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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력, 즉 서기 2088년 (음, 멀지않았어) : 월면도시에 범인류 세계정부 (Pan Human World Govenment) 설립. 지구에선 지축이 90도 바뀌는 대전도 (Big Falldown) 일어남. 이에 따라 3년간 온갖 재해가 일어나 백억여명 사망. ![]()
![]() (음, 묘사를 매치시켜보자면, 오른쪽은 ....귀족적인 용모의 장신..약간 혈색나쁜 얼굴에 비스듬하게 새겨진 상처자국...비범한 인상, 사파이어같은 눈동자...29세....뉴 카멜롯의 케네스 길포드 준장. 왼쪽은...엷은 적동색 피부와 검은 곱슬머리, 균형잡힌 기능성 높은 장신, 선이 뚜렷하며 날카로운 느낌의 인상적인 28세..아퀼로니아의 알마니 아스발 (AA) 준장.) ![]() 2005년 원작의 세계를 이어 쓴 ' 공유월드(Shared World)' 삽화를 보니 흑발이 하나 나오는데, AAA인건가? 또 나올까나? 궁금하네 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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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민주주의와 공화정을 토대로 하는 현대 정치의 그럴듯한 합의의 이면에 내재한 추악한 욕망과 부조리함의 실체를 냉소적 지성에 담아낸 걸작 우화이다. 권력이 행사하는 탐욕의 현장마다에서 툭툭 내던져지는 문장들에는 더없이 예리한 통찰과 지성이 빛나고, 인간과 인간사회의 본성에 대한 신랄하고 냉혹한 비판의 목소리가 어떤 심정적 정화(淨化)를 느끼게 한다.
멸망 후 불과 1세기만에 인간들은 권력을 만들어내고 폭압과 독재의 뿌리를 내린다. 내 것을 더 많이 소유하고 그것을 과시하며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을 재현하고 확장해나간다. 착취와 억압을 통해 확보된 부와 권력이라는 힘에 의존하는 것인데, 결말이 뻔한 폭력과 전복이라는 인류 역사의 반복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일곱 도시의 수장들과 이들의 힘을 실행하는 무력장치인 군(軍)의 리더들의 면면을 통해 정치적 술수, 조직에서의 생존, 인간적 삶이란 무엇인지, 권력과 정치의 현실적 생태와 당위로서의 진실들을 얘기한다. 나아가서 국제정치라 할 수 있는 도시간의 동맹과 전쟁 등, 힘의 균형을 향한 소위 외교라는 것의 은폐된 진실로부터 인간사회에 근원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이기심, 그 비굴함과 야비함을 파헤치기도 한다.
더구나 “이익을 좇다보니 시야가 좁아지고, 그에 따라 논리가 아닌 힘에 의지한다는 순서”와 같은 구절에 이르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 권력을 자신의 사유물로 착각하고 일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에 광분하는 모습에는 진절머리가 났다.”는 것처럼 정치인들의 더러운 욕구로 침해당하는 시민의 고단한 삶을 바라보는 듯하여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대의민주주의는 과연 이대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일까? 시민은 권력자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선거 때에는 표이며, 세금에 관해서는 납세카드 한 장, 그리고 전쟁 때에는 소모품으로서의 일개 병사.”라는 말이 오늘의 진실이 아닐까? 마치 삼국지를 보는 듯, 또한‘조너던 스위프트’가 냉혹하게 비판하던 야후같은 인간들의 세상이 떠오른다. 어쩌면 사용하는 언어만 복잡해졌을 뿐, 정신 수준은 유치원생의 야만적 탐욕과 다르지 않다는 진단처럼 한국사회의 정치를 일갈하는 문장도 없을 듯하다. “범용한 정치가에게 진리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나 하겠는가? 혹 한국 정치를 비판하는 것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은거한 천재 정치인‘류 웨이’가 말하듯이 정치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범죄를 규탄하는 것이다! 