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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이 서려 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 ‘5월의 노래’ 가사 중 책을 덥고 한동안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았다. 내 조국(이런 말 쓰면 민족주의를 불러 일으키는 단어 같지만)에서 이런 만행이 불과 30여 년 전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선연한 붉은 피만큼이나 심장박동수도 올라가고 분노가 인다. 아직 젊기에 분노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기에 분노하고 두 눈 부릅뜨게 되는 것이다. 저 노래 가사를 고무줄처럼 양끝을 잡고 당기고 당겨서 몇 만 개의 언어로 27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가사를 늘일수록 밀도가 낮아지는 공간에 사람을 추가하고 사건을 넣고 그가 꼭 하고 싶었던 구체적인 이야기를 넣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소설이, 그리고 어찌 보면 역사서가 되었다. 가장 모른 척 했고 모르기도 했고 알면 다친다며 꼭꼭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갑자기 옷을 확 벗겨버리듯이 날 선 현장 그대로를 담아내버렸다. 그래서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가슴을 부여잡고 입술을 깨문 채 한동안 침묵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 한창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바닷가 마을에서 고기잡이 하며 살고 있다는 정도였다. 구속과 제도를 벗어나 거친 바다만큼이나 휘몰아치는 가슴을 지녔을 것 같은 중년의 남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글에선 왠지 소금기 가득한 짠 내가 날 것 같고 파도처럼 일렁이는 이야기로 독자를 들었다 놓았다 할 것이라고 상상했었다. 만나야지, 만나야지 했는데 그나마 제목이 고와 보이는 『꽃의 나라』로 먼저 만났다. 폭력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있다면 학교와 군대라고 생각해왔다. 지금은 변했으리라 생각한다. 군대는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학교 현장만큼은 폭력을 대변하는 체벌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권위를 악용한 권력 남용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체벌이 위험한 이유는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점점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다. 맞는 것도 때리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 또는 맞을 짓 했다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폭력의 일상화’라는 용어로 명료하게 일축할 수 있다. 군부 독재 시절이라고 불리던 6,7,80년대를 돌아보면 나라의 곳곳이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무리 우리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이 어쩌고 저쩌고를 명시해 두어도 국가라는 이름 아래 휘두르는 폭력은 개별 국민이 저항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국민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고 전체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희생 정도는 감내해야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공권력이라 불리는 것들의 힘은 엄청나서 그리고 이제 막 식민지와 전쟁에서 벗어난 국민들에게 몰아닥친 혼란 수습에는 이런 힘의 구속과 억압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는 곳이 학교와 군대가 아니었나 싶다. 한창훈은 그 두 가지 모두를 빼 들었다. 1차로 폭력을 길들이는 곳, 바로 학교. 시골에서 도시로 고등학교를 진학한 ‘나’의 이야기다. 열일곱 남자 아이가 배정받은 학교는 속칭 문제아들이 가는 전통을 가진 고등학교. 배치고사 제도 도입 후 그나마 나아졌다하더라도 전통의 이미지는 화석처럼 새겨져 있기에 그만큼 교내에서 매로 시작하여 매로 끝나는 전통마저 굳건히 지키는 학교였다. 교사로부터의 폭력, 선배들로부터의 폭력, 동급생들끼리의 폭력. 물리적 힘으로 서열을 매기고 짐승 같은 먹이 사슬을 가지고 있는 곳. 그곳이 정의를 배우고 상식을 배우고 교양을 쌓는 학교가 지닌 검은 이면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학교에서 폭력을 배우고 복종을 배우고 굴종을 체화한다. 수직적 관계를 당연시 하고 거기서 오는 안정이 전체를 위해서 마땅한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을 피해 도시의 학교까지 진학했건만 그가 도시로 나와 배우는 것도 폭력과 야만이었다. 짐승의 소굴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축적되어온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은 강해져야한다는 일념만 커지게 만들었다. 싸움 기술을 연마하며 자기 방어를 위해 학교내 조직인 유피파까지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생물 교사의 “너희들이 왜 짐승이 아니고 사람인지를 생각해보기 바란다.”(62p)라는 말이 왜 그리 잊히지 않는지. 왜 자신들이 이렇게 짐승의 길로 가고 있는지, 왜 그들의 눈앞에 놓은 현실은 정글이나 다름 없는지, 열일곱 소년에겐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심장이 시키는대로 강해져서 아무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생각뿐이다. 