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건 서로에 대한 미량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우리는 서로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 상대에게서 바닥을 보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 바닥이나 밑바닥이 정확히 무엇을 가르키는지 우리로서는 알지 못했다 . (210 쪽)
나는 에어컨 바람에 가볍게 일렁이는 촛불을 볼 때마다 생경한 기분이었다 . 내 책상은 에어컨 바로 아래 있었고 그래서 나는 가끔 추위를 느꼈다 . 여름에 느끼는 추위는 대단히 사치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했다 . 이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일까 , 나는 가끔 생각했다 . (211 쪽)
봄에 우리는 아무도 벚꽃을 보러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 그해 봄 벚꽃을 본 사람은 회사원이 유일했다 . 회사가 여의도에 있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출퇴근길에 벚꽃을 볼 수밖에 없어서였다 . 벚꽃을 보러 몰려든 인파에 지쳐 돌아온 회사원의 이마에 파리한 벚꽃 잎이 하나 붙어 있었다 . 누군가 그에게 벚꽃 잎이 붙어 있다고 지적하자 그는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고 그렇게 꽃잎이 모기처럼 짓이겨졌다 . 하지만 우리는 벚꽃 잎에 우리의 존재를 이입하지 않았다 . ( 212 쪽 )
아직 20대인 청춘에 암울함을 그린 한유주 작가의 그해 여름 우리는 ㅡ 시작부터 , 언제 죽을까 , 자살할까 말까 하는 농담 같지 않은 말로 시작을 연다 . 마지막까지 누가 죽거나 하진 않는데도 벚꽃 잎이 이렇게 무겁게 여겨지긴 처음이다 . 살아온 세월만큼 그 무게를 꽃 잎 한 장에 턱하고 얹은 냥 , 무겁다 .
하긴 , 일본에선 벚꽃나무 아래는 늘 시체가 있다고 하던가 ? 그래서 벚꽃이 그리 사람을 홀리듯 잡아 끄는거라고 , 특히 강을 인접해 끼고 자라는 벚꽃은 유난하다고 , 들었던 기억이 있다 .( 믿거나 말거나 , 이 땅이나 그 바다 건너의 땅이나 전쟁없던 시기가 없으니 , 그런 전설이 나돌 법도 하다 . ) 암튼 이 청춘임에도 이미 마음은 중장년을 넘어 은퇴기같은 이들은 매주 복권을 사 당첨을 희망하고 한 주 한 주 죽음을 유예해가는 삶을 사는 중이고 , 농담이라는게 제삿상을 누가 차릴 것인가 하는 말이나 하고 앉았다 .
놀고 있지 않음에도 , 한명은 책을 만들고 한명은 회사를 , 한명은 초만들어 파는 일 , 한명은 글을 쓰는데 벌어서 각자 세금을 내고 ,건강보험료 , 과태료, 각종 요금에 같이 세를 낸 월세를 내고 나면 부릴 사치가 복권뿐인 , 죽어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더욱 침울해지는 이 사람들 .
인생은 길고 살아봐야 안다지만 , 이 청춘들은 지금 아는 거다 . 닭이 오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 개인의 일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없을 거란 걸 , 왜 ? 우리는 한국인이고 구체적인 개인들로서는 그냥 , 자살하고 싶었단다 . 그래도 죽진 않는다 . 생각만 할 뿐 , 죽으려면 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 죽겠냐고 죽기를 , 누군가 뒷처릴 알아서 해준담 또 모를까 ...
이게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일까봐 , 아니 이미 와있는 현재겠지 . 누군가 겪은 작년의 일이고 올해의 반복이라면 , 암울해 란 표현만으론 벚꽃을 나무하날 다 털어 모아도 모자랄 건데, 그 마음의 무너짐이란. 여름은 또 올테지 , 그해는 영원이란 시간 속에 서서히 침몰해가는 배처럼 , 얼마나 길고도 길게 느껴질 건지 ...
