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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노래 사람의 나라『꽃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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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이 서려 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 ‘5월의 노래’ 가사 중     책을 덥고 한동안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았다. 내 조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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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이 서려 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 ‘5월의 노래’ 가사 중

 

 

책을 덥고 한동안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았다. 내 조국(이런 말 쓰면 민족주의를 불러 일으키는 단어 같지만)에서 이런 만행이 불과 30여 년 전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선연한 붉은 피만큼이나 심장박동수도 올라가고 분노가 인다. 아직 젊기에 분노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기에 분노하고 두 눈 부릅뜨게 되는 것이다. 저 노래 가사를 고무줄처럼 양끝을 잡고 당기고 당겨서 몇 만 개의 언어로 27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가사를 늘일수록 밀도가 낮아지는 공간에 사람을 추가하고 사건을 넣고 그가 꼭 하고 싶었던 구체적인 이야기를 넣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소설이, 그리고 어찌 보면 역사서가 되었다. 가장 모른 척 했고 모르기도 했고 알면 다친다며 꼭꼭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갑자기 옷을 확 벗겨버리듯이 날 선 현장 그대로를 담아내버렸다. 그래서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가슴을 부여잡고 입술을 깨문 채 한동안 침묵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 한창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바닷가 마을에서 고기잡이 하며 살고 있다는 정도였다. 구속과 제도를 벗어나 거친 바다만큼이나 휘몰아치는 가슴을 지녔을 것 같은 중년의 남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글에선 왠지 소금기 가득한 짠 내가 날 것 같고 파도처럼 일렁이는 이야기로 독자를 들었다 놓았다 할 것이라고 상상했었다. 만나야지, 만나야지 했는데 그나마 제목이 고와 보이는 『꽃의 나라』로 먼저 만났다.

 

폭력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있다면 학교와 군대라고 생각해왔다. 지금은 변했으리라 생각한다. 군대는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학교 현장만큼은 폭력을 대변하는 체벌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권위를 악용한 권력 남용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체벌이 위험한 이유는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점점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다. 맞는 것도 때리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 또는 맞을 짓 했다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폭력의 일상화’라는 용어로 명료하게 일축할 수 있다. 군부 독재 시절이라고 불리던 6,7,80년대를 돌아보면 나라의 곳곳이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무리 우리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이 어쩌고 저쩌고를 명시해 두어도 국가라는 이름 아래 휘두르는 폭력은 개별 국민이 저항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국민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고 전체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희생 정도는 감내해야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공권력이라 불리는 것들의 힘은 엄청나서 그리고 이제 막 식민지와 전쟁에서 벗어난 국민들에게 몰아닥친 혼란 수습에는 이런 힘의 구속과 억압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는 곳이 학교와 군대가 아니었나 싶다.

 

한창훈은 그 두 가지 모두를 빼 들었다. 1차로 폭력을 길들이는 곳, 바로 학교. 시골에서 도시로 고등학교를 진학한 ‘나’의 이야기다. 열일곱 남자 아이가 배정받은 학교는 속칭 문제아들이 가는 전통을 가진 고등학교. 배치고사 제도 도입 후 그나마 나아졌다하더라도 전통의 이미지는 화석처럼 새겨져 있기에 그만큼 교내에서 매로 시작하여 매로 끝나는 전통마저 굳건히 지키는 학교였다. 교사로부터의 폭력, 선배들로부터의 폭력, 동급생들끼리의 폭력. 물리적 힘으로 서열을 매기고 짐승 같은 먹이 사슬을 가지고 있는 곳. 그곳이 정의를 배우고 상식을 배우고 교양을 쌓는 학교가 지닌 검은 이면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학교에서 폭력을 배우고 복종을 배우고 굴종을 체화한다. 수직적 관계를 당연시 하고 거기서 오는 안정이 전체를 위해서 마땅한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을 피해 도시의 학교까지 진학했건만 그가 도시로 나와 배우는 것도 폭력과 야만이었다. 짐승의 소굴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축적되어온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은 강해져야한다는 일념만 커지게 만들었다. 싸움 기술을 연마하며 자기 방어를 위해 학교내 조직인 유피파까지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생물 교사의 “너희들이 왜 짐승이 아니고 사람인지를 생각해보기 바란다.”(62p)라는 말이 왜 그리 잊히지 않는지. 왜 자신들이 이렇게 짐승의 길로 가고 있는지, 왜 그들의 눈앞에 놓은 현실은 정글이나 다름 없는지, 열일곱 소년에겐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심장이 시키는대로 강해져서 아무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생각뿐이다.


개인의 정체성 혼란도 버거울 시기에 70-80년대 십대들은 온전히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없는 시대적 배경을 가진 세대였다. 개인으로서 내가 보호 받아 마땅할 '인간의 존엄'이란 가치는 헌법 조각 나부랭이에나 있는 박제품과 뭐가 다를까. 현실에서는 그런 박제품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방어를 위해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줘야하는 시대가 가져온 건 더 큰 폭력과 야만과 권위주의였다. 서열이 확인되는 순간 꼬리를 내리고 심지어 허연 배꼽까지 내보이며 등을 비벼야 하는 시대. 그러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개도 밥그릇을 건드리면 으르릉거리는 법. 야만의 시대에 숨어 있던 이성과 정의와 분노가 꿈틀댄다. 들꽃처럼 피어나는 광장의 대열. 그곳은 빛고을 광주 금남로다.


소설 후반부는 작가가 굳이 '광주'라는 지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독자 누구라도 5.18 광주 민중 항쟁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래서 더욱 한창훈의 이력이 궁금해졌다. 혹시 그는 금남로 현장에 있었던 시민이 아니었을까 싶어서. 전남 여수 출생이라는 책날개에 박힌 이력만으로 한창훈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자전적 소설일 수 있겠구나 라는 판단을 한 건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때문이었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다."(272p)

(물론 화자가 '나'이긴 했지만)


 

"교사가 아무런 설명없이 한 아이를 때리면 첫 날은 그냥 얻어 맞는다. 그는 맞고 나서 자신이 왜 맞았는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유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으면 자신이 저질렀던 사소한 실수, 복도에서 떠들었다가 교실 바닥에 코 풀었던 것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둘째 날 교사의 매질이 되풀이 되고, 여전히 맞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면, 불만이 쌓인다.