개인의 정체성 혼란도 버거울 시기에 70-80년대 십대들은 온전히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없는 시대적 배경을 가진 세대였다. 개인으로서 내가 보호 받아 마땅할 '인간의 존엄'이란 가치는 헌법 조각 나부랭이에나 있는 박제품과 뭐가 다를까. 현실에서는 그런 박제품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방어를 위해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줘야하는 시대가 가져온 건 더 큰 폭력과 야만과 권위주의였다. 서열이 확인되는 순간 꼬리를 내리고 심지어 허연 배꼽까지 내보이며 등을 비벼야 하는 시대. 그러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개도 밥그릇을 건드리면 으르릉거리는 법. 야만의 시대에 숨어 있던 이성과 정의와 분노가 꿈틀댄다. 들꽃처럼 피어나는 광장의 대열. 그곳은 빛고을 광주 금남로다. 소설 후반부는 작가가 굳이 '광주'라는 지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독자 누구라도 5.18 광주 민중 항쟁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래서 더욱 한창훈의 이력이 궁금해졌다. 혹시 그는 금남로 현장에 있었던 시민이 아니었을까 싶어서. 전남 여수 출생이라는 책날개에 박힌 이력만으로 한창훈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자전적 소설일 수 있겠구나 라는 판단을 한 건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때문이었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다."(272p) (물론 화자가 '나'이긴 했지만)
"교사가 아무런 설명없이 한 아이를 때리면 첫 날은 그냥 얻어 맞는다. 그는 맞고 나서 자신이 왜 맞았는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유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으면 자신이 저질렀던 사소한 실수, 복도에서 떠들었다가 교실 바닥에 코 풀었던 것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둘째 날 교사의 매질이 되풀이 되고, 여전히 맞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면, 불만이 쌓인다. 억울하기 때문이다. 억울함은 아픈 것만큼이나 참기 힘든 것이다. 억울함은 모범생을 하루 아침에 문제아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청년 하나가 돌맹이로 군인을 맞히고 도망쳤다. 그는 추격을 받아 잡혔고 짓밟혔다. 사람들은 "맞아 저런 방법이 있었지", 깨달은 것처럼 청년을 짓밟는 군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사람들이 기폭제가 되었다. 슬금슬금 옮겨다니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손에 들 수 있는 것들을 움켜쥐기 시작했다."(189p) [오월의 노래]는 대학생 때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니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알아갔다. 고등학교까지는 학교가 우리를 보호해 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세상의 것들과 차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 장벽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져버리니 몰아닥치는 많은 것들은 조금 버겁기도 했다. 그 중 5.18 광주 민중 항쟁(공식 명칭 :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영상 자료였다. 글로만 만났더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걸 비웃기라도 하듯 필름 사진뿐만 아니라 활동 영상까지 남아있었다. 당연히 충격이었다. 저런 일이 20년 전 우리나라에서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믿어선 안된다는 정체불명의 뭉툭한 거부감도 일었다.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군인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국민을 몽둥이, 칼 심지어 총, 나중에는 탱크까지 무작위로 시민들을 때려 눕히고 대검으로 찌르고 공격당하면 총으로 쏴버리고 저항 능력이 없을 때까지 짓밟아 축 늘어지면 트럭에 실어 가는 장면. 아직도 기억나는 영상들을 한창훈은 여기에 타이프로 남겨놓았다. 왜 80년 5월 광주는 섬이 되어버렸을까.
마치 학기초가 되면 담임이 반아이 중 한 명만 조져서 나머지 아이들이 자동으로 말을 잘 듣게 만드는 전략을 쓰는 것처럼 광주를 타깃 삼아 고립, 단절, 닥치고 잡아가는 무법지대로 만들어 버렸다. 그 현장에 마치 한창훈이 서 있었던 것 같다. 도저히 주워 들은 것만으로 이렇게 생생하게 써낼 순 없다. 이리도 절제된 분노로 표현할 순 없다. 시민들이 주먹을 움켜쥐고 물러가라고 애타게 외쳤건만 핏빛 광주를 발판으로 '사령관은 대통령이 되'(272p)었다. 내가 그 시대에 그곳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는 저절로 그런 가정을 하게 된다. 대문을 닫고 빗장을 쳐서 방안에 꼼짝도 않고 있었을까, 확성기에 대고 함께 하자고 외치며 공포의 거리를 가르고 있었을까. 군중 틈에 존재감 없이 끼여서 작은 돌멩이 하나 던지는 시늉이라도 했을까. 가장 궁금한 건 그 곳 광주로 급파 되었던 군인들은 아무런 트라우마 없이 잘 살아 가고 있을까 였다. 그들도 시켜서 했다지만 시신의 얼굴에 오줌을 갈겨야 했을 정도로 짐승보다 더한 짓까지 명령 받았을까. 그들도 광주시민들처럼 미쳐갔던 걸까. 자기 방어를 위해 무장한 몸으로 마구잡이로 시민들을 때려잡았던 것일까. 