초속 5cm 라는 애니가 있는데 , 마치 그 이야기처럼 벚꽃이 떨어지는 시간을 그해 여름이란 표현으로 대신해 영원할 것 같은 , 이상한 초조함 과 불안감을 담은 소설 같다고 읽으며 , 영원할 것 같은 불안한 감정도 언젠가는 끝이난다 . 그게 뭐든. 꽃은 지고 잎은 피고 나무는 푸르고 겨울은 오고 또 , 봄이 오면 , 어김없이 벚 꽃이 듯 ...... 그러니 저 , 청춘들에게도 어김없이 그해 여름은 또 , 있을 것을 믿는다 .
|
|
윤은 공교롭게도 김수정과 멀리 않은 도시에 살아서 전철도 함께 타야 했다. 윤의 수다에 지친 김수정에게 윤은 SNS를 하느냐, 아이디는? 블로그는? 하고 물었고 몇 번의 조작으로 김수정의 온라인 사회 관계망의 친구와 팔로워가 되었다. 김수정은 일 관계로 만난 사람들과 그런 친분을 맺고 싶지 않았지만 책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그런 과도한 친교활동까지 해야 하느냐고 생각하면서도 필자를 만나면 어느덧 팔로우를 하고 친구로 추가해 좋아요를 성실히 누르고 있었다. 김수정은 편집자 일이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 게 아닐까, 종종 생각했다. 김수정은 그저 조용히 활자나 다루면서 고독하지만 생산적으로 인생을 보내고 싶을 뿐이었는데.-김금희, 새 보러 간다 내가 블로그를 열심히 하고 있는지 몰라서 다행이다. 블로그 주소 알려주고 친구 추가를 몇 명 해놓긴 하지만 이곳까지 들여다볼 시간이 없어서 다행이다. 외식하면 아차차 사진 찍어야 하는데 하면서 한 숟가락 먹은 음식 사진 올리고 책 사면 자랑할 사람들이 없어서 이곳에 올리고 귀여운 캐릭터 용품을 사면 샀다고 이야기하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참나 하는 눈빛 때문에 말도 못해 블로그에 올린다. 가끔 서로 이웃을 신청하는 이들이 있는데 거절한다.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데 클릭 한 번으로 이웃이 될 수 있다니 쉬워 보여서. 김금희의 소설을 찾아서 열심히 읽게 된다. 「조중균의 세계」에서 보여준 세계를 이루는 답답함과 인간을 대하는 무심함이 나를 이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김수정의 삶은 비루하지도 구질구질하지도 않다. 윤 같은 인간들을 만나 밥값과 책값, 술값을 내는 것일 뿐. 법인 카드로 꼭 해결하세요. 오늘 아침에 뉴스를 봤는데, 여자가 말을 했다. 중국에서 실연당한 코끼리가 난동을 피웠다네. 열 대인가, 암튼, 여러 대의 차를 부쉈다는 뉴스였어. 여자가 다시 술을 한 잔 들이켰다. 여보? 여자가 나지막이 남편을 불렀다. 왜? 남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코끼리도 실연을 당하면 저렇게 괴로워하는데, 승민이는 어땠겠어. 그래서 그런거야. 나는 이해해. 그렇게 말하고는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집행유예는 될 줄 알았는데, 더 나쁜 놈들도 다 나오던던데. 나는 코끼리가 자동차를 부쉈다는 것보다 실연을 당한 것을 어떻게 인간이 알게 되었는지 그 사실이 더 궁금했다.-윤성희, 스위치 윤성희의 행갈이 없는 빡빡한 문장이 좋다. 큰 따옴표도 없이 이어지는 대화도 좋다. 병에 걸린 그저 아는 사람 곁을 지키는 이야기도 둘러 앉아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 먹는 장면도. 한 해의 마지막 날 늘 양말을 산다. 새해, 떡국을 끓여 먹고 청소를 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착하네 라는 말을 듣는 인물이 나오는 소설. 늦게 일어나고 싶지만 일찍 눈이 떠져 청소를 하고 두부를 지져 먹고 배가 불러 움직이지도 못하고 햇빛이 들어오는 쪽으로 누워 있는 일요일. 윤성희의 소설은 이런 일상의 결들을 조심히 뜯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얇은 일상의 층들이 모여 우리가 살고 있다. 쉽게 찢어질 수도 있고 모이면 단단한 삶이 될 수 있다. 앙리는 죽었다. 앙리는 죽었고, 그것은 인생의 막 하나가 끝났다는 걸 의미했다. 내게는 2막이었고, 리사에게는 3막이거나 4막일 터였다. 장례식을 마친 뒤, 리사는 앙리의 고향이자 그와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에서 아예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리사는 알프스 산맥 끝자락에 둘러싸인 그 목가적은 도시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직장이 된 보건소에서 청소와 세탁 같은 허드렛일을 마치고 나면 단골 식당-그 식당은 앙리가 고향을 떠나오기 전까지 서빙 직원으로 일했던 곳이었다-에서 저녁을 먹은 뒤 귀가하는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지만 정념이나 신과 싸우지 않아도 되어 편하다고, 언젠가 리사는 엽서에 썼다. 나는 종종, 그녀가 거의 매일 들른다는 그 단골 식당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한다. 길모퉁이에 있는 식당, 거구의 외로운 여자가 들어가면 그제야 조립품처럼 완전해지는 공간, 그곳에 앉아서 식사는 하는 동안엔 어디로든 그녀를 데려갈 수 있는 이 세계의 반짝이는 작은 조각······-조해진, 문주 조해진의 문장들이 한결 편해졌다. 문주의 뜻은 기둥, 먼지. 대립적인 이름이다. 하나는 한 곳에 머물러 오랜 세월과 존재를 떠받쳐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 하는 뜻이다. 