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받고 박스를 뜯기 전, 나는 책이 아니라 목침이 잘못 배송된 줄 았았다. 박스를 뜯고 책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자, 나는 일단 두께에 기가 죽었다. 그런데 책을 살펴보니 이 책의 띠지에는 "처음 삼국지를 읽는 사람은 이 책을 들지 말라!"라는 말이 인쇄되어 있다. 오호라, 이는 심히 나를 도발하는 문구이다. 중국 고지도가 인쇄된 빨간 표지와 더불어 말이지. 그래서, 800페이지의 압박을 떨쳐내고, 나는 이 책에 기꺼이 도발당해 주기로 했다. |
|
한국은 삼국지를 원본 그대로 번역하거나 (황석영, 김구용) 원본을 따라가지만 추임새를 가볍게 넣은 삼국지 (박종화)가 주류이다. 삼국지의 큰 틀과 주요주제들을 빗겨나가는 법은 잘 없다. 이문열의 처참한 실패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 어설프게 요시카와 에이지를 흉내내서 이것저것 붙여보려 했지만 원문을 직접 번역할 역량이 없고 한문에 밝지 않아 평설이라는 걸로 보충해보려한 것 같다. 일본은 유명한 '요시카와 에이지'부터 삼국지를 고스란히 번역하는 것보다는 2차창작으로 다루는 것을 선호하는 듯 하다. 90년대 말에 나온 기타카타 겐조의 '삼국지'는 매우 자연스러운 재창작으로 나관중의 '삼국연의'가 없었어도 나올 수 있었을 법하다. 진순신은, 같은 삼국시대를 다룬 '제갈공명'과 달리 이번의 '삼국지이야기'는 (일본 제목인 "비본삼국지"가 주는 의미대로) 역사의 이면에서 일어난 일들을 의심하고 가상으로 꾸며보는데 의의가 있는 듯하다. 유비가 사실은 조조와의 합의대로 둘이 남을 때까지 합작으로 경쟁자들을 제거해나가기 위한 동맹을 맺었다던가, 조조가 장노의 어머니와 한편이었다던가, 조식과 견부인의 스캔들은 조비가 조장한 것이었다던가, 더욱 심한 건 원래 삼국분립을 이상적으로 생각한 제갈량이 사마의와 짜고 싸움을 일부러 기피했다는 것이다. 반전이 과도하니 진행될 수록 지루해진다. 의의가 있다면 일본의 대중문화, 특히 만화에서 삼국시대를 다루는 2차 창작물들은 많은 부분이 진순신의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용랑전', '창천항로' 등에서. '제갈공명'은 괜찮은 정통역사소설이라고 할만하지만 이 '삼국지이야기'는 개정판에서는 원래의 제목으로 되돌려놓길 권한다. 이거 하나 읽고 삼국지가 원래 이런 거라고 독자들이 착각하면 곤란하니. 그리고 부분적으로 번역에 오류가 제법 보인다. 왕윤과 거사를 도모한 '토손서'는 '사손서'가 맞다. 번역자는 선비士를 흙土로 읽는 가장 기초적인 실수를 했다. 한자 및 일본어를 이해하는 능력 자체보다는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 게 문제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