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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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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조선에서 가장 안타까운 인물하면 떠오르곤 하던 소현세자는 조선 왕조 오백년 역사 속에서 비극의 주인공임에도 끊임없이 현시대에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소현세자에게서 시대가 요구하는 표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인조의 비정함으로 인한 죽음에 안타까움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 거기에다가 소현세자가 살았었더라면 아마도 조선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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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조선에서 가장 안타까운 인물하면 떠오르곤 하던 소현세자는 조선 왕조 오백년 역사 속에서 비극의 주인공임에도 끊임없이 현시대에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소현세자에게서 시대가 요구하는 표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인조의 비정함으로 인한 죽음에 안타까움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 거기에다가 소현세자가 살았었더라면 아마도 조선이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았을 거라는 상상도 한 몫 하기도 하고 .. 그래서 이 요동묵시록을 보자마자 소현세자의 비서라는 말에 읽고 싶었던 책이지만 광범위한 전개에 속으로 놀라워했다..또한 요동묵시록은 요동 땅이 우리 땅임을 밝히고 수복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밝히면서 그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시작은 정조때 연암 박지원과 초정 박제가의 만남으로 시작이 된다. 초정 박제가의 선조인 박승지가 죽을 때 아들 박제가에게 비밀리에 보관하게 했으며  정조때 이르러서야 밝히게 된 소현세자의 비서를 연암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연암 박지원이 비서를 읽어내려 가는 형식으로 쓰여졌는데 소현세자의 비서는 소현세자가 청에 볼모로 가게 된 이야기부터 해서 청에서 생활하는 이야기와 청의 과학문명을 배우고자 했던 이유들과 청에서 명나라 군대에 참여하게 된 이유등 또한 자세히 적혀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소현세자가 청나라 장수인 황보 장군을 만나게 되면서 부터인데 황보장군은 대진국의 멸망으로 인하여 청나라에 복속하게 된 고려인이다. 그리고 소현세자는 황보장군을 통해 잃어버린 반쪽의 역사이야기를 듣게 된다. 황보장군으로부터 듣게 된 이야기는 왕실의 서고에서도 들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인지라 소현세자는 황보장군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잃어버린 반쪽의 역사를 되찾으리라 다짐하게 된다. 

 

황보 장군의 이야기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는 백제의 영토로 고구려영토의 아주 일부를 차지하고 나머지 고구려 영토의 대부분을 당나라가 차지하게 되었는데 그런 당나라의 행태에 고구려 유민들이 거란의 유민들과 함께 당나라에 대적하기 위해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대진국' 이다. 대진국은 단군왕검이 세운 전조선의 후손이란 뜻으로 대진국은 전조선의 정통한 후손이라는 것을 공포한 것이기도 한다. (중국 역사서에 발해라 기록되어 발해라고 함) 그러나 백두산의 폭발로 살 수 없는 땅이 되자 대부분의 백성들이 거란으로 이주해갔다. 그리고 일부분은 고려로 귀화하기도 했는데 고려의 지배층으로 대부분이 신라인이 중용되자 당나라에 영토를 빼앗긴 사실이 후대에 드러날까 싶어 고구려역사와  대진국역사는 사라지게 된다. 요동수복을 하려던 천추태후역시 신라인들에 의해 제거당하게 되는데 요동 수복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당나라에 옛고구려 땅을 헌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정체성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인품으로 청나라의 구왕 다이곤과 용골대의 무한 신뢰와 신임을 받은 것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소현세자를 둘러싼 반정과 모략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 청나라의 과학기술을 배워 조선의 부국강병을 꿈꾸던 소현세자는 결국 조선땅을 밟은 지 3일만에 죽게 된다. 여기까지가 연암이 읽은 1권의 비서이다.

  

역사는 고조선 시대부터 고구려에 이어 대진국이 우리의 진정한 뿌리이며 잃어버린 영토임을 말하고 있다. 철저하게 역사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요동묵시록은 고려 말 공민왕과  우왕, 최영장군과 이성계의 요동정벌 배경까지 더불어 명나라, 청나라의 역사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읽다보니 내가 역사책을 읽고 있는건지 소설책을 읽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딱딱한 문체와 대화가 읽기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역사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서술하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진정성을 알게 해주는 것이 역사소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나치게 조선왕조실록의 이야기 그대로 실은 느낌이 든다.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었으면 더 쉽게 읽히고 더 재미있지 않을 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는데 어쩌면  지나치게 방대한 이야기를 두권에 담아놓으려 하니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무척 부담스러운 책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2권을 다읽으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해서 2권에 펼쳐질 봉림대군의 비서에 기대를 걸어본다.