작년에 한 라디오 프로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의 이요원이 맡았던 역의 실제 주인공과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날 이후 광주에서 살지 않는다. 광주와 최대한 멀어져 강원도(경북?) 어딘가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힘들어했고 떠올리기 싫어했다. 그날의 기억을 당시에 광주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그녀가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의 거처를 어찌 알고 찾아온 중년의 남자가 있었노라고. 무릎 꿇고 울면서 사죄만 했다고. 그 중년의 사내는 당시 광주에 파견된 군인이었다. 자신도 그 동안 살기 힘들었노라고, 그 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어 지금껏 시달리노라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과 상처를 남겼다. 정작 그날의 죽음과 피로 아직도 잘먹고 잘사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 더러운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평가는 미루라고 하는 사람마저 있다. 내 가족이, 내 이웃이, 내 자식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럴 때 보면 세상은 여러 개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사고를 가지고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다. 그들을 꽃의 나라로 보내고 싶다. 너희들의 세상에서 억지로 끌어내려 다수 민중의 삶을 살아보라고 보내버리고 싶다. 나는, 스무살 때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가슴 한켠이 아프다. 5월만 되면 더욱, 그렇다.처음 망월동 묘지에 갔을 때 보았던 그 사진 속 장면들 잊을 수 없다. 작가 한창훈은 핏빛으로 만들어버린 그 사람들에게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62p) 상처는 제대로 아물지도 못하고 흉터로 남아 심지어 곪아 썩기도 한다. 그 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살을 하고 그 아래 세대가 고통을 이어 받고. 아직도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 장본인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왜 아무도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하는가. 어째서 피의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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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지극히 평범했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 전부였으니까. 성적과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을 제외하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 어른이 되어 누구나처럼 결혼하고 아이 낳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사는, 동화 속 같은 삶이 지속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처럼 평탄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대학에 실패하는 순간까지였지만 그럼에도 지방 작은 도시에서의 삶은 그랬다. 주변의 친구들도 다 그만그만했으므로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아이는 소설이나 드라마에 존재한다고 믿을 만큼 순진했었다. 그래서 아마도, 《꽃의 나라》(연재 명: 남쪽 역으로 가다) 연재가 시작되었을 때, 한창훈 작가의 시작 말에서 ‘시민사회 구성원의 덕목’이니 ‘미움의 힘’이니 하였어도 그저 단순하게 자신의 삶이 조금 투영된, 고교 시절의 이야기를 하려나보다, 했다. 고등학생의 생활이라는 게,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음직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성장소설이란 늘 그랬으니까. 소설은 열일곱 살의 소년이 고향인 항구를 떠나 큰 도시로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도시로의 진학은 가정폭력의 주범인 아버지 곁을 떠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늘 화난 얼굴로 눈치를 보게 만든 아버지, 그 아버지 곁을 떠나 큰 도시로 온 첫날, 소년은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다며 좋아한다. “아버지와도 그랬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의 해방감 이면엔 또 다른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맞은 이유라면 ‘단 하나, 멀고 낯선 곳이기 때문이다. 군대처럼’. 추첨이었지만 폭력의 횟수와 강도가 전국 3순위 안에 든다는 고등학교, 다른 곳에서 제적당한 아이들까지 모두 받아주었기에 학교에는 바보 아니면 깡패인 아이들로 바글거린다는 곳. 그 학교에서의 생활은 이미 예정된 폭력이었을 거다. 매를 들어야만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란다고 생각하는 교사에겐 어떤 이유에서든 매가 날아왔고, 학교 내 폭력조직은 그나마 대응할 수 있는 조직으로 들어가면 맞지는 않았다. 가정폭력, 이어지는 학교와 사회폭력까지, 언뜻 느끼기엔 무거운 주제이지만 고통스러움 속에서도 유머는 늘 존재하듯이 소설 속 한창훈 작가의 위트는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칠순이 넘은 할머니의 넋두리에 낄낄거리고, 동네 건달 진구와 벙어리 여자의 묘한 관계에 호기심이 동하며, 고향 친구인 영기와 진숙의 순수한 사랑을 부러워하는 인호와 소년의 행동에 웃음이 나온다. 