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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브라운은 1619년에서 1623년 사이에 이루어진,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한 수녀원의 베네데타 까를리니라는 수녀에 대한 일련의 심문 기록을 찾아낸다. 그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재구성한다. 베네데타 수녀에 관한 일은 사실 그렇게 복잡하지 않게 요약할 수 있다. 아홉 살의 나이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 베네데타는 어려서부터 신비스런 일을 경험해왔다고 한다. 그녀는 서른 살의 나이로 수녀원장이 되는데, 그 전부터 그리스도와의 접촉, 그리고 수녀원장이 될 즈음에는 그리스도와의 결혼식 같은 신비주의적 행동으로 유명해졌다. 그래서 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게 되는데(그 당시에 기적과 같은 것을 믿기는 했지만, 그렇게 쉽게 인정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첫 조사에서는 그녀의 기적과 같은 일들이 명확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채 봉합된 모양이다. 그 당시 수녀원장 직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수녀원장이 된 그녀는 아마도 수녀들에게 엄하거나, 혹은 가혹한 수녀원장이었던 것 같다. 2년 후 다시 조사가 시작되는데, 이번에는 교황 대사가 직접 조사에 나선다. 이 조사에서 이번에는 베네데타는 그런 기적이 속임수에 의한 것임이 밝혀진다. 그런데 더 큰 게 밝혀졌으니, 그와 같은 방을 썼던 어린 수녀와의 동성애가 들통이 났다. 물론 신의 이름을 가져다 사람을 속였으니 작은 죄는 아니었고, 당시의 동성애에 대한 시각에서 보더라도 작지 않은 스캔들이었음에는 분명하지만, 어쩌면 그 당시에 있을 수 있었던 단순한 해프닝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주디스 브라운이 추적한 이 기록을 읽으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선은 당시의 수녀원의 실상에 관한 것이다. ‘수녀원 스캔들’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우리말 제목은 뒤로 하더라도 당시의 수녀원이 아주 고귀한 종교적 귀의만을 위한 장소, 기관은 아니었다. 브라운은 이렇게 쓰고 있다. “수녀원이 열정적인 종교적 소명 의식을 지닌 여성들의 안식처라기보다는 오히려 중산층이나 귀족 가문에서 버림받은 여성들을 위한 일종의 수용 시설이었다” (20쪽) 그러므로 수녀원 담장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별 다를 게 없는 속세의 일도 수녀원 담장 안에서 벌어질 수 있으며, 나아가 밖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질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수녀원에서 벌어진 베네데타 수녀의 동성애가 바로 그런 일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그게 정말 수녀원 담장 안에서 일어난 특수한 일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 수녀는 과연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기적을 가장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 당시에 그런 기적을 행하는 이에 대한 대우는, 지금과도 또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이용하여 수녀원에서 권력을 행사했다고 보이는데, 그것은 얼마나 의도적이었을까? 두 번째 조사에서야 그녀의 거짓말이 들통이 나고, 급기야는 동성애도 드러난다. 첫 번째 조사, 아니 그 이전부터 그녀의 기적에 대한 의심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 대해서 발설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처음에는 정말로 믿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의심 가는 정황이 발견되고, 꾸며대는 장면이 목격되었는데도 그녀의 거짓말은 지속되었다. 브라운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 후,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 다음과 같이 적는다. “베네데타가 신비주의자로 그리고 신의 가호의 수혜자로서 성공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긴 침묵의 공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7쪽) 저자도 그렇고, 옮긴이도 그렇고 그녀가 당시의 보편적인 처벌보다 가혹한 처벌(그녀는 두 번째 조사 이후 3년 이후 감옥에 갇히고 35년 동안 풀려나지 못하고, 일흔 살이 넘어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상황이 더 가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여성 간의 동성애, 신에의 귀의를 약속한 수녀의 동성애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녀는 다른 수녀와의 관계에서 남성의 역할을 자임했다는 것이다. 즉, “그녀는 사회의 젠더적?성적 역할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더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고 쓰고 있다. 정형화된 틀에 맞추어 그에 벗어나는 행태를 단속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물론 베네데타의 행동이 사회에 대한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의식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 오히려 그런 의식적이지 않은 도전마저도 강력하게 처벌받는 상황은 더욱더 근본적인 문제제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이 거짓말쟁이 레즈비언 수녀의 이야기는, 지금 읽으면 그다지 극적이지도 않고, 충격적이지도 않다. 그건 그때보다 훨씬 계몽된 현대에 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자극적인 일상이 널려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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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내에서 과거에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는 종교적? 속임수를 알기 원한다면 이 책은 강추이다. 종교적 속임수만 따진다면, 별점 5개 짜리이다.
