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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부재의 교육 현장과 현실에 대해 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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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교단을 떠난 저자가 고등학교 교사이던 시절에 낸 책이다. ‘희망은 우리 스스로의 영토를 넓혀가는 길밖에 없다.’라는 부제에 걸맞게, 저자는 이후 안정적인 직업이었던 교사를 그만두고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던 단체에서 사무국장으로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끝내 밀양에 송전탑이 세워지고, 그 이후 그로 인해서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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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교단을 떠난 저자가 고등학교 교사이던 시절에 낸 책이다. ‘희망은 우리 스스로의 영토를 넓혀가는 길밖에 없다.’라는 부제에 걸맞게저자는 이후 안정적인 직업이었던 교사를 그만두고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던 단체에서 사무국장으로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끝내 밀양에 송전탑이 세워지고, 그 이후 그로 인해서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던 경험을 주위 사람들에게 토해내곤 했다한동안의 침잠기를 거쳐 얼마 전에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직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쓰여진 이 책의 글들은 우리 교육 현장의 상황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고민들이 담겨있다스스로 비관주의에 가까운 인간임을 자처하면서 글 쓰는 일이 힘겹다는 고백과 함께, ‘글쓰기로써 세상을 바꾸려 했던 분들의 닮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이 책에는 교사로서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만나면서 느꼈던 고민들이 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세상의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제시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지금은 집권 당시의 범죄로 인해서 감옥에 갇힌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공약에 대해서 반론을 제시하는 시골 교사가 이명박에게라는 글은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교육 현장의 문제점들을 적실하게 짚어내는 글이라고 여겨진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비판하면서 합리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에 대해서 좌파 포퓰리즘’ 운운하면서 딱지를 붙이던 당시의 세태에 대한 지적은 지금도 유효한 내용이라고 여겨진다이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글 속에서 나 자신을 몽땅 드러내야 하고세상 앞에서 같지도 않은 웅변을 해야 한다는 저자의 마음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저자는 스스로의 위치를 변방이라 표현하고 있지만그의 깊은 사색은 이 시대의 핵심적인 고민들을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된다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저자가 다시 오랫동안 묵혔던 사색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어놓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21.11.10. 신고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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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위한 고언 - 교육은 절망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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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국의 여름은 한바탕 축제였다. 월드컵 축구 열기가 무더위를 날려 버리고 퍼붓는 소나기조차 별거 아닌 양 옹색하게 만들었다. 그 때 대다수는 한국 축구가 환골탈태했다고 여겼고, 진정으로 K리그는 부활했다고 믿었다. 일방적인 감상론이 지배할 때, 나는 두려웠다. 과연 4강이 우리의 진정한 실력인가? 유지불가능한 찰나적 성과에 대한 과대포장을 깨달을 때의 비참함을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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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국의 여름은 한바탕 축제였다. 월드컵 축구 열기가 무더위를 날려 버리고 퍼붓는 소나기조차 별거 아닌 양 옹색하게 만들었다. 그 때 대다수는 한국 축구가 환골탈태했다고 여겼고, 진정으로 K리그는 부활했다고 믿었다. 일방적인 감상론이 지배할 때, 나는 두려웠다. 과연 4강이 우리의 진정한 실력인가? 유지불가능한 찰나적 성과에 대한 과대포장을 깨달을 때의 비참함을 느끼기 두려웠다.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축구는 조금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세계축구의 변방 아시아에서도 확고한 1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bottom-up으로 한국 선수들은 과거보다 활발히 유럽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나선형 역사발전의 사례이지 않을 까 싶다.

 

2008년 시민들이 일구어낸 또 다른 축제가 있었다. 이 명박 정부가 멍석을 깔아줬다지만 명백히 해방후 한국사회가 겪어보지 못했던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축제였다. 그리고 이 정치축제를 개막케 했던 것은 여리디 여린 나이어린 학생들이었다. 시민사회는 드디어 한국도 풀뿌리 민주주의와 시민조직이 공고히 되어 간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더욱 공고해 진 것은 보수언론의 대동단결이요, 일방적으로 밀리던 인터넷 여론에서 극우세력의 조직적 저항이었다. 과거에는 보수진영에서 기대못한, 볼 수 없었던 반격이 거세지고 있다. 이 답답하고 어두운 현실도 나선형 역사발전의 하나일까? 

