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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모든 소동의 원인으로 무조건 저 멀리 떨치고 나아가자는 주장으로만 들뢰즈를 이해한 점을 지목한다. 짐작되는 부분은 있다. 들뢰즈 철학은 알려졌다시피 1960년대 68혁명의 소산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우파 전체주의는 물론, 좌파 전체주의에 치를 떨었다.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탄핵하고 달아난 뒤, 그 대신 전 세계와 접속해버렸다. 그러나 들뢰즈를 그렇게만 읽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디지털 기술 발달로 모두가 한 다리 건너 다 연결된 세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저자는 1988년쯤 행해진 말년 인터뷰에 나온 들뢰즈의 이런 목소리를 가져온다. “그래서 저는 여행이 내키지 않습니다. 생성변화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다면 너무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저는 토인비가 쓴 한 구절 때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목민이란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라져버리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유목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알파요, 오메가인 문장이다. 저자는 “사람이 너무 움직이면, 많은 것에 과도하게 관계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다”며 들뢰즈의 저 말을 “자의식의 폭주와 무의식의 폭주를 모두 절제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오늘도 스마트폰을 들고 페이스북을 켜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라고 묻는다. 그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매 순간 모든 이슈에 대해 나만의 독특한 - 그러나 실은 별달리 새로울 것은 없는 - 의견을 내놓으라 요구한다. 자존감과 자신감 넘치는 우리는 마치 홀린 듯, 저마다 품어왔던 오랜 개똥철학들을 망설임 없이 줄줄 쏟아 낸다. 들뢰즈는 이런 말도 한다. “정말로 바람직한 것은 이러저러한 논점에 관해 그 어떤 의견도 갖지 않는 것이다.” 당신의 모든 것을, 굳이 이 세상에 자유롭게 활짝 펼칠 것까진 없다. 그게 세상의 평화에 더 기여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