억울하기 때문이다. 억울함은 아픈 것만큼이나 참기 힘든 것이다. 억울함은 모범생을 하루 아침에 문제아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청년 하나가 돌맹이로 군인을 맞히고 도망쳤다. 그는 추격을 받아 잡혔고 짓밟혔다. 사람들은 "맞아 저런 방법이 있었지", 깨달은 것처럼 청년을 짓밟는 군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사람들이 기폭제가 되었다. 슬금슬금 옮겨다니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손에 들 수 있는 것들을 움켜쥐기 시작했다."(189p)



[오월의 노래]는 대학생 때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니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알아갔다. 고등학교까지는 학교가 우리를 보호해 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세상의 것들과 차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 장벽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져버리니 몰아닥치는 많은 것들은 조금 버겁기도 했다. 그 중 5.18 광주 민중 항쟁(공식 명칭 :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영상 자료였다. 글로만 만났더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걸 비웃기라도 하듯 필름 사진뿐만 아니라 활동 영상까지 남아있었다. 당연히 충격이었다. 저런 일이 20년 전 우리나라에서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믿어선 안된다는 정체불명의 뭉툭한 거부감도 일었다.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군인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국민을 몽둥이, 칼 심지어 총, 나중에는 탱크까지 무작위로 시민들을 때려 눕히고 대검으로 찌르고 공격당하면 총으로 쏴버리고 저항 능력이 없을 때까지 짓밟아 축 늘어지면 트럭에 실어 가는 장면. 아직도 기억나는 영상들을 한창훈은 여기에 타이프로 남겨놓았다. 왜 80년 5월 광주는 섬이 되어버렸을까.

 

마치 학기초가 되면 담임이 반아이 중 한 명만 조져서 나머지 아이들이 자동으로 말을 잘 듣게 만드는 전략을 쓰는 것처럼 광주를 타깃 삼아 고립, 단절, 닥치고 잡아가는 무법지대로 만들어 버렸다. 그 현장에 마치 한창훈이 서 있었던 것 같다. 도저히 주워 들은 것만으로 이렇게 생생하게 써낼 순 없다. 이리도 절제된 분노로 표현할 순 없다. 시민들이 주먹을 움켜쥐고 물러가라고 애타게 외쳤건만 핏빛 광주를 발판으로 '사령관은 대통령이 되'(272p)었다.


내가 그 시대에 그곳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는 저절로 그런 가정을 하게 된다. 대문을 닫고 빗장을 쳐서 방안에 꼼짝도 않고 있었을까, 확성기에 대고 함께 하자고 외치며 공포의 거리를 가르고 있었을까. 군중 틈에 존재감 없이 끼여서 작은 돌멩이 하나 던지는 시늉이라도 했을까. 가장 궁금한 건 그 곳 광주로 급파 되었던 군인들은 아무런 트라우마 없이 잘 살아 가고 있을까 였다. 그들도 시켜서 했다지만 시신의 얼굴에 오줌을 갈겨야 했을 정도로 짐승보다 더한 짓까지 명령 받았을까. 그들도 광주시민들처럼 미쳐갔던 걸까. 자기 방어를 위해 무장한 몸으로 마구잡이로 시민들을 때려잡았던 것일까. 


작년에 한 라디오 프로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의 이요원이 맡았던 역의 실제 주인공과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날 이후 광주에서 살지 않는다. 광주와 최대한 멀어져 강원도(경북?) 어딘가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힘들어했고 떠올리기 싫어했다. 그날의 기억을 당시에 광주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그녀가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의 거처를 어찌 알고 찾아온 중년의 남자가 있었노라고. 무릎 꿇고 울면서 사죄만 했다고. 그 중년의 사내는 당시 광주에 파견된 군인이었다. 자신도 그 동안 살기 힘들었노라고, 그 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어 지금껏 시달리노라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과 상처를 남겼다. 정작 그날의 죽음과 피로 아직도 잘먹고 잘사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 더러운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평가는 미루라고 하는 사람마저 있다. 내 가족이, 내 이웃이, 내 자식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럴 때 보면 세상은 여러 개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사고를 가지고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다. 그들을 꽃의 나라로 보내고 싶다. 너희들의 세상에서 억지로 끌어내려 다수 민중의 삶을 살아보라고 보내버리고 싶다. 


나는, 스무살 때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가슴 한켠이 아프다. 5월만 되면 더욱, 그렇다.처음 망월동 묘지에 갔을 때 보았던 그 사진 속 장면들 잊을 수 없다. 작가 한창훈은 핏빛으로 만들어버린 그 사람들에게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62p)

상처는 제대로 아물지도 못하고 흉터로 남아 심지어 곪아 썩기도 한다. 그 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살을 하고 그 아래 세대가 고통을 이어 받고. 아직도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 장본인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왜 아무도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하는가. 어째서 피의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을 수 있는가.


 

 



 
 
YES마니아 : 로얄 g********s 2012.11.11. 신고 공감 13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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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 꽃의 나라,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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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지극히 평범했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 전부였으니까. 성적과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을 제외하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 어른이 되어 누구나처럼 결혼하고 아이 낳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사는, 동화 속 같은 삶이 지속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처럼 평탄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대학에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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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지극히 평범했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 전부였으니까. 성적과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을 제외하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 어른이 되어 누구나처럼 결혼하고 아이 낳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사는, 동화 속 같은 삶이 지속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처럼 평탄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대학에 실패하는 순간까지였지만 그럼에도 지방 작은 도시에서의 삶은 그랬다. 주변의 친구들도 다 그만그만했으므로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아이는 소설이나 드라마에 존재한다고 믿을 만큼 순진했었다. 그래서 아마도,   

꽃의 나라》(연재 명: 남쪽 역으로 가다) 연재가 시작되었을 때, 한창훈 작가의 시작 말에서 ‘시민사회 구성원의 덕목’이니 ‘미움의 힘’이니 하였어도 그저 단순하게 자신의 삶이 조금 투영된, 고교 시절의 이야기를 하려나보다, 했다. 고등학생의 생활이라는 게,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음직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성장소설이란 늘 그랬으니까.  

소설은 열일곱 살의 소년이 고향인 항구를 떠나 큰 도시로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도시로의 진학은 가정폭력의 주범인 아버지 곁을 떠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늘 화난 얼굴로 눈치를 보게 만든 아버지, 그 아버지 곁을 떠나 큰 도시로 온 첫날, 소년은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다며 좋아한다.  