진정한 정치는 자취를 감추고 범죄와 더러운 욕망만 난무하는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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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다 보니 “내 인생 최고의 책 한 권”이라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되는데, 제일 먼저 떠오르는 책이 <삼국지(三國志)>이고 두 번째는 바로 “다나카 요시키(田中 芳樹)”의 <은하영웅전설(銀河英雄傳說)>이다. 두 주인공 얀 웬리, 라인하르트와 수많은 등장인물이 엮어가는 영웅담과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쾌한 전쟁 장면들, 전쟁과 정치,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 등 많은 면에서 삼국지에 비견될 정도로 참 매력적인 작품이어서 이 책도 몇 번을 반복 - 을지서적, 서울문화사 두 곳에서 출간되었는데, 출판사 별로 2~3회 정도는 반복해서 읽은 것 같다 - 해서 읽었던, 지금도 스토리와 전쟁 장면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런 책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창룡전(蒼龍傳)>, <아루스란 전기> 또한 열광하며 읽었으니, 나에게는 지금껏 만나본 일본 작가 중 제일 처음 좋아하게 된,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다나카 요시키 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작가 프로필을 검색해 봐도 명성에 비해 작품 수가 많지 않다보니 위에서 언급한 작품 들 외에 그의 작품을 만나기가 영 어려운데 - <창룡전>, <아루스란 전기>는 첫 권이 출간된 지 20 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완결이 되지 않았고, <은하영웅전설>도 외전(外傳)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국내에 번역된 작품 수도 적어 만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번에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반가운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일본 독자들 사이에서는 다나카 요시키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라는 <일곱 도시 이야기(원제 七都市物語/비채/2011년 8월)>이 바로 그 책이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아닌 근 10 여 년 만에 다른 작품으로 만나게 된 다나카 요시키의 책, 서둘러 표지를 넘기고 책에 고개를 파묻기 시작했다.
서력(西曆) 2088년, 지구는 대전도(Big Falldown)'라는 파국을 맞아 지축이 뒤틀려 북극점과 남극점이 이동하고, 5억 평방킬로미터의 땅에 온갖 재앙에 들이 닥쳐 백억 명의 인류가 죽는 대재앙을 맞게 된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91년, 월면(月面) 도시의 생존자들은 지구 표면에 내려와 일곱 개의 도시를 건설해서 각 도시들에게 지구 각 지역을 통치, 지배, 개발을 분담시킨다. 대신 월면 도시의 거주자들은 일곱 도시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항공·항주 기술을 빼앗는, 즉 지상에서 5백 미터 높이에 이르는 비행물체 모두 월면에 설치된 레이저포와 무인 군사위성으로 요격하는 “올림포스 시스템”을 가동시켜 달이 지구를 지배하는 시스템을 완성시킨다. 그런데 서기 2136년 달 뒤편에 떨어진 한 운석에서 검출된 미지의 바이러스에 의해 월면 도시의 모든 주민이 치사성 열병에 감염되어 전멸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나 월면도시의 사람들이 전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푸스 시스템은 향후 2 백년은 쉬지 않고 작동되는, 즉 월면도시의 지배는 벗어났지만 하늘의 봉인은 풀리지 않은 상황에 처한다. 달력의 날짜가 바뀌어 감에 따라 인구는 증대했고, 남겨진 사람들의 동지적 연대감은 경쟁의식과 타산으로 변질되면서, 군대를 만들어 서로 피를 흘리고 때로는 화해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대전도가 일어난 지 100년이 넘게 흐른 서기 2190년, 일곱 도시들은 저마다의 야욕을 드러내어 다른 도시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게 되고, 이 책은 그런 일곱 도시들의 전쟁사(戰爭史)를 담은 책이다.