철로에 버려진 문주는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생강 과자를 준 기관사를 찾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다.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의 운명이 담긴 이름을 지어주고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한 문장, 한 문장 쓰기 위해 고심하고 문장으로 서사를 압축 시키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다. 리사가 하루를 마치고 식당으로 들어가면 그곳의 불빛은 비로소 반짝인다. 그게 다 그 냥반 계획에 있던 거야.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자식들 뭐라도 하나씩 했다 싶게 하려고. 다섯 자식들 공평하게 골고루 나눠서. 그게 두고두고 위안이 될 거라는 걸 아신 게지. 남은 자식이 평생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게 뭔지 아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아무것도 못해드렸다는 거. 그래 그거만한 후회가 없다. 봐라. 니 고모 당장 그 얘기부터 하잖니. 그때 지가 떡 해왔다고. 그걸 이고 지고 어쩌고. 그때 툴툴 거렸던 건 기억도 못하고. 아니니?-천운영, 반에 반의 반 후회를 많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남은 남들은 전부 후회, 로 가득한 날들이다.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서로 지쳤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남은 날들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은 시간만으로 위로가 되는 거였는데. 우리에게는 지금 시간이 없었다. 그걸 생각하기에는 바쁘고 모르는게 많고 허리가 아프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떡을 해 먹이고 그걸로 남편의 목숨을 구한 할머니. 자신이 죽을 자리를 알고 찾아 들어갔다. 병원에 입원해서 남은 자식들이 후회 없이 살도록 자신을 위해 한 가지씩 미션을 주었다. 본인은 이제 떠나지만 죽음의 끝에는 어떤 길이 열릴지 모르지만 산 사람은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니까. 강윤희와 백은호는 주사 치료와 자연 치료의 타협점으로 결국 한약 치료를 택했다.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정신과에는 백아영 대신 강윤희가 다니기 시작했다. 강윤희가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백아영의 틱 증상이 완화되었다. 강윤희는 매일 밤 씨탈정 두 알을 먹고 잠들었고 낮이 되면 전보다 날카롭지 않은 상태로 백아영을 대하게 되었다. 적어도 강민서가 오기 전까지는, 씨탈정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 눈으로 만든 사람답게 강민서는 잠깐 겨울에 왔다가 이곳을 떠났다. 어린 시절 나와의 추억을 털어놓지만 나는 긴가민가 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민서를 통해 떠올려야 하는 나. 자신의 기억이 잘못 된 것이라 믿고 싶다. 그래도 우리는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각자 세금을 내고 건강보험료를 내고 과태료를 내고 각종 요금들을 내고 월세를 내고 있었지만 가장 크게 사회에 공헌했던 바는 일주일마다 한 번씩 복권을 샀던 것이었다. 우리 중 누가 처음으로 복권을 사자고 제안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모두가 동의했던 건 기억이 난다. 우리는 매주 돌아가면서 오천 원어치 복권을 샀다. 그리고 당번이었던 사람이 토요일마다 번호를 맞춰보았다. 번번이 낙첨이었다.-한유주, 그해 여름 우리는 이런식이면 읽을만하다. 공과금 내고 마트 가서 좋아하는 과자 좀 담고 일 년에 한 번은 소고기를 사먹으면 된다. 신간이 나오면 실은 굿즈가 탐나서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 놓는데 한 번에 결제! 정도는 할 정도로 통장에 잔고만 유지 됐으면 좋겠다. 그해 여름 우리는 자살할까, 자살하자 라고 중얼거리는 데 초를 만들고 책을 만들고 글을 쓰려는 계획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
|
노래처럼 흐르는 그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들어보았다 . 그의 목소리가 흔들리는 순간이 언제인지 뒤늦게 알아차렸다 . 그리고 그가 반드시 기억하라고 했던 것도 다시 되새겼다 .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 같았다 . 결국 나는 쓰지 않기로 했다 . 반의 조각난 기억과 반의 어설픈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계획에서 지웠다 . 그럴 필요가 없었다 .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다른 것이 되어야 했다 . ( 152 ,153 쪽 )
어쩐지 그가 그날 일을 모두 다 기억하고 있을 것만 같다 .