“아버지와도 그랬다. 
얻어맞을 각오를 했지만, 처음으로 내 주장을 드러낸 게 이 도시의 고등학교로 가겠다고 말한 거였다. 아버지는 가족을 보이는 곳에 두고 싶어했기에 나를 항구의 고등학교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것이 그의 통제방법이었다.
앞에만 서면 입이 얼어붙곤 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그 말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작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자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말이 연이어 나왔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 공부만 열심히 하겠다.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뭐 그런 식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멀리 가야 했기에 뒤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항구의 고등학교에 관련해서 들려오는 몇몇 미덥지 못한 소문과 이 도시가 이른바 교육의 도시로 이름나 있다는 점이 도움이 되었다. 그는 마지못해 허락을 했고 나는 보는 눈만 없다면 백 미터쯤 허공에 떠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의 해방감 이면엔 또 다른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맞은 이유라면 ‘단 하나, 멀고 낯선 곳이기 때문이다. 군대처럼’. 추첨이었지만 폭력의 횟수와 강도가 전국 3순위 안에 든다는 고등학교, 다른 곳에서 제적당한 아이들까지 모두 받아주었기에 학교에는 바보 아니면 깡패인 아이들로 바글거린다는 곳. 그 학교에서의 생활은 이미 예정된 폭력이었을 거다. 매를 들어야만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란다고 생각하는 교사에겐 어떤 이유에서든 매가 날아왔고, 학교 내 폭력조직은 그나마 대응할 수 있는 조직으로 들어가면 맞지는 않았다.  

가정폭력, 이어지는 학교와 사회폭력까지, 언뜻 느끼기엔 무거운 주제이지만 고통스러움 속에서도 유머는 늘 존재하듯이 소설 속 한창훈 작가의 위트는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칠순이 넘은 할머니의 넋두리에 낄낄거리고, 동네 건달 진구와 벙어리 여자의 묘한 관계에 호기심이 동하며, 고향 친구인 영기와 진숙의 순수한 사랑을 부러워하는 인호와 소년의 행동에 웃음이 나온다. 또 건들거리는(!) 박정화와 키스를 해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찬 소년의 엉뚱한 행동에서 열일곱 살, 소년의 생활도 여느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래, 열일곱 살 소년의 삶에 폭력의 물이 들었다고 해도 누구나 다 똑같아, 라고 생각할 무렵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참혹한 폭력이 다가왔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군인들은 뛰어내리자마자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다가오는지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
먼저 회사원과 중년 남자들이 얻어맞고 나자빠졌다. 중국집 배달부는 배달통과 함께 넘어졌다. 자전거 바퀴가 허공에서 돌고 우동 국물이 쏟아졌으며 뒤이어 머리통이 깨졌고 군화에 짓밟혀 다리가 부러졌다. (…) 언니의 손을 잡고 가던 소녀가 넘어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소녀를 일으켜세우는 언니의 어깻죽지를 군인이 곤봉으로 때렸다. 언니는 소녀 위로 넘어졌고 다른 군인이 자매를 밟고 넘어갔다. (…) 한 군인이 개머리판으로 그의 뒤통수를 쳤다.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얼굴을 감싼 손에서 붉은 피가 떨어져내렸고, 그 속에 동그란 눈알이 들어 있었다.“ 

자국의 군인이 아무 죄도 없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이라면 자국의 군복을 입은 저들이 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가르쳐주는 이도 없이 시민들은 맞고 죽어야 했다. 소년은 꿈속에 들어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꿈을 드디어 꾸고 있다고.  

연재를 하는 동안 조금씩 폭력에 물들여가는 소년을 보면서도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몰랐다. 그저 학교 폭력과 연관된 이야기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2부로 넘어가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오래 전의 일이고, 그동안도 몰랐던 일은 아니었지만 인호 아버지의 말처럼 내가 경험하지 않았고 ‘죽지 않았’으니 ‘레크리에이션’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그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했지. 마치 내가 살았던 시대가 아닌, 오래 전 역사를 공부 하듯 그렇게 넘기고 말았던 일이었다. 한데 이토록 생생하게 내 눈앞에 그때의 상황이 재연되면서부터 나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부터 들었다. 그리고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아니, 난 그동안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구나. 

한창훈 작가는 매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주인공처럼 우리는 가정과 사회의 폭력은 피하기도 하고 합의도 하면서 적응해나가지만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을 만나면 철저하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연합뉴스) 

꽃의 나라》는 그런 소설이다. 그때의 일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겐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전해 위로를 주고, 그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와 같은 사람에겐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고는, 있으라고, 말해준다.  

책을 다 읽은 후 소년이 그곳에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아니, 어차피 일어난 일이었으니 친구가 죽고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직접 보면서 받았을 상처를 어떻게 보듬고 살아왔을까,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국가의 폭력을 볼 때마다 소년은, 그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또 어떤 심정일까? 

오월은 꽃이 피는 계절이다. 유난히 흰 꽃들이 많이 핀다고 한다. 이제 그 꽃들을 보면 그 아름다운 봄에 피지도 못하고 쓰러져간 소년과 소녀들이 생각날 것 같다.  

"사람만이 먹이나 환경과는 상관없이 같은 종족에게 이런 상처를 남긴다. (...) "하지만 그것을 사람의 특징으로 삼는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겠니? 그러니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j****o 2011.08.24. 신고 공감 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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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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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파워를 이야기 할 때 이사람 만한 파워가 또 있을까?내가 살면서 최고의 낙하산 끈으로 이 사람보다 최고는 없을 듯 하다.내가 회사를 다닐 때 이 사람의 끈(?)으로 들어온 친구가 있었다.사실 이 사람의 끈이 아니어도 이 친구는 충분히 능력이 있었고, 아는 것도 많은 친구였다.하지만 이 친구가 그 사람의 친인척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회사는 술렁거렸다.시간이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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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파워를 이야기 할 때 이사람 만한 파워가 또 있을까?
내가 살면서 최고의 낙하산 끈으로 이 사람보다 최고는 없을 듯 하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 이 사람의 끈(?)으로 들어온 친구가 있었다.
사실 이 사람의 끈이 아니어도 이 친구는 충분히 능력이 있었고, 아는 것도 많은 친구였다.
하지만 이 친구가 그 사람의 친인척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회사는 술렁거렸다.
시간이 흘러 이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한다. 이 친구가 나와 같은 부서였기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 에 참석했다. 하지만 결혼식 분위기가 참 묘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배치되고 그 삼엄한 분위기란.... 이게 뭔일이래?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와 있었다.  우리 회사의 회장, 부회장, 사장...
앞다퉈 인사를 하려고 안달이 난다.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사람이었고,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사람이지만
그는...  결코 미안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를 향해 머리 숙이는 사람들의 심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제 이 책을 읽었다.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갈 수 없는 내용이었고 그래서 더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8살에서 9살에 있었던 일.
같은 나라, 같은 말을 쓰고 배우려고 노력했던 사람들.
왜 그런일을 당해야 하는지, 왜 친구의 죽음을 눈앞에서 봐야하는지
왜 같은 민족끼리 총을 들이대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당했던 사람들...
진실을 말해야 하는 방송이나 언론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친구들이 죽어나가는데 라디오에선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도시는 외부와 단절된 섬이 되어 버렸다.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오지도 못하는 섬이 되어 버린 도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결혼식에서 봤던 그 전직대통령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났다.
내 생에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근데 왜 그렇게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까?
책을 놓고도 한동안 결혼식에서 환하게 웃던 그 사람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환하게 웃을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여전히 황제처럼 군림할 수 있는 사람일까?
너무 떳떳하다 못해 당당한 그 사람을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는 울화가 치밀었다.  그런 사람 앞에서 굽실대는 그 사람들과 함께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그 사람은 죄가 없다고 생각할까? 마땅히 해야할일을 했다고 생각했을까?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게 있다.
그것은 죽을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258)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과 한이 그 어떤 것으로도 면죄될 수 없으니까.
시간은 흐르고 계절이 바뀐다.  언젠가 그도 죽을 것이고 우리의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1.10.21. 신고 공감 6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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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앞에서 선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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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사나이, 거문도 작가, 라는 수식어가 이번 소설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년에 나온 작가의 바다 이야기에 아직도 젖어있던 나는 이번 소설이 인터넷에 연재될 때에도 계속 이상한 생각만 들었다. 왜, 뭍 이야기만 나올까, 바다 이야기, 섬 이야기는 없을까. 바다와 섬이 생명과 자유였다면, 어쩌면 뭍에선 그와 정 반대의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다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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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사나이, 거문도 작가, 라는 수식어가 이번 소설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년에 나온 작가의 바다 이야기에 아직도 젖어있던 나는 이번 소설이 인터넷에 연재될 때에도 계속 이상한 생각만 들었다. 왜, 뭍 이야기만 나올까, 바다 이야기, 섬 이야기는 없을까.