일곱 도시 간에 벌어진 다섯 건의 전쟁을 담은 이 책은 <은하영웅전설>에서 보여줬던 기막히고 변화무쌍한 전략전술(戰略戰術)들과 함께 다나카 요시키 특유의 정치, 사회 등 문명 전반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담아내 무대와 등장인물만 바뀌었을 뿐 <은하영웅전설>의 축약판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대재앙 이후에 월면 도시의 도움으로 재건한 지구의 일곱 도시들, 그러나 인간의 무한한 탐욕만큼은 대재앙 전이나 후나 그대로여서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서로를 물고 뜯고 할퀴기에 이른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자신의 고국에서 축출되어 이웃 나라에 망명했던 독재자의 아들은 권력을 되찾기 위해 자신이 의탁한 국가의 힘을 빌어 고국을 침략하고, 또 다른 국가의 독재자는 이웃 국가를 침범했다가 대패(大敗)한 후 돌아와 처남을 포함한 자신의 정적(政敵)들을 일거에 숙청한다. 다른 여섯 국가는 동맹을 맺어 독재자를 타도하기 위해 대군을 파견하지만 자국 군대의 손실을 최소화하여 발을 빼려는 각국 사령관들 때문에 그만 패배하고 말게 되고, 또 어떤 국가의 사령관 참모는 자신을 반대하는 의원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 애꿎은 전차 부대를 총알받이로 사지(死地)에 밀어 넣어 몰살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다나카 요시키는 100 여 년 후 미래의 모습을 빌어 오늘날 지구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의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들을 고발하고 철처히 비꼬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이 <은하영웅전설>과 <창룡전>을 한참 집필하던 1987년에 나왔다고 하니, 두 작품에서 보여준 다나카 요시키 특유의 시니컬한 경향을 그대로 담아낸 작품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즉 이 책은 입으로는 온갖 정의와 대의명분을 부르짖지만 결국 전쟁이라는 것이 지배계급 - 여기선 정치인들 - 의 권력과 부에 대한 탐욕에 의해 비롯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다나카 요시키식 냉소의 정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책을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을까? 물론 이런 다나카 요시키의 시각을 싹 무시한 채 전쟁 장면 만을 골라 “전쟁 소설”로 읽어봐도 재미있지만 그래도 전쟁 이야기를 통해 지독한 “반전(反戰)”과 비평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다나카 요시키의 의도를 제대로 살려 읽는 것이 훨씬 재미있고 의미도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은하영웅전설>이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주 함대들 간의 전쟁 장면이 백미(白眉)이긴 하지만 전쟁에 대한 혐오와 인간의 탐욕에 대한 비판이 배제되었다면 그렇게까지 열광하진 않았을 것이고, <창룡전>이 동양의 대표적 신화인 용왕(龍王)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현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각종 모순과 병리에 대한 비난과 냉소가 담겨있지 않았다면 역시나 그냥 그런 판타지 소설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다나카 요시키” 다운 작품을 읽었더니 다 읽고 나서도 쉽게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 독자들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난 “다나카 요시키” 이름 석자 때문에라도 만점을 주고 싶은 그런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를 이렇게 짧은 작품 - 318 페이지 - 로 밖에 만날 수 없다니 너무 아쉽다. 그의 다른 작품 또는 신작이 나올 때까지는 다시 한번 <은하영웅전설>과 <창룡전>, <아루스란 전기>, 그리고 이 작품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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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요시키. 솔직히 말해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하지만 SF 소설계의 전설 같은 그의 대표작 <은하영웅전설> 제목은 들어봤다. 물론 구판으로 10권, 이번에 이타카 출판사에서 완판으로 나온다는 15권의 분량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은하영웅전설> 집필 막바지에 쓰기 시작했다는 <일곱 도시 이야기>에는 정말 주목할 만한 주제들이 차고 넘친다. 우선 다나카 요시키는 지구의 지축이 뒤틀린 대전도 이후 22세기 지구를 배경으로 설정한다. 마치 올림포스의 신처럼 군림하는 지구인보다 월등한 기술력의 월면도시인들은 지상 500m 이상 비행을 허용하지 않고 지상인들의 감시를 위해 소위 ‘올림포스 시스템’을 구축한다. 갑자기 조지 오웰의 ‘빅 브러더’가 연상된다. 아무리 지구인들이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도, 신들에게 능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법. 공중이라는 공간을 이용하지 못하는 인간의 수송 수단은 육상과 해상으로 제한된다. 제목에도 나오듯이 모두 일곱 개의 도시국가로 재편된 지구의 균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마치 오래전 제갈공명이 세발 달린 솥의 정세처럼 정교하게 짜인 틀로 삼국정립을 설파했다면, 다나카 요시키는 7개의 도시국가들이 서로 균형과 견제의 교묘한 틀을 제공한다. 지금이나 20년 전이나 여전히 각국의 관심인 지하자원에 대한 이권다툼과 정쟁 때문에 아퀼로니아와 뉴 카멜롯의 전쟁으로 시작된 이야기(もの-がたり:모노가타리)는 AAA(알마릭 아스발 오브 아퀼로니아), 케네스 길포드, 귄터 노르트 그리고 유리 크루건 같은 쟁쟁한 전략가들의 등장으로 그 재미가 배가된다. 