그리고 그녀는 아마도 , 자주고름을 소넹 쥐고 흥얼거렸을 것이다 . 그에게 들릴 정도로만 애틋하게 . 정말로 그랬을 것이다 . 이것은 내가 그들의 반쪼가리 기억에 보탠 반에 반의 상상이다 . 흥에 겨운 자주고름 끝자락 . 딱 그 만큼 . (171 쪽 )
전쟁까지 겪어낸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 어느 날 우연히 회고하는 자리에서 가족모임 때의 일이 불거져나오고 각자의 기억이 보태져나온다 . 장소도 엉망 , 모두 제각각인데 한가지 확실한 기억은 그날의 어머니가 보인 기행이다 . 소설가가 된 조카를 불러낸 큰 아버지는 어머니의 살아 생전에 대한 정리를 해주려고 한다 . 가족 모임에서 처럼 할머니를 괴이쩍게 소설에 그려넣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 마음이 아닐까 싶다 . 그래서 흥이 많은 양반이었노라 ,로 시작해서 대담하며 인정있고 앞을 보고 계산을 미리 해둘 줄 아는 현명 하고 지혜로운 할머니로 기억되길 바랬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녹음을 해 나간다 . 전쟁 통에 아버지를 살린 얘기며 , 지금 고모들은 식탐이라지만 나눌줄 알던 인정이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적에 손이 되어줄 마중물 같은 것이었다고 , 어머니를 아름다이 기억하려는 애씀이 잔잔하게 글을 타고 흐른다 .
굳이 반에 반의 반이라고 할 게 뭔가 , 했었다 . 차이가 뭔가하고 . 큰아버지의 거짓된 상상을 진실로 만들기보다는 , 작가의 상상으로 채우는 것이 다르다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정답란이 없어서 , 확인할 방법이 없는게 좀 아쉬웠다 .
|
|
"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 여긴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 "
독일에서 극작가로 활동하는 한국계 프랑스인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나나에겐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 영화 학도인 서영이 그녀의 취재기사를 보곤 이메일을 보내왔고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제안을 해 온 것에 왜 , 떠돌이의 이름같은 것에 관심을 갖게 된거냐는 질문에 서영의 답은 진지했다 .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 , 존재감이 , 정체성이 거주하는 집이 이름이라 ...... 더욱이 한달간의 한국 체류기간동안 숙소도 제공이 가능하단 점에서 나나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을거였다 .
나나가 극작가의 길을 걷게 된데엔 그녀를 입양한 양부모들의 이력에 그 까닭이 있다 . 늘 스크린 뒤쪽 세계의 이야기들에 매혹을 느끼던 앙리는 쉰여덟의 나이에 전신에 퍼진 암과의 싸움에서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포기한 후 나나에게 마지막 꿈에 대해 말하길 "나나, 나는 우리가족의 기원에 대해 찍고 싶었어 ." 그랬다 . 그러니 이 한국행에서 서영과의 작업기록은 동시에 앙리와 리사 그리고 나나 자신을 위한 가족의 기원을 담는 일이기도 한 의미있는 일인것이다 .
