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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 자유를 향한 강한 외침이 피를 꿇게 한다. 이 명문이 바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의 한 구절이다. 위 구절과 글의 제목만 봐도 이 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알 것 같다. 그동안 책을 읽으면 반드시 리뷰를 작성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려고 꾸준히 리뷰를 남겼지만 유일하게 리뷰를 작성하지 못한 책이 있다. 바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월든”이다. 여러 번을 읽었지만 그 책에 대한 리뷰는 책을 그대로 필사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만큼 ‘월든’은 모든 구절은 명문이었고, 한 구절 한 구절이 삶의 진리를 담고 있다. 그렇게 리뷰를 남기지 못한 ‘월든’에 대한 부채감은 아직도 가슴 저 밑바닥에 남아있다. 언제나 리뷰를 작성할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다. 헌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론 ‘월든’보다 소로우를 대표하는 작품이며, 톨스토이, 간디, 마틴 루터 킹과 함석헌 선생님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책이다. 물론 이 책에는 『시민의 불복종』을 비롯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의 세밀한 시선으로, 그만의 내밀한 문체로 묘사한 글과 몇몇 수필들이 담겨져 있다. 『시민의 불복종』은 멕시코 전쟁이 한창이던 1846년경에 집필된 작품이다. 미국은 텍사스의 병합문제로 멕시코와 전쟁을 하였고, 그 전쟁의 결과 미국은 단 1,500만 달러로 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양도받았다. 하지만 이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은 제국주의자들과 노예제도 지지자들이었다. 노예제도와 전쟁에 반대하는 소로우는 그 전쟁에 대한 반대의사로 인두세 납부를 거부했다. 한 나라의 국민은 그 나라의 국민의 의무로 세금을 납부한다. 그리고 국가는 그 세금으로 각종 정책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 세금이 일부 위정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에 쓰일 때 우린 그것을 감시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물론 그 권한을 국민에게 위임받은 국회라는 조직이 있지만, 그들이 정부와 손을 잡고 잘못된 정책을 펴 나갈 경우 국민은 다른 대책이 없다. 그럴 때 팻말을 들고 목소리를 높이며 집회를 열기도 하지만 그 집회 또한 자유스럽게 하지 못한다. 말도 안 되는 법조항에 가로 막혀. 그럴 때 소로우가 선택한 저항의 방법이 납세 거부이다. 소로우는 말한다. 국가의 잘못된 행위에 침묵하지 말라고, “아니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이라도 노예 소유하기를 그만두고 실지로 노예제도의 방조자의 입장으로부터 물러나며 그 때문에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리라” 고 그는 그의 주장을 실천이라도 하듯 멕시코 전쟁과 노예제도에 반대하여 6년 전부터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고 그로 인해 감옥에 수감된다. 친척 한사람이 몰래 그의 세금을 대납하는 바람에 그 다음날 풀려나기는 하지만. 정부의 잘못에 국민이 침묵하지 말고 과감히 대항하라고 그는 애기한다. 자연에 대한 끝없는 찬미자이며, 폭력을 싫어하는 자연주의자이지만 한편으론 개혁가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물건만으로 자연 속에서 지내며 자연이 주는 교훈과 자연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자연의 모습에서 삶의 진리를 찾는 그에게는 의외의 글이 『시민의 불복종』 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가을의 모습을 통해 죽음의 성찰을 보여주는 〈가을을 빛깔들〉과 다양한 야생사과의 특징을 세밀히 묘사한 〈야생사과〉등 그의 글이 가진 특징인 자연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표현되었다. <가을의 빚깔들> 에서는 낙엽을 인간의 죽음에 비유한다. 각기 다른 나무가 각기 다른 나뭇잎을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들이며 가을이 깊어간다. 어느 하나 같은 색의 나뭇잎은 없다. 낙엽은 나뭇잎이 죽음을 맞으며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네 인간의 죽음도 이와 같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세상을 떠나는 순간, 남은 자들에게 찬란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낙엽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것, 아름다운 죽음이 아닌가. 어쩌면 자연처럼 살아온 사람만이 가능한 죽음의 모습이 아닐까. 이 외에도 다양한 야생사과에 대한 소로우의 세밀한 성찰은 산과 들에 묵묵히 자라는 야생사과의 그 조그만 과실 하나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극진한 애정과 성찰이 있는 자들에게만 보여지는 자연의 비밀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속도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네 삶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현대인의 각박한 삶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소로우처럼 자연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넉넉함이 아닐까. 