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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예전 같으면 싫어했을 집이지만, 지금은 마당이 있는 집이면 더 좋겠다 싶다. 내가 좋아하는 꽃들을 심고, 꽃향기가 좋은 나무들을 심고 봄, 여름이면 초록빛 물결을 이루는 그런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꾼다. 물론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고 텃밭 하나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마당에 정체불명의 폐기물을 묻어놓은 이야기에 대해 리뷰를 쓰려다 갑자기 마당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다. 채송화나 맨드라미, 라벤더 등을 심어 놓은 마당 한구석을 빌려준 유나의 이야기였다.
일곱 살, 네 살 동생이 있는 열두 살의 유나네 집. 아빠가 일하는 센터에서 마당을 빌려 지하 10미터 깊이에 컨테이너 하나를 묻었다. 동생이 애지중지 키웠던 채송화와 라벤더 등이 파헤쳐진 건 당연했다. 아빠는 토끼들을 묻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옆집 마티 할머니나 동네 사람들은 유해 폐기물일 거라고 생각한다. 유나는 전에도 아빠가 실험용 개 두 마리를 묻었던 기억이 있어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었다.
폐기물을 묻은 후 커다란 슈퍼 지렁이가 땅 위로 올라와 햇볕에 말라 죽고 막냇 동생은 키가 자라지 않았다. 임시로 맡겨진 토끼의 주검들을 다시 되가져가길 바라지만, 처음 유해 폐기물을 마당에 묻자고 했던 소장은 센터를 그만두었고, 새로운 소장은 가져가겠다는 말만 하고 짓고 있다던 새로운 폐기물 처리장은 완공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유나 네는 센터에서 제공해 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이사 가는 날 벽에 집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슈퍼 지렁이 그림을 그린다.
열다섯 살이 된 유나는 우연히 잘못 탄 버스 때문에 남자 친구 뒤뒤를 만나게 되고, 토끼 자루들이 들어있던 집 벽에 그린 지렁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유해 폐기물을 불법으로 매립했던 센터에서 더이상 근무를 할 수 없게 된 아빠는 책임 전가를 하는 센터 쪽과 긴 싸움을 하게 하게 된다.
세상엔 우리보다 더 큰 거인이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개미를 내려다볼 때처럼 거인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우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죽어라 달려봤자, 거인이 볼 땐 겨우 한 뼘 정도 이동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우리 마당이 그대로 실험실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거인이 우리 마당에 비소로 오염된 토끼를 넣어놓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는 게 아닐까. (7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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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폐기물 매립과 환경에 대한 무거운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열다섯 살 유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소설은 무겁지 않다. 천진난만한 유나의 동생들 때문이었다. 어른들처럼 감추려고 하거나 책임 회피를 하려는 그들에게 일말의 쓴소리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나가 자루 아저씨라고 불렀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해적판 어린 왕자 책 이야기도 소설의 다른 면을 부각시켰다. 세 아이들에게 각자 어린 왕자 한 권 씩을 선물해 주었었다. 아이들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유나에게는 루 아저씨가 읽었던 해적판을 주었다. 다만 원래 책과는 다른 결말이 있었던 마지막 두 장이 찢어진 책이었다.