( 2권에 계속 ^^)



YES마니아 : 로얄 k********2 2011.11.24. 신고 공감 9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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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가 부르던 노래 『요동묵시록(상)』by 신용우
"소현세자가 부르던 노래 『요동묵시록(상)』by 신용우 " 내용보기
"책을 후손들에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선조의 의무다. 역사는 지나간 시대를 쓰는 것이지만 역사의 주인은 선조가 아니라 후손들인 까닭이다." - 235페이지       청나라의 침략으로 인해(병자호란) 절대열세에 몰린 조선은 결사항전하지만, 청나라는 무혈점령하기에 이르고, 인조는 항복의 방법으로 삼전도에 마련된 청 태종의 수항단을 향해 평민의 복장으로 걸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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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후손들에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선조의 의무다. 역사는 지나간 시대를 쓰는 것이지만 역사의 주인은 선조가 아니라 후손들인 까닭이다." - 235페이지

 

 

 

청나라의 침략으로 인해(병자호란) 절대열세에 몰린 조선은 결사항전하지만, 청나라는 무혈점령하기에 이르고, 인조는 항복의 방법으로 삼전도에 마련된 청 태종의 수항단을 향해 평민의 복장으로 걸어 들어와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의 예를 올린다. 또한,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 소현세자와 둘째 왕자인 봉림대군까지 인질로 삼았는데 수행사절의 규모는 300여명에 달했다. 그 대열에 합류될까 우려하던 대신들과 달리 박제가의 선조 박평은 자청하며 나서 동료 사대부들을 종용했고, 인조는 그를 승지로 임명한다. 작금의 고통스런 현실 앞에 마주한 소현세자는, 오히려 백성들을 위한 새로운 날을 준비하기에 바빴고, 청나라의 언어와 문물을 습득하고, 조선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명나라와 전쟁중인 청나라 편에 서서 출정한다.

 

남한산성 항복 때,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여 스스로 볼모로 나선 소현세자의 인품에 경의를 표한 용골대 장군은 자신의 집안 가보인 청룡도를 선물하고, 자신의 좌장을 맡은 한민족 황보 장군을 소개한다. 황보 장군을 통해 소현세자는 요동수복의 사라진 역사를 듣게 된다. 백두산 화산 폭발로 인해 멸망한 대진국 이야기부터 황보 가문의 선정왕후 천추태후와 그의 아들 고려 7대 목종이 요동정벌의 꿈을 키우던 중, 신라 통일의 정체성과 자신들의 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한 6두품 출신들의 반란으로 실각한 이야기, 우왕 시절 우군도통사에 명한 이성계가 요동정벌 4대 불가론을 제시하며 반대한 위화도 회군 대신 요동으로 갔다면 하는 아쉬움까지. 

 

비록 청나라의 볼모였지만, 청 태종 뿐 아니라 구왕 다이곤과 용골대 장군 등 모두가 하나같이 소현세자를 우호적으로 대했고 진심으로 좋아했다. 소현세자의 일시 환국 송별회에서 청 태종은 왕만이 입을 수 있는 곤룡포를 직접 하사하지만 소현세자의 부탁으로 거둬들이게 하고, 안장이 구비된 명마 한 필만을 선물받는다. 세자빈 부친이 사망하여 소현세자 부부는 청나라의 배려로 조선에 환국하지만, 인조와 조선 조정은 소현세자가 전장에 나선 것과 곤룡포를 이유로 분노한다. 인조는 자신의 상의없이 환국한 소현세자 부부에게 빈소에 곡을 하는 것마저 못하게 하고 그들의 문상조차 허락하지 않으며 세자가 왕의 자리를 찬탈하려 든다고 생각한다.

 

청 태종이 죽고 나이 어린 청 세조가 즉위한 후, 청 태조 누르하치의 열네 번째 아들 구왕 다이곤이 실통치자로 있을 때, 청나라는 명실상부한 중국 대륙의 주인이 된다. 소현세자는 용골대 장군을 통해 청나라 조상의 나라가 조선이라는 것을 듣게 된다. 금의 시조인 함보가 고려에서 나왔으며 신라 멸망 후 고려인으로 표기되고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이며, 경순왕 김부의 손자라고 하여 왕실의 성씨를 애신각라(愛新覺羅)라고 했다는 것은 태조 황제가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결론은 청나라의 중심세력이 요동으로 가기는 힘들고, 나선이 세력을 키워 요동을 넘볼 수 있으니 조선이 청나라와 나선정벌을 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요동을 수비하고 부모의 나라 조선이 통치하라 한다.

 

황보 장군이 전해준 『단군세기』를 통해 가림토 문를 발견한 소현세자는, 세종 때 만들어진 한글이 창제가 아닌 정리란 것을 알게 되고, 치부를 감추기 위한 방법으로 왕명으로 거둬들인 서책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실감하게 된다. 전교를 위해 명나라에 왔다가 청나라에 들어선 아담 샬 신부를 만난 소현세자는, 천문학˙과학˙종교서적을 받고 조선 신분제도 개혁과 함께 상업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환국을 코 앞에 둔 소현세자는, 용골대를 통해 조선에서 자신에 대한 음모가 있음을 깨우치게 되고, 만 8년이 넘는 청나라에서의 생활을 접고 조선으로 환국한다. 환국을 섭섭해하는 청 세조의 근사한 연회와 달리 조선 조정은 환영회에 대한 일체의 언급도 없을만큼 썰렁했고, 반면 백성들은 연도에 나와 부복한 채로 환영한다.

