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263."기억해라, 이시도로.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흥얼댈 뿐이고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노래를 부른단다." 얼마 전 우리나라 남부 포항에도 지진이 발생해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커다란 피해를 주었다. 현대문학에서 나온 엔리코 이안니엘로의 장편소설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는 1980년 발생한 이탈리아 남부의 지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지진이라는 커다란 자연재해 속에서 한 소년이 겪은 아픔과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픔을 이야기하고 슬픔을 보여주고 있지만 눈물 속에 머무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희망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보여주어 슬픔과 아픔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한 소년의 성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철새들이 지나는 길목인 마티넬라라는 마을에 사는 열 살 난 소년 '이시도로 라지올라'가 주인공이다. 소년은 태어날 때부터 색다른 소통 방식을 보였다고 한다. 울음이 아니라 휘파람을 불어 세상과 소통했고 이제 소년은 그 휘파람으로 새와 대화를 나누는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게 된다. 소년의 특별한 휘파람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소년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 이시도로 시플로틴. 휘파람 소년. P.174. 예전에는 언어가 그들을 가둬두는 새장이었는데 휘파람으로 드디어 새장을 박차고 나온 것 같았다. 소년이 말보다 휘파람을 더 좋아하게 되고 인도 검은 새 알리와 친구가 되기까지에는 소년에게 꿈을 심어주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도움을 준 소년의 부모님의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교육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는 눈을 가진 아버지와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마음을 가진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소년을 강하게 키운듯하다. 그런 부모님을 지진이라는 커다란 자연재해로 인해 동시에 잃게 된 소년의 슬픔은 그의 목소리마저 잃게 만든다. 실어증. 그런 고통스러운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게 하는 중요한 역할도 휘파람이 맡는다. P.204."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을 때, 헤어져보면 알고 떨어져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1부에서 자유롭게 휘파람을 통해 자존감을 키우던 소년은 2부에서 휘파람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사랑과 이별을 배우게 된다. 이 작품은 소년의 성장을 통해서 삶의 진정한 의미와 행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있어서 좋다.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사랑을 통해서 행복을 찾아가는 소년의 발걸음이 우리를 희망의 휘파람 속으로 이끌어가고 있어서 좋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소년을 사랑으로 자유롭고 강한 자존감을 가진 어른으로 키워주는 길을 여러 어른들이 도와주고 있어서 좋다.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해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원더풀 한 인생을 살고 있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원더풀 한 인생을 보여주고 세상의 아픔을 간직한 많은 사람들에게 원더풀 한 인생을 선물해주는 책이다. 휘파람으로 새와 대화하는 소년의 자유롭고 행복한 영혼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꼭 한번 가져보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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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눈물 짓게 만든 도서였다. 처음엔 조금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가슴뭉클함이 전해지는 그런 소설이었다... 소설도 골라 읽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취향적인 면이야 뭐라고 할 수 없겠지만 이왕 시간들여 읽는 거라면 재미보단 뭔가 얻을 수 있는 소설책이 낫다고 본다. 파스타 장인인 엄마와 사팔뜨기인 아빠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시도로는 갓 태어나면서부터 의도치 않게 휘파람을 분다. 한동안 잊었던 휘파람은 인도 검은 새가 나타나면서 다시 시작된다. 검은 새 알리와 휘파람으로 대화 가능한 이시도로. 그의 특별한 휘파람 부는 재능은 마을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이시도로의 엄마와 아빠에 대한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는 데 이시도로 아빠의 욕실에서 쓴 편지는 무척 참신한 느낌이 들었다. 내용 또한 참신했다. 