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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대천덕 신부님의 타계소식을 뉴스를 통해듣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분이 나의 영적 스승이 되셨다. 책의 제목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개척자의 길"이었다 개척자만큼 용기를 필요로하고 고생을 짊어지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이 책은 R.A 토리3세인(한국명 대천덕)이 어린시절 부모님을 따라 선교여행을 했던 기록을 비롯해서 그가 결혼하여 한국에서 사역하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녹아있다. 책을 읽으면 그분의 선한 눈매가 느껴지고 부드러운 음성을 듣는듯하다 또한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시고 지금도 역사하고 계심을 성경을 통해서 대천덕신부님을 통해서 알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평생 소장하며 내 후대에게 전해주려한다. 아이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의심을 품고 회의적으로 변한다면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어떤 일들을 행했는지 보여주기위해서이다. [인상깊은구절] 성령님이 함께하시면 하나님이 어떤일을 맡기셔도 크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이 잘되고 안되고는 나의 능력에 달린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임재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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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덕 신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썼던 자서전.(1998년 출판)
20대 대학시절 헨리 조지의 저서 '진보와 빈곤', 대천덕 외 공저 '두 체제를 잇는 가교'를 읽으며 바른 기독교 경제를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누나가 사 놓고 읽었던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를 나도 조금씩 읽으며 대천덕 신부와 안면을 트고(?) 지냈던 시간이 생각난다. 그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서 내 책장 구석에서 오래된 책 '진보와 빈곤', '두 체제를 잇는 가교'를 꺼내서 책상위에 올려 놓았다. 조만간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영향을 받아 온 많은 기독교 사상과 철학,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분들중 많은 분들이 대천덕 신부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기독교 대학 설립 동역회, 한국 창조과학회, 현재 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의 양승훈 교수, 한동대학의 설립 등등...
'대천덕 자서전'을 읽으면서 대천덕 신부가 성경적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성경을 연구 했는지, 공동체의 모범된 코이노니아를 실천하기 위해 얼마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능력을 구했는지, 찾아오는 사람들과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얼마나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대천덕의 평생을 개척자로서 살았고 이런 그의 모험과 개척의 정신은 젊은 시절 다양한 삶의 경험으로 나타났다. 보이스카웃으로서의 활동(캠프 등), 20대 철공, 선원생활 등으로 나타났으며 결국은 예수원을 설립하게 되니까 그의 모험과 도전은 평생 계속된 셈이다. 모험하지 않으면 어떻게 더 좋은 것을 찾아내고 또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타낼 수 있으랴!
대천덕은 강원도 태백의 산골짜기에서 작은 공동체와 기도로 평생의 삶을 살았지만 한국의 지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오히려 그의 지혜를 구하고 삶의 방식을 배우기 위해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원을 찾았다는 사실은 우리시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성경에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증거가 된다. 모든 문제의 해답을 성경과 기도를 통해서 찾았고 해답의 실천을 위해 성령을 구했던 그에게서 우리는 삶의 모범과 공동체의 진수를 배우는 것이다.
우리 처제는 예수원을 서너번 갔었고 대천덕 신부를 만났던 적도 있다고 하건만 나는 나이만 이렇게 더 먹고 뭘 하고 있었던고...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선지자를 찾지 않고서...
대천덕은 1918년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장로교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북중국 미국인 학교에 재학하다 한국 평양 외국인 학교로 옮겨 수학하고 졸업했다. 17세 데이비슨 대학(남침례신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20대 철강회사 철공, 선원 생활 등 육체 노동자로 생활했고 27세 남부대학(성공회 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다. 장로교에서 성공회로 옮겨간 시기. 1957(50세)에 한국에 와서 성 미가엘 신학원을 재건립하여 신학원장으로 사역하다가 1965년 강원도 태백(당시 황지) 하시미에서 예수원을 시작해서 37년간 예수원을 섬기다가 2002년 8월 6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인상깊은 구절] "이 공동체가 내게 준 기쁨 가운데에는 샘 모펫이라는 친구가 준 기쁨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날개 아래 나를 품어 주었고, 그것은 내가 공동체로부터 사랑을 받는 통로가 되었다. 샘과 나는 전에 한번도 만나 적이 없었고 그가 나에 대해 들어 본 적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그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내 후견인을 자청했다. 나는 그의 우정을 결코 잊을 수 없다" -55p
"나의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학업이나 교수님이나 동료 학우들과의 관계가 아니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76p
"이 일을 통해 나 혼자서는 가장 쉬운 일도 해낼 수 없지만, 성령님이 함께하시면 하나님이 어떤 일을 맡기셔도 크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이 잘되고 안되고는 나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임재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이 교훈을 잊은 적이 없다. 내 앞에 놓인 일이 쉬워 보이든 어려워 보이든 하나님을 계속해서 의지할 때에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19p
"건강이 다소 회복되어 서울에 가서 검진을 받은 결과, 심장 발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내 나이에는 손상된 심장의 승모판을 회복하는 수술을 받을 수 없으며, 짧게는 12개월에서 길게는 18개월밖에는 못 산다는 진단이 나왔다.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내가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도 하나님의 뜻에 달린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중략....12개월이 지났지만 상태가 크게 악화되지는 않았다. 18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중략....나는 병원에 입원했고, 의사 한 팀이 그 동안 문제가 되었던 심장 승모판을 잘라내고 돼지의 승모판을 연결한 뒤 다시 꿰매서 원상복귀시켜 놓았다. 그 이후 나는 죽음의 문에서 돌아왔고, 놀랍게도 계속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중략...수술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제인은 공동체 운동을 하는 사람 중 우리가 아는 한두 사람과 친척들에게 연락을 했고, 그들은 또 각자 자기가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순식간에 중보기도의 바다에 둘러싸였던 것이다." -237-239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