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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풀어 오르는 대신 비어 있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하며 사람들을 품어 안아야 했다. 그랬을 때, 원향의 하늘은 열릴 것이었다. 원향의 큰비가 내릴 것이었다. 태초의 미륵 세상, 하늘에 축원해 사람을 갈구하여 있게 한 그 미륵의 큰 세상이 열릴 것이었다. 당신 손으로 감을 짜 베틀로 옷을 짜 입던 그 미륵의 세상이 올 것이었다. 세상을 한 번에 갈라 치는 영의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한 올 한 올 베옷을 짜는 마음이 미륵의 세상을 열 것이었다. (p. 267)
조선 숙종 때 큰비로 다른 세상, 미륵의 세상을 맞이하려 했던 무당 무리들이 있었다. 경기도 양주의 무당 무리들인데, 이들은 거사를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한다. 도성에 큰비를 내려 세상이 기울어진다는 대우경탕설이다.(p. 275)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정미경의『큰비』는 무리들 중 유일하게 여성이었던 원향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녀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용녀 부인으로 추대된다. 현대에 불가사의한 힘은 미신으로 깎아내려지고는 한다. 깎아내리기를 좋아하는 조선 시대의 양반들도 그러했던 모양이다.
양반들이 그러했다. 겉으로는 예를 숭상한다며 무녀의 일을 음사로 여겼다. 허나 유학의 예가 인생의 마디마다 턱턱 걸리는 우리네 삶을 구제해주더냐? 태어나고 죽고 병에 걸리고 이별하고 사별하고 배곯고 벼락을 맞는 삶의 마디마다 사람들이 기대어온 곳이 어디더냐? 우리 무녀들이었다. 그들도 결국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일 앞에서 우리 무녀를 부르지 않더냐? (p. 164)
이러한 아이러니는 현대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이 있으면 점집을 찾고는 한다. 그러나 현대에는 우리네 삶을 구제할 수 있는 제도가 많다. 그 제도가 부실할 때가 있어서 문제지만 말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기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큰비였다.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치부하기에는 그들의 삶이 너무 퍽퍽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마음부터 앞선다. 게다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갈등이 끊이지 않았지만, 큰비를 내리게 하기 위한 무당 무리들은 더없이 심각했다. 그래서 풍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큰비』는 원향이 청배로 큰비를 내리게 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큰비로 신령의 화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원향은 이제 길을 떠나면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도 원향은 다시 길을 떠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안타깝게도 이 길은 살아서 가지 않는다) 황해도로 갈 것이라며 원향은 이렇게 말한다. 원향의 이 말이 주제가 아닐까 싶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오. 인생의 고개를 팍팍하게 넘어서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것이오. 그들이 제각각의 하늘을 열고,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맹렬히 살도록 도울 것이오. 사람들이 하늘과 통하던 다리, 언젠가부터 끊어져버린 그 다리를 잇도록 도울 것이오. (p. 269)
어쩌면 원향은 지금도 그 다리를 잇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 끊어져버린 그 다리를.. 그래서 인생의 고개를 팍팍하게 넘을 때면 점집을 찾는 게 아닐까. 억지스럽지만 그렇게라도 원향의 염원을 새기고 싶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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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팍팍하기만 하다. 세도가들의 눈에는 민초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항상 그들만의 세상을 살면서 민초들을 핍박한다. 이 책에 나오는 민초들의 삶이 그러하다. 이 책은 무녀의 힘으로, 미륵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보려는 민초들의 염원이, 한이 담겨있다.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다. 탐관오리의 탐욕에 민초들의 삶은 너무 애처롭기만 하다.
미륵의 세상을 이루라는 계시를 받은 여환과 비를 부르는 무녀 원향이 만났다. 세상을 바꾸고자 무리를 모아 한양으로 입성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길로 향한다. 이들을 따르는 무리들은 각자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무녀들의 순수한 영혼과 미륵세상의 도래를 꿈꾸는 사람들의 행로는 같은 것 같지만 달랐다.
