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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벚꽃-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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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벚꽃-고영민꽃이 활짝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일부러 며칠을 더 지체했습니다당신을 업고천변에 나옵니다오늘밤 저 꽃들도 누군가의 등에얌전히 업혀 있습니다어둠 속에서 한 나무가 흘러내리는 꽃을몇 번이고추슬러 올립니다무거운데이젠 나 좀 내려다오, 아범아내려다오피어 있을 때보다떨어질 때 더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당신을 업고 나무에 올라풀쩍, 뛰어내렸습니다드라마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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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벚꽃


-고영민


꽃이 활짝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며칠을 더 지체했습니다


당신을 업고

천변에 나옵니다

오늘밤 저 꽃들도 누군가의 등에

얌전히 업혀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 나무가 흘러내리는 꽃을

몇 번이고

추슬러 올립니다


무거운데

이젠 나 좀 내려다오, 아범아

내려다오


피어 있을 때보다

떨어질 때 더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당신을 업고 나무에 올라

풀쩍, 뛰어내렸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


할머니가 지안에게 달이 보고 싶다고 하자

지안은 마트 카트를 끌고 온다

어두운 골목길과 계단을 겨우 내려온다

중간에 동훈이 도와주긴 하지만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지안의 방에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환한 달


그렇게 꽃이 활짝 피었다는데

「밤 벚꽃」의 화자는 며칠을 기다린다


피어 있어도 떨어져 있어도 아름다운 꽃


달과 꽃의 환함으로 우리들의 어두운 마음 속을 들여다본다



s*****m 2019.02.2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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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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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고영민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그녀의 집 대문 앞에 빈 스티로폼 박스가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밤새 그리 뒹굴 것 같아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와그 안에 넣어주었다시를 읽는 오전은 한가로워요. 휴일을 가졌다는 근사한 사실이 바람을 견디고 한기를 잊게 해줍니다. 봄의 시작이라는 절기 앞에 겨울은 그 기세를 수그러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라디오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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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고영민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그녀의 집 대문 앞에 

빈 스티로폼 박스가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밤새 그리 뒹굴 것 같아

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와

그 안에 

넣어주었다


시를 읽는 오전은 한가로워요. 휴일을 가졌다는 근사한 사실이 바람을 견디고 한기를 잊게 해줍니다. 봄의 시작이라는 절기 앞에 겨울은 그 기세를 수그러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라디오 두 개로 클래식 방송을 듣습니다. 같은 채널의 방송을 두 개의 라디오로 듣고 있는데 그 이유는 좀 더 잘 듣고 싶어서입니다. 때때로 나의 말은 의미가 불분명하지만 시간이라는 오래고 다정한 친구 덕분에 나의 언어는 의미를 갖습니다. 

첫사랑의 집 앞을 서성이는 저녁 봄날, 바람이 불어 그 집 앞에 오래 서 있기 어려운 마음을 짐작해봅니다. 나 대신 빈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주는 돌멩이. 바람에도 떠밀려 가지 말라는 나의 마음을 대신 넣어주고 오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그려봅니다. 봄날에도 여름날에도 첫사랑의 마음은 넣어주고 온 돌멩이로 휩쓸려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백숙

-고영민


마당가엔 라일락이 피고 뒷산에선 뻐꾸기가 울었다

볕이 좋아 아내는 이불 빨래를 널었다

병든 아버지를 위해 나는 수돗가에서 닭을 잡았다

더 마르기 전에 모습을 남겨두어야 한다며

아버지는 대문간 옆에 양복 상의만 갖춰 입고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아버지는 웃고

백숙은 솥에서 저 혼자 끓고

-하지만 백숙은 살이 녹을 때까지 더 오래 끓이는 것

나는 아버지의 얼굴 속에 5월의 라일락과 뻐꾸기 소리,

우아하게 지붕 위로 날아오르는 구름을 담고자 찰칵찰칵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모여 백숙을 먹었다


*화가 문성식의 작품 <6월의 뻐꾸기> <봄날은 간다 간다 간다>에서 이미지를 빌려 옴.


