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와 연구의 간단한 핵심을 요목조목 집어내어서 한나아렌트에 입문하려는 사람이게 정말 적절해요. 어렵게 쓰이지도 않았구요. 디자인도 깔끔하고 종이질도 좋습니다. 다만 번역하시는 이부순씨 정말 번역못하시네요. 번역경험이 있으신거 같긴한데 번역관련 학위도 없으신 분이고 전공도 국문학..즉 이쪽이 아닌분이라 그런지 대학생이 교재 해석해 논거 같은 문체입니다. 그리고 역자 본인이 아렌트를 이해한것 같지도 않구요. Critical Thinkers 시리즈 정말 좋은 책인데 그거 독점으로 계약해서 번역을 아무한테나 맡기다니요. 이책은 번역만 빼면 완벽합니다. |
전체주의적 시대 조류와 종교적 근본주의가 일으킨 테러리즘,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인하여 아렌트의 사상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아렌트의 정치이론이나 철학을 처음 접한 이들은 생소한 개념 정의에 어려움을 느낄 수가 있다. 이는 아렌트가 하이데거와 후설의 현상학적 개념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 폴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정치적 모델 개념이 다소 생소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러하다. 더군다나 아렌트의 정치사상은 체계적이지 않은 에세이식의 담론에다가, 당시 미국 학계 담론의 주류에서 배제당한 아웃사이더의 측면이 강한 것도 대중적인 이해의 폭을 좁히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아렌트의 정치사상을 명쾌하게 정리해 줄 입문서를 찾게 되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나는 단연코 사이먼 스위프트의 이 책《스토리텔링 한나 아렌트》(앨피, 2011)을 추천하겠다. 왜냐하면 아렌트 사상의 3대 핵심개념인 정치행위, 전체주의, 악의 평범성을 깔끔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장점은 그게 다다.
나는 벤야민과 아렌트와 같은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아렌트는 자신을 소설가나 작가가 아니라 이야기꾼으로 자평했다. 아렌트는 저작에서 크게 이야기꾼, 구경꾼 그리고 행위자로서 등장한다. 아렌트의 이야기하기는 개념적 사유와 달리 경험을 정신 속에 재현하는 상상력을 훈련하고, 친밀성과 달리 우정을 촉진하며, 저자와 독자 사이에 확장된 심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반드시 읽어야 할 한나 아렌트의 주저로 나는 세 권을 거론한다. 《인간의 조건》《전체주의의 기원》《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그러하다. 이 세 권은 아렌트 사상의 핵심을 이루므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인데, 사이먼 스위프트의 이 입문서가 바로 이 세 권의 핵심을 명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에 아렌트가 반페미니즘적 입장을 보였다는 측면과 더불어 '아렌트 이후'의 학술경향까지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아렌트는 인간의 근본적 활동으로 노동, 작업, 행위를 강조하고, 삶, 세계성, 다원성을 이런 근원적 활동에 조응하는 인간 조건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활동영역을 사적 영역, 사회 영역, 공적 영역으로 삼분하였다. 아렌트는 그 누구보다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엄밀히 구분하는데,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근대사회의 발생으로 공적 삶과 사적 삶 사이의 고대적 구분이 붕괴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근대성에 기초한 '사회'는 공적영역의 자유를 새로운 소비중심주의 및 순응주의 문화로 훼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사적 이익이 공적 관심이 되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고대적 구분이 흐려졌다는 것이 근대사회의 특징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보았다. 결정적으로 근대사회의 발전은 연설을 통한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보장하는 공적 공간의 독특한 목적을 전부 사라지게 했다."(64쪽)
아렌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구의 철학 ‘이론’ 전통이 현실적인 정치적 사유를 크게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행위는 대화와 설득, 타인들의 주장을 인정해야 할 필요성 등을 포함하는데, 이런 정치를 대부분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성가시고 불명료하며 인간적인 문제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가령 플라톤에게 정치는 철학적 사유에 필요한 조용한 공간을 공적 영역의 소음과 불확실성으로 어지럽히는 거추장한 문제로 폄하되었다. 이처럼 공적 영역에서 고독한 명상과 추상화로 물러앉은 철학 경향은 정치적 위기의 시대에 철학자들을 불운한 삶으로 이끌어갔다. 아렌트의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마르틴 하이데거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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