바다와 섬이 생명과 자유였다면, 어쩌면 뭍에선 그와 정 반대의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다루고 정리해 두어서 이제는 "그 일"이 되어버린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하기 위해 작가는 여리고 고운 열여섯 열일곱 소년의 생살을 뭍이라는 전쟁터 위에 내려 놓았다. 사내들은 치고, 박고,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글쎄, 치고 박고 싸우면, 사람들은 다치고 상처 받고, 죽는다.

사람들은 때린 것보다는 맞은 것을 오래 기억했다. 그래서 교사들은 우리를 그렇게 때리는 것이다. 많이 맞은 사람이 많이 때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되풀이를 끊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맞기만 하고 때리지는 않은 첫번째 사람이 될 것이다. 최소한 자식을 때리지는 않을 것이다. (p.55)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을까.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얻어맞은 것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늘 다른 사람의 뜻에 의해 폭력 속으로 내던져졌다. 태어나보니 부모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가 차서 학교에 가는 것 처럼 말이다. (p. 108)

싸움도 중독성이 있다는 말은 포장마차 주인 사내가 했던 말이다. 그것은 중독이라기보다는 술에 취하는 것과 비슷했다. 되돌아설 곳을 못 찾는다는 점에서 그랬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대로 달려들어 때리고 맞았다. 누군가 덤벼들면 또 맞고 때렸다. (p. 119)

하긴, 열일곱 살짜리가 어떻게 세상을 잘 살아낼 수 있겠는가. 저 마당 안의 일흔한 살짜리도 살기가 버거워 날마다 소주병을 차고 있는데. (p.126)

항구도시에서 도망치듯 소도시로 상경해 그곳 고등학교를 다니는 소년은 이리저리 떠밀리듯 혹은 '똥통의 참외'처럼 뒹굴다가 그해, 그 봄을 맞는다. 아무것도 모르고 왜인지도 모르고 그저 놀라고 무서운 마음에 계속 묻는다. 왜요? 씨발, 왜 그래요? 하지만 답을 주는 어른도, 선생님도 없고 소년은 한 가지 약속에 매달릴 뿐이다.

"건강하게 잘 지내."
"너도."
"죽지 말고."
"너도."
살아만 있어. 세상에서 가장 끝까지 지켜야 할 약속은 그거 하나였다. (p.247)

역설적인 책 제목 <꽃의 나라>는 정치나 역사적 해석은 덮어두고, 그저 의문에 찬 열일곱 소년의 눈을 따라서 그 숨가쁜 현장을 보여줄 뿐이다. 1부, 소년이 소도시에서 고등학교를 시작하면서 만나는 낯선 곳의 생활 속 폭력이 시간적 거리를 두고 여유로운 작가 특유의 웃기지만 슬픈 문장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본격적인 폭력의 장, 2부에선 작가가 소년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뛰어 도망다닌다. 흔들리는 화면 속에 소년은 없고 대신 내 옆에 그 아이가 헉헉 거리며 작가의 손을 잡고 뛰고 있었다. 아, 소년과 소녀가 방 안에서 마주앉아 담배빵을 만드는 장면에서, 나는 어쩔줄 몰랐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숨가쁘게, 채 다 울지도 못하고 그 꽃이 흐드러지는 봄 한 가운데서 소년의 소설은 끝을 고한다. 진숙이 문을 나서며 다시 한 번, 소년에게 당부한다."넌 죽지마." (p. 272)

소년은 거기까지가 기억이었노라고 썼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고 울컥 후기에 써 갈긴다. 이제 삼십 년도 넘게 시간은 흐르고 남쪽역에는 수천, 수만 번 쯤 기차가 지났을텐데. 차마, 그 소년에게 물을 수가 없다. "어른이 되니,  좀 낫니?"

y********o 2011.09.07.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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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나라] 말죽거리, 동정 없는 세상에 분노하다
"[꽃의 나라] 말죽거리, 동정 없는 세상에 분노하다" 내용보기
8월 31일. 여름과 가을의 경계(모호하지만)에 이 책을 읽고 싶었다. 한창훈 작가가 그린 <꽃의 나라>. 헌데 참을 수 없었다. 단숨에 읽고, 막 책을 덮으며 긴 한숨을 내쉰다. 핏빛이다. 선연한 핏빛 만발한 꽃의 나라. 1980년 광주다.소설의 느낌을 말하자면,권상우가 주연했던 <말죽거리잔혹사>가 초반 펼쳐진다. 평소 '행복한 사람'이 장래희망인주인공이 여수(짐작이다)에서 대도
"[꽃의 나라] 말죽거리, 동정 없는 세상에 분노하다" 내용보기

8월 31일. 여름과 가을의 경계(모호하지만)에 이 책을 읽고 싶었다.
한창훈 작가가 그린 <꽃의 나라>. 헌데 참을 수 없었다.
단숨에 읽고, 막 책을 덮으며 긴 한숨을 내쉰다.
핏빛이다.
선연한 핏빛 만발한 꽃의 나라. 1980년 광주다.

