어 자신이 부재한 동안 남편과 부정행위를 한 지인에 대해서도(이름을 지우는 것으로 복수했다고 본다) 일방적으로 나쁘게 묘사하지 않는다. 자식들이 그녀를 새엄마라며 따르는 것에 발끈하지만 혼자 하는 생각이다. 자신이 제공하지 못했던 음식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여자로 마무리 짓는다. 이 연민과 애석해함에 경기를 일으키는 독자도 있겠지만 나는 이 따뜻한 마음가짐에 믿음이 갔다.

   

  앞서 잠깐 언급했는데 가난에 대한 암묵적인 멸시와 폭력도 담담하게 묘사한다. 인간 안에 도사리는 남을 내리눌러 자신의 우월함을 연출하려든다는 지적은 예리했다. 학교나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자행되는 차별과 무시, 설움을 둥글게 묘사한다. 사람을 그가 사는 집이나 입은 옷으로 속단해선 안 된다고 침착한 어조로 강조한다. 태어난 환경과 출신의 꼬리표를 떼어내는 일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그런가하면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고유한 말이 되기도 한다. 루시의 본격적인 작가 데뷔에 영향을 준 사라 페인은 우리가 쓸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이며 모든 이야기는 거기서 나온 변이물이라고 말한다. 겉옷만 바꿔 입을 뿐 몸통은 같은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내게 그 이야기는 무엇일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작가와 소설을 연결 짓지 말라고 경고한다. 사라가 능력만큼 뉴욕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로 언급되는 전 대통령에 대한 에피소드가 웃펐다. 그런데 더 씁쓸한 것은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서 한 독자가 소설가의 소설을 꿰고 있는데 소설가가 루시와 사라 중간쯤에 있는 게 확실하다고 평했다. 왜 독자들은 그러지 말라는데 자꾸 소설과 작가를 이어붙이는 걸까. 그런데 너무나 친절한 작가는 본인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나마 자기 자신이기에 어떤 식으로든 인물에 투사될 거라고 답했다.

 

 그리고 하나 더 기억에 남는 독자는 자신이 논픽션을 좋아하는데 남녀노소 보다 현실적으로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글을 써달라고 했다. 예상대로 소설가는 그러겠노라고 약속했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 루시의 전 생애를 훑지만 어디까지나 모녀 관계라는 물줄기를 따라 흐르는 구조이다. 주요 관계나 작품 분위기가 남성 독자를 흡수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 말은 남성 독자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이유가 된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작가와의 만남에 연세 지긋한 분들이 많이 참여하신다. 학생모드로 다소곳이 내용을 받아 적는 우리와 다르게 그들은 매섭게 바라보고 서슴없이 질문한다. 한편으론 미국은 젊은이들의 갈증과 수요를 대학 내에서 해소 충족시키는 게 아닐까 싶고 또 다른 면에서 문학은 나이 먹을수록 더 잘 흡수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사회적 발언과 소통을 멋스럽게 해내는 노작가를 지닌 그들이 부러웠다.

 

 루시의 기억과 삶의 궤도를 따라 주행하다보니 앨리스 먼로가 생각났다. 맏이로서의 막중한 책임과 어머니와의 불화, 작가가 되기 위해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친정과의 관계, 나와 다른 생각을 지녔을 자녀들.. 시대적 합의나 협조 없이 집안 살림을 하며 꾸준히 집필 활동을 병행해야 했던 작가들의 외로움과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이 전해졌다.

 