  볕이 좋은 날 아내는 빨래를 널고 그 빛 아래 아버지는 양복 상의만을 걸친 채 영정 사진을 찍습니다. 공평한 빛 아래 살아 있음과 곧 죽음으로 이어질 날들을 한껏 꾸밉니다. 오래 끓인 백숙을 나눠 먹는 풍경인데 가슴이 아프다가도 담담해집니다. 삶이란 죽음으로 다가가는 여정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나에게 휴일이 있다면 다른 이에겐 휴일이 없을 수도 있겠지요. 어제는 오랜만에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를 고민하다 보니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시그널> 이후에 보는 드라마는 자꾸 이야기를 숨기고 감추려 들었습니다. 비판과 판단을 놓아버리니 시간은 새벽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백숙을 끓이는 시의 풍경과 밥통에 밥이 끓을 때 피어오르는 증기를 마주하는 휴일의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s*****m 2018.02.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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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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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공손한 손' 이어서 '구구' 고영민 시인은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아~그랬었지. 그런 느낌이었지!' 너무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현대의 일상에서는 모든 것이 그저 스쳐가는 단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고영민 시인는 그걸 그래도 내버려 두지 않은다. 붙잡고 만지고 맛보고 안아본다. 그런 그의 감성들이 그대로 묻어있는 아름다운 시집니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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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공손한 손' 이어서 '구구' 고영민 시인은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아~그랬었지. 그런 느낌이었지!'

너무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현대의 일상에서는 모든 것이 그저 스쳐가는 단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고영민 시인는 그걸 그래도 내버려 두지 않은다. 붙잡고 만지고 맛보고 안아본다. 그런 그의 감성들이 그대로 묻어있는 아름다운 시집니다. 덕분에 나도 씹고 맛보고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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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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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텅 빈 학교 운동장에 나가철봉에 매달려본다 너는 너를있는 힘껏 당겨본 적이 있는가끌려오지 않는 너를 잡고 스스로의 힘으로끌려가본 적이 있는가 당기면 당길수록 너는 가만히 있고오늘도 힘이 부쳐 내가 너에게 부들부들 떨면서 가는 길 허공 중 디딜 계단도 없이 너에게 매달려 목을 걸고핏발 선 너의 너머 힘들게 한 번 넘겨다본 적이 있는가 -고영민, 「사랑」,『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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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텅 빈 학교 운동장에 나가

철봉에 매달려본다

 

너는 너를

있는 힘껏 당겨본 적이 있는가

끌려오지 않는 너를 잡고

스스로의 힘으로

끌려가본 적이 있는가

 

당기면 당길수록 너는 가만히 있고

오늘도 힘이 부쳐

내가 너에게

부들부들 떨면서 가는 길

 

허공 중 디딜 계단도 없이

너에게 매달려 목을 걸고

핏발 선 너의 너머 힘들게 한 번

넘겨다본 적이 있는가

 

-고영민, 「사랑」,『구구』,문학동네

 

사랑에 목매달아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철봉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땅은 계속 나를 잡아 당기는데

어떻게든 있는 힘껏 매달려 보려고 했던 그 안타까움이 고스라히 전해진다...