목소리 바꾸기, 금박 쓰기, 물감 들이기 등등 연극적 요소를 어떻게 종교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 당시 그리스도교회에서 누군가의 체험이 종교적/정치적? 권력을 위한 속임수인지 아닌지를 밝혀내는 과정은 지금도 유용하다고 할 수 있고
종교적으로 표현된 속임수에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태도를 살펴보는 일도 유용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책의 별점이 4개인 이유는 저자의 동성애에 대한 태도가, 1980년대인 탓인지, 너무나 서구적으로 경직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저자는 동성애자의 성정체성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한 탓인지 베네데타의 기록 중에서 남성과의 성관계가 나중에 동성애 사건을 무마시키려고 첨가된 내용이라는 의심을 하는데
베네데타는 권력욕이 지나쳐서 권력을 잡을 때까지는 금욕하다가 권력을 잡은 뒤부터는 무절제하게 동성과도 성을 즐기고 이성과도 성을 즐기는 경우일 수도 있지 않는가!
저자의 동성애에 대한 경직된 태도조차도 나름 읽을만 하지만 아무래도 책 자체를 평하자면,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신학에 상당히 익숙해야 하기에 내용 별은 4개이고 편집 별은 부록과 주석에 오타가 몰려 있기에 2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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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펜니노산맥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는 벨라노란 마을에 성 세바스티안의 축일 날 산모는 온갖 산고끝에 여아를 출산한다. 여아의 아버지는 감사의 뜻으로 베네데타(축복받은)란 이름을 지어줬고 신에게 봉헌하기로 약속을 한다. 9살 때 종교적 삶에 봉헌한 여성들의 모임에 가입을 시킴으로서 본격적인 수녀의 길을 걷게 된 베테데타는 당시의 16세 후반의 영향상 종교 공동체 설립이 주된 상황에서 종교세계와 기존 수녀원에 입회 할 수없거나 자신의 종교적 열정과 사회적 요구를 분출하는 통로로 이용되던 것이 바로 수녀원이었고 이런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의도로 설립된 테이티노회는 교황 바울 5세로부터 수녀원으로 정식인정한다는 포고를 받게되고 성모회란 이름으로 불리는 동시에 성 카타리나 보호아래에 들어가게된다. 더불어 초대 수녀원장으로서 당시로선 아주 획기적인 30대의 베네데타가 발탁이 된다. 어릴 적 부터 검은 개나 나이팅게일의 환영을 경험한 그녀는 이후 수도원에서 기도중 성모상이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고, 이런 경험은 어릴 적에 겪었던 것이 자연적인 질서 안에 존재한 인식이라면 수도원에서의 기적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겪는 현상에 대해서 고해신부에게 말을 하게 되고 고해신부로부터 악마의 간교함을 발휘할 터전을 마련하지 말라는 말과 환영의 모습을 보는 것 사이에 심한 몸의 고통을 겪게된다. 그녀의 고통을 인지한 수녀원의 상급자들은 수녀원의 규율을 깨뜨리고 어린 수녀인 동료 바르톨로메아 크리넬리를 룸메이트로 정해줌으로서 그녀의 에로틱한 환상의 실현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게된 결과를 초래한다. 계속된 환영속에서 그리스도로부터 심장을 받게되고 결혼까지 하게되는 행사를 거치면서 그녀에 대한 행동과 환영에 대한 의심으로 페사에서 성직위인 참사 원장직을 맡고있던 스테파노체키가 조사를 착수하게 된다. 그녀가 받았다는 성흔의 흔적, 머리속 피가 나온 흔적, 반지의 흔적들과 그녀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이상을 갖지 못한 채 , 그렇다고 완전하게 해소되지는 않는 상태에서 베네데타가 진정한 환영의 경험가라는 것을 인정한 채 다시 수도원장으로 복귀하게된다. 여기엔 신을 혐오하는 부절적한 언어, 상흔의 조작된 흔적, 반지의 조작, 환영 또한 의심이 가는 상황정황포착, 그녀외에 다른 누구도 그리스도, 성모마리아, 성인들, 또는 결혼의 상징인 반지를 본 사람이 없었단 사실, 반 공개적인 결혼식엔 초자연적인 인물이나 대상을 목격자들이 보게되는 것을 의미함인데 보지 못했단 사실, 신에 대한 칭송보단 자신에 대한 칭송이 많다는 점 때문이었다. 