 

내가 두 가지 사례를 든 것은 근거없는 희망이 당장에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이 책에서 던지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하다.

 

'변방의 사색'은 솔직해서 좋다. 강퍅한 한국사회에서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확고한 인생목표를 설정하지 못하는 헤매이는 청춘들에게 덧없는 위안을 달래주는 저명한 힐링멘토들이 던져주는 진통제가 아니라 비정규직 혹은 실업의 덫에 빠질 수 밖에 없을 시름하는 제자들에게 거부할 여지가 없는 다소 암울한 현실을 알려 주고 그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대안 - 농업기반의 지역공동체를 설립하려는 저자의 청춘 콘서트인 셈이다. 

 

 나아가서는 시골교사 이 계삼이 지방사회, 특히 밀양을 배경으로 한 농촌지역의 학교생활과 교육현실을 고백하는 에세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나는 이 책에서 한국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사회적 모순과 과제들의 총집합을 엿보았다. 오늘날 다양한 한국병을 이해하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기앞서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를 성찰하기에 좋은 계기가 되는 책이다.

 

이 책의 출발점은 한 마디로 우리 사회가 갖는 진정한 문제란 교육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30%를 위한 교육이다. 나머지 70%는 덧없는 희망을 혹은 불량과 일탈만을 강조하는 교육이다. 그러나 30%를 위한 교육도 지옥같은 경쟁이 불가피한데 이 경쟁에서 이긴들 저성장에서 오는 안정적 일자리는 극히 소수에게만 주어진다는 현실에서면 경쟁은 얼마나 초라한가.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서 공교육은 전혀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좌절을 던진다. 

 

공교육의 무참한 현실은 곧 열정적인 전교조 회원인 저자 스스로 전교조의 허약함과 전교조가 갖는 교육담론의 앙상함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아이들에게 들이대는 낙오될 수 있다는 공포의 기제를 넘어서는 대안적 삶은 어떤 것일가? 전교조는 어떤 대안으로 아이들을 대해줘야 할까? 충분히 놀고 인격적으로 대우받으며 낙인찍히는 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서로 서로 섞여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줘서 온전한 자신의 삶을 영위해줄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면 전교조는 어떤 기능을 해야 할 까? 이제 전교조는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조직이 아니라 아이들 삶이 척박해진 이 현실을 거부할 수 없는 조직이 되었다는 고해성사를 한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일으킨 그 마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역설을 주장하며 현실을 과감히 인정하고 대안을 갖자고 한다. 그는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문화자본(지적환경) > 경제자본(교육비용) > 지역사회 인프라 > 학교교육임을 예로 들면서 이러한 구도가 정착된 상황에서 성취도에 가장 적은 영향을 주는 학교에 서열화를 강조하는 것은 "끼리끼리" 의식, 부와 지위세습에 유리한 구도를 정착시키기 위함임을 파헤친다. 

 

그렇다면 다수의 소외된 학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현실적 교육은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흙(농업)'과 '가난'을 강조한다. 이는 노동의 체험, 땀의 의미, 살을 맞대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것이고 소외된 아이들을 지원해줄 수 있는 지역 네트워크의 형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한국사회에 진정한 교육시스템이 정착하려면 국가가 돈으로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복지국가를 뛰어넘는 복지사회-사회가 인간관계를 떠받치는 것-로의 도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이 사회, 국가담론으로 도약하는 순간, 저자의 날카로운 칼끝은 이제 한국 정치와 사회구조, 발전논리에 대한 조목조목 비판이 이어진다. 이 책은 이러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시골교사의 단상(1부 봄날의 고백) - 학교 교육의 실태 고백(2부 시골교사가 이명박에게) - 대안교육(3부 흙과 땀으로 꿈꾸는 꿈) - 극복해야 할 낡은 현실(4부 헛것들의 황혼) - 지향해야 할 목표(5, 6부 그의 손을 잡아야 할 백가지 이유, 지금 여기 이미 와있는...) 으로 교육에서 한국사회의 진단과 나가갈 담론의 주제를 던져준다.

