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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 출간 제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계속 글을 쓰고 계셔서인지 한국에서도 계속 그의 책을 번역 출간하고 있다. 몰랐던 사이 탐나는 책들이 나왔기에 이 책과 "곤란한 결혼"을 빌렸다. 너무 열심히는 살지 않는 삶에 대한 담론이 요즘 유행이라 그런지 이 책 제목도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 있게 다가갈 듯하다. 책 서두에는 너무 참고 살면 꼰대가 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매우 설득력 있다.
사실 책 전체가 '다른 삶'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우치다 타츠루가 "어른 없는 사회" 등 전작에서 주장해오던 맥락을 이 책도 따라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을 존경하고 지난 일본 배움의 공동체 탐방 때 직접 뵈면서 더 좋아졌지만, 어른 세대 특유 '옛 제도에도 좋은 점이 있었어, 그걸 잃어버리면 안 돼'라는 맥락으로 할아버지(실제로 나이도 할아버지다, 무라카미 하루키 옹과 동시대인)처럼 이야기하시는 점에서 왜 그렇게 주장하시는지 이해는 하면서도 심정적으로 '응?' 싶을 때가 좀 있다. 이런 맥락은 여기서도 이어져 안 그래도 한창 '페미니즘' 담론이 활발한 요즘인데 거꾸로 '~다움'도 필요하다거나 (핵)가족이 괴물을 만들고 있으므로 레비스트로스가 주장한 듯한 친족 관계 가족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인상 깊었다. 그는 생존을 위한 생물학적 본능에 의하면 '~다움'을 기준으로 확실히 구분을 지어야 종의 생존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여성성, 남성성이 사라지고 여러 구분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은 생존에 불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혼은 일종의 계약이라 평생 서로의 사랑을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안정감이 있는데, 최근 사랑만으로 가족을 유지하고자 하는 가치관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불안감이 커져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했단다. 핵가족이 사는 집은 타인이 공존하는 공적 공간이 아예 없는 완전 사적 공간, 너무 편안한 공간이다보니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 옛 제도나 문화에서 꼭 그런 이유라고 명확히 밝히지는 않아도 유지되어오던 부분들이 사라지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다. 옛 제도에 문제도 많지만 당장 없애면 그 제도에 한이 맺혀 인류에게 더 안 좋은 작용을 할 위험이 있으므로 천천히 달래가며 없애자고 주장한다.
저자가 무술 도장이자 공동체 공부 및 생활 공간인 '개풍관'을 운영하고 계시다보니 이 책 절반은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목이 가리키는 힘 빼기는 오히려 그가 평소 주장하는 특유의 신체론 때문에 붙었던가보다. 옛날 무도인들은 몸에 관심을 가지고 잘 쓰는 법을 알았다고 한다.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에서 헬레니즘 로마 사람들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써 있어서 기억하고 있는데, 우치다 타츠루는 옛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가 점하고 있는 시공간 위치를 새가 조감하듯이 조망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그런 능력을 잃어버렸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등에 소중한 가문의 문장을 새기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등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고 한다. 일본 학교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단체로 앉아 있을 때 마치 스스로 몸을 묶듯이 무릎을 세워 끌어안고 앉아 있도록 훈육하는데, 정좌에 비해 그런 자세는 몸과 마음에 너무 좋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저자 특유 신체론이 책 내내 이어지고 있다.