그의 명문을 만나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이 때 보이는 것은 이전에 보이는 것과 다르다” 던 어느 작가의 문장을 떠오른다. 그의 눈을 통해 보는 자연과 내가 보는 자연은 다르다. 그래서 그의 눈에 비친 자연을 묘사하는 문장 하나하나는 마치 단풍진 숲길을 걷는 것처럼 아름답다. 걷고 또 걸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그런 숲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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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지 않게 된 건 막장에 가까운 드라마들을 보기가 불편해지면서 부터였다.(물론 그렇지 않은 드라마들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막장 드라마마도 더 막장드라마가 같은 상황을 매일 보고 있으려니 정말 미칠지경이다.그리고 어느날 지인에게서 날아온 플라톤의 문장을 보는 순간 ..얼움이 되고 말았다.이제라도 정신을 좀 차려겠다는 생각이 번쩍..그녀를 지지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았다는 건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순간 자연스럽게 <시민의 불복종>이 눈에 들어왔다.역자의 서문부터 가슴으로 훅 들어오는 문장을 읽으면서마음이 어지러워졌다.책 한 권을 가득 채운 글인줄 알았는데 '시민불복종'에관한 글은 52쪽에 불과했다.그런데도 기억하고 명심해야 할 문장이 어찌나 많은지.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저자처럼 온몸으로 불복종을 하며 살아가기란 여러가지로 힘들다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하려니 가슴이 답답해져왔다.이런저런 이유를 말해보아도 소로우의 입장에서 보면 궁색한 변명으로 들릴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그러나 소로우 역시 나라를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절대적으로 복종할 수 있다고 했다.복종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에 당당히 거부하고 있을 뿐이라고.최근에 본 영화 '캡틴 판타스틱'이 생각났다.캡틴으로 불리는 가족의 리더인 아버지는 가족을 자본주의의 노예로 만들지 않기 위해 자발적 시스템을 선택하고,촘스키를 공부하며 권리장전을 토론하는 내공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그러나 책이 아닌 현장에서 배워야 하는 경험도 중요하다는 것을 영화는 지적해 주고 있었고 영화는 결국 합리적 절충(내가 생각하기에)안을 내어 놓기에 이른다.나쁘지 않은 결말이었지만,정말 합리적 절충 밖에 없는 걸까? 라는 질문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소로우의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가 국가에 대해 시민이 가져야 할 소양에 대해서는 공감은 하면서도 저자처럼 적극적으로 불복종을 할 용기가 아직은 없기에 그저 저자의 생동감 넘치는 문장들을 기록하는것으로 리뷰는 대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부는 국민이 자신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식에 지나지 않지만 국민이 그것을 통해 행동을 하기도 전에 정부 자체가 남용되거나 악용되기 쉬운 것이다."/16 "나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하루빨리 조직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이 말은 결국 '가장 좋은 정부는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라는 데까지 가게 되는데 나는 이 말 또 한 믿는다"/17 "정부는 어떻게 사람들을 쉽게 속일 수 있는가를 심지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스스로를 속이는가를 보여준다" / 19 "각 사람들은 자신의 존경을 받을 만한 정부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바로 그것이 보다 나은 정부를 얻을 수 있는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20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21 오늘날 정직한 애국자의 시세는 얼마인가? 사람들은 망설이고 후회하는가 하면 때로는 탄원서를 내기도 한다.그러나 진지하게 추진하여 효과를 거둘 정도의 일은 하지 않는다.그들은 남들이 악을 몰아내어 더 이상 자신이 그 문제로 고민하지 않게 되기를 호의적인 자세로 기다린다./29 멕시코 전쟁과 노예제도에 반대하여 정부에 내는 세금을 거부하다 감옥에 수감 되었으나 친척 한 사람이 몰래 세금을 내주는 바람에 하루만에 풀려나온다.그럼에도 당당히 시민이 정부의 불합리함에 대해서는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미학지에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이란 글을 기고하게 되었고 이후 <시민의 불복종>이란 제목으로 고쳐 고전의 산문이 되었다고 한다.시민 개개인이 싸워야 하는 이유에 대한 논리만 있었다면 읽는데 퍽 힘들었을 텐데,국가가 어떤 포지션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지금 우리사회에 던져주는 강렬한 메세지가 되어 주는 것 같아 위로 아닌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그러나 이렇게라도 리뷰로 남길수 있었던 건 썰전에서 유시민작가님이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탄핵을 향한 열정의 십분의일 이라도 사회의 다른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보자는 것.