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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 잘 생겼다고 하는 것과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하는 단어 자체에 벌써 능동성과 수동성이 콕 박혀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자들에게 지워진 외모라는 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요즘은 남자도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하지만 여자들이 태어나면서 갖는 환경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여자들은 아주 어린 나이에도 여성이라는 이미지 안에 가둬지게 된다. 사회가 만든 틀안에서 여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여자들은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돈과 시간을 사용하고 있고, 그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 위축되기도 한다. 저자는 외모지상주의에 휩쓸려가는 여성들에게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은 여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저자가 만났던 많은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외모가 어떻게 여성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고, 거기에서 빠져나온 여성들의 사례가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어있다.
어린 딸이 당신에게 자신이 예쁘냐고 묻는다면 마치 마룻바닥으로 추락하는 와인잔 같이 당신의 마음은 산산조각 나겠지. 당신은 마음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거야. 당연히 예쁘지, 우리 딸, 물어볼 필요도 없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톱을 치켜세운 한편으로는 그래 당신은 딸아이의 양어깨를 붙들고서는 심연과도 같은 딸아이의 눈 속을 들여다보고는 메아리가 되돌아올 때까지 들여다보고는 그러고는 말하겠지 예쁠 필요 없단다. 예뻐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그건 네 의무가 아니란다.
저자는 위의 케이틀린 시엘의 시를 인용하면서 여성들이 예뻐지려고 노력하고, 예쁘다는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것을 외모 강박이라고 보았다. 아름다움 자체를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분위기 안에서 외모에 무관심하기란 쉽지 않다. 알게 모르게 여성들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한다. 능력을 발휘해야 할 열정이 외모를 치장하는데 쓰이고 있으며 여기에 각종 미디어들은 비현실적인 외모를 설정해놓고 여성들을 그쪽으로 내몰고 있다.
저자는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디어 리터러시 (방송, 신문, 인터넷 등에 나오는 정보를 판단하고 평가해 그것을 이용하는 능력)를 제안한다. 미디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비판하면서 외모보다 중요한 내면의 가치에 눈을 돌리라는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 그 효과가 잘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교육의 의미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결코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데 있다. 그러나 사회와 문화 깊숙이 파고 든 외모 지상주의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수많은 인텨뷰 중에서 에이미의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고도비만에 속한 에이미는 타인의 시선에 함몰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에이미는 비만이어서 하지 못할 것 같은 등산을 용기를 내어 하게 되었고, 이후 그는 산을 즐기는 등산가가 되었다. 사십 대의 에이미는 여전히 비만이지만 그것 때문에 부끄럽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살을 빼지 않고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내는 에이미의 인터뷰는 외모 강박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여성은 일생동안 외모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저자는 제안한다. 여성 스스로 거울 앞을 떠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는다면 훨씬 더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외모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조목조목 말해주는 이 책이 아주 유용하다. 또 여성은 먼저 예뻐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자체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주는 것인지 이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외모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는 이 책은 누구에게나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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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너무 최고로 좋았다. 이런 책을 이제야 읽다니. 근거를 제시하며 (행동과학적 접근)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의 책을 참 좋아한다. 요즘 특히 행동과학이 유행하고, 행동과학적 접근이 설득력이 높다. 나는 내 석사논문 마저도 행동과학자 타일러의 넛지 전략을 언급하였다는 사실과, 올해 초에 <해빗>을 읽으면서 행동과학에 반감이 들고 인식론적 접근이 더 좋았던 것때문에 혼란스럽다. 이원론적 생각보다 상호보완 또는 비율을 달리하여 수용하는 쪽이 나은 것이겠지만, 사람의 행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세심한 실험 설계와 결과 해석에 있어서 행동과학은 매우 명쾌하다. 