또 건들거리는(!) 박정화와 키스를 해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찬 소년의 엉뚱한 행동에서 열일곱 살, 소년의 생활도 여느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래, 열일곱 살 소년의 삶에 폭력의 물이 들었다고 해도 누구나 다 똑같아, 라고 생각할 무렵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참혹한 폭력이 다가왔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군인들은 뛰어내리자마자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다가오는지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 자국의 군인이 아무 죄도 없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이라면 자국의 군복을 입은 저들이 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가르쳐주는 이도 없이 시민들은 맞고 죽어야 했다. 소년은 꿈속에 들어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꿈을 드디어 꾸고 있다고. 연재를 하는 동안 조금씩 폭력에 물들여가는 소년을 보면서도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몰랐다. 그저 학교 폭력과 연관된 이야기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2부로 넘어가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오래 전의 일이고, 그동안도 몰랐던 일은 아니었지만 인호 아버지의 말처럼 내가 경험하지 않았고 ‘죽지 않았’으니 ‘레크리에이션’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그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했지. 마치 내가 살았던 시대가 아닌, 오래 전 역사를 공부 하듯 그렇게 넘기고 말았던 일이었다. 한데 이토록 생생하게 내 눈앞에 그때의 상황이 재연되면서부터 나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부터 들었다. 그리고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아니, 난 그동안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구나. 한창훈 작가는 매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주인공처럼 우리는 가정과 사회의 폭력은 피하기도 하고 합의도 하면서 적응해나가지만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을 만나면 철저하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연합뉴스) 《꽃의 나라》는 그런 소설이다. 그때의 일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겐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전해 위로를 주고, 그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와 같은 사람에겐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고는, 있으라고, 말해준다. 책을 다 읽은 후 소년이 그곳에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아니, 어차피 일어난 일이었으니 친구가 죽고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직접 보면서 받았을 상처를 어떻게 보듬고 살아왔을까,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국가의 폭력을 볼 때마다 소년은, 그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또 어떤 심정일까? 오월은 꽃이 피는 계절이다. 유난히 흰 꽃들이 많이 핀다고 한다. 이제 그 꽃들을 보면 그 아름다운 봄에 피지도 못하고 쓰러져간 소년과 소녀들이 생각날 것 같다. "사람만이 먹이나 환경과는 상관없이 같은 종족에게 이런 상처를 남긴다. (...) "하지만 그것을 사람의 특징으로 삼는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겠니? 그러니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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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파워를 이야기 할 때 이사람 만한 파워가 또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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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사나이, 거문도 작가, 라는 수식어가 이번 소설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년에 나온 작가의 바다 이야기에 아직도 젖어있던 나는 이번 소설이 인터넷에 연재될 때에도 계속 이상한 생각만 들었다. 왜, 뭍 이야기만 나올까, 바다 이야기, 섬 이야기는 없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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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여름과 가을의 경계(모호하지만)에 이 책을 읽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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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대통령이 되었다’는 문장을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한 장면이 이 문장 하나로 막이 내려지는 듯 보여 거북함이 가시질 않는다. 