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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하지 않는다" - 군사 격언 "많은 임금과 장수 중에서 특출나게 승리를 거두는 자는 적에 대한 정보를 먼저 알았기 때문이다. 적에 대하여 미리 알려면 귀신에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물을 흉내낼 수도 없으며 짐작으로 추측하여 시험해 볼 수도 없다. 반드시 상대의 사정을 잘 아는 첩자를 써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다" - 손자 용간편 일찍이 손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하였는데, 여기에는 적을 알고 나를 알기 위한 정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적보다 많은 병력과 유리한 상황을 선점하고 있어도 막상 그 사실을 지휘관이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소극적인 지휘관일수록 오히려 내가 불리하다고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거나 패배를 자초하는 경우도 흔하게 있다. 반대로 적이 얼마나 강대한지 모르고 자신의 용맹함을 과신하여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스스로 사지에 들어가는 예도 있다. 그 단적인 예가 태평양전쟁 당시 버마전선을 담당하였던 무다구치 렌야이다. 그는 일본군이 가장 유리했던 1942년 여름에는 지형의 험난함과 보급 문제를 들어서 인도 침공을 완강하게 반대했다가 뒤늦게 태도를 바꾸어 이번에는 일본군의 사정은 무시한 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격을 강행하였다. 영국군이 허약했던 1942년에 공격했다면 손쉽게 승리했겠지만 1944년의 영국군은 훨씬 강해진 반면, 일본군은 약화되어 있었다. 결국 병력의 2/3를 잃고 참담한 몰골로 철수하였다. 그의 실패는 태평양전쟁을 통틀어 일본이 경험한 최악의 참사였으며 결국 버마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심지어 연합군은 그를 "연합군의 승리에 가장 기여한 일본군 장군"이라고 칭찬했을 정도였다. 무다구치가 실패한 이유는 정보를 무시한 채 자신의 막연하고 관념적인 편견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동서 고금의 전쟁에서 정보의 중요성이란 새삼 말할 것도 없으리라. 고대 서양에서 가장 위대한 전투라고 꼽히는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이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정보력 덕분이다. 그는 상대의 강약에 대하여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하였고 적장의 성향까지 파악하여 허를 찔렀다. 반면, 로마군 사령관인 바로는 그저 숫적인 우위만 믿고 정보 수집을 게을리 한 채 무작정 공격에 나섰다가 한니발의 함정에 빠져서 문자 그대로 전멸하고 말았다. 23전의 싸움에서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은 이순신 역시 일본 수군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이를 이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안개(The Fog of War)"라는 말을 사용하여 정보가 얼마나 불확실하며 그 중에서 진짜 정보를 골라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강조한 바 있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그 중에서는 적이 의도적으로 흘린 더미 정보도 있고 서로 상충되거나 상식에서 어긋나는 정보도 많다. 설령 뛰어난 정보 전문가가 수많은 쓰레기 정보 중에서 진짜 가치가 있는 정보를 어렵사리 골라내어도 윗선까지 제대로 올라간다는 보장도 없다. 중간 보고 단계에서 버려지거나 전혀 엉뚱하게 왜곡되기도 한다. 정확한 정보가 정확하게 보고되어 정확하게 활용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야말로 행운에 가깝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가. 정보를 골라내는 과정에서 사람의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만약 서로 상충하는 정보가 있을 때 냉철하게 판단하여 결정하거나 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내 입맛에 맞는 쪽을 택한다. 그저 "이랬으면 좋겠다"는 단순힌 희망 사항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해 버린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정보의 중요성을 무시한 예가 다름아닌 임진왜란이다. 히데요시는 조용히 쳐들어오는 대신, "명을 치겠으니 조선은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하라"라고 엄포를 놓았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히데요시의 허세 덕분에 대비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번 셈이었다. 하지만 모든 수단을 다하여 상대의 의중과 군사력, 작전 계획 등 정보를 수집하기는 커녕 그저 의례적인 통신사 두명을 보낸 것이 전부였다. 