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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원제인 Les Catilinaires 는 프랑스어로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 / In Catilinam]편들을 가리키며 보통 명사화하여 [논박], [야유]등을 뜻하기도 한다.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를 이름으로만 듣다가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접했다. 일전에 읽은 [눈표범]의 작가 실뱅 떼송의 글을 읽어가면서 나랑 비슷한 연배라는 점이 눈에 띄었는데 아멜리 노통브 역시 비슷한 연배이다. 공간은 다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 나는 이 멋진 사람들의 호흡과 생각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차츰 노통브의 소설들을 다 읽어갈 생각이다. 역자인 김남주 님의 매끄러운 번역은 또 하나의 반전이다. 번역은 반역이라고도 하고 문학의 손길이 아닌 기술적인 장인의 역할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그 말은 모순이고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다. 김남주님의 번역은 물흐르듯 매끄러워서 글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의 에세이 [나의 프랑스식 서재]에서 보았듯이 문학적인 충실성이야말로 역자가 지닌 기품있는 소양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의 첫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 첫문장의 의미는 맨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는 사실을 미리 말해둔다. 나는 이 말이 너무도 적격하고 명확하며 누구나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철학적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동화로 시작해서 스릴러로 진행되다가 블랙코미디로 착각할 수 있는 지점을 통과하게 되면 바로 위 첫문장으로 귀결된다. 길들여진 자아와 본능적인 자아가 자리 바꿈을 하며 타자를 대할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누구인지를 실질적으로 대면하게 된다는 점이 두렵지만 사실일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밀과 줄리에뜨는 50여년간 함께 살아온 부부다.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고 각자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아이도 갖질 않았다. 에밀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교사생활을 은퇴하고 사랑하는 부인과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목가적이면서 조용한 전원생활을 꿈꾸며 그들의 생각에 맞는 <우리 집>을 찾는데 성공한다. 노후에 조용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게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럴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자부하는 바인데 이 소설의 기본 전제는 오후 네시만 되면 문을 두드려대는 이웃남자의 침입으로 혼란을 겪는다. 베르나르댕이라는 거대한 몸집의 이 남자는 네시에 쳐들어와서 안락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여섯시에 그들의 집을 떠난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습관처럼... 문제는 에밀의 난해한 태도에 있다. 남의 집에 약속도 없이 들어와 거만하게 커피를 마시고 아무 말도 없이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하는 베르나르댕에게 뭐라도 말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에밀의 본능이 은근슬쩍 드러나게 되고 이런 생활이 반복지속되다보니 부인 줄리에뜨와도 이전과는 다르게 뭔가 모를 결속이 깨지게 된다. 고요한 연못에 돌맹이를 던졌더니 그곳의 주인인 개구리 두마리의 공간이 흐뜨러지며 바닥에 쌓인 온갖 흙더미들이 뿌옇게 올라오는 이미지를 상상해보면 이 소설의 줄거리가 대충 짐작이 갈 것 같다. 에밀의 사랑하는 제자인 클레르가 방문을 하는데 이제껏 보아왔던 그들에게 실망하며 돌아가는 장면도 작가가 던지는 냉혹한 진실이다. 클레르 / Claire.. 명확한 이란 뜻을 지닌 이름의 소유자는 실로 명료하고 확실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에 비해 평생동안 죽은 언어를 가르친 에밀의 실존은 생각속의 생각을 쌓아두고 추상적인 논박과 뒷담화를 늘어놓는 데 시간을 보낸다. 이웃남자 베르나르댕의 권태와 공허를 비난하지만 에밀 역시도 권태로운 일상에 급작스러운 침입이, 그런 무질서와 혼란을 즐기는 듯 보인다. 그러니까 문을 열어주었던 건 아닐 지... 베르나르댕의 부인은 살덩어리로 표현된다. 요즘 뜨는 넷프릭스의 [스위트홈]에 등장하는 욕망덩어리 괴물을 표현한 느낌이랄까. 어쩌면 이웃의 덩어리 부부는 에밀과 줄리에뜨 몸 속에서 떨어져나온 엽기적인 덩어리가 아닐까 하는 좀비스러운 상상도 해보았다. 사람은 자기 안에 정체되어 있는 커다란 덩어리를 갖고 있지. 삶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잃고 체념하는 순간 그게 밖으로 나오는 거야.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희생물일 뿐이야.
바른 선을 위해 악행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에밀의 사고가 결국은 베르나르댕을 살해하게 되고 에밀은 다시 동화적인 현실로 돌아온다. 줄리에뜨에게도 숨겨진 에밀의 살인은 결국 묵인되고 일년이 지난 이사 온 바로 다음의 해로 넘어간다.