 

인조의 간신 김자점은, 박 승지에게 접근하여 소현세자의 첩실을 들이는 매개체 역할을 요구했으나 아담 샬 신부를 통해 천주교에 빠진 소현세자는 일부일처제 사상을 옹호했다. 섣불리 물러서지 않는 김자점을 소현세자는 직접 만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꺼내놓고, 김자점은 자신의 꿈이 좌절되자, 소현세자가 청나라의 힘을 등에 업고 인조의 자리를 노린다는 투로 왜곡하여 일러바친다. 직언(直言)을 싫어하는 인조는 영의정 김자점의 혼을 빼는 새치 혀에 놀아나고, 결국 아들 세자에게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학질에 걸린 세자를 독살시키고 만다.

 

승자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현세자의 비서(秘書)를 꺼내 읽는 마음은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했다. 심지어 한스럽기까지 했다. 신라가 골품제도라는 계급에 의해 자멸했듯, 고려 또한 자신들의 세력 키우기에 급급했고, 조선 또한 과거시험의 폐단과 인재 등용의 기회를 막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세력들은 백성(국민)들의 삶의 질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높이고 부를 축적할 기회만 엿보면서 손익을 판단하여 움직인다. 백성들의 지지를 얻는 왕권 강화와 요동정벌을 향한 염원은 결국 왕위에도 오르지 못한 소현세자의 꿈에서 그치고 만다. 불교를 믿거나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가여운 영혼이 행여 오랫동안 구천을 떠돌지나 않았을까 가슴이 저려온다.



d******7 2011.12.04.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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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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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듯 역사는 항상 힘과 권력의 우위에 있는 자가 살아 남게 되고 열세에 있는 자는 도태되기 마련이다.수많은 외침과 부침 속에서도 한국의 국력이 오늘에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끈질긴 생명력과 국가를 수호하려는 자주 정신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그 중에 왕조의 왕권이 흔들리고 외세에 무릎을 꿇는 등 수치스런 역사도 있었다.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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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듯 역사는 항상 힘과 권력의 우위에 있는 자가 살아 남게 되고 열세에 있는 자는 도태되기 마련이다.수많은 외침과 부침 속에서도 한국의 국력이 오늘에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끈질긴 생명력과 국가를 수호하려는 자주 정신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그 중에 왕조의 왕권이 흔들리고 외세에 무릎을 꿇는 등 수치스런 역사도 있었다.그것은 널리 알려진대로 청의 침입으로 병자호란을 겪은 인조의 청태종에게 삼전도에서의 삼배구고두례(三拜九皐頭禮)가 잘 말해주고 있으며,청은 그 댓가로 조선의 관료,사대부,그의 아들 소현세자,봉림대군,일반 백성들을 착출하여 볼모로 청으로 끌고 가 갖은 모욕과 수모를 겪게 했던 것이며 여기에서 화냥년이라는 말도 나왔다 한다.

 

 요동묵시록,잃어버린 발해국의 비서(秘書)를 중심으로 정조와 박승지의 후손 박제가 발해의 역사를 사료를 통해 제대로 알고 국력의 중요성까지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세인들에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태백일사,조대기,고조선비사,요사,당서 등을 통해 대진국(발해)의 역사를 알 수가 있는데 역사소설로서는 학습이 가미가 되고 흥미롭기도 했다.

 

 김자점 등에 의해 광해군이 물러나고 등극한 인조는 치세 내내 사색당쟁과 사회의 불안이 가중되다 보니 국력마저 악화의 일로를 걷고 마는데,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의 심양으로 볼모로 잡혀가면서 인조와 소현세자간의 보이지 않는 불화와 불신이 결국 소현세자를 의문의 죽음으로 몰아넣게 되고 이를 기화로 출세에 눈이 멀고 간신이었던 김자겸은 기세등등하게 되며 조선사회 분위기는 백성들의 도탄으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처지였다.

 