 

이 책에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대안이 구체적이지 않다. 그는 밀양을 중심으로 한 지역 공동체, 특히 농업을 기반으로 한 그 것을 대안으로 적시한다. 이러한 지역 소조직이 하나의 풀뿌리로서 대의정치의 진정한 대안임을 강조한다.

 

도시에 살았던 나로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주제들이 있다. 과연 농업은 수지맞는 일자리가 될 수 있을까? 계약과 해지를 반복하는 비정규직의 삶이 과연 정부 보조금을 통해 고향에 뿌리내릴 독립적 소농의 삶으로 바뀐들 진정으로 행복을 줄 수 있을까? 환경운동의 진정성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성숙된 시민사회의 참여운동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적 현실에서 시민의 조직화된 참여가 월드컵 사례처럼 과연 자발적이고 헌신적으로 확산될 수 있을까?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은 점점 그 헤택의 기득권이 보편화됨을 의미하므로 추세적인 보수적 물결의 흐름속에서 특히 반동적 극우세력이 준동할 수 있는 한국현실에서 정당정치가  재편되는 것이 시급한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들이 줄지어 일어난다.

 

이 책은 그러한 의문에 답을 줄 수 없다. 이 책에서 얻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 나와 독자들이 차분히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조그마한 지역활동을 통해서 공고히함으로써 얻을 몫이다.

 

변방의 사색은 역사의 발전을 믿는 보편적 진리에 던지는 하나의 파문이다. 그 파문의 너울에서 나와 한국사회의 진일보를 꿈꿔 본다.

p*****7 2013.02.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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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농업, 죽은 학교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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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작과 함께 대한민국을 휩쓴 '안철수 신드롬'에 나 역시 휩쓸려 들어갔다. 그런데 한 발짝 물러나 '내가 왜 서울시장 선거에 관심을 가지지'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서울시장은 경남 진주에 사는 나와는 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오세훈식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경상남도에서 일어나 현재 상황에 이르렀다면 온 나라가 이렇게까지 안철수 광풍에 휩싸였을까? 논쟁과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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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작과 함께 대한민국을 휩쓴 '안철수 신드롬'에 나 역시 휩쓸려 들어갔다. 그런데 한 발짝 물러나 '내가 왜 서울시장 선거에 관심을 가지지'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서울시장은 경남 진주에 사는 나와는 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오세훈식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경상남도에서 일어나 현재 상황에 이르렀다면 온 나라가 이렇게까지 안철수 광풍에 휩싸였을까? 논쟁과 논란은 있겠지만 지난 3년 반 동안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 대세론'이 위협받는 정도의 '광풍'은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지방자치가 시작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서울 '중심' 사회임을 안철수 광풍은 증명했다. 이처럼 서울은 아직 견고한 '중앙'이자 '중심'이다. 사람들은 이 중심에서 벗어나면 뒤처지고, 무언가 잃을까봐 오늘도 놓지 않으려고 발부둥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람 냄새 나지 않는 그곳에서 아웅다웅하며 다투기보다는, 중앙이 생각할 수 없는 진실이 살아 숨쉬는 공간인 '지방'이자 '변방'(邊方 :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에서 더 깊은 생각과 사색을 통해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려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경남 밀양시에 있는 밀성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이계삼 선생이다. <한겨레>에서 글을 통해 몇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부산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잡지인 <인디고잉(INDIGO+ing)>, 종이신문 <한겨레>, 인터넷언론 <프레시안>, 교육 월간지 <우리교육> 따위에 투고했던 글을 묶은 책 <변방의 사색>을 통해 그를 깊이 만났다. 