오늘은 눈이 내린다. 1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그날처럼. 나는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본다. <눈이 녹으면, 그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라고 셰익스피어는 묻고 있다. 그 이상 위대한 질문이 어디 있으랴. 나의 흰색은 녹아 버렸고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두 달 전 여기 앉아 있었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런 삶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쳐 온 일개 교사라는 것을. 지금 나는 눈을 바라본다. 눈 역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녹으리라. 하지만 이제 나는 눈이 규정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에밀은 알고 있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 살아가는 나날동안 인간은 자신을 잘 알고 간다. 그걸 애써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무서운 진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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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를 알게 된 건 예전에 개봉한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덕분이었다. 이 책을 모티프로 했다고 영화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걸 봤다. 지금은 활동하지 않지만 김남진이라는 모델 출신 배우와 배두나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사운드트랙에 하림이 참여해서 오래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열린책들에서 프랑스 문학을 골라 블루 컬렉션으로 내준 덕분에 어떤 내용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조금 시시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소설이 1993년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읽어볼 만 하다. 청춘물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발신인 미상의 러브 레터를 받는 것(여기서는 수신인이 누군지 알 수 있지만). 비슷한 역사를 꼽아보자면 멀게는 펜팔에서 피씨통신, 오늘날 채팅 어플리케이션 정도가 되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시립도서관의 책에 낙서를 하면서 이어가는 관계이기에 범죄(?)이긴 하지만 귀여운 구석도 있다. 이십대 초중반의 싱그러운 허세와 열정 같은 것들... 주인공은 소설가 로맹 가리를 너무 사랑해서 그 나이대 남성을 멋지다고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해는 안 되지만 나도 새내기 시절엔 한 번씩 보는 앞자리 다른 학번의 선배들이 듬직하다 여길 때도 있었으니 뭐. 일고여덟 살과 열 다섯 살 차이나 그게 그거지 하면 좀 슬프긴 한데 어차피 스무살들에겐 똑같이 아저씨 아줌마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로맹 가리가 남긴 작품이 많지 않아 다 읽지를 못하고 아껴 읽는 매니아인데, 할 일도 없고 해서 시립도서관에 회원으로 등록한다. 우연히 빌린 책에서 누가 남긴 밑줄을 보게 되고 그걸 통해서 그 남자(라 추정되는 사람)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숨바꼭질. 이 밑줄을 그은 사람은 누굴까? 내가 이 책을 빌려가는 걸 보고 있을까? 설레하던 주인공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게 다른 사람을 향한 메시지였다면? 우울해하며 일상생활로 돌아왔다가 다시 도서관에 달려가 책을 빌려오고... 미리 밑줄 그은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듯이 또 밑줄을 긋는다. 이런 로맨스적 관계는 첫사랑 영화의 최고봉, 이와이 슌지의 <러브 레터>에서도 등장한다. 학교 도서실에 있는 열람카드에 첫번째로 이름 올리기. (예전엔 도서관에서 책 빌리면 책 마지막 장에 열람카드가 있어서 거기에 이름을 써넣었다. 요즘은 디지털로 다 바껴서 바코드로 입력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고 나랑도 잘 맞는 것 같은데 막상 만나보면 별 거 없고 오히려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상대를 내 상상 속에서 가장 괜찮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주인공들도 그럴 뻔 했는데... 반전이 있었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고 읽으면 주인공들이 풋풋하고 귀엽다. 단문메시지를 넘어 톡을 주고 받는 요즘이라면 답답할지도 모르겠지만... 때로는 느림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하니 말이다. 단편다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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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외세크의 소설은 읽고나면 도대체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 지 고민이 된다. 처음 읽은 「가시내」도 최근에 읽은 「남자들을 사랑해야 한다」도 그랬다. 절판돼 읽지 못한 「암퇘지」가 가장 난해하지 않을까 했는데 웬 걸, 읽어보니 가장 명료하지 않은가. 어쩌면 출간된 그 때에 읽지 않아서 여유가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1996년도에 나왔고 2000년에 번역되었으니 20년 전 작품이다. 훗날 번역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적 색채, 연출이 가미돼 있다. 이 작품으로부터 물려받은 다리외세크의 시그니처 같은 걸까 생각해본다. 원제는 Truismes. 역자 후기를 보면 자명한 이치 정도로 번역된다는데 저 단어에서 보이는 truie가 암퇘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로 도저히 옮겨지지 않아 암퇘지라 번역했다는데 영미권에서는 Pig tale로 소개되었다. 카프카의 「변신」을 모티프로, 욕망과 자본주의를 여체에 투사하면서 다양한 작품들이 중첩된다. 사드 후작부터 <살로 소돔의 120일>, <그랑 부페La grande bouffe> 등이 생각났다. 문학작품답게 에두른 문장으로 표현되긴 해도 그 퇴폐와 향락은 끝간 데 없고 충격적이라는 뜻이다. 