소로우처럼 완벽한 불복종을 할 수 없다고 자포자기 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면 되는 거였다.이런 생각들이 모여 행동하다 보면 정부가 시민들을 복종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고 함께 가는 동반자로 생각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소로우 역시 불복종을 하고 싶지 말하지 않던가? 아니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정부의 역활이 매우 이상적으로 보여지게 되는 순간에 말이다." 나는 어떤 개인이나 국가와 다툴 생각은 없다.나는 사소한 일을 꼬치꼬치 따지거나 내가 내 이웃보다 잘난 것처럼 내세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오히려 나는 이 나라의 법에 순종할 구실을 찾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나는 언제라도 기꺼이 그 법을 따를 마음 가짐이 되어있는 것이다.나 스스로를 의심할 정도로 말이다./61쪽 "정부의 권위는 비록 내가 기꺼이 순종하려는 정부의 권위일지라도 아직까지는 순수하지 못하다.내가 기꺼이 순종하겠다는 것은 나는 나보다 더 잘 알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심지어는 나보다 더 잘알지도 못하고 더 잘하지도 못하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엄정하게 말하면 정부는 피통치자의 허락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정부는 내가 허락해준 부분 이외에는 나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서 순순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입헌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진보해온 것은 개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향해 온 진보이다.중국의 철인조차도 개인을 제국의 근본으로 볼 만큼 현명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민주주의가 정부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진보일까?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고 조직화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는 없을까?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은 대접을 개인에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 /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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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를 나왔으면서 평생 한적한 시골 오두막집에서 살았던 소로우. 당시 미국의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을 반대했던 그는 인두세를 내지 않아 감옥에 갇히는 경험을 한다. 그후 쓴 것이 시민의 불복종과 여러 산문들. 불복종하면 에히리프롬이 생각나는데, 소로우가 먼저였구나. 복종의 미덕이 가장 강조된 곳이 군대이다.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능률적이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수백 명을 학살한 나치의 장교 아이히만은 나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대로 했을뿐이라며 자신의 악업을 항변하지 않았던가. 그저 시키는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악덕이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줏대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하면 양심. 소로우는 그것을 등뼈라고 표현한다.
"사람다운 사람, 내 이웃이 말하듯이 등뼈가 있어 남의 손에 결코 놀아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시키는대로 하다보면 기계가 되는 것 같다. 살인기계, 작업기계. 등등 그러한 인간성 상실이 싫었던 게 소로우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면서, 이 말은 결국, 가장 좋은 정부는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라는 데까지 가게 되는 것도 믿는다고 한다. 정부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거창한 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 또 속인다. 법에 대한 존경심 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만다고 한다. 현명한 사람은 오직 사람으로만 쓰이기를 바랄 뿐이고 진흙이 되어 바람구멍을 막는데 쓰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보도록 하자."
돼지 잡아들이기는 기르던 돼지가 탈출하여 잡으려하는데 잘되지 않는 고충을 경험한다. 그런데 소로우는 이 돼지에게서 책략과 독립심을 발견하고는 묘한 존경심이 생긴다. 녀석은 자기 자신이기를 고집하고 있다. 돼지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의견에 확신이 있었다. 얼마전 교육부 사람의 말처럼, 진짜 개, 돼지가 된 건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돼지는 마침내 돈으로 구한 업자에게 잡히고 만다. 그 사람은 사냥개를 사용했는데, 돼지를 계속 몰아 진을 빼면서 사람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진을 빠지게 서로 경쟁시켜 몰아부치는 것은 사람을 길들이기 위해 사용하던 독재자 및 관리자들의 방법이 아닐까.