스텔라에게, 당신의 이름 옆에 '사랑하는'이라는 말을 꼭 붙여야 할까요? 그건 누군가가 "아름다운 나무야"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나무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과 다를 바 없잖아요... P 48 ...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까 했지만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요?.....인생은 찌릿찌릿하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에 "아으!"라고 말해야겠네요..... P 49 평화로운 일상의 나날을 보내던 이시도로에게 크나큰 재앙은 모든 걸 한순간에 앗아갔다. 그 재앙은 바로 지진이었다. 지진 안전지대라는 우리나라에도 최근 몇 번의 지진이 있었다.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이었는 데 직접 경험한 지진은 정말 무서웠다. 삶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다고 평소 생각했었는 데 바로 죽음이 떠올라서 얼마나 두렵던지... 웃긴 건 그 두려움 또한 금세 잊혀졌다는 사실이 다소 어이없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로 인해 한순간 고아가 되어버린 이시도로. 크나큰 충격으로 인해 이시도로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후 휘파람만으로 대화가 가능해진 이시도로... 이시도로는 부모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 죽음의 순간 엄마와 아빠는 함께였으며, 잠시나마 아빠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직접 몇 번의 지진을 겪으면서 황당한 생각도 들었는 데 샤워 중에 지진 나면 어쩌나-하는 것이다.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으리라. 고아가 된 이시도로의 삶이 시작되는 2부. 1부의 온화한 느낌과는 사뭇 다른 이시도로의 성장기를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참 잘 쓴 소설책이다. 기억하고픈 깊은 의미가 담긴 글귀를 읽으면서 나름대로 해석하려고 노력 했고 가슴에 담아도 두고 싶었다. 독서, 나의 성장은 독서를 통해 서서히 진행되고 있나 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직접 겪는 다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큰 깨달음을 주는지 다시금 고민할 수 있었다.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의 그 차이를 우리는 과연 극복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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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는 동화 같은 소설이에요. 마티넬라라는 마을에 살고 있는 열 살 된 소년이 있어요. 원래 이름은 이시도로 라지올라인데, 휘파람을 잘 불어서 '휘파람돌이'나 '꼬마 새'라고 불러요. 학교에서는 '홀쭉이 배 이시도로'라고 불러요. 너무 빼빼 말라서 척추와 뱃가죽이 거의 들러붙은 것처럼 보이거든요. 광장 뒤편의 작은 골목에 존조 씨의 가게가 있어요. 바로 그곳에, 인도 검은 새 알리가 새장 안에 있어요. 이시도로가 두 살 되었을 때, 아빠와 함께 그 골목길을 걷고 있었어요. 검은 새가 이시도로를 쳐다보고 있었고, 이시도로도 그런 검은 새를 쳐다보았어요. 잠시 후 검은 새 알리는 새로운 친구에게 감미로운 휘파람을 불어주었어요. '굉장해! 정말 아름다운 선율이야!' 흥분 그 자체였어요. 이시도로도 뭐라고 대답하고 싶었어요. 아직 촛불 끄는 법도 모른던 어린애가 입술을 우 모양으로 만들고 숨을 내쉬었어요. 그래서 어린아이의 성대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우를라피스키오(이 단어는 이시도로 아빠가 만든 것. 아빠는 단어 발명가임.)를 한 거예요. 검은 새 알리는 또 다른 휘파람 소리를 냈고, 이시도로는 곧바로 흉내를 냈어요. 그렇게 이시도로와 알리는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보통 아이들처럼 부모님과 어떤 여자아이를 사랑하고 음악과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시도로에게 특별한 일이 생겼어요. 휘파람으로 공연 무대에 서기로 한 것. 그건 노첼라 아저씨(별명은 칸초네 아저씨)가 이시도로의 휘파람이 특별한 재능이라면서, 궁극적으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의 메시지로 휘파람을 불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에요. 혁명의 휘파람을 불어야 한다고, 휘파람은 노동계급만 이해할 수 있는 암호가 될 거라고 말이죠. 알리는 이미 세상에는 서로 다른 언어가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언어, 누군가는 괴롭힘을 당해서 울고 또 다른 누군가는 괴롭면서 웃는... 알리는 이시도로에게 주의를 주었어요. 이시도로가 아직 어려서 세상을 구한다고 착각할 수 있다고, 아이들의 꿈은 금방 실현되는 반면에 어른들의 현실은 꿈이 실현된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아저씨는 라체도니아 연주회를 위해 이시도로에게 연습을 시켰어요. 공연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하라고 알려줬어요. "이제 여러분에게 오늘의 마지막 단어를 가르쳐드릴게요. 그리고 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요. 지금 해볼 문장은 '자유롭고, 단결하고, 굳건하라. 주인도 노예도 없다'예요."(173p) 1980년 6월 26일, 라체도니아의 광장에서 이시도로는 멋진 휘파람 공연을 했어요. 그때 놀라운 일이 벌여졌어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새로 변해가는 광경. 