  전쟁의 상흔을 지닌 아버지와 적군의 유산을 물려받은 남편의 조합에선 우리와 관계 맺는 사람들의 어깨에 매달려있는 출신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그 충돌을 일일이 설명하고 중재할 수 없는 우리들의 좁은 시야와 쫓기는 시간.. 꼬이고 엉켜있다 운좋게 풀리는 경우도 있고 또 아닌 채로 끝날 때도 있고.. 나를 낳았는데도, 심지어 내가 낳았는데도 그 속을 알 수 없는 사연들이 있다. 깨알 같이 폭로되는 삶의 진실 속에 그래도 루시의 삶과 내 삶이 따뜻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우리 누구도 완벽하게 사랑하지 못한다는 인정 때문일 것이다. 루시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엄마가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달의 사락 s********d 2018.0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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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흘러가지. 흐르지 않을 때까지
"인생은 흘러가지. 흐르지 않을 때까지" 내용보기
11월이 눈앞에 이르렀다. 계절적으로 늦가을은 인생 후반부에 속한다. 나무에 힘겹게 매달린 단풍이 든 나뭇잎과 자기보다 더 무거운 눈을 짊어진 나뭇가지를 볼 때면 불현듯 우리네 인생을 떠올리게 된다. 청춘의 푸르름과 환희와 열기가 빠져나간 곳에는 무언가 모를 외로움과 고단함이 대신 자리한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허하고 텅 빈 무거움을 뒤로하고 고개를 들어 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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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이 눈앞에 이르렀다. 계절적으로 늦가을은 인생 후반부에 속한다. 나무에 힘겹게 매달린 단풍이 든 나뭇잎과 자기보다 더 무거운 눈을 짊어진 나뭇가지를 볼 때면 불현듯 우리네 인생을 떠올리게 된다. 청춘의 푸르름과 환희와 열기가 빠져나간 곳에는 무언가 모를 외로움과 고단함이 대신 자리한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허하고 텅 빈 무거움을 뒤로하고 고개를 들어 해질 녘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한다. 살아냈기에 알 수 있고 엉킨 매듭을 풀 기회와 다시 가보고 싶은 시절이 생긴다. 그 어떤 삶도 무의미하거나 쓸모없지 않다고 입김을 호호 불어 언 몸과 마음을 녹인다. 내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그런 작가이다. 묵묵히 지켜보다가 흐느끼면 손수건을 조용히 건네고 또 환하게 미소지어주는 책 속 오랜 친구인 것이다.

 

 시작부터 작가에 대한 신뢰와 사랑 고백이 길었다. 사실 내가 그녀를 높이 사는 이유는 그녀가 인간적인 회상과 추억이 있는 시대의 마지막 증언자 같아서다. 사십대 중반인 내 경우만 봐도 고향과 옛 이웃과 그곳에 남은 가족을 기억하는 일에 무심하고 소홀하기 때문이다. 전쟁 참전의 아픔과 상흔이 가족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우거나 먹고 살기 힘든 지독한 가난은, 어느덧 진부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누군가를 죽였던 기억에 제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가정 살림에 묶여 지내다 어느 날 자아를 찾겠다며 집을 나가는 중년 부인이나 집을 등질 깔끔하고 합리적인 묘책으로 먼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가 그러하다. 어렵사리 빠져나온 곳인 만큼 외롭고 힘겨워도 뒤돌아보지 않아야 하는데 결국에는 지나온 장소와 사람들과 시간으로 돌아가 정처 없이 떠돈다.

 

 소설은 당신 안에 있는 얼마간의 그리움과 미안함과 어리석음과 실수 연발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 그것으로부터 그만 자유로워지라고 귀띔해준다. 그 길목에서 우리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이면서 나에게로 이어져 온 정신과 발자취를 더듬는다.

 

***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어린 두 딸을 둔 루시가 맹장(충수염)수술을 받으러 입원하면서 시작된다. 간단한 수술이 꼬이면서 두 달 넘게, 한차례 계절이 바뀌는 장기입원으로 넘어간다. 남편은 병상을 지키는 대신 고향집 친정엄마를 부른다. 평소 왕래가 없고 살가운 모녀지간이 아니었던 관계로 루시는 어머니의 등장에 놀라며, 약 기운과 잠과 깸 사이를 몽롱하게 오간다.

 

 루시가 몸이 아파 침대에 발이 묶인 것은 그녀의 삶이 위기에 걸린 상태임을 암시할뿐더러, 여자들은 마음이 아프고 지칠 때면 몸이 예민하게 반응해 원인 모를 통증과 이상 신호를 종종 겪는다. 당시 루시는 전업주부로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면서 틈틈이 단편을 잡지에 기고하는 중이었다. 아직 생계 벌이로 인정받기 전의 글쓰기는 시간이나 자신과의 부단한 정신적, 체력적 싸움이었을 것이다. 병상에서의 시간은 그런 그녀를 멈춰 세워 인생을 돌()볼 우연찮은 계기를 제공한다.