용녀를 따르는 무녀들은 영적인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고 말하고, 미륵세상의 도래를 꿈꾸는 사람들은 칼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로 상반된 사고가 그들의 염원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어 비극을 맞이하지만 ‘큰비’가 와서 타락한 세상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은 같다. 양반이 상놈 되고 상놈이 양반 되는 세상을 원하는 바는 다 같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이들의 여정에 각자의 다른 생각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면 이들의 꿈 또한 요원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개국한지 3백 년이 지나던 그 시대는 세도가들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한 마음 한 뜻을 갖고도 성공시키기 힘든 혁명을 각자 다른 생각으로 성공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언제나 민초들의 마음은 순수하다. 어리석기도 하다. 그들의 삶이 아무리 팍팍하더라도 세상의 이치는 단순하지도 않다. 위정자들은 그들의 논리대로 민초들의 삶을 지배하고자 한다.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무녀 스스로 세상을 움직일 수 없고, 민초들 스스로 세상을 뒤 엎을 수 없다. 특히 위정자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가꾸기 위해 끊임없이 민초들의 삶을 지배하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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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역모를 꿈꾼 무녀들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조선 숙종 14년,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무리가 있었다. 처음엔 미륵이었다. 아니, 미륵이 현신하였다는 여환이었다. 손바닥에 세 개의 점을 갖고 태어났으니 미륵이 내린 누룩이라 하였다. 배곯는 백성을 배불리 먹여줄 거라 하였다. 여환과 그를 따르는 무리는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동지로 조선의 무녀 원향을 골랐다.
유교의 예를 숭상하는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음란하고 사악한 존재로 규정되어 추방당한 무녀들이 이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역사의 무대 앞으로 나왔다. 순수하지만 불길한 역모의 꿈, 그 꿈을 위해 오랜 세월 동안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거동 하나를 조심하고 입단속을 하여 불경하지 않고자 노력하는 무녀들. 인간과 신의 경계에 선 채,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무녀들은 하늘과 통하는 능력 대문에 오히려 철저히 짓밟혔다. 그토록 짓밟히면서도 뭇사람의 슬픔과 고통을 위로해주고 응어리진 한을 풀어주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무녀들이었기에, 자신들을 배척하면서도 사람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일을 당한 사대부들이 원하면 남몰래 찾아가 굿을 하고 한을 풀어주고 원통한 넋을 달래주어야 했다. 경기도 양주의 무당 무리가 도성에 입성하여 미륵의 세상을 맞이하려 했다는 당시의 실제 역모 사건을 모티브 삼아 구성한 작품이다. '대우경탕(大雨傾蕩), 큰 비를 내려 도성을 휩쓸어버리겠다며 거사를 도모한 무리의 중심에 선 인물은 불가사의한 힘으로 용을 움직여 큰비를 내리게 하는 무녀 원향이었다. 열아홉 살의 황해도 만신 원향은 뜻을 같이하는 이들 중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 열세 명과 함께 한양으로 향한다. 열두 살에 내림굿을 받고 무당으로 살아온 원향은 여환의 무리에 의해 용녀 부인으로 추대되어 거사에 합류하고 여환의 혼인에도 응해 성혼한다. 미륵과 용신의 결합으로 여환의 무리가 궐에 입성하는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으나 원향의 계획과 여환 무리의 계획은 애초부터 서로 달랐다. 여환을 중심으로 한 미륵 세계를 열고자 하는 무리는 결국 원향을 중심으로 한 무녀의 무리가 다른 일을 꾸미고 있음을 눈치채는데...
여환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단지 그들이 만들어놓은 판에서 꼭두 놀음을 하지 않겠다는 무녀들의 이야기가 맞물려 전개된다. 거인신 미륵이 땅과 하늘을 갈라 세상을 열고 모든 것을 화평하고 조화롭게 운영하고 있었던 시절 이야기를 원향을 비롯한 무녀들이 꿈꾸는 조화로운 세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바는 같았으나 그들이 더 가치를 두는 것은 달랐으니 이로써 미륵과 석가의 다툼이 재현되었다고나 할까. 읽기가 만만치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읽고 나서 약간 허탈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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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도성으로 올라갔다. 석가의 세계가 아니라 미륵의 시대를 열겠다고 작정한 이들은 신통한 무녀가 용의 힘을 빌어 큰비를 부를 것을 믿었다. 그래서 같은 길을 함께 가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같은 길을 걷는 그들이 모두 같은 결국을 바라는 듯 보였지만, '큰비'라 여기는 것의 실체는 각기 달랐다. 누군가는 양반이 상놈되고, 상놈이 양반되어 떵떵거리기를 바랐고 하늘의 뜻보다는 칼의 힘을 빌려 세상을 새로이 하길 바랐다. 