 청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는 예친왕 구왕과 황보 장군의 깍듯한 예우로 불편하지 않은 이방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는 천리안의 시각을 갖은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청이 중원제국을 차지하기 위해 명나라를 침공하는데 소현세자는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청군과 함께 적진에 뛰어 들어 국력의 소중함을 실감하고 자신이 장차 조선의 임금이 될 계승자라는 것을 보여 주며,당시 청에 들어 천주교리를 포교하던 선교사 아담 샬을 소개받아 서양의 선진문물과 과학 지식을 흡수하여 휘청거리는 조선을 다잡아 보고,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이 영혼을 구원하고 사람이 선을 행함으로써 자신이 죽는 날 하느님의 부름을 받는다는 천주교의 전교(傳敎)의 취지를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그러나 조선에 남아 권력에 눈이 먼 김자점 일당은 소현세자의 이러한 동태를 조선의 국체와 이념을 약화시킨다는 것으로 인조에게 고하니 인조는 국체와 왕권을 전복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로 알고 소현세자의 장인 장례에도 참석을 못하게 하며 그가 8여년만에 나라에 돌아와도 환영식은 커녕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게 되지만 소현세자는 자식된 도리로서 매일 아침 아버지 인조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효성을 잊지 않는다.이미 인조의 눈에서 벗어난 소현세자는 앉는 자리가 가시방석이었을 것이지만 일체 내색을 하지 않고 보다 나은 조선의 미래를 구상하는데 전념을 하게 된다.하지만 하늘도 무심했던지 그는 학질에 걸리게 되고 의원 이형익이 조제한 약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불운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j******6 2011.12.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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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역사소설-2] 요동묵시록 1
"[12월 역사소설-2] 요동묵시록 1" 내용보기
이 서평은 작가와비평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가끔 규장각 검서관들과 편한 식사를 같이하며 이런저런 크고 작은 국정을 논하곤 했던 정조는 대진국 발해의 역사를 쓰고 싶어 한다는 유득공에게 호기심에 찬 몇 가지 질문을 한다. 영토 경계 문제로 명나라와 자칫 시빗거리가 될 수 있어 그동안 대진국 발해사에 대한 문헌은 쉽게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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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작가와비평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가끔 규장각 검서관들과 편한 식사를 같이하며 이런저런 크고 작은 국정을 논하곤 했던 정조는 대진국 발해의 역사를 쓰고 싶어 한다는 유득공에게 호기심에 찬 몇 가지 질문을 한다. 영토 경계 문제로 명나라와 자칫 시빗거리가 될 수 있어 그동안 대진국 발해사에 대한 문헌은 쉽게 공개되지 않았다. 발해는 당나라가 대진국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고자한 의도에서 붙인 칭호였다. 그러나 대진국은 당나라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으며, 바로 그 대진국이 존재했음으로 요동은 조선의 영토임이 분명했다. 은닉된 대진국 발해사를 재조명하려는 유득공의 공을 치하하며 정조는 지난날 초정에게 받은 비서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세손시절, 정조가 초정 박제가로부터 받은 비서秘書엔 소현세자와 그의 동생, 효종(봉림대군)이 친히 쓴 북벌론이 담겨 있다. 특히 제 1권에서는 그 비서가 정조에게 전해진 경위와 8년간의 청나라 볼모기를 마치고 조선에 환국하자마자 독살된 비운의 소현세자에 대한 스토리가 소개된다.

 

 

인조의 비굴한 삼배구고두례三拜九敲頭禮가 끝나자마자 청나라는 조선에 부당한 요구를 계속한다. 이에 소현세자는 오랜 세월 전쟁으로 고통 받았던 백성들과 아버지 인조를 위해 청나라 볼모를 자청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볼모로 가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선뜻 따라 나서려하지 않았고, 그 때 박제가의 선조가 자원하여 소현세자를 보필하게 된다. 그 후 소현세자는 자신이 기록한 비서를 아우인 봉림대군에게 전하고, 그는 비서를 여러 차례 숙독한다. 그 후, 소현세자의 승하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형의 대의를 잇고자 봉림대군 자신도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죽기 전에 자신보다 더 나은 군주에게 전해주라며 소현세자를 보필했던 박 승지에게 비서의 보관을 부탁한다.

 

 

조선 권문세족들의 붕당싸움 등의 실정을 비웃던 청나라 황제와 예친왕, 용골대 장군과 조선 출신인 황보 장군은 소현세자의 왕재다운 비범함과 기개에 반해 그를 존경하기에 이른다. 패전국의 볼모로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 청나라의 앞선 문물을 배우고 익혀 건실한 조선의 번영을 꾀했던 소현세자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명운을 다한 명나라를 향한 지나친 숭상과 당쟁에 빠져 자신들의 사리사욕에만 급급해있던 조선의 실세들은 급기야 인조와 소현세자를 이간질시키고 끝내는 세자를 독살시킨다.

 

 

인조 자신이 권문세족들의 반정으로 정권을 잡았던 지라, 청나라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아들인 소현세자의 환국은 전혀 달갑지 않았다. 더군다나 삼전도에서의 자신의 치욕을 직접 목도한 아들이, 청나라에 충성하는 앞잡이가 되었다는 소문은 아버지로서도 도저히 참기 힘든 일이었다. 그것을 노린 김자점의 간계는 정확히 먹혀들었고, 인조는 아들을 죽이는 비정한 아버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왕의 재목이 못 되었던 인조를 아버지로 둔 소현세자의 불운. 늘 좌불안석이었던 인조가 현재에 안주하려했다면, 소현세자는 조선의 창창한 미래를 보고 치밀한 준비에 돌입했다. 대인이 대인을 알아본다는 말처럼 청나라는 그러한 소현세자를 정확히 간파했고 그에 상응한 대우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소현세자는 늘 아버지인 인조의 입장을 고려해 처신했던 지극한 효자이기도 했다. 청나라 역시도 조선이 자신들과 같은 뿌리라는 인식에서 조선에 호의적 우의를 다지려했다. 그러나 조선은 막무가내로 명나라 편에 섰고, 오랑캐라 부르며 청을 무시하는 과오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 비극적 결말이 바로, 소현세자의 죽음이다. 이 책은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내가 읽는 역사란 역지사지다. 내가 당시 인조였다면 혹은 소현세자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스스로 왕재가 아님을 알면서도 타의에 의해 왕좌에 앉게 된다면 어쩌면 나도 인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휩쓸리지 않고자하나 가만히 놔두질 않는 무리들이 도처에 넘쳐난다면 그 또한 아무리 일국의 왕이라 해도 불가항력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역사에서 희생양은 꼭 있기 마련. 비단 지난 역사에서뿐만이 아니다. 과거에나 현재나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기에. 그 비극적 역사의 순환으로 반복되는 세상이 아니던가.