또한 고기와 유제품을 먹지 않아야함에도 불구하고 몰래 숨겨가는 행동 발각, 그리고 덧붙여서 그녀가 도시출신이 아닌 산간마을 출신이란 점이 작용이됬다. (당시의 산간마을 사람들이 믿은 미신과 마술이 번성한 것에 대한 터부) 하지만 가장 큰 충격은 그녀의 동성애사건이었다. 저자는 피렌체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베네데타 까를리니에 대한 문서 보관을 발견하고 이를 추적하며서 그간 묻혔던 그녀을 둘러싼 당시의 종교계와 교리, 정치간의 세태를 읽기쉽게 이야기 형식으로 그려냈다. 당시의 수녀원은 지금의 철저한 종교에의 귀의 형태가 아닌 얼마간의 계급과 재산을 가지고 있었느가에 따라서도 입회가 결정되었고, 자신의 주장대로 결혼이나 성직에 몸을 담고싶단 의사결정조차도 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그런 와중에 한창 어린 9살 나이에 엄마품을 떠나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신생 수녀원에 입회를 하였고 자신도 모르는 환영(비젼을 역자는 환영이란 말로 대신 했다고 밝혔다.)을 겪게되고 당시의신비주의자처럼 행동하는 생활을 하게된다. 책 뒤편의 주석에 보면 이런 그녀의 행동, 즉 그녀의 룸메이트가 동성애를 거절할 때 베네테타의 안에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서 (천사 스플렌디텔)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할 수있는말을 하는 현상으로 비춰보건대, 아마도 현대의 정신병 일종인 다중인격장애를 겪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런 기저엔 어린아이로서 의지할 대 없었던 여린 마음이 자연적으로 동성에게 끌리게 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그녀가 한 말 속에 포함된 자신의 말을 믿지 않으면 페사에 흑사병이 돌것이란 예언이 그녀가 죽고나자 얼마 안 있어 흑사병이 온 정황을 보면 그녀가 거짓으로 환영을 봤다고는 말을 할 수가 없단 생각도든다. 당시의 16~17세기의 종교계는 신비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성인으로 인정받는다면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단 생각에 거짓으로 이를 증명하는 사람들과 카톨릭교에 대한 개신교의 반격등이 모두 이런 영향하에 있었기에 교회로선 당연히 이런 불순자를 색출해 엄단할 필요가 있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따라서 단순히 그녀에게 종교적인 비 정상적 행위로 인한 처벌이 아닌 레즈비언이란 죄로 그녀의 나머지 생을 비참한 말로를 걷게했단 점은 조금 씁씁함을 준다. 당시의 레즈비언이란 용어 자체도 없었고 막연히 이런 행위를 지칭하여 소도미아라 불렸던 것은 당시의 남성위주의 시대란 점을 필두로 하여 여자가 소도미아를 했다는 것 자체는 문서 자체에도 쓸 수 없었을 만큼 침묵의 대상이었단 점이 눈에 띈다. 더군다나 그녀들이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는 현재의 제 3의 젠더라고 점차 인식이 넓혀져가고 있는 현 시대상황을 비교해 본다면, 이 시대의 생가은 아주 단순히 남성을 유혹하기위한 기술연마차원 내지 자연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간주된 여성이 남성을 모방한단 차원이라고 생각한 것이 포함이 되어있었기에 베네데타는 자신의 레즈비언의 행위를 인정받지 못한 채 시대의 흐름에 쓸쓸히 생을 저버린 한 여인으로 표현이 되고있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제 3의 성 정체성혼란과 그에 확고한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더불어 사는 유연한 형태의 사회의 형성이 안되서 그런진 몰라도 수녀원에서 있었던 고문서 속에 감춰진 그녀의 삶을 재 조명함으로서 소수자의 삶의 권리내지 종교적인 삶에 있어서 부닥치면서 삶을 살다간 베네데타란 여인의 삶이 지금에서야 다시 재조명이 된다면 과연 어떤 재판의 결과를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된다. 같은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성경의 책 안에서 나오는 여러 성인들의 이름이 친숙하겠지만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신의 교리와 성인으로 인정받기위한 심문의 내용이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