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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추리작가 협회 회원들에 의해 작성된 추리물 100권 리스트 중 1위, 미국 추리작가협회 회원들이 선정한 100권의 리스트에서 4위를 한 작품은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 이라는 제목을 가진 조세핀 테이(Josephine Tey, 본명 엘리자베스 메킨토시)의 걸작이다. 이 작품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The Franchise Affair)」 역시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비록 상위권은 아니지만, 영국과 미국 추리작가협회 회원들이 작성한 100위 리스트 안에 모두 들어간 작품이며, 조세핀 테이의 명성이 그저 한 작품의 요행에 의한 것이 아닌, 그녀의 냉철한 지성과 필력에 기반한 것임을 증명해 준 작품이기도 하다. 만일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들여닥쳐 들어보지도 못한 사건을 들먹이며 '당신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며, 이미 당신의 법행을 입증해줄 증인까지 있습니다..' 라는 말을 의심이 가득한 험악한 눈초리로 건넨다면 어떤 기분일까. 더구나, 피해자가 분명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하며, 남들은 좀처럼 알기 힘든 자신 주변의 일을 비교적 정확하게 들먹이며 자신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간다면.. 아마 엄청난 충격을 받음을 물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피해자를 자처하는 자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거나, 차라리 이게 꿈이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넋이 반 쯤 나갈지도 모르겠다. 모호한 자기정체성에 빠진 나약한 이라면, 실제론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자신이 진짜 그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닐까.. 하는 자기의심을 시작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바로 이 작품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은 이런 황당한 상황을 다룬 작품이다. 게다가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실제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캐닝 유괴사건'이라 불리우는 이 사건으로 무고한 피해자에게는 사형이 언도되었고, 이후 캐닝의 증언에 의심을 품은 런던 시장은 어떤 아이디어를 계기로 캐닝의 증언에 헛점이 있었음을 감지하고, 재수사를 통해 피해자의 사형집행을 정지시켰으며 캐닝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고 영국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지었다. 그러나 영국 여론은 이후 '캐닝파'와 피해자를 지지하는 '이집트파(피해자가 집시 였기에 붙여진 이름}'로 분리되어 서로를 비난하고 고발하는 등 많은 파장을 남겼다. 비록 이 작품은 사건의 배경을 20세기 중반으로 옯겨 실제 사건에 충실하게 재구성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 기법과 노련한 플롯 구성, 화려한 문장력에 의해 '최고의 미스터리' 반열에 올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재미를 보여준다. 책을 일단 잡으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 이 작품의 명성은 이후 영화와 TV 드라마 등 수 많은 리메이크를 파생시키기도 했다. 이 작품에는 흥미로운 요소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첫째는 자신이 유괴의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소녀의 모습이다. 교복을 입은 청순한 모습의 그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매력과 연민 모두를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녀의 자태는 사건 해결의 전개 상에서 일단 우월한 고지를 선점한다. 누구나 그녀의 멍든 얼굴과, 호소력 강한 목소리톤에서 그녀가 절대 거짓을 말할 수 없음을 은연 중 믿게 된다. 변호인 입장에서 진행된 그녀의 뒷조사에서도 그녀는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하다. 둘째는 그녀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모습이다. 그녀가 가해자로 지목한 두 모녀(비쩍 마른 중년여성과 그 모친)는 누가보기에도 그럴 범행을 저지를 개연성이 충분할 정도로 음침한 모습을 하고 있다. 게다가 그 모녀가 사는 저택 프랜차이즈 마저 보면 쓴 웃음이 날 정도로 기괴하다. 객관적 정황 상, 사전에 서로 생면부지였던 관계에서 소녀가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없는 상황에서 괜스레 두 모녀를 모함할 이유조차 하나도 없기에 상황은 두 모녀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흘러가고, 언론 역시 그녀를 조속히 벌하지 않는 경찰 당국을 비난하기에까지 이른다. 세번째는 이 사건을 풀어가는 변호사 로버트의 생각이다. 이 사건의 변호를 의뢰받은 로버트 역시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예전 두 모녀에게 별로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과의 만남 속에서, 겉으로 보여지는 것 이면에 자리잡은 그들의 '진심'을 발견하고, 점차 이들이 결코 그런 사건의 가해자가 될 수 없음을 확신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기와 같은 정도로 그녀들을 겪어보지 않았고, 그저 보여지는 인상이나, 세상의 소문에 의해 그녀들을 판단한다. 로버트가 이 변호를 맞는다는 것은 단순히 두 불쌍한 모녀를 변호한다는 차원을 넘어, 세상의 편견과 몰이해에 기인한 맹목적 믿음과 한판 싸움을 벌인다는 의미다. 자신의 전공분야도 아닌 이런 사건을 감당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로버트는 처음의 그 망설임과는 달리, 아주 적극적인 자세로 이 사건에 뛰어든다. 단순히 변호인이 아닌, 탐정 및 두 모녀의 보호자로서. 그에게는 '사회정의의 실현'이 그 어떤 명분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현상은 꽤 오래 전이나 요즘이나 크게 달라진게 없는 듯 하다. 오히려 비주얼 매체의 발달로 첫인상이나 풍기는 이미지가 중요해진 요즈음의 경우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듯 싶다. 