소설의 느낌을 말하자면,
권상우가 주연했던 <말죽거리잔혹사>가 초반 펼쳐진다. 평소 '행복한 사람'이 장래희망인
주인공이 여수(짐작이다)에서 대도시(광주)로 홀로 유학을 떠나며(고 1이다)
그속에서 겪게 되는 학원 폭력과 당시 시대상이 주조를 이룬다.
성에 대한 관심과 방황, 가족사는 박현욱 작가의 <동정없는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가 김상경(딱 이 소설의 진구와 비슷하다. 진구가 건달이긴 하지만)이 주연한
<화려한 휴가>가 펼쳐진다. 난데없는 군인들의 등장과 난무하는 폭력들.
아무 것도 모르는 시민들의 아비규환과 공포. 죽음과 시체들... 다시 군인들.

이정현(주인공의 자취집 벙어리 아줌마와 유사하다)이 주연한 <꽃잎>이 스러진다.
감당할 수 없는 폭력 앞에 평생 씻지 못할 상처를 입은 1980년 5월. 광주 사람들.
왜? 한창훈 작가는 5월 광주를 되살린 걸까?

'생물교사는 인간의 특징을, 아버지가 있다. 웃음이 있다. 그리고 생각을 한다,라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는 것도 인간의 특징인데 그것은
너무 비참해서 또다른 특징을 찾고 있다고도 했다.' (P229)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 탐욕스러운 독재자의 폭력이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리라.
하여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우리가 앓고 있는 이유는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보다,
미워할 것을 분명하게 미워하지 않아서 생긴 게 더 많기 떄문이다'(P273)

그래서 그는 '다른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어쩌면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고 말했던 작가는, 작금의 시대를 바라보며
야만과 폭력이 판쳤던 1980년 광주를 떠올린 건 아닐까?

아니라면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의 핵심인 '행복하려면 제때 분노하라'란 메시지를
예지받은 건 아닐까? 하여 오월의 광주를 끝끝내 가슴에 묻을 게 아니라,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분노하며 진실과 행동으로 야만의 시대를 고발하는 건 아닐까?

갯사내의 변신이 실로 놀라웠다. 분명 <꽃의 나라>는 분노로 점철된 그의 육성이다.
17살 젊음이 기록한 피의 역사였고, 더 정확히는 한창훈 작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다.(단언한다)
주인공 주위의 친구들만 하더라도, 대부분 패배한 '아버지'들 밑에서 숨죽여 살아온 자식들이다.
학교는 더했다. 늘 패싸움과 선생들의 폭력이 일상인 곳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모두 억압받는
그들에게 현실을 탈피하는 길은 어서 어른이 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런 10대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폭력서클의 가담은 '사람은 외로움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 (P113)'고 했을만큼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 10대들이 1980년 광주를 지나, 지금은 2011년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40대 중후반을 살고 있다. '절대 잊혀지지 않는 상처'를 안은 채로.

1980년은 건드리기만 해도 툭~하고 터져, 활활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현대사의 비극이다.
절대 잊혀지지 않는 상처지만, 점점 쉽게 잊혀지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한창훈 작가는 핏빛 꽃의 나라로 우릴 인도한 건 아닐까?
2011년 작금의 현실 속에서 1980년 광주를 바라본 건 아닐까?

자꾸 아닐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하게 된다. 그만큼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하는
한창훈 작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갈매기의 날갯짓을 뒤로하고,
뱃머리에 앉아 백발을 나부끼며 생의 넉넉한 아름다움, 희망을 말해줄 것 같았는데...

1980년 당시 광주에 살았던 나로서는, 더더욱 읽기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물론 4살 때라 그때가 거의 기억나진 않지만... 내게도(아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상흔처럼 박혀있는 공간이다. 광주. 우린 후대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동안 꽤나 울적한 나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로 말미암아...



t******2 2011.08.28.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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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인지를 생각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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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대통령이 되었다’는 문장을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한 장면이 이 문장 하나로 막이 내려지는 듯 보여 거북함이 가시질 않는다. 역사가 민중이 폭력 앞에 굴종하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 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한창훈 장편소설 <꽃의 나라>는 진부할 정도로 많이 다루나 결코 진부할 수 없는 광주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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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령관은 대통령이 되었다’는 문장을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한 장면이 이 문장 하나로 막이 내려지는 듯 보여 거북함이 가시질 않는다. 역사가 민중이 폭력 앞에 굴종하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 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한창훈 장편소설 <꽃의 나라>는 진부할 정도로 많이 다루나 결코 진부할 수 없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열일곱 소년은 고등학교 진학하며 들뜬 마음으로 대처 생활을 시작하지만 첫날부터 폭력에 노출되고 만다. 꼬투리 하나 잡으면 그게 맞아야 마땅한 이유가 되는 세상에 들어선 거다. 입학한 학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동급생간의 폭력은 물론 전통처럼 지켜온 선배의 폭력과 학생을 길들이기 위한 교사의 대놓고 휘두르는 폭력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폭력이 존재해야만 사회 체제가 바로잡히기라도 한다는 듯 소년은 국가 폭력과도 맞닥뜨린다. 체계적인 대규모 폭력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목도하면서 폭력의 속성을 터득하는 소년은 눈부셔야 할 십대의 기억을 잃어가며 음지식물처럼 성장한다. 처음 찾아온 사랑의 감정에 허우적거리는 일도, 친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도 먹구름은 가려버렸다.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게 가려진 역사의 일부분을 다시 들추어내어, 작가는 소년이 재학 중인 고교의 생물 교사 입을 빌려 말한다. 너희들이 짐승이 아니고 왜 사람인지를 생각하라고.




YES마니아 : 골드 a*****4 2013.12.31.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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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폭력의 본질은 문명일까 야만일까 - 『꽃의 나라』
"국가 폭력의 본질은 문명일까 야만일까 - 『꽃의 나라』" 내용보기
대중성인가 예술성인가. 구차한 테마다. 예전에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가령. 고딕 메탈은 엄청 예술적인 음악이지만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다. 고로, 예술성이 높은 음악은 대중에게 인기가 없다, 고 맘대로 단정지었다. 정작 고딕 메탈은 북유럽에서 인기가 있는 음악인데 말이다. 물론 아이돌 음악에 비하면야 비주류겠지만 여하튼 그땅에선 나름 골수 팬도 많다. 그럼에도.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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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인가 예술성인가. 구차한 테마다. 예전에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가령. 고딕 메탈은 엄청 예술적인 음악이지만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다. 고로, 예술성이 높은 음악은 대중에게 인기가 없다, 고 맘대로 단정지었다. 정작 고딕 메탈은 북유럽에서 인기가 있는 음악인데 말이다. 물론 아이돌 음악에 비하면야 비주류겠지만 여하튼 그땅에선 나름 골수 팬도 많다.