 

 일인실 병실 창문 너머로 높다란 빌딩이 보이고, 아래 공원에는 일상이 고요히 흐른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뉴욕을 상징하는 고층건물의 비호 속에 주인공은 삶을 다른 속도와 각도에서 주시하며 지나온 시간을 되감는다. 병원에 있으면서 그녀는 외롭기도 하고 어린 딸들에 대한 걱정뿐 아니라 자신을 보살피는 늙은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으로 감정이 복잡하다. 루시는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와의 분리(홀로 남겨짐)를 두려워하고, 같이 있고 싶다는 갈망과 애정결핍을 느껴왔다.

 

 가난한 차고에서의 삶은 막내인 루시를 트럭에 혼자 두는 일이 잦아 그녀에게 공포로 각인된다. 무서움을 떨쳐내고자 그때부터 현실과 다른 상상을 하며 이야기를 짓는 발판을 마련한다. 추운 집이 싫어 학교에 늦게까지 남다 보니 자연스레 학교에 비치된 책을 섭렵하고 학업성적도 덩달아 좋아졌다. 춥고 외로운 시간을 따스하게 가공해준 책에 반해, 그녀는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회진하는 의사의 한결같은 흉터 살핌에 매료되어 정을 붙이는 것에서 낯선 이의 친절에 왜 그토록 루시가 기대는지 사랑에 굶주린 마음 상태를 짐작해볼 수 있다. 독일계 남편과 결혼하느라 친정 식구들의 환대를 받지 못하고, 도시에 살며 친정과 소원하게 지내온 것이다.

 

 아버지는 농기계 수리를 하는 불안한 일용직에 머물며 정상적으로 가계를 운영하지 못한다. 평생 안전함을 느끼지 못해 쪽잠을 자는 게 버릇이 된 친정엄마의 모습이 힘겨운 가정사를 짐작하게 한다. 식구는 피할 수 없는혹독한 날씨와 같은데, 친정 오빠는 가정을 이루지 않고 이웃의 돼지를 돌보며 동화에 빠져 지내고, 일찍 결혼한 언니는 다섯 자녀를 키우며 동생과 교유하지 못한다.

 

 어렸을 적 루시는 학교나 교회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멸시와 따돌림을 당하고, 배고픈 나머지 커피숍 쓰레기통을 뒤진다. 바턴가의 생계는 엄마의 바느질 수선으로 간신히 연명한다. 이웃과 공동체의 괴롭힘과 무시가 언니에게는 또렷한 모멸감과 수치와 분노로 남지만, 루시는 좀 다르게 반응한다. 어떤 이에게는 성장환경의 열악함이 그를 가두는 감옥이자 자꾸 넘어지는 걸림돌이 되지만, 루시는 웅숭깊음이 떠지는 우물이자 심연의 바다로 탈바꿈한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초등학교 사회 선생님의 역사의식과 평등사상이 그녀를 관통해 삶의 주축대로 작용한다. 누군가를 업신여기거나 상대보다 우월감을 느끼는 자세는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가슴에 새겼던 것이다.

 

 하지만 유명 작가가 되기 전까지 가난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중문화나 예술에 무지하고 둔감하다는 평가에 내내 시달리며 구속받는다. 처음 이성으로 마음을 열었던 예술가 남자도 그녀의 대중문화 몰이해와 미적 감각 부재를 서슴없이 지적하고, 시어머니 또한 옷차림으로 사람을 대놓고 무시한다. 다행히 루시는 이런 외형적인 가치나 속물적인 근성에 물들지 않고, 사람의 정신과 영혼, 의식이 하는 일에 주로 마음을 뺏기고 삶의 무게를 둔다. 오빠나 이웃 아저씨의 동성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글을 쓰듯(백지를 대하듯) 열린 마음으로 임한다. 온갖 종류의 차별과 학대와 폭력에 민감한 루시는 그들의 외로움과 아픔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방관한 것을 자책하며 후회한다.

 

 어머니의 간병과 함께 병원에서 보낸 시간은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좁힐 수 없는 거리도 재확인하는 거름망이 된다. 한때 어머니의 사랑에 목마른 딸은 위로받고자 어머니에게 컬렉트콜을 걸지만 거절당한다. 병상에서 극적 화해 모드가 조성되고 대화를 원활하게 이어가던 중 딸의 응급수술 소식이 전해지자 어머니는 황급히 가버린다. 세월이 흘러 딸이 어머니의 병상과 임종을 지키려고 들지만 그마저 거부한다. 두 부모님 모두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가족으로서의 마지막 의식과 예의 갖춤을 차단한다. 시골 마을의 가난한 집이 으레 그러하듯 조용하고 고립된 끝을 맞이한다.