이시도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어요. 예전에는 언어가 그들을 가둬두는 새장이었다면, 휘파람으로 드디어 그 새장을 박차고 나온 것 같았어요. 엄마는 이시도로에게 밤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성장하는 것은 헤어진다." , "강아지는 어미 개와 헤어진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을 때, 헤어져보면 알고 떨어져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린 이시도로는 그 반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빠와 엄마, 칸초네 아저씨와 혁명, 르노 아저씨, 알리, 이에소 아줌마, 존조 아저시, 아르도와 마렐라를 모두 함께 연결해서 간직하고 싶었어요. 자신의 동네이자 삶인 그 세계를 휘파람 속에 간직하고 싶었어요. 르노 아저씨는 프랑스 사람으로 대학교에서 인간 집단의 행동을 연구한대요. 그래서 알리와 이시도로가 휘파람으로 대화하는 것을 녹음하고 연구하고 싶어해요. 프랑스어로 '휘파람 불다'라는 말은 '시플로테'라고 한대요. 르노 아저씨는 말했어요. "너는 이제부터 이시도로 시플로틴이야, 휘파람 소년 이시도로." 휘파람 부는 아이 이시도로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지진으로 부모님을 잃고 말까지 잃게 된 이시도로. 이 소설은 평범한 소년에게 마법 같은 휘파람을 가르쳐준 검은새 알리처럼 우리에게도 휘파람을 불어주네요. 들리시나요, 당신을 위해 부는 휘파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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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코 이안니엘로의 장편소설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를 읽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시도로라는 소년이 주인공으로,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중점적으로 쓰인 소재는 바로 휘파람으로, 이시도로는 태어날 때부터 휘파람을 불 수 있었고, 휘파람으로 새와 대화도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는 소년이다. 이 소설은 총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이시도로의 특별한 재능과 그의 화목한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2부는 큰 사건이 일어난 후 이시도로의 삶을 그리고 있다. 소설을 읽기 전에 인터넷 서점에 등록되어 있는 책 소개를 볼 때에 그 큰 사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빨리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시도로의 삶을 뒤흔든 그 사건은 소설의 3분의 2를 넘어선 지점에서 발생한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의외라고 생각되어서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다. 이시도로의 특별한 재능이 나오는 장면은 독특하면서도 즐거운 분위기를 주어서 좋았다. 작년에 읽은 미치 앨봄의 소설 ‘매직 스트링’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 소설에서도 주인공 프랭키 프레스토는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여 사람들과 소통한 점이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다른 점은 이시도로는 프랭키보다 조금 더 어린 나이의 인물로 어린 아이의 순수함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있다. 이시도로의 삶을 뒤흔든 그 사건은 바로 지진으로,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난 지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1년 동안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달려왔던 수험생들에게 큰 당혹감을 안겨준 그 지진은 이 소설에서도 이시도로에게 큰 상처를 준다. 상처를 조금씩 극복해나갔던 이시도로처럼 포항 지진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조금씩 예전의 삶을 되찾아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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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읽은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은 '조반니 과레스끼'의『신부님, 우리 신부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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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La vita prodigiosa di Isidoro Sifflotin)
휘파람으로 새들과 대화하는 소년의 세상 가장 원더풀한 성장기!
엔리코 이안니엘로(ENRICO IANNIELLO)