인류의 역사 이래 끊이지 않고 계속된 전쟁에 대한 새로운 다나카 요시키 스타일의 해석도 그렇지만, 고사에도 빈번히 등장하는 토사구팽 같은 반복되는 역사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나라의 숙적 부차를 패퇴시킨 월왕 구천의 품성을 진작 알아차리고 고생과 환난은 같이 할 수 있어도 부귀영화는 함께 못할 거라는 사실을 예상한 명재상 범려처럼 뉴 카멜롯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아퀼로니아의 참모 류 웨이는 타 도시로 망명한다. 허황된 세계정복을 꿈꾸며 프린스 헤럴드를 침공하려는 부에노스 존데의 독재자 에곤 라우드푸드 편에서도 반대파는 그를 두고 혹한의 모스크바에서 참패한 나폴레옹 1세를 뒤따르려는 건지 아니면 보불전쟁에서 패하고 스당에서 포로가 된 황제의 조카 나폴레옹 3세의 전범을 뒤따르려는 거냐고 비아냥거린다. 명나라 시대의 상승장군 척계광까지 등장시키는 저자의 빼어난 식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다나카 요시키가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런 시시콜콜한 역사와 전략적인 측면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공화정 시스템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페루 해협 공방전에서 다른 여섯 개 도시의 원정군을 막아내고, 사랑하는 아내의 복수마저 끝낸 귄터 노르트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독재자 에곤 대시 새로운 독재자를 원하는 부에노스 존데에 염증을 느끼고 류 웨이처럼 타 도시로 역시 망명한다. 세기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지도자로 선출하고, 지지한 것이 바로 우리네 같은 보통의 시민이었다는 사실을 다나카 요시키는 SF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냉정하게 되짚는다. 책을 읽기 전에 솔직히 일본 작가라는 점 때문에 일본적 색깔이나 일본을 옹호하는 점이 두드러지지 않을까 하고 우려가 됐다. 하지만, 그건 정말 독자의 부질없는 노파심이었다. 저자도 그런 점을 고려했는지 그런 점은 말끔하게 배제됐다. 역설적으로 전쟁을 통한 다나카 요시키의 반전 메시지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통해 멋지게 재현된다. 공격과 방어라는 전쟁의 전형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소위 선빵을 날린 도시의 완패가 이어지지만, 도시의 위정자들은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다른 사람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을 보는 것이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이라고 했다지만, 이들은 모두가 보는 진실조차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점이야말로 다나카 요시키 식의 현대정치 비평이 아닐까 싶다. <일곱 도시 이야기>는 다나카 요시키 특유의 블랙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엄청난 적군의 내습 앞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도시 방어를 맡은 사령부 전체가 사령관 부인이 만든 젤리 샐러드 때문에 집단 식중독으로 지휘가 마비된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프린스 헤럴드 방어의 전권을 젊은 세대가 맡게 된다는 설정이다. 아퀼로니아나 뉴 카멜롯의 경우에도 뛰어난 명장들은 하나같이 젊은 세대다. 버블의 거품이 빠지고 난 다음 세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거는 작가의 기대와 희망의 단초를 보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 매력적인 작품의 스토리라인과 등장인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후배 작가들이 15년이 지난 후에, 속편 <일곱 도시 이야기 Shared Worlds>를 썼다고 하는데 그 작품도 기개가 된다. 다나카 요시키와의 첫 만남은 정말 아스트랄한 경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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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로 엄청난 매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다나카 요시키의 연작소설집입니다. 저도 십 몇년 전에 도서관에서 이 [은하영웅전설] 1권을 대출했었지만, 그 당시에는 특히 SF에 관심도 없었거니와 뒤에 남아있는 권수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던 기억이 나요. 1권이 아무리 재미있다고한들, 소녀의 감성에 그리 어울리는 책은 아니었다고 믿으렵니다. 얼마 전 인터넷 서점에 나들이를 가보니 [은하영웅전설] 이 십 몇년 만에 재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한정판으로서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은 듯 한데 얼마 전 선보인 표지가 열화와 같은 비난을 받고 쏙 들어가 새표지를 강구중이라고 합니다. [은하영웅전설] 을 기다리는 열혈독자나 [은하영웅전설] 의 명성은 알지 못하지만 대체 어떤 소설인가가 궁금한 사람에게는 이 [일곱 도시 이야기] 가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축이 90도 뒤바뀌는 '대전도'에 의해 인류의 태반이 멸망한 시점.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류는 달로 도망가고 지구에 7개의 도시를 건설하며 새로운 역사의 기틀을 마련하죠. 그들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하늘을 날 수 없게 만드는 '올림포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경쟁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월면인들은 미지의 바이러스에 의해 전멸당하지만 '올림포스 시스템'은 2백년 후에나 정지되리라 예측한 지구. 그 지구 위에서 일곱 도시-아퀼로니아, 프린스 해럴드, 타데메카, 쿤론, 부에노스 존데, 뉴 카멜롯, 산다라-가 2190년을 기점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격전을 펼칩니다.