그조차도 한 사람은 "쳐들어온다" 또 한사람은 "안 쳐들어온다"라는 완전히 상반되는 보고를 하여 혼란을 부추겼고 무사안일에 젖어 있었던 조정은 "안 쳐들어오겠지만 혹시 모르니까"라는 태평한 생각으로 의례적인 수준의 대비를 했을 뿐이었다. 결국 예상을 훨씬 초월하는 침공에 조정 전체가 패닉 상태에 직면하여 선조는 조중 국경의 끝단인 의주까지 도망쳐야 했다. 히데요시가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는 것은 그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상황임에도 조정이 이를 무시한 것은 그런 상황 자체를 상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수백년 동안 외적의 대규모 침략은 없었는데 하필 우리 대에 와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귀납법적인 오류, 사실이 아닌 희망에 불과한 가정을 사실로 단정해 버린 채 다른 가능성은 모두 무시하는 전형적인 가정 망각의 오류라 할 수 있다. 이런 일은 전쟁사에는 비일비재하다. 한국전쟁에서 맥아더 역시 중공군의 참전을 알려주는 수많은 정보가 있었지만 그 정보 자체가 불쾌하다는 이유로 묵살하거나 자신의 편의대로 해석하였다. 스탈린은 히틀러가 침공한다는 경고를 외면하여 개전 초반에 500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상실하는 대참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랍 군대에 대한 경멸감과 경제적인 부담을 이유로 동원령을 미뤘다가 이집트, 시리아의 기습을 받아 거의 패망 직전까지 몰리는 호된 댓가를 치루었다. 정보를 무시하기는 쉽지만 정보를 무시한 대가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얼마 전 전쟁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주목할 만한 신작 도서가 나왔다. <함께 보는 근현대사> <유라시아 견문> 등을 출판한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서해문집에서 나온 <정보전쟁>이다. 마침 해당 출판사에서 필자에게 신작이라면서 선물로 보내왔다. 감사할 따름이다.
이 전문을 입수한 윌슨은 1917년 2월 27일 <AP통신>을 통하여 언론에 공개하였다. 게다가 어리석게도 치머만 스스로도 이 전문이 사실이라고 인정함으로서 미국이 참전할 명분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4월 6일 윌슨은 정식으로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유럽으로 군대를 보냈다. 당시 동부전선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서 러시아군이 붕괴되고 영국, 프랑스 역시 니벨의 졸렬한 공세가 전례없는 대참사로 끝나면서 패배 직전에 몰린 상황이었다. 만약 치머만 사건이 없었거나 그 전문이 가짜라고 고집했다면 윌슨은 고립주의자들을 누르고 참전을 강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은 승리를 목전에 두고 제 무덤을 판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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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재 <정보전쟁> 제1차 세계대전부터 사이버전쟁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비밀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의 실패가 전부 일까? 그 내면에 숨겨진 비밀들은 없을까? 그 한가운데 ‘정보전쟁’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로 적용된 사례들을 열거하고 있다
정보(情報)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군사> 일차적으로 수집한 첩보를 분석ㆍ평가하여 얻은, 적의 실정에 관한 구체적인 소식이나 자료 전쟁(戰爭)또한 사전적 의미로는 국가와 국가, 또는 교전(交戰) 단체 사이에 무력을 사용하여 싸움 이라고 적혀 있다. 즉 정보전쟁이란 수집한 첩보를 분석 ㆍ평가하여 싸움을 의미한다 싸움에는 늘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보전쟁의 승리가 있다 이 책은 정보전쟁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중요성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성공한 정보,승리의 열쇠가 되다 제 1차 세계대전 (1914년 7월 28일 ~ 1918년 11월 11일)의 결정적 역할을 한 사건은 '치머만 전보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미국의 참전을 결정하게 만듦으로써 전쟁의 흐름을 바꾸게 되었다 치머만 각서로 알려진 이 문서는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로 하여금 미국과 독일이 싸우게 되면 멕시코에 동맹을 제의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각서를 영국 해군 정보부가 독일 전문을 가로채 미국에 전달함으로써 참전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미국의 즉각적인 참전을 이끌어 낸 사건이다. 그 결과 제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패배했고 미국을 끌어들인 연합국은 승리 했다