유나는 뒤뒤와 어린 왕자를 돌려 읽으며 해적판 어린 왕자 책을 찾으려 했다. 해적판의 결말이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루 아저씨는 왜 결말 부분 두 장을 찢었을까. 결말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었을까. 좀처럼 결말이 나지 않던 유해 폐기물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결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떤 사람들에겐 그 해적판이 고스란히 원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와 뒤뒤에게 그랬다.(203페이지)
우리는 이제 각자 마음에 구멍 하나를 뚫고, 저장고를 만들었다. 끌어 올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그 안에 넣고 자물쇠를 걸었다. 물론 도로를 달리는 그 문장처럼, 모든 게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을 가능성은 늘 있다. (204페이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비루한 어른들의 모습을 다루었지만, 한편으로 유나의 성장 소설로도 읽혔다. 책을 많이 읽어 똑 부러진 말을 하는 아이들의 순수함 때문에도 유쾌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재난이 일어난 여행지를 설계했던 여행사 직원의 이야기였던 『밤의 여행자들』과는 또다른 면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집 마당에 유해 폐기물이 묻혀 있다면 이것 또한 또다른 재난 지역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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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이나 구제역, 광우병 등으로 살처분하는 동물을 보면서 꼭 저렇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땅을 파고 거기에 죽었거나 아직 살아 있는 동물을 묻으면 끝. 이후 어떤 방식으로 소독하고, 처리 되는지 모른 채 우리는 그 땅위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땅이 얼마나 오염되고 망가졌는지 우린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적 있는가? 이 뿐 아니라 동물 실험을 한 사체도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법 규정에 의해 엄격하게 처리한다고 해도 혹 실수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무섭다. 인간이 지구에서 행한 행동들이 모두 옳을 수 없고, 완벽하지도 않았을 테니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안전을, 생명을 위협하지 않을까? 어느 날 아담하고 아름다운 우리 집 정원에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묻자고 한다면 우린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유나는 잔꽃초등학교 5학년이다. 유나네 가족은 마당에서 채소를 기르고 꽃을 심으며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센터’라 부르는 아빠의 회사에서 사람들이 비닐 자루를 싣고 이것들을 마당에 파묻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왜 이걸 유나네 마당에 파묻는지 의문이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조금 불안하고 불길한 느낌만 남긴 채 유나네 가족은 폐기물들과 동거를 시작한다. 유나네 가족은 잡지 촬영을 준비하며 마당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지만 동네엔 이상한 소문만 무성해질 뿐이다. 아빠의 회사에선 곧 다른 곳으로 이 자루들을 옮긴다고 말하지만 별 다른 조치가 없다. 유나네 마당에선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 어떤 어른도 책임지지 않는다. 해결되지 못한 채 어느 덧 유나는 사춘기 소녀가 되어 가는데... 이후 유나의 마음을 들어 줄 ‘뒤뒤’가 등장하고, 유나에게 해적판 어린왕자를 선물해 준 ‘루’가 있다. 과연 유나네 마당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무엇이든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나 자연 환경이나, 모두. 몇 달이라는 기한을 두지만 그걸 지킨다면 모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결국 똥 밟은 것과 같은 형국이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거절했다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조직의 힘을 이용해 개인을 어떻게 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결국은 사인을 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네가 사인했잖아.. 이렇게 말해버리는 것. 내 마당에 무언가를 파묻었지만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 그게 무엇이든 간에 무서운 일이다. 이게 내 마당이 아니고 우리 동네에 있다고 해도 무서울 것 같다. 나라에선 아무런 피해가 없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아니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이 땅 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단면으로 잘라본다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매설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마당이지만 내 마당이 아닐 수 있다면.. 무서운 상상인 것일까? 작가는 소설 탄생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뉴스에서 방사능 폐기물을 어느 집 마당에 묻는 걸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연히 ‘마당을 빌려 주세요’란 현수막을 보고 두 내용을 합쳐 이런 소설이 나왔다고.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지만 꼭 그렇지 않을 것 같아 읽는 내내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혹 우리 동네에 주민들 모르게 무언가 비밀스럽게 묻힌다면... 