 

 루시는 감춤 없이 있는 그대로 시공간을 횡단하며 지금의 뉴욕과 고향 앰개시를 잇는다. 어머니가 바느질로 옷을 수선했다면, 루시는 그러한 행보를 통해 끊어진 관계와 사람과 공간을 꿰매어 다시 입기에 나선다.

 

 안타깝게도 나를 품고 세상에 내보낸 어머니와의 갈등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궁이자 생의 맨홀로 남아 평생 따라붙는다. 어머니라는 영단어 마더(mother)에는 알 수 없는 타자(other)가 내포되어 근원적으로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를 뜻한다. 딸은 나이 먹어감에 따라 어린 시절의 잣대를 그대로 가져다 엄마를 재단할 수 없다. 어느 정도 객관화할 거리가 생겨 전체적으로 돌아보는 눈빛이, 비록 완전한 이해는 아닐지라도 무척 인간적이다

 

 생물학적인 어머니는 결손 상태에 가깝지만, 루시는 세라 페인을 정신적이고 사회학적인 어머니로 삼으며 새로운 삶으로 도약한다. 그녀는 선배작가와의 우연한 만남과 간헐적인 인연 속에 어떤 작가가 되고 어떤 글을 쓸지 방향을 잡는다. 세라를 통해 작가란 단 한 가지 이야기를 계속 달리 말하는 사람임을 피력한다. 그런 점에서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루시의 이야기이자 어머니의 이야기이자 딸의 이야기이면서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지금의 뉴욕 이야기인 셈이다. 하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많은 뿌리가 뒤엉켜 한 그루의 나무로 비로소 서게 된다.

 

 루시는 세라를 추앙하면서도 그녀가 정작 진짜 진실은 비껴가며 정면 돌파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구심점을 꿰뚫고 나아가 누군가의 일방적인 평가(“섬약한 연민”)를 듣더라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고유함을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고 다짐한다. 이것은 캐릭터 루시의 결의를 지나 어느 순간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아바타로 자성적인 목소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친정엄마의 예견대로 루시는 병에서 회복되고 작가로 승승장구한다. 병원 생활 후 일상으로 복귀해 지내지만, 딸들이 대학에 들어가자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남편의 재혼 파트너를 통해 오래전 병원 생활이 그들 부부 사이에 선명한 균열을 남겼음을 알 수 있고, 서로를 견디다가 자유로울 타이밍에 맞춰 헤어짐을 선택한 것으로 읽힌다. 딸들에게 어머니의 결단, 즉 아버지를 떠남이 상처로 남을 테지만, 그녀는 빈집증후군 대신 자유와 더 늦지 않게 새로운 삶을 취한다.

 

 외로움과 그리움에 시달리면서도 그때마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끝에 그녀는 다른 삶에 도착한다. 루시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 다른 사랑과 집을 찾아 나섰다가 영영 고립되어버린 이웃 아주머니의 삶을 기억한다. 캐시와 달리, 루시는 가족이나 공동체로부터 내쳐지거나 외면당하지 않는다. 이제는 여성이 전남편의 돈에 귀속되지 않고 글쓰기로 자기만의 방을 떳떳하게 꾸리는 시대가 열린 참이다.

 

***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향수에 은근히 젖고 지금의 삶보다 자꾸 과거나 출발점으로 눈이 돌아간다. 그런 이유로 과거와 옛 기억과 공간을 공유한 사람끼리의 마주함과 겹침이 거듭 발생한다. 인간의 존귀함은 역사성, 즉 잠시 왔다감을 넘어 여전히 계속되는 오늘의 에 담긴 의미를 다시 말하는 데서 나온다. 기억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생명을 재차 부여받은 목소리가 지피는 모닥불 앞에 과거의 사람과 오늘의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다. 재점화의 손길만이 유한하고 허점투성이인 인간의 삶을 위로하며 가치를 더한다.