제2차 세계대전 (1939년 9월 1일 ~ 1945년 8월 15일) 하면 떠오르는 ‘노르망디상륙작전’의 성공의 이면에는 우세한 영국 정보력 덕분이었다. 영국 정보기관은 ‘더블크로스시스템’으로 불리는 이중간첩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중간첩은 기만정보의 혼란으로 독일을 결국 패전하게 만들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진주만 기습’사건은 미국의 역사상 최초로 외국에 의해 공격 당한 사건이며 열등하다고 생각해 온 아시아 국가 일본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미국인들은 분노하였다 하지만 ‘미드웨이해전’에서는 일본 해군의 작전 계획을 사전에 파악하고 유리한 방어 작전을 전개함으로써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크게 승리하였다 이 후 암호 해독이나 정보를 그동안 별로 중요시하지 않던 자세에서 벗어나 정보를 군사작전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실패한 정보,대재앙의 씨앗이 되다 이오시프 스탈린(1879년 12월 18일 ~ 1953년 3월 5일)은 레닌의 후계자로서 의심 많고 외골수적인 성격을 가진 소련공산당 최고지도자를 지닌 독재자이다 이런 성격이 권력투쟁 과정에서 승리하는 원동력이 됐을지는 모르지만 합지적인 다른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 최고지도자로서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첩보원들은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기 수 개월전부터 불과 3일전까지 지속적으로 보고를 하였지만 소련 정보기관 책임자들은 제대로 인식하였지만 스탈린이 독일이 소련을 당분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어서 사실대로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또한 공격이 있기 한 달여전에 국방장관과 참모총장은 스탈린에게 선제공격을 요청하였고 거절 당했지만 다시금 공격이 있기 11일 전에도 군사 대비 태세의 성향을 건의 하였고 4일전에도 하루 전에도 거듭 건의 하였지만 스탈린은 끝내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그 결과 부실한 군사 준비 태세로 개전 초기 6개월 동안 거의 파멸 수준의 피해를 입었다.
진주만 기습(1941년 12월 7일)은 미국의 대표적인 정보 실패 사례로 손꼽힌다. 선전포고 없는 일본의 기습에 주력 부대가 완전 무방비 상태로 당한 진주만 기습은 오늘까지도 깊고 아프게 남아 있다 당시 미국의 정보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직접적 공격 징후는 아니더라도 2간접적 징후나 분위기는 충분히 유추 할 수 있었는데도 미국은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 기습 11개월전 도쿄 주재 페루대사가 언급하였지만 신빙성이 낮다고 평가하고 무시해버렸고 3개월전 영국의 이중 간첩원 역시 제보하였지만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평가절하했다 공습 1시간전에 일본군 소형 잠수함이 진주만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신호를 탐지하였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아침이어서 자국 항공기로 생각해버렸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고 유력한 일본 외교전문을 해독한 정보가 나왔지만 진주만이라고 분명 적시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공격 목표와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지만 미국은 별다른 조취를 취하지 않고 간과했다 이로 인해 90분간의 기습만으로 진주만에 주둔하던 미군의 전함 8척, 주력함 18척, 항공기 347대, 인명피해는 무려 1178명에 달했다
911테러(2001년 9월 11일)는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 등 이슬람 테러조직이 항공기 납치를 통한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에 대한 항공기 동시 다발 자살테러를 한 사건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2개월전 한 FBI요원은 알카에다 연계 세력들이 미국 비행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고 파악하여 상부에 보고 하였지만 FBI 본부는 언론이나 이슬람 단체로부터 자칫 비난을 비난에 시달릴 것이라고 우려하여 무시해 버렸다 또 한달전에 한 FBI 지부에서 프랑스 국적의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의심스러운 행동으로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판단해 구속을 했지만 본부에서는 요원임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서 영장을 기각했다 이처럼 여러 번 테러를 미리 예방 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복합적인 이유로 인한 상부의 정보 실패로 인해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을 포함한 사망 또는 실종자는 2,500~3,000명이 발생하였다.