이거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다만 이곳에 문제가 있다는 걸 섣불리 인정하면 자네의 일이 더 커질 테니까. 인정하는 순간 진짜 문제가 생기는 거란 말일세. 실체 없는 그 어두움이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 가시화 된다고.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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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드미트리는 윤고은 소설가를 좋아한다. 대략 10년 전, 한창 소설 써보겠다고 문학상 수상작을 공부하던 시기였다. 그때 만난 여러 걸작 중 한 편이 『무중력 증후군』. 제2의 달이 떴을 때 지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다룬 소설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지!!! 감탄하며 읽었던 작품. # 1 『무중력 증후군』에는 태안 기름 유출 사건과, 그를 테마로 한 재해 여행이 스쳐 지나간다. 환경을 향한 작가님의 고민은 이후 10여 년 동안 작품에 투영된다. 자연재해 여행을 다루는 여행사 직원이 주인공인 『밤의 여행자들』에서는 재앙마저 소비 상품으로 소비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꼬집었다. 그리고 이번에 발표된 『해적판을 타고』. 우리 집 마당에 누군가가 폐기물을 묻어버린다. 그 '누군가'는 생면부지의 타인이 아니라, 아빠 회사의 직원. 회사에서 감사를 피하기 위해 문제될 소지가 있는 폐기물을 '잠시' 주인공집 마당에 묻어버린 건데, 이 '잠시'라는 기한이 길어지기만 한다. # 2 주인공은 유나. 초등학생이다. 밑으로 여동생, 남동생 이렇게 두 명이 있고 엄마와 아빠와 함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간다. 아빠 회사 직원이 정체불명의 뭔가를 묻고 간 뒤로 마을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마당에서 수퍼지랑이가 나오고, 동생 키가 자라지 않는다. 뭔가가 있다. 마당의 생태계는 물론, 사람에게도 유해한 무언가. # 3 『무중력 증후군』 첫 문장은 "외로움은 최고의 비아그라다."이다. 강력한 문장이다. 마찬가지로 『해적판을 타고』 첫 문장 역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우리는 단지 마당을 빌려준 것뿐이었다."고. "우리는 단지 권력을 빌려준 것뿐이었다."고, 라고 민주주의를 향한 유비로 난 읽었다. 모든 건 다 민주주의로 수렴하니까. # 4 윤고은 작가님이 관심을 지니는 '재해'는 저연에서 발생했는데 인간사와 결부되며 더 큰 재앙으로 발전하는 사건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생존이 가장 큰 화두인데, 『해적판을 타고』도 윤작가님의 기존 작품에서 던졌던 질문을 그대로 담았다. 환경, 환경재해, 생존, 이런 문제는 주로 SF에서 다루는 소재이나 이른바 순문학 쪽에서는 그다지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니다. 왜일까. 녹색당이 인기 없는 이유, 엘 고어의 외침이 미국의 탄소 배출 감소에 별다른 영향을 못 주는 사실과도 연관이 있으려나. 여하튼, 윤고은 선생님의 작업이 유의미한 일이라 믿고, 응원한다. 뭣보다 윤고은 작가님만큼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가 많지 않으니까. # 5 윤고은 작가님 작품의 여러 가지 매력 중 하나는 조직의 작동 방식을 촘촘하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도 폐기물이 왜 주인공네 집에 묻힐 수밖에 없었는지 뒤에는 인간 본성이 아니라 조직의 작동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 6 해피엔딩일까, 세드엔딩일까. 읽고 나서 해피엔딩이라 생각하고 작가님에게 질문했는데, 작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아니었다. (채널예스 인터뷰 참조) 주인공이 아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성장소설이기도 한데, 인혁당 사건을 아이의 눈으로 조망한 권여선 선생님의 『토우의 집』도 그랬는데, 비극적 사건을 아이 시선으로 그리는 이야기에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진다. 막 눈물을 쥐어짜내는 신파는 아니나, 그보다 더 묵직한 슬픔 말이다. --- "채송화 아니야!" "그래, 그 채송화는 아니야. 그런데 얘도 채송화야." (18쪽) "사실관계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어떤 세계는 소문 자체로도 타격을 입거든요." (61쪽) 순하고, 약하고, 누군가를 잘 믿는 건 실험대 위에 올리기에 수월한 조건들이었다. (80쪽) 사랑하는 것들이 짐처럼 취급되지 않았으면 해서 무게를 줄이고 부피를 줄였지만, 막상 낯선 집에 도착하니 우리가 짐짝이 된 듯했다. (87쪽) 친구들 사이에서 도태되는 것도 두려웠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두렵긴 마찬가지였다. 스무 살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싶어 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나는 이미 포만감 비슷한 걸 느꼈다. 어차피 인간의 나이란 한 자리, 두 자리, 그리고 드물지만 세 자리 숫자, 그 세 종류 중 하나일 테고, 벌써 내 나이는 두 자리로 진입한 지 오래였다. 어른이 되어 하는 일이란 게 기껏 다른 사람 집에 잿빛 자루를 묻거나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전조 증상만으로 충분히 얼룩져 본편은 시작할 지면도 없는 듯한 기분이었다. (9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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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책으로 나왔군요! 문자받고 반가운 마음에 구입하고 배송되길 기다리는 중입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블로그 연재는 보다 말았네요 완전 기대됩니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늘 놀라곤하는데... 이 책에서는 또 어떤 시선으로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봤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상큼한 표지에 제목도 해적이 들어가니 우리 아들은 저보다 더 기대하고 있어요 막상 받고 자기책아니라 실망하는건 아닌지... 여튼 빠른배송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