누군가는 절연한 하늘과의 끈을 다시 잇기를 바랐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이 오기 전에 청산해야 할 한을 먼저 풀고자 하였다. 도성을 쓸어버릴 큰비를 기다리는 마음은 매 한가지였으나, 무엇을 큰비라 여기는지는 각자의 몫이었다. 정미경 작가의 소설 [큰비]의 무게 중심은, 그래서 역모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것이 성공하였는가 아닌가 혹은 그들은 어떤 방편과 술수로 역모를 꾀하였는가. 이런 것은 이 속에서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여기서 이야기되는 것 단 한 가지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자들의 마음이다. 이야기 초반부터 칼의 힘(술과 고기와 색이 초록의 동색처럼 따라 붙는 이것)으로 세상을 뒤집으려는 사람들과 신의 뜻으로 세상을 재편하려는 사람들이 계속 부딪힌다. 칼의 힘에 기대는 자들은 '제 아무리 신의 힘이라 하나 인간 세상에서의 일을 어찌 신의 힘만 가지고 하려는가'라고 묻고 신의 힘을 업은 자들은 '칼의 힘은 부정한 것이고 새 세상을 세우려는 것은 정한 것이기에 정한 일에 부정한 것이 끼어들게 된다면 필시 망할 것'이라고 답한다. 이 대립은 묘하게도 각기 남성과 여성의 두 무리로 나뉘어 시종 갈등을 이어간다. 그리고 이 대립은 그 어떤 화해나 중재 없이 영원한 평행선이 되어 이야기는 끝난다. 조선시대 무속 문화를 잘 그렸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흥미롭다. 하지만 그것 외에, 여성주의의 입장이라든가 신앙(혹은 신)적 측면이라든가 하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특징이 흥미롭거나 매력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무녀와 신령 사이에 오고가는 혹은 그들이 독백하는 이야기들은 나에게는 진지하고 흥미롭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판타지 소설 같았달까.... 원향의 독립성, 주체성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따로 두고, 신의 뜻이라며 결혼을 한 상대자는 또 따로 두어 이야기를 풀어나간 부분에서는 많은 의문이 들었다. (황회만 의문이 든 게 아니라 나 역시도 너무나 많은 의문이 들었던 것. 하지만 그의 입장과는 좀 다르다. 그는 여환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랬지만 나는 혼인이라는 가치 그 자체 때문에 의아함과 거부감이 쉬 가시지 않았다.) 조선시대 무녀의 이야기, 무녀의 생활상이나 당시의 시대상을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충분히 볼만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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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모를 꿈꾼 무녀들]
세상의 문을 열어 젖히길 소망하며 기적을 바라던 무녀들이 있습니다.
조선 숙종때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지어진 책이에요.
우리민족에 있어서 무속신앙을 꽤나 큰 역할을 했던것은 틀림없는 일로
미천한 백성들에게는 상당한 의지가 되었을 민중의 종교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도 되었네요.
무진년 몇월 며칠 시간까지 세세히 기록하며 사건을 다루고 있는터라
훨씬 현장감 있다고 보여져요.
많은 이야깃거리나 클라이막스가 없었다는 점은 아쉽지만
왕이 지배하는 세상에 있어서 모반과 대역이라는 큰 사건은
곧바로 능지처사로 이어지는 일이였지요.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여자, 무녀의 몸으로 무리와 함께 도성에 입성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거라는 뜻을 품은 여정이 책의 초반부터 끝까지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신령을 받드는 만신으로 아프고 화를 입고 재앙을 가진
이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두려움을 없애주면서 아픈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그런 걱정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무녀들을 모른척 한다.....
의탁했던 순간들을 모른 척하고 무녀들의 존재를 외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찾으면 무녀들은 또 그들을 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만신의 운명이다....
자신의 운명이 이러함을 알기에 무척 고달프고
힘들지만 내림굿을 받고 무당으로 살아가는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2살에 무당이 된 원향은 큰비가 내려 도성을 휩쓸게 되면
여환의 무리가 궐에 입성해한다는 거사를 도모합니다.
잠자고 있는 용을 승천시켜 마른 땅에 비를 내리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원향이라면 바로 용녀로서 그 능력을
믿을 만 하다 여긴거지요. 하지만 비밀을 늘 새어나가기
마련이고, 큰비 즉 미륵의 세상을 맞이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칠월에 눈송이가 날리는 등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기도 했기에
큰비가 오지 않을 거라는 일은 아예 헤아려보지도 않는 무리들입니다.
신령을 맞이하는 굿판이 벌어진다는 것은 이미 소문이 무성했고
이에 삭녕 군수 이세필은 말합니다.
'간사한 말로 신분의 질서를 넘어서고 국가의
질서를 뒤엎으려하고 있었다'라구요.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한양에서는 큰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원향이 다른 일을 꾸민다는 사실도 무녀들의 역모가
다른 뱡향으로 가고 있음을 내비치고 있지요.