l******l 2016.03.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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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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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수 밥 딜런이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며,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다. 문학을 귀로 전달한 공로가 인정된다는 것이 수상의 이유다. 우리나라 대중가요 중에도 밥 딜런의 가사처럼 아름답고도 의미심장한 내용이 많다. 하지만 대중가사라는 이유만으로 곧잘  그 가치는 폄하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한 것처럼 나 역시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의외다. 마치 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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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수 밥 딜런이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며,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다. 문학을 귀로 전달한 공로가 인정된다는 것이 수상의 이유다. 우리나라 대중가요 중에도 밥 딜런의 가사처럼 아름답고도 의미심장한 내용이 많다. 하지만 대중가사라는 이유만으로 곧잘  그 가치는 폄하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한 것처럼 나 역시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의외다. 마치 윈스턴 처칠이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실을 알았을 때처럼 놀랍다. 그러나 그 놀라움의 정체는 상쾌함과 같은 긍정적인 것이다. 문학이 꼭 커다란 의미로 무거울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밥 딜런의 노래 가사를 찾아 읽고, 부드러운 그의 음색이 잘 어울리는 노래들을 들으며 생각 난 김에 미뤄두었던 시집 한 권을 읽었다. '공손한 손'과 '앵두'로 인상 깊었던 고영민 시인의 신작 시집 "구구"다. 이번 시집은 83편으로 좀 많은 편이다. 그 이유가 뭔가 살펴봤더니 시들이 짧다. 시의 길이에 의미를 두는 건 그야말로 별 의미가 없는 일이므로 그냥 쭉 읽어내려갔다. 4부로 구성된 소제목은 역시나 감각적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런말 하기 좀 미안하지만 시가 좀 자잘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서정적이며 소시민들이 가져봄직한 생활시들로 이루어진 시집이 한 두 권이 아닌데 이 시집에서 내가 가장 크게 받은 느낌이 '자잘'이라니.

 

소시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자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일 거고, 그 자잘함을 들여다보며 삶을 찾아 노래하는 것이 시인의 소명인 것은 맞는데 왜 이렇게 불만이 쌓이는지. 그건 아마도 시인이 들여다보는 세계가 소시민의 시선과 그닥 차이가 없는 것 때문은 아닌지. 그냥 툭, 던져놓고마는 시들을 읽으며 마음이 답답해 진 것은 결코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나오지 않았다는데서 오는 짜증은 아니다.

 

'공손한 손'에서 느껴지던 따스함, '앵두'에서 보여지던 발랄함 등이 이번 시집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어떤 일에 대해 칭찬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칭찬을 하는 사람도 기분이 좋고, 그 칭찬을 받는 상대도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써 발표한 시들에 대해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을 때는 마음이 무겁다.  그 무거움을 껴안으면서까지 이런 말을 해보는 나 자신이 기어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고영민 시인의 다음 시집을 기대해본다.  

 

첫사랑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그녀의 집 대문 앞에

빈 스티로품 박스가

바람에 이리저리 딍굴고 있었다

 

밤새 그리 뒹굴 것 같아

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와

그 안에 넣어주었다

 

 

어미는 그냥 이쪽에서 저쪽으로 후르륵 날아간다

그리고 기다린다

계속 기다린다

 

새끼도 날아본다

 

옛일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기르던 개들 데리고

큰형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살던 집은

빈 집이 되었다

 

차에 실려가는 동안 개는

밖을 넘겨다봤다

하지만 개는 지나온

길을 다 기억할 수 는 없었다

 

아버지는 생전

그 늙은 개를

월동아, 하고 불렀다

 

 

 

 

t******e 2016.10.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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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41 구구 (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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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8.22.노래책시렁 441《구구》 고영민 문학동네 2015.10.28.  적잖은 사내가 ‘사랑’이 아닌 ‘그짓’을 하려고 노닥골목에 간다지요. 더구나 싸울아비(군인)로 끌려간 사내는 멧골짝에 갇혀서 몇 달을 옴쭉달싹 못 하는 채 괴롭고 지쳐서, 틈(휴가)을 얻어서 밖으로 나오면 그짓을 벌일 노닥골목에 간다고도 합니다. 이른바 ‘주한미군·일제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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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8.22.

노래책시렁 441


《구구》

 고영민

 문학동네

 2015.10.28.