 

 작가가 들려주는 진실은, 갈등이나 문제없는 가정이 실재하지 않으며 특히, 오직 하나의 사랑만 남기기란 스스로 앞의 것을 지우지(조작하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결국에는 빛을 잃고 사라지지만 진실한 문장은 영원하다. 작가는 외로움과 소외와 단절과 실패 사이로 서로가 인간미를 발하는 섬광의 순간을,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끝마음을 포착해 전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루시 바턴이라는 조각상을 세운 뒤, 단편집 모든 것이 가능하다로 완성도를 다진다. 루시 바턴의 주변 인물들을 무대 정중앙으로 불러들여 그들이 미처 하지 못했던 인생사를 풀어놓는다. 불완전한 사랑과 미완결성은 인생의 속성이자 조건이기도 하여, 여전히 마음과 시선이 머무는 곳을 다시 찾는 발걸음에서 작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와 고갈되지 않는 연민을 재차 만날 수 있다               

이달의 사락 s********d 2019.11.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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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결산] 생의 움직임 속에 영원을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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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며 든 생각이다. 거침없는 물살이 몸에 내려앉을 때 갑자기 어떤 생각이 스칠 때가 있다. 예스24에서 결산리뷰를 신년에 진행함이 옳구나 싶었다. 달력을 새로 바꾸거나 (지난해와) 안녕, (새해인사인) 안녕을 말하기 전에는 모르는 마음이 있다. 아니 덜 정리된 마음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12월에 하는 결산 리뷰는 달리는 숨 가쁜 속에서 작성되기에 여전히 뜨겁고 치열해진
"[2017년 결산] 생의 움직임 속에 영원을 응시" 내용보기

 샤워를 하며 든 생각이다. 거침없는 물살이 몸에 내려앉을 때 갑자기 어떤 생각이 스칠 때가 있다. 예스24에서 결산리뷰를 신년에 진행함이 옳구나 싶었다. 달력을 새로 바꾸거나 (지난해와) 안녕, (새해인사인) 안녕을 말하기 전에는 모르는 마음이 있다. 아니 덜 정리된 마음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12월에 하는 결산 리뷰는 달리는 숨 가쁜 속에서 작성되기에 여전히 뜨겁고 치열해진다. 12월도 엄연히 살아내야 할 12분의 1이기에 그러하다. 뭔가 정지되었을 때 딱 떠오르는 것이 있다.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분명한 사실로 마음에 다시 밀려오는 것들. 그 부딪힘은 (아직 끝나지 않은) 12월의 물살과는 다르다.

 

  그래서 2017년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결산이 조금은 덜 짐스러웠다. 세 권을 추렸고 읽은 순서대로 소개하겠다. 어둠 속의 희망(리베카 솔닛),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아픈 몸을 살다(아서 프랭크)이. 똑같이 힘을 주는 책들이지만 성격이 달라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내게 균형을 잡도록 했고 사유의 모래성을 쌓을 수 있었다. 하반기에 읽은 책들이라, 나중에 만난 것의 임팩트가 강할 수밖에 없고 뒤에 온 것은 앞의 것을 밀어낼 수밖에 없는 속성을 곱씹게 된다. 물론 그냥 우연일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책을 펼치는 이유가 혼자만의 고독과 집중에 있다고 보았다. 직시하고 싶지 않아 회피해오거나 핵심을 뚫고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것에 대한 반대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 여기에 허락되지 않은 무언가를 만난다.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 나와 반대의 선택을 한 사람... 각기 다르지만 지면 위가 아니라면 들을 수 없었을 이야기들이다. 그 정체는 바로 현실에서는 일대일로 마주할 수 없는 내밀한, 뒤늦은 고백들이다. 어쩌면 듣고 싶었던 말일 수 있고 또 듣기 싫은 말일 수 있다. 어쨌든 분명한 건 책을 읽는 일은 무언가를 거듭 만나는 애씀이다.

 

  시간과 마음을 내어 무언가를 만나려는 몸짓은 잠시 내가 처한 냉정한 현실에서 벗어나 멀리 가는 비행이면서 마지막에는 내게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다. 개별적이고 파편적인 경험을 수렴하여 다시 내 안에 계속 지닐 것은 품고 아닌 것은 흘려 보내는 작업이다. 나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주워 담고 또 어떤 것을 내려놓고 싶었던 걸까. 그중 하나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운명 같은 걸 인정하는 것일 게다. 출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 바로 중독된 탐닉이더라. 자기에게 나쁜지 알면서도 살아가는 재미중 하나이기에 버릴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운명과 중독이라는 치명적인 덫에 갇힌 미물들이다. 이런 게 있고 이것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룰이라는 걸 알면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나는 조만간 먼지로 사라질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에 합의하고, 우주와 자연의 순환 주기로 돌아갈 한 점 빛이라는 사실을 깊게 들이마신다. 그러면서 나는 외따로 떨어진 존재 너머 어딘가에 가닿길, 그것이 찰나적인 결속이라 해도 여전히 함께 하고 싶어 한다. 고독한 공간을 선택했다 해도 고립된 섬이고 싶진 않다. 그 간절한 바람을 고이 한데로 모아주는 게 작품과의 접촉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나는 내 안에 속물근성이 1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안에는 우아하게 다른 사람들과 멋진 콜라보 즉흥연주를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 독주회가 있는가하면 합주가 있고 사중주가 있고 오케스트라가 있듯 그 폭과 스케일이 다를 뿐 우리는 저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인 것이다.