한국에서의 이름이었던 문주 역시 그녀의 본명인 것은 아닌데 , 그녀가 6살 무렵 철로에서 배회하는 걸 기관사가 운행중에 놀라 급정거를 한 후 실종아동의 신고가 있는지를 계속 찾고 고아원의 안전성을 확인하기까지 한달이나 임시로 자신의 집에 보호를 하고 있었던 건데 근 한 달간의 이름이 기관사가 지어준 문주였던 것 .이후 카톨릭재단의 고아원으로 옮겨지게 된다 . 나나는 그때의 그 기관사의 마음이 대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찾고 싶은 모양이다 . 그전의 기억 , 그러니까 왜 철로에 서 있었나 하는 것들은 물론 전혀 알수 없는채 ...
서영은 적극적으로 철도청의 나이와 연대를 추정해 추적을 해가고 지루한 볏집에서 바늘찾기 같은 일이 반복되지만 단서는 찾게된다 .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가서 알수 없는 것들만 남았다고 하며 이 소설도 끝이 나는데 , 알고 싶지 않은 건지 , 독자에게 턴을 넘기고 상상하고 픈데로 재회를 맡기겠단건지 모르게 끝이 난다 . 다만 나나가 임시숙소로 머무는 서영이 제공한 곳의 일층에 위치한 복희가게에 할머니가 마 지막날 상을 당한다 .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 할머니에겐 아무도 없었는지 가게 살림살이가 마구 드러난 상처들 처럼 벌려놔져 있는 상태 . 그 와중에 거울을 보며 왠지모를 위안을 받는 나나를 그린 엔딩이 힌트일까나......,
앙리는 영화의 주인공이름에서 나나를 따왔지만 , 영화주인공이란 설정도 그렇고 , 한자에서나 , 우리 말에서도 나는 나 (我 ) 자기가 넘치고 넘친다 . 스스로를 잃을 일은 없어보인다는 얘기랄까 . 그러니 그녀가 글 속에서처럼 먼지 같은 이름일까 괜한 생각은 안해도 될 것만 같다는 희망적인 생각 , 또 , 먼지같다는 이름이라고 하더라도 어디든 있는 먼지 , 그 조차 의미를 갖기 나름같아 나는 나쁘지 않았다 . 이름이 없어 무명 (無名) 이란 설정의 주인공도 더러 만나곤 하는데 , 물 컵의 반이나 남았네 ! 처럼 좋은 것들로 해석을 한다. 한데 나나의 경우는 어디가든 끝까지 그녀를 잡고 놓지 않으려던 사람들이 있어주었으니까 , 그 기억이면 문주라는 이름을 주었었다는 기억이면 이미 된게 아닐까 ,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만다 . 그래도 성인이 된 후 태어나 자랐던 나랄 한번 찾는다는데 의미있었을 거라고 등을 다독여 주고 싶다 . |
|
출판사 편집부에 일하는 김수정이 만난 이상한 사람 윤 , 그는 프리랜서 큐레이터로 블로그에 미술에 관한 잡다한 글을 연재하는데 , 그 방식이란게 대게 자기만의 이해나 해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그가 특히나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애호하는 건 현대작가 중 현석경의 작품에 대해서인데 , 팀장은 윤의 글로 책을 내기를 원한다 . 그래서 계약을 하거 원고를 받아야하는 입장이 김수정의 일이고 입장인 듯싶다 .
개인적으로 알게 되면 가까이 하고싶진 않을 부류로 윤을 그리는 김수정 . 만나면 어쩐지 불쾌하게 끌려다니는 기분에 손해보는 심정이드는 이상한 심보마저 생긴다 . 왜 이런 걸까 ... 괜히 준것 없이 미운 그런 사람인가 ... 뭐, 봐도 주변의 배려라곤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긴 한다만 , 출판사에 책을 내는 조건으로 만나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하루를 이리저리 끌려다니고는 돌아보면 그날의 소득이 없는 경우라서 불쾌한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 계산을 하고 그러는지 , 아니면 당연하게 받을 거니까 그렇게 해온건지 모르게 어쩐지 밉상인 윤 . 만나며 시원하게 글을 주겠다는 답조차 없는 상태로 수정은 내내 답답하고 , 현석경의 전시 작품 운디드 버드를 보며 우는 윤을 보곤 대체 울어야 하는 맥락을 모르겠다고 . 생각한다 . 자신의 일에까지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수정 . 마침내 윤은 원고를 주겠노라며 만남을 약속하고 나갔는데 현작가의 집에 자료가 있으니 받으러 가야한단다 . 현작가는 내용은 잘 봤다고 하면서 ... 정작 글은 읽지 않았다고 한다 . 아무리 사정을 해도 . 이래서야 책을 내는덴 힘들 것 같다 . 저작권이 작가에게 있으므로 허가 내용이 있어야 내용들을 쓸 수있는 탓인데 , 끝내 답이 없다 .