역사가 민중이 폭력 앞에 굴종하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 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한창훈 장편소설 <꽃의 나라>는 진부할 정도로 많이 다루나 결코 진부할 수 없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열일곱 소년은 고등학교 진학하며 들뜬 마음으로 대처 생활을 시작하지만 첫날부터 폭력에 노출되고 만다. 꼬투리 하나 잡으면 그게 맞아야 마땅한 이유가 되는 세상에 들어선 거다. 입학한 학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동급생간의 폭력은 물론 전통처럼 지켜온 선배의 폭력과 학생을 길들이기 위한 교사의 대놓고 휘두르는 폭력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폭력이 존재해야만 사회 체제가 바로잡히기라도 한다는 듯 소년은 국가 폭력과도 맞닥뜨린다. 체계적인 대규모 폭력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목도하면서 폭력의 속성을 터득하는 소년은 눈부셔야 할 십대의 기억을 잃어가며 음지식물처럼 성장한다. 처음 찾아온 사랑의 감정에 허우적거리는 일도, 친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도 먹구름은 가려버렸다.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게 가려진 역사의 일부분을 다시 들추어내어, 작가는 소년이 재학 중인 고교의 생물 교사 입을 빌려 말한다. 너희들이 짐승이 아니고 왜 사람인지를 생각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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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인가 예술성인가. 구차한 테마다. 예전에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가령. 고딕 메탈은 엄청 예술적인 음악이지만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다. 고로, 예술성이 높은 음악은 대중에게 인기가 없다, 고 맘대로 단정지었다. 정작 고딕 메탈은 북유럽에서 인기가 있는 음악인데 말이다. 물론 아이돌 음악에 비하면야 비주류겠지만 여하튼 그땅에선 나름 골수 팬도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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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광주의 그 엄청난 일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때 국어 선생님때문이었다. 조별 발표 수업에서 우리 조는 광주를 다루게 되었고, 시립도서관까지 찾아가 자료를 조사하는 보기드문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우리들은 뭔가 학교에서는 결코 가르쳐 주지 않는 엄청난 사건을 파헤치는 기분이었고 발표는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국어 선생님은 중간중간 특유의 열정적인 손놀림으로 설명을 덧붙여 주셨고, 우리들의 발표는 그렇게 끝났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카락 길이와 치마 길이에 잔뜩 신경 쓸 나이인 우리들에게 광주는 국어시간의 짧은 발표로 스쳐지나갔고 3학년으로 올라가던 그 해에 국어 선생님은 결혼과 동시에 학교를 그만 두셨다. 상당히 진보적이라고 생각되던 선생님의 갑작스런 결혼은 뭔가 모를 허전함과 배신감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선생님을 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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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에 몸부림치는 아이들, 폭력에 무뎌져가는 어른들 더 큰 꿈을 품고 어렵게 고향을 벗어나 도시에 안착했던 열일곱 소년 '나'. 그는 꿈의 첫 단추를 채우기도 전에 먼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을 만난 것이다. 도시의 매력에 빠지기보다는 폭력을 먼저 받아들여야 했고, 그 안에서 혼란스러워하며 그 폭력에 스스로 대응해가는 과정을 어렵게 터득해야만 했다. '나'는 싸움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공부를 잠시 뒤로 미룬 채 폭력에 대항하기로 결심하고는 교내폭력서클에 들어간다. 집단에 포함되는 것이야말로 폭력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하나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클에 가입한 아이들은 아무 이유 없이 상대방 서클의 아이들을 향해 으르렁거린다. 하지만 그 어느 쪽 누구도 서로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폭력은 적절한 균형이 맞았을 때 저절로 잦아들게 된다는 점을 아이들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이 기우뚱한 폭력의 균형. 아마 그것은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고등학생 시절, 그 시절을 관통하는 사회적 키워드를 말하는 것일 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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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해본 것인데 이 소설을 읽고나서는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한순간에 빠져들게 만들어버리는 매력이 있다. 