 

'교육 불가능' 사회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확인했듯이 기득권층은 아이들 밥그릇에까지 자본의 논리를 들이댄다. 줄을 세워 내 아이에게 친구를 이기도록 강요한다. 거기에 살림누리는 없다. 온통 어떻게 이길 것인가만을 외친다. 이계삼은 "수시모집 원수를 접수하는 3학년 교무실은 도떼기 시장", "공장 같은 학교", "껍데기가 알맹이를 완벽하게 밀어내고, 껍데기인지 알맹인지 구별도 못하는 학교교육"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교육 불가능'이라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해마다 졸업식 날만 되면 아이들이 속옷 바람으로 날뛰는 모습에 언론은 한탄한다. 지난해부터는 졸업식장에 경찰을 배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우리 어른들은 그들을 탓하기만 한다. 하지만 이계삼을 묻는다.

 

"졸업식 날, 팬티를 입고 거리를 질주하는 이 아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이 사회를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이들은 지난 10년간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질문에 우리가 답할 때다."(42쪽)

 

과연 강용석 의원 제명안을 부결시킨 한나라당 의원들과 표결에 앞서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의원, 그리고 가스통 들고 '빨갱이' 잡아야 한다는 할배들, 특히 원수까지 사랑할 책무를 지닌 나 같은 목사들이 저주와 정죄를 쏟아내면서 팬티 입고 내달리는 그 아이들에 '답'을 줄 수 있을까. 자신있게 답할 사람이 별로 없을 듯하다.

 

'교육 불로초' 찾아나섰지만, 헛될 뿐

 

그 옛날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나섰듯이 우리는 '교육 불로초'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닌다. 연봉 18억 원을 포기한 스타강사 이범, 메가스터디를 일군 '손사탐'으로 불리는 온라인 강사, 파리목숨 같은 우리나라 교육부 장관과는 달리 20년간 교육부 장관이 안 바뀐 핀란드의 예를 '교육 불로초'라고 하며 좇고 있다. 과연 이것이 교육 불로초일까.

 

하지만 이계삼은 이범 특강을 듣고 "'교육'이 아니라 자기 아이만 생각나더라"라는 한 학부모를 말을 인용해 이범에게 '혹세무민'이라고 일갈하고, '손사탐'에 대해서는 더 냉혹한 판결을 내린다.

 

"손사탐 특강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창녀보다 못한 삶'이라고 아이들에게 들이대는 이 어이없는 공포의 상징 기제를 넘어서는 '다른 삶'의 형상이 우리에게 있는가를 생각했다. 결국 문제는 '삶'이었고, 이 싸움은 가치 투쟁이다. 열일곱여덟 살 아이들에게 '개새끼', '창녀'라고 들이대도 고발당하기는커녕 열광적으로 복종하는 이 현실을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99쪽)

 

그럼 왜 이런 교육 불가능 상태가 되었을까? 이계삼은 학교교육이 '희망을 배신'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국어 선생님답게 요즘 아이들은 글쓰기를 할 때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라며, 우리 시대 아이들은 생각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아이들 무기력 권태 뒤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대하고 복잡하고 짜증나는 세계가'가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교육 불가능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며 세계와의 대면을 외면하고 있는데, 어른들이 내놓은 대책은 이들을 더 생각없는 아이로, 억압 속으로 이끌어간다. 통탄할 일이다.   

 

"오늘날 아이들의 이러한 일탈과 저항을 학교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익히 알다시피, 학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저 학칙 처벌 규정을 턱없이 강화하고, 자퇴나 전학을 권고하거나, 퇴학시키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학교 바깥 기관에 떠넘기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고 있다."(136쪽)

 

교육 불가능 상태의 해결 방안은 인문학과 농업

 

대책이 현실을 더 악화시키는 것을 내 아이들을 통해 보면서 이계삼 선생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 책임이 우리 어른들에게 있는데 아이들에게 채찍 들고, 징계하고, 줄 세운다. 그러니 교육 불가능일 수밖에.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이계삼은 굉장히 생경한 대안을 제시한다.