가을의 빛깔에서는 단풍나무들의 변화에 대해 찬탄한다. 잎의 색깔이 보다 진한 색으로 변하는 것은 잎이 시드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는 것이며 과일이 익어가는 것과 비견할 수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농익은 즙으로 가득찬 하나의 커다란 주홍색 과일처럼 보인다. 동료들 보다 먼저 단풍이 드는 한 그루의 나무는 군계일학 같다. 그 나무는 숲을 대표하여 높이 깃발을 쳐들고 있는 것 같아 황홀감에 휩싸인다고 전한다. 소로우는 이러한 나무의 성숙을 덕으로 보고 있다.
"봄과 함께 파릇파릇해지고 가을과 함께 노랗게 익어가라! 각 계절의 영양분을 보약처럼 들이켜라. 그것이야말로 당신을 위해 특별히 조제된 진정한 만병통치약인 것이다."
야생사과는 야성적이다. 바람과 서리와 비를 맞고 자라면서 기후나 계절의 온갖 속성을 모두 흡수했기 때문에 계절의 양념이 잔뜩 들어있어 먹는 사람을 찌르고, 쏘고, 충만케 한다. 따라서 이런 사과를 제철에 그리고 야외에서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드시 바람을 맞으며 먹을 것이라는 꼬리표를 붙여놓아야 한다고까지 전한다. 자연의 시고 쓴 맛들은 오직 들에서만 그 참다운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야생과일의 참맛을 알기 위해서는 야성적인 입맛을 가져야 한다.
"가능한 한 매일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라. 그것을 당신 삶의 묘약으로 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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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가 낳은 확실한 자연주의자이면서 인권운동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 명성에 걸맞은 불멸의 고전 <월든>도 매료시키더니, 역시나 소로우의 존재감과 무게감을 확실히 각인시켜주는 <시민의 불복종>까지 놀라게하며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문체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 역시나 짙었다. 소로우, 어디 한곳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삶의 방임에 놓여있지 않는.... 몸은 자유하되 옳고 그름에 분명히 선을 긋고 사유하기를 즐겨했던 사람. '옳고 그름'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고뇌했던 사람, 한마디로 '정의'에 목말라했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그의 책 <시민의 불복종>을 보면 그가 평생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릴 자유와 그에 준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일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이 나온 계기가 어쩌면 그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 그가 바라는
정부에 대한 소망이 나와있다. '인두세 납부 거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라에서 거둬들이는 세금 납부를 거부했다. 그 당시 미국이 행하고 있는 정책과 제도에 대한 불만, 즉 멕시코와의 영토분쟁과 노예제도의 폐지 거부는 미국시민으로서 소로우에겐 납득이 가지 않는 일들이었다. 정부의 무능력함과 몸집만 불려가는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져있다.