 

a*********9 2011.12.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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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소현세자의 원대한 꿈, 그래서 더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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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의 역사를 가정해 보는 만큼 부질없는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안타깝고 의문에 싸인 대목이 너무 많아 이미 진행된 역사와는 또 다른 가정을 토대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가 많이 나오고 있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그 과거를 반복하게 되어 있다는 교훈을 각인하고 어제와 다른 대한민국의 역사가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나 아직도 과거의 질곡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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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의 역사를 가정해 보는 만큼 부질없는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안타깝고 의문에 싸인 대목이 너무 많아 이미 진행된 역사와는 또 다른 가정을 토대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가 많이 나오고 있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그 과거를 반복하게 되어 있다는 교훈을 각인하고 어제와 다른 대한민국의 역사가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나 아직도 과거의 질곡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청과 명과의 등거리외교 실리외교를 주창하던 광해군을 인목대비 폐위와 영창대군 사사 등을 사유로 성리학의 명분론자들과 명에 대한 사대주의를 주창하던 세력이 인조반정에 성공하고 존명반청의 기치를 높이 올린 결과 조선은 정묘호란에 이어 병자호란을 겪게 된다. 지는 해를 믿고 솟아오르는 해를 무시한 결과임에도 조선의 기득권자들은 명이 망한 이후까지도 그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하여 결국엔 일제강점기를 맞게 된 것은 필연의 결과라 보인다.

요동묵시록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작성한 비서를 박제가의 가문에서 대를 이어 보관해오다가 정조가 유득공에게 발해의 역사(발해고) 집필을 의뢰하게되고 비서를 정조에게 보이기전 백탑파의 수장인 연암 박지원에게 먼저 보이게 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려말의 위화도 회군, 감추어지고 지워진 대진국의 역사,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의 행적 등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청나라가 조선에 나선정벌을 대가로 요동경영을 맡기려한다는 엄청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효종의 북벌론은 명분론에 사로잡힌 조선이 청을 공격하려 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와는 전혀 다른 구도하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의 가림토 문자가 한글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을 감추고 단종을 폐위하고 집권한 세조가 명의 인정을 받기 위해 명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줘 조선과 발해의 역사를 다룬 사서를 위서라 하여 정부의 서가에만 보관했다는 것이다.

 

소현세자의 의문에 싸인 급사는 여러 책이나 소설을 통해 널리 회자되는 소재로 이 책은 인조가 김자점의 술수에 말려 그리도 쉽게 그가 심어놓은 어의를 통해 사사를 허락하는 것이 너무 간단하게 서술되어 인조의 심경을 제대로 파악하긴 어려웠고 사실일까? 아무리 청에 빌붙어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아들이라 하드라도, 이것은 영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행위처럼.. 권력은 아들이라 할지라도 공유할 수 없다는 말이 정확히 입증되는 것이랄까?

 

소현세자의 1차 환국시 청태종이 하사한 곤룡포, 완전 환국시 용골대가 가져온 청룡도에 담긴 파장이 이토록 클 줄이야

소현세자와 용골대, 예친왕 다이곤이 그렇게 친밀해지는 것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긴 하지만 심양에서 소현세자와 강빈이 보여준 활동사항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빈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만이라도 덧보태어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아쉽다.

 

초반에는 대화가 격식을 지나치게 차리는 문장이라 속도가 붙지 않았지만 사건이 전개될 수록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안타까움이 더해져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소현세자가 지혜를 발휘하여 왕위에 올랐더라면 조선을 어떻게 되었을까? 서양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고 나선정벌에 성공하고 요동을 다스리게 되었다면 조선은 중국과 러시아에 필적하는 전조선과 대진국, 고구려의 영토를 가진 대국이 되었을까?

 

역사적 실화가 승자의 역사 기록으로 사라지면 설화가 된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치우천황과 중국의 황제가 맞붙어 싸워 전승을 거두다가 탁록대전에서 한번 패한 것이 완전 패한것이란 중국의 기록이 맞을까? 전쟁에 승리한 황제의 무덤은 산에 있고 싸움에 패한 치우천황의 무덤은 평지에 있다는 것이 역사왜곡을 입증한다는 어느 사학자의 글이 떠오른다.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고구려땅을 잃어버린 것이며 그를 이어받은 대진국의 역사, 북벌을 반대하는 세력의 근초가 고구려의 관리가 된 신라 6두품 세력이라는 것도, 청나라와 한민족의 나라인 금나라의 시조가 경순왕의 후손이라는 사실, 신라는 남방계가 아니라 북방의 돌궐계라는 사실처럼 우리 역사는 고구할 수록 안타깝고 의문부호를 던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을 너무 많이 만나게 된다.

가정을 한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사인 것을, 과거의 패착을 제대로 파악하여 미래를 위한 오늘의 교훈으로 삼아 과거의 아픈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고 싶은 것이 이런 팩션소설을 집필하는 저자의 마음이 아닐까?

