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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질주하는 에밀 자토페크의 삶
"끝없이 질주하는 에밀 자토페크의 삶" 내용보기
스포츠 소설 혹은 스포트 스타의 전기와 같은 형식을 취한 중편인데 형식만 그렇다. 흔한 스포츠 소설의 공식처럼 뻔한 막판 승리가 자아내는 최루성 감동은 없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따랐지만 전기의 밋밋함과 지루함도 없다. 심리 묘사와 배경 묘사가 거의 없이 객관적인 사실을 차곡차곡 보도하는 듯한 분위기임에도 인물의 개성은 차고 넘친다. 건조한 듯 하지만 건조하지 않고 따스
"끝없이 질주하는 에밀 자토페크의 삶" 내용보기
스포츠 소설 혹은 스포트 스타의 전기와 같은 형식을 취한 중편인데 형식만 그렇다. 흔한 스포츠 소설의 공식처럼 뻔한 막판 승리가 자아내는 최루성 감동은 없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따랐지만 전기의 밋밋함과 지루함도 없다. 심리 묘사와 배경 묘사가 거의 없이 객관적인 사실을 차곡차곡 보도하는 듯한 분위기임에도 인물의 개성은 차고 넘친다. 건조한 듯 하지만 건조하지 않고 따스한 느낌이 나는 건 아마도 전적으로 실제 광란의 역사 속에서 오로지 기록 갱신과 세계 대회 우승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와 기준으로 에밀을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그런 집중이 달리기 선수로서의 삶을 더없이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에밀 자토페크라는 체코의 전설의 마라톤 선수의 일대기를 전기 형식으로 적은 소설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전기보다는 다소 가볍게 시작한다. 독일군이 체코를 점령하자 신발 공장에서 힘겨운 연습생 과정을 거쳐 조금씩 편한 위치로 옮겨 가며 야간 학교까지 다니며 장래를 차분이 계획하던 에밀의 상황도 불투명해진다. 공장은 문을 닫고 점령군은 청년단을 만들어 반강제로 에밀을 독일 국방군이 개최한 브르노 지방의 9킬로미터 크로스컨트리 경주에 참가시키는데, 체력과 기술 면에서 상대도 되지 않는 독일군들을 제치고 2위로 들어와 관심을 끈다. 하지만 에밀은 도통 운동에는 관심이 없다. 달리기는 철저하게 쓸모없는 짓일 뿐만 아니라 공연히 신발창을 닳게 해서 가계에 부담만 준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었고 그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미 그 전에 공장에서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즐린 일주에 털끝만치도 흥미가 없었고 마지못해 억지로 참가했었다. 경기 참가를 면제받으려고 발목이나 무릎에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고 우기면서 다리를 저는 흉내도 냈고 인상을 쓰고 큰 소리로 통증을 호소해 보았지만 의사가 바보일 리 없었고 모두 허사였다. 하지만 에밀의 첫 공식 경기인 이 크로스컨트리 경기에서 2위를 하자 코치의 눈에 띄고 너 참 이상하게 뛰는데 참 잘 뛴다는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는 스포츠를 별로 안좋아하고(하는 것 보눈 것 모두 ) 그러니 이 이야기가 스포츠 선수의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면 시큰둥해져서 안읽었을텐데 열린책들의 블루북 컬렉션은 날 실망시킨 적이 없어서 시식이나 해 보려고 열었다가 단숨에 읽게 되었다. 이렇게 몰입하게 된 이유눈 무엇보다도 별 심리 묘사도 없이 나타나는 에밀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캐릭터 때문이었다. 실제로 에밀의 평소 성격이 어땠을 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그의 객관적 기록들과 자료로 혹운 문헉적 상상력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따뜻하고 애정있는 눈길로 그의 다소 건조했을 뻔 한 스포츠 이력에 함께 공감하고 지켜볼 수 있게 만든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는 싫다고 하면서도 미소를 짓는 성품이었다. 어떤 경우라도 항상 웃고 다녔고, 그래서 사람들도 그를 좋아해 자꾸 운동을 강권했다. 이렇게 주변에서 그에게 매달렸고 그를 설득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에밀도 자기가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조금은 자책했다. 운동에 그리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고 그는 도무지 오랫동안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에라, 모르겠다. 하지 뭐, 그는 동의하고 말았다. 그러고는 운동에 뛰어들었다. - 《달리기 - 블루 컬렉션》(장 에슈노즈 지음, 이재룡 옮김) 중에서"

이렇게 해서 시작한 운동을 에밀은 점점 더 좋아하게 된다.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한계치까지 밀어붙이고 고통을 즐기게 된다. 여전히 뛰는 모습은 뒤뚱거리고 우스꽝스러웠지만 차례로 지역우승에서 전국우승으로 전국 우승에서 세계 제패까지 너무나도 단기간에 믿어지지 않게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허름한 복장으로 그 어떤 기존의 전략도 무시한 채 심지어 의사들조차 위험을 경고할 정도로 인간 한계의 벽을 넘어 정상을 차지하고, 매경기마다 경쟁자들을 더욱 더 멀리 제치고 자신의 기록과 세계 기록을 갱신한다. 관중의 열광과 환호는 메아리로 돌아온다.