그럼에도. 대중적인 인기와는 무관하게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은 존경할 만하다고 믿는다. 내가 한창훈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다. 문학동네라는 1류 출판사에서 책을 낸다는 사실만으로 한창훈 작가의 인지도는 충분하다고 할 만하지만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쓴 소설을 한 편이라도 읽었다면 한창훈 작가가 대중의 선호와 무관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철저하게 한 가지 주제만 다룬다. 바로 바다다. 여름이면 100만 인파가 모이는 해운대 바다가 아니다.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섬, 항구와 맞닿은 바다가 한창훈 작가가 그리는 바다다. 

20세기에 롤랑 바르뜨와 자크 데리다는 작가가 죽었다고 말했고 폴드만은 독자도 죽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신선놀음적 말장난이고. 현실에서 텍스트는 독자와 작가가 소통하는 공간이다. 둘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날씨가 궂으면 뱃길이 막히는 그곳. 산업화와 도시화가 완성 단계에 이른 한국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근대화를 추진하며 박정희 대통령이 농촌을 버렸다고 하지만, 바다는 버린 적조차 없다. 품었던 적이 없으니.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점심에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셔 저녁에는 가볍게 호가든을 들이키는 도시인에게 한창훈 작가가 쓴 글은 인류학자가 제출하는 민족지 논문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왜 한창훈 작가는 이토록 마이너리티에 집착하는가.

2009년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한창훈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문학이 가진 자의 이야기를 쓴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다. 정치다. 문학은 소외당한 자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다. 나는 동의한다. 그래서 한창훈 작가를 좋아한다. 근대 이전에 섬은 이미 소외받은 자의 터전이었다. 학정을 피해 달아난 사람이 그곳에 정착해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었다. 근대에 그들은 물질문명의 수혜를 가장 나중에 누렸고, 관광 산업 활성화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터전을 외지인에게 내줬다. 그곳에 도시 사람은 팬션을 짓고 유흥시설을 세웠다. 원래부터 살았던 그곳 주민은 예나 지금이나 고단하다. 

그래서. 한창훈 작가가 쓴 장편이 나왔다는 소식에 나는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에는 어떤 섬 이야기를 썼을까, 하는 기대를 걸었다. 섬 이야기가 아니었다. 광주 이야기였다. 경기도 광주가 아니라 광주 특별시. 바로 5.18이라는 역사가 깃든 그곳.

처음에는 의아해했다. 심윤경이 쓴  『나의 아름다운 정원』,  황석영이 쓴 『오래된 정원』은 모두 그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 찾아보면 광주를 쓴 소설은 단편을 포함하면 엄청 많을 것이다. 잃어버린 10년 담론으로 과거 민주화 운동 전체가 부정당하는 이 시기, 광주를 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의미는 찾는다면 무수히 많이 생기겠지만. 모든 소설은 작가의 이야기라고 했던가. 한창훈 작가는 5.18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꽃의 나라』에서 주인공인 '나'는 작가 자신인 셈이다.

1980년 광주는 아직도 현대사에서 가장 극과 극의 해석이 대립하는 장이다. 현대사를 연구한 학자치고 광주를 좌익분자의 선동이 불러 일으킨 내란 사건이라고 규정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러한 해석이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상식이라는 점이다. 나라가 언론 보도를 일체 통제했고, 김영상 정권에서 이루어진 '역사 바로 세우기'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는 기묘한 논리를 내세우며 정치쇼로 끝났다.

소설이 그리는 광주는 어떨까. 『꽃의 나라』에서 저자는 직접적으로 광주 사태의 본질을 그리지는 않는다. 시골에서 올라온 고등학생(나)이 도시의 텃세와 맞서며 성장하다 돌연 국가폭력 앞에서 무력함을 느낀다. 작중 화자는 국군이 도시를 점령한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 주변에 있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영문도 모르고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다. 나는 그 와중에서 살아 남지만, 살상이 남긴 상처는 남았다.

작가의 말에서 한창훈은 소설을 쓰는 내내 힘들었다고 한다. 나도 소설을 읽는 동안 힘들었다.

광주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생물 교사가 처음에 던진 물음에서 질문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생물 교사는 동족을 살상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것도 대량으로. 이것은 문명의 본질일까, 인간이라는 야만적인 동물의 본질일까. 귿내 이전에도 대량 살상은 있었고, 근대 이후 전쟁 무기의 발달로 그 길이 더 쉬워졌을 뿐이다.

호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쓴 『계몽의 변증법』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1.09.24.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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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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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광주의 그 엄청난 일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때 국어 선생님때문이었다. 조별 발표 수업에서 우리 조는 광주를 다루게 되었고, 시립도서관까지 찾아가 자료를 조사하는 보기드문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우리들은 뭔가 학교에서는 결코 가르쳐 주지 않는 엄청난 사건을 파헤치는 기분이었고 발표는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국어 선생님은 중간중간 특유의 열정적인 손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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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광주의 그 엄청난 일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때 국어 선생님때문이었다. 조별 발표 수업에서 우리 조는 광주를 다루게 되었고, 시립도서관까지 찾아가 자료를 조사하는 보기드문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우리들은 뭔가 학교에서는 결코 가르쳐 주지 않는 엄청난 사건을 파헤치는 기분이었고 발표는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국어 선생님은 중간중간 특유의 열정적인 손놀림으로 설명을 덧붙여 주셨고, 우리들의 발표는 그렇게 끝났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카락 길이와 치마 길이에 잔뜩 신경 쓸 나이인 우리들에게 광주는 국어시간의 짧은 발표로 스쳐지나갔고 3학년으로 올라가던 그 해에 국어 선생님은 결혼과 동시에 학교를 그만 두셨다. 상당히 진보적이라고 생각되던 선생님의 갑작스런 결혼은 뭔가 모를 허전함과 배신감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선생님을 잊었다.

1부는,
주인공인 "나"는 드디어 지긋지긋하던 집을 떠나 대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된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린던 날인지. 그러나 "나"의 학교 생활은 아버지의 폭력과 또 다른 폭력이 존재하는 곳이었고, "나"의 삶에서 폭력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인 "나"가 삐뚤어진 17살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름대로의 야무진 계획하에 차곡차곡 살아내고 있다. 17살답지 않은 17살로. 폭력이 난무하는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빳빳하게 다린 교복을 입고, 귀밑 몇 센치까지 정해진 똑같은 머리를 하고, 똑같은 의자에 앉아 각자의 꿈을 꾸던 옛날을 돌아보게 하는 향수에 젖는다. 그리고 1부는 그렇게 끝난다.
라디오에서는 사랑을 기다리는 노래가 계속 나오면서.

2부는,
봄이 오고, 그들도 온다. 영문도 모른채.
절대적인 폭력 앞에 "나"는 물론 모두가 속수무책이다. 전쟁이 난 건가? 저들이 왜 저려는 건가? 누구에게 물어봐야하는가? 대체 우리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결국, "나"는 그렇게 아무것도 알지 못한채 친구를 잃고, 사랑을 잃고, 꿈을 잃는다. 아마...순수함조차도.
"오래지 않아, 사령관은 대통령이 되었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이다."
겨울에는 사랑 노래를 듣다 봄에는 절망을 겪는 것으로 끝나는 <꽃의 나라>...