 

소현세자의 원대한 꿈! 학질을 앓은지 사흘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너무 앞서나간 점도 없진 않지만 소설을 통해 우리 역사를 다시보게하는 팩션소설은 언제나 나를 유혹하고 있다.

 

강빈과 석철은 어떻게 사사를 당하고 봉림대군은 왕이 되어 어떻게 소현세자의 받들지, 봉림대군의 비서에는 또 어떤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을지 하권이 크게 기대된다.

y*****n 2011.12.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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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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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현세자와 효종이 남긴 북벌 계략의 비서로 상권은 소현세자의 입장에서 기술되었고 하권은 효종의 입장에서 기술되었다. 소현세자와 효종은 역사적으로 불운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장자로 병자호란때 아우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9년간의 인질생활을 하게 된다. 문제는 그의 사람들이 평가하는 그의 정체성이었다. 그는 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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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현세자와 효종이 남긴 북벌 계략의 비서로 상권은 소현세자의 입장에서

기술되었고 하권은 효종의 입장에서 기술되었다. 소현세자와 효종은 역사적으로

불운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장자로 병자호란때 아우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9년간의 인질생활을 하게 된다. 문제는 그의 사람들이

평가하는 그의 정체성이었다. 그는 조선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청나라에 가까웠고

청나라인의 입장에서는 조선인이었다.

 

그런데 소현세자를 조선인이어서 청나라 사람이 견제하는 것은 그렇다쳐도 자신의

아버지 인조에게도 그는 견제를 받는 슬픈 처지였다. 인조는 청나라가 소현세자를

즉위시키고 자신을 몰아내려는 공작을 펴는 것으로 의심하고, 그를 감시하였다고 한다.

인조가 감당하게엔 소현세자가 너무 영특했던 탓은 아니었을까? 그는 같이 볼모로

잡혀갔던 동생 봉림대군에 비해 청나라의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했고 새로운 문물에도

적극적이었다. 또한 조선에서 신봉하였던 성리학이 이미 낡은 사상이라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조의 입장에서는 그저 청나라와 가까운 인물이었으며 서인 세력들에게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결국 그는 청나라에서의 행실을 문제삼아 인조의 냉대를 받았고

급기야는 병을 얻어 급사하였다는 역사기록이 있다. 하지만 기록과 달리 소현세자가

독살되었다는 설이 정설이라고 한다. 것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이다. 그렇게

소현세자가 죽은 뒤 인조는 봉림대군(효종)을 세자로 책봉하기에 이르는데 효종의

삶 또한 평탄하지 않았다.

 

효종하면 북벌계획을 수립, 군제의 개편, 군사훈련의 강화 등에 힘썼으며 그외에도

대동법을 실시했고, 상평통보를 화폐로 유통시키는 등 경제시책에서도 수많은 업적을

남긴바 있다. 그렇게 그는 평생을 북벌에 전념해 군비 확충에 몰두한 군주였다. 그러나

국제정세가 호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재정이 부족해 때로는 군비보다도

현실적인 경제재건을 주장하는 조신들과 뜻이 맞지 않는 괴리현상이 일어나 북벌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소현세자와 효종이 성공적으로 집권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까? 청나라 문물을 먼저

접했던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랐다면 일본의 메이지 유신보다 200년은 빠른 개혁이

시도되었을 것이고 일제시대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효종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의 북벌론을 자제하고 좀더 융통성있게 상황을 지켜보는 노련함이 있었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니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의 눈에

그들이 좋게 비췄을리없다. 비록 역사서에는 승자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그들이지만

새롭게 이 책은 그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알고 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새로운 모습의 소현세자와 효종이 그려진다. 분명 그들은 그러했을 것이다.

소현세자와 효종이 그렇게 나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존의 역사서에 의문이

생기고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h******8 2011.11.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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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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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님의 <요동묵시록>입니다.   <요동묵시록>의 표지를 보면 소현세자와 효종이 친히 써내려간 북벌계략(北伐計略)의 비서(秘書) 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들어오는데요..   대체로 이 작품은 소현세자와 효종의 북벌비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기도 전에 흡사 90년대 무협소설을 보는 듯한 엉성한 디자인의 표지가 눈에 상당히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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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님의 <요동묵시록>입니다.

 

<요동묵시록>의 표지를 보면 소현세자와 효종이 친히 써내려간 북벌계략(北伐計略)의 비서(秘書) 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들어오는데요..

 

대체로 이 작품은 소현세자와 효종의 북벌비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기도 전에 흡사 90년대 무협소설을 보는 듯한 엉성한 디자인의 표지가 눈에 상당히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내용인지라 순식간에 읽어나간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동묵시록>은 유득공이 정조임금의 명을 받아 대진국 발해의 역사서에 집필을 명받으면 시작됩니다.

