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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작가가 반복해서 읽고 있다는 이 책은 나에게는 다소 뜬금없는 달팽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날파리에게 그랬듯이 한 생명을 죽이거나 무시하기에는 모든 생명들이 치열하고 체계적으로 생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함부로 그 생명을 끊어버린 내 손이 부끄러워진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저자는 유럽 여행 중 침입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때문에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는 신세가 된다. 병문안을 오던 친구가 숲에서 달팽이 한 마리를 가져와 저자의 화분에 올려두고 가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한 생명과의 교감이 시작된다. 달팽이 전문가들도 이 책을 통해 배우는 내용들이 담겨 있을 정도로 과학 서적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협업하며, 무수히 많은 참고서적을 읽고, 그곳에서 발췌한 문장들을 사용하기 위한 양해를 구하는 과정까지, 불완전한 자신의 몸 상태에 비관하기도 바빴을 저자는 달팽이라는 하나의 생명을 설명하기 위해 스스로 완전해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인연은 참 즉흥적이고 인과성이 부실하다. 친구가 가져온 생명이 달팽이가 아니라 고양이나 햄스터였다면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는 전혀 다른 책의 저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우연은 신기하면서도 매력이 있고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보려고 애써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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