60여 페이지의 짦은 글인데도 기억에 남는것은 역시나 오늘날의 부재인 '정의'와 일맥상통할 것 같은 느낌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보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많은 번영과 발전이 눈부실 정도인데, 이렇게 눈에 보이는 외적인 발전 외에 좀더 차원이 높은 진실되고 진정한 정신적인 가치는 과연 성장을 했는가에 대한 답은 과연 명쾌하게 말할 수 있을까!!! 'Yes' 보다 'No'에 더 마음이 가는것은 어쩔수 없나보다. 공동체의 선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물질만능에 의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이미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것에 대해 맞서기보다 적당히 타협하려는 중간지대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시간적으로 100년이나 앞선 소로우의 목소리는 절대 정의를 놓고 타협하지 말라고 강한 어조로 말하는 듯 하다. 역시나 인도의 비폭력 인도주의자 간디가 영향을 받을만한 인물임에 인증 도장이 찍힐만한 듯 ^^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이 책 <시민의 불복종>에는 또 소로우의 일상과 사색이 진하게 담긴 5편의 글들이 수록되어져있다. 돼지 잡아들이기 가을의 빛깔들 한 소나무의 죽음 계절 속의 삶 야생사과 이 사람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정말 그 <월든>과 <시민의 불복종>을 쓴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감각적이면서 익살과 재치가 넘치는 글들이었다. 통찰력과 깊이가 담긴 글들. 지극히 일상적이면서 단순하면서 평범한 삶들.... 그렇지만 소로우의 눈과 귀, 입의 오감 레이더에 걸리면 그 어느 삶도 평범하지 않았다. 자연을 보는 눈과 그 자연과 교감하는 마음들이 참 살갑게 다가왔다. 어쩜 이렇게도 맛깔나게 잘 쓰는지.... 보이는 자연이 모두 평범치 않은 색감들이었고, 그 색감들 모두 나름의 의미로 소로우에게 포착되었다는 것은 그의 사계절 자연에 대해 기다리고 바라다보는 인내 역시 탁월함을 알 수 있었다. '야생 사과'를 만나고 이름지어주고 사람이 기르는 품종의 사과와 비교하여 탁월한 맛과 향기를 찾아내며 방대한 야생에 대한 지식과 지혜들을 뽐내고 있다. 콩코드 강에서 태어나고 월든 호숫가에서 2여년간 호두막을 짓고 진정한 야생을 경험한 그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명성 자자한 자연친화주의자가 아닌 그 자연을 안고 경험한 사람이었기에......
몇편의 글들을 통해 한 사람을 다 알아가기엔 많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렇짐만 헨리 데이빗 소로우.... 하면 왠지 정말 확인된 '진품'이라서 참 기분이 좋다. 그래서일까? 그의 책은 언제나봐도 딱딱하지도 진부하지도 않은 유쾌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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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브드 소로우가 주장하는 정부의 역할과 정부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시민으로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소로우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로우는 연필공장 사장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똑똑하기도 했지요. 부유한 환경과 타고난 지성... 이런 도련님이 할 수 있는 일은 뭐 뻔합니다. 어려서는 사회 전복 세력으로 가난하지만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꼬득여 기득권 층에 대항하다가, 비밀 기관에 붙잡혀가서 고문좀 당하면서, "어이 도련님이 왜그러시나. 너무 편하게만 살다 보니까 그게 심심했던거야?" 라면 사회 밑바닥에서 몸부림쳐 올라온 비밀 요원의 비아냥거림에 정신을 차리고 가업을 물려받아서, 가업 확장에 성공하고는, 스스로 기득권층이 되어, 자신이 한때 감금당했었던 조직을 배후에서 지휘하는 그런 작자가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이런 삶을 그리고 있지요. 하지만, 소로우는 좀 달랐습니다. 아마도, 첫사랑에 실패한 것이 그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소로우... 그 현실에서의 좌절 경험이 그를 투사가 아닌 관조자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후, 소로우는 월든 호수에 혼자서 오두막을 짓고 2년여를 살고, 사립학교를 지어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하고, 세금을 내지 않다가 불법 체납자로 감옥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가업을 이어받아서 연필 공장을 부흥시키기도 하지요. 6각형 모양의 연필이 소로우의 발명이라고 합니다. 이런 삶을 살았던, 즉, 정부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었던, 타인의 도움에 아쉬울 것 없었던 젊은이가 생각하는 정부와 시민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60여 페이지 분량인 만큼, 가볍게, 그러나 그 내용은 진지하게 읽어볼 이야기입니다. ========== 정부라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기꺼이 내버려두도록 돕는 하나의 방편이다. 옳고 그름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다수가 아니라 양심인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는가? 그 안에서 다수는 오직 편의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문제들만을 결정하는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는가? 시민이 한 순간만이라도, 혹은 아주 적은 정도라도 자신의 양심을 입법자에게 맡겨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양심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책무는 언제라도 내가 옳다고 생긱하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정의가 그들 옆을 지나갈 때 허약한 안색으로 성공을 빌 뿐의 "선함"은 의미 없다. 정부는 내가 허용해 준 부분 이외에는 나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서 순수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모두가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악과 관계를 끊고, 악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 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없도록 할 의무가 있다. 정의의 승리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그저 한표 앞선 다수가 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 뿐이다. 누구라도, 그가 자기 이웃들보다 더 의롭다면, 그는 이미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 (majority of one)" 인 것이다. 