"모든 경기에서 딱히 우승할 필요도 없이 꾸준히 기록을 경신하다 보니 그는 어느새 국가의 우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 체코 국민에게 그가 상징하는 것은 아주 단순했다. 어느 날 아침 조간신문에 그가 저녁 6시에 트랙에 선다는 짧은 기사가 나오면 2만 명의 관중이 바로 그날 저녁 마사리크 경기장 입구에 몰려들었다. 《달리기 - 블루 컬렉션》(장 에슈노즈 지음, 이재룡 옮김) 중에서"

두 번의 국제 경기에서 순위권에는 들지 못했으나 유명 국제 선수들과의 경험을 한 에밀이 베를린 경주에 혼자 출전한 에피소드는 한 편의 코믹 드라마 같다. 전쟁이 끝나고 점령군이 떠나자 에밀은 사관학교에 등록하고 군인이 된 차였고, 아무 지원단 없이 혼자 군복 차림으로 베를린으로 향한다. 토요일 아침에 열릴 경기를 위해 금요일에 드레스덴을 경유해서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는데 대공습으로 폐허가 된 드레스덴에 자정 무렵에야 도착했고 그는 길을 잃는다. 우여 걱절 끝에 베를린에 도착해서도 후즐근한 그의 차림새와 수행단도 없이 홀로 참석하는 점, 세다가 등록부에 이름도 없어 장난치냐는 의심을 받고 론갖 푸대접을 받는다. 말도 안통해 그가 출전하는 5천미터 경시 시작을 알리는 안내도 모른채 관중석에 앉아있다가 뒤늦게 체코어를 연습하려는 미국인을 만나 자기가 나갈 경기가 막 시작되려는 걸 알고 부리나케 경기장을 가로지른다. 게다가 에밀의 이름은 등록되어 있지도 않아 너 누구냐 웬 난동꾼이냐 하며 잡혀갈 뻔 한 위기에 다향히 이전 국제 경기에서 만난 선수들이 그를 알아보라 경기에 참가하고 화가 단단히 난 착한 에밀은 경주로 그 보답을 한다.

이 경기에서 그는 뒤의 모든 주자들을 한 바퀴나 앞지른다. 관중은 평생 한 번도 본적 없는 이 광경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탄성을 질렀고, 모든 주자들보다 한 바퀴나 앞선 그는 다시 한 명씩 앞질러 나가며, 우승을 차지한다. 이 전설같은 국제 경기의 우승으로 그는 하나의 전설이 된다. 단거리 장거리 마라톤을 총 망라하 육상 경기의 모든 종목들을 하나 하나씩 제패해 가던 그는 자기가 처한 공산주의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이었으며 에밀에 대한 세계인이 보내는 관심과 찬사를 처음에는 체제 선전도구로 써먹다가 차차 부르조아적 사상의 유입을 의심하게 되고 서방의 국제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게 막는다. 노장이 되어서도 그리고 새로운 선수들에게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할 때조차, 은퇴와 도전을 반복하던 그에게 짧은 프라하의 봄을 경험한다. 침략 후 24시간 만에 체코를 접수한 공산계의 맏형 소비에트의 점령에 모두가 들고 일어나 항거할 때 그 역시 민주화의 사이드에 서자 결과는 하루 아침에 모든 공적 지위를 잃고 숙청되어 우라늄 광산과 청소부 등을 전전하개 하는 인생의 후반부로 나타난다.

그토록 세계를 열광시켰던 에밀이 경기에서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가는 과정은 모든 인간들이 맞는 빛나는 젊음과 클라이맥스적 절정기에 이어 필연적우로 수반되는 정체기와 쇠퇴기의 순환을 닮았다. 쓸쓸한 결말이지만 마무리가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다. 체코의 공산 정권은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인간성을 말살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믿지 못하던 사회는 영원할 수 없었고 프러하의 봄을 억압하던 소비에트 역시 훗날 비슷한 모습으로 붕괴하게 될 것을 예견하지 못했으나 어둡고 암울한 잿빛 나날들 속에서 현실을 잊고 열광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준 에밀과 그의 빛나는 웃음을 모두가 기억했기 때문이다.

특히 체제(외세에) 반대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대중에게 알게 할 심산으로 일부러 청소부라는 초라한 행색으로 거리를 돌며 전시시킨 결과가 반대의 효과를 나는 장면은 스포츠 영화의 '갖은 노력으로 최후(영화 내에서)의 승리를 거두는 클리셰와는 정 반대로 가장 낮고 비참한 최후의 모습을 결말 가까이에 보여주지만 감동의 격은 훨씬 격조있다. 잔잔하고 통찰적이다.

"이 세상의 청소부 중 그 누구도 에밀만큼 박수를 받은 이 없었다 《달리기 - 블루 컬렉션》 (장 에슈노즈 지음, 이재룡 옮김) 중에서"
g******1 2019.01.10. 신고 공감 3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