[일곱 도시 이야기] 의 전투 장면이 흥미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장점은 캐릭터와 예측할 수 없는 문구, 정치에 대한 작가의 비판력입니다. 일곱 도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개성을 간직하면서도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요. 전투에서 가장 큰 책임을 맡고 있는 아퀼로니아의 알마릭 아스발, 뉴 카멜롯의 케네스 길포드, 프린스 해럴드 시의 유리 크루건은 사는 도시는 다르지만 비슷한 성격의 군간부입니다. 그들에게서 받는 인상은 얼음왕자?! 상관과 부하, 한 쪽에서만 존경을 받고 있거나 양 쪽 모두에게 배척당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으면서 제 갈길 가는 인물들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들이지만 조금 어린아이같은 면이 있다고 할까요? 여섯 도시가 연합해 부에노스 존데를 공략할 때도 절대 자신의 잘못은 있을 수 없으며 만약 전투가 패배한다면 그것은 다른 두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자처럼 등장하는 류 웨이와 귄터 노르트가 형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각각의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만약 지구가 하나로 합쳐져 그들이 모두 하나의 도시에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누구의 편도 들 수 없게 만드는 캐릭터들이라고 할까요.
두 번째는 문장인데요, 이 문장들이 또 빠져나올 수 없게 매력적입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장이 등장하기 때문일까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의 빵을 누군가가 훔쳐갑니다. 당연히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은 화를 내겠죠. 그래서 다들 그가 곧 분노하리라 예측하지만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아니, 대체 여기 있던 빵, 누가 먹어도 돼!' 조금 어처구니 없기는 하지만 이런 문장들이 반복되다보면 은근히 기대를 품게 됩니다. 다음은 또 어떤 재미있는 문구로 즐겁게 해줄까. 예가 적절했는지는 모르지만 다나카 요시키만의 위트넘치는 문장만은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일곱 도시의 전투를 다루지만 약간 코믹하게도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정치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해요. 작가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문장은 아마도 다음의 것이 아닐까 유추해봅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집어든 책이기에 저로서는 월척을 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에요. 저처럼 한 권으로 끝난 것에 일본독자들도 아쉬움을 느꼈는지 2005년에는 후배작가들에 의해 [일곱 도시 이야기 Shared Worlds] 가 출간되었다는데, 다나카 요시키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저에게는 큰 의미가 없으므로 패스. 다만 [은하영웅전설] 도 이런 문장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한가득 등장한다면 꼭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한정개정판은 세트로 판매할 듯 하던데, 지름신을 모셔야 할지 어째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큰 일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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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자전축이 흐트러져 지금과는 비슷한 듯 다른 대륙의 위치와 기후, 인간의 대량절멸 이후 다시 어느 정도 꼴을 갖추게 되는 인류, 지금은 없어져버린 월면도시에 의한 고도제한, 각 도시의 각기 다른 전력의 특징과 영웅들의 캐릭터.