 

그 이후, 인조임금이 청나라 태종에게 굴복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청나라에 잡혀갈 때,

 

세자와 대군의 곁을 지켰던 박제가의 선조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에게 받은 비서를 박지원에게 소개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上권에서는 소현세자가 부르던 노래, 下권에서는 효종이 부르던 노래 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우선 上권에서는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가 청나라 용골대 장군의 소개로 알게된 고려의 후예 황보장군을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대진국이란 존재와 역사에 대해 새로이 눈을 띄게 되고,

 

옛 조선의 영토인 요동을 되찾고자하는 소현세자의 모습과 함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소현세자의 행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下권에서는 소현세자의 죽음이후, 소현세자의 유지를 이어받고자 했던 봉림대군이 효종임금이 되어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 조카들의 원수를 갚고 백성이 아닌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에만 신경썼던 붕당의 사대부에 맞써

 

요동을 수복하기 위한 효종임금의 고군분투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조선시대 중 가장 논란이 되기도 하고 소현세자의 죽음은 많은 의문을 갖게 만드는 미스터리한 사건인 관계로

 

이미 다른 작품에서도 숱하게 다뤄지기도 했던지라 얼마나 새로운 내용이 들어간 작품이 될지 우려감도 갖게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만

 

소현세자와 대진국 발해, 그리고 이것이 유득공의 <발해고>까지 이어진다는 점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신선한 부분이네요..

 

대체로 소현세자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반해 효종임금의 이야기는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데 반해

 

이 책에서는 소현세자는 물론 효종임금의 이야기가 자세히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비록 <요동묵시록>, 이 작품이 역사소설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능한 이야기의 상당부분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실제 역사자료에 발췌해온 노력이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역사소설 보다는 상당부분은 역사서적인 느낌도 강하게 풍기네요..

 

상당히 흥미로운 우리나라의 역사들이 숨쉬는 <요동묵시록>..

 

발해에 대한 역사적인 조사와 연구가 더 활발해져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졌으면 바람이고요, 읽는 내내 상당히 흥미로웠던 작품입니다.

 

f******n 2011.11.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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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 - 소현세자가 부르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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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 소현세자가 부르던 노래 소현세자에 대해선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겨우 이름정도.. 그리고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정도로 말입니다. 요동묵시록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말입니다. 책을 읽고 만약 소현세자가 효종대왕이 독살당하지 않고 살아계셨다면.. 말입니다. 하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 지도상의 영토가 달라졌을거란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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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

소현세자가 부르던 노래

소현세자에 대해선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겨우 이름정도.. 그리고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정도로 말입니다.

요동묵시록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말입니다.

책을 읽고 만약 소현세자가 효종대왕이 독살당하지 않고 살아계셨다면.. 말입니다. 하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 지도상의 영토가 달라졌을거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이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그 땅이 옛날 우리의 영토였다고 확실히 자신있게 주장할수 있었을꺼란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병조호란을 겪고 나서 더욱더 약해진 인조임금님.. 그리고 자신의 아들 둘을 청으로 볼모로 보냈답니다. 하지만 청나라의 호의가 소현세자의 입지를 더욱 좁혀놓았고

급기야 명이 인정한 인조를 새로운 왕조인 청나라가 인정한 소현세자라 왕을 바꿀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소현세자는 쓸쓸하게 죽임을 당한답니다.

뒤주에 갇혀죽은 사도세자, 독살당한 소현세자 아버지인 왕들이 왜그랬나 싶을 정도랍니다.

청나라와 전쟁터에 나서 앞장서서 세자로써의 역할을 다하셨는데

우리나라의 조정대신들의 무지몽매함에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깝기 그지없었답니다.

소현세자가 부르던 노래에서는 청나라에 볼모로 가 있음에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에 배우고 익히고 북벌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꿈꾸었습니다.

볼모라는 불리한 위치에도 아첨이나, 세월을 한탄하며 보낸 8년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바꾸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한 분이 바로 소현세자였습니다.

삼국지 관운장이 들고다니시던 청룡도를 마음껏 휘드르며 전장을 다녔을 소현세자,

청나라의 신임을 모두 받고 요동을 건데받을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소현세자,

이분이 못다이룬 북벌의 꿈을 동생인 효종대왕이 차근차근 진행해 가지만

이분 또한 모든 꿈을 다 이루시지는 못한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소현세자의 꿈이 요동묵시록에서나마 잠시 엿볼수 있었습니다.

 

d*****h 2011.1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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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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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 신용우 지음 작가와비평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우리 역사에 대해 참으로 무지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와 광해군을 파하고 세워진 인조. 그리고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청나라와의 마찰, 특히 인조의 '삼전도' 사건과 이에 얽힌 소현세자와 효종의 역사가 사건의 중심이라고 하겠다. 훗날 이 사건의 축이 정조에게까지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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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

신용우 지음

작가와비평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우리 역사에 대해 참으로 무지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와 광해군을 파하고 세워진 인조. 그리고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청나라와의 마찰, 특히 인조의 '삼전도' 사건과 이에 얽힌 소현세자와 효종의 역사가 사건의 중심이라고 하겠다.

훗날 이 사건의 축이 정조에게까지 이어지면서, 소현세자의 죽음과 반계 유형원, 우암 송시열, 고산 윤선도를 등장시킨다.

