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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진실
서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고졸하고 소박한 어쿼스틱acoustic 북으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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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디자이너, 건축가들의 전유물은 이미 아니다. ![]()
1부 '소통으로서의 디자인'에서는 ![]() '좋은 디자인은 진실을 말한다'는 명제를 시험해 본다고 할 수 있다.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세상과 호흡을 하도록 해주는 것인데 반하여 나쁜 디자인은 얕은 식견 혹은 속임수에 가까운 착취적 생산전략의 징후라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디자인은 진실을 말하고 나쁜 디자인은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그에 관한 내용으로 '과잉 디자인'에 관한 사례로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든다. 나도 로마에 갈 기회가 있어서 성베드로 성당을 간 적이 있는데, 그 웅장함에 찬사를 보내기보다는 권위적인 종교의 힘에 회의를 느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성베드로 성당이 건축될 당시에 여러 차례 설계의 변경이 있었음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브라만테의 디자인을 채택한 후에 카를로 마데르나의 설계가 추가되어 거대한 건출물로 변했던 것이다. 이 거대한 성당은 로마와 교황의 압도적인 권력을 선포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 ![]() 이처럼 권력이나 금권을 드러내는 과잉 디자인은 대중들에 대한 눈속임이기에 나쁜 디자인이고, 그런 디자인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 또한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게리의 작품인 스타타 센터의 조각조각 해체되어 떨어지는 것같은 디자인도 결국에는 떨어지지 않았던가.... ![]() 좋은 디자인은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디자인은 자연에 가까워짐으로 자연의 진실을 흉내내기 때문인 것이다. 권력과 돈을 향한 추구와 결부된 거짓된 문화를 만들어낸 나쁜 디자인으로는 성베드로 성당, 베를린 시민회관, 세계무역센터, 자동차 엣셀의 예가 그 이유를 말해주는 것이다. 세기적인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온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역시 거대한 프로젝트에 개입된 금전적 정치적 이해관계로 디자인의 왜곡을 가져왔던 사례의 건축물이다. 이에 대한 설계단계에서부터 붕괴까지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왜 좋은 디자인이 진실을 말해주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 ![]() ![]() 이 건물은 야마사키가 설계했는데, 처음에는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생각한 80층 타워였는데, 항만청의 야망이 110층의 타워로 만들게 한 것이다. 특히 이 건물은 이슬람 전통의 디자인이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기호적 선언을 만들어 낸 것인데,이는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법 에 의하면 신성한 언어를 침범한 것이다. 그러니 쌍둥이 빌딩이 비극적 참사의 주역이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이슬람 디자인을 향한 건축적 오마주가 이슬람에 대한 모독으로 해석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히틀러와 그의 숙적인 윈스턴 처칠의 그림을 비교한 내용이다. ![]() ![]() 단 한 장의 그림이지만 이 그림은 그린 사람의 심리까지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에서 좋은 디자인이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진실을 가르쳐준다. ![]() 2부: '자기 창조로서의 디자인' ![]() 이 부분은 1부의 내용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이다. 디자인이 심리적, 사회적 구동에 끼치는 영향을 탐색해 보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디자인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영역에 디자인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제퍼슨의 삶, 마키아벨리의 삶 등을 조명해 본다. 이들의 삶은 자기 디자인의 연속이었고, 그들은 자신이 참여한 포로젝트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들은 디자인이 인간 절대성의 한 종류, 자아실현의 형태임을 가르쳐준다. 결국에 이 책의 저자인 그루딘이 말하는 '소통으로서의 디자인'은 통제력을 행사하는 행위이며, 여기에서의 디자인은 사물에 관한 디자인이 아닌 자기자신에게, 나아가 더 많은 사람에게 삶의 지평을 넓히고 자유를 선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디자인을 이와같은 시각으로 접한다는 것은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일 것이다. 디자인에 관한 폭넓은 에피소드를 생각하고 이 책을 접했던 나에게는 디자인의 두 형태인 '소통으로서의 디자인'과 '자기 창조로서의 디자인'이라는 색다른 두 이야기를 인문학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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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디자인없이 현대의 생활을 말하기는 힘들다. 무엇을 개발할 것인가를 생각하던 20세기를 지나 이제 우리는 개발한 제품을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가? 즉 어떤 디자인을 씌워야 그 상품이 돋보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똑같은 기능의 제품을 개발하기는 쉬워도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디자인을 고안해내는 것은 힘들다. 이 책은 디자인에 대한 철학적 사고의 기록인데 디자인이라는 의미가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오토바이사고를 예로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고당시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훌륭한 디자인이 자신의 오토바이와 상대편 자동차에 실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파하면서, 디자인과 진실의 문제에 대해 생각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는 제품들은 기능인가 형태인가를 선택하는 것 같지만, 좋은 디자인은 결국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는 철학을 믿는다. 디자인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소통하게 하는 것이며 자연과 닮은 것이다. 그리고 결국 좋은 디자인만이 살아남는다.