정보의 성공ㆍ실패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제2차 세계대전 시에 영국 처칠 수상의 전략적 정보 활용은의 결과로 노르망디상륙작전의 시간과 장소를 숨겨 적을 기만한 포티튜드 작전이었다 그 결과 영국이 2차 대전 초기의 열세를 극복하고 인류 역사상 치열했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반대로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2002년 미국 부시 행정부가 사탕발림 보고서에 넘어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오판하여서 전쟁을 일으킨 사건이다 정보의 궁극적 소비자인 최고 정책 결정권자의 성향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보 수용성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정보의 정치화로 인해 정책 결정권자는 항상 강한 유혹과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초래하지 않도록 항상 유념해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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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 속의 정보전쟁에 대해서 소개해 준다. 사실 지금까지의 첩보전, 정보전 등은 비밀정보를 어떻게 얻어냈는지에 관한 내용이 많았던 것 같다. 적어도 영화나 소설 등에선 그랬던 것 같다. 007 첩보원, 일본에 대항한 독립군의 비밀작전, 해커, 암호를 풀어낸 천재 등등 정보를 찾아낸 영웅에 초점이 맞춰져있던 것 같다. 하지만 정보는 얻어냈다고 끝이 아니다. 그걸 최종 결정권자가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정보전쟁에 대한 이 책의 접근법은 조금 다르다. 조금 더 멀리 떨어져서 보는 느낌으로, 특정 국가나 조직이 획득한 비밀정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냉전 속에서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를 촉진시킨 CIA의 비밀공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표적인 것이 아프가니스탄 반군 지원과 폴란드의 자유노조 지원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반군에게 무기를 공급해줌으로써 소련군이 결국 철수를 하게 만들었고, 소련이 공산국가를 서방에 내주지 않겠다는 선언인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도록 만들었다. 제3세계 국가들 사이에서 소련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타격을 얻게 된다. 이후에 CIA는 동유럽 국가들에 자유주의 사상을 주입하기 위해서 폴란드 자유 노조를 지원했다. 많은 재원과 자원과 정보를 제공했고, 결과적으로 소련의 위성국 중에서 처음으로 자유선거를 실시한다. 이는 이후 연쇄적으로 동유럽 국가 사이에서 퍼져나가게 된다. 이 모든 공작활동은 은밀히 진행되었으며,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것은 철저히 가려졌다. 이 책에서 냉전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정보전의 개념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엔 정보전쟁이 전투였다면 지금은 비밀공작에 가깝다. 과거엔 얻어낸 정보로 기습 공격을 한다거나 하지만 지금은 정보를 얻어도 드러나서 뭔가를 하지 하기보다는 끝가지 어둠 속에서 간접적으로 조종을 한다. 이제 정보전쟁은 전면전이 아니라 외교.경제적인 압력을 넣는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는 1961년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CIA를 방문해 한 연설이다. "여러분의 성공은 기억되지 않지만, 실패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인데 정보기관은 본인의 성공을 자랑해서도 안되고 자랑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자랑을 하는 순간 본인들의 역량이나 정보가 조금이라도 셀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실패했을 때는 굉장히 큰 타격을 얻고 심한 질타를 받게 된다. 세계2차대전에서 독일군의 암호인 에니그마를 해독해서 종전을 2년 이상 앞당겼다고 평가받는 '앨런 튜링' 역시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그의 활약이 공개되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을 괴롭혔던 독일의 에니그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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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정보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우리 생활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TV프로그램 중 흥미롭게 봤던 '서프라이즈'의 전쟁 관련 여러 에피소드도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 책의 부제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 사이버 전쟁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비밀들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성공한 정보, 승리의 열쇠가 되다.
"여러분의 성공은 기억되지 않지만 실패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1961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CIA를 방문해 행한 연설의 일부입니다.
