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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독일의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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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고 명료하다. 나치 정권의 핵심 정책중 하나가 인종정책이었다. 순수 아리아인은 다른 인종과 결혼도 못하게했다. 유대인,흑인 다음이 아시아 인종 순서였다. 아리아인이 최고이고 앵글로 색슨이 우수,라틴은 그 다음, 다음이 아시아-흑인,유대인 순 (독일계 유대인 다수는 존경받는 중산층이었고 민족적 보수당을 지지,좋은 독일인을 여겼던 애국자들이 많았다.)그런데 독일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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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고 명료하다. 나치 정권의 핵심 정책중 하나가 인종정책이었다. 순수 아리아인은 다른 인종과 결혼도 못하게했다. 유대인,흑인 다음이 아시아 인종 순서였다. 아리아인이 최고이고 앵글로 색슨이 우수,라틴은 그 다음, 다음이 아시아-흑인,유대인 순 (독일계 유대인 다수는 존경받는 중산층이었고 민족적 보수당을 지지,좋은 독일인을 여겼던 애국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독일은 일본,이탈리아와 동맹을 맺는다. 2차대전이 일어나고 서방 연합국이 뭉쳐도 독일이 계속 승리했다. 미국이 들어오기전 까지, 그러다 독일은 소련과 맺은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략 승리해가지만 내륙으로 들어자자 겨울, 혹독한 경험을 한다. 이후 독일은 힘들게된다. 그런데 아시아는 일본이 1941,12.8 미국 진주만을 기습 침공,전세계를 놀라게하고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다. 소련의 경험 가운데서 일본의 활약을 본 독일 지도부는 놀라고 일본을 전쟁 프로파간다에 이용한다. 일본은 아마도 우러러보는 롤모델인 독일이 일본을 인정하고 같은 급으로 대우해주자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독일은 일본에서 특이한 점을 본다. 대표적인 예로 가미가제 같은 그들 기독교계 아리아인, 앵글로 색슨은 도저히 생각할수 없는 정신자세, 자기 희생을 하는 것이었다. 일본식 전투와 자기희생 정신자세는 독일에게는 낯설고 비인간적이었으나 독일국민의 전쟁 피로감,걱정을 돌리고자 일본의 아시아에서 승리 뉴스를 국민에게 자주 보여준다. 그때는 극장에서 전쟁 뉴스를 했다. 나치 독일은 검열이 엄격했는데도 아시아 인종인 일본이 어떤 점은 독일군 보다 더 낫다고 보도했다. 어려운 상황을 일본을 치켜세워주며 독일의 불리함을 잊게하는 의도였다. 

그러나 핵심 정책 인종정책과 정면으로 배반되기에 곧 일본을 독일군 보다 더 독일군 같은 명예 아리아인으로 해주고 일본의 외무대신이 독일을 방문했을때 외무장관 리벤트롭, 일본 대사를 총통 히틀러가 환대하는 최고 격상해준다. Hitler and Germany welcome Japan's foreign minister. 마츠오카의 히틀러 방문 1941 독일 지도부의 내심은 일본이 소련을 뒤에서 쳐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말해보지,그랬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이런 내용인데 1930년대 초 베를린에 일본 상류층이 예술 방면으로 유학을 갔던 사람을 인터뷰 한 이야기등이 재밌다. 식민지 조선을 생각하면 부자나 엘리트는 일본으로 유학가긴했다. 그런데 음악가 안익태는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갔는지 일본인 자격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했다. 만주국 10주년 기념 음악회 1942년은 일본 작곡가를 제치고 안익태가 베를린에서 연주한다. 이유는 안의 곡이 일본 작곡가 보다 더 서구적이라서 일본이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후에는 전쟁 프로파간다가 일본에도 필요 없어지고 일본 작곡가 곡이 일본에서 주요 곡이 되고 안익태는 자기 작품에서 그 곡을 빼버린다.

독일은 클래식 음악을 전쟁에 힘을 주고 미화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군면제 대우를 받는 대신 베를린 필은 베토벤과 바그너를 전쟁터에서 연주했다.

k***9 2024.03.03.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