특히 위정자, 사회 고위층들의 욕망 따위들이... 역자 후기에선 헐크 등을 소개하면서 망가 영향도 있다고 하던데 일본식 망가보다는 유럽스타일 포르노그래피(혹은 80년대 실제 프랑스) 분위기였다. 「가시내」에 묘사된 시절을 겪은 프랑스인이라면... 남자 혹은 욕망에 휘둘리는 순간에서는 문득 <혐오스런 마츠코>를 떠올렸다. 이 책의 주인공이 암퇘지가 되어가는 과정과 마지막은 마츠코의 비극적인 삶과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불안정한 삶을 사는 젊고 예쁜 여성과 그를 욕망하는 사회, 그 위선의 민낯 그리고 뜬금없는 자연주의! 주인공은 집세랑 식비 때문에 향수가게에 취직하는데 취업하는 조건으로 지배인에게 몸을 내준다. 신체가 강탈되는 동안 시선은 고용계약서에 가 있었다. 그렇게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게 된 주인공은 시간이 가면서 신체가 변하는 것을 느낀다. 처음엔 더없이 매력적이게 되더니(여기에도 이유가 있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겠다) 나중엔 점점 이빨도 손도 가슴도 피부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짐승과 같은 욕망에 휘둘리다 보니 짐승이 되어가는 것이다. 짐승같은 욕망 때문에 개 같다고 느낀 주체들은(손님들) 괜찮았는데 정작 그 대상인 그녀가 변한다. 그러면서 사람의 음식 특히 햄, 살라미 등을 역겹게 느끼고 꽃, 풀 따위에 끌리게 되는데 그것을 표현한 문장이 인상깊었다. 남자친구가 돼지고기를 튀긴 음식을 사 왔는데, 주인공은 구토를 하고 온몸을 떨며 진정하지를 못한다. 짧게 옮겨보겠다. 가까스로 쿠션에 기대고 있으니 조금 속이 진정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돼지 목을 자르는 모습이 선명하게 눈앞에 떠올랐다. 오노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를 껴안은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비계 부위부터 야만스럽게 물어뜯었다. 손님들의 얼굴도 눈앞에 떠올랐다. 그들은 내 옷에 꽂혀 있는 꽃들을 먹는 시늉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들 이빨을 드러낸 채 내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마리 다리외세크, 「암퇘지」 중 시간이 갈수록 욕망은 지독해지고 그 구분하는 선은 흐려져 간다. 그렇게 돼지가 된 주인공이 어떤 애정어린 보살핌을 받을 때는 다시 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짐승이 되었다가 하는데... 누구와 함께 있느냐 혹은 사회로부터 한낱 몸뚱이로 취급을 받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수용소에 갇혔던 광인이 세상을 이끌기도 하고 독재자가 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하고 욕망 아래 뭉친 연대가 섞일 수 없는 인종(계급)의식으로 인해 파괴되기도 한다. 화학약품으로 세계의 멸망을 앞당긴 기업가는 달밤이 되면 늑대인간으로 변하고, 피자배달부를 주문하여 욕구를 채우는, 세상은 요지경이다. 도덕이 사라지고 욕망만이 남은 사회, 돼지로 변한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할까? 96년도에 출간된 소설임을 감안하여 별 셋. 위에서 언급한 영화 <그랑 부페La Grande Bouffe>는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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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분량에 엄청 진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느낌과 흐름일지 예상이 되면서도 여전히 읽는 내내 가슴 아프다. 추천 받아 읽었는데 주변에 다시 추천하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잔인하고 슬픈 이야기인데 표지가 어울리지 않게 너무 발랄하다는 느낌도 들고. 예쁘긴 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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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살인자의 건강법> 그리고 <오후 네시>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은 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인간 삶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의 형태로 흘러가기 때문에 몰입도 또한 쉽고 깊게 빠질 수 있다. |
| 에리크 오르세나의 두 해 여름을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작가가 젊은 시절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섬에 머물며 번역일을 하며 벌어지는 섬사람들과의 애정과 우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작가의 추억을 함께 들여다 보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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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에리크 오르세나 저자의 《두 해 여름 - 블루 컬렉션》을 대여구매하여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리뷰에는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섬에 사는 아마추어 번역자들이 문학적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입니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와 섬에 대한 이야기 모두 유쾌하게 잘 그려져 있어서 재밌게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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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크 오르세나의 <두 해 여름-블루 컬렉션> 입니다. 작가가 젊은 시절 직접 겪은 경험에서 떠온 자전적인 이야기 입니다. 섬에서 나보코프의 책을 번역하는 번역가. 섬사람들과의 관계, 자연 안에서의 삶과 사랑과 문학에 대한 섬세한 응시입니다. |
| 에리크 오르세나 작가의 두 해 여름은 작가가 겪은 실제 일을 바탕으로 쓴 내용이라고 합니다. 섬 사람들의 인간관계와 사랑을 써내려간 소설인데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어요. 섬이라서 자연경관 묘사도 있어서요. 자연에 대한 존중과 경의를 배울 수 있는책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