때로는 이런 이미지가 언론에 의해 부풀려지기도 하고, 어떤 이익집단의 큰 목소리에 의해 호도되기도 한다. 예전 그런 편견과 몰이해에 기인한 맹목적 믿음이 '마녀사냥'이라는 기이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초래했다면, 오늘날에는 훨씬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삶의 의욕을 떨어트리고, 사회적 신뢰관계의 발목을 잡아 끈다. 작게는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왕따나 너도 나만큼 상처받아라..던져대는 악성 댓글에서, 크게는 특정 인들들을 자살로 몰고하는 익명에 기댄 집단적 살인까지. 그런데, 만연해가는 이런 현상에 비해, 이 작품 속 로버트나 그의 동료들 같은 이들의 존재는 오히려 더 줄어가는 듯 하다. 왕따를 감쌌다가는 함께 왕따가 될거라는 두려움을 품고 그저 숨죽여 사는 아이들, '니가 뭔데..' 라는 말에 설득가능한 적당한 명분을 들이 댈 수 없는 형식적 관계중심의 사회풍토, 공공의 적을 거들었다가는 다양한 수단에 의해 무참히 발가벗겨지는 개인사와 신상문제들 앞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니, 그런 이들의 존재가 희귀해지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아무리 갈망할지라도, 당연한 결과다. 예전과는 달리 비교적 짧아진 갖는 인간관계 주기 역시 이런 현상을 부추긴다. 태어나서 늙어갈때까지 늘 비슷한 이들을 주변에 두고 살아가던 예전에는, 오랜 관계속에서 그 '믿음' 또한 싹텄기에 하나의 이벤트나 타인의 뒷담화가 그 당사자를 평가하는데 그리 큰 요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단편적 만남이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는 요즈음의 인간관계 속에서는 그렇게 접해진 '정보'가 타인을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 예전보다 행동하는데는 물론 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데도 조심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은 단지 재미를 떠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가진 다양한믿음 중 타인의 의도에 의해 은연중 조작되었거나, 스스로의 편견이 조장한 비이성적 판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얼마나 많은 지, 그리고 그런 그릇된 믿음이 자신과 타인, 더 나아가 이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되새김질 해 볼 일이다. 사건이 추리소설이라기엔 처음부터 너무 뻔하고, 미스터리라고 하기엔 궁금한게 별로 없어, 사건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는 단순한 형사물에 가깝지만, 멋진 등장인물 들을 통해 풍성한 재미를 선사하는 점은 그 모든 장르를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로 넉넉하다. 예전 아가사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의 미스테리나 추리 고전물에 애착을 느끼셨던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라도 꽤 진가를 발휘하는 작품일테니. * 상기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된 책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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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개인적인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조세핀 테이를 좋아한다.
그녀는 낚시와 승마를 좋아했다. 직업도 체육교사이고 보면 죠세핀 테이의 삶 전체에서 여성적인 특성이 두드러지는 면은 거의 없다. 이런 면에서 왠지 '고독의 우물'을 쓴 작가 '레드클리프 홀'이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나 조세핀 테이는 승마를 좋아했는데 이러한 승마에 대한 사랑은 이 작품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에서도 면면히 나타나고 있다. 단적으로 주인공 변호사인 로버트가 자신은 형사사건에 그리 밝지 못하여 유능한 형사 전문 변호사 케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하지만 로버트는 케빈이 과연 자신이 맡고 있는 의뢰인 샤프 모녀를 믿어줄지 확신할 수 없다. 로버트는 케빈과 샤프 모녀를 직접 만나게 하는데 케빈은 로버트의 우려와는 달리 샤프 모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흔쾌히 사건을 맡는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자네 마녀들이 마음에 들었어. (...) 찰리 메러디스의 동생이라니 참 별일이 다 있지. 최고였다고, 그 영감. 인류 역사상 대략 단 하나뿐인 정직한 말 장수가 아닐까. 그 조랑말을 생각하면 내 정말 한시도 고마움을 잊어본 적이 없다네. 소년이 어떤 말을 처음 갖는지는 아주 중요하거든. 평생을 좌우한단 말이지. 말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까지. 소년과 좋은 말 사이에 존재하는 신뢰와 우정엔..." (p.291)
로버트도 그리 생각했지만 케빈은 그 좋은 말을 정직하게 자신에게 판매해 준 그 찰리 메러디스의 동생이라면 누구를 납치한다는 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에 대한 신뢰가 인간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것은 오랫동안 승마를 하면서 말과의 관계를 다져온 조세핀 테이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이며 케빈의 고백은 사실 테이 자신의 말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이렇게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사실 죠세핀 테이의 자전적인 모습이 많이 나타나 있다. 특히 여주인공 매리언 샤프는 그야말로 죠세핀 테이의 페르소나라고 할 만한데, 스포일러상 여기서 그걸 자세히 밝힐 수 없는 게 안타깝지만 아마도 조세핀 테이의 실제 모습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어보면, 왜 매리언 샤프를 죠세핀 테이의 페르소나라고 말하는지 저절로 이해가 갈 것이라 생각한다.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말 그대로 프랜차이즈 저택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어느날 로버트에게 그 저택에 살고 있는 메리언 샤프가 전화로 의뢰를 해 온다. 