내가 지키는 법보다 더 숭고한 법을 지키는 사람만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할 수 있다. ========= 소로우의 이야기는 대부분 그럴 듯 합니다만, 그의 이야기에는 "내가 바로 사람들의 평균이다" 라는 인식이 밑에 깔려 있다는 것, 그래서 소로우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글에서 진나라 시절 상앙의 법과 같은 차가움이 느껴지는 것은 저 뿐일까요? PS) 소로우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엄친아였던 소로우를 차버린 그의 첫 사랑이 선택한 남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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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후 그의 두번째 저서를 만나게 되었다. 제목인 '시민불복종'은 이 책에서 첫 50여 페이지를 자지하고, 이 책의 나머지는 소로우의 여러측면을 보여주는 '월든'을 제외한 출판여건상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다섯개의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시민불복종'에 대해서만 간단히 이야기해보자면, 미국의 어느 저술가는 '세계 역사를 바꾼 27권의 책'에 포함시켰으며, 처음에는 무관심속에 방치되다가, 19세기 말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에게 발견되어 그의 정치, 사회사상에 획기적인 전환을 초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정작 세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간디에 의해서 였다. 20세기 초 남아프리카에서 인도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간디는 이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으며, 자신의 이념을 정리해준 하나의 교과서와 같은 책으로 여겼다.
간디 이후에도 이책은 영국의 노동운동가들, 나치 점령하의 레니스탕스 대원들, 마틴 루터 킹 같은 인권운동가 등에게 계속 영향력을 끼쳐왔으며, 불의의 권력과 싸우는 수많은 사람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었다.
개인의 양심이 국가권력의 남용이나 옳지 않은 법률에 의해 침해받을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시민의 불복종'은 많은 시사점을 더저준다. 일독해보길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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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1849) 저자,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하버드를 졸업하였으나 부와 명성을 쫒는 삶을 거부하고,'체벌' 문제로 교사를 관두고,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고, 노예해방 운동가 존 브라운이 처형된 후에 그에 대해 알리는 강연을 하였다. 아내도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지은 사람이다. 남북전쟁(1861)이 시작되기 전이니 불의를 묵인하는 정부를 보며 지식인으로서의 고뇌가 상당했으리라.월든 호숫가에서 집을 짓고 자업자득하며 살면서 [월든]을 적은 걸 보면,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을 대자연으로 승화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시민의 불복종]은 투옥 사건에 대한 연설문으로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이라는 제목으로 <미학>지에 실린 글이다.그는당시 미국 정부가 흑인 노예제도를 계속 용납하고, 영토 확장을 위해 멕시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정부의 불의에 항의하기 위해 6년 동안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다 감옥살이를 한다. 친척이 몰래 대납하여 하루 만에 풀려났지만,정의가 아닌 일에 대하여 묵인하며 숨 죽이고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통렬한 비판을 날리는 것 같다. '사람들은 망설이고 후회하는가 하면 때로는 탄원서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진지하게 추진하여 효과를 거둘 정도의 일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들이 악을 몰아내서 더 이상 자신이 그 문제로 고민하지 않게 되기를 호의적인 자세로 기다린다. 기껏해야 그들은 선거 때 값싼 표 하나를 던져주고, 정의가 그들 옆을 지나갈 때 허약한 안색으로 성공을 빌 뿐이다..... 정의 편에 투표하는 것도 정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당신의 의사를 사람에게 가볍게 표시하는 것일 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의를 운수에 맡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정의가 다수의 힘을 통해 실현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p 30)' 모두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법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사회는 결코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면 불의한 법을 묵인한 채 준수하며 살 것인가?아니라면, 그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아니면 그 법을 어길 것인가? 160년 전의 외침이지만, 이 시대에도 여전히 경종을 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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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소로우를 떠올린다면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떠올리는 것이 바로 오두막집과 월든이다. 오늘날의 미니멀리즘 혹은 생태학적 사고와도 꽤나 잘 어울리는 그의 사상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민의 불복종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더욱 중요한 사상일수도 있는 책이 이 책이다. 미국의 어느 역사 저술가는 이책을 세계를 변화시킨 27가지의 책으로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인도의 간디는 이 책을 감명깊게 읽고 시민불복종 운동의 이름을 정할 정도였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은가? 내용은 더욱 심상치 않다. 소로우가 단 하루만 감옥에 가게 되었지만 6년정도 미국흑인노예제도에 반대하며 세금을 안낸것이 대단하다. 거기에 지금봐도 엄청나게 급진적인 민주주의와 개인주의를 보고 있자니 국가주의가 여전히 부르짖는 지금의 세계에도 감당하기 힘들정도다. 