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6년 12월은 소세키(漱石)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되는 유의미한 시기였다. 소세키 1주기(週忌)의 1917년 12월, 이와나미 서점(岩波書店)의 창립자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의 발기(發起)로 모인 ‘소세키 전집 간행회’가 소세키 전집(漱石全集)을 이와나미 서점 출판으로 처음 간행하기 시작했다.(전 13권) 이후 여러 번 개정을 거듭하면서 현재까지 이와나미 서점 명의로 소세키 전집이 출간되었다. 소세키 사후 100년이 되던 2016년 12월, 이와나미 서점에서 ‘정본(定本) 타이틀을 내건 정본 소세키 전집(定本 漱石全集)을 간행하기 시작하였다.(전28권·별책1권) 권 당 평균 688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으로, 책값 평균 4,200엔~5,500엔 수준의 결코 적지 않은 금액. 매 달 한 권씩 출간하는 속도로 볼 때, 늦어도 2019년 봄까지는 완간 될 것으로 본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책을 사려거든 이와나미 서점(岩波書店)의 것을 사야한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소세키가 숨을 거둔 소세키 산방(漱石山房) 자리에는 씨의 흉상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공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남아, 여기가 지난날 소세키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속 써 내려간 소세키 산방 자리였음을 말하고 있었다. 2017년은 소세키가 태어난 지 1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면서, 소세키가 이곳에 소세키 산방이라 이름 붙이고 살기 시작한 1907년 9월로부터 딱 110년이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2017년 9월, 공원 부지에 행정구역인 신주쿠(新宿) 구립 소세키 산방 기념관(漱石山房記念館)이 신축, 개관하는 일이 있었다. 개관 한 달 만에 방문객 1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도 세웠다. 일본인들의 소세키에 대한 관심은 실로 엄청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1월 30일에는 방문객 2만 명을 돌파하였다.) 소세키 전집 ‘정본(定本)’이 갖는 특별한 의미 소세키(漱石)가 숨을 거둔 1주기(週忌)인 1917년 12월 9일, 이와나미 서점(岩波書店)의 창립자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의 주도로 최초의 소세키 전집(漱石全集)이 처음 간행되었다. 첫 전집 간행으로부터 100년. 2017년 현재, 이와나미 서점에서 ‘최종 결정판’이라고 소구(訴求)하고 있는 ‘정본(定本)’ 소세키 전집은 무엇인가. 우선 정본이 무엇인지 알아두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정본’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일 두 나라의 사전을 불러 모았는바, 하나는 우리나라 유일의 이렇다 할 사전의 명맥을 근근이 이어오는 민중서림의 《엣센스 국어사전[특장판]》이라 밝히고, 또 하나는 저 열도의 가정상비약 마냥 가가호호 구비하고 있는 백과사전. 최근 10년 만의 개정판(6판☞7판) 출시(2018.1.12.)에 앞서 특설 홈페이지까지 만들어놓고 열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이와나미 서점의《코지엔[広辭苑]》. 두 나라 사전 업계와 시장의 분위기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정본(定本)에 대한 두 사전의 정의를 내보이기로 한다. “고전의 이본(異本)을 비교·검토·교정하여 원본과 가장 가깝다고 판단된, 표준이 되는 책.” 《엣센스 국어사전[특장판]》(민중서림, 2015) “① 서로 다른 책을 교합(校合)하여 오류·탈락 등을 검토·교정한 뒤, 그 문서의 표준이 되도록 본문을 정한 글. ② 저자가 손 본, 손질한 결정판.” 《코지엔[広辭苑]》(岩波書店, 2015) 두 사전의 정의는 대동소이하게 보이면서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공통된 것을 정리한다면 ‘서로 다른 책을 교정하여 표준화하는 것’ 정도의 의미로 상통(相通)한다. 기존 간행된 소세키 전집을 추려서 유의미한 사후 100년, 탄생 150년의 시기에 맞추어 ‘정본’으로서 간행하기 시작한 것이리라. 첫 전집 간행으로부터 일본의 왕 연호(年号)로 따져 본다면 다이쇼(大正), 쇼와(昭和), 헤이세이(平成)에 이르기까지 몇 번씩이나 전집이 권수를 달리하여 출간되었던 것. 그때마다 줄곳 제목은 소세키 전집(漱石全集)이었다. 소세키 사후 100년, 탄생 150년을 맞아 간행되기 시작한 ‘정본’ 소세키 전집의 간행 취지의 글을 요약해보도록 한다. 첫 소세키 전집은 1917년 12월 9일 간행을 개시했다는 것, 그 전집에는 ‘후세에 선생의 문학이 고전(古典)이 될 때, 많은 책들 중 유일하게 정본으로써 이 전집이 선택되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쓰여 있었다는 것, 이후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요청에 응하면서 소세키 전집(漱石全集)을 거듭하여 간행해 왔다는 것, 1993년 간행된 소세키 전집은 자필원고를 기초로 하는 방침을 세워 큰 반향을 얻었다는 것, 그리고 2002년 2차 간행 이후에 발견된 새로운 자료와 지식, 견해를 기준으로 주해(註解)를 늘려 「정본 소세키 전집(定本 漱石全集)」을 내게 됐다는 것. (岩波書店, <刊行にあって>《定本漱石全集內容案內》, 2016, 2면에서 요약, 발췌.) 100년 전 처음 전집을 낼 때, 정본(定本)으로 선택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믿었던 것. 그리고 100년 뒤 오늘, 전집을 고치길 거듭하며 나온 ‘정본’소세키 전집이 간행되고 있다는 것. 이는 실로 소세키 전집 100년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로 남게 될 것이다.