평소 마을에서 은근히 기피되고 있던 모녀로 부터 뜻밗의 의뢰인지라 로버트는 사실 내켜하지 않는다. 더구나 의뢰하는 건 또한 자기들로서는 전혀 일면식이 없는 한 소녀가 자기들 모녀가 그녀를 납치하고 가혹행위를 했다고 고발한 사건이었다. 로버트는 형사전문이 아니라서 다른 변호사에게 넘기려고 하지만 매리언의 변호사로서가 아니라 한 마을에 사는 친구로서 진지하게 도움을 구하는 거라는 말에 그만 응낙하고 만다. 매리언의 저택에서 테이의 대표적 캐릭터이자 '시간의 딸'에서 안락탐정의 전형을 보여준 형사 '그랜트'를 만나 사건의 전모를 전해 듣는다.(사실 테이의 소설에 익숙한 사람은 그랜트의 등장과 더불어 그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조연에 그친다. 테이가 그랜트를 등장시켰으면서도 조연에 머무르게 하는 건 이 소설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중요하다. 하지만 그랜트의 의미를 말하려면 아무래도 스포일러를 언급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이 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가려 한다. 이럴 때 마다 미스터리 리뷰로써의 한계를 절감하지만 어쩌겠는가 미스터리는 어디까지는 읽는 자의 즐거움이 그 첫째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열 여섯이 되는 베티 케인이라는 소녀가 샤프 모녀가 차로 자신을 납치하고 가정부로 삼는 것에 저항하는 그녀를 가혹하게 학대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정확히 프랜차이즈 저택의 모습을 묘사했고 그 내부까지 묘사했기 때문에 경찰도 직접 수사에 나선 것이다. 샤프 모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베티 케인이라는 소녀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가 되는 미스터리는 바로 이것이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소녀의 고발은 정말 고발일까 아니면 무고일까? 소설은 이것을 주된 줄기로 해서 하나하나 가지들을 새로 돋아나간다. 테이는 이 소설의 사건을 18세기에 영국에서 실제 있었던 엘리자베스 케닝 유괴 사건에서 가져왔는데 그 때 케닝은 한 집시무리가 자신을 납치했다고 고발하는 바람에 그 집시 무리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는데도 안그래도 집시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들로 부터 어마어마하게 박해를 받았다. 여기서 드러나듯, 엘리자베스 케닝 사건에서의 핵심은 바로 '마녀사냥'이다. 별다른 증거가 없는데도 평소 경원시 되던 존재에 대한 무분별한 비이성적 증오가 핵심인 것이다. 그렇다면 테이는 하필이면 왜 그 사건을 모델로 가져온 것일까? 그것은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이 나온 시기를 알면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이 소설은 1948년에 나왔다. 그러니까 2차대전이 끝나고 난지 얼마 안된 시점, 그러니까 파시즘이 가져온 그 엄청난 물질적 정신적 피해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그 시점에 나온 것이다. 2차대전이 가져온 가장 커다란 비극. 나치에 의해서 6백만명 넘게 유태인이 학살당한 것은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를 쓴다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말했을 만큼 전세계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어마어마한 사람들은 모두 '유태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처형을 당했다. 테이는 아마 거기서 집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억울하게 당해야했던 엘리자베스 케닝 사건을 떠올렸던 것이 틀림없다. 테이는 확인했던 것이다. 나치가 초래한 비극은 어떤 특수한 시점에 일어난 유일한 사건이 아니라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임을. 그래서 그녀는 아마도 그것을 알리고 경고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한 파시즘은 언제 또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만일 이렇다면 조세핀 테이는 정말 현명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로부터 정말 얼마되지 않아서 우리는 미국에서 '매카시즘'이라는 또 하나의 마녀사냥식 파시즘을 보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조세핀 테이가 '프랜차이즈 저택'을 주 무대로 삼는 것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프랜차이즈' 자체가 마녀사냥과 관련하여 사람들 뇌리에 불러일으키는 그것이다. 그건 바로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다. 그 때 드레퓌스는 독일과 내통했다는 간첩 혐의에 대해 따로 진범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그것을 무시하고 끝까지 그에 대한 재판을 강행했는데 그 이유는 다른 이유는 없고 오로지 드레퓌스가 유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회에 만연된 유태인 혐오증 때문에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드레퓌스는 마구잡이로 박해를 당했던 것이다. 이러한 '마녀사냥'식 몰아대기. 다시 말 해 원래 혐오하고 있던 자에게 '마녀'의 가면을 씌워 전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배척하고 폭력까지 가하는 무분별한 증오, 파시즘이 보여주었던 그것과 완벽하게 똑같은 증오를 독자들에게 떠올리기 위하여 죠세핀 테이는 '프랜차이즈 저택'을 주 무대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죠지 4세(영화 '죠지왕의 광기'의 그 죠지를 말하다.)의 섭정 시대 유행했으나 그 후 빅토리아 양식에 밀려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진 '프랜차이즈' 양식을 지는 저택을 내세워 샤프 모녀가 마치 집시나 유태인 처럼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고립적이며 열악한 위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로버트가 매리언의 전화를 받고 그 프랜차이즈 저택으로 가는 장면에서 놀랍도록 잘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테이는 로버트가 프랜차이즈 저택으로 가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는데 거기서 테이가 유독 대립관계를 강조하는게 흥미롭다. 