다른한편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야생 사과를 보자. 그저 자연에서 보는 사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가 보는 시선은 조금 다르다. 아메리칸 인디언을 야생능금에 자신을 야생사과로 비유하는 점은 '슬픈열대를 부르짖은 레비스트로스의 야성을 떠오리게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경우 2가지 글 이외에도 그의 20년 넘게 쓴 일기에서 일부 추려낸 다른 글들을 비록 양은 적지만 다른 글들도 소개해주고픈 역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국내에 소로우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출판사를 만들고 하는 등 저자의 노고가 우리에게 소로우를 알게 해준 점에 있어서 감사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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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 헨리 데이빗 소로우 국가가 뻘짓을 한다. 국민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51:49라 할지라도 승자 독식인 투표제도 하에서 51측이 모든 국가권력을 다 차지 한다. 나머지 49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저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쪽에 서있는지 이해가 안될 때,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쪽이 다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이런 질문들에 대하여 정말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기이다. “시민의 불복종”은 워낙에 유명한 책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찾아서 보게된 책이다. 이책이 쓰여진지는 200여년 가까이 되었기에 지금 문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으나, 그 밑바탕이 되는 정신에 대해서는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이라는 저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로 인하여 정부에 세금납부를 거부하다가 감옥에 같힌 일이 계기가 되어 쓰여진 책이기에 때로는 격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면이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는 느낌도 있다. “정의가 자신들을 통해 승리하도록 노력하지 않고, 한표 앞선 다수가 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고…. 이미 ‘한사람으로서의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P39),”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는 이미 소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p42)” 이런 대목은 마치 오늘날의 나와 같은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던지는 메시지 같다. 한사람으로서의 다수… 멋진 표현 같다. 책 한권에 ‘시민의 불복종’은 한 50여페이지에 불과하고 이후에 소로우의 다른 수필들이 함께 실려있다. 그 유명한 ‘시민의 불복종’이 이렇게 짧은 연설문 같이 끝나다니 좀 의외긴 했지만, 짧기에 읽고 또 다시 읽어보고 하기에 부담이 없는 점은 좋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마무리 하듯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민주주의가 정부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진보일까?(p68)” <책속으로> 나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하루빨리 조직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이 말은 결국 ‘가장 좋은 정부는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라는 데까지 가게 되는데 나는 이 말 또한 믿는다. 사람들이 준비가 되었을 때 그들이 갖게될 정부는 바로 그런 종류의 정부일 것이다. P17 옳고 그름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다수가 아니라 양심인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는가? p21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P21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대중은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전이 느린 진짜 이유는 그 소수마저도 다수의 대중보다 실질적으로 더 현명하거나 더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 몇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어디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다. P28 덕을 찬양하는 사람이 999명이라면 진짜 덕인은 한사람 뿐이다. P29 정의가 자신들을 통해 승리하도록 노력하지 않고, 한표 앞선 다수가 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고…. 이미 ‘한사람으로서의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P39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을 곳은 역시 감옥이다. P41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는 이미 소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p42 공자가 말하기를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다면 부끄러운 일이요,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하고 귀하다면 부끄러운 일다”라고 했다. P46 나를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나의 육신을 처벌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P50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보도록 하자. P50 그러나 나는 나의 충성심이 어떤 결과를 맺는지 추적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P58 오히려 나는 이 나라의 법에 순종할 구실을 찾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언제라도 기꺼이 그 법을 따를 마음가짐이 되어있는 것이다. P61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민주주의가 정부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진보일까?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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