 

  처절히 혼자이고 고통 받는 순간이 있지만 때로는 위로하고 격려 받으며 그리 나아지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기다리고 회복되기 위해 씨름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연주자player라는 화려한 앞면 뒤에 환자patient라는 추레한 두 가지 모습을 지닌 채 살아간다. 교차와 뒤집힘의 가능성을 미처 주지하지 못하고 한 면만 보다가 영영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어둠과 실패와 위기만 보지 않도록 돌보는 손길이 필요한데 그게 인간의 말일 수도 있고, 어떤 장면의 회상일 수도 있고, 마음을 떠돌던 속삭임의 뭉치일 수도 있다말이 엉킨 채 밖으로 나오는 출구를 찾지 못할 때 나는 음악을 듣고 남의 춤을 본다. 또는 고개를 들어 드높은 하늘을 보거나 제 몸 크기의 눈을 뒤집어쓰고도 의연한 나무를 본다. 그 마주침이 보잘 것 없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인생 앞에 마냥 움츠려들지 말고 우아(당당)해지라고 일러준다.

 

  나는 위에 소개한 세 권의 책에서 이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우리가 꿈꾸는 건 거대한 게 아니다. 오늘의 소박한 일상이 내일도 허락되길, 두발을 굳건히 땅에 내딛고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세상을 구하는 어느 의인의 몸짓을 기억하며 삶의 경이를 찬양하는 것이다. 외롭고 아프고 고단한 시간이 더 많지만 그럼에도 내 삶을 긍정하고 다른 사람의 삶도 그만큼 어여삐 여기는 자세를 곧추세운다. 난폭한 언어나 물리적 행위에 노출된 사람은 그것을 되받아치게 되어있다. 그 부메랑이 자신을 향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기보다 약자인 사람들에게 대물림되곤 한다. 그런데 불행과 악의만 그런 게 아니라 행복과 선의도 같은 움직임을 지녔다. 받아본 만큼 줄 수 있다.

 

  위의 책들은 하나 같이 인간은 작지만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하는 큰 존재임을 잊지 말라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말한다. 각자가 주어진 운명과 제약 속에 끙끙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지만 그 힘듦은 다른 손을 마주 잡고 서로를 껴안아줄 때 생명 존중과 인간애라는 엄청난 물줄기를 형성한다고. 그러니 혼자 있되 같이 하는 순간을 만들고, 지금 내게 없는 것보다는 지금 가진 것을 만끽하며 누리라고. 채워짐은 밖에서도 오지만 결국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몫인 것이다. 메말라 있던 일상에 누군가 물을 주었다면 다른 날에는 내가 줄 수 있기를, 연결됨이 번번이 끊기더라도 재결합을 시도하며 주고받는 활동성을 따르기로 한다. 무엇보다 시련과 위기를 견뎌낸 사람한테만 주어지는 삶의 칼 같은 정산과 환급 혜택을 그때그때 받아쓰기로, 맛도 단짠단짠해야 물리지 않듯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임을 명심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추운 한겨울 같은 날이면, 병실에서 내다본 공원의 사람을 부러워했던 그때 그 마음을, 햇살 받은 강물을 바라보며 산책하는 소생하는 움직임을, 어둠 속에도 닫히지 않은 어떤 가능성과 여지를 열어놓는 희망의 몸짓과 함께 걷기를 기억하며 봄의 도래를 기다리련다. 그 다짐을 곱씹고 되새겨 내 안에 체화하고 싶다. 그것은 내가 살아갈 가치를 발견한 흔적이니까. 언제든 내게 조력하며 도는 붉은 피처럼         

 

https://youtu.be/y9Trdafp83U

이달의 사락 s********d 2018.02.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