결국 작가의 작품 속 "운디드 버드"를 찾다 ㅡ오리지널리티를 찾아 진짜 새를 보러 가겠다는 이야기인 모양 .
"원래 예술가들이 그래 , 오리지널리티 같은 것 , 그런 것에 대한 망상들이 있지 ." (53 쪽 본문)
|
|
사실 세번 쯤 읽고야 제대로 (?) 이해 비슷한 걸 한 셈이라고 할 수 있는데 , 낯설고 전혀 다른 물질을 소설로 불러온 방식이 역시 박형서 작가 다웠다는 점에 기대치를 만족시키면서 , 내 부족한 이해력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 내가 나를 안타까워 하면서 책을 읽었다 . 생각같아선 내가 이해한 한가지 방식으로 뭉뚱그려 이런 소설였다고 눙치고 싶은데 그럼 이 소설의 특별한 점들이 전부 사라져버린다 .
할 수 없이 소설의 장치 . 작가가 애써 잡은 구도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몰려서 살짝 성가시다 . 아, 책 소개를 보면 다 나오려나? 쓸데없는 짓일까... 어쨋든 이 얘긴 두개의 이야기가 맞물려 돌아가는 형태가 되는데 , 하나는 <진화동기재현연구>의 연구원들 중 광조교가 벌인 일 , 하나는 양자역학적 공간에서의 입자 형태인 쿼크들 , 연구의 단계에 폐기했어야하는 어떤 함수들을 폐기치않고 보관해 ' 방향성조작'에 이를 이용하다 문제가 생기고 , 이 입자들은 인류처럼 의지를 가지고 광조교의 실험조건에 어떻게든 저항의 진화를 한다는 이야기 . 뿐인가 마지막까지 메시지로 거기 누구있냐며...소통을 원하기까지 했다고 ,
쿼크들의 진화를 보면서 자신을 신처럼 느끼고 마침내는 자신의 뜻대로 쿼크가 컨트롤이 되지 않는 것에 폭발해 폭력행사를 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그런 얘기 , 또 그 때문에 연구윤리심의위원회에서 청문회에 회부되는 이야기 . 박형서 작가는 인류나 진화 , 발전과 연구개발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오는 폭력을 경계하는 작가란 생각을 한다 . 더 나아가서는 인간에게 권력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케하는 주제라고 , 가장 작은 단위 입자를 두고도 폭력을 휘두르고 광기에 휩싸이는 인가의 정신상태를 보면 , 하물며 인간대 인간이면 더 나을 것이란 법이 있냐 , 하는 것 . 낯설지만 늘 햇빛처럼 거기있는 중요한 주제를 문제로 삼아 소설로 옮긴 작가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
|
|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이 크지만 출간되는 소설을 전부 읽기란 어렵다. 꾸준하게 문예지를 통해 읽는 경우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관심 있는 작가의 소설집을 기다리는 경우라면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소설이 반갑다. 그러니까 수상작이 아닌 다른 작가의 소설을 먼저 읽게 되는 경우도 그렇다. 2016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거기 있나요』에서 나는 먼저 조해진의 「문주」를 읽었다. ‘그걸 기억해야 한다. 흥이 많은 냥반이었다는 걸. 흥이 나면 떡도 나오고 노래도 나오고, 노래가 나오면 어깨춤이 절로 따라 붙고. 손수건을 할랑할랑.’ (「반에 반의 반」, 153쪽) ‘스위치 같은 거야. 그렇게 이상한 놈이 되는 건. 버튼 하나로 왔다 갔다 하는 거지. 그러니 스위치를 잘 켜고 있어야 해.’ (「스위치」, 123쪽) |
|
새해준비를 하면서 자신을 위해 새 양말을 사는 서른여섯살의 남자가 있다 . 연말이면 꼬박꼬박 매해 그래왔단다 . 군대갔던 시기를 빼곤 집안에서도 가족들이 다 같이 새해 아침이면 새 양말을 꺼내 신는 일로 아침을 시작하는 독특한 가풍을 가진 남자 . 그러고 보니 , 까맣게 잊었지만 내가 어릴 때 설 빔은 아니어도 대신 양말이 있었던 것 같다 . 하다못해 장갑이라도 있었지 하는 생각이 이제야 발굴된 탄광처럼 캐 지다니 ... 그래서 해마다 들어온 아버지의 새 양말 곽들이 잔뜩 쌓이고 했었지 . 이웃들도 부담없이 주고받던 선물였던 셈 . 아버진 그 양말을 다 신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 그 양말들을 어쨌는지 기억에 없다 .