 

"나는 12세기 가톨릭 세계의 갱신을 꿈꾸었던 베네딕트 성인의 모토였던 '기도'와 '노동'이라는 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것은 종교적 언술이지만, 이것을 오늘날의 교육적 맥락으로 번역하면 '인문학'과 '농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148쪽)

 

우리 시대 교육계가 진단하는 것과 너무 다르다. 고개를 갸우뚱할 이들이 만을 것이다. 현실을 모른다고. 하지만 우리 시대는 인문학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는 이유도, '대학입시'를 위해서다. 거기에 무슨 생명이 있고,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겠는가.

 

인문학은 곧 생각하는 힘이다. 생각하는 힘은 주체적인 사람으로 키운다. 전제사회, 기득권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문학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우리 아이들에게 길러줌으로써 교육 불가능 현상의 해소는 시작된다.

 

농업이 죽은 학교를 살린다? '농자지천하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거창한 옛말까지는 가지 않을지라도, FTA에서 확인했듯이 농업을 공산품을 위한 들러리쯤으로 여기지 않는가. 이계삼의 대안이 틀리지 않았음을 농사를 지어보면 안다. 농사를 처음 짓는 사람도 씨앗을 뿌리면 생명이 움트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흙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탁월한 농부라도 콘크리트에서는 생명을 싹 틔울 수 없다.

 

농업이 생명인데, 삽집을 살리기라는 최고지도자

 

그런데 이 나라 최고지도자는 '삽질' 곧 콘크리트를 통해 강을 살리겠다고 나섰다. 삽질 종착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는 지금, 죽어가는 강을 보면서도 '살리기'였다고 우기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이계삼은 30년 전 은어떼가 번쩍번쩍, 숭어떼가 첨벙첨벙, 어린 송사리는 꼬리를 쳤던 강 둔치에서 살았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은 무릎까지 차오는 맑은 물이 드넓은 모래벌이었고, 햇빛을 받아 달궈진 모래톱이 은빛 융단이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일주일간의 낙동강을 여행한다.

 

하지만 그가 본 낙동강은 흙탕물을 뒤집어 쓴 물고기가 꼴깍꼴깍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고, 물풀 하나 없고 송사리, 소금쟁이, 벌레 한 마리 없는, 생명이 완벽히 사라진 곳임을 알고 탄식과 절규한다.

 

공허하다. 헛것을 보는 듯 허망하다. 이 헛것의 물길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자전거를 탈 것이다. 헛것의 물길 위로 요트가 지나다닐 것이고, 유람선이 다닐 것이고, 좀 이어 화물선도 다닐 것이다. 실버타운이 들어서서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이 헛것의 일렁임을 바라보며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볼 것이다. 헛것이다. 헛것으로 구축된 헛것들의 파노라마이다. 오직 헛것의 풍경을 위해, 지금 온 지축을 울리며, 강바닥을 탕탕 때리며 뒤집어엎고 파헤치는 이 참혹한 파괴와 죽음의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다."(225쪽)

 

교육 불가능만 아니라 온 나라를 불가능 속으로 이끌고 있다. 죽임 잔치가 난무하고 있다. 파괴와 죽음이라는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다는 탄식. 이 절규를 보면서 이계삼은 참 비관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다.

 

영혼을 맑게 해주는 선생, 아이들에게 가장 귀한 선물

 

<하느님의 눈물>같은 글로 우리에세 생명누리, 살림누리를 글로 만나게 해줬던 권정생 선생의 오랜 벗인 민들레교회 최완택 목사가 이계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교육이란 영혼이 맑은 한 사람이 한 개인을 만나 그 개인의 영혼을 맑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위대한 젊은 스승을 한분 얻었다."

 

"영혼이 맑은 사람"이 영혼을 맑게 해준다. 내 아이에게 대박과 스타강사 만나게 해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는 아주 낯설다. 하지만 이보다 더 사람냄새나는 것이 있나. 내 아이에게 영혼을 맑게 해주는 선생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부모로서 가장 가치있는 일임을 알자.