믿음에 대한 다른 방향이 있지만 우리조상들이 항상
믿고 의지했던 무속신앙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새로운 소설이였습니다. 조선 숙종때 이런일이 있었다는 사실또한
새롭구요. 불가사의한 힘으로 큰비를 내리게 하는 열아홉
무녀 원향의 이야기는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그런 뜻을 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방향성을 가질 역모 사건이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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巫(무)에서 무(無)를 이루리라...... 큰비(정미경 장편소설 / 나무옆의자 펴냄 )는 미륵의 새 세상을 꿈꾸는 무녀들의 이야기이다. 조선시대 무녀들의 이야기라는 책 소개의 글에서 신비로움을 느꼈고 읽어보고 싶었다. 큰비를 처음 만났을 때, 곱디고운 표지의 느낌은 따뜻함과 아련하면서 정말 고운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선택할 때 그저 조선시대 무녀의 이야기라고 해서 솔직히 약간의 로맨스가 있는 책 일거라는 생각이 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펴니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이야기의 구조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진행되어 간다. 큰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작가의 간결하고 짧은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무녀들의 사상과 그녀들의 삶이 자세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티비에서나 보던 굿판의 모습을 세세히 묘사해 마치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인상적 이었다 이 책은 가벼운 로맨스물이 아닌, 조선시대 최하층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무녀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의 사상이 드러나 있다. 현실이 너무 힘겨워 새 세상을 바라는 민초들의 삶의 모습은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경신년, 너무나 고단한 삶에 그들은 세상을 뒤엎을 큰비를 기다린다. 여환과 원향, 그리고 묵묵히 그들을 따르는 계화, 황회, 어진 외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얽히고 얽혔다. 양반이 상민이 되고 상민이 양반이 되는 그런 세상을 그들은 바라고 있다. 과연 그들의 소망은 이루어졌을까?!! 삶이 힘든 민초들이 만든 사상, 미륵..... 언젠가 그들이 도래하여 새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만의 생각으로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새 세상이 온다는, 살기 좋은 세상이 온다는 이야기들 믿는 사람들...... 누군가의 간절한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너의 하늘을 열거라 巫 (무)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형상이 없는 것을 두 여인이 이승으로 신을 부르기 위해 춤을 추는 것같다. 신을 보내는 일, 만신의 몸에 깃든 신이 신령의 자리로 되돌아가도록 놓아주는 일, 그것이 무의 끝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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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시대의 무녀들의 활동상을 담은 소설이다. 출가하여 무녀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무녀로서 살아가는 그 자체가 가족과 본인에게 크나큰 부담이기도 한다. 오늘날은 종교적 편견이 사라지고 있다지만 지금도 무녀라고 하면 시선이 곱지 않다. 모 드라마에서 무녀의 모녀의 관계를 묘사한 적이 있었다. 무녀로서 살아왔지만 딸에 대한 애정은 어느 부모와 같았다. 그렇지만 딸은 무녀로서 살아가는 어머니를 인정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 어머니를 떠나 살았고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결혼 대상자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그처럼 무녀를 두었던 자녀들은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심리적 압박과 부담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성적 판단속에서 그들을 품는다 해도 쉽지 않는 사회적 편견이 결코 용납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 또한 사회적 일원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받아야 한다.
이 책은 무녀들의 반란을 그렸다. 당시는 역모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편견과 사회적 변화에 따른 무녀들의 행동이다. 국가를 전복하고 사회의 이질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으로 비춰지지만 그들에게 그만한 힘이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삶속에서 받았던 편견을 극복하고 국가의 재난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국가의 위기을 감지하였다고 한다. 국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가지고 행동화했지만 그들의 행동은 국가를 전복하려는 역모로 다스리게 되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행동하게 했는지, 무엇이 이들을 집단의 목소리를 부르짖게 했는지는 사회적 배경과 통념에서 살펴볼 때 쉽게 이해되지 못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픽션화했지만 팩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인권에 대한 새로운 목소리, 소외된 계층들의 변호에 따른 글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모두는 평등하다. 그러나 세상은 평등을 추구하는 인권에 발맞춰 살아가지 않는다. 어느 계층이든 소외된 부분이 있으며, 사회적 배경 아래에서 신음하는 존재들이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삶에 현장은 어떠한지 다시금 읽어 가야 할 것이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는 편견과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되며,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있어서도 안된다.