저자는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디자인을 인식하고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삶의 일화들을 통해서 설명한다. 학창시절 자신에게 디자인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한 가족의 자동차 이야기, 자신의 가족의 상징과도 물건이 되었던 떡갈나무 식탁 이야기. 저자는 이 물건들이 자신의 감성에 그리고 자신의 일상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를 생각하며 디자인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한다. 그가 몇달에 걸쳐 수리한 식탁은 가족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 되어 몇 십년 동안 가족과 함께 성장하고 낡아가 고, 가족사이의 대화를 이끌어 내고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물건이 된다.
책의 2부에서 저자는 디자인의 개념을 만든 조르조 바사리에서 시작하여 디자인이 예술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효과적으로 작용했는가를 연구한다. 나아가 정치이념을 디자인하고자 했던 제퍼슨이나 루스벨트의 이야기 등을 펼치며 디자인의 개념을 확장시켜 간다. 책을 더 읽어나가면 디자인이라는 지식경영 등과 이어지는 지식디자인, 심리치료와 연관지어지는 인간의 심리디자인, 효과적인 예술 전달을 위한 시간디자인 등등이다. :
저자의 결론은 우리 모두가 디자이너라는 데에 이른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이루어야 할 지향점에 이루기 위해 은연중에 효과적인 디자인을 모색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의 내면에 이미 디자이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을 우리가 디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순간들에 과잉디자인으로 자신을 낭비하지 말고, 소통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고 진실을 추구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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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의 모든 면에서 디자인(design)과 만난다.아침에 일어날 때 울리는 알람에서부터 저녁에 잠 들기 전에 듣는 음악까지 알고 보면 인간은, 디자인 속에서 먹고 마시고 숨을 쉰다.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무난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우리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다.그런데 본질을 알고 보면 디자인의 외형은 내재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에서 형태를 부여 받는다.그럼,우리가 보는 디자인의 형태 속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다빈치코드>를 보면 뉴욕의 많은 건축물에는 중세템플기사단의 문양이 숨겨져 있다.디자인은 많은 것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숨기기도 한다.9.11테러가 벌써10년을 맞았다.뉴욕의 쌍둥이 빌딩과 디자인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고대부터 통치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건축물을 많이 남겼다.현대에 와서도 높고 큰 건축물에는 어떤 상징을 담아낸다.큰 건축물은 자신의 권위로 사람들의 무의식을 지배한다.책은 디자인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의식적인 소통과 통제력의 양면성에 다가간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다도(茶道)예식을 새롭게 디자인함으로써 그 사회 안에 진실을 소통하는 길을 닦은 센노 리큐와 히데요시의 일화를 통해 디자인과 권력 사이에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서두에서는 형태를 기능의 우위에 둔 소트사스와 기능의 표현이 형태의 가장 순수한 방식이라고 본 임스를 통해 디자인의 양극단의 모습을 보여준다.저자는 다양한 현대 건축물의 모습을 통해서 디자인이 정치권력 앞에서 얼마나 쉽게 변질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로버트 그루딘은 영화,연극,문학과 스포츠등 많은 예술 작품이 말하는 디지인의 본질적인 모습을 찾아, 미래의 디자인이 추구할 방향을 모색한다.
로버트 그루딘은 오리건 대학 영문학과 명예교수다.<책-한편의 소설>로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그 밖의 저서로는 <시간,그리고 삶의 기술> <굉장한 여행> <추한 미국> <걸작의 미덕> <대화에 관하여>등이 있다.
이슬람 상업주의로부터 정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에게 야마사키가 만들어낸 '상업을 경배하는 모스크'의 상징물은 하나의 저주로 여겨졌을 것이다.아마도 빈 라덴에게 세계무역센터는 단순한 국제적 명소가 아니라,잘못된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p86)
현대의 디자인은 어떤 이념이나 권력,사상을 담는 그릇으로 변질되었다.그래서 디자인에는 비움이 필요하다.책은 전략과 수단이 아닌 과정 그 자체로서의 디자인으로 복귀를 추구한다.그래서 저자는 디자인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봄으로써,디자인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과 일반인이 함께 생각 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만들어준다.