새 해 아침 혼자서 떡국을 끓여 먹은 남자에게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온다 . 막냇삼촌에게 다녀와보라는 얘기였다 . 어릴 적엔 대단해 보이고 또 , 한때는 공부를 대단히 잘해서 꼭 서울대에 갈거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막냇삼촌은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 가족 중 가장 인근에 살기도해서 도착하니 공휴일은 쉰다고 면회가 안 된단다 . 공연한 헛걸음에 주윌 둘러보니 교도소 앞이라 가게들이 두부집이 많아 허기도 해소할 겸 들어갔다가 옆에 남자처럼 헛탕친 내외가 앉아 식사에 막걸리를 마시며 실연으로 사고를 친 자식 때문에 울고 , 곁에서 듣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막걸리를 시켜 마시게 된다 .
남자도 양말을 두개 사던 해가 있었다 . 다음날 만나 떡국을 먹자 약속을 하고 헤어졌는데 그 길로 다신 회사에 나오지 않은 여자가 회사를 휘청이게하는 회장의 오랜 내연녀였다는 소릴 듣게 된다 . 그 회장 사이엔 4살 난 아들도 있다는 소문 , 차라리 싫어진 이유라도 말하고 갔더라면 하고 남자는 생각한다 . 이제는 벌써 8년이나 지난 일인데 , 그때일을 생각하는 건 막냇 삼촌이 군대제대후 집에 머물러 있을 때 하던 말이 생각이 난 까닭이다 . 군대에서 온갖 나쁜 사람들 이야길 하면서 끝에 잠들기 전 스위치는 꼭 남자에게 끄게하며 , ' 스위치 같은 거라, 그렇게 이상한 놈이 되는건 , 버튼 하나로 왔다갔다 하는거지. 그러니 스위치를 잘 켜고 있어야 해' 비장하게 말을 했더랬다 . 꼭 그말을 전하기위해 있는것처럼 ...
하지만 , 삼촌도 남자도 한번씩 스위치를 내리곤 했다 .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런 말을 사람들은 곧잘 하곤 한다 . 그럴 사람, 그런 사람, 그런게 있을까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상황만 있을 뿐이라지 않던가 ? 작가는 그 얘길 전하고 싶었던가 보다 . 이웃의 슬픔에 공감하며 그들이 뉴스같은 것에서 본 얘기로 떠드는 말 한 조각에 기대 , 하물며 인간인데 오죽했겠어 심정을 참작하는 동안 . 피해자의 가족은 이를 악물고 있을 , 반대편의 그림까지 어쩐지 보게되는 단편 ,
|
|
박형서 : 거기있나요 제10회 2016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 '연구윤리심의위원회'에 회부된 한 사례로 이는 광조교에 대한 이야기 이다 . <그는 진화동기재현연구> 에서 진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 에 몸담고 있었으며 어느날 부터인가 성실함을 버리고 광폭해지고 한마디로 미쳐버렸는데 그 광기를 추적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광조교는 연구원의 신분으로 자신이 다룰수있는 연구자료를 독단으로 폐기치 않고 실험을 한다 .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로 변형을 해보는 정도였을 장난으로 사소한 일였을게다 . 일테면 '방향성 조작' 에 이 버려진 두 함수를 동원한 일이 그렇다 . 그러나 인류에게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이 "방향성 조작"의 일은 그리 단순한 조작이랄 수 없을 것 같다 . 여기선 미시우주계 , 음 , 메인 컴퓨터에 연동을 시킨다고 하는걸 보면 소드 아트 온라인 세계가 연상이 되기도 하는데... ( 응? ) 암튼 그가 한 일은 감응입자의 생장에 영향을 미치는 진화폭발조건에 변화 를 초래하고 돌연변이를 낳는 결과를 가져온다 . 