그녀는 먼저 '신'거리에서 마주보고 있는 말을 부리는 가게와 자동차 정비소를 통해 대립 관계를 은연중에 보여주더니 좀 더 나가서는 아예 로버트와 프랜차이즈가 있는 전원적인 밀퍼드와 맞닿은 도시적인 라버러와의 대조를 통해 그 대립적인 관계를 재차 확인한다. 문제는 말도 밀퍼드도 그 대립관계에서 열악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말은 시대에 뒤쳐짐을 의미하고 밀퍼드는 프랜차이즈가 현재 있는 곳을 의미한다. 그렇게 프랜차이즈 저택은 열악한 밀퍼드에서 더욱 열악한 자리에 있으며 그들이 그렇게 고립되고 열악한 이유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시대에 뒤쳐진 존재들이라는 사람들의 근거없는 인상 때문이다. 라버러 사람들에게 밀퍼드가 그렇게 인식되어 기피되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 프랑스의 아트락 그룹 '샤일록(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그 '샤일록'이다.)의 데뷔 앨범 LP 커버와 같이 찍어 보았다. 커버에 소설 속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둥근 창문이 보인다. 여기에서 보듯이 둥근창문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양식인 것 같다.
조세핀 테이의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영문판 표지. 사건의 주무대가 되는 프랜차이즈 저택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데 시선 처리가 오묘하다. 분명 등장인물 누군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저택의 모습을 그린 듯 하다. 소설을 읽으시면 누군가의 시선인지 아시게 될 것.
"로버트, 당신의 일상은 당신이 믿는 것 만큼 견고한가요? 우리에겐 이리도 많은 대립관계가 불안하게 놓여있는데..." 매리언 또한 분명 로버트 처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그녀들이지만 그래도 지킬 것을 지키고만 살면 괜찮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알지도 못하는 소녀에 의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들의 일상이 마구 파괴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새 마녀 사냥을 당하는 '마녀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테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로버트나 매리언 처럼 우리들의 일상이 견고하고 항구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아무 이유나 잘못 없이 우리의 일상은 오로지 타자의 전적인 악의만으로도 무참히 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이미 드레퓌스나 파시즘을 통하여 이것을 충분히 경험했다. 테이는 일상 속에 수없이 가로놓인 대립관계를 통하여 우리네 일상이 그 대립관계를 먹이로 해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파시즘에게 얼마든지 먹음직스러운 토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바로 그 파시즘(여기서 파시즘은 아무 이유 없이 가해지는 개인이나 집단적 폭력 전체를 상징해서 쓴느 말임을 일러둔다. 즉 전적인 이기적인 악의로만 가해지는 폭력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에 의해 일상 자체 마저 느닷없이 무참히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세핀 테이는 바로 그것을 '프랜차이즈 저택'의 샤프 모녀를 통해 보여준다. 케빈을 비롯 로버트 그리고 그의 조카 네빌 마저도 샤프 모녀 특히 매리언을 직접 만나고 나서는 끌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네빌이 직접 말하듯 '그녀들은 온전히 열려있고 모든 변화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즉 테이의 대안은 명백하다. 우리의 일상을 언제든지 무참히 깨어버릴 수 있는 파시즘은 어디까지나 대립관계, 즉 나와 남을 결코 조화될 수 없는 '타자'로만 바라보는 그 시각에 있으므로 '샤프 모녀'처럼 스스로를 타자들에게 열려진 존재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려진 존재로 만들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테이는 소설을 통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모든 등장인물들이 '프랜차이즈 저택'에 직접 와서 그들과 함께 집 내부를 보고 나서야 그들의 편이 되는 이유이며 왜 결정적인 사건의 전환점이 되는 것이 '둥근 창문'이 되는 것인지의 이유이다.(역시나 스포일러상 자세한 언급을 피한다. 하지만 안에서 바라보는 것과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보다 죠세핀 테이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타자의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강조하는 것이라 하겠다.) 조세핀 테이의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죽 얘기해 온 것 처럼 파시즘이 남기고 간 그 정신적 폐해와 공황 속에서 다시는 그러한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 테이 스스로 생각하는 대안을 차근차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미스터리적 재미가 반감되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적 재미와 테이 스스로 천착하는 주제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로버트가 매리언에 대한 짝사랑과 그의 잠재적 라이벌들에 대한 질투를 통하여 로맨스적 재미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테이의 팬으로선 작가 자신을 그대로 녹여낸 듯한 매리언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언제든 반복될 지 모르는 파시즘을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가져야 할 것에 대해 교조적이지 않고 공감가능하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낸 솜씨에는 비견될 수 없다. 죠세핀 테이가 이 책을 통해 나타내고 있는 우려는 한시적이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책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이 책은 정말 딱 적당한 시기에 우리에게 도달한 것이다. 