태초에 우주는 혼돈에서 질서를 갖추게 되었다.디자인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상태에서 유를 창조한다.그러나 현대의 디자인은 이미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 많은 상징을 통해서 구현된다.권력 또한 상징을 통해서 구현한다.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들어선 현대의 디자인은 어떤 형태로든 헤게모니와 상업성을 띨 수 밖에 없다.그래서 저자는 디자인이 인간의 본성과 소통하길 원한다면 장자가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열자가 말하는 허(虛)를 지향 하는게 아닐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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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는 단 몇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말로써, 눈빛으로써, 다양한 손짓이나 몸짓, 표정, 특정한 행동이나, 글이나, 노래,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습관 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렇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행해진 표현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 어떤이는 누군가의 표현이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떤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상인지라 독심술을 하지않고서야 모두의 진심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서로 소통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책은 디자인이라는 표현의 방식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소통해 왔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으며 어느곳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소통으로서의 디자인이라는 제목으로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자신의 오토바이 도미네이터와 듀스쉐보가 충돌했을 당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능과 형태를 완비한 자신의 오토바이와 기능만을 강조한 듀스쉐보를 비교하며 이 둘을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의 예로 들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컬러풀한 사진이 담겨있어 쉽게 비교할 수 있게 해두었지만 아무래도 외국인 작가가 쓴 책이라 예로 든 물건들과 직접 대면해 보지 않아서 살짝 멀게 느껴졌다. 티코, 에쿠스, 소나타 등 우리나라 자동차나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내가 사용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전자제품, 가구를 예로 들었다면 훨씬 공감대가 컸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뉴스속보로 하루에도 몇번씩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던 10년전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로버트 그루딘은 세계무역센터의 붕괴가 디자인을 통한 누군가의 선언적 표현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어떻게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었는지 그리하여 그 결과가 불러온 비극에 대해 말해준다. 그리고 1부의 뒷부분은 디자인에 얽힌 자신의 경험담을 담고 있다. 2부에서는 자기창조로서의 디자인이라는 제목으로 디자인과 지식, 그리고 에너지에 대해 말한다. 같은 눈으로 디자인을 바라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 미술가, 건축가들의 예를 통해 지식을 한데 모아 에너지로 순환시켰던 그들의 디자인법에 대한 이야기는 참 흥미롭다. 이어서 제퍼슨과 마키아벨리를 통해 디자인은 인간 절대성의 한 종류이며 자아 실현의 한 형태임을 제시하고 디자인 원칙을 지식 경영과 같은 분야로까지 확장하는 사회적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식 디자인으로써의 자유, 기업의 재디자인, 지식사업, 시간을 디자인하기, 사적 지식의 디자인이라는 각 제목처럼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형태가 있는 물건의 디자인의 차원을 넘어 광활한 시간과 지식의 영역까지 디자인을 확대시킨다.
이 책은 구체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추상적인 이야기로 그리고 다시 그 추상성을 한 인간의 내면안에 담아내는 순서로 디자인을 통한 소통과 디자인이 품은 진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디자이너가 살고 있다."고 말한다. 나부터 소통의 한 방식으로써의 디자인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개개인의 삶을 디자인하는 훌륭한 디자이너고 싶다. 뛰어난 기능에 내구성 있고 아름다운 형태까지 갖춘 삶을 디자인 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 서평은 복돋움 출판사에서 무료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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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새로운 시각으로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소통으로서의 디자인'과 '자기 창조로서의 디자인'이라는 인문학적 관점입니다. 곧, 디자인이 주는 것은 산업으로서의 '경쟁력'이 아니라 '진실'이요 '자유'라고 설명하며 디자인이 지닌 다양한 측면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소통으로서의 디자인'은 일본 다도의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센노 리쿠'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값비싼 다기와 화려한 예식으로 덧칠된 16세기 일본 다도계에 새로운 흐름을 일으킨 인물인데, 다도의 본질을 '차와 차를 마시는 사람'에 집중하여 새로운 다도예식 일체를 '디자인'하였다고 합니다.
지은이는 센노의 다도야 말로 '진실을 전하는 디자인'이라고 말합니다. 겉으로는 다도의 탈을 썼지만 권력과 지위를 드러내려는 화려한 예식일 뿐 이었던 이전의 다도가 '거짓을 말하는 디자인'이었다면 센노의 다도는 '차를 마시는 행위'라는 본질 만을 고스란히 녹여 내어 진실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즉, 행위의 본질이나 행위에 참여하는 주체의 내면이 드러나는 디자인이야말로 진실을 전하는 '소통'이라고 합니다.