그 돌연변이는 고의적 동족 집단 살해까지도 가능한 퀴크들이고 고도의 정치적 행위와 언어 , 계층 이른바 사회를 구성하기까지하는 입자들이다 . 이 쿼크들에게 빛이란 신같은 존재로 광조교의 역활이기도 했는데 , 그는 퀴크들의 속성과 움직임에 반해 혼자서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자기만의 이유를 들어 상벌을 내리는 연구 아닌 놀이를 한다 . 이게 지나쳐 연구 전체의 프로젝트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한 연구의회에서 그를 취조하여 직위 해지해버리자 , 그 대신 들어온 선임연구원을 살해하기에 이르고, 곧 순순히 붙잡힌다 . 나중에 연구원들은 그의 행위를 두고 악의적이니 , 처음부터 악의는 아니었을 거라는 둥 , 의견이 분분 하다 . 광조교는 특히 독립적인 T 쿼크들에 집착했다 . 그들은 쉽게 꺽이지 않는 고고한 정신 같은데가 있었고 귀족같았다 . 밀면 미는데로 우르르 몰리는 하급계층의 의식 과는 다른 면들을 보이는 그들의 행위가 자꾸 광조교의 의식에 거슬 렸다고 나온다 . 권능이란 속성이 그런가 . 그런 걸로 보면 이 세계의 신은 참 지혜로운 신이구나 싶다 . 그 신도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이런 단계까지 온걸까 ... 하긴 신이 궂이 하지 않아도 인간들 스스로 무시무시한 공포의 역사 들을 써가고 있는데 손을 쓸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 거기있나요 는 복잡한 물리적 용어와 양자역학적 공간을 빌어 얘길하지만 단순 하게 사람살이로 대입해 놓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 줬다 뺐었다 . 폭정을 하는 정치인 , 국민들과 약간의 상상력만 있으면 미시우주계 는 미시간주로 쯤으로 얼마든 대치해 놓고 볼 수있다는 얘기랄까 .. 그리고 , 거기 있나요 ㅡ는 소멸해간 쿼크들이 소멸단계에서도 내내 읊조리고 있던 문장이라고 한다 . 이게 참 아이러니다 . 이들을 소멸 시키려고 특별히 고안한 의사소통교란계는 17개의 중심언어 중 9개 의 사어 와 비루한 교착어를 골랐다는데 . 이 쿼크들은 그 짧은 순간 에도 음성과 음률을 끊임없이 개편해 형벌의 패턴에 깃든 초월적 존재 ( 광조교) 의 '암시' 를 집.요.하.게 . 관찰 하고 추론하여 이를 언어적 형태로 재현해왔다는 것 . 거기 있나요 ... 광조교는 거기 있는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는 의미심장함과 함께 . 대체 당시의 그는 누구를 향해 거기 있냐는 물음을 계속 했던 걸까 ?! 광조교 역시 쿼크들의 존재를 보며 신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닌지 , 끝내 그의 정신의 미시우주계로 연행 (?) 되었고 육체만 남아 텅 비어버린데 이 쿼크들의 그 주술같은 문장의 파동에너지가 모종의 힘이 작용한건 아닌가, 그런 상상을 해본다 . |
|
2016년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보았다. 표제작인 거기있어요(박형서 저)는 처음 읽을때는 전문용어들의 무수한 등장으로 난해했지만 차츰차츰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용어의 정의보다는 인간세상에 빗댄 쿼크의 세상에 빠져드는 느낌이 참 좋았다. 나머지 작 7편도 강렬하면서 나름의 색채가 느껴져 한국문학의 다양한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한국문학의 힘을 엿볼수 있는 이 책 추천합니다. 2017년 김유정문학상 책도 구입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