무분별한 판단과 성급한 비난을 하기 전에 한번쯤 지금의 나 자신은 어떠한 모습인가 되돌아보기 위해서라도 읽어둘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해답을 해 주었다는 점에서 조세핀 테이에게 경배라도 바치고 싶은 심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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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조세핀 테이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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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테이는 많은 현대의 추리소설작가들이 손꼽는, 영감을 주며 모델이 된 작가로, 그녀의 [프랜차이즈 저택살인사건]는 다음과 같은 뛰어난 리스트에 선정된다. 영국 미스터리작가 협회 100선 (Top 100 Crime Novels of All Time (The CWA Mystery 100 List (1990))) 엘러리 퀸과 하워드 헤이크라프트가 뽑은 '미스터리의 초석 100선' (http://www.classiccrimefiction.com/haycraftqueen.htm) H.R.F.키팅선정 ‘최고의 범죄소설과 미스터리 100선’ (http://www.classiccrimefiction.com/keating100.htm )
[진리는 시간의 딸]이 리차드 3세의 이야기였다면, 그녀의 추리소설로서는 4번째이자 [진리는..]에서도 나왔던 앨런 그랜트 경감이 ‘경위’로서 타고온 차만큼이나 겸손한 인상과 적대적 시선의 평가였지만 다소 무게가 나가는 인상을 던지며 세번째 출연을 했던, 이 작품은 1753년의 엘리자베스 캐닝 납치사건 (다음의 두 싸이트는 우리에겐 유명하지않았지만,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던 유명한 미스테리 미해결 사건을 이야기해주는데, 개인싸이트인 후자가 좀 더 자세한 사건의 개요와 견해를 밝히고 있다. 나도 그의 의견에 동감한다 http://en.wikipedia.org/wiki/Elizabeth_Canning과 http://gaslight.mtroyal.ca/canning.htm ) 을 소재로 하였다 1753년 1월 18살의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1달동안 납치감금, 창녀가 될 것을 강요당하였다며 탈출하여 두여인, Wells와 Squires을 고소, 유죄판결을 받지만, 후에 위증죄로 체포된다. 판사이면서 [Tom Jones]의 유명한 소설가였던 헨리 필딩이 당시에 발표했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지못했던 [Amelia]의 관점으로, 두 집시여인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다소 이 조세핀 테이의 작품 속의 네빌의 시아버지가 될뻔한 주교의 naive한 시선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실제 사건보다 이 픽션의 시선은 보다 더 한쪽방향으로 치우쳐져있다. 유괴를 한 것으로 고발된 두 여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로버트 블레어가 맨처음부터 소녀 엘리자베스 케인 (베티 케인)의 사악한 표정을 캐치했는데다가, 너무나 은근하여 과연 로맨스인지도 의심스러워도 메리언 샤프와 그녀의 이해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데다, 이론은 아니라도 '대개가 이러하더라'하며 범죄자의 인상에 대한 이론이 주변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에. 작품으로 돌아오면, 밀퍼드에서 집안대대로 변호사 사무실 ‘블레어, 헤이워드, 베넷 법률사무소’를 홀로 이끄는 로버트 블레어는 좀 이른 퇴근을 앞두고 있던 순간에 메리언 샤프로부터 도움요청 전화를 받는다. 밀퍼드에서 러버러가로로 이어진, 외진 곳에 자리잡은 프랜차이즈 저택에 사는 두 모녀중 딸인 그녀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가보니, 그녀는 스코틀랜드야드에서 내려온 그랜트경위와 지역경찰인 핼럼 경위 입회하에, 16살의 엘리자베스 케인 (베티 케인)이란 소녀를 납치, 한달간 감금, 하녀가 될 것을 강요하고 폭행한 죄로 고발된 상태. …소녀의 얼굴을 흥미롭게 뜯어보는 동안….”떄리고 맞은 관계에 있는 것 치로 우리가 서로를 모른다는게 참 유감이군요….p.43
p.s: 1) 1951년, 로렌스 헌팅턴 감독의 영국범죄스릴러법정영화 : http://youtu.be/UPaT_pSS10Y
원작의 내용과 일치하지만, 조금 생략되기도 했다. 소설의 시작은 무료한 로버트의 '퇴근할까 말까'씬이지만, 영화의 시작은 소녀가 비속을 마구 달리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립스틱 씬에서 윈부인의 충격먹은 표정 같은것을 기대했건만....그래도 엔딩에서 법정변호사 케빈이나 채드윅부인은 시원~했다. 여하간, 확실히 베티 케인을 맡은 소녀여배우의 캐스팅은 성공한듯. 정말 '버터를 입에 물어도 녹지않을' 인상이다. 1929 The man in the queue (Alan Grant myster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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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를 발견한 것으로 이 여름은 시작한다. 장마라고는 하지만 시원하게 비는 쏟아지지 않고 축축한 습기만 뿜어내고 있다.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이 시기에 한 권의 소설을 오랫동안 읽었다. 다음 페이지를 빨리 넘기고 싶은 마음과 누워 허리를 쉬게 싶고 하는 마음 사이에게 승리를 거둔 소설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재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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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실제 유괴사건을 재구성해낸 이 작품은 영화, 드라마로 세 차례나 리메이크 될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이었다 한다. 요즘처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 일색인 미스터리 소설과 달리 이 책에는 선정적인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매끄럽게 사건이 진행되고, 흥미롭게 독자를 몰입시킨다. 초반에는 이렇게 명명백백한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려는거지? 하고, 다소 느슨해보이는 인물들의 등장에 지루해질 뻔했는데, 웬걸 책장을 넘길수록, 흥미진진해지는 내용에 몰입해서 결론이 어떻게 날지 기대감이 잔뜩 샘솟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께도 권해드릴만한 추리소설이었다.