은하영웅전설에 비해서 훨씬 다양한 정략과 전략이 펼쳐질 수 있었을텐데. 예의 완결 못하는 버릇이 도졌다. 아니, 은영전 완결한 게 오히려 예외지. 후배작가들이 속편을 이어 썼다고까지 하는데, 제발 완결 좀 다나카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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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요시키의 전성기 때 나왔던 소설로 한 권 분량의 짧은 소설이다. 특유의 시니컬한 재담이 가득 들어있는 SF소설로 매력적인 캐릭터가 가득하다. 배경은 미래지만, 대전도라는 재앙과 달에 의해 하늘이 통제되는 시스템으로 현재보다 더 축소되고 간략화된 배경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힌 현대의 음모론보다 과거 그리스로마시대의 신화를 보는 듯한 호쾌함이 공존한다. 단순화된 세계만큼 캐릭터의 성격도 선명하게 드러나 더욱 매력적인 모습이다.
다나카 요시키의 글을 좋아하지만, 아루스란 전기와 은하영웅전설 이후 마땅한 완결작이 없어 아쉬웠다. 창룡전은 연재 중단, 클랜은 다나카 요시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신인 소설가들이 글을 썼고,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사건부는 우리나라에서 소설이 아닌 만화발매. 작가 중에는 평생 글을 쓸 분량이 정해진 작가가 있다고 하지만, 설마 다나카 요시키가 거기에 해당될 줄이야. 아쉽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작이긴 하지만, 국내 미발매되었던 전성기 때의 작품 발매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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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대표작도 만들어내는 것이 힘든 수많은 이 세상의 작가들을 생각한다면
'다나카 요시키'는 너무나도 축복받은 작가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그의 작품들
을 계속 만나온 독자들에게는 너무 게으르거나, 혹은 지구력이 부족한 작가라는
말을 듣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조금은 유치한 제
목의 작품 하나를 통해서 세상에 분명하게 자신의 이름을 새긴 작가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의 이름을 들으면 바로 하나의 작품을 떠올릴 수 있는 작가라는 점에서
'다나카 요시키'는 너무나 행복한, 그리고 축복받은 작가다.
그런 '다나카 요시키'가 쓴 또 하나의 전쟁이야기인 이 작품 '일곱 도시 이야기'
는 조금은 심한 말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의 대표작인 '은하영웅전설'의 다이제스
트의 느낌을 받게 된다. 아무래도 긴 호흡의 '은하영웅전설'와는 달리 단 권으로
쓰여진 작품이기에 이 작품 '일곱 도시 이야기'는 조금 더 단순하면서도 분명하게
작가인 '다나카 요시키'가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전해준다. 아마도 제대로 마음
을 먹고 썼다면 '은하영웅전설'만큼의 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 같은 이
'일곱 도시 이야기'는 그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모습과 그 캐릭터들이 던지는 메시
지를 생각하면 조금은 단 한권의 이야기라는 것이 아쉬운 생각을 갖게 한다.
지구에서 일어난 자연 재해, 그리고 우주로 진출한 이들의 지구에 대한 원조를
빙자한 가벼운 식민지화를 지나, 우주로 진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지
구에 발이 묶인 지구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일곱 도시 이야기'는 지구의 무
수한 나라들을 단 일곱개의 도시로 단순화함으로해서 더욱 선명하게 이야기를 풀
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또한 그 단순화는 3개의 세력의 이야기를 다룬 '은
하영웅전설'에서의 작가의 시선을 '일곱 도시'로 풀어내어 하나 하나를 더욱 선명하
게 풀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는 작가인 '다나카 요시키'의 정치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게 하게
그리고 너무나 신랄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러한 '다나카 요시키'의 글을 통해서
독자들은 다시 한 번 '은하영웅전설'만큼이나 조금은 답답하면서도, 또한 조금은
통쾌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은하영웅전설'이 긴 호흡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이 '일곱 도시 이
야기'는 전쟁에 이르는 인간들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집중한
다. 하지만 이 '일곱 도시 이야기'의 전쟁은 '은하영웅전설'의 전쟁보다 조금 더 잔혹
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주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은하영웅전설'의 전쟁보다
이 '일곱 도시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더 우리에게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일곱 도시 이야기'는 각각의 전쟁에 대한
보고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전쟁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독자들은 단순히 신나는 전쟁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쟁이라는 상황 아래에서
우리의 세상을 더욱 직접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물론 너무나 신랄한 '다나카 요시키'
의 메시지도, 보거나 들을 생각이 없는 이들에게는 단순한 전쟁 소설이겠지만 말이다.