#휘파람부는아이 #휘파람소년 #이르피니아대지진 #실어증 #환상동화 #휘파람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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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이시도로, 원드풀 라이프_엔리코 이안니엘로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는 이탈리아 남부의 조그만 마을 마티넬라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이시도로의 동화같은 성장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바다로 만들어진 타일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집 안에 가로세로 20센티미터의 바다가 있고, 물고기가 그 속을 왔다 갔다 헤엄쳐 다니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한다면 어떨까? 바다로 만들어진 타일이 있다면 30 제곱미터의 바닥이 초록빛 바다가 될 수도 있을 테고, 부엌에서는 발아래로 안녕하세요! 어이, 친구! 하고 인사하며 헤엄치는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시골 마을의 단조로운 일상이라 경우에 따라서는 진부할 수 있지만, 어린 아이인 이시도로의 시점으로 전개되니 한 편의 마법같은 동화 같았다. 이시도로의 상상력이, 휘파람이, 생각이 닿는 장면 하나하나 새로운 것처럼 느껴졌다. 어린아이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매력에 빠졌던 것 같다. 작은 머리를 굴려 가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고, 새로운 의미를 깨달으며 배워가는 아이를 보며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부모가 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세상은 트리스텔리체(슬픈 행복)란다. 이시도로 세상은 네가 좋아하는 놀이와 닮았단다. 놀이터에서 하는 그거 있잖니. 한 사람은 이쪽에, 또 한 사람은 반대쪽에 앉아서 위아래로 왔다 갔다하는 시소 말이야. 네게 조언을 하나, 아니 몇 가지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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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속 희망이 교차되는 휘파람 소년의 성장기,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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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마티넬라를 배경으로 이시도로의 익살스럽고도 동화 같은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구성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눠져 있다. 1부는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이시도로의 순수한 소년 시절을 환상적이고도 유쾌하게 보여주며, 2부는 대지진 이후, 상실을 겪게 된 이시도로가 조금씩 현실과 마주하며 성장하는 이야기가 보여주고 있다. 말보다 더 능숙하게 휘파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소년 이시도로, 매일 욕실에서 사랑의 편지를 쓰는 낭만적인 공산주의자 아빠 퀴리노, 사랑스러운 파스타 장인 엄마 스텔라. 다정하고 행복한 분위기가 가득한 이 가족은 독특한 자신들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이시도로는 특별한 소통 방식을 가지는 동시에, 삶에 대한 여러가지 태도들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습득하게 된 게 아닐까. 이시도로는 태어났을 때 "응애" 대신에 "프리"하고 휘파람부터 불었다. 그때부터 이시도로의 휘파람이라는 독특하고 멋진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알리' 라는 인도 검은 새와 휘파람으로 대화를 자유자재로 나누게 된다. 무려 두 살 배기 아이가 말이다. 이는 그들만의 하나의 '언어' 이며, 휘파람 언어인 '우를라피스키오'를 만들어 낸다. 작품 초반부에 이시도로의 가족을 소개하며 이름 짓기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가 등장한 것은 이시도로에게 붙여질 다양한 이름에 대한 암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평화로운 이 마을에서는 한때 성 따라 이름 짓기가 유행이었고, 그 뜻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익살스럽고, 어처구니 없는 이름투성이다. 이시도로 역시 그런 위험에 처할 뻔 했으나, 다행히 그런 유행이 한차례 지나간 후였고, 후에 불리게 된 다른 이름들은 전혀 우스꽝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런 이름짓기가 유행한다는 자체가 이야기 속 마을의 분위기가 어떠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1부는 전반적으로 이시도로의 가족, 이시도로의 첫사랑 마렐라, 이시도로를 무대 위로 올려 그의 재능을 널리 펼치게 도와주는 칸초네 아저씨, 이시도로에게 폭넓은 가르침으로 표현력을 길러준 프랑스 민속학자 르노 아저씨 등 소박하고도 유쾌한,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평범한 일상 이야기가 이어진다. 때론 떠들썩하게, 때론 고요하게. 1부 이야기 속 분위기는 대체로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부모님의 행복한 결혼식, 마렐라의 갑작스러운 뇌성마비로 인한 헤어짐, 1980년 6월 26일 라체도니아 광장의 기적 등 굵직한 사건들이 중심이 된다. 특히 라체도니아 광장에서 노첼라 아저씨의 연주에 이어 이시도로의 우를라피스키오가 펼쳐진 후, 염려 속에서 관객들에게 혁명적 연설을 하는 이시도로에게, 이 신기한 휘파람으로 노래하며, 말하는 소년에게 사람들은 점점 이끌리게 된다. 소년의 말에 귀 기울이며, 우를라피스키오를 하나 하나 따라해 보는 사람들 마음 속에 <자유롭고, 단결하고, 굳건하라. 주인도 노예도 없다.>는 말이 용기와 희망으로 다가오게 된다. 