저는 세계 전쟁하면 여러 전쟁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 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 시작은 1914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암살되면서 시작됩니다. 범인은 세르비아 청년이었죠. 오스트리아는 전면전쟁시 러시아가 지원할 것 같아 독일에 지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독일은 러시아의 참전시 전면 지원한다는 백지 위임장을 약속하게 되고요. 이러면서 동맹국(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주축) 대 연합국(영국*프랑스*러시아가 주축)으로 나뉘고 미국은 중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런 유럽에서는 전쟁이 장기화되며 중립국이나 상대 진영의 국가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외교전이 계속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계속 고립주의를 고수하던 미국의 공분을 산 '치머만 전보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1917년 런던 주재 미국대사에게 영국 외무장관이 건넨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의 외교전문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앞서, 영국은 전쟁 발발과 동시에 독일에 대한 정보 수집 활동을 대폭 강화하게 되는 과정으로 우선 대서양에 설치된 독일의 해저 통신 케이블을 절단해 버립니다. 그러면서 입수되는 독일의 암호 전문이 늘자 해독 전문부서인 '40호실'을 별도로 설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부서에서는 미국의 전문도 감청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에게 보낸 암호 전문을 입수하게 된 것입니다. 1917년 패전을 거듭하던 러시아에서 마침내 혁명이 발생해 동부전선이 무너지면서, 레닌의 볼셰비키가 공산혁명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1918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조약을 독일과 체결하며 연합국 대열에서 완전히 이탈해 버립니다. 이러면서 독일은 연합국에 대한 대공세를 전개해 보지만, 연합국은 미국 원정군의 지원을 받으며 방어를 하게 됩니다. 드디어 4년 반 동안 계속된 세계대전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영국 정보전의 승리가 연합국 전체의 값진 승리를 이끌어 낸 것입니다. 영국은 제일 먼저 전문 정보기관을 설립해 운영한 나라라고 합니다. 하지만 영국도 보어전쟁 이전에는 임시기구의 형태로 전쟁이 끝나면 해체하는 방식을 번복하다가 보어전쟁에서 성과를 거두며 전문 정보 조직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주장이 반영되어 1909년 국방부에 'MI-5'로 불리는 방첩 전문기관의 신설을 시작으로 1946년 정부통신본부(GCHQ)로까지 이어집니다. "정보력이 곧 국력"이라는 걸 경험한 영국은 계속해서 정보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영국이란 나라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태평양전쟁, 제2차 세계대전, 중동전쟁, 냉전에 쓰여 승리를 이끈 정보들에 대한 이야기도 꼭 읽어보시기 바래요.
<실패한 정보>
독일에서 히틀러가 1934년 집권한 이후 주변국들을 차례로 병합하여 나가자, 소련은 주변국과 히틀러를 막으려 했으나 결렬돼 버리면서, 급기야 1939년 독*소 양측이 유럽을 반분하자는 불가침조약을 독일과 체결하게 됩니다. 독일이 주변국을 점령해나가면서 다음 차례는 소련이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스탈린은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애써 외면해버립니다. 스탈린이 독일의 공격 징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는 소련 정보기관 책임자들이 스탈린을 두려워해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군 정보기관 책임자인 골 리코프 부장은 독일군의 공격 징후와 관련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스탈린에게 사실의 보고보다는 첩보원들이 적의 역정보에 속아 넘어갔다고 질책해 버립니다. 자신의 부하인 도쿄 주재 정보원 조르게도 이런 판단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정보기관 책임자들이 제대로 된 정보 보고를 하지 못한 것이 소련의 군사 준비 태세 부실로 연결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독일군의 공격이 있기 한 달여 전 국방장관 티모센코 원수와 참모총장 주코프 대장은 선제공격을 요구하지만, 스탈린은 이에 반대를 합니다. 그리고 독일의 공격이 있기 11일 전 또 군사 대비 태세의 상향을 허가해 달라고 강력 요청하지만 이것 또한 거부합니다. 1941년 히틀러는 사상 유례없는 대군을 투입해 바라 바로 사 작전을 개시하게 됩니다. 당시 소련의 병력은 오히려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대비 부족으로 인해 초기 피해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이런 지도부의 무능으로 러시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 것입니다. 이후 이러한 악전고투 속에서 소련은 2차 대전 전승국이라는 영광을 안게 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너무 막대했습니다. 스탈린에 대해 히틀러와 비슷한 인물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해왔었는데, 구체적으로 자행한 일을 읽으면서 저 또한 분노가 일더라고요. 이 책에 의하면 스탈린으로 인해 희생된 자의 수가 히틀러가 유태인에게 행한 만행을 뛰어넘는다고 합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이것 말고도 태평양전쟁, 베트남전쟁, 9.11테러,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보의 실패로 인한 대제앙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보의 성공*실패 요인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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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읽게 되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