 

인조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3418

효종 http://100.naver.com/100.nhn?docid=174520

 

우암 송시열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225

고산 윤선도 http://100.naver.com/100.nhn?docid=123646

반계 유형원 http://100.naver.com/100.nhn?docid=123646

 

정조 http://100.naver.com/100.nhn?docid=136845

연암 박지원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405

초당 박제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89269

 

그리고 정조시대의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아정 이덕무, 영암 유득공, 서얼이자 무신인 백동수 등등... 한 시대를 살다간 수많은 실학자와 정계의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이 소설은 소현세자와 효종을 중심으로 하여 저술하였기 때문에, 두 인물에 협력한 사람들은 아군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적군으로 묘사하며, 이 절대 왕권에 반 한 사대부들을 붕당을 일으키고, 명분에 치중한 적군으로 백성의 안위나 나라의 실리를 적대시한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설이며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소현세자가 인조의 뜻에 따라 김자점에 의해 독살되었는 지, 그 사실은 알 수 없다. 또한 소현세자와 인조 사이의 어떠한 사건이 있었는 지도 모두 알 수는 없다. 인조가 왜 그랬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영조와 사도세자에 얽힌 일들을 확실하게 거론할 수 없는 것 처럼... 조선 왕조는 유학을 숭상하는 만큼 사대부들의 역할이 지대하게 컸으며, 붕당정치로 나라는 멍들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그 내면의 여러 사건들은 모두 밝혀지지 않은 채 그저 역사의 심판만을 기다릴 뿐이다. 아무도 소현세자가 옳다, 효종이 오로지 백성을 위하는 마음 뿐이고 왕의 자리에 아무런 욕심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면, 인조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왕이었다고고 할 수 없다. 또한 김자점이 그저 욕심에 사로잡힌 나쁜 놈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이다. 윤선도는 좋은 편, 송시열은 나쁜 편이라고 쉽게 정리할 수도 없다. 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이 최선이며, 그것이 옳다고 믿었기에 그 길을 간 것이고, 후대에 와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것도 무리가 따르는 일일 것이다. 아쉬움은 많이 남지만~

효종시대에 요동을 지켰다면, 지금 현재에 와서는 더 넓은 국토를 가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여전히 요동에 대한 욕심은 남는 것이고, '대진국'이라고 표현하는 발해에 대해서도 지금 우리가 깊게, 면밀하게 연구해야하는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효종이 세종대왕이나 정조대왕에 버금가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후대의 평가에 따르면, 업적이나 품성적인 면으로 세종대왕을 능가할 임금은 없지만, 조선후기의 문화의 아이콘으로 대두되는 정조에게는 못 미치겠으나, '효종' 자체의 평가가 미흡한 면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작가가 그린대로, 품성에서나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에서나, 학식을 갖추고 있었다면, 사대부들에 의해서 그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에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에 늘 한 표를 던지는 사람이다. 고로, 요동에 대한 아쉬움을 늘 갖고 있다. 그리고 또한 발해(대진국)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더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면 한고 바라는 바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딸아이게 기대를 해볼까?

2011.11.23. 두뽀사리~

 

"나는 리뷰어다" 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i***2 2011.11.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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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소현세자가 부르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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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가 부르던 노래.   이 책은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수치라고 일컬는 삼전도 굴욕에서 부터 출발한다.   1. 청이 쳐들왔다. 조선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밀렸다. 명에게 구원을 청했으나 자국의 사정때문에 명은 오지 않았고, 의병의 활약은 미비했다.   결국 인조는 청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를 하고 만다. 실로 창피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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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가 부르던 노래.

 

이 책은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수치라고 일컬는 삼전도 굴욕에서 부터 출발한다.

 

1.

청이 쳐들왔다.

조선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밀렸다.

명에게 구원을 청했으나 자국의 사정때문에

명은 오지 않았고, 의병의 활약은 미비했다.

 

결국

인조는 청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를 하고 만다.

실로 창피한 일이다.

삼배구고두례가 창피한 것이 아니라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왕과 신하들이 창피한 것이다.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기에 저런 치욕을 맛본단 말인가.

내가 왕이었다면

사약을 먹던지 해서 생을 마감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물론 왕 이전에 사람이니 그럴수도 있겠다.)

 

2.

청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청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데리고 간다.

이제 소현세자의 삶이 그려진다.

 

그는 청이 조선에게 준 수치를 현명하게 되갚으려고 했다.

즉, 청을 미워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배울 것은 배우자는 입장을 취했다.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자세를 보였다.

청의 언어를 배우고, 청의 선진문물을 습득하고

더 나아가 전장에 나가 청을 위해 싸우기 까지 했다.

 

이런 일련의 그의 행동들은 오직 조선의 부국강병에 있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소현세자는 원치 않게 청에 들어갔지만

청을 존중하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백성의 마음이었다.

명은 민심을 잃었기에

더 이상 중원의 패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조선은 기울고 있는 명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3.

소현세자는 기개가 굳세고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왕이 되었다면 성군중의 성군으로 추앙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하게도 소현세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역사에서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렇데 되었더라면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책이라든지

일제 강점기, 민족간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4.

우리나라의 역사서가 의외로 적다.

대부분 소실되거나 불타 사라졌다고 한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흩어지게 마련이다.

중심축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것이다.

 

역사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뭉치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은가.

 

현 우리나라 국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보지 않는다.

국사의 비중이 적다는 것도 있겠지만

과연 제대로 역사를 우리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지도 따져 볼 일이다.

m******m 2011.11.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