평화롭고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던 로버트라는 변호사에게 어느 날 걸려온 다급한 전화는 전혀 예상 밖의 사건으로 그를 이끌어낸 일이었다
가끔 마주친 적 있는 프랜차이즈 저택의 여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는데, 지금 자신이 누군가를 납치했다는 누명과 함께 집에 스코틀랜드 야드(런던 경찰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와 있다는 전갈이었다. 복잡한 일에 끼이고 싶지 않은 그였으나 매리언, 전화를 건 그 여인은 똑똑한 변호사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자신과 같은 사람을 찾아 로버트를 기억해냈다고 말한다.
사건은 이랬다. 마을 사람들의 호감을 얻지 못하는 낡고 큰 저택에 사는 늙은 엄마와 40대의 딸이 살고 있었다. 하녀를 부릴 형편이 되지 못해 일도 직접 해야했던 그녀들이었고, 엄청 구형의 차를 몰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의 이런 저런 입소문의 대상이 되기 딱 좋은 그녀들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여학생이 그녀들로부터 납치를 당해 한달간 하녀 생활을 강요당하며 구타까지 당한 후에 가까스로 도망쳐나왔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소녀의 이야기가 너무나 프랜차이즈 저택을 명확히 설명해냈고, 모든게 상황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였다. 다만 프랜차이즈 모녀는 그녀를 처음 봤다고 말하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게다가 로버트는 소녀가 아닌 프랜차이즈 모녀를 변호하게 된 상황이었다.
소녀는 딱 보기에도 모범적인 가정에서 자랐을 법한 깔끔하고 여린 인상의 여학생이었고, 그가 변호하게 될 두 모녀는 평판까지 그리 좋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소녀가 말한 것들이 너무나 정확했기에 처음에는 무슨 이런 사건이 다 있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너무 정확하게 증거를 들이대는 소녀를 로버트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너무 정확한 알리바이. 게다가 만나면 만날수록 알면 알수록 그녀가 범인일리 없다는 확신이 들게 하는 매리언에 대해서도 강한 믿음이 생겼고 말이다.
만나보면 그 모녀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마음 속 믿음 만으로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
로버트가 일을 풀어가는 방법, 게다가 그는 유괴 등의 사건을 다뤄본적이 없는 평온한 일만 맡아온 변호사였다. 그런 그가 일생 일대의 중대한 사건을 맡아 (당시 꽤나 이슈화되었을, 요즘에는 이 사건이 큰 사건으로 이슈화될 정도도 아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온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빠져드는 모습은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영국소설이다. 그것도 영국 클래식의 느낌이 강하다 라는 인상을 받았을 정도로 로버트와 그의 주변 일상을 통해 과거의 영국인들의 생활상과 가치관 등을 살펴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지나치게 폭력적이 아니면서도 흥분 상태가 되면 조용한 말과 생각으로써 그에 적절한 대응을 하는 로버트와 영국인답지 않은 괴짜였지만, 솔직한 평가와 격렬한 반응으로 로버트를 만족시킨 네빌(로버트와 같이 일하는 동업자이자, 후에 그의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인물로 나온다)의 반응은 나까지 시원해지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준 것이기도 했다.
때로는 너무나 우연히 해결되는 일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지나치지 않게 흘러간 이야기와 적절하게 매듭된 결말은 참 만족스러웠단 생각이다.
살인사건이나 성폭력, 폭행 등의 이야기 없이 (물론 소녀가 폭행당한 흔적은 있지만,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잔인한 폭력과는 다소 다른 성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흥미롭게 이야기가 서술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참으로 낭만적인 뉘앙스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이 색달랐던 느낌이었고, 뒷끝없이 개운한 느낌이 정말 만족스러운 그런 깔끔한 소설이었다는데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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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고전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조세핀 테이의 1948년작인데 현대추리물로 읽다가 고딕한 배경묘사에 금방 알아차리긴 했지만 도로시 세이어즈, 애거서 크리스티에 버금가는 추리작가였다는 사실은 의아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적은 건 아니지만 이렇게 단행본으로 출간된 고전 미스터리를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를 뜨겁게 달군 '드레퓌스 사건'과 비견되기도 하는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엘리자베스 캐닝 유괴 사건'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납치, 살인, 강간, 반전 이런 자극적인 사건이나 묘사가 여기에는 없다. 다소 심심하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냐가 아니라 누구의 말이 사실인가를 밝혀내는 미스터리 구조로 모든 것은 법정에서 밝혀진다. 사립 탐정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밀퍼드(밀퍼드는 지난 삼백 년간 영국에서 맥을 이어온 삶의 좋은 면을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전형 같은 곳이었다)의 블레어,헤이워드,베넷 법률사무소의 블레어 변호사와 '스코틀랜드 야드'라고 불리는 런던 경찰청(본청)과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싸움 즉 대결을 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고전 미스터리 형식이란 반전보다 밀당인데 페이지가 길어지는 순간 호기심을 놔버릴 수도 있어 다소 길고 지루한 전개일 수 있다. 어느 날 로버트 블레어에게로 걸려온 매리언 샤프의 전화는 로버트를 프랜차이즈 저택(샤프 모녀가 사는 집) 납치사건으로 끌어들인다. 이미 런던 경찰청 핼럼 경위와 그랜트 경위가 저택에 와 있다. 매리언의 요청으로 방문한 로버트는 문 밖의 승용차에 타고 있는 엘리자베스라는 열다섯 살의 소녀를 납치해 강금,구타,학대 등 그녀에게 씌인 혐의를 듣는다. 물론 매리언은 저 아이를 본 적도 없을 뿐더러 이 상황이 당연착오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건은 재구성된다. 누가 옳은 말을 하는가, 누가 왜 거짓을 말하는가.