한편, '자기 창조로서의 디자인'은 자유를 선사합니다. 지은이는 자기 창조로서의 디자인은 통제력을 행사하는 행위이고 여기서 디자인은 자기 자신에게, 나아가 더 많은 사람에게 삶의 지평을 넓히고 자유를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지은이는 차를 마시는 행위, 그림을 그리는 행위, 건축물을 설계하는 행위, 가족이 쓸 가구를 직접 만드는 행위, 기업을 경영하는 행위, 책을 쓰는 행위 등 서로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수 많은 행위들이 모두 디자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단지 그 행위에 진실이 담겨 있고, 그 행위가 자신을 자유롭게 해준다면 모든 것이 다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은이는 잘못된 디자인은 권력의 남용이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좋은 디자인이 진실을 말한다면 나쁜 디자인은 거짓을 말한다. 나쁜 디자인의 거짓말은 권력의 획득이나 남용과 관련된다" 그래서, 겉치장에만 열을 올리고 본질을 외면한 디자인이 어떤 비극을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평생에 걸쳐 디자인 애호가로 살아온 비교문학 전공의 인문학자가 '디자인' 그 자체를 화두로 삼아 종횡무진 동서고금의 인문학적 지식을 인용하여 풀어 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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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써 이 책은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흔히들 많은 대중들이 디자인에 대해 오해하고 착각하는 점들을 저자는 그들의 입장에서 짚어내고 있었다. 확실히 디자인은 화려한 표면만큼 모순된 거짓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이 더욱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지만 일반 대중들은 가장 중요한 진실을 관과하고 있다. 디자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매우 큰 힘을 지니고 있다. 이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 측면 두가지 요소를 지니는데 긍정적인 방향에서의 디자인은 무척 큰 힘과 재능이 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으ㅏ 디자인 또한 매우 막중한 힘을 지닌다. 이는 디자인을 통해 얼마나 큰 오류가 범해지며 그 오류로 인해 잘못된 지식이 일반화될 수 있는 문제를 초례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디자인은 그 재능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에 관심이있는 이들은 이 책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설립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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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진실> 이책은 디자이너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일반인들에게 그동안 디자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고발하는 일종의 보고서에 가깝다. 디자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보자. 디자인(design)이란 단어는 'de + sign'이라는 두 가지 단어의 조합이며, Sign에는 Communication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즉 디자인이란 소통의 결과물이며 그 소통의 방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디자이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디자인은 과연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가?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런것은 아님을 보게된다.
저자는 디자인이란 "디자인 행위의 대상과 그로부터 창출되는 모든 결과물을 일컫는다. 물질적인 인공물뿐 아니라 무형의 사상, 행동의 패턴 등도 디자인 행위의 대상이자 결과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인공물의 외양부터 총체적인 설계까지, 그리고 철학이나 사상의 골조, 특정행위나 일상에서 반복되는 절차나 계획 등을 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p25)라고 정의한다.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한잔의 찻잔은 일본의 대표적인 다도가인 리큐를 상징한다. 리큐는 그만의 다도예법으로 유명한데, 그는 차를 마시는 공간의 크기를 엄격히 제안하고 축약함으로써 차를 마시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그의 다실에서는 지위의 고하에 상관없이 모두 허리를 굽혀야 했다. 차를 마시는 사람 사이의 새로운 소통방식을 디자인한 것이다. 그러나 리큐의 다도는 당시 권력자인 토요도미 히데요시에게는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화려하고 권력의 위용을 드러낼 수 있는 다실을 원했던 히데요시에게 이는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리큐는 활복을 하게 된다. 이것은 디자인과 권력의 대립의 대표적인 예인 동시에 디자인이 권력에 병합되지 않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화려함과 위용을 자랑하는 성 베드로 성당이나 세계무역센타처럼 권력에 의한 생산된 과잉디자인을 더 쉽게 만나게 된다. 세계무역센타가 이슬람 건축에 대한 오마주에도 불구하고 일부 이슬람원리주의자들에게는 잘못된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된것은 과잉디자인의 전형이며 우리가 모르는 디자인에 숨겨진 진실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과잉디자인을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도 계속 목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냉전도시로서의 부정적인 서울 이미지를 디자인으로 극복하겠다고 선언하고 '디자인 서울'을 표방한 우리의 도시를 둘러보자. 냉전이란 것이 외형적 변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가? 그 결과물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에 대한 소통방식이 아닌 외형적인 변화나 랜드마크로 포장된 '권력'의 결과물이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화려하고 가득 채워진 것만이 좋은 디자인은 아니다. 애플의 디자인이 아름다운 것은 그 외형이 아닌 그 디자인의 시작에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진실>은 우리 역사속에 디자인된 행위의 결과물들을 통해 외형적 디자인의 이면에 숨겨진 권력의 모습을 통해 나쁜 디자인과 좋은 디자인의 의미를 알려준다. 담고 있는 내용이 쉽지많은 않지만 디자인이 사물에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하던 독자들에게는 디자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책이라고 본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