관객을 하나로 아우르게 한 휘파람 소년의 힘, 용기와 희망을 주는 휘파람 언어를 보며 이시도로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에 대해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1부의 말미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해 부모님을 잃게 된 이시도로는 갑작스러운 상실을 겪으며, 이내 말을 잃게 된다. 아이였지만 마냥 아이 같지만 않던, 애어른 같던 이시도로는 벙어리로 몇 년을 살아가게 되지만, 여전히 휘파람 언어를 나누며 자신의 곁을 지키는, 형제 같은 검은 새 '알리'와 함께 한 단계씩 성장해간다. 2부에서는 마을과 멀리 떨어진 어느 지역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이시도로의 모습이 그려진다. 처음 수도원 생활을 시작할 때 알게 된 간호사 레나타 누나, 가족을 잃은 슬픔에 이시도로와 비슷한 듯 다르게 극복하며 살아가는 장님 엔초 체호프 아저씨 등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치유해가는 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어느 정도 성장하여 수도원을 떠나게 되었을 때, 이시도로는 엔초 아저씨(빈첸초)의 집에 머물게 된다. 이른 아침, 나폴리 길 안내 등 도시 산책을 도우며 지내게 되고, 또 하나의 비밀을 알게 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관계 속에서 이시도로는 좀더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점차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게 된다.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기 시작됐을 때 이시도로에게 뜻밖의 선물과 같은 인연을 만나게 됐음을 알리는 마지막 욕실에서 보내는 사랑의 편지는 읽는 이로 하여금 뭉클하게 했다. 마치 아버지 퀴리노에 이어 아들 이시도로의 사랑이 아름답게 이어지고 것처럼. 자신의 전부와 같은 가족을 잃었지만, 그 상처를 잘 헤아려 볼 줄 알았던 소년의 성장기는 아프지만 온기와 용기를 품고 있다. 솔직하고 투명한 아이의 시선이 당혹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유쾌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이시도로는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마주하며 현실을 알아가고 배워나가게 된다. 아주 어린 소년일 때부터 다정한 부모님으로부터 잃어봐야 알게 되는 것에 대해 듣고 익혔기 때문일까. 그래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 숨처럼, 자연스럽게 내뱉는 말처럼 능숙하게 휘파람 언어를 구사하는 이시도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희망을 전달해줄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넘기 힘든 산 같이 막막한 역경이래도, 누군가에겐 함께함으로써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걸 친히 보여주는 삶을 살아갈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좌절만 남는 상황 속에서 다행히 별 탈 없이 견뎌내고, 천천히 세상 속에 스며드는 삶의 방식을. ** 이 작품은 작가의 첫 작품이자, 여러 권위 있는 상을 수여한 작품이다. 국내 문학과 다르게 외국 문학 작가들은 그 스펙트럼이 넓다 해야 할까,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 같다.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작가로써 활약할 수 있다니. 감탄스럽고 신기하다. 그래서 인지 작품 속 여러 장면들이 마치 화면으로 보여주는 듯 생생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적정선을 지키며 조심히 진행돼갔다. 이시도로가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아픔을 긍정하며, 이겨내가는 끝에 그토록 그리웠던 인연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앞으로의 삶도 잘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가진 특별함은 여러 다른 사람들에게 또다른 위안이 되었을 것만 같다. 1980년도 라체도니아 광장의 기적처럼. 또다른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을까, 하고 내심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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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263 기억해라, 이시도로,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흥얼댈 뿐이고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노래를 부른단다. 』 이 책은 정말 이상한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시간은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울면서 웃고 있었다. 슬퍼서 울었고, 행복하다 느껴서 웃었다. 슬픈데 행복하다니, 두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하다니... 이 책은 정말 이상한 책이다. 이탈리아 반도를 흔히 부츠에 비유하는데, 그 부츠의 복숭아뼈 정도에 위치한 작은 마을 마티넬라에 살고 있는 이시도로는 이제 곧 만 9살이 될 것이다. 노동조합의 대표를 맡고 있는 낭만적인 공산주의자 아빠와, 사랑스러운 파스타 장인 엄마와 늘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는 첫사랑 마렐라도 곁에 있다. 이시도로는 처음 태어나 울음 대신 휘파람을 불었다. 우리가 흔히 입술을 동그랗게 하고 부는 휘파람이 아니라 성대에서 울려 나오는 휘파람, 우를라피스키오를. 