<꽃의 나라>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에서 흔하디 흔히 보아왔던 새까만 교복 모자를 옆구리에 끼고 달리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고 쌍절권을 휘두르던 근육질의 누군가를 떠올리게도 하고 껌 좀 씹겠다 싶은 언니들의 노래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말이다. 조금은 지루하달 수도 있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었던건...<꽃의 나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기 전까지 잊지 않기 위해.
죽어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w********k 2011.09.08. 신고 공감 2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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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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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에 몸부림치는 아이들, 폭력에 무뎌져가는 어른들소설의 시작은 고등학생 '나'가 지명을 알 수 없는 어느 도시의 남쪽 역에 내리면서 시작된다. 항구의 시골 마을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이제 막 대도시 고등학교에 입학한 열일곱 소년 '나'. 그에게 처음 마주한 대도시의 모습은 낯설고 두렵지만 새로운 학교와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설레고 즐겁다. 또한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거침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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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에 몸부림치는 아이들, 폭력에 무뎌져가는 어른들
소설의 시작은 고등학생 '나'가 지명을 알 수 없는 어느 도시의 남쪽 역에 내리면서 시작된다. 항구의 시골 마을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이제 막 대도시 고등학교에 입학한 열일곱 소년 '나'. 그에게 처음 마주한 대도시의 모습은 낯설고 두렵지만 새로운 학교와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설레고 즐겁다. 또한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내딛는 그의 꿈은 크고 야무져 아름답기만 하다. 사춘기 남자아이의 열망은 집을 벗어나 더 큰 곳, 자신의 꿈을 펼칠 더 넓은 곳으로 뻗어나가 있었던 것. 하지만 그 열망을 품어보기도 전 '나'가 맞닥뜨리는 건 도시의 어두운 이면뿐이다. 도시 뒤편은 같은 또래의 아이들끼리 치고받는 싸움으로 얼룩져 있었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문도 모른 채 누군가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만다.

더 큰 꿈을 품고 어렵게 고향을 벗어나 도시에 안착했던 열일곱 소년 '나'. 그는 꿈의 첫 단추를 채우기도 전에 먼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을 만난 것이다. 도시의 매력에 빠지기보다는 폭력을 먼저 받아들여야 했고, 그 안에서 혼란스러워하며 그 폭력에 스스로 대응해가는 과정을 어렵게 터득해야만 했다. '나'는 싸움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공부를 잠시 뒤로 미룬 채 폭력에 대항하기로 결심하고는 교내폭력서클에 들어간다. 집단에 포함되는 것이야말로 폭력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하나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클에 가입한 아이들은 아무 이유 없이 상대방 서클의 아이들을 향해 으르렁거린다. 하지만 그 어느 쪽 누구도 서로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폭력은 적절한 균형이 맞았을 때 저절로 잦아들게 된다는 점을 아이들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이 기우뚱한 폭력의 균형. 아마 그것은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고등학생 시절, 그 시절을 관통하는 사회적 키워드를 말하는 것일 테다.

역사의 터널을 뚫고 지나온 한 사내의 징하고 찐하고 독한 이야기
소설은 빠르게 몸을 바꿔 학교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학교 바깥이 날마다 소란스럽다는 것을 느낀다. 대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데모를 하기 시작하고 짓눌렸던 사회 모순을 거부하는 민주주의의 물결이 도시를 물들인다. 되풀이되는 데모의 행렬과 매캐한 최루탄 냄새는 어느새 고등학생인 '나'에게까지 일상이 되어 익숙해져간다. 익숙해진 최루탄 냄새만큼 '나'의 의식도 그 데모 열기와 함께 뭔지 모를 정의감에 서서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부르짖음은 사람과 사람을 타고 도시 전체에 울려퍼진다. 도시는 하나의 자유의 울림통이 되어가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온다. 자유에 대한 갈망은 걷잡을 수 없는 하나의 불길이 되어 솟아오른다. 사람들의 모습은 "도도했고 어떤 중요한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으며 무엇보다 자유로워 보였다".(147쪽)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인간이라면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일들이 그곳에서 벌어지게 된다. 순식간에 탱크가 도시를 향해 안개처럼 밀려오고, 군인들이 사람들을 향해 갑자기 총을 쏘아댄다. 총에 맞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탱크와 장갑차의 포격으로 도시의 온갖 건물들이 파괴된다. 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이상한 전쟁이 그곳에서 생생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리둥절해지면서 무언가 꿈을 꾸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나는 어떤 꿈속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꿈을 드디어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 p.186)

도시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이유 없이 쏟아지는 폭력 앞에 사람들이 속수무책 죽어간다. 사람들은 그 이유 모를 폭력을 해석하려 들지만 그 누구 하나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단지, 군인들이 그러는 이유가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서라는 것만 눈앞에 쓰러지는 주검들을 보며 느낄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항하며 죽어간다. 국가폭력 앞에 그 어떤 논리도, 육하원칙도, 법도 무용지물이다. 그저 죽음에 처참히 포획될 뿐이다. '나'는 군인들을 피해 도망치고, 고향 친구는 군인들 총에 맞아 즉사한다.

"길 가던 어린 처녀가 남쪽 역 광장에서 대검에 가슴이 찔렸다. 그녀는 병원에 실려갔고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덤벼들었다. (......) 비명과 고함과 쫓기는 소리가 끝이 없었다."
(/ p.192)

소설은 짧고 긴박한 문장으로 국가폭력 앞에서 무차별적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스스로 폭력에 맞서는 사람들의 정의와 꿈 많은 학생들의 사랑 또한 무참히 짓밟힌 채 도시는 전쟁터가 된다. 그리고 한창훈은 질문한다. 과연 어느 누가 그 국가폭력 앞에 떳떳할 수 있는가? 과연 누가 그러한 폭력에 견뎌낼 수 있는가?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 그래도 봄은 다시 돌아와 꽃을 피운다
전쟁이 휘몰아쳤던 도시가 빠르게 고요해진다. '나'와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은 도시를 떠났거나 모두 죽어버렸다. 아직 죽음에 대해 '나'는 어수룩하기만 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가족을 잃었고,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소설은 다시 삶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며 결말로 향해간다. 하지만 이유 없이 왔다 이유 없이 사라진 그때, 그곳의 일들이 사람들 마음속에 어떤 문양으로 새겨져 있을까?
한창훈은 이 소설을 통해 국가폭력 앞에서는 아무런 저항도, 법도, 인간 실존 자체도 다 소용없다는 비극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그런 시간을 아무 일 없이 건너온 지금, 아직도 그때의 그 죽음들이 현재까지 틈입하여 우리를, 지금 이 현실을 반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창훈은 그때, 그 죽음들을 다시 불러내어 현재를 역설한다. 그 죽음들이 머무는 흰 꽃의 나라로 우리를 데려다놓는다