여성을 대상화하고 외모강박으로 인해 여성들이 겪어온 피해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준다. 무엇보다도 외모지상주의는 이제 외모강박(성형, 과도한 다이어트,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을 초래)이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린이와 남성에게도 피해를 주는 지경까지 초래했다. 결국 모두 피해자가 되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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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읽고 고개를 몇번이나 끄덕였는지 모른다. 고작 15글자로 이루어진 한 문장이 여성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나의 딸이 거울앞에서 고민하며 보낼 시간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진다. 무엇을 하든, 어떤 지위에 있든, 나이가 많든 적든 결국엔 몸으로 환원되는 여성의 삶. 그런 삶을 아이가 경험해야 하는게 두렵다. 여성에게 외모는권력이고 힘이 된다는 말, 누구도 너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말이 싫다. 미용산업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 하나만 생각하더라도 여성에게 있어 외모는 결코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 취급될 수 없다. '선택'이라는 말은 교묘한 속임 수 일 뿐이다. 1910~1940년대 전시체제 에서는 여성 운동선수들의 강인함이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이미지 였다고 한다. 전쟁에 나간 남성들을 대신해 여성들의 노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세상은 다시 수동적 여성의 이미지를 이용해 일터에 있던 수백만 여성을 집으로 돌려 보냈다. 여성노동자의 빈자리는 다시 남성들로 채워졌다. 집으로 돌아간 여성들의 삶은 어떠 했을까.. 오늘날 사회가 요구하는 예쁨은 하나하나 늘어놓을 수 없을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미디어와 sns는 끊임없이 여성의 외모에 대해 떠들어댄다.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아이들의 화장은 단순한 놀이가 아닌 문화가 되었고, 유아들까지 뷰티산업의 고객이 되었다. 나는 이런세상이 싫고 불편하다. 내가 경험하고 살아온 것보다 더 많은 방식으로 끊임없이 평가되어질 내 딸의 삶이 벌써부터 나를 두렵게 한다. 외모를 중심으로 억압되었던 내 삶을 아이가 닮을까 불안하다. 화장을하고 예쁜옷을 입으면 마치 나의 본질이 바뀔 수 있을거란 어리석은 생각을 나의 딸도 똑같이 하게될까 겁이난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거짓된 이미지에 속아 자신의 몸을 가치없게 여길까봐,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낼까봐 겁이난다. 물론 이런 두려움은 나의 노력으로 일정부분 상쇄시킬 수 있다. 예를들면 여성의 삶에 관한 책을 읽고 고민하는것, 그리고 아이와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될 수 있다면 외모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 아이에도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된 책을 읽게 하는 것..등등 그러나 매 순간 세상은 너무나 뻔뻔하게 '선택'이라는 단어로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요구하고, 우리중 많은 이들이 이러한 억압을 '자기만족' 이라는 말로 바꿔 내면화 한다. 왜곡된 여성성을 어느정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게된 지금의 나도 '예쁨'이라는 달콤한 말 앞에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면 평생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거울앞에서 좀더 무던해 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좀더 건강한 사람이 되고싶다. 외모가 아닌 내가 하는 일로,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로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 사는것에 좀더 중점을 두고 싶다. 나는 딸 하나 아들 셋을 키우는 엄마가 아니라 그냥 사람 넷을 키우는 엄마로 그렇게 살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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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여남 할 것 없이 모두 읽어야하는 필독서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나는 여성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싶다.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울 앞에서 보냈는지, 얼마나 많은 돈을 클렌징 티슈 한장이면 사라질 외모에 치장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지않았더라면 나는 30년 뒤 옷장이 가득찬 거지할머니가 되었을지 모른다. 모두에게 권장하고싶다. 탈코르셋을 시작한 20대에게도, 탈코르셋을 접하지 않은 10대에게도. |
| 탈코르셋을 하던 중 본 이 책은 내 탈코르셋 행위에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여성은 지나치게 아름다움을 강요받아왔고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으로써 모르는 타인을 상처주기도 타인에게 상처받기도 한다. 이 책을 읽기 전 내 신체적 능력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음을 깨달았고 분통했다. 지나친 다이어트로 몸을 망가트리면서 거울 앞에 비친 모습에만 집중해왔기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여성이 나와 같지 않았을까. 아름다울 필요없다. 예쁠 필요없다.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치장하고 허비되는 시간들을 자기 만족이라고 말했던 내가 부끄럽다. 