  적잖은 사내가 ‘사랑’이 아닌 ‘그짓’을 하려고 노닥골목에 간다지요. 더구나 싸울아비(군인)로 끌려간 사내는 멧골짝에 갇혀서 몇 달을 옴쭉달싹 못 하는 채 괴롭고 지쳐서, 틈(휴가)을 얻어서 밖으로 나오면 그짓을 벌일 노닥골목에 간다고도 합니다. 이른바 ‘주한미군·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머물던 둘레는 온통 술집과 노닥집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싸움판(군대) 둘레만이 아니라, 돈이 우수수 떨어지는 둘레도 으레 술집과 노닥집이 넘칩니다. 《구구》를 읽다가 56쪽에서 노닥집 모습을 훤하게 보면서 덮었습니다. 이런 그짓도 글쓴이 삶이요, 창피하거나 부끄럽다고 숨기기만 하기보다는, 글로 담아낼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글로 담는 마음이란 뭘까요? 뭘 글로 담으면서 어떤 마음길을 밝히거나 그동안 어떤 나날을 어떻게 다스렸다는 뜻을 들려주려는 셈일까요? 글쓰기란, ‘구경하던 삶’을 옮기는 붓질로 그칠 수 없습니다. 글쓰기란, ‘삶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서 끝날 수 없습니다. 아직 사랑을 모르는 채 그짓에 몸도 마음도 팔린 나날을 애써 글로 옮기려 했다면, 오늘은 얼마나 어떻게 사랑을 마주하거나 스스로 짓는 발걸음이나 손길인지 돌아봐야지 싶습니다. 사랑이 아니거나 없기에 그짓을 하거나 구경을 합니다.


ㅅㄴㄹ


술 취하면 혀 고부라진 소리로 / 베사메 무초를 잘 부르던 여자가 / 겨드랑이에선 늘 리라꽃 향기가 나는 여자가 / 가끔 아들한테도 얻어터지는 여자가 / 눈두덩, 팔, 다리 이곳저곳 멍이 / 든 여자가 / 온종일 누워 얼굴에 계란을 굴 / 리는 여자가 / 부부싸움을 하고 홧김에 불을 지른 여자가 (라일락 그녀/21쪽)


행랑에 들창문이 줄줄이 붙어 있던 홍등가 2층 슬래브 건물, 그날 내가 만난 짝은 쇼를 하는 앳된 창녀였다 그녀는 우리들 앞에서 그곳으로 담배를 피우고 나팔을 불고 화살촉을 쏴 멀리 있는 색풍선을 맞혀 터뜨리고 동전을 원하는 숫자만큼 그곳에서 떨어뜨렸다. “세 개” 하면 세 개를 떨어뜨리고 “다섯 개” 하면 다섯 개를 떨어뜨렸다 마지막엔 그곳에 붓을 꽂아 이름을 써주었다 간직하고 있으면 세상에 이름을 떨칠 거라 했다 쇼가 끝나고 나는 그녀를 따라 쪽방으로 갔지만 옷을 벗을 수가 없었다 대신 그녀는 몸을 만져도 된다며 제 옷 속에 내 손을 넣어주었다 몸이 뜨거웠다 씨앗이 흙과 어울릴 무렵이었다 군복 안주머니엔 삐뚤빼뚤 그녀가 온몸으로 써준 고영민, 내 이름 석 자가 있었다 (고영민/56쪽)


+


《구구》(고영민, 문학동네, 2015)