추천사를 써 주신 분 말씀에 공감했는데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 책을 읽고 있으면 뭔가 수다스러운 논의에 정신을 못 차리고 즐겁게 따라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 부분만 떼어서 읽으면 '엥? 무슨 할아버지 같은 철 지난 이야기야?' 싶을 수도 있는데 그의 책을 계속 읽어가다보면 어떤 맥락에서 그렇게 주장하는지 납득이 가기도 한다. 그가 평소 교육이나 배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는 만큼 기회 되는 대로 계속 그의 저작을 찾아 읽어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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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의 힘을 빼자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책을 접하기전까지 우치다 타츠루란 분에 대해 알지 못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이 분의 책을 하나씩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진정한 나를 향한 나란 무엇인가. 철학적 통찰을 안할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책입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지 못하고 사회에 속하게 됩니다. 그로인해 나란 존재보다는 나를 보는 시선을 더 신경쓰게 되는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무리해서라도 인정 받으려하고, 무리해서라도 나를 좋게 만드려고 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책속에 책을 만나 다시금 제가 좋아했던 작가를 볼 수 있었네요. 정체성에 대한 고찰과 지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참 많은 것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우치다 타츠루님의 팬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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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객관화 해서 바라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아.", "성숙한 인격 여부는 인간관계에서의 회복 탄력성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해." 책을 읽다 군대 시절 내무실 고참과 담배 피우며 나눈 말들이 떠올랐다. 빡빡한 일상에서도 곧잘 경박한 농담으로 웃음을 주던 그는 때로 그 농 속에 철학책에서나 나올 것 같은 질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무려 툭 던지곤 했다. 이번 책을 읽으며 우치다 타츠루의 문장 속에서 왠지 그의 낄낄거림을 듣는 것 같은 기시감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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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기를 소모하는 시대다.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자신과 잘 맞지도 않은 일들과 자신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 사람들과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 결국, 모두가 불행한 시대에 우리는 처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불행의 와중에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더더욱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종의 경쟁중심 사회에 처한 것이 현대사회의 우리이기에 우리는 매일매일을 전쟁과 같이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책 <힘만 조금 뺐을 뿐인데>의 주요 논제이다. 이 책은 서두에 언급한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를 다룬다. 내가 자신을 지킨다는 표현을 쓴 것은 우리 사회가 소모적이기도 하거니와 매일매일 개개인이 자신을 잃어가는 사회라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위적 노력을 가해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언젠가 자신이 누구였는지, 어떤 개성을 가졌는지, 궁극적으로 자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결국에는 이 책이 말하는 것처럼 조금은 힘을 빼고, 사회를 관망할 수 있는 지혜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한 발 떨어져야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한발 떨어진다는 것은 액면 그대로 복잡한 사회 현상에서 한 발 물러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만큼 많은 일들에 개입을 하며 산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 많은 것을 살펴야 하고, 또 이 상황 속에서 나의 역할을 찾아 스스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과도하게 힘을 주고 산다.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서 ‘오늘도 파이팅’을 외치며 나가는 이들은 결국에는 자신이 소모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과 같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적절하게 지적하며,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내에서 이미 유명한 철학자이다. 이런 철학자가 현대 사회를 분석하고 우리가 조금은 힘을 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사회 분석론적인 측면에서 결코 가벼운 조언이 아니다.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을 정확하게 짚고 들어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는 책이기에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그 단상을 한 번 나눠보면 좋겠다. 틀림없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이다. 일독을 권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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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 지성이라 불리는 우치다 타츠루가 들려주는 일상인문 에세이, 일본에서 가장 신뢰받는 철학자의 힘빼기 인생론을 통해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을 알 수 있다니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 불쾌한 인간관계를 참는 것을 능력이라고 믿는 태도가 가장 위험하다는 말에 머릿 속이 두둥~ 시간도, 에너지도, 애정도, 논리적 사고력도, 상상력도, 모든 자원이 깡그리 참는 것에 탕진된다는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불쾌한 인간관계를 견디는 것은 인간이 받는 정신적 타격 가운데 가장 파괴적인 요인이므로 그런 관계라면 가능한 한 빨리 도망쳐야 한다는 말이 참 와닿았다. 회사에서 상사의 욕설을 견디고, 부하의 막말을 참고, 클라이언트의 안하무인도 참고, 만원 전철을 타야 하는 장거리 출퇴근을 참고, 무뚝뚝한 아내의 얼굴을 참고, 아이들의 침묵이 주는 경멸을 참고, 거액의 대출금을 참고, 닳아버린 양복 팔꿈치를 참고, 온몸이 인내로 둘러싸인 이들이 중년의 꼰대가 된다는 말이 참 서글펐다.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불쾌한 인간관계를 견디고 있는 자신을 허용했든가 아니면 자랑스러워했던가, 어쨌든 인정해버려서 불쾌함을 견디는 것을 자신의 그릇이 크다라고 착각하고 인간적 성숙의 증거라고 자기합리화해서 꼰대가 되었다는 말... 사실은 불쾌한 인간관계의 원인이 자기 자신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불쾌한 인간관계를 견디는 스스로를 한 번이라도 합리화하고 그런 방식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반복적으로 불쾌한 인간관계를 견디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는 말은 소름이 돋으면서 새겨들어야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강하지만 약하고 노력할 수 있지만 노력한 만큼 지치기 마련이다. 무리해서 미리 당겨쓴 에너지는 훗날 반드시 갚아야 할 때가 오므로 어깨에 힘을 조금 빼고 등을 빳빳하게 펴고 몸의 센서를 켜서 신체 감수성을 높여 자신의 몸이 말하는 소리를 들으라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불쾌한 인간관계를 피하고 예의와 매뉴얼로 자신을 지키는 법에 설득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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