앞으로 그 시간들을 좀 더 나 자신, 내면을 바라보고 개발하며 행복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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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수업에서 “집 밖에 나가기엔 너무 못생긴” 기분이라 그날 수업에 결석할 수밖에 없었다는 학생의 고백 그리고 그 말에 공감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 만약 이렇게 더 갸날프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투자하는 모든 비용을 여성들이 자신의 공부, 일, 건강을 위해 투자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발전했을지 상상하게 해준 것. 여성을 여성으로 보이게하는 긴머리와 화장 그리고 복장을 바꾸었더니 더이상 캣콜(or 시선폭력, 시선강간)을 겪지 않았다는 여성의 에피소드를 알려준 것. 이걸 인지하고 같은 입장에 처해있는 여성들과 감상을 공유하는 경험이 나의 사고를 바꾸었다. 흔히 말하는 외모 코르셋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다. 사회에서 가해지는 압박이 워낙 강력하기에 한번에 모든걸 벗을수는 없다. 하지만 천천히 조금씩 화장품을 하나씩 줄여보고, 외출준비시간을 줄이고 나 자신에게 투자하면서 주위 여성들에게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걸 알려주는 일이 멀리보면 세상을 바꾸는 페미니즘이기도 하다는걸 깨닫고 배워가고 있다. 정말로 여성이라면 한번쯤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이제 화장을 하지 않아도, 좀더 살이 쪄도 스트레스를 덜받고 자기발전을 위한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 이런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알려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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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유치원 학예회날. 그 날의 의상은 흰색 스타킹이었다. 그날이 처음으로 아들에게 스타킹을 신기는 날이었다. 스타킹을 신자마자 조이고 답답하고 불편하고 간지럽다며 벗고싶다고 말하는 아들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조금 충격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답답하고 불편한 것을 여아들은 거의 매일같이 입고 생활한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치마를 입으면 다리를 벌리고 앉거나 발차기를 한다거나 모든 동작에서 제약이 있다. 그리고 여아들 의상에만 존재하는 레이스, 프릴, 과한 장식들 때문에 식사나 놀이할 때 여아들은 남아들보다 신경써야 할 것이 많다. 나 또한 그렇게 컸고 사춘기를 거치며 스트레스는 더 커졌다.나의 몸을 옭죄고 내 행동에 제약을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학생이라는 신분때문에 제대로 항의를 해볼수도 없었다. 그런데 더 짜증나는 사실은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으로는 학습이 되어버린거다. '이런 옷을 입고 싶다'가 아니라 '이런 옷을 입으면 남자한테 이런 식으로 보일테니 입지말아야 겠다'라든지 내가 어떤 것을 하려고 할 때 내가 먼저 감시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불편했던 치마교복. 짜증나는 스타킹 느낌, 남녀공학에서 겪던 또래 남자아이들의 얼평,몸평,성희롱, 선생한테 당하던 성희롱, 길거리 지날때 받던 캣콜,변태 바바리남... 임신 출산을 거쳐 엄마가 되고 자녀 양육을 하는, 명백한 아줌마 신분이 되면 외모 강박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웬걸. 이 세계는 또 이 세계만의 미의 기준이 있었고 나 나름대로는 이것에 저항하고자 화장도 안하고 티셔츠에 바치 입고 편하게 다니는데 이런 나도 외모 압박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다. 언제 어딜가나 여자의 외모가 평가되고 어떤 태도를 대변한다고까지 여겨지는 이 사회적 분위기가 광기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책들을 읽고 눈을 뜨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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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며 내 외모에 대해 생각하던 최초의 시기를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는 그러지 않았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거나 흙장난을 하거나 학원에 가거나 재밌게 책을 읽던 순간은 기억하지만, 거울을 보던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거울 속의 내 외모가 나 자신의 눈에 띄기 시작한 때는 중학생 무렵이었다. 거울에 비춰 외모를 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내 외모를 본다는 뜻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사회적 기준으로 대상화하기 시작했다.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삶은 좀 더 낭비되고, 떨쳐내기 힘든 족쇄를 달고 살게 되었다. 내 외모가 누군가에 비해서 잘났는지 못났는지, 내 신체의 어떤 부분이 아름답거나 추한지 평가하는 내부의 심판관 말이다. 아름다움의 자기 심판에서 때때로 승리한다고 해도 나는 기쁠 수가 없었다. 세상은 한 부위의 패배를 전체의 패배로 규정했다.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뚱뚱하면 소용이 없어. 아무리 몸매가 예뻐도 피부가 안 좋으면 말짱 헛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에 심판관이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드물게 누군가가 전승한다 해도 그에게는 나이라는 장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예뻐도 나이는 못 이기네, 라는 식으로. 외모 대상화는 패배할 수밖에 없도록 짜인 구조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굳건하며 오래된 구조. 그 구조를 여성이 사회 변방에서 외모에만 신경쓰며 살기를 바라는 쪽에서 만들고 유지해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사회경제정치적 권리에서 여성을 배제시킴으로써 여성이 외모 이외의 자원을 갖지 못하도록 차단시켰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저자는 '그들'에 관해 적극적으로 토로하지는 않는다. 