코에 호스를 꽂은 채 누워 있는

→ 코에 줄을 꽂은 채 누운

→ 코에 대롱을 꽂은 채 누운

12쪽


공중화장실에서 긴 복대를 풀어놓고

→ 바깥쉼터에서 긴 배띠를 풀어놓고

→ 열린뒷간에서 긴 배띠를 풀어놓고

13쪽


밀려오는 요의(尿意)처럼 누군가는

→ 밀려오는 오줌처럼 누구는

→ 오줌이 확 마려우며 누구는

13쪽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고

→ 부챗살처럼 흩어지고

16쪽


숲의 덤불 속으로 뛰어가 낙하지점을 가늠하여 숲덤불을 뒤적이기 시작하네

→ 숲덤불로 뛰어가 내림길을 가늠하여 뒤적이네

→ 숲덤불로 뛰어가 떨어지는 곳을 가늠하여 뒤적이네

18쪽


고양이가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

→ 고양이가 아궁이로 들어가

19쪽


나무 아래를 천천히 걸었을

→ 나무 밑을 천천히 걸었을

→ 나무 곁을 천천히 걸었을

20쪽


펄펄 끓는 내 늙은 어머니에게로

→ 펄펄 끓는 늙은 어머니한테

→ 펄펄 끓는 늙은 울엄마한테

27쪽


기다림이 좋았던 시절

→ 기다리며 즐겁던 때

→ 기다리며 즐거운 날

29쪽


시선(視線)이 밖으로만 향해 있었다

→ 눈이 밖으로만 갔다

→ 밖만 바라보았다

→ 밖만 쳐다보았다

31쪽


화구(火口)가 열리고

→ 불길이 열리고

→ 불구멍이 열리고

33쪽


밥을 먹고 나간 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밥을 먹고 나간 날이 그이 마지막 모습이다

42쪽


행랑에 들창문이 줄줄이 붙어 있던 홍등가

→ 곁채에 들닫이가 줄줄이 붙은 붉은골목

→ 밖채에 들닫이가 줄줄이 붙은 노닥골목

56쪽


꽃의 얼굴을 대신해 나를 맞는다

→ 꽃얼굴처럼 나를 맞는다

→ 꽃얼굴로 나를 맞는다

73쪽


저 분(盆)도 한때는 환한 뿌리를 품었을 것이다

→ 저 그릇도 한때는 환한 뿌리를 품었다

→ 저 동이도 한때는 환한 뿌리 품었겠지

80쪽


요즘 아내의 운동은 밤낮 저 라켓을 휘두르는 것이다

→ 요즘 곁님은 밤낮 저 채를 휘두르며 땀흘린다

→ 요즘 짝꿍은 밤낮 저 자루를 휘두르며 뛰논다

88쪽


하모니카를 불 수 없지

→ 바람가락을 불 수 없지

→ 숨가락을 불 수 없지

92쪽


커브를 틀면 도르르르 왼쪽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면 도르르르 앞으로 급히 불려간다

→ 굽이를 틀면 도르르르 왼쪽으로, 멈추면 도르르르 앞으로 훅 불려간다

→ 꺾으면 도르르르 왼쪽으로, 서면 도르르르 앞으로 얼른 불려간다

98쪽


화분을 화분이라고 읽게 될까

→ 그릇을 그릇이라고 읽을까

→ 꽃그릇을 꽃그릇이라 읽을까

100쪽


산후조리 하는 딸을 위해 먼 고향집에서

→ 몸을 돌보는 딸을 살펴 먼 시골집에서

→ 몸을 푸는 딸을 헤아려 먼 시골집에서

107쪽


배롱나무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갖고 있었을까

→ 배롱나무는 얼마나 많이 헤아릴까

→ 배롱나무는 얼마나 너른 마음일까

→ 배롱나무는 얼마나 갖가지로 느낄까

110쪽


삼동(三冬)을 나기 위해

→ 겨울을 나려고

→ 한겨울을 나려고

111쪽


푸른 잎사귀의 옷을 껴입었다

→ 푸른 잎사귀로 껴입었다

→ 푸른옷을 껴입었다

→ 푸른 잎사귀가 겹겹이다

111쪽


남의 옷을 벗겨가는 종자(種子)는 인간뿐이다

→ 남옷을 벗겨가는 씨는 사람뿐이다

→ 옷을 벗겨가는 씨앗는 사람뿐이다

111쪽


마른 풀 위로 새 풀이 돋아 있다

→ 마른풀 옆으로 풀이 새로 돋는다

→ 마른풀 곁에 풀이 새로 돋는다

11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h*******e 2024.08.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