 

책을 덮는 순간 콘크리트보다 더 견고한 교육 불가능의 큰 틈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함께하면 견고한 방파제처럼 철옹성 같았던 교육 불가능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현장을 우리 눈으로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다. <변방의 사색>은 내 자식만 잘되고, 사람 냄새 없는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부둥치는 우리에게 선한 채찍이면서 '살림누리'로 들어가게 하는 생명물길이다.


k****e 2011.09.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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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요원한 근원에의 성찰
"여전히 요원한 근원에의 성찰" 내용보기
시끄럽기만 한 세상을 바라보며 요란하고 소란스러운 사람들과 현상들을 관통하는 근본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한다.  분노하고 흥분하며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모습들은 단지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우리의 자연적 반응으로 납득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감정을 뒤흔드는 일들이 해결이 되면 우리는 다시 평온을 되찾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수많은 일들에 감정을
"여전히 요원한 근원에의 성찰" 내용보기

시끄럽기만 한 세상을 바라보며 요란하고 소란스러운 사람들과 현상들을 관통하는 근본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한다.  분노하고 흥분하며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모습들은 단지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우리의 자연적 반응으로 납득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감정을 뒤흔드는 일들이 해결이 되면 우리는 다시 평온을 되찾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수많은 일들에 감정을 뒤흔들고 다시 평온과 행복을 찾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얼마만큼의 넓이와 깊이의 사유로 가능한 일일까?  


  바다를 내려다본다.  물결은 어떤날은 잔잔했다가도 어떤날은 세찬 파도가 되어 인간의 영역을 덮치곤 한다.  햇살과 마주하여 어느날은 사랑스러운 쪽빛이다가도 깊이를 가늠못할 군청색의 무서움을 만들어내곤 한다.  하지만, 깊은 곳의 바다는 언제나 물때와 지형에 따라 변함없는 모습으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보여지는 바다의 변화무쌍한 모습과는 달리 그 내면은 언제나 여일하기만 한 것이다.  우리의 감정을 뒤흔들어대는 세상 모든 일의 내면에 존재하는 여일함, 사유의 깊이와 넓이가 확장되면 우리는 그런 여일함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감정적이지도 시끄럽지도 않다.  다만, 세상의 격정이 담긴 화살을 맞아 스스로 상처를 입을까 조심할 뿐, 근본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말없이 변화를 모색한다.


  시골교사의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일희일비하며 흥분하고 안타까워했던 모든 일들을 넘어, 많은 이야기들과 감정의 기복을 관통하여 내재된 근본을 들추어 바닥에서부터의 성찰을 논한다.  그것은 한 인간만의 생각을 넘어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근본의 이야기이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무형의 폭력을 자행하는 학교의 모습들과,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파괴의 폭력을 일삼는 세상과, 성찰은 존재하지 않은 채 나팔소리만 난무한 소음의 폭력을 넘어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근본의 모습은 어떠한가에 대한 잔잔한 제안의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잔잔하며 덤덤하다.  그러나 국어교사라는 직업과 잘 어울리게 감칠맛나는 글이 어렵지않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녹색평론 독자로서 지은이가 녹색평론에 기고한 글들도 자주 접했지만,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또다른 어떤 힘을 느끼기도 했다.  그 힘은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데 조용하게 가슴을 두드리는 글들은 때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오래전부터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이들이 결국엔 땅으로 돌아가 농사를 돌보는 모습을 보며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누군가의 설명이 아닌 스스로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지금은 나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더라도 땅과 땅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의 근본성을 깨달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도 지은이가 생각하는 근본을 이야기한다.  12세기 베네딕트 성인이 말한 기도와 노동, 성찰과 땅, 그리고 교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인문학과 농업..  근본적으로 나 역시 동의한다.  성찰없는 노동은 괴로움과 소외됨일 뿐이고, 노동없는 성찰은 가벼운 입씨름일 뿐이다.  아수라의 근본인 자본의 속성을 멀리하는 성찰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필요한 만큼 얻어내는 삶.  그런 삶들이 모여 감정의 요동과 참담한 파행을 근본에서부터 바로잡는 힘이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결국엔 나 자신의 실천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라는 현실적 처지에 직면하게 되지만, 끊임없는 성찰이 스스로의 변화를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h*****1 2011.11.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