이 책을 통해 무녀의 일상과 그들의 외침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의 외침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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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인 <큰비>를 읽으며 역시 문학상 수상작 답다는 생각을 하였다. 여환이 처음 원향을 보았을 때, 그 얼굴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사람의 얼굴이었으나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여인의 얼굴이었으나 어여쁘고 추함을 느낄 수 없었다. 있으되 텅 비어 있는 얼굴, 존재하되 이곳에 없는 얼굴, 그것이 원향이었다. 원향은 아무도 아니었다. 아무도 아니기에 누구도 되었다. 텅 빈 얼굴로 누구라도 불러들이고 붙들었다. 여환은 홀린 듯 원향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천불산 천 개의 미륵을 담고 있구나, 바로 저이로다. Pg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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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자, 그들을 연결해주는 이는 무녀의 삶이다., 산자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무녀는 존재했으며, 조선시대 비과학적인 삶 속에서 그들은 이유없이 죽어가야 했다. 역병이 창궐하고,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질 무렵 백성이 기댈 수 있는 곳은 나라가 아닌, 왕이나 사대부가 아닌 무녀와 같은 그들의 삶 속에 깃들여져 있는 누군가였다. 죽은 이의 원혼을 달래주던 무녀는 그들의 삶에 필요하면서, 필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사대부들은 무녀들을 외면하면서도 자신 앞에 놓여진 불행한 운명이 닥칠 때 그들이 손을 잡는 무녀였다. 숙종 시대 사대부들의 권력 다툼에서 불결하다 낙인 찍혀 버린 무녀들은 한양 도성에서 쫒겨났으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채 떠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정미경씨의 소설 <큰비>는 바로 우리 역사 속에 혼돈의 대표적인 역사,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권력이 현존했던 숙종 임금때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소설은 무진년 (1668년 ) 7월 13일 새벽을 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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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전통적인 유교국가의 나라로 예의와 범절, 외형적인 격식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외형적인 면에 많은 치중을 둔 조선시대의 나라입니다.
큰비를 내려 세상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세계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위해 조선의 무녀들은 자기들만의 믿음으로 신앙으로 굿을 하고 기도를 드리면서 새로운 미륵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선 무녀들의 순수하고도 불길하고 무언가 알수 없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조선시대의 무녀의 생활하는 한 단면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나라 어떤 시점에서도 자기만의 만족이 없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들의 만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꿈을 꾸고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노력하는 한 백성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유교의 나라 조선 300여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들이 천대받고 존중을 받지 못하여 억압받는 세상에서 존중받고 대접받는 미륵의 세상에서 자기들의 꿈을 펼치기위한 조선시대의 무녀의 모습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큰비는 조선 숙종시대 경기도 양주의 무당 무리들이 도성에 들어가 미륵을 만나기위해 실제로 역모를 꿈꾸었다는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여 써 내려간 소설입니다.
큰비를 내리면서 미륵이 오기를 바라면서 미륵을 통하여 그들이 꿈에서 생각한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얼마나 허황되고 잘 못 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언제 어디서든지 시대만 틀리지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같은 것 같습니다.
얼마전 우리는 춧불시위로 또 다른 민주사회를 이룩하였습니다.
IMF를 지나면서 우리 사회는 물질적 정치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현재 또 다른 아니 새로운 민주주의를 형성하면서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선 300년전 여성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들이 억눌리고 억압되었던 무녀의 삶을 통하여 현재에 나름대로의 여성으로서의 말 못할 고민과 억압속에서 이제는 현재 우리 사회는 여성의 인격과 여성의 위치가 많이 좋아졌고 위상이 높아져 이제는 남존여비에서 여존남비가 되었는지 여성들도 큰 소리를 내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여성 상위시대가 된 이 시점에 얼마전까지만해도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인 사회가 되고 남자가 큰 소리만 내어도 여성들은 어깨가 쪼그라드는 힘을 쓸수가 없었고 남자들이 없으면 여성이 살아갈 수가 없던 얼마전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여성들이 경제적인 자립을 통하여 목소리가 커졌고 여성으로서의 힘과 능력을 마음껏 그러나 아직은 소수이지만 조금은 힘이 들지만 여성으로서의 위치와 자리는 많이 향상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여성대통령도 나오고 여성 국무총리 여성들의 고위직을 차지하면서 큰비를 통하여 300여년전의 조선시대의 무녀의 삶을 통하여 현재의 나를 바라보면서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하는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이 책을 통하여 한세대만 넘으면 가부장시대로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으나 경제적인 자립을 통하여 여성의 힘이 커진 것들이 역사의 흐름에서 많은 여성들이 기도와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조선의 무녀의 삶을 통하여 작가는 여성들의 안타까운 삶을 그려낸 작품으로 이 시대의 여성들의 모습을 조명해 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