스스로를 일본의 문부성이 싫어하는 작가라고 이야기하는 '다나카 요시키', 하지만
그가 항상 이야기하는 것처럼 국민들이 국가를 사랑하는 것은 요구될 수 없고, 애국
을 외치는 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에 바쁜 이들이며, 국가가 국민에게
애국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먼저 국가가 제대로 사랑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그 동안의 메시지는 다시 한 번 살짝 숨겨져 이 '일곱 도시 이야기'에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가 풀어내는 그 이야기들은 분명 여전히 우리의 주변에서 조금만 주
의깊게 보면 만날 수 있는 모습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다나카 요시키'의 책을
만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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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그나마 영화라는 장르로 만난 가장 최근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요즘은 통 영화 볼 시간이 나지 않는다. ㅠ.ㅠ)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는 먼 미래 침팬지가 지배하는 혹성에 남겨진 남자의 모험, 그리고 그곳이 지구였다는 마지막 반전이 압권이었던 '혹성탈출'의 전편이라 볼 수 있다. 1968년의 '혹성탈출'이 인상적인 침팬지분장과 획기적인 상상력이 주목 받았다면, 기술력으로 훨씬 진화된 이번의 '혹성탈출'은 오히려 작가가 들려주는 메세지에 더욱 주목하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오만과 몰락이 바로 그것이다.
획기적인 것! ET가 그랬고, 스타워즈나 아바타가 그랬다. 영화라는 장르가 가진 이런 기발한 상상력은 인간이 가진 기술의 획기적 진보와 미래에 대한 기대, 혹은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 속에서 인간의 탐욕과 오만을 비틀고 잘못된 발전 방향에 대해 올바른 손짓을 해주는 역할을 해온것 역시 그들의 몫이었다. 항상 놀라움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이런 거대하고 위험한 상상들, 독자와 관객들에게 그것은 미래를 꿈꾸는 또 다른 현재를 살게 만드는 즐거움이 된다.
다나카 요시키!와 '은하영웅전설'이란 이름은 항상 함께한다. 부끄럽지만 일본 문학에 대한 깊지 못한 나에게 이 이름은 아직 낯설다. 1982년 발표하시 시작했다는 이 작품은 지금까지 무려 1500만부 이상을 판매하며 꾸준한 인기와 함께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폐허가 된 지구, 그곳을 떠나 은하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 전제주의 은하제국과 자유민주주의 행성동맹간의 오랜 전쟁, 그리고 그 사이에 나타난 두 명의 영웅들... SF판 삼국지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우주전쟁을 다룬 거대한 이 작품은 최근 국내에서 15권으로 재출간 되어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꼭 만나보고 소장하고 싶어진다.
어찌되었건 앞서 열거했던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던져주었던 시대를 넘어서는 상상력처럼, 벌써 25년이란 기나긴 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다나카 요시키와 그의 작품들이 남겨준 그 특별한 상상은 독자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지금 만나볼 <일곱 도시 이야기>를 통해서도 결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다나카 요시키라는 이름을 다시금 감탄사처럼 입밖으로 내어놓게 된다. <일곱 도시 이야기>는 '은하영웅전설'은 집필 말기 정도인 1986년에서 약4년여 동안 쓰여진 연작단편들의 모음집이다.
부에노스 존데, 뉴 카멜롯, 아퀼로니아, 쿤론, 산다라, 타데메카, 프린스 헤럴드! 서기 2088년 지구는 3년간 지속된 대전도(Big Falldown), 지축이 90도 틀어지는 현상으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 혜택을 입은 소수만이 달의 월면도시에 정착하고 그들은 백억명의 죽음을 멀리서 구경하게 된다. 2091년 월면도시의 생존자들은 다시 지구에 발을 딛게 되고, 재앙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재조직하며 문명 재건을 위해 일곱개의 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하지만 지구인과 지구에 새롭게 정착한 그들에게는 일정한 제약이 주어졌다. 항공, 항주 기술을 월면도시 거주자들에게 빼앗겨버린 것이다. '올림포스 시스템'이란 것을 통해 물체가 지상 500미터 높이에 이르면 파괴하는 시스템을 통해 달이 지구를 지배하는 시스템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월면도시의 영화는 2136년 달에 떨어진 운석에서 검출된 미지의 바이러스로 모든 주민이 치사성 열병으로 전멸하고 만다. 하지만 지구를 지배하던 올림포스 시스템은 여전히 지구인들을 위협하고 있다. 아마도 200년 이상은 쉬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대전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월면도시에서 이주한 사람들 사이의 적대감, 하늘을 잃은 사람들 사이의 경쟁과 반목은 결국 피를 뿌리는 전쟁으로 치닫고만다. 서기 2190년, 하늘을 잃어버린 일곱도시의 전쟁이 시작된다.