책 대부분이 여성들의 생각과 행동, 반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이야기한다. 외모에 신경쓰다가 사회에 관여할 힘을 잃을 수도 있다고. 사회를 바꾸려면, 개인을 강압하는 거대구조에 맞서려면 외모에 낭비되는 힘을 아껴서 비축해야 한다고. '우리는 거울 앞에서 한 발짝 물러설 필요가 있다. 치마가 잘 맞는지, 머리스타일이 괜찮은지 걱정하느라 산만해지면 회의실을 장악하지 못한다. 체중이 몇 킬로그램 늘었다고 해서 스스로 가치 없다고 여긴다면 권력 구조에 도전할 수 없다. 외모 강박에 시달릴 떄 우리의 배터리는 방전 상태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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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노동에 관해서 이야기한 책이었다. 읽으면서 외국인이 쓴거라 외국여성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하고 그래서 문화가 다른데 뭔가 좀 공감은 안되지 않을까 생각했던것도 잠시, 내가 고민했던것들, 내가 어렸을때부터 생각해본 것들을 똑같이 하고있는 여성들의 인터뷰와 이야기가 너무 공감이 되었다. 더불어 좀 억울했다. 내가 다이어트걱정, 피부걱정하면서 집중하지 못했던 공부와 일들이 생각났고 화장을 해야한다고 일찍 일어났던것들, 중요한 일이 있을때 화장도 공들여 했었는데 그시간에 차라리 일을 한번더 생각했으면 좋았을걸 일 외에 다른것에 집중한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졌다. 책에서 이걸 짚어주기전까지 정말 당연하게 하고있었던거라 이상하게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걸 모아놓고 글로 읽고보니 너무 이상했다. 문화권이 다른데도 같은 여성이라는이유로 외국인여성들의 사연과 고민이 공감이 안되는게 없었다. 그중에는 나도 분명히 했었던 고민들이 있다는게 너무 놀라웠다. 이책을 읽고나니 내가 손해보는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졌다. 같은시간인데 똑같이주어지는시간에 다른것에 신경쓰느라 내 일에 집중을 못하고 내가 즐거운시간을 놓친다면 너무너무 억울할것같다. 그걸 몰랐을땐 모르지만, 알았으니 충분히 다른것들에 허비하는시간을 줄여나갈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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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라는 데에 이견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너무나도 쉽게 외모강박에 이르는 상황에 처해있다. 당장 아이들이 보는 디즈니 만화영화만 하더라도 여주인공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약속이나 한듯 큰 눈과 가녀린 몸매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남성 캐릭터들은 최근 만화, 드라마, 영화 등에서 다양한 외적인 모습을 가지고 주인공으로 등장했는데, 슬프게도 이런 여성 캐릭터는 2019년이 되어서야 등장했다. - 캡틴 마블은 불필요한 치장이나 몸매를 부각하는 옷을 입지 않고도 그 자체로서 강인함을 드러냈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아이의 피부에는 절대 흉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부터 모름지기 여자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말들은 어느새 여성의 가치를 정하는 기준으로 존재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들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더 야박하게,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혈색이 없어 아파보인다며 걱정인 척 쉽게 지적하고, 살이 조금이라도 찌면 나서서 다이어트를 권하기도 한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 인터뷰 대상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외모강박이 여성의 외모 강박에 미치는 영향들을 소개한다. (근거 내용으로는 다양한 연구와 논문, 서적들을 통해 뒷받침된다.) 또한 여성들이 외모강박을 얻거나 더 강화하게 되는 출처(주로 미디어, SNS)에 대해 다루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다룬다. 아래는 책 내용의 요약과 일부 인용 외모강박은 여성의 자존감을 떨어트리고, 스스로의 신체를 학대하도록 만든다. 우리의 문화는 대중매체, 광고 등을 통해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표준을 끊임없이 여성에게 주입하기 때문에, 여성은 그 표준과 자신의 신체를 비교하고 평가하여 끝내 혐오에 이르게 된다. 동시에 과도한 다이어트 혹은 성형수술 등으로 몸을 학대하게 되는 것이다. 신체 혐오(및 뚱뚱함에 대한 수치심)는 다이어트 계획이 될 수 없다. 미디어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모부의 생각과 태도 역시 중요하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서는 말보다 행동이 더 큰 문제가 된다. 딸은 어머니의 행동을 재빠르게 모방한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와 워싱턴대학교 연구팀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어머니가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 딸은 몸무게와는 상관없이 11세 이전에 다이어트를시작할 가능성이 높았다. 여성이 지니는 아름다움의 권력보다도 신체적 기능 또는 여아가 지닌 야망(삶의 목표)에 초점을 맞추게 함으로써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도록 하는 방법은 여아를 외모강박에서 자유롭게 자라나게 한다. 이러한 방법은 외모강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여성은 외모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쓰느라 정작 해야할 일을 할 에너지는 모자란다. 우리는 거울 앞에서 한 발짝 물러설 필요가 있다. 치마가 잘 맞는지, 머리 스타일이 괜찮은지 걱정하느라 산만해지면 회의실을 장악할 수 없다. 체중이 몇 킬로그램 늘었다고 해서 스스로 가치 없다고 느낀다면 권력 구조에 도전할 수 없다. 못생기고 존재감이 없다는 느낌에 내면이 무너진다면 무엇이 옳은지 옹호하기가 쉽지 않다. 외모 강박에 시달릴 때 우리의 배터리는 방전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