소설 속 현실로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 속 그 장소 그 시간에 내가 서 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내가 바로 저 상황에 처해있었다면, 나는 군인을 향해 돌을 던지며 도망다니는 쪽이었을까, 아니면 집문을 걸어잠그고 꼼짝도 안하고 숨어있는 쪽이었을까. 확성기로 도와달라고, 우리를 잊지말라고 외치던 여자처럼, 나도 그럴 수 있었을까. 이렇게 소설 속에, 소설이지만 현실이었던 그 시간, 그 장소에 나를 끼워넣어보면서 나는 과연 어떻게 했을 것이며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라고 무한정 고민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주인공 '나'가 가족을 손아귀에 잡아쥐고 구속하려는 아버지를 떠나기 위해 도시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시작한다. 도시로 떠나오면서 나이 든 할머니와 벙어리여자가 사는 집에서 친구 '인호'와 함께 살게 된다. <꽃의 나라>에서 표현하는 고등학교의 모습은 역시나 폭력으로 그려졌다. 선생도 학생을 때리고, 학생도 학생을 때린다. 그러고보면 예나 지금이나 학교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폭력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없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지금이야 학생체벌이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 되어버려서 선생이 학생을 때리는 일은 줄어들고 오히려 학생이 선생을 농락하는 일이 빈번해져버렸다. 어찌됐든 학교 내에서도 껌좀 씹고 힘 좀 쓴다는 패거리들이 둘 셋 정도는 나뉘는게 기본인데 이 소설에서 역시 무슨무슨 파니 어떤 파니 하는 것이 등장한다. 주인공 '나'도 파에 속하게 되고 아무 이유 없이 맞기도 하고 또 때리기도 하면서 전형적인 청소년기를 보여주는 그러한 장면들이 속속들이 펼쳐진다. 청소년기를 표현할 때 폭력이 빠지지 않듯 등장인물들의 사랑도 물론 빠지지 않았다. 주인공은 여자와의 첫경험보다도 키스에 집착하는데 '정화'라는 여학생이 바로 '나'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나'가 정화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화의 입술에 집착했던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화에게 시를 편지로 적어 전달해주려하는 모습에서는 영락없는 10대 소년의 순수한 사랑처럼 보였다. 그리고 주인공의 친구 '영기'가 '진숙'이와 예쁜 연애를 하는 것은 나 역시 부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이 때리고 맞고 의리를 확인하고 또 사랑을 할 때 군인들은 들이닥친다.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당했다.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잔인하게 학대당하는 부분에서는 광주민주화의 실제영상이 담긴 다큐멘터리 장면들과도 겹쳐서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하며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 있는지, 여기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군인이 임산부의 배를 총으로 쏴 찢어진 배 사이로 아이가 울고있는 것을 보았다는 시어머니의 말이 나는 아직도 소름이 돋고 잊혀지지 않는다.
10대의 눈으로 바라 본 광주민주화사태는 어떠했을까. 왜 학교는 우리들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가르쳐주고 강요하기만 했으면서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어떤 선생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없느냐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심히 공감이 갔다. 그리고 서로 물고 뜯고 폭력만 행사했던 깡패학생들은 거리에 나가 군인들과 맞서 싸우며 죽어가고 있는데 그 학생들을 훈계하고 나무라던 선생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얼을지. 학생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준 유일한 선생님, 주인공이 유일하게 좋아했던 생물교사만이 학생들과 함께 거리를 뛰어다녔고 왜 군인들이 이러는지에 대한 답을 직접 찾아나서기도 했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여기에서 생물교사의 입을 빌려 하지 않았는가 싶다.
그렇게 사람들은 죽었고, 사령관은 대통령이 되었다. 지금이야 우리는 그것이 폭동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일들이 소리소문없이 묻힐 수가 있었는지 나는 그게 더 무섭다. 우리는 절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꾸만 죄송스럽게도 역사는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고 있는 것만 같다. 요즘들어 소설 작가들이 역사소설을 쓰면서 역사를 잊지말자, 우리의 역사를 지켜내자라고 외치고 있는데 이에 보답하여 독자들은 역사를 기억에서 끄집어내고 또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낄낄낄 웃다가 분노하고 울면서 끝을 맺었다. 그 때 스러져간 젊은 영혼들은 지금의 세상을 보며 웃고 있을까? <꽃의 나라>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들을 또 다시 기억에서 끄집어내서 고맙고 또 미안하다고, 지금의 세상은 우리가 지켜낼테니 부디 편히 쉬고 있어라고, 그렇게 얘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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