어떤 여자아이의 흔적을 따라가면 비밀이 밝혀지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보다 과연 진실이 드러날 것인가에 초점이 있지만 이미 나는 사회파 스릴러에 물들여진 반전에 열광하는 독자라는 것만 재확인했을 뿐 시시했다. 살인이나 강간, 반전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난처럼 시작된 여자아이의 숨겨진 모습을 파헤칠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납치 당했든, 구타 당했든, 일단 집으로 돌아왔으면 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줄 증거가 여자아이의 일방된 진술밖에 없는데 그 아이의 평소 인성과 태도가 어쨌는가로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불공정하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어머니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하여 악의 화신으로 규정짓고 더 중한 선고를 내린 재판과 다름없잖아. 사건은 사건 자체로만 판단되어야 하지만(물론 불확실할 경우 앞뒤 정황들을 살피기 마련인 게 현실;;) 많은 일들이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알고, 때려본 사람이 때릴 줄 알고, 죽여본 놈이 죽일 줄 알기 때문에. 세상은 그게 더 수학공식 같은 진실이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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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 제목을 얼핏 보았을때 제 눈에는 '사건'이라는 글자만 부각되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지요. 살인사건,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도 어떠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전개되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소설이라 생각했습니다. 요즘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사건'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그냥 확신해 버린 것이죠. 하지만 이 소설은 그냥 말그대로 어느 저택에서의 사건을 말할 뿐입니다. 누군가의 희생양, 살인사건, 범인 뭐 이런 것들은 찾아 볼수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하나 잠시 착각했던것 중 하나는 분명 이 소설은 일본 소설일 것이라는 거였습니다. 제대로 책 정보를 읽어보지 않은 잘못된 습관이 내지른 작은 착각 이였습니다. 그래요, 이 소설은 영국의 고전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사실 고전이라 하면 조금은 답답하고 어렵고 ,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그런 분야의 소설이였던 것 같아요. 그러나 , 자주는 아니더라도 아주 가끔 저도 고전을 읽을때가 있습니다. 가끔 그렇게 읽은 고전들이 마음에 쏙 드는 책도 발견하게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고전 미스터리는 처음 접하는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18세기 그러니까 1948년에 쓰여진 소설 입니다. 실제 미해결로 남겨진 유괴사건을 재구성하여 만들어진 소설이라고 하네요.
이야기는 블레어.헤이워드.베넷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로버트 블레어가 한 통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전화를 건 사람은 프랜차이즈 저택에 살고있는 매리언 샤프. 그녀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달동안 실종되었다가 나타난 한 소녀(베티 케인)를 납치, 감금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며 변호를 부탁하게 되고, 우연히 그들의 변호를 맡게되며, 사건의 진실을 조금씩 탐색해 나가게 됩니다. 과연 베티 케인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과연 그녀의 진술이 거짓이라면 , 도대체 한달여 라는 시간동안 그녀는 어디서 무엇을 했던 것이였을까요? 아니면 샤프 모녀가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요. 베티 케인의 이야기는 너무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자신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진술하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오롯이 진실과 거짓을 밝혀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과연 정의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또한 진정한 진실을 밝힐수 있을지 말이지요. 결국 이 소설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서 흔히 볼수 있는 살인, 희생자나 범인, 그리고 트릭, 반전 같은 것은 거의 찾아 볼수 없는 평범한 미스터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어쩌면 전형적이고 진부하고, 무미건조함이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차라리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는게 오히려 더욱 좋은 효과를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로서는 강한 흡입력 없이 , 이야기에 시선을 맡기고 읽어갈 뿐인 것입니다. 오롯이 진실게임을 하듯 그 중심으로만 초점을 조금 더 두어서 인지, 이야기는 중간중간 또다른 이야기를 삽입해 놓은듯 무언가 잡스러운 ,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소설은 깔끔한 결말로 마무리를 짓게 되지만, 어찌보면 이처럼 진실과 거짓 사이를 풀어가는 동안, 사건이 해결 ,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많은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겉모습에 가려진 또다른 가식을 이야기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한 사람의 외모나 단면만 보고 판단하게 되는 것처럼, 어떠한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기도 전에, 또한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으로 죄없는 한 사람을 지독한 암흑의 구렁속으로 몰아 넣기도 하고, 결국은 지금의 마녀사냥 같은 잔혹하고 잔인한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튼 저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참으로, 더디고 지루하게 진행됩니다. 