문학론은 나쓰메 소세키(1867~1916)가 도쿄 제국 대학 문과대학에서 영문학 작품 강독과 병행한 「영문학 개설」 강의를 기초로 한 것이다. 이는 1903년 9월부터 1905년 6월까지의 강의에 해당한다. 소세키는 문학론이라는 책을 내기 위해서 강의 원고에 대한 교정작업을 제자인 나카가와 요시타로(中川芳太郞)에게 의뢰하게 된다. 그러나 교정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마지막 3분의 1은 소세키가 스스로 고치게 된다. 그리하여 1907년에 오쿠라 서점(大倉書店)에서 문학론이 처음 간행되었다. 소세키의 문학론이 가지는 의미는 일본인 영문학 강사가 제국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영문학을 중심으로 문학을 가르쳤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세키의 문학론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정본 소세키 전집』 제14권 말미의 후기 719페이지에 실려 있다. 그 내용을 보이면 아래와 같다. 『문학론』의 원고는 본 책에도 수록한 나카가와 요시타로(中川芳太郞)의 『문학론』 서문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나카가와가 강의록으로 베껴 쓴 것에 소세키가 빨간 글씨로 가필·정정한 것이다. 소세키의 교정은 처음엔 미미했으나 분량을 늘림에 따라 제4편 5장부터는 소세키가 집필하게 되었다. 원고는 양장본 두 책으로 보존되어 현재는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에 소장되어 있다.
어찌하여 문학론에 '운동 법칙'(뉴턴의)이 나오고 과학자가 나오며 초자연이 나올 수 있는가. 문학은 과학 없이 설명될 수 있는가. 문학은 또한 수학 공식처럼 수식으로 규정될 수 있는가. 여기 소세키의 고민과 생각이 담긴, 그야말로 이 장대한 『문학론』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수식이 있다. 그 수식을 아래에 보이도록 한다.
( F + f )
요컨대 소세키는 "문학적 내용은 인식(認識)의 초점을 이루는 인상(印象)이나 관념(觀念) 뿐만 아니라 거기에 따르는 정서(情緖)까지도 종합한 것이다."(亀井俊介, 2017) 말하자면 어떤 관념과 정서가 만나 문학을 구성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기조로 하여 문학이 성립된다는 것. 형식에 대한 본문은 다음과 같다.
문학적 내용의 형식은 (F+f)라고 요약할 수 있다. F는 초점적 인상 또는 관념을 의미하며, f는 그에 따르는 정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공식은 인상 또는 관념의 두 가지 부분. 즉 인식적 요소(F)와 정서적 요소(f)의 결합을 보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인상 및 관념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夏目金之助, 「文学論」, 『定本 漱石全集』, 第 14巻, 岩波書店, 2017. pp27~28.에서 인용.
F와 f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이미 「문학론」 본문에 넘쳐난다. 이 수식의 폭넓은 설명과 더불어 '(F+f)'라는 간단명료한 공식만 알면 문학론이라는 이 책과 문학에 대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이는 매우 크나큰 오산이었다. 소세키의 문학론을 앞에 두고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패닉과 당혹감에 빠지고야 말았다. 첫째는 가나(仮名) 사용. 소세키의 「문학론」 외에도 100여 년 전 활동했던 씨의 특징 상, 옛 가나의 사용은 전후 현대의 일어를 학습한 외국인 사용자에 있어 제법 큰 골치인 것. 히라가나를 '平仮名'이라 표현하고, 가타가나를 '片仮名'이라 표현하는 한자뿐인 어체 표기의 책에다 대고 일일이 첨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접속사에 있어서의 옛 가나 표현은 더욱 해석을 힘들게 했다. 또한 둘째로 옛 어투. 현대 일본어 학습을 토대로 온전히 100여 년 전 일본어투를 동일하게 바라보기는 힘든 구석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것. 세 번째로는 소세키의 문학론이 영문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영어로 된 원문의 인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문학론 자체가 영문학 강의록인 특징으로 문학론 원문에 영어 원문의 인용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영어 원문이 책 말미에 실린 주해(註解)에 일어로 번역이 돼 있는 바, 여기에서 왔다. 영어 원문이 일어로 번역돼있고, 그걸 다시 한국말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영어 표현이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되어 버티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영어란 담쌓고 살던, 일정의 영어 자격을 갖춰야만 박사 학위 취득 요건이 되는 국내 대학원을 애써 마다하고, 일본의 대학원으로 가려는 군의 입장에서 이른바 화역(和譯) 된 영문장이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언덕으로 자리하고 있음에도 모국어와의 간극은 피해 나갈 수 없었던 것. 모든 사전을 뒤적이고 쪽 메모를 하면서까지 일은 복잡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