<일곱 도시 이야기>에서 역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전쟁 대서사시였던 '은하영웅전설'속 영웅들이 그랬던 것처럼, 과거 삼국지의 전쟁 영웅들을 만나듯 하나하나 그 존재를 알리는 영웅들의 등장이 독자들의 가슴을 일렁이게 만든다. 특히 두 영웅, 뉴 카멜롯의 케네스 길포드와 아퀼로니아의 알마릭 아스발이 자신들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치열하게 전쟁을 지휘하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매혹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불어 부에노스 존데의 귄터 노르트나 아퀼로니아의 참모 류 웨이, 뉴 카멜롯을 등에 업은 모블리지 주니어 등 지략가와 명장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일곱개의 도시라는 한정된 공간, 하늘에서의 전투를 배제한 도시간의 전쟁을 통해 작가는 과거의 시간속을 떠올리게 만드는 미래속 상상의 나래를 펼쳐낸다. 미래라고는 하지만 전쟁의 수준은 1차 세계대전이전의 시간속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잘 짜여진 시공간적 배경은 독자들을 이 색다른 미래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런 한정된 공간과 그 속에서의 전쟁은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정교한 묘사를 통해 그 빛을 더해나간다. SF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속에 담겨진 이야기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던지는 깊이 있는 메세지들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만든다.
'소문이라고 하시니 한 말씀 올리겠는데, 최근 들어 부끄러움을 모르는 풍조가 퍼지고 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군대나 경찰 고관이 일당 일파에 치우친 정치적 활동을 하고, 뇌물을 받으며, 장래의 지위와 이권을 약속받는다던가요.' - P. 24 -
케네스 길포드 준장의 이 말을 통해 작가가 던지는 이 시대에 대한 메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작가 다나카 요시키는 정치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는 작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작품도 그와 다르지 않아, 간혹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묘사 등을 통해 날카로운 비판을 내어놓고 있다. 요즘처럼 어지러운 우리 현실에서도 그려지는 이런 소모적인 이데올로기 다툼,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 치졸함과 썩은 냄새로 진동하는 정치의 한 단면 등 낯설지 않은 모습들이 엿보인다.
'지면 도망칠 필요는 없어. 죽을 뿐이지. 하지만 이기면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될 거다. 원수는 지금 나를 의지하고 은혜를 느끼고 있지만, 일단 이기고 나면 공적을 독점하고 싶어질 테고, 내 존재가 거북해질 거야. 그는 결코 악인이 아니지만, 찬한 사람의 질투심은 악당의 야심보다 다루기 어려워...' - P. 47 -
류 웨이가 조카 마린에게 건네던 이 말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의 쓸쓸한 모습이 있다. 그것은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기나긴 전쟁의 끝을 달리던, 노량해전을 앞둔 충무공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생각이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 죽음을 가장하고 권력과 정치의 그늘을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정치에 대한 불신과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 역시, 다나카 요시키가 창조한 전쟁의 역사적 굴레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세상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킨 원동력은 아마도 창조적 '상상력'이란 녀석에게서 비롯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요즘 한창 논쟁을 벌이고 있는 애플과 삼성의 태블릿PC 원조 논쟁에서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언급되기도 했던 것처럼, 상상력은 곧 우리의 미래로 연결될 수 있다. 기발한 상상이 가져올 우리의 미래, 다나카 요시키의 이 한 권으로 다시금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된다. 아직 만나지 못한 '은하영웅전설'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미래의 시간, 아니 현재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즐거운 상상, 특별한 경험, 깊이 있는 메세지! 다시한번 그 이름이 감탄사가 되어 되뇌어진다. 다나카 요시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