무언가 이것저것 살을 붙인 느낌이라 해야 할것 같기도 하고, 문체에 적응하지 못하는건 역시 시대적으로 조금은 멀게 느껴져서 인건지, 아니면 번역의 문제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조금은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제가 이 소설에 적응 못한채 힘겹게 읽혔던 건 어쩌면 그동안 선정성 짙은 미스터리들을 즐겨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요, 늘 스릴러, 미스터리, 추리 장르의 영화나 소설을 보게되면, 좀더 강한, 좀더 임펙트 있는 자극적인 소설들을 항상 갈증스럽게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전을 고전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은 선정성 짙은 소설에 이미 찌들대로 찌든 저의 마음과 생각과, 취향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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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고전미스터리의 여왕이라며 아가사 크리스티만 유명한 것이 늘 불만이기 때문에 다른 여성작가들의 책이 눈에 띄면 반가운 친구라도 만난 양 뛰어들게 된다.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The Franchise Affair]은 조세핀 테이의 작품으로 도로시 세이어즈, 마저리 앨링엄, 나이오 마시에 견줄 만하다는 평을 보고 고민 없이 손에 들었다. 물론 조세핀 테이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어렸을 때 읽었던 저자의 또 다른 대표작 <시간의 딸>이 너무나 지루했던 느낌이라 작가명만 보고는 주저했던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게 되었다. 사건 자체가 선정적인 강력 사건이 아니고, 뛰어난 탐정이나 기발한 트릭이 등장하지도,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게 진행된다. ‘역사 속 실제 유괴 사건을 재구성한 미스터리’라는 홍보문구에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된다. 왠지 딱딱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나 이 작품은 유머와 로맨스도 가미된 정통 고전추리다. 자칫 코지 미스터리로 흘러갈 수 있는 부분을 탄탄한 구성력과 논리적 추리, 우아한 문장력으로 떨쳐버리고, 추리작가로서의 역량을 한껏 펼쳐냈다.
이 작품에서 소재로 삼은 사건은 18세기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고 한다. 실종 당시 18세였던 엘리자베스 캐닝은 삼촌 집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하던 중 실종 되었다가 4주후 상처투성이 몸으로 속치마만 걸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길에서 습격당해 어떤 집으로 끌려갔는데 두 여인이 창녀가 될 것을 강요했고 거부하자 때리고 감금했다는 것. 창문을 통해 겨우 탈출했다는 그녀가 납치된 장소라 주장하는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를 본 적도 없다고 항변한다. 대체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바로 이런 줄거리로 펼쳐지는 이 작품에서 납치된 베티 케인은 더 어려져서 순수한 성녀 같은 분위기를 지닌 15세 소녀이고, 감금되었던 집은 ‘프랜차이즈’라는 이름의 낡은 저택, 고발당한 여인들은 그곳에 사는 중년과 노년의 고상한 모녀다. 사람들과의 교제도 없이 둘이서만 살던 모녀는 알리바이도, 증거도, 증인도 없이 고립되어 버리고 언론에 의해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영국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불어 닥친 풍파에 휩쓸린 그녀들을 위해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던 변호사가 팔을 걷고 나선다. 혐의를 풀 수 있는 방법은 감금되었다는 기간 동안 소녀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밝혀내는 것뿐이지만 그녀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과연 기적은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놀라운 사실은 이 사건은 1753년에 발생했고, 소설은 1948년에 쓰인 것인데도 사람들의 행태는 오늘날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하긴 ‘마녀사냥’이라는 자체가 이미 14세기부터 성행했으니 다수의 집단이 소수의 사람을 낙인찍고 해를 입히는 실태는 인간 본연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언론의 입장도 마찬가지. 현재도 너무나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무고한 사람을 거짓말로 수렁에 빠트리는 짓도 괘씸하지만,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에 악의를 갖고 덤벼드는 군중들의 작태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무죄추정의 법칙이란 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겉모습만 보고, 한쪽 말만 듣고, 자신의 판단만 옳다고 믿고,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도 않았음에도 유죄를 확신하고 돌을 던진다. 그렇게 붙여진 꼬리표는 설사 재판으로 무죄가 입증된다고 하더라도 일평생 떨어지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하고 언론이 불을 붙였을 때만 화르륵 타고,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는 별 관심도 없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무리가 대중인 것이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댓글 공격은 더욱 쉬워졌다. ‘아님말고’ 식 발상은 사라져야 할 행태임에 분명하지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그건 그렇고 이런 훌륭한 작품을 남긴 조세핀 테이는 50대에 이른 죽음을 맞이하고 말아 장편 미스터리는 단 8편에 불과하다는 것이 안타깝다. 기회가 되면 <시간의 딸>에 다시 도전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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