t****4 2012.01.1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 꽃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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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새벽에 책 읽으면서 빵 터진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내 웃음소리가 이웃집에 들렸을까봐 살짝 눈치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사실 <꽃의 나라>를 읽기 직전까지는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상당히 어두울줄만 알았는데 군인들이 도시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곳곳에 피식피식 웃음이 흘러나오는 포인트가 숨어있다. 물론 데모가 시작되고 군인들의 인간사냥이 시작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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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새벽에 책 읽으면서 빵 터진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내 웃음소리가 이웃집에 들렸을까봐 살짝 눈치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사실 <꽃의 나라>를 읽기 직전까지는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상당히 어두울줄만 알았는데 군인들이 도시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곳곳에 피식피식 웃음이 흘러나오는 포인트가 숨어있다. 물론 데모가 시작되고 군인들의 인간사냥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웃음기는 싹 사라지고 폭력과 죽음, 처절함과 분노와 억울함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한창훈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해본 것인데 이 소설을 읽고나서는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한순간에 빠져들게 만들어버리는 매력이 있다. 소설 속 현실로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 속 그 장소 그 시간에 내가 서 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내가 바로 저 상황에 처해있었다면, 나는 군인을 향해 돌을 던지며 도망다니는 쪽이었을까, 아니면 집문을 걸어잠그고 꼼짝도 안하고 숨어있는 쪽이었을까. 확성기로 도와달라고, 우리를 잊지말라고 외치던 여자처럼, 나도 그럴 수 있었을까. 이렇게 소설 속에, 소설이지만 현실이었던 그 시간, 그 장소에 나를 끼워넣어보면서 나는 과연 어떻게 했을 것이며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라고 무한정 고민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주인공 '나'가 가족을 손아귀에 잡아쥐고 구속하려는 아버지를 떠나기 위해 도시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시작한다. 도시로 떠나오면서 나이 든 할머니와 벙어리여자가 사는 집에서 친구 '인호'와 함께 살게 된다. <꽃의 나라>에서 표현하는 고등학교의 모습은 역시나 폭력으로 그려졌다. 선생도 학생을 때리고, 학생도 학생을 때린다. 그러고보면 예나 지금이나 학교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폭력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없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지금이야 학생체벌이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 되어버려서 선생이 학생을 때리는 일은 줄어들고 오히려 학생이 선생을 농락하는 일이 빈번해져버렸다. 어찌됐든 학교 내에서도 껌좀 씹고 힘 좀 쓴다는 패거리들이 둘 셋 정도는 나뉘는게 기본인데 이 소설에서 역시 무슨무슨 파니 어떤 파니 하는 것이 등장한다. 주인공 '나'도 파에 속하게 되고 아무 이유 없이 맞기도 하고 또 때리기도 하면서 전형적인 청소년기를 보여주는 그러한 장면들이 속속들이 펼쳐진다.





청소년기를 표현할 때 폭력이 빠지지 않듯 등장인물들의 사랑도 물론 빠지지 않았다. 주인공은 여자와의 첫경험보다도 키스에 집착하는데 '정화'라는 여학생이 바로 '나'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나'가 정화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화의 입술에 집착했던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화에게 시를 편지로 적어 전달해주려하는 모습에서는 영락없는 10대 소년의 순수한 사랑처럼 보였다. 그리고 주인공의 친구 '영기'가 '진숙'이와 예쁜 연애를 하는 것은 나 역시 부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이 때리고 맞고 의리를 확인하고 또 사랑을 할 때 군인들은 들이닥친다.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당했다.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잔인하게 학대당하는 부분에서는 광주민주화의 실제영상이 담긴 다큐멘터리 장면들과도 겹쳐서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하며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 있는지, 여기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군인이 임산부의 배를 총으로 쏴 찢어진 배 사이로 아이가 울고있는 것을 보았다는 시어머니의 말이 나는 아직도 소름이 돋고 잊혀지지 않는다.

 

10대의 눈으로 바라 본 광주민주화사태는 어떠했을까. 왜 학교는 우리들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가르쳐주고 강요하기만 했으면서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어떤 선생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없느냐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심히 공감이 갔다. 그리고 서로 물고 뜯고 폭력만 행사했던 깡패학생들은 거리에 나가 군인들과 맞서 싸우며 죽어가고 있는데 그 학생들을 훈계하고 나무라던 선생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얼을지. 학생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준 유일한 선생님, 주인공이 유일하게 좋아했던 생물교사만이 학생들과 함께 거리를 뛰어다녔고 왜 군인들이 이러는지에 대한 답을 직접 찾아나서기도 했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여기에서 생물교사의 입을 빌려 하지 않았는가 싶다.

 

그렇게 사람들은 죽었고, 사령관은 대통령이 되었다. 지금이야 우리는 그것이 폭동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일들이 소리소문없이 묻힐 수가 있었는지 나는 그게 더 무섭다. 우리는 절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꾸만 죄송스럽게도 역사는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고 있는 것만 같다. 요즘들어 소설 작가들이 역사소설을 쓰면서 역사를 잊지말자, 우리의 역사를 지켜내자라고 외치고 있는데 이에 보답하여 독자들은 역사를 기억에서 끄집어내고 또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낄낄낄 웃다가 분노하고 울면서 끝을 맺었다. 그 때 스러져간 젊은 영혼들은 지금의 세상을 보며 웃고 있을까? <꽃의 나라>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들을 또 다시 기억에서 끄집어내서 고맙고 또 미안하다고, 지금의 세상은 우리가 지켜낼테니 부디 편히 쉬고 있어라고, 그렇게 얘기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생물교사가 말했다.

 

'사람은 외로움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

 

 - 꽃의 나라 113p 中 -

 

 "질문 있습니다."

누군가 말했다.

 "뭔데."

 "우리 도시로 온 군인들은 적군입니까, 아군입니까."

 "그런 거 따지지 말고, 너희들은 그저 집 안에서 몸 다치지 말고 잘 지내기 바란다."

 "군인들이 집 안까지 들어옵니다. 그러면 어디로 도망가야 합니까."

 "자, 얼른돌아가라."

 

 알아서들 하라는 소리였다. 그동안 머리 길이와 옷, 신발, 양말, 걸음걸이까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통제하던 학교가

한순간에 그것을 놓아버린 것이다.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겠다는 뜻이었다.

 

 - 꽃의 나라 195p 中 -

d********4 2011.09.0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