이시도로는 이 우를라피키오를 이용하여 새들, 특히 그의 절친인 인도 검은새 알리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이시도로의 우를라피스키오는 이제 마을 전체에 유명해지고 어떤 작은 기적마저 일으키게 된다. 학교에 가고, 아빠와 엄마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알면서 모른 척하며, 첫사랑 마렐라와 바다 여행을 가고, 알리에게 전 세계 이야기를 들으며 이시도로는 그렇게 평범하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성장해 간다. 회자정리라 했던가.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했던가. 아니면 행복에 겨운 이시도로를 신이 시기를 했던가. 이시도로의 가족이 단란한 소풍을 다녀온 어느날, 지진이 마티넬레라를 덮치고 만다.참새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이시도로 앞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폐허가 되어 버린 마을과 부모님의 죽음이었다. 이시도로가 가지고 있던 그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그 지진 후에 이시도로는 이제 말을 잃어 버리고 만다. 열 살... 홀로 남겨진 이시도로는 이제 오로지 우를라피스키오로 알리와만 소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에겐 언제나 그를 이끌어주는 믿음직한 어른들이 있었기에 이시도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그럼으로써 행복해진다. 솔직히 1부에서의 단란하고 단조롭고 행복하기만 한 이시도로의 일상 생활이 한편으론 내 어릴 적을 떠올리게 하여 흐뭇하기도 했지만, 솔 어떤 극적 사건이 등장하지 않아 지루하다고 느끼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소설적 장치였던 걸까? 그런 한없이 행복하기만 한 이시도로의 일상 앞에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크나큰 불행이 닥쳐온다. 그 감당할 수 없는 큰 불행 앞에서 이시도로는 목 놓아 울고, 말을 잃는다. 그런 이시도로가 너무나 안타까워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었지만 새벽에 감성 충만한 나를 울게 한 건 사실 이시도로가 겪은 그 불행이 아니었다. 마을과 집과 부모를 잃고 나폴리에서 살게 된 이시도로는 일련의 여러 사건들을 겪게 되면서 이제 청년이 되는데 여전히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런 이시도로가 다시 말을 찾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 장면이 그렇게 슬펐더랬다. 이시도로가 다시 말을 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그가 성장을 했다는 의미이며 어쩜 그가 겪은 슬픔을 이제 조금은 극복했다는 의미인데... 그런 이시도로가 기특해서... 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말을 되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나야 했다는 점이 그렇게나 안타까워서 울고 말았다. 그게 그렇게 슬픈 장면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섧던지 눈물이 한동안 멈추질 않았다. 어쩜 그것은 역자님이 쓴 표현을 빌리자면, 이시도로와 함께 나 역시 인생의 '슬픈 행복'에 대해서 새삼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시도로는 결국 인생의 아름다움을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찾는다. 그는 이를 두고 기대가 적으면 아름다움이 넘쳐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연말,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 좀 더 겸허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넘치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찾아봐야겠다. 『 p.366 모든 사람은 누구든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충분히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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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는 조카들을 보면서 조금은 안타깝다고 할까. 기쁘면서도 슬픈 생각이 드는건 그 아이들이 점점 자란다는 것이다. 세상은 힘든곳이고 클수록 알아가는 것이지만 알필요도, 알아선 안되는 것들도 많다. 상처도 받고 좌절도 하면서 세상을 배우고 성장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런걸 모르는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고 청춘을 디날수만 있다면 가장 좋은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아이들은 아직 많은 것을 모르고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정직하다. 한꺼풀 더 올려 생각하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순수한 민낯을 보는 눈이 있다. 성장